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시를 짓는다. 김소월이 그랬고, 천상병이 그랬다. 정호승은 길을 시로 빚었고, 신경림은 "길은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고분고분하다"고 했다.
끝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그 묘한 공간 속에서 조금만 마음을 내려놓으면 누구나 '시가 되는 길'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길은 시가 되고, 시는 또 길이 된다.
백양산까지 이어지는 코스 무궁무진
초여름 맞춰 아름답고 시원한 길 선택
어르신·아이들도 걷기에 편해
솔·편백 숲에 개구리 서식지 보는 재미
정상에 서면 부산 시내 풍경 '한눈에'
부산 시인들이 유독 좋아하는 길이 있다. 수목이 우거져 일부러 손으로 햇빛을 가릴 이유가 없고, 언제 걸어도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는 쇠미산 길이다. 쇠미산(부산진구 초읍동)은 해발 399.3m에 불과하지만, 정상 주변으로 열린 길이 유난히 아름답고, 그 멧부리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무척 정겹다.
■쇳물이 많아서 '쇠미산' 지리학자들은 쇠미산을 두고 "전형적인 노년 산지로 사면이 완만하고 산정은 종순형"이라고 설명한다. 또 향토사학자들은 "쇠미산은 쇳물이 많이 나왔다는 데서 유래했다. 그래서 쇠미산을 한자로 쓰면 금용산(金湧山)이 된다"고 풀이한다. 쇳물이 용솟음치는 산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흥미로운 유래에도 쇠미산은 의외로 부산사람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뭘까? 오로지 '높은 것'만을 기억하려는 도시 사람의 속성 때문일까.
한편 국립지리정보원은 1만 2천 분의 1 지도에서 쇠미산을 금정봉으로, 금용산은 별도의 멧부리(지도 참조)로 표기하고 있다. 의문이 생기지만, 산&길은 일단 이를 따랐다.
쇠미산과 백양산을 잇는 코스는 무한하다. 워낙 갈림길이 많아 어디로 갈지 망설여질 정도다. 산&길은 그 많은 길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시원한 길을 뽑아 총 10㎞, 4시간 30분 루트로 설계했다. 구체적인 코스는 초읍고개∼금용암 주차장∼구민의 숲∼쇠미산 습지∼덕석 바위(베틀굴)∼쇠미산∼만남의 숲∼백양전망대∼어린이대공원 입구 순이다.
소나무와 편백 숲을 통과하고, 개구리와 도롱뇽 서식지를 둘러보는 재미는 물론이고, 쇠미산 정상에서 부산 시내를 굽어보는 즐거움까지 갖췄다. 그러나 이보다 더 좋은 것은 누구와 걸어도 편하다는 점일 테다. 길이 그만큼 넓고 쾌적하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어린이의 손을 잡고 노량으로 걸어도 무방하다. 다만,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길이 섞갈려 자칫 방향을 놓칠 우려가 있으니 트레킹에 앞서 산&길의 GPS 트랙을 다운 받아 가는 것이 좋겠다.
■덕석바위와 베틀굴 '구경거리' 초읍고개 주차장을 들머리로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삼환아파트 103동 옆을 지나 금용암 주차장에 이른다. 여기서 구민의 숲까지 거리가 가깝다. 구민의 숲은 하늘을 완전히 가릴 정도로 키 큰 소나무가 많아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구민의 숲 근처에 개구리와 도롱뇽이 서식하는 습지도 있다. 이른 봄이면 습지의 개구리를 촬영하기 위해 온 동네 사진작가들이 다 모인다.
구민의 숲 가장자리에 금정산과 어린이대공원을 오가는 길이 있다. 그 길 위의 이정표에서 어린이대공원을 바라보면서 11시 방향으로 걸어가면 쇠미산 정상까지 연결된 비탈을 만날 수 있다. 눈이 밝다면 비탈 입구에서 황해도 해주 향우회가 세운 망향비를 찾을 수 있다.
쇠미산 정상에 못 미쳐 덕석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덕석 바위의 '덕석'은 추울 때 소의 등을 덮어 주던 멍석을 지칭하는데, 바위 윗면이 민틋하다. 덕석 바위에는 소년 장수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위 위의 구멍도 소년 장수의 발자국과 그가 타고 다닌 말의 발굽 자국이란다. 소년 장수는 세상을 구할 영웅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말을 타다 떨어져 숨졌다고 한다. 부산이 한반도의 변방이었을 때의 이야기이니, 온갖 고초 속에서 살았던 당시 변방 사람의 마음을 어렴풋이 거니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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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초입의 장승들. |
덕석 바위 왼쪽 틈으로 살짝 내려서면 바위 아래에 뻥 뚫린 굴을 발견할 수 있다. 길이 25m의 자연 동굴인 '베틀굴'이다. 임진왜란 때 피란 온 마을 아낙들이 그 동굴에 모여 군포를 짜서 남편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굴 안으로 들어가면 왼편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작은 구멍을 찾을 수 있다. 그 구멍은 군포를 짜며 남편을 기다리던 아낙들이 바깥을 염탐하기 위해 비녀로 뚫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굴은 '비녀굴'로도 불린다. 굴 안쪽에서 바깥을 내다보면 입구가 별을 닮았다. 모양이 참 얄궂다.
■솔숲과 편백숲 잇따라 걷는 재미 '톡톡' 베틀굴에서 쇠미산 정상까지는 멀지 않다. 정상에 못 미쳐 오르막이 있지만 땀이 날 정도는 아니다. 정상은 생각보다 조망이 좋다. 부산의 주요 산은 물론이고 해운대, 영도 등 시내 풍경도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정상 이정표에서는 '만남의 숲'으로 방향을 정한다. 솔숲의 지그재그 길을 따라 내려서면 삼거리에 이르고, 여기서도 만남의 숲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다. 삼거리부터는 솔숲 대신 편백숲이 왼쪽 비탈에서 나타난다. 삼림욕이 따로 없다.
화장실은 만남의 숲에 이르러야 찾을 수 있다. 화장실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바람고개로 간다. 만남의 숲부터 백양산(641.7m)의 '갈맷길 6코스'가 이어진다. 성지곡 삼림욕장도 이 코스에서 만난다. 성지곡 삼림욕장은 1990년 9월 조성됐다. 부산시 기록에 따르면 삼나무와 편백 5만여 그루가 9만 9천㎡에 걸쳐 조성돼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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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백양전망대. |
백양전망대에 이르면 커다란 망원경으로 주변 풍경을 더욱 가깝게 조망할 수 있다. 성지곡수원지는 물론이고 해운대, 광안리, 금련산, 황령산, 부산시민공원까지 죄다 조망된다. 하산은 바람고개를 지나 어린이대공원 입구로 내려서는 것이 일반적이나, 취재팀은 길이 좀 더 평탄한 옥천약수터 방향을 선택한 뒤 편백숲을 통과했다. 문의: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 위크앤조이팀 051-461-4095.
글·사진=백현충 선임기자 choong@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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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쇠미산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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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쇠미산 구글 어스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산&길] <506> 부산 쇠미산 산행 팁 (1/29)
[산&길] <506> 부산 쇠미산 산행지도 (1/29)
초보자용 GPX트랙 사용 방법
1.스마트폰의 ‘Play스토어’에서 오룩스맵(oruxmaps) 앱을 다운 받는다.
2.부산일보 산&길 기사에서 ‘초보자용 GPX트랙 다운 받기’를 눌러 GPX 트랙의 압축 파일을 스마트폰에 깐다.
3.‘압축 풀기’를 하면 해당 산행지 폴더가 생긴다. 이때 폴더 안에는 2개의 파일이 있어야 한다.
4.이를 스마트폰의 오룩스맵(oruxmaps) 앱 안에 있는 ‘맵파일(mapfiles)’로 복사해 넣는다.
5.오룩스맵을 열어 ‘지도전환’을 찾은 뒤 '오프라인'에서 해당 산행지를 클릭하면 부산일보 산&길 지도와 트랙이 만들어진다.
6.산&길의 지도 위에 자신의 루트를 표시해 서로 비교하고 싶다면 오룩스맵의 ‘GPX시작’과 ‘트랙 레코딩 시작’을 차례대로 클릭한다. 걷기 시작하면 자신의 트랙을 표시하는 빨간 화살표가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