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gen 에서 Oslo로 이동
여행을 시작한지 8일째 되는 날입니다. Bergen에서 Oslo까지 차로 이동하려니
500Km 되는 거리이니 8시간은 소요될것으로 예상하였으나, 가끔 경치도 구경하면서
오니 10시간은 걸린것 같았습니다. 산이 많은 나라이니 터널이 많았는데 5Km 되는
터널은 보통이고 10Km 되는 터널을 몇개나 통과하였습니다. 가장긴 터널로는 25Km나
되는 "라스날 터널"이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이랍니다. 2위는
스위스에서 밀리노 가는곳에 있는 터널로 17.6Km입니다. 터널 공사는 1위가
오스트리아이고 2위가 놀웨이랍니다.
라스날 터널안에서 회전할 수 있는 장소도 있고, 대피장소등 위험으로 부터 보호
받을 수있는 시설을 해두었습니다. 그리고 전등의 색갈변화로 터널안을 장식하였는데
아주 장관이였습니다. 달리는 차안에서 뒷좌석에서 사진을 찍어서 잘나오지는 않았으나
대강의 분위기는 느끼시리라 봅니다.
오슬로에 도착한후 그동한 랜트한 봉고는 반환하였습니다. 오슬로 시내관광이니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여 관광하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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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경치에는 어김없이 피크닉테이블이 준비되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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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25Km의 라스날 터널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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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lo 에서 뭉크미술관
에드바르트 뭉크 ( Edvard Munch)
1863년/1944년 1월 23일,노르웨이
‘요람에서부터 죽음을 안 화가’ 뭉크.
삶과 죽음의 응시(凝視). 이것이 뭉크 예술의 원천이다.
사랑의 모티브조차 죽음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1963년 뭉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관한 뭉크 미술관에는 생전에 뭉크가
오슬로 시에 기증한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뭉크의 사후 그는, 그가 소장하고 있던
1200점의 그림과 4500여점의 데생, 18000여점의 인쇄물, 6개의 조각 작품 등을 조건없이
오슬로시에 기증했다. 오슬로시는 뭉크 미술관 개관을 결정하고 박물관 건축공모전을 열어
당선작으로 공사를 시작해 뭉크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에 일반인에게 그 모습을 공개했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은 외국에서의 전시회를 위해 대여되는 경우가 많아서 작품 배치가 곧잘
바뀐다. 작품의 양이 방대하여 그의 작품을 한꺼번에 모두 전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현재 뭉크 미술관은 뭉크의 작품과 편지, 저서 등 2만 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 중 500여점만이
상설 전시관에서 볼 수 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교체 전시해 계속해서 몇 번이고 이곳을
방문하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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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주변 일대는 널찍한 공원으로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2004년 8월 도난사건이 있은
뒤로는 경비를 강화하고있었는데 공항 통과하는것 보다 더 철저히 검색을 하였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작품 몇점을 사진에 담아왔는데 모자란 사진실력으로 유명한 작품에
누가되지 않았나 걱정되지만, 감안하고 감상하여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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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규The Scream, 1893
절규 (絶叫, 노르웨이명; Der Schrei, 영어 번역명; The Scream, The Cry)는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1863∼1944)의 1893년도 작품으로
노르웨이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뭉크는 이 작품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이 붉은 피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거기 멈추어 서서 공포에 떨었다. 그리고 거대하고 끝없는 절규가 자연을 꿰뚫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구름들을 정말 피같이 그렸고, 색깔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서
이 그림을 그린 것이다." (1889, 생 크로드 일기)
현대의 고립된 인간의 절망을 강한 색채와 왜곡된 선으로 나타낸 표현주의의 선구적 작품이다.
과장된 원근법으로 화면을 과감하게 끊고 있는 다리와 난간 그리고 하늘, 강, 땅 모두
강한 색과 물결치는 선만으로 표현하여, 해골 같은 얼굴로 두 손으로 귀를 가리고
눈과 입을 크게 벌려 절규하는 인물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뭉크는
화면 전체에서 예술가의 주관적 감정의 소용돌이를
시각화하고 있는 것이다
직접적으로는
1893년 이 그림을 제작하기 전 뭉크는 친구들과 거리를 걷다가 저녁노을을 보고 아래와 같은
유명한 일화가된 일기를 남겼습니다. 따라서 그 내용으로 보아 이와 같은 경험이 바탕이
되어 절규가 그려 졌었다 추측 할 수가 있습니다.친구 두 명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는데 거리와 피오르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쪽으로 태양이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나는 너무 슬펐습니다.
하늘이 돌연 피처럼 붉게 물들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너무나 초조해저서 그 자리에 멈추어 서고 난간에
기대었으며 칼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처럼 검푸른 피오르드와 거리 위로
낮게 깔린 불타는 듯한 구름들을 바라 보았습니다. 두 친구는 잠시 동안 나를
물끄러미 쳐다 보더니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나는 공포에 떨면서 소스라치게 그 자리에
줄곧 서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자연의 날카로운 절규가 대기를 갈기갈기
찢는 것 같이 느꼈습니다. 이 강렬한 체험이 바탕이 되어 절규가 그려졌다고 생각 할 수가 있습니다.
간접적으로는
뭉크의 불행한 성장 환경이 일조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누이의 자전 병과
이들의 죽음을 목격했고 이로 인해서 정상적인 가족간의 유대 관계와 보호를 경험하지 못하여
과목 함과 슬픔, 죽음에 대한 모호한 공포가 어쩔 수없이 그의 작품에 반영 되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 마돈나 1894
대표작 ‘마돈나’. 성적 엑스터시에 빠진 듯한 나신(裸身)의 성모. 황홀경에 몸을 던진 채
자신을 포기하고 있는 마리아. 그것은 생명의 환희, 수태(受胎)의
전조이면서 동시에 불길한 ‘시체의 미소’다.
뭉크에게 여자는 ‘죽음에 지배되는 동물’이었다. 1900년 그는 자살을 기도하며 집요하게 결혼을 강요하는
한 여성 때문에 극도의 신경쇠약을 겪어야 했다. 뭉크는 숨질 때까지 독신으로 살았다.
↑ Melancholy Laura 1900
↑ Spring 1923
↑ Vampire 1895
↑ Eye in Eye 1894
↑ 빨간 덩굴풀 1900
↑ Girls on a Bridge 1899-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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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ds13.egloos.com/pmf/200908/02/38/a0107338_4a751cf912a5b.jpg)
![](http://pds13.egloos.com/pmf/200908/02/38/a0107338_4a751cfa7d662.jpg)
![](http://pds13.egloos.com/pmf/200908/02/38/a0107338_4a751d1c66fc7.jpg)
↑ 의젖하게 이어폰으로 설명을 열심히 듣고있습니다.
↑ 창찬을 하였더니, 조금후에 뭉크미술관 아래층의 기념품과 음료수 가게로 직행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미술에 문외한인 나자신도, 너무도 유명한 뭉크의 작품들을
잠간이나마 보았다는 사실에 설레이고 마음 뿌듯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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