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6월 15일. 미국 뉴욕의 퀸즈 플러싱 지역에서 ‘먹자골목 아시안 축제’가 열렸다. ‘아시안’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은 한국의 ‘먹을거리’를 알리는 행사였다. The Scoop가 이 축제를 기획한 류제봉 뉴욕 퀸즈 한인회장을 단독으로 만났다. 그는 항공기 스케줄을 하루 연기하는 열성을 보이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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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제봉 뉴욕퀸즈 한인회장은 한인 먹자골목 알리기에 열심이다. 진정한 한식화의 시작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
✚한류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류와 싸이를 통해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을 것 같은데. 어떤가.
“싸이는 외교관 몇백명이 해야 할 일을 한번에 해냈다. 뉴욕 길거리에서 흑인들이 강남스타일 노래를 틀고 춤춘다. 싸이 이전엔 한국을 중국의 도시쯤으로 아는 사람도 많았다. 이제는 다르다. 한국인이 지나가면 ‘강남스타일’이라고 외친다. 케이팝이 한창 무르익을 때 싸이가 결정적인 ‘한방’ 날린 셈이다. 우리끼리는 싸이가 진짜 애국자라고 말한다.”
✚ 뉴욕 퀸즈한인회가 싸이의 여세를 이어가지 않았나.
“먹자골목 아시안 축제(Muk Ja Gol Mok Asian Festival·6월 15일 열린 뉴욕 퀸즈 플러싱 지역의 먹자골목 홍보행사)를 말하는 건가.”
✚ 그렇다. 행사를 치르기까지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대단한 일을 했다.
“내 입으로 말하면 창피하지. 인종을 막론하고 2만명 정도가 참여했다. 행사장 주변 도로 두 블록을 막아야 할 정도로 인산인해였다. 비빔밥 600인분을 비비는 행사를 할 때는 중국인·백인을 막론하고 30m 가까이 줄을 섰다. 올해 처음 열린 축제인데도 반응이 엄청났다. 물론 행사의 준비과정은 쉽지 않았다. 행사 몇달 전부터 뉴욕시로부터 도로통제 허가를 받고 기금을 마련해야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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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러싱 먹자골목 아시안 축제에 몰려든 뉴욕 현지 시민들. |
✚ 이 행사를 개최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플러싱 먹자골목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뉴욕은 맨해튼·브롱크스·브루클린·퀸즈·스태튼섬 5개구로 이뤄져 있다. 많은 사람이 타임스퀘어가 있는 맨해튼이 뉴욕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데 뉴욕은 이처럼 5개 자치구로 이뤄져 있다. 이번 행사는 퀸즈 지역 내 플러싱 ‘먹자골목’을 홍보하기 위해 열었다.”
✚ 퀸즈 플러싱 메인 한인상권은 ‘유니온 상가’라고 들었다. 메인 상권에서 행사를 열어야 효과가 더 큰지 않나.
“유니온 상가에 있는 한인타운은 꽤 알려져 있다. 사람들 발길이 잘 닿지 않는 플러싱 지역 외진 곳에 위치한 먹자골목을 홍보하자는 게 목표였다. 플러싱 지역에는 28개의 한인 상점이 있다. 그런데 이 중 12개가 한식당이다. 자연스레 먹자골목이 형성된 의미 있는 곳이다.”
✚ 소상공인을 돕기 위한 축제였던 것 같다. 그런데 한국 먹자골목을 홍보하는 데 축제 타이틀이 ‘먹자골목 아시안 축제’다. 다른 이유가 있는가.
“한국음식점 축제라고 우리끼리 즐기는 행사로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많은 이들이 참여할수록 홍보효과는 커지게 마련 아닌가. 뉴욕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다양성(diversity)이다. 그만큼 다양한 민족이 사는 곳이다. ‘아시아인들이 모두 모이는 축제’라는 콘셉트로 다양한 민족의 참여를 끌어내고 싶었다.”
뉴욕 최초의 먹자골목 축제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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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자골목 행사에서는 떡메치기·씨름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
✚ 아시아 축제였으면 한국적인 색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아니다. 콘셉트가 아시아지 한국적인 색으로 가득했다. 행사 초미에 ‘풍물패’가 행사장 주면 동네를 돌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축제 중간에는 케이팝 노래자랑, 댄스경연대회 등을 준비했다. ‘볼거리’를 제공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이들에게 우리의 먹거리, 다시 말해 플러싱 먹자골목을 알린 것이다.”
✚ 최근 정부의 한식세계화 사업을 두고 말이 많다. 뉴욕은 어떤가. 실제로 도움이 됐나.
“반대다. 이명박(MB) 정부의 한식세계화 지원사업을 보면 탁상공론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막대한 돈을 들여 대기업 광고회사에 홍보를 맡겼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지 않았나. 뉴욕에는 한식당 주인들이 만든 한식세계화를 위한 단체가 있다. 하지만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해 활동을 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올 5월 이 단체가 타임스퀘어쪽에서 한식 알리기 행사를 기획했다가 자금이 부족해 무산됐다. 안타까운 일 아닌가.”
한식세계화는 MB정부의 핵심사업 중 하나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명예회장인 한식세계화추진단에 투입된 예산은 4년간 8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한식세계화 예산불법전용·재단방만운영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2009~2012년 한식세계화 예산 931억원 중 704억원만 계획대로 집행됐다. 예산의 4분의 1에 달하는 227억원이 미집행되거나 전용·이월됐다. 김윤옥 여사가 야심차게 계획했던 뉴욕 한식당은 계획과 달리 사업자를 구하지 못해 무산됐다. 이를 위해 할당받은 예산 50억원은 국회에 별다른 보고 없이 농기평 등 연구용역비·콘텐트 개발사업비 등에 쓰였다.
✚ 정부의 한식세계화 사업을 보고 답답했겠다.
“맞다. 정부는 정말 필요한 곳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한식당 주인에게 한식세계화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다. 정부가 인프라가 있는 곳에 적절하게 투자했더라면 한식세계화는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 정부가 아니라 작은 한식당 주인들이 한식세계화의 첨병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뉴욕에서 가장 큰 한인타운은 맨해튼 32번가에 형성돼 있다. 이곳 한국식당의 80%는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줄을 선 이들 대부분은 외국인이다. 이미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한식세계화가 이뤄졌다는 소리다. 정부가 도와줘서가 아니다. 재미동포들이 오랫동안 피땀 흘려 이뤄낸 쾌거다.”
✚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맨해튼 지역만 그런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퀸즈 지역의 플러싱 먹자골목에는 함지박식당이라는 작은 한식당이 있다. 2010년 미국 뉴욕 레스토랑 가이드북 ‘미쉐린 레스토랑 가이드북’에 우수식당으로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유명하다. 외국인들도 이곳 삼겹살을 먹으려고 줄을 선다. 기다리기 싫은 사람들은 길 건너 주변한식당으로 간다. 작은 식당 하나가 삼겹살을 알리고 한인 상권을 먹여 살린다. 이게 바로 ‘한식세계화’다.”
✚ 최근 엔터테인먼트 기업 JYP가 뉴욕에 한식당을 차렸다가 손해를 보고 철수한 사례가 있었다. 정부의 세계한식화 실패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나.
“JYP가 식당문을 연 곳은 기존에 형성된 한인 상권이었다. 정말 미국에 진출해 성공하고 싶었다면 브로드웨이 45번가라든가 타임스퀘어 쪽으로 진출하는 게 옳았다. JYP가 투자한 50억원으로 충분히 가게를 열고도 남는다.”
정부의 한식세계화 사업, 별 도움 안 돼
✚ 장소를 잘못 선택했다는 건가.
“한인들이 일궈 놓은 상권에 한식당을 낸 것은 상권 침해밖에 더 되나. 주변 상인들에 미리 의견을 구하고 상의를 했으면 그렇게 실패하진 않았을 거다. 미국에 진출하는 프랜차이즈 업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이들의 모습을 보면 미국 메이저 시장에 들어갈 자신이 없으니 한인들이 일궈놓은 상권에 숟가락만 얹고 있는 격이다.”
이 사람, 한인 중소 영세상인들까지 생각한다. 자본을 움켜쥔 대기업들이 재미동포가 힘겹게 일궈온 상권에 무분별하게 진출하는 것도 막고 있다. 이유가 뭘까. 이야기를 나눠 보니 그가 걸어온 길과 무관하지 않다.
✚ 장사로는 잔뼈가 굵었다고 들었다. 지역상인들을 위해 힘쓰고 있는 이유와 관련이 있나.
“1980년대 유학길에 오르면서 미국땅을 처음 밟았다. 미국 중부지역인 캔자스에서 대학생활을 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프리마켓에서 물건을 팔며 생활비를 벌었다. 시계·자전거 등 안 팔아본 게 없다.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면 하루 32달러 정도를 벌 수 있었는데 나는 100달러를 벌었으니 꽤 괜찮은 수입이었다(웃음). LA에서는 트럭에다 아이스크림을 놓고 팔기도 했다.”
1987년 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뉴욕으로 건너가 장사를 시작했다. 수입상으로부터 물건을 사들여 ‘밴’에 싣고 또 다른 상인들에게 팔러 다녔다. 빨래방도 하고 와인숍도 운영했다. 장사를 했다가 투자한 돈을 모두 날린 적도 있다. 그가 자영업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지금도 사업을 하고 있나. 자영업자들에게 해줄 말이 많을 것 같다.
“2007년부터 전화선 설치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9년 스마트폰 보급이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유선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부쩍 줄었다. 6000명 정도의 고객이 한순간에 떨어져 나갔다. 전체 고객의 절반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낭떠러지에 몰린 느낌이었다. 위기를 돌파해야 했다. 신용카드 결제시스템 사업을 도입한 이유다. 우리 전화선을 사용하던 기존 고객 중 자영업자·기업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며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위기가 기회된 것 같다.”
✚ 위기에 몰렸을 때 자신이 갖고 있는 인프라에서 기회를 찾으라는 건가.
“그렇다. 하던 일이 잘 안되면 엉뚱한 데에서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 말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세탁소를 하던 사람이 장사가 안 된다고 커피숍을 열면 십중팔구 망한다. 세탁소가 안 되면 더 나은 서비스로 손님을 늘릴 생각을 하는 게 맞다. 위기가 찾아오면 엉뚱한 곳에서 탈출하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는 거다.”
✚ 다시 뉴욕 퀸즈 지역을 위한 홍보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한국 홍보를 위해 또 다른 이벤트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올 9월 뉴욕 메츠 시티필드 구장에 뉴욕한인회와 퀸즈한인회가 공동으로 후원하는 ‘제 3회 코리안 헤리티지 나이트(Korean Heritage Night)’ 행사를 진행한다. 이미 500석 정도 경기장 좌석을 확보해 놨다. 류현진 선수가 나오는 다저스 경기가 되면 좋겠지만 그건 힘들 것 같다. 야구경기 40분전쯤부터 관중석 앞에서 태권도 시범행사 등을 펼치고 관중석에 ‘Visit Korea’라는 문자가 보이도록 티셔츠를 입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미국 사회에 한국을 자연스레 알리는 퍼포먼스다.”
✚ 뉴욕퀸즈 한인회가 한국을 알리기 위해 생각보다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 같다. 자금 유치가 관건일 것 같은데. 한국 기업들의 후원도 있나.
“전무하다시피 하다. 코리안 헤리티지 나이트 같은 행사의 경우 한국문화원의 지원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자금은 재미동포 단체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것이다. 올 초 플러싱 지역에서 열린 한인 최대 규모의 뉴욕 설날 퍼레이드도 그렇다. 기금 마련을 돕겠다고 나선 한국기업은 단 한곳도 없었다. 뉴욕에서 해마다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큰 한인 행사인데도 말이다. 모 항공사는 행사 기금을 부탁하니 “퀸즈 지역은 이미 안정된 시장이라 우리가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하더라. 가만 보면 한국 기업들이 우리끼리 먹고 놀려고 행사를 하는 줄 아는 거 같다.”
한국 알리는 행사에 침묵하는 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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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퍼레이드 풍물패 이동공연의 모습. |
✚ 어떻게 보면 국위선양을 위한 행사인데, 대기업이 ‘나몰라라’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대기업이 처음 미국에 진출했을 때 어떻게 컸는 줄 아나. 제품의 질이 좋든 나쁘든 재미동포들이 우리 제품을 먼저 사줬다. 그런데 대기업이 자기네들이 잘해서 지금의 위치에 올라선 줄 안다. 미국에 진출한 대기업들이 미국진출 초기 상황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 한국 기업을 보면 기부와 상생문화가 제대로 정착돼 있지 않은 것 같다.
“맥도날드가 미국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가 뭔지 아나. 맥도날드는 전체 매출의 일정 부분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맥도날드 펀드를 운용한다. 코카콜라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맥도날드 제품을 구매하지 않지만 한국 기업들은 맥도날드를 본받아야 한다. 대기업도 이제는 마인드를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상생마인드 말이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story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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