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천 이야기 ①

[김민]

  오늘은 비가 내린다. 아니, 어제도 비는 내렸고 요 며칠간 비는 좀처럼 그치지 않고 있다. 지금 이 비가 사람들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타인을 긍정할 수 있는 관용을 베풀어 주었으면 한다. 또한 지금부터 이야기하게 될 오산천烏山川을 듬뿍 적셔주면 더 말할 게 없을 것이다.
  한 도시를 관통하는 강이나 천은 예전부터 중요시 되어 왔다. 하물며 농경문화가 대부분인 우리나라에서 그 중요성은 더할 나위 없다. 오산천은 예전부터 인근의 논과 밭에 곡물들이 자랄 수 있도록 물을 공급했으며 사람들은 여름이면 그곳에서 더위를 식혔다. 하지만 지금은 오산천에서 더위를 식히는 사람을 볼 수 없어 유감이다. 천은 이미 말라버렸으며, 또한 다슬기가 살았던 오산천은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오산천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오산에서 태어나지도 오산에서 유년기를 보내지도 않았으므로. 내 유년은 황구지천이 흐르고 동네 작은 실개울이 흐르던 화성에서 뛰어놀았다.
  당시만 해도 내가 살던 동네는 물이 맑아 우물물을 퍼마시기도 했으며, 도랑에서 애기 주먹만한 우렁을 한 양동이씩 잡아 된장찌개에 넣어 끓여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다 옛말이다. 어느새 동네 실개울은 축산 농가에서 아무 생각 없이 흘려버린 오물로 검게 변해버려 주위에 다가가기만 해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과거에는 비포장이라 버스에 올라타기만 하면 놀이기구 타는 것처럼 콩콩 뛰던 길이 아스팔트로 바뀌면서 마을에는 하나 둘 공장이 생기고, 사람들은 지하수를 더 깊이 파야만 했다.
  사람들에게 내 유년에 대해 이야기하면 모두들 60년대에 학교를 다녔냐고 묻지만, 분명 나는 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다. 겨울방학이면 숙제로 솔방울을 한 가마니 짊어지고 가야했던, 그곳이 바로 내 고향이다. 이런 내 고향은 오산과는 이제 포장길이 뚫리면서 10분 거리도 안 된다. 오산에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전학을 오게 되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친구들을 이곳에서 사귀게 되었다.
  오산천 정비 사업을 한다며 잔디를 깔던 90년대 초에는 천변에 나와 잔디를 심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어른들 눈을 피해 오산천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때문에 오산천은 내게 있어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에게는 친구들처럼 오산천 보나 다리 밑 근처에서 다슬기를 잡으며 물장구를 치던 시절도 없었으며, 미군들이 훈련하고 난 후 아무렇게나 버린 깨진 맥주병에 물장구를 치다가 발을 베인 기분 나쁜 기억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오산에 살고 있다. 오산천 물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작년 여름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한겨레서점에서 오산 시민연대의 고승배씨가 불쑥 오산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오산천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는 건 어떠냐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였을까, 오산천에 대해 조금씩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도 제대로 모르면서 어떻게 그동안 다른 곳을 답사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나, 하고 자기반성도 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오산천 지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 못했다. 이건 내 또래의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들 중에는 오산에서 태어났으며, 그 친구의 아버지도 오산에서 태어났다고 했지만 모르기는 나와 매한가지였다. 지금 내가 이십대 후반이니, 내 또래가 되지 않은 사람의 경우는 오산천에 대한 추억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오산천에는 다시 물고기가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예전보다 물이 더 맑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이런 기분 좋은 소식들이 언제까지 들릴지 모르겠다.
  이 글은 오산천에 대한 기분 좋은 이야기가 어떻게 들려오게 될지, 그 희망을 찾아보려는 하나의 시도다. 오산천은 지금 자연하천으로 거듭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윗물이 깨끗해야 아랫물이 맑은 법, 아무리 짧은 구간이 자연하천으로 거듭난다고 해도 위에서 내려오는 물이 적고 더럽다면 오산천에서 사라져버린 다슬기를 되찾는 일은 기적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첫 번째 이야기는 기흥저수지부터 시작된다.

  1. 기흥저수지에서 진위천까지

  기흥저수지는 흔히 신갈저수지, 고매리저수지로 불린다. 구체적으로는 용인시 기흥읍 고매리에 있는 기흥저수지이다. 5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산시청에서 오전 시민연대의 고승배씨와 사회체험학습에 참여하게 될 성호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모두 일학년 아이들로 열일곱 살이었다. 그만큼 다들 예쁘다. 첫사랑을 시작할 나이가 아닌가.

우리 동네 시냇가
버드나무 아래,
하늘 바라보면
귓가에 맴돌던 바람의
노랫소리
윙윙 거리던 벌
잎새로 비춰들던 노오란 햇살

머리 위로 날아다니던
그 많던 꿈들
빗물에 씻겨 갔을까
함께 놀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나

언덕배기까지
달음박치며 뛰놀던
내 친구들 다 어디에 있나
머리에서 발끝까지
빗물에 흠씬 두들겨 맞은 듯
흙탕물에서 시냇가에서
깔깔대며 웃기 좋아했던

동네 호밀밭이라면 온통
들쑤시고 다니며
밭 임자 나타나서 호통 한 번 치면
뒤도 안보고 뛰었던
그 때

아,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그렇게 놀 수 있을까
공굴이라곤 한참을 걸어 나와야
볼 수 있었던
버스 지나갈 길도 없던
시냇가 늘어진 버드나무
그 아래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우리 동네
  -김민, ｢버드나무 아래에서｣

  신갈저수지 가는 길  아이들과 간략하게 자기 소개를 하고-사춘기의 아이들이라 그런지 여전히 쑥스러워했다-시청에서 나와 닐스 영어학원에서 제공한 봉고차를 타고 신갈저수지로 향했다-참고로 버스로 신갈저수지에 갈 경우에는 시청에서 116-1번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일기예보에서 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기에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먹구름이 그리 짙어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차를 타고 가니 신갈저수지까지는 채 이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리 옆에서 일행은 차에서 내려 천천히 저수지로 올라가기로 했다. 전날 비가 내려서인지 비포장인 길은 촉촉이 젖어 있다. 아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랜만에 흙길을 걷는지 좋아보였다. 벌써 여름이 다 된 것만 같았다.
신갈저수지-조정경기 선수들신갈저수지 전경  차가 밟지 않은 길 가운데는 풀들이 수북이 자라고, 소나무 아카시나무가 파랗게 잎들을 피워내고 있었다. 아카시나무가 하얀 꽃들을 대롱대롱 매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렸을 적, 꽃가지를 꺾어 옥수수 먹듯 후두두 아카시 꽃잎을 먹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아카시 꽃 먹은 적 있니?”라고 물어보니 한 명도 대답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 아이들은 진달래꽃도 먹어보지 못했으리라.
  저수지 둑방에 올라가니, 너른 저수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비록 흐린 날씨긴 했지만 조정경기를 연습하는지 보트에서 열심히 노를 젓는 모습도 보였다.
  신갈저수지는 고삼저수지, 송전저수지와 함께 3대 트로이카라고 불리는 것처럼 참으로 넓었다. 호수라고 불려도 될 정도였다. 저수지 면적이 69만평라고 하니 정말 큰 저수지인 것은 분명하다. 아이들이 이곳을 보더니 제일 먼저 “이게 저수지예요?”라고 물었을 정도니 말이다.
  또, 이곳에서 낚싯대를 길게 드리운 강태공들의 모습도 멀리서 볼 수 있었다. 붕어, 잉어, 가물치, 블루길, 배스 같은 물고기들이 자주 잡힌다고 한다. 하지만 3대 트로이카 중에서 가장 물이 지저분해서 그리 많이 찾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둑방 가까운 곳에 해캄이 짙게 자리 잡고 있는 게 보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여기 저기 둥둥 떠다니는 쓰레기와 얕은 수심에 비해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검은 물길이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고승배씨의 말에 의하면 이곳 신갈저수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오산천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오산천은 더러운 물로 시작한다는 말일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는데, 윗물이 이렇게 더럽다면 오산천에 맨발로 들어갈 날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이었다. 이곳 신갈 저수지가 1964년 준공되었으니 이미 그때부터 물은 썩어가고 있었을 터인지 모른다.
  이곳 저수지는 농업용수로 따로 나오는 물이 있었고 수로를 통해 나오는 물이 있었다. 오산천이 시작되는 곳은 이곳을 올라오기 전 보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을 계속해서 방류하는 게 아니라 간헐적으로 방류하다보니 그런 것 같았다.
  그렇게 저수지를 보며 내려오는 길, 귀화 식물의 일종인 미국 자리공을 보게 되었다. 귀화 식물 중에서 미국 자리공은 특히 사람에 의하여 토양이 파헤쳐 노출된 절개 지에서 확산을 거듭하고 있고, 또한 그 뿌리가 땅속에 내리면서 여러 해를 살기 때문에 토양 속에 든 영양분을 흡수해 버려 토양 황폐화를 가속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자주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꽤 산성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삼성반도체도 이곳의 산성화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우리는 저수지에서 내려와 고매천과 치동천 사이에 있는 자연하천을 보러가기로 했다.



  신갈저수지에서 차를 타고 몇 분 내려오니, 자연하천을 볼 수 있었다. 엄격히 말해 자연하천은 아니었지만 이곳은 자연하천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저수지와는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아주 얕은 수심이었지만 바닥과 남포도 볼 수 있었고 더불어 많은 풀과 나무가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인공적으로 여울 큰 돌이나 자갈에 물이 부딪치며 빠르게 흘러가는 곳으로 일반적으로 얕고 산소 공급이 활발하다.을 만들고 직강하 대신 사행길 뱀처럼 구불구불 휘어진 강의 흐름을 사행鉈行이라 한다.을 만든 것이 하천에 생명을 불어넣었으리라. 하지만 이곳은 지나가는 어떤 사람은 “아, 저거 똥물이에요, 똥물”이라며 물 깨끗하다고 감탄하고 있는 우리를 무안하게 했다. 하기는 아직, 이곳에 발을 담그기는 어쩐지 꺼림직 했다.    이렇게 자연하천으로 조성된 오산천은 다시 치동천과 합쳐서 신리천, 가장천과 만나 오산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다. 결국 오산 시내를 지나가는 하천이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오산천 상류뿐 아니라 고매천, 치동천, 신리천, 가장천과 함께 신갈저수지가 깨끗해야 한다는 말이다.
  신갈저수지와 자연하천을 지나 오산으로 들어오는 길, 동탄 신도시 모델하우스를 지나 하천이 흙탕물로 변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제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하천 색이 저러지는 않을 텐데 아무래도 하천에 인접해 있는 모델하우스 건설현장에서 토사가 대량으로 유입된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하천에는 백로들이 고기를 잡고 있었고, 딱따구리가 나무를 이리 저리 옮겨 다니고 있었다.
  계속해서 하천을 따라가는 길, 백로 서식지를 지나고 남촌교를 지나고 우리가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오산천과 진위천이 합류하는 부분이었다. 하천은 점점 넓어져 그곳에 가기까지 안에 고추를 심어 놓을 만큼 큰 하중도 하천 중앙에 생긴 섬을 하중도河中島라 한다.까지 지니고 있었다. 이 물이 점점 흘러 진위천이 되고, 황구지천이 되어 평택호로 흘러 바다가 된다고 하니 물의 흐름이란 정말이지 작은 실개울 하나라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산천 지나 오산비행장이 멀리 보였다. 매일 오산 상공을 지나다니는 대부분의 비행기와 헬기는 아마 이곳에서 뜨고 내릴 것이란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아무래도 내가 인터체인지 근처 원동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더할 것이다. 헬리콥터나 비행기가 지나갈 때면 새들도 숨죽이고 텔레비전도 갑자기 음소거가 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시끄러운 소음이 덮쳐오니 말이다.
오산천 하류까지 함께한 친구들  이곳까지 지나오는 동안 오산천 주변엔 오산 시가지를 제외하고는 논밭이 하천 주위에 있었지만 하지만 오산천으로 농사를 짓기보다는 대부분 농수로에 의존하고 있었다. 하기는 말라버린 하천에서 어떻게 물을 끌어올 수 있을까 싶다.
  오전에 시청에서 출발해 신갈저수지로 떠나 오산천 상류부터 시작해 하류까지 돌아보니 어느덧 구름이 지워지고 있었다. 오늘 함께한 아이들과 함께 차에 올라타 다시 오산으로 돌아오면서 아이들이 맑은 하천에 들어가 다슬기를 줍고 물장구를 치는 모습을 그리는 일이 왜 그렇게 힘든 일일까 생각해본다.

[김민]

아직 퇴고를 거치지 않은 글이라 엉성한 곳이 많습니다. 나중에 확인작업도 해야 하구요.

[애기똥풀]

좋은 글 감사합니다.

[♥현☆종☆헌♥]

역시 젊은 세대의 신선함이 돋보입니다. 나는 인터넷 정리가 뭔가 하고 의아해 했는데. 이러니까 한결 읽기가 좋습니다. 서서히 내용을 음미하면서 감상하겠습니다.

[♥현☆종☆헌♥]

김민 시인 소개 : 오산 토박이로서 오산고 및 명문 전남대학교 국문과 졸. 현재 대학원 준비 중. 차분한 성격. 오산의 젊은 뜻있는 분들과 환경 및 기타 시민 운동에 참여. 본문 중 닐스 영어학원원장은 지인이면서 재미있는 분. 오산에 가면 항상 반가운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현☆종☆헌♥]

김 시인은 최근엔 환경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오산엔 또 나랑 절친한 이원규 시인(전 오산문인협회장)이 있다. 한결같이 가슴이 따뜻한 분들 ~~~ (허락없이 소개해서 김 시인님 죄송합니다)

[천남성]

커다란 논문이 탄생되는 듯 합니다. 열정에 감탄했고 글솜씨에 놀랐습니다. 지도를 한장 삽입했으면 좀 더 리얼하게 머릿속에 그려지겠군요. 연재하시면 관심있게 훑겠습니다.

[김민]

지도는 제가 그리는 솜씨가 없는지라 나중에야 될 것 같아요. 그 도중에 시간이 되면 허접하긴 하겠지만 제가 그린 지도를 삽입하도록 하겠습니다. 관심 감사해요.

[김민]

그나저나 현 시인님께서 너무 거창하게 제 소개를 하신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저는 그저 글쓰기를 좋아하는 청년일뿐이랍니다.

[♥현☆종☆헌♥]

첫인상이 분명히 뭔가 해낼 것 같았어요.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