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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문학방 스크랩 좋은詩 낭송회 시편들....
초록신안창현 추천 0 조회 17 09.07.07 22:47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올바른 詩 감상.



좋은 詩 감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한 편의 아름다운 시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줍니다

한 편의 시에서 받은 감동은 일생을 두고

그 사람의 감성을 조율 하기도 합니다

이만한 큰 힘을 가진 시

이러한 시를 접하면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우선 시를 읽는 태도이다]


독자들은 흔히 시를 읽으면서 자신과 비유를 한다

자신의 상황과 입장을 대비 시켜보고 맞으면 좋은시 틀리면 나쁜시라

쉽게 평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아름답고 현란한 말에 대부분 현혹이 된다.

그리하여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언어의 마술능력에서

좋고 나쁨의 구별이 되어버린다. 주의 할 점이다.


이러한 시의 감상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시란 순수한 창작물 이다

바꾸어 말하면 무언가를 흉내를 내거나 모방을 하였다면

이는 진정한 의미의 시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시를쓰는 시인은 물론이요 독자들도 이러한 부분을

충분히 이해 하려는 노력이 동반 되어야 할줄로 안다.

이와같은 최소한의 조건이 형성되었다면

비로서 시의 구체적 형질을 갖추었다 보는 것이고 이러한 시는

독자의 가슴에 어느 형태로든 느낌으로 의미가 전달 되리라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를 어떻게 감상하고 대해야 하는 것인가 ?


[작가보다 작품을 먼저보라]


가난한 시인은 부자의 시를 못쓴다 하면 믿을만 하던가

이는 웃을 일이다

바로 그렇습니다 시는 작가의 현실이 배어들 수는 있으나

작가가 처한 처지를 쓰는 것은 아닌것 입니다.

그 작가가 어떠한 사람이냐 보다 어떤 작품을 썼느냐가 더욱

중요시 되어야 하며 바로 평가 되어야 한다는 점 입니다.


[작품을 규정에 맞추지마라]


시는 이래야 한다

이말에는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시는 전적으로 "이래야한다"는

적용 되어서는 안됩니다

즉 획일화된 문법의 틀이나 일상화된 언어의 틀

사회 통상관념의 틀 정해진 규범의 틀

바로 이러한 틀에 작품을 억지로 넣어 맞추어 보면 감상의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시는 창작물입니다. 즉,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르고 생소한 내용 이거나

창조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을 독자는 인식 해 주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외면보다 내면을 중시하라]


시는 예컨데 현상을 옮기는 이동 표현이 아니다.

본것을 적거나 느낀것을 적거나.한다면 이는 기록문이나

감상문에 가깝다고 보는것이다.

현상의 동적인 것을 적었다 해도 이는 현실문학 이지

이미지문학은 아닌것으로 본다.

즉 작품의 현란함이나 아름다운 단어보다는

읽고 난뒤의 전해지는 느낌이 중요하며 이미지로 전달되는

감성적 행위 기여도가 더욱 중시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시가 보여주는 밑그림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며 단편적이거나

포괄적 이거나의 폭보다는 상상적 기능이 비중이 커야한다는 말인것이다


[지식이나 학문으로 논하지마라]


지식이나 학문은 작가의 기본 몫일뿐 작품일 수는 없는것이라 본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를 졸업한 시인이 대학을 졸업한 시인보다

더 좋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는것은 누구나 인정 하는 것일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력란에 모모대학 국문과졸 모모신문사 신춘문예 당선

모모 상 수상이라는 말이 가치 이상으로 인정 되어야 하는지는 재고할 일이라 보는것이다.

그만큼의 가치는 가치요.

아닌것은 부가적으로 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제 올바른 자세로 진정한 창작 문학작품을 감상 해 보는일이 남아있다.

그리하여 마음에 소중한 여운이 오래 자리 한다면

올바른 자세로 작품을 감상하였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낭송 잘 하는 법



낱말 하나하나의 소리내기가 바르고, 그 높낮이와 길고 짧음이 정확해야 듣기 좋으며 뜻이 바로 전달됩니다. 그리고 말이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으며 마치 물 흐르듯 하면서 힘참, 고요함, 평화로움, 기쁨, 그리움 등을 나타내야 듣는 이가 느껴 귀 기울이게 됩니다. 이것이 시 낭송의 바탕입니다.



나무가 서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지만 당당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같은 자연스러운 표정의 드러남이 중요합니다. 낭송하는 이의 들뜸이 지나쳐 불거지거나, 어색한 손짓 몸짓들로는 공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 낭독과 시 낭송은 다릅니다. 시 읽기가 아니라 시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낭송하고 싶은 시를 여러 번 읽고 뜻을 새기다 보면, 그 듯을 목소리에 실을 수 있는 악보가 절로 가슴속에 떠오릅니다. 이 악보에 따라 듣는 이의 느낌에 깊이와 여운이 생겨나며, 거기다가 낭송하는 이의 개성이 살아 어울려 주면, ‘아, 아름답구나!’ 하는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몸가짐이 반듯하고 옷차림도 단정하며, 무대 오르내리기와 인사법에도 어긋남이 없도록 애씁니다.

여기서 서로의 믿음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낭송하는 이의 이러한 모습에서 듣는 이들은 마음의 옷깃을 바로 잡게 될 것입니다.


낭송하고 싶은 시를 수십 번 써 보고, 수백 번 외워 오랫동안 빈틈없이 준비해 나의 노래로 되살려야 맥박 같은 힘과 햇볕 같은 위안과 남이 흉내낼 수 없는 색깔이 있는 낭송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연습을 되풀이 해야 실수가 없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낭송하다 막히거나, 잘못하는 것은 연습이 모자라는 탓입니다. 여럿이 함께 같은 시를 낭송하는 합송일 경우에는 소릿결, 숨결, 마음결가지 맞춰야 조화로움에서 아름다움을 풍기게 됩니다.


시 낭송은 어떤 성악가의 노래, 어떤 배우의 명연기보다 훌륭한 예술이라는 믿음입니다.

이런 자리 매김은 공연 예술의 한 영역으로서의 시 낭송, 예술가로서의 낭송가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술혼으로 달궈진 시 낭송만이 명시의 감동을 진하게 되살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연어    정호승



바다를 떠나 너의 손을 잡는다


사람의 손에게 이렇게


따뜻함을 느껴본 것이 그 얼마만인가


거친 폭포를 뛰어넘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단지 한 마리 물고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누구나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바다는 너의 기다림 때문에 항상 깊었다


이제 나는 너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산란을 하고


죽음이 기다리는 강으로 간다


울지 마라


인생을 눈물로 가득 채우지 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은 아름답다


오늘 내가 꾼 꿈은 네가 꾼 꿈의 그림자일 뿐


너를 사랑하고 죽으러 가는 한낮


숨은 별들이 고개를 내밀고 총총히 우리를 내려다본다


이제 곧 마른 강바닥에 나의 은빛 시체가 떠오르리라


배고픈 별빛들이 오랜만에 나를 포식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밤을 밝히리라.



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감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딸에게  이승하



설움이 쌓여 말을 잃을 때


그런 때가 올 것이다


그럼 밤을 기다려라


한밤에


불 다 끄고 눈을 감아보렴


네 숨소리 들리는  한 너는 생명체이니


이 우주가 너와 더불어 존재하는 것 아니냐


그럼 된 것이다 내 아가야




가다가 지쳐 주저앉고 싶을때


그런 때가 올 것이다


그럼 밤을 기다려라


한밤에


숲속에 들어가 눈을 감아보렴


벌레 소리 들리는 한 너는 피조물이니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위대한 일 아니냐


그럼 된 것이다 내 사랑아




호호백발 할머니 되어 운신하기 어려울 때


그런 때가 올 것이다


그럼 밤을 기다려라


한밤에


창가에 서 하늘 한번 올려다보렴


별이 있는 한 너는 유한자이니


무한을 꿈꿀수 있지 않느냐


그럼 된 것이다 내 분신아




성남 별곡.1   니브 박




시커먼 세상 아래


숨쉴 만한 곳 있더냐.


밟히지 않은 담벼락 아래


뿌리조차 내릴 수 없다


주차 푯말 완고하게 꽂힌 세상


다시 너를 돌려보낼 수 없어


내 뜰 안에 발을 들여 놓았더니


오랑캐꽃이 되었구나.


질긴 게 목숨이더냐


너를 꽃이라 인정치 못해 혹


누군가 뽑아 버릴까 걱정이다


뭐 볼 것 있다고 거리로 나와


사는 것 힘겨운 나를 닮아 가려느냐.


이젠 알 것이다 


이 도시에서 살려면


한 철 질긴 목숨 꼿꼿하게 세워


눈 부라리고 서 있거라





사  슴      백   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신의주 남쪽 버드나무 골에 사는 박시봉이라는 사람 집에서'라는 의미, 시적화자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 주면서 동시에 이 작품이 편지의 형식임을 알게 해 준다.


*삿 : 삿자리의 준말.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딜옹배기 : 둥글넙적하고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질그릇. 질옹자배기


*북덕불 : 짚이나 풀 따위를 태워 담은 화톳불. 북더기불


*쌔김질 : 새김질


*갈매나무 : 갈매나뭇과에 속한 좀나무. 키는 2 m쯤 되고 가지에 가시가 나며, 잎은 넓은 바소꼴이며 톱니가 있다. 열매는 '갈매' 또는 '서리자'라 하여 약재나 물감으로 쓴다.



섬진강 1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 가도 퍼 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 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 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 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김용택(金龍澤 1948- ) 시인. 전북 임실 출생. 초등학교 교사. 1982년 <창작과 비평>의 21인 신작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에 “섬진강 I”외 8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5년 첫 시집 <섬진강>을 간행한 이후 <맑은 날>, <누이야 날이 저문다>, <꽃산 가는 길>, <그리운 꽃편지>, <그대 거침없는 사랑>,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산문집으로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섬진강 이야기>, <작은 마을>, <인생>이 있으며, 장편 동화 <옥이야 진메야>,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가 있다. 김수영 문학상, 김소월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자연을 바라볼 때면 일체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이다. 농촌에서 자라난 사람에게 강한 이러한 정서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정마저 느끼게 한다. 언제라도 달려가 보고픈 곳, 언제까지라도 지친 나를 감싸안아 줄 곳으로 자연은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자연은 그러한 보편적인 공감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시인에게는 민중의 굽힐 줄 모르는 생명력으로 다가서게 된다. 전체 시의 전개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바라본 풍경들이 등장하면서 이루어진다. 2행부터 11행까지 전라도의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모이는 섬진강의 강변에 작은 들꽃과 풀들이 어울려 있는 모습이 나온다. 섬진강이 마르지 않는 이유는 가는 물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마치 민중 전체가 힘없는 개개인이 모여 커다란 힘을 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섬진강의 저력이라면 강변의 식물들은 농촌생활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 쌀밥, 숯불에 비유되는 꽃과 풀들은 섬진강을 친근하게 느끼게 하고,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들은 농민의 소박함을 느끼게 한다. 비록 소박하지만 꽃등과 같은 은은한 밝은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는 힘을 갖기도 한다.

12행부터 마지막 행으로 가면서 시에는 힘이 넘치면서 호탕한 기세가 펼쳐진다. 영산강, 지리산, 무등산의 주변을 흐르는 섬진강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 기세는 몇 놈씩이고 달려들어 퍼낸다 하더라고 결코 마르지 않을 당당함을 보인다. 시인의 이 말에 껄껄대며 웃는 지리산과 훤한 이마로 고갯짓하는 무등산이 그럴 것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산과 강이 어우러지고 있는 것처럼 자연의 힘찬 생명력이 한데 어우러지는 장관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력은 민중의 생명력과 다름없으며 애비 없는 후레자식 같은 세력이 위협하더라도 그 건강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편, 설의법적인 물음을 지리산이 던지고 무등산이 맞장구친다는 표현은 국토를 의인화하여 그 건강함에 대한 예찬과 국토애를 나타내 준다고 하겠다.




향수(鄕愁)   정지용(鄭芝溶)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름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지은이 : 정지용(鄭之溶, 1902-?) 시인. 충북 옥천 출생. 6.25 때 행방불명. 섬세한 이미지와 잘 짜여진 시어로 1930년대를 대표하였다. 초기에는 이미지즘 작품을 썼고, 후기에는 동양적 관조의 세계를 주로 형상화하였다. 대표작으로는 ‘향수’, ‘유리창1’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정지용 시집>, <백록담> 등이 있다.


회돌아 : 휘감아 돌아   지줄대는 : 거침없으면서도 다정하고 나긋나긋한 소리를 내는   해설피 : 소리가 느릿하고 길며 약간 슬픈 느낌이 드는 것을 가리킴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따가운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들판에 누워 유유한 울음을 우는 황소의 모습이 한가롭게만 보이는 곳. 여기서는 금빛이 가장 느리게 보이는 색깔로 보았으며, 따뜻하고 찬란한 그리움을 돋우는 한가한 울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청각적 현상을 색채로 표현한 공감각적 이미지이다.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이 시의 후렴 역할을 하는 시구로서 주기적 반복을 통해 고향의 정경에 대한 정서적 환기 효과를 거두고 있다. 또 각 연의 시상을 정돈해 주는 효과를 거두기도 하고, 반복을 통한 형태적 안정감에도 기여하고 있다.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 한밤중 문밖으로 들리는 바람소리가 말 달리는 소리처럼 들리고    함초름 : 가지런하고 고운 모양

휘적시던 : 마구 적시던   서리 까마귀 : 가을 까마귀

엷은 졸음 : 살풋 든 졸음을 감각적으로 표현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 짙은 검은 머리를 가진 누이의 머릿결 흩날리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그려 보며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 시 안에 나타나는 ‘아내’가 이 땅의 어느 곳에서나 있음 직한 평범한 여인의 모습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특히 이 연에서는 ‘누이’나 ‘아내’로 대표되는 가족 공동체가 살고 있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나타나 있다.

사철 발 벗은 아내 : 농사일에 바빠서 신도 잘 추스려 신을 사이가 없는 토속적인 아내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 모래성처럼 아련한 꿈과 소망이 어우러진 별을 보며 걸어가고...


이 시는 농경 시대 한국인의 고향을 노래했다. 10개 연 중 홀수 연은 고향의 잊을 수 없는 심상을 제시하고, 짝수 연은 잊을 수 없는 감정을 동어 반복을 통해 강조하여 홀수 연의 심상들을 연결하고, 작품 전체에 통일성을 유지시켜 준다. 날로 도시화, 비인간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옛 고향의 정취에 젖어 들도록 하기에 족한 시다.


무등(無等)을 보며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山)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午後)의 때가 오거든,

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서정주(徐廷柱 1915-2000) 시인. 전북 고창 출생. 호는 미당(未堂).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1936). 1936년 불교전문 중퇴. <시인부락> 주간. 흔히 ‘생명파’ 혹은 ‘인생파’로 불림. 1948년 동아일보 사회․문화부장. 서라벌 예대․동국대 문리대 교수를 역임. 1972년 불교문학가협회장. 1976년 명예 문학박사(숙명여대). 1979년 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 1979년 동국대 대학원 명예교수



이 시는 전 5연으로 되어 있는 자유시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삶이지만 그러한 삶에 만족하며 감사하며 사는 모습이 잘 그려진 시이다.

이 시의 각 연의 짜임을 보면 1연에서는 가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높은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엿볼 수 있으며 2연에서는 삶에 대한 의연하고 긍정적인 자세가 보인다. 3연에서는 삶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려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으며 4연에서는 부부가 서로에 대해 갖는 따뜻한 사랑과 배려가 그려지고 있고 5연에는 삶의 어려움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넉넉한 마음이 드러나 있다.

이 시의 창작 동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 6.25 동란 후 몇 년인가를 시인은 광주에서 기거하며 조선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아 그 당시 대학의 교수에 대한 처우는 말이 아닐 정도였다 한다. 내 남 없이 모두 궁핍하던 때인 만큼 점심을 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불가항력으로 일생에 처음 당하는 물질적 궁핍 속에서, 크고 의젓하고 언제나 변함없는 무등산을 보며 시인은 이 시를 썼다고 한다. 그는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선연히 서 있는 무등산의 모습에서 교훈을 찾고 있다. 인간의 참모습은 물질적 부족으로 인한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서 정신적으로는 더욱 풍요로워지며 만족과 감사함이 깃든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아무리 가난해도 자식을 소중히 하고, 부부간에 서로 의지하고 믿음으로써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나아가서는 자기 삶의 현실을 ‘가시덤불 쑥구렁(죽음) 속에서도 옥돌같이 묻혀 있다.’는 정신적인 여유를 강하게 엿볼 수 있다.

이 시에서 가장 깊이 있게 살펴봐야 할 것은 ‘무등산’의 의미이다. 여기서의 무등산은 부모들이 지녀야 할 인내, 의연, 사랑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산의 모습은 물질적 궁핍, 육체적으로 피곤한 현실을 극복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활엽수림  함명춘



1.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한 세기를 줄이고 깎으며 살아온 잡목들


빽빽이 들어차고 간간이


바람이 긴 머릿자락을 휘날리면


ㅈㅊㅋ 격음화현상이 일어나는 활엽수림


저녁은 관습처럼 무섭게


산허리를 들이받으며 내 행동반경권 안으로


진입해 들어오고 바로


코앞에서 길 하나가 논두렁에


처박히고 한 떼의 곤충들이 증발한다


문득 어디선가 맵고 차고


단단하게 들려 오는 어둠의 호각 소리


불규칙하게 연소해 들어가는


꿈속처럼 깊은 바다,


활렵수림이여


먼 순례의 길에 오르는가


퇴색한 나의 멜라닌 색소에 푸른 물을


들이고 싶다


2.

 


잠들지 못하는 바다 그 어디에서


삭정가지처럼 걸린 수평선이 부러져


내릴 것만 같다


빛바랜 꽃잎 혹은


빈 술병으로 나뒹구는 어둠 속에서


꾸겨진 나를 발견한다


나를 조소하듯 어두운 곳에서 촉망받는 별들


얼마쯤 걸어왔을까 뒤돌아보면


급격하게 커지는 바람의 폐활량


숨이 가쁘다 가면 갈수록



뒤로 물러서는 활렵수림이여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등줄기가 몹시


가렵다 긁기 위하여 손을 갖다 대면


새까맣게 타들어 오는 밤 12시


아직도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들이


돌아오지 않는 활렵수림으로 남아


희미한 고요의 불빛을 지키는 밤은


저울추처럼 좀더 엄숙한 곳으로


기울어진다.




풍장(風葬)Ⅰ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風葬)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 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풍장(風葬) : 시체를 한데에 버려 두어 비바람에 자연히 없어지게 하는 장사법.

군산, 곰소 : 전라북도의 서해안에 있는 항구들로서 지명(地名)임

해탈(解脫) : 속세의 속박과 번뇌를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심경에 이름


지은이 : 황동규(黃東奎, 1938- ) 시인. 문명적 소재를 취하면서도 새로운 서정의 세계를 구축하여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높이는 시 경향을 보인다. 시집으로는 <삼남에 내리는 눈>, <풍장(風葬)> 등이 있다.


해설

시적 자아는 풍장(風葬)을 시적 상황으로 설정하여 자신이 죽을 경우 풍장시켜 줄 것을 부탁하고, 아울러 시간의 경과에 따른 풍장의 과정을 담담하고 비장한 어조로 진술하고 있다.

시적 자아가 이러한 풍장을 염원하는 것에서 현실에 대한 시인의 허무주의적 태도가 나타난다. 이와 같은 태도는 바람이 지니고 있는 소멸(消滅)의 이미지를 통해서 제시된다. 여기에서 바람은 살과 피를 말리우듯 일체의 사물을 소멸시켜 자연의 일부로 되돌리는 생명 순환(生命循環)의 원리를 상징한다. 결국, 이러한 죽음마저 그 어떤 세속적 가식이나 신성한 의미도 거부한 채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함께 논다는 것에서 허무에 바탕을 둔 작가의 현실 인식과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지향을 엿볼 수 있다.


이 시는 시적 자아가 죽음을 가정하고, 자신이 죽은 뒤 풍장을 해 줄 것을 당부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자신의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는 시적 자아의 당부이다. 죽음이란 단지 자연과 우주의 무한한 순환 과정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슬퍼할 것도 없고 미화시킬 필요도 없고, 거기에다가 어떤 종교적인 의미를 덧붙여서 신비화하거나 신성화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이 시적 자아가 당부하는 요체인 셈이다. 이 시에서 ‘바람’은 모든 존재를 소멸시켜서 다시금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자연의 풍화 작용을 의미한다.

죽음에 대한 이 같은 태도는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죽음에 덧붙여지는 인간적인 의미를 철저하게 거부하고 죽음 그 자체에 대해서도 냉철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그저 담담하고 객관적인 진술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는 자신의 주검이 바람 속에서 풍화되어 가는 과정마저도 ‘바람’과 노는 것이라고 다소 장난스럽게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은 풍장을 통해 자신의 본질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믿음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죽음관(觀)과 죽음에 대한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태도와 어조는 우리 시의 전통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는 삶의 진상을 파악하려는 시인의 진지한 노력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가죽잠바   기원석



장롱을 연다.


짐승 한 마리의 껍질로 만든 옷이 있다.


내장을 꺼내고 발톱과 이빨은 목걸이가 된


가죽옷을 입고 나가면 거리는 주춤거린다.


사나운 겨울바람


나의 체취를 맡았을까


꼬리를 내리고 한발 물러서는 짐승들


아직도 이 세계엔 서열이 있다


가죽옷을 입고 골목길을 나서면


나는 한 마리의 포효하는 짐승


초원을 달리는 속도로


나의 이빨과 발톱에 사라져간 짐승들


간혹 그들의 울부짖음이 들린다.


어둠 속에서도 먹이를 놓치지 않은


나의 구역 안에서는 쓰러질 때까지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 삶이다



구두  송찬호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 본다.

그러나 그들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는다.

새장에는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다.



그것이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

그것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다.

내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 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통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 보는 것이다.



송찬호(宋粲鎬, 1959- ) 시인. 충북 보은 출생. 경북대 독문과 졸업.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1984), <10년 동안의 빈 의자>(1994), <붉은 눈, 동백>(2000) 등 세 권의 시집이 있으며, 2000년에 ‘김수영문학상’과 ‘동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첫 번째 시집은 시적 구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삼아 언어를 ‘존재의 집’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중심을 이룬다면, 두 번째 시집은 그런 언어의 한계에 대한 구체적인 자각과 도전을 보여 준다. 그에 비해 세 번째 시집 <붉은 눈, 동백>은 ‘존재의 탐구’라는 형이상학적 시론(첫 번째 시집)과 ‘형식주의 미학’(두 번째 시집) 사이의 심도 있는 조화를 꾀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 시는 구두를 제재로 다루고 있지만, ‘구두’라는 대상 자체의 속성에서 인과적(因果的)인 의미의 연결을 이끌어내고 있지는 않다. 이 시는 일관된 의미의 흐름을 드러내기보다는 자유로운 연상을 통해 이미지의 계속적인 확산을 보여 주고 있다. 결국 이 시에서 ‘새 구두’는 미래의 삶에 대한 조그만 희망이자 위로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급반 교과서   김명수


아이들이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

나는 물끄러미 그 소리를 듣고 있다.

한 아이가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딴 아이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아니다 아니다!” 하고 읽으니

“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

“그렇다 그렇다!” 하고 읽으니

“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도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 읽기여

우리 나라 아이들의 목청들이여.

김명수(1945-  ) 시인. 경북 안동 출생. 197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1980년 첫 시집 <월식>에 이어 시집으로는 <하급반 교과서>, <피뢰침과 심장>, <침엽수 지대>, <바다의 눈> 등이 있음. 제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 1992년 제7회 만해문학상 수상. 동화집으로 <해바라기 피는 계절>, <달님과 다람쥐> 외에도 역서(譯書)가 다수 있음


제재 : 하급반 책 읽기. 유신 시절의 강요된 획일주의

주제 :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어 고통받던 현실을 비판


박정희 대통령 집권 말기였던 유신 시절, 모든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상황 속에서 강요된 획일주의 때문에 고통받던 현실을 초등학교 하급반 아이들의 책 읽기를 통해 비판한 작품이다. 하급반 아이들의 따라읽기처럼 오직 한 목소리로 같은 내용을 읊조려야만 하는 암담한 현실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시는 풍자적이다. ‘하급반’은 질적으로 낮은 수준에 있는 민중이나 그 사회 계급을 의미하고, ‘교과서’는 하나의 전범(典範)으로서의 획일성, 권위 따위를 의미하게 되어 ‘하급반 교과서’는 질 낮은 사회의 획일성․전제성(專制性)을 상징하는 말이 된다.

‘아이들’은 물론 민중이다. 그들은 책을 따라 읽는다. 스스로 읽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읽는 대로 똑같이 따라 읽는다. 이것은 통제 사회에서의 맹목적 추종을 뜻한다. ‘한 아이’는 물론 지도자를 말하는데 선도적 입장에 처해 있다. 그가 하는 대로 민중은 따르게 마련인 사회의 부정성을 청아하고 명랑한 목소리에 의해 드러냄으로써 그 풍자성을 강화한다.

‘아니다’와 ‘그렇다’는 수용과 거부라는 기본적 가치 판단이다. 민중들은 자기 스스로 ‘아니다’ 또는 ‘그렇다’를 표명하지 않는다. 그러니 권력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스리기도 쉽고, 민중의 입장에서도 주체적으로 고뇌할 이유가 없어 편하다. ‘활자’도 커다랗게 제시되어 있듯이 목표도 단순하고 선명하다. 그저 따르면서 일사불란(一絲不亂)한 행동만 보이면 된다. 이것이 획일화된 사회, 전제성(專制性)이 여전히 지배 논리가 되는 사회의 실상이다. 그러니 사회 구성원 모두는 하급반 수준이며, 그들의 삶의 형태도 교과서처럼 단순한 규범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요소 중 하나가 율격인데, 4음보격의 규칙성을 띠는 이 운율은 매우 대중적이고 단순하며 일정한데, 이것은 시의 내용과 일치한다. 민중의 바보스러움, 사회의 저급 차원에 걸맞게 운율이 부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점도 이 시의 우수성을 돕는 데 이바지한다



만년필   송찬호



이것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인가 만년필 끝 이렇게 작고 짧은 삽날을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다



한때, 이것으로 허공에 광두정을 박고 술 취한 넥타이나 구름을 걸어두었다 이것으로 경매에 나오는 죽은 말대가리 눈화장을 해주는 미용사 일도 하였다



또 한때, 이것으로 근엄한 장군의 수염을 그리거나 부유한 앵무새의 혓바닥 노릇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것으로 공원묘지에 일을 얻어 비명을 읽어주거나, 비로소 가끔씩 때늦은 후회의 글을 쓰기도 한다



그리하여 볕 좋은 어느 가을날 오후 나는 눈썹 까만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면서, 해바라기 그 황금 원반에 새겨진 ‘파카’니 ‘크리스탈’이니 하는 빛나는 만년필시대의 이름들을 추억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오래된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지난날 습작의 삶을 돌이켜본다―만년필은 백지의 벽에 머리를 짓찧는다 만년필은 캄캄한 백지 속으로 들어가 오랜 불면의 밤을 밝힌다―이런 수사는  모두 고통스런 지난 일들이다!



하지만 나는 책상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혼자 뒹굴어다니는 이 잊혀진 필기구를 보면서 가끔은 이런 상념에 젖기도 하는 것이다―거품 부글거리는 이 잉크의 늪에 한 마리 푸른 악어가 산다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내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동시


여름날 숲 속에서   하청호


여름날 숲 속에서

크고 우람한 나무 밑둥치를 보며

아버지의 다리를 생각한다.

어린 나를 업고

냇물을 건널 때의 아버지의 다리

세찬 물살을 헤치며

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

데려다 준 아버지의 다리

거름을 져 나르며

우리 집의 생활을 짊어진 아버지의 다리.

내가 이 세상을 잘 건너가라고

크고 튼튼하게 다리를 놓아 준

아버지의 다리.

나는 여름날 숲 속에서

내 아버지 다리같이 이 땅에 굳건히

뿌리를 내린

푸르른 나무를 본다.


동시


장마 그친 날     정두리



비오는 날

빨리 찾아 오는 어둠

자동차 불빛이 물에 젖어

찾길에 긴 줄로 떠 다닌다.

모두 젖어 눅눅하다

천천히 차올랐던 물기가

어느 날 쓰윽빠지면

장마 걷혔다!

누구나 장마가 떠나기 바라던 걸

알게 되는 날이다

(장마비는 알고 갔을까)

한시



밝은 달은 어느 때부터 있었나

잔 들고 푸른 하늘에 물어 본다

하늘 궁전에선 모르리라

오늘 밤이 무슨 해인지

바람 타고 돌아가려 해도

달 속의 옥궐은 높은 곳이라

추위를 견딜 수 없으리라

춤을 추며 맑은 그림자 희롱한들

어찌 인간세상 같으fi

높은 궁궐을 빙 돌아

비단 창문마다 비추어

잠 못 이루게 하는구나

사람에게 원한을 품은 일 없으련만

어찌 항상 이별할 때에는 달이 둥글까

사람은 기쁨과 슬픔,이별과 만남이 있고

달은 밝음과 어두움, 차고 어지러짐이 있는 법

이같이 일이란 예로부터 완전한 적이 없었으니

다만 바라노라

오래도록 인간세상 온 천지를 아름답게

명월아 골고루 비추어다오


한시

가을 저녁


저녁 해 뉘엿뉘엿

이 마을 적적하네.

서러운 것

누구에게 하소연 하랴.


오랜 길에는

사람 없고

가을 바람 수수잎만 흔드네


Mending Wall Robert Frost


Something there is that doesn't love a wall,

That sends the frozen-ground-swell under it

And spills the upper boulders in the sun,

And makes gaps even two can pass abreast.

The work of hunters is another thing:

I have come after them and made repair

Where they have left not one stone on a stone,

But they would have the rabbit out of hiding,

To please the yelping dogs. The gaps I mean,

No one has seen them made or heard them made,

But at spring mending-time we find them there.

I let my neighbor know beyond the hill;

And on a day we meet to walk the line

And set the wall between us once again.

We keep the wall between us as we go.

To each the boulders that have fallen to each.

And some are loaves and some so nearly balls

We have to use a spell to make them balance:'

Stay where you are until our backs are turned!'

We wear our fingers rough with handling them.

Oh, just another kind of outdoor game,

One on a side. It comes to little more:

There where it is we do not need the wall:

He is all pine and I am apple orchard.

My apple trees will never get across

And eat the cones under his pines, I tell him.

He only says, '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

'Spring is the mischief in me, and I wonder

If I could put a notion in his head:'

Whydo they make good neighbors? Isn't it

Where there are cows? But here there are no cows.

Before I built a wall I'd ask to know

What I was walling in or walling out,

And to whom I was like to give offence.

Something there is that doesn't love a wall,

That wants it down.' I could say 'Elves' to him,

But it's not elves exactly, and I'd rather

He said it for himself. I see him there

Bringing a stone grasped firmly by the top

In each hand, like an old-stone savage armed.

He moves in darkness as it seems to me,

Not of woods only and the shade of trees.

He will not go behind his father's saying,

And he likes having thought of it so well

He says again, 'Good fences make good neighbours



담장고치기 로버트 프로스트


무엇인가 담장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는가 보다.

그것이 담장 밑의 땅을 얼어 부풀게 하여

위에 있는 둥근 돌들을 햇빛 속에서 떨어뜨린다.

그리하여 거기에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갈 만한 틈이 생긴다.

사냥꾼들도 담장을 부순다.

나는 그들 뒤를 따라가서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부숴놓은 담장을

수선했었다.

그래도 그들은 숨어있는 토끼들을 몰아내어

짖어대는 개들을 즐겁게 해주곤 했다. 내가 말하는 틈이란

그것이 생기는 것을 본 사람도 들은 사람도 없는데

봄철 수선기가 되면 나타나는 틈을 말한다.

나는 언덕 너머 이웃 사람에게 알린다.

그리고 하루 만나서 경계를 걸으며

그 경계에 무너진 담을 다시 쌓는다.

우리는 담장을 중간에 두고 걸어간다.

자기편에 굴러 떨어진 돌들을 주워 올린다.

어떤 것들은 빵떡 같고 어떤 것들은 공 같은 것들도 있어

그것을 균형 있게 쌓아올리는 데엔 주문을 외워야 한다.'

우리가 떠날 때까지 제발 그 자리에 그대로 있거라'하고.

우리는 그것을 만지느라고 손이 거칠어진다

.아, 이것은 다름 아니 두 패로 나누어서 하는

야외 경기의 일종이다. 그 이상의 것이 아니다.

이 상태론 담이 필요 없다.

그이네는 모두 솔밭이고, 우리 쪽은 사과밭이니

우리 쪽 사과나무가 건너가 그 쪽 소나무 밑에서

솔방울을 주워 먹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나는 그에게 말한다.

그는 덮어놓고 '담장이 튼튼해야 이웃간이 좋다'고 말한다.

봄이라 장난기가 일어나는 생각을 해봤다.

그의 머리통에 한 가지 생각을 넣어줄 수 없을까 하고'

어째서 이웃이 사이가 좋아지는가요. 그건

소가 있는데서 하는 말이 아닌가요. 그런데 여기에 소가 없쟎소.

담장을 쌓기 전에 나는 알고 싶었소, 담장을 쌓아서

내가 무엇을 넣고 무엇을 내보내야 하는지를

그리고 내가 누구의 감정을 해치게 될 것인가를

담장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있어

그것이 담장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거요' 라고.

나는 그에게그것이 '요정들'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요정도 아니다. 오히려

그 자신이 말을 해 봤으면 싶었다. 그가

양손으로 돌 하나의 윗부분을 꽉 쥔 채 오는 듯이 보였다.

마치 무장한 구석기 시대의 야만인처럼

그는 내게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듯이 보였다.

숲이나 나무 그늘의 어둠만은 아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한 말의 참 뜻을 알려고 하지 않고

그 말을 그저 좋다고만 생각하여다시 말한다.

'담장이 튼튼해야 이웃간이 좋다' 라고.



문태준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5년 고려대 국문과 졸업.

1994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 시 「處署」외 9편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함.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기억과 현실, 그 '사이'에 대한 성찰



첫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이후 4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펴낸 시인 문태준의 『맨발』은 ‘기억의 터’에 바쳐진 시집이다. 일산에서 살면서 10년째 불교방송의 프로듀서로서 일하고 있는 시인을 만나 “어두워지는 순간”에 경사된 내면의 결과 그 뿌리를 훔쳐보았다. 유년 시절 ‘상징적 죽음’이란 제의 행위를 치러야 했던 시인의 내력에서 죽음의 문을 엿본 자는 천상 시인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문태준의 시적 상상력은 ‘기억’이다. 첫시집 『수런거리는 뒤란』(2000) 이후 4년 만에 펴낸 시집 『맨발』(창비, 2004)에는 시인 특유의 기억의 시학이 시집 전편에 묻어난다. 문태준의 시는 왜 시라는 장르가 ‘기억의 터(lieux)’에 바쳐지는지에 대한 하나의 정답이 될 수 있을 터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억의 터’는 딱히 구체적 장소를 뜻하지는 않지만, 유년과 성장기를 보냈던 고향 김천의 자연과 아무래도 깊은 친연성을 맺는다.



예컨대 3연 4행으로 이루어진 「그림자와 나무」라는 시를 보면 시인의 시적 지향점을 엿볼 수 있게 된다.



“갈참나무의 그림자들이 비탈로 쏟아지고 있다 / 저 검고 지루한 주름들은 나무 속에서 흘러나왔다 // 내 몸속에서 겨울 문틈에 흔들리던 호롱불이 흘러나오고, 깻잎처럼 몸을 포개고 울던 누이가 흘러나오고, 한켠이 캄캄하게 비어 있던 들마루가 흘러나오고…… // 오후 4시는 그래서 나에게 아주 슬픈 시간이다.”



이 시에서 이미지의 작용을 보려면 동사動詞의 활용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흘러나오고”라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동사의 적절한 활용은 기억의 원천으로서 문태준의 존재를 부상시키는 핵심 키워드가 된다.



60편 남짓한 시집 『맨발』에서 이러한 기억의 시학이 가장 풍성한 이미지로 표현된 작품이 아마도 「어두워지는 순간」과 「한 호흡」일 듯하다. 시인은 “오후 4시”(「그림자와 나무」) 또는 「저녁에 대해 여럿이 말하다」라는 사례처럼, “어두워지는 순간”에 심리적으로 깊이 경사되어 있다. 이 시의 경우 “순간”처럼 삽시간에 씌어졌다.



서정시치고는 주선율이 꽤 긴 호흡과 가락으로 짜여진 「어두워지는 순간」을 이루는 세계는 충만한 생명이 생성生成되는 기억과 상징의 공간이다. “사람과 돌과 풀과 흙덩이와 꽃을 한사발에 넣어 부드럽게 때로 억세게 버무린다는 느낌”이라는 시의 표현은 ‘생명은 평등하다’라는 생명사상을 형상화한 문학적 사례라고 볼 수 있으리라.



『맨발』에 나타난 존재미학과 생성의 시학 시인은 “어두워지는 순간”에 생성되는 평등한 생명의 질서 앞에서 문자로 기록할 수 없음을 토로한다. “그 모든 게 이력이 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라는 시인의 표현은 ‘사이[間]’의 생성에 대한 근원적 헌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위 시를 비롯한 문태준의 시적 지향점은 존재미학의 토대 위에 굳건히 서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인은 “사람만이 우월한 존재인가?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고 봅니다. 이번 시집에서는 어떤 과정에 대한 사유를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뭐랄까, 그런 과정에서 식물적 상상력이 많아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존재론적 사유에 끌리고 시작 방법론으로써 존재미학의 한 경지를 열고자 하는 문태준의 시쓰기에는 ‘상징적 죽음’이란 제의 행위를 치러야 했던 유년의 기억들이 있다. 문태준은 지금껏 유년 시절에 겪어야 했던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간직하고 있다.



사연인즉, 유년 시절에 시인이 ‘열병’을 심하게 앓았는데, 무당의 전언에 의하면 나무꾼이었던 아버지가 산신이 든 나무를 잘못 베어내서 그랬다는 것이다. 무당의 굿이 시작되고, 시인의 아버지는 무당의 명命에 따라 어린 문태준을 가마니에 둘둘 말아 마루에 내려놓고 그 위에 삽으로 흙을 퍼부었다. 아버지에 의한 상징적인 ‘자식 살해’가 진행된 셈이다. 어쨌든 그 사건 이후 문태준의 열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그 사건 탓이었을까. 두 번의 생을 사는 자는 이미 한 차례 엿본 삶의 비밀 때문에 천상 시인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시인이 펴낸 두 권의 시집에 유독 ‘소멸’에 대한 시인의 집착이 전경화된 점은 그래서 이해가 될 수 있다. 첫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에서는 일종의 ‘빈집’의 수사학이 자주 나타났다. 자신의 존재성을 상실한 시집 속 사물들의 풍경은 1930년대 백석白石과 1970년대 신경림의 농촌시와는 ‘새로운 낡음’의 경지를 펼쳐 보인다.



가령 고향 땅을 지키고 있는 호두나무를 “애기집을 들어낸 여자”(「호두나무와의 사랑」)라고 상징화한 사례는 단적인 경우가 될 것이다. 시인의 문우 박형준 시인은 “서사의 시각화가 도드라지는 것은 그가 고향에 대한 추억을 현재화해 살고 있으며, 또한 실제로 있는 고향에 자신을 투신해서 살고 싶다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 「맨발」은 <시인·평론가가 선정한 2003년 최고의 시>로 뽑힌 바 있다. 이 시는 두 겹의 이야기가 겹쳐져 있다. 개조개의 “부르튼 맨발”과 함께 자식을 위해 헌신했던 아버지의 고단했던 행적을 맨발로 표상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맨발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감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로 나섰다가 /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강조 인용자)이라는 표현처럼 문태준 시인의 시집에서 적재적소의 형용사의 사용은 시를 읽는 맛을 더해준다.



“불가에 곽시쌍부槨示雙趺란 말이 있는데, 부처가 죽었을 때 관 밖으로 내민 맨발을 보인 데서 유래합니다. 이 시는 오래 길을 걸어간 사람에 대한 시라고 볼 수 있지요. 나뭇짐을 지고 산길 30리를 걸어 김천장을 오갔던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늘 떠나지 않았어요.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라는 표현은 그래서 나온 것 같습니다.”



백석, 미당, 김종삼 등 시공부 …‘요즘의 나’에 대해 쓸 것 그는 문청 시절 고은, 신경림, 고재종 등 농촌시를 읽었다. 선배 세대와 문태준 시인의 시쓰기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인이 샤머니즘과 불교의 영성靈性을 접했다는 점일 것이다.



“요즘에는 백석, 미당, 김종삼의 시를 공부하고 있어요. 김종삼의 경우 행간의 여백에 대해서 깊이 들여다볼 측면이 있다고 봐요. 첫 시집의 세계에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기억이란 천천히 엷어지는 것이라고 봐요. 시집을 내고 나서는 ‘요즘의 나’에 대해 시를 쓰고 있습니다.” 시인은 요즘 “시가 흘러나온다”고 말한다. 올 가을에만 벌써 12편의 시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일산에 사는 시인은 서울 마포의 불교방송사에서 10년째 프로듀서로서 일하고 있다. 아침 9시 프로그램 <차 한 잔의 선율>을 맡아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시인의 「햇차를 끓이다가」라는 작품은 사물의 내력을 오랫동안 응시한 자의 어떤 깨달음이 느껴진다.


“마르고 뒤틀린 찻잎들”이 “차나무의 햇잎들”로 피어나는 순간을 포착한 이 시의 화자는 “누가 나에게 이런 간곡한 사연을 들으라는 것인가”라고 말한다. 일종의 선문답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시계 초침은 “오후 4시”를 가리킨다. “오후 4시는 그래서 나에게 아주 슬픈 시간이다”(「그림자와 나무」)라고 노래했던 시인의 시간을 앗아가서는 안 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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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7.08 02:29

    첫댓글 좋은 자료네요....좋은시를 많이 읽어야 좋은 시가 나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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