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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제 2 구간 산행
Ⅰ. 산행 계획
1. 산행일자 : 2008년 5월 25(일)
2. 산 행 지 : 옥녀봉, 경각산 - 전북 임실, 갈담
3. 출발일시 : 5월 25일(토) 05시 50분
4. 출발장소 : 전주 시내(숙박지)
5. 산행 거리 및 소요 시간
(1) 총 산행 거리 및 소요 시간 : 총 산행 약 22km, 10시간 정도
(2) 구간별 산행 거리
○슬치(250m)--5.8km--갈미봉(539.9m)--2.0km--쑥재(380m)--4.9km--경각산
(659.6m)--1.7km--불재(310m)--7.6km--염암재(49번 도로,365m)
6. 산 행 일 정
(1) 기상(05:00) ∼ 식사(05:20/05:50) ∼ 슬치고개(06:20)
(2) 슬치(06:30)→실치재,745지방도(07:05)→469봉(07:45/07:55)→갈미봉(08:30)→쑥재(09:10/09:20)→텃골안부(09:40)→옥녀봉(10:00/10:10)→570봉(10:30)→효간치(11:00/11:10)→경각산(12:00)→불재/도예원(12:40/식사/13:30)→607봉/헬기장(14:40/14:50)→작은불재(15:05)→450봉(15:45)→ 염암재, 49번도로(16:10)
(3) 염암재(16:30) ∼ 전주(17:00/점심/17:50) ∼ 완주IC ∼ 호남, 천안논산간, 경부고속 ∼ 수원(21:00)
※전주왱이콩나물국밥(063-287-6979),전주막걸리전문점(063-222-7821)
7. 날 씨 : 맑음
8. 참가인원 : 6명(강영재, 박봉하, 설경자, 윤희원, 이용준, 장현옥)
Ⅱ. 산행의 실제
[1] 산 행 전
<전주 콩나물 국밥>
○ 06 : 00시경 기상, 어제 산행이 고단했거나 전주 막걸리의 기운이 독했던지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더디 일어났다.
○ 급히 산행 준비를 하고
○ 06 : 30분경 숙소(휘가로 모델)에서 100여m 떨어진 전주 『삼백집』에서 콩나물 국밥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고 한다. 이 국밥도 전주를 대표하는 맛 중의 하나다. 수원에서도 가끔 먹어 보았는데 현지에서 직접 맛을 본다는 것에 기대가 된다.
전주에서 외지인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 '아침식사는 콩나물국', ‘점심식사는 비빔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주콩나물국밥은 전주비빔밥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전주의 대표음식이며 콩나물 뿌리에 많이 들어있는 아스파라긴산이 알코올의 자연분해를 촉진함으로써 전날 과음으로 겹겹이 쌓였던 숙취를 해소시켜 준다고 하여 애주가들은 오래전부터 해장국을 즐겨 먹는다고 한다.
어제 전주막걸리 두 주전자를 비웠으니 오늘 아침식사로 콩나물 국밥은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설부장, 장부장 우리가 오기 전 식사를 끝냈고 坐定하여 잠시 기다니 김치, 깍두기, 새우젓, 장조림이 찬으로 나오고 연이어 뜨끈뜨끈한 뚝배기에 콩나물 국밥과 계란후라이에 김도 곁들여 내 놓는다. 따끈따끈한 국물을 한 수저 떠 입에 넣으니 감칠맛이 난다.
모주 한잔에 콩나물 국밥으로 속 풀이 겸 아침 식사를 하고 나니 몸이 나른해 진다. 산악대장, 감기로 머리가 아프다고 하며 장부장을 어제 산행으로 발뒤꿈치가 벗겨져 파스를 붙였다고 하며 다른 대원들도 피곤해 보인다. 오늘 산행을 계획대로 순조롭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 슬치마을과 슬치재
7시를 좀 넘겨 숙소를 출발하여 남원 가는 17번 국도를 따라 20여분 달려 오늘 산행의 출발지 『슬치재』로 향했다.
07 : 40분경, 슬치재 버스 정류소에 도착했다. 도로 건너편에는 슬치휴게소와 주유소가 있고 모텔촌의 이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완주군과 임실군의 경계가 되는 지점이다.
슬치재 버스 정류소 정차를 시키고 산행 채비를 하여 출발(07 : 50분경), 『슬치마을』 입구로 들어섰다.
『슬치리(瑟峙里)』는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에 있는 리(里 : 마을)로 진안고원의 서부지역에 해당되며 박우산 옥녀봉 아래, 전주와 남원간 국도변에 비슬날 안에 있는 마을이다. 논과 밭농사를 주 생업 수단으로 삼고 있다. 슬치리의 자연마을로는 바깥마을, 안마을, 두지매, 용정 등이 있는데 바깥마을과 안마을은 마을의 위치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슬치마을은 350여년 전 평산신씨가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옛날에 道人이 비파(琵琶)를 뜯으며 고개를 넘어왔다 하여 비파 슬(瑟), 고개 치(峙)써서 「슬치(瑟峙)」라 부른다고 하며 慶州金氏들이 오랜 세월 동안 터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마을회관 앞 삼거리에서 우측 아스팔트(745번 지방도로) 도로를 따라 진행해야 하는데 무심코 마을 안쪽으로 들어섰다 다시 되돌아오는 愚를 범했다. 마을회관에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가다보니 큰 인삼밭이 나온다. 점점 경사각이 심해지며 다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3] 『실치재』 동물 이동 통로
아스팔트길을 따라 걷기를 약 20여분, 고개 마루에 10여m 높이로 둑을 쌓아 터널을 만들었는데 『실치재 동물 이동 통로』라 표시되 있다.
이곳은 행정구역은 완주군 상관면/임실군 신덕면의 경계가 된다. 그런데 「임실군청 공무원 노동조합 홈」자료에 따르면 745호 도로상에 육교형으로 설치되어 있는 [실치재 동물 이동로]라는 표기가 잘못되었다는 의견에 대하여 나름대로 수집한 자료가 올라와 있는데 『슬치재』와 『실치재』를 구분하는데 참고가 되는 것 같아 그대로 옮겨 본다.
○ 관촌 슬치마을을 지나 신평으로 넘어가는 지방도 745호 도로상에 육교형으로 설치되어 있는 [실치재 동물 이동로]라는 표기가 잘못되었다는 의견에 대하여 나름대로 수집한 자료를올려봅니다.
육안상 위치는 관촌면과 신덕면 완주군 상관면 이 접한 경계구역 으로 보여지며 행정자료상은 지번이 신덕면 오궁리 산 54-1 번지로 추정됩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자료를 확인하여 본 결과는 1961년 4월 22 일자 관보에 실치재라 고시(Fax 자료 받아 확인함)가 되어 있고 각종 지도에 실치재라 표기 하고 있음.
그러나 지역주민들의 의견은 근거나 자료를 떠나 의견이 분분함 분분한 의견을 종합해 보면 이유를 불문하고 고쳐야 한다는 의견과 그대로 존치해야 한다는 의견 크게 두 가지 의견으로 종합할 수 있는데
고쳐야 한다는 주장의 이유로는 실치재라는 명칭은 슬치재를 옛어른들이 발음을 정확하게 하지 않아서 잘못 구전된것이며 지명유래를(자료2)보면 "오궁리 재 너머에 실티 마을이 있어 실티재 또는 실치재 하였다" 라고 되어 있는데 오궁리 재 너머에 현재까지 슬치 마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잘못 된 것이 명확하다는 주장이며
실치재 그대로 존치해야한다는 주장의 이유로는 현 17 번 국도상의 슬치재가 있는데 오궁리 넘어 가는 길까지 슬치재라 부른다면 같은 지역에서 같은 지명을 2곳에 씀으로써 많은 혼선이 있고 또 국토지리 정보원 자료를 근거로 하여 실치재로 그대로 존치함이 좋겠다는 입장
※ 국토정보지리원 직원상담내용
실치재(한문으로 표기된 자료는 없음)라는 지명에 대하여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관보 이외의 자료는 찾기 어렵고 다만 잘못되었다고 인정이 된다면 임실군 지명위원회와 전라북도지명위원회 중앙지명위원회의 계통적 절차에 따른 심의의결을 거쳐 정정 요구할 수 있음
『실치재 동물 이동 통로』에서 745번 지방도로를 벗으나 우측 세멘트 포장길을 따라 숨을 몰아쉬며 잠시 오르니 「동물 이동 통로」가 나오고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마루금 표시기가 여러 개 나무에 매달려 있다.
산악대장의 설명에 따르면 인삼밭 초입(이동통신사 중계기가 있는 곳)에서 좌측 옹벽을 넘어 인삼밭 가장자리를 따라 423.3, 400봉에 올랐다 이곳으로 와야 하는데 [슬치마을에서 실치재까지 이동 경로 : 이동통신사의 중계기--->좌측 인삼밭--->세멘트 포장도로 ---> 임도 횡단 ---> 직진 ---> 산길 ---> 청색의 대형물통이 위치한 Y형 갈림길( 우측) ---> 묘4기 통과 ---> 좌측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직진)--->봉정상(400봉)--->임도 갈림길(좌측 임도)--->인삼밭 상단부(우측으로 이동) ---> 좌측 산--->군사용 개인호--->임도(우측)--->원형석곽 묘와 사각의 석곽묘--->동물이동 통로] 시간 단축을 위해 지름길인 포장도로를 따라 올랐다고 한다. 경우야 어찌되었건 한발짝이라도 더 걷지 않은 것은 크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물 이동통로와 연결 된 임도에서 배낭의 짐 정리를 하기 위해 잠시 휴식.
[4] 469봉
다시 임도를 따라 완만한 능선으로 진행하여 봉(416봉)에 오르니 벌목 된 넓은 활개지가 나타난다. 아마도 山主가 樹種 改良을 할 모양이다.
벌목지를 지나 잠시 진행하니 임도도 끝나고 완만한 산길 오름으로 이어진다. 봉(420봉)을 오르고 다시 가파른 오름 길을 따라 봉에 올라보니(09 : 00시경) 정맥 표시기가 여러 개 나무에 매달려 있고 코팅으로 처리한 호남정맥 469봉 표지판(백곰&백곰)도 달아 놓았다. 휴식.
날씨가 덥고 습도가 높기 때문인지 조금만 움직여도 금박 이마에 땀이 고인다. 준비해 온 물이 모자랄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5] 장재
휴식도 잠시, 가야할 길이 멀어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묘 (천안전씨 묘) 우측으로 이어지는 급경사 내림 길을 약 20여 분 내려가니(09 : 20분) 백곰님이 달아 놓은 『장재』표지판이 있다. 이 재를 중심으로 좌측은 상촌 우측은 남관(南關. 바깥숙재. 外文里, 전주의 남쪽 관문으로 마을 옆에 옛 성터가 있음)이 된다. 사람들의 이용이 없는지 풀이 우거져 고개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6] 갈미봉
『장재』에서 직진을 하니 「"폭팔물 처리장이므로 출입을 금함」이란 안내판을 군부대에서 세워 놓았다. 능선 아래 군부대가 있는 모양인데 사방이 숲에 가려 확인이 되지 않는다. 경고판을 보았으면 조심을 해야 함에도 누구하나 걸음을 더디 하는 대원이 없다. 이런 경고쯤은 이력이 난 모양이다.
『장재』를 지나 10여분(09 : 30분), 산불감시 초소를 지나고 ---
완만한 길을 따르다 가파른 산봉에 오르니 넓은 헬기장과 삼각점(갈담 305, 1984 재설)이 있는 갈미봉(539.9m) 정상에 도착(09 : 45분)했다.
갈미봉은 임실군 신덕면과 완주군 상관면의 郡界線으로 상관면 내애리로 내려서는 지점이 된다.
[7] 見物生心 ‘참취’
갈미봉을 내려서면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의 넓은 길(방화선)이 나오는데 최근에 닦은 길인 것 같다. 넓은 길을 따르다 중간 지점쯤에서 철조망을 넘어 숲길로 접어들었다.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이다.
철조망 우측의 얕은봉을 지나고 다시 좌측 사면으로 가는데 선두로 가는 산악대장, 가던 걸음을 멈추고 (10 : 20분경)배낭을 내린다. 참취가 군락을 이룬 곳이라 잠시 뜯고 가자고 한다.
어제 산행으로 피로가 쌓여 산행 구간도 줄이고 자주 쉬어 갈 수 있는 핑계 거리를 찾는데 이보다 더 좋은 핑계가 있는가?
모두 배낭을 내리고 비닐 봉투를 들고 나섰다. 참취의 향에 취해 비탈을 오르고 내려가면서도 허리를 펼 줄 모른다. 약 20여분 취나물을 뜯었는데 모두 준비한 봉지가 가득하다. 見物生心이라 그만 가자 가자하면서도 취를 뜯는 손놀림을 멈추지 않는다.
오늘 산행은 목적지(염암재) 3시간을 앞 둔『불재』까지라 뜬금없는 말을 퍼트리고 남은 산행을 산나물 채취로 몰아간다.
[8] 쑥재
욕심을 접고 배낭을 챙겨 출발, 무명봉 몇 개를 오르내리며 10 : 55분경,『쑥재』에 도착했다.
『쑥재』는 임실군 신덕면과 완주군 용암리(龍岩里)에 있는 고개로 쑥고개(내애) 마을에 있는 고개로 『쑥재』표지판과 형형색색의 종주 표시기가 나무에 매달려 있다.
[9] 『옥녀봉』 오르는 길
『쑥재』를 지나 가다보니 높은 봉이 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데 아마도 오늘 산행의 첫 고비 『옥녀봉』인 것 같다.
짧은 오름 길, 440봉에 오른다. 완만한 능선, 다시 내림 길, 십자로 안부에 도착했다. 좌측이 텃골, 우측이 공기마을로 이어지는 텃골 사거리 안부다. 앞서 나무사이로 보았던 옥녀봉이 앞으로 쏜아질 듯 버티고 있다. 급경사 오름봉이다. 한바탕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땀을 흘려야 할 것 같다.
앞서 오르는 대원의 숨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이마의 땀을 닦고 훔쳐도 흘러내리더니 급기야 모자 창끝에서 물이 떨어진다. 거친 숨소리가 땀으로 응어리져 흘러나오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바위도 있어 산행 운치를 느낄만한데 급경사를 오르는 것에 온 정신이 팔려 주변 京觀에 눈을 돌릴 여유를 갖지 못한다. 玉女는 왜 이토록 가파르고 높은 곳에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에게나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인가?
11 : 35분, 숨을 몰아쉬고 된 땀을 흘리며 옥녀봉 정상이라 생각하고 올라보니 옥녀봉 갈림길이라 표시되 있다. 옥녀봉은 마루금에서 좌측으로 약 250m 정도 벗어나 있다고 한다. 힘들고 지쳐서인가? 모두 지척에 있는 玉女에게 問安人事도 하지 않고 지나친다.
[10] 편백(扁柏)나무 조림지에서
그늘지고 바람이 잘 통하는 능선에서 잠시 휴식.
휴식도 잠시, 다시 출발이다.
능선이 분기하는 570봉 도착, 마루금 표시기가 좌측으로 매달려 있다. 그런데 대장은 570봉 정상을 지나 우측 내림 길로 내려가며 뒤 따라오는 대원들을 부른다. 잠시 내려가다 정지를 하고 가장 후미로 오는 강부장에게 좌측 능선 길을 확인해 보도록 한다. 잠시 후 강부장이 부르는 소리, 길을 잘못 가고 있는 것 같다. 산마루로 오르는 것이 힘겨워 산허리를 치고 나갔다.
12 : 35분, 편백나무 조림 숲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산행을 하면서 편백나무를 조림 한 곳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지름이 2, 30㎝쯤 굵기로 하나같이 미끈하게 고생 없이 자란 나무들이다.
「扁柏나무」를 달리 「노송나무」라고도 하는데 일본이 원산지로 높이 40m, 지름 2m에 달하며, 가지는 수평으로 퍼져서 원뿔형의 수관을 하고 있는 나무다. 수피(樹皮)는 적갈색이고 섬유성이며 세로로 얇게 벗겨진다. 잎은 마주나고 두꺼우며 길이 1~1.5mm로 비늘같이 작고 뒷면의 기공조선(氣孔條線:잎이 숨 쉬는 부분으로 보통 잎 뒤에 흰 선으로 나타남)은 Y자형이다. 또한 잎 표면에 1개의 선(腺)이 있으며 뒷면에 흰 점이 있다. 열매는 구과(毬果)로 둥글고 지름 10∼12mm이며 홍갈색이고 8개 내외의 실편으로 구성된다. 각 실편에 종자가 2개씩 들어 있다. 종자는 길이 3mm 정도이고 2개의 지낭(脂囊)이 있으며 좁은 날개가 있다. 일본 특산종이며, 재질이 좋으므로 한국에서는 남부 지방의 조림수종으로 재배한다.
<출처> 두산백과사전
일반적으로 편백나무의 강한 향은 살균, 탈취, 피부미용, 혈액순환, 감기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혈액순환 및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삼림욕과 같은 효능을 내며, 피로회복과 건강 장수에 신비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편백나무는 훌륭한 목재로 사용되며 나무의 효능으로 욕조로 만들어 사용할 정도로 피부를 통해 인체에 흡수되어 건강에 뛰어난 효능이 있고 벽지로 만들어 실내 천장과 벽에 바를 경우 새집증후군 예방 및 개선은 물론 피톤치드의 기능성으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아토피질환 개선에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출처> Tong - 트럼프님의 내 집짓기 계획통
12 : 35분, 점심 식사를 할 시간이다. 당초에는『불재 / 도예원』에 도착(12 : 40분)하여 점심식사를 하는 것으로 계획을 했는데 산행이 1시간이나 지체 되 배도 고프다.
산악대장, 오늘 산행을 『불재』까지로 끊으면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염암재』까지 가면 『경각산』정상에서 식사를 하겠다며 대원들의 의견을 묻는다.
장부장 발 상처도 났고, 산나물 채취는 시기를 놓칠 수 없다는 핑계로 『불재』까지 산행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으고 점심 식사. 한결 마음이 가벼워 진다.
[11] 효간치(孝澗峙)
여유 있게 점심 식사를 하고 경각산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13 : 35분, 『효간치』에 도착했다. ‘백곰’님이 달아 놓은 표지판, 선행(先行) 산꾼들이 달아 놓은 표지기, 산불예방 안내기 뒷면에 「쑥재← ↓ 효간마을 → 경각산, 불재」라 쓴 이정표가 나무에 매달려 있다.
『효간치』는 완주군 구이면 광곡리(光谷里) 효관마을과 임실군 신덕면 조월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다.
완주군 구이면 광곡리(光谷里)는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구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광곡리 화원리 난산리 봉성리 신월리 신흥리 효간리와 박성리 구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光谷里라 하여 九耳面에 편입시켰으며 郡處에서 비교적 넓은 골짜기 이므로 생긴 명칭이다. 「너브실」이라고도 부르며 部分名으로 『효간(孝澗)』이라 부른다.
[12] 경각산(鯨角山)
『효간치』를 지나면서 곧바로 급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경각산(656.9m)』오르는 길이다.
[ 경각산(鯨角山) ① ]
『경각산(鯨角山)』은 전주 시계를 벗어나 구이면으로 들어서면 구이저수지 동북쪽에 솟아 있는 암산으로 모악산과 마주보고 있는 산이다.
동북쪽 운암산 줄기가 남으로 뻗어 내리면서 마이산을 분기점으로 하여 하나는 동남쪽으로 장안산, 백운산을 일구고 또 하나는 서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만덕산, 경각산을 빚어 놓았다. 북으로 고덕산과 동으로 옥녀봉, 갈미봉과 지척간이면서 전주시가지와 구이저수지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는 곳이다.
산 주능선 암봉, 암벽과 겨울의 뛰어난 설경, 가을의 운치 있는 풍경은 이웃 모악산과는 또 다른 색깔을 지닌 산이다.
구이면 청평마을에서 경각산의 허리를 감고 불재를 넘어 운암으로 빠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경각산 서쪽 기슭에 『正覺寺』가 자리잡고 있다. <출처> 한국의 산천
점심 전 『옥녀봉』을 오를 때도 숨을 몰아쉬며 코가 땅에 닫도록 힘들게 올랐는데 경각산도 처음부터 경사각이 심상찮다. 하늘이 손바닥 넓이만큼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곳이 정상이다 싶어 기를 쓰고 오르면 바위 암봉이 버티고 있다. 저 암봉이 정상이라 생각하고 다리에 힘을 주고 연신 땀을 훔치며 올라보면 거대한 고래 한 마리가 헤엄쳐 나가 듯 또 암벽이 길게 뻗어 있다. 웬만한 산이면 단걸음에 정상까지 치고 오르는데 땀과 몸 열기로 계속 오르는 것이 무리라 통풍이 잘되는 암벽 사이에 배낭을 내리고(13 : 55분경) 잠시 휴식을 가졌다.
[ 경각산(鯨角山) ② ]
경각산(鯨角山·659.6m)은 서쪽 광곡 마을에서 바라보면 母岳山 방향으로 머리를 향한 고래 모습이다. 정상의 바위 두 개가 마치 고래 등(鯨)에 솟아난 뿔(角)의 형상이다. 이 때문에 정각사나 주민들은 구이저수지와 풍요로운 들녘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있는 경각산을 아버지 산, 머리에 뿔이 난 동물의 수컷, 또는 해중대어(海中大魚)로 강인한 남성을 상징하는 산이라고 한다.
산을 오르며 보니 강인한 남성을 상징하는 아버지 산이란 말이 실감이 난다. 윤사장,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老益壯을 과시한다. 힘들어 오르다 잠시 서서 숨을 가다듬고 멈추고 서 있기를 두어 번 하는 동안 멀리 앞서가 산 정상을 오르고 있다.
14 : 15분, 사력을 다해 하늘이 훤히 보이는 산봉을 오르니 사방이 툭 터져 전망이 그저 그만이다. 산 아래로 「효간마을?」이 가깝게 보이고 全州市街의 모습도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조망이 잘 되는 넓은 바위에 자리를 잡고 후미를 기다리며 윤사장이 꺼내주는 참외를 한 입 베어 무니 달기가 꿀맛이고 입에 스르르 녹아드는 것 같다. 힘들게 산을 오르느라 점심 먹은 것이 그새 소화가 다 된 모양이다.
7, 8분 후 대장 도착하고 잠시 후 다른 대원들도 모두 올라온다. 이제 오늘 마지막 고비 경각산 정상을 지척에 둔 터라 느긋한 휴식을 가져본다.
조망바위를 떠나 2분여를 내려갔다가 다시 다리에 힘을 주고 오르면 넓은 헬기장과 산불 감시 시설(무인 카메라)이 있는 경각산 정상이다. 산불 감시 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철망 안에 전북 산 사랑회에서 세운 정상푯말(경각산-쑥재5.0km, 불재1.8km, 정각사1.1km)이 세워져 있고, 갈담 304"삼각점도 설치되 있다.
정상 푯말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지 누군가 망가진 판넬에 메직으로 쓴『경각산』표지판을 철망에 기대 놓았다. 산불 감시 시설을 설치할 때 철망 밖으로 전북 산 사랑회에서 세운 정상푯말을 옮겨 세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기념 촬영. 이제 『불재』까지 내림 길 룰랄라 길이다. 약 40여분을 내려가면 오늘 산행을 끝맺음 한다. ‘전주의 맛’이 기다린다. 시간도 넉넉하다.
[13] 『불재』 가는 길
경각산 정상에서의 기념 촬영을 마치고 몸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내림 길로 들어섰다. 산불 감시탑을 지나면서부터 급한 내림 길로 이어진다.
작은 공터, 造景樹로 最上品이 될 만한 멋진 소나무 한 그루,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소나무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다시 내려가니 전망대 바위가 나온다. 먼저 도착한 장부장, 후미로 오는 대원들을 불러 세워 전망대 바위에 올라 기념 촬영을 권한다.
바위에 올라보니 사방이 시원스럽게 터져 조망 장소로는 最上이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九耳貯水池』의 잔잔한 물에 산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어머니의 품속 같은 母岳山과 그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아늑한 마을, 그리고 『불재』의 모습도 한눈에 들어온다.
조망의 영상을 마음에 담고 걸음을 빨리하여 부지런히 내려오니 오늘 산행의 종착지 『불재』다. 불재는 서쪽 구이면 동족골에서 좌측 임실군 신덕면을 잇는 도로다. 고개 마루에는 완주군과 임실군의 경계 표지판, 임실군 관광 안내도를 설치해 놓았고 『불재환경도예원』 건물과 『불재 참숯』등의 시설물이 있다.
[14] 『염암재』를 향하여
불재환경도예원은 운영을 하지 않는지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배낭정리를 하고 있는 사이 대장, 지나가는 트럭 기사에게 대원들의 이동을 부탁한 모양이다. 어제 저녁 차를 이동시켜 둔 『염암재』를 가기위해 트럭에 올랐다. 정간 산행을 하면서 가끔 경험한 일이지만 그래도 차를 이용하게 해 준 기사님이 고맙다.
가는 도 중 삼거리에서 전방에 보이는 마을(임실군 신덕면 신덕리?) 까지만 가기 때문에 다른 차를 이용하라고 한다.
신세지는 처지에 무리한 부탁을 할 수가 없어 마을 입구 정자나무가 있는 상점 앞에 내렸다. 전세 버스 한 대가 정차 해 있고 여러 사람들이 平床의 음식을 먹다 치우는 중이다. 아마 이 마을 친지의 잔치에 온 모양이다.
배낭을 진 우리를 보더니 삶은 돼지고기와 김치, 새우젓에 술을 내 놓으며 한 잔 하라고 권한다. 그렇지 않아도 산행 후 목안이 칼칼했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가게 집 아주머니, 안주를 더 내 오겠단다. 술 한 잔에 돼지고기 한 점을 김치에 싸서 넣는데 버스가 출발한다며 빨리 승차하라고 독촉이다.
산악대장, 술 한 잔 받아 마시는 사이 버스 기사에게 양해를 구한 모양이다. 아쉽지만 가야 할 길이 남아 급히 배낭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 시골 인심이 너무 푸짐하고 고맙다.
버스가 출발하자 잠시 후 빠른 박자 음악이 나오고 어린 초등학생 두 명이 신나게 춤을 추고 어른들은 손뼉을 치며 흥을 돋운다. 춤 솜씨도 여간 아니고 앙증맞다.
임실군 운암면 쌍암리 삼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 『염암재』로 가는 빈 차를 잡아 보려 했지만 쉽지 않다. 도로변에 세워진 「수어촌 / 전주집」음식점 간판을 본 윤사장님, 음식점 차를 이용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다.
[15] 『수어촌』메기 매운탕
『수어촌(임실군 향토 음식점 지정 / 주소 : 전북 임실군 운암면 쌍암리 622-9 / ☎ 063-643-1295, H.P 홍종인 011-689-1295, 양순자 010-3363-1295 / 정통참붕어찜, 메기탕, 토종닭, 오리주물럭 전문)』에 연락하여 차를 이동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수어촌』의 맛, 메기매운탕을 주문하여 산행 뒤풀이 겸 저녁 식사를 했다.
주인아주머니의 연세(약 60세)가 있기 때문인가. 음식을 주문하고도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메기매운탕을 내온다.
큰 뚝배기에 푹 삶은 시래기를 넣고 된장을 풀어 매운탕을 만들었는데 맛이 일품이다. 민물고기 매운탕의 眞面目을 맛보는 느낌이다. 더하여 뚝배기에 새로 지은 밥을 내왔는데 양도 푸짐하다. 음식이 더디 나온 것이 이 맛을 내기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모두 밥 한 空器씩 담고 누룽지는 끓여 달라 부탁하고 술 한 잔씩 나누니 珍羞盛饌, 山海珍味가 따로 없다. 산행 뒤풀이 맛 또한 산행의 매력을 더해 주는 한 부분이 아닌가싶다.
18 : 00시, 다음 산행 때 아침 식사를 당부하고 슬치재로 이동하여 수원을 향해 이동하는 것으로 호남정맥 종주 첫 산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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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① > 전주 이야기 : 비빔밥보다는 콩나물국밥이다.
맛의 고장으로 정평이 나있는 전주. 한 조사에 따르면 음식점 상호로 가장 많이 쓰이는 지명은 '전주'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주'라는 지명 하나로 업소의 맛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토록 전주의 음식이 '맛있다'라고 입소문이 자자한 이유는 손맛 때문일까, 아니면 인심까지 더한 푸짐함 때문일까?
전주의 대표 음식 '전주비빔밥' 속에는 손맛과 푸짐함이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전주까지 찾아와 전주비빔밥의 맛을 본 외지인들의 표정은 어째 석연치 않다. 명성에 따라 가격도 덩달아 올라 비빔밥 한 그릇에 새파란 만원 한 장을 지불하기에는 찜찜하다는 반응. 덩그러니 나오는 비빔밥 한 그릇의 맛 속에서 전주의 특색을 찾기 힘들다는 게 실망한 관광객들의 푸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상품화의 바람을 타고 전주를 위한 비빔밥이 아닌, 외부인을 위한 음식으로 전락했을 뿐더러 대량 생산화속에 전주의 맛깔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흘러나오는 실정이다. 서울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맛으로 변모하면서 전주비빔밥의 명성이 희미해져가고 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상은 전주이외의 지역의 대중화 된 음식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한 고장의 진정한 맛을 느끼려면 그 고장 사람들이 가장 자주 먹고, 그 고장의 문화가 배어있는 음식을 접하길 권하고 싶다. 전주시민들은 과연 전주비빔밥을 한해에 몇 차례나 먹을까? 물론 전주비빔밥 자체를 깎아내릴 의도는 아니다. 단지, 전주를 찾는 모든 분들에게 겉치레 없는 진짜배기 전주음식을 통해 전주의 향기를 전달 해 주고 싶다.
전주에서 외지인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 '아침식사는 콩나물국', ‘점심식사는 비빔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주콩나물국밥은 전주비빔밥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을 전주의 대표음식이다. 뚝배기에 밥과 콩나물을 넣고 갖은 양념을 곁들여 펄펄 끓여 내는 콩나물국밥은 해장음식으로 더 유명하다. 콩나물 뿌리에 많이 들어있는 아스파라긴산이 알코올의 자연분해를 촉진함으로써 전날 과음으로 겹겹이 쌓였던 숙취를 해소시켜 애주가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해장국으로 인기가 있었다.
전주비빔밥의 대량화를 꼬집던 필자의 콩나물국밥 소개에 혹자는 코웃음을 칠 법도 하다. 전주비빔밥과 마찬가지로 이미 전주콩나물 국밥집의 체인점들이 전국방방곳곳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 맛이 아닐걸?"이라 너스레를 떨겠다. 아직 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오직 전주에만 남아있는 특별한 맛을 음미해보자.
전주콩나물국밥은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서울을 비롯한 타 지역에서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계란을 풀어 팔팔 끓인 진한 국물의 콩나물 국밥 , 또 다른 하나는 육수의 깔끔하고 개운한 맛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물을 너무 팔팔 끓이지 않는 국밥이 있다. 오늘날, 전주의 몇몇 업소를 제외하고는 후자의 콩나물국밥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두 종류의 국밥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겠지만 필자는 맑은 국물과 은근한 온도의 국물이 특징인 이른바 '남부 시장표 콩나물 국밥'을 중심으로 소개하려한다.
전주의 어느 국밥집을 들어가도 메뉴는 단하나, 콩나물국밥이다. 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사람 수대로 음식이 나오는 웃지 못할 광경도 볼 수 있을 터. 소박하게 차려진 국밥 상에는 새우젓, 모주, 알맞게 익은 김치, 쇠그릇에 중탕된 달걀이 기본 찬이다.
대부분 국밥집에는 친절하게도 전주콩나물국밥 맛있게 먹는 방법이 걸려있다. 그 곳 첫 번째 줄엔 으레 중탕된 달걀을 먹는 법이 적혀있는데, 우선 콩나물 국밥 옆 그릇에 놓인 수란에 콩나물국밥의 국물을 몇 스푼 부은 후 돌김을 부수어 넣고 젓가락으로 휘휘 젓는다. 그리고 그 국물을 후룩후룩 마시면 맛이 생각 외로 비리지 않고 일품이다. 서양식 표현을 빌리자면 식욕을 돋우고 위장을 보호하는 에피타이저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수란을 맛보았다면 본격적으로 국밥을 맛나게 먹으면 된다. 전주 콩나물 국밥의 콩나물은 아삭아삭 씹히는 게 별미이므로 콩나물 국밥에 곧바로 밥을 말지 말고 돌김에 콩나물을 싸서 먹으면 훨씬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기호에 따라 새우젓이나 청양고추 등을 넣어 먹는 것도 콩나물국밥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해장술 모주’도 별미다. 콩나물국밥집에는 꼭 있는 것이다. 맑은 커피처럼 보이기도하고, 오래 끓인 숭늉같이도 보이는 것의 정체는 모주다. <대동야승>에 의하면 광해조 때 인목대비의 어머니가 귀양지 제주에서 빚었던 술이라 해서 '대비모주'(大妃母酒)라 부르다가 ‘모주’라 줄여서 불리게 되었다는 설과, 어느 고을에 술 많이 마시는 아들의 건강을 염려한 어머니가 막걸리에다 각종 한약재를 넣고 달여 아들에게 줘 '모주'라 이름 붙였다는 설이 있다. 막걸리에 생강․대추․감초․인삼․칡․계피가루 등 8가지 한약재를 넣고 끓인 모주는 따끈하게 먹어야 제 맛이다. 막걸리를 가열했기 때문에 알코올성분은 거의 날라 가는데 한약재 덕에 몸을 부드럽게 해줘 해장에 탁월하다. 모주 한잔을 곁들여야 완연한 전주콩나물국밥을 느낄 수 있다.
모주와 함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미역, 다시마, 무, 황태포 등으로 우려낸 시원한 육수의 맛, 아삭하고 쫄깃하게 씹히는 콩나물의 싱싱한 맛, 청양고추의 칼칼한 맛, 알알이 씹히는 밥알의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어우러지는 맛의 조화는 각 업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전주의 맛은 국밥집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다.
‘전주콩나물국밥’의 비결은 ‘전주 콩나물’에 있다. 전주의 질 좋은 콩나물은 이미 입소문을 타 매일 새벽마다 전주농산물시장에서 펼쳐지는 콩나물 시루 직송광경은 그야말로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전주에서 나는 콩나물은 일명 쥐눈이 콩으로 잔뿌리 없이 외뿌리로 키우는 것이 요령이며 다 자라기 전에 뽑아 사용하므로 질기지 않고 연하다. 그 길이가 5~6㎝ 됐을 때가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전국 여러 도시 가운데에서도 특히 전주의 콩나물이 유명한 것은 기후, 수질 등이 콩나물 재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 맛은 일품 또한 풍토병인 디스토마로 인한 토혈을 예방하거나 각기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콩나물을 이용한 콩나물 비빔밥, 콩나물 국밥 등이 음식문화로 자리매김 한 것이다. 고장의 농산물로 만든 음식이라 풍미를 낼 줄 알고, 전주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함께 해 온 음식이기에 그 맛이 결코 인위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수많은 국밥집 중에서 어디에서 먹을 것인가? 세상 사람들의 입맛이 다 같을 수 있을쏘냐? 일찌감치 소문난 집의 특색을 알고 내 취향대로 골라가는 것도 쏠쏠한 재미 아니겠는가.
전주시내 홍지서림 근처 중고책방거리 내에 위치한 왱이콩나물국밥. 조미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이 왱이집의 비법이다. 뜨거운 국물은가라! 미지근함 속에 담백함이 특징이다. 후식으로 제공되지만 한손만 사용해 먹어야하는 보리튀밥은 주인아주머니의 재치가 엿보인다.
앞서 말한 계란을 풀어 팔팔 끓여서 나오는 콩나물국밥을 고수하는 삼백집. 진한국물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 집은 56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콩나물 국밥집이다. 서울에서 먹었음직한 맛이지만 삼백집만의 섞어김치가 제대로 한 몫 하는 집. 영화의 거리 외곽에 위치해 있다.
가늘고 짧은 콩나물을 사용하는 풍전콩나물국밥. 국밥위에 살포시 올려 나오는 잘게 다진 삶은 오징어가 압권이다. 이 집만의 독특한 맛에 반하고 칼칼한 김치 맛에 또 한 번 반한다는 후문. 왱이집 근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남부시장표 콩나물국밥'의 시초 현대옥. 서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시장골목에서 시장국밥의 참맛을 맛볼 수 있다. 표주박으로 떠먹는 숭늉은 인정까지 먹는 듯하다. 김이 제공되지 않으므로 꼭 사갈 것! 남부시장 내에 위치해 있다.
직접 콩나물국밥집을 다녀오면 알겠지만 그 어느 곳에도 야박함이란 없다. 콩나물을 무한 리필 해 주는가 하면, 배가 찰 때까지 공기 밥을 주는 곳도 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종업원들의 깍듯한 친절함 대신에 무언의 인사가 콩나물국밥 속에 진하게 배어있다. 답답한 속내 그리고 삶의 애환까지 말아먹고 나면 닥닥 소리가 나도록 까맣게 빈 뚝배기 안에는 정이 채워진다.
속 끝까지 시원해지는 콩나물국밥 한 그릇에는 꾸밈도 부담도 얹어 있지 않다. 대신에 뜨끈한 뚝배기 속에는 전주시민의 삶과 인정이 차고 넘친다. 그 지역을 알려면 그 고장의 음식을 먹어봐야한다고 했던가. 전주의 멋과 맛을 느끼고 싶다면 푸근한 전주로 와서 구수하고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드시는 것이 어떨 런지. 전주시를 찾는 모든 분들에게 맛깔스런 인정 한 그릇을 대접하고 싶다.
< 출 처 > 전주 콩나물국밥 작성자 파사현정 권유리 객원기자, 기사입력 | 2008.04.05 01:25:18
http://blog.naver.com/yujiwonbul/70029846675 블로그명 : 파사현정
< 참고자료 ② > 전북 완주군 상관면 용암리(쑥재)
○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상관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용암리 내애리 외애리 마자리 산정리 소치리 학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암리라 함.
○ 남관(南關. 바깥숙재. 外文里) : 남관은 전주의 남쪽 관문으로 마을 옆에 옛 성터가 있다. 바깥숙재는 쑥고개의 바깥쪽이 되므로 일컫는 이름.○ 내애(內艾. 안쑥재) 부분명-삼기천 : 안쑥재는 쑥고개의 안쪽 마을. 삼기천은 앞에 세 골짜기에서 흐르는 세 갈래의 내가 있다.
○ 마자(麻子里. 馬子里) : 앞에 있는 바위가 말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 원용암(元龍岩. 용바우) 부분명-구수바우 : 원용암은 법정 이명과 구분하기 위하여 ‘원(元)’을 덧붙인 것. 마을 앞에 용처럼 생긴 용바위가 있다. 구수바우는 마을 뒤쪽에 구유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산정(山亭里) 부분명-소치 : 산정은 산 위에 있는 마을로 전에 정자나무가 있어 생긴 이름이거나 ‘산마루→산정(山亭)’이 아닐까 한다. 소치는 재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 참고자료 ③ > 완주군 구이면 광곡리(光谷里) : 효간치
○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구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광곡리 화원리 난산리 봉성리 신월리 신흥리 효간리와 박성리 구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광곡리라 하여 구이면에 편입함.
○ 원광곡(元光谷. 廣谷. 너브실) 부분명-효간(孝澗)광곡은 군처에서 비교적 넓은 골짜기 이므로 생긴 명칭. 효간은 신흥 남쪽에 있는 마을.
○ 난산(卵山) 부분명-신흥(新興. 뱅이), 덕암(德岩)난산은 뒷산 이름이 난산인데 뒷산에 비봉포란혈이 있다고 한다. 신흥은 난산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명명된 이름이다. 덕암에는 ‘소년바우’라는 큰 바위가 있으니 ‘큰바우→덕암(德岩)’으로 본다. ‘덕(德)’은 크다는 말의 새김으로도 많이 쓰였다.
○ 화원(花元里. 花園. 항골) 부분명-박성동(朴姓洞. 朴成洞)박성동은 박씨촌이었다고 한다
○ 신원(新元. 新園)화원리 위에 새로 생긴 마을이므로 신원(新元)이라 전에는 난산 동쪽에 봉성(鳳成)이라는 마을이 있었으나 광곡저수지로 수몰되었다.
< 참고자료 ④ > 정각사(正覺寺)
경각산 서쪽 산기슭에 자리한 바를정(正), 깨달을각(覺)을 쓰는 정각사는 올바르게 깨달음을 얻는 사찰이라는 뜻이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 서산대사가 중창했고, 후백제 견훤이 전주에 도읍지를 정하고 천도(遷都)와 국가번영을 위하여 기도한 곳이라고 전해온다. 250년 전에 학암선사가 중창하였고, 하흥호 스님이 요사체에 극락전을 중건하였고, 현재의 극락보전, 요사체, 삼선각의 중창과 범종각, 일주 1.2문 창건은 오벽송당(혜운)스님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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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방대한 자료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회장님께서 글로 저의 게으름을 질책하십니다. ㅠㅠ 죄송합니다. 요사히 마음이 어수선해 글 한줄 쓰기가 어렵습니다. 죄송하지만 산행기는 역시 회장님 산행기가 최고입니다. 저는 이제부터 감상 수준의 짧은 기행문을 회장님 글뒤에 첨부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합니다. 자료와 기행 감상이 어우러진 글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