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천년 동안 어린아이의 머리를 땋아 그 끝에 고운 비단 헝겊을 달아주는 댕기머리가 전해왔다.
결혼하지 않은 남녀의 땋아 올린 전통적 머리 모양을 댕기머리라고 한다.
땋은 머리 댕기머리는 단군조선의 기록에도 나타나는 가장 오래된 한민족 미혼남녀의 전통 머리이다.
"계묘3년(서기전 2238)9월 조서를 내려 생민들로 하여금 머리카락을 땋고 머리를 덮도록 하였고 푸른 옷을 입게 하였다.
(癸卯三年九月下詔編(辮)髮蓋首服靑衣)"
단군세기(檀君世紀)에서는 당시에 댕기머리가 널리 퍼진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민족 고유의 댕기풍속은 단국왕검의 자손임을 표시하는 생생한 증표이다.

댕기는 단기(檀祈) 단계(檀戒)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이는 바로 초대 단군왕검을 추모하여 받든 조기(弔旗)인 단기가 변형된 것으로 전한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책 '풍속고'에서 댕기는 ‘단기(檀祈)’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 아이들의 머리 끝에 드리운 헝겊이나 실을 단계,단기라고 한다. 단군께서 백성에게 머리 땋은 법을 가르치시고
신령한 성품 닦리를 훈계하였으므로 백성이 선덕을 추모하여 머리를 쌓아 드리우고 단계라고 하였다.
반드시 거기에 수복강령이라고 이를 빌었다고 한다. 댕기는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여신 단군을 추앙하는데서 생긴 것이다."
댕기는 머리 끝에 헝겊이나 비단으로 장식한 것으로 옛 기록에 많이 나오고 있다.
"여자들이 땋은 머리를 비단 띠와 진주 등으로 장식"(당서 동이전 신라조)
"백제의 처녀들은 머리를 뒤로 땋아 늘여뜨렸다."(북사 열전)



조선시대에는 고려 중기부터 시작한 땋은머리가 계속해서 유행했으며 성리학의 영향으로 머리를 자를 수 없었으므로
긴 머리는 묶기보다 늘 땋아 내리는 것이 간편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도 미혼남녀가 머리를 묶었다는 기록과 왕부(王府)의 소녀는 머리를 풀어헤치지 않았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으므로
땋은 머리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후기에는 몽고식 개체변발(開剃辮髮)이라 하여 머리의 변두리를 깎고 정수리 부분의
머리만 남겨 땋아 내린 머리를 일부 지식층과 관료계급에서 하기도 하였다.이것은 공민왕 즉위 후 사라졌다.
미혼남자가 머리를 땋아 내리는 변발을 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미혼여자의 경우에는 한가닥으로 땋아 내린 채머리에 붉은 댕기를 드렸고, 미혼남자의 경우에는 검은 댕기를 드렸다.그 뒤 단발령이 공포되면서부터 점차로 남자들의 땋은머리는 사라지게 되었고, 여자들의 경우는 1970년대까지 교칙에 의하여 땋은머리 또는 단발머리를 하도록 강제되었으나, 교복자율화에 따라 머리모양도 자율화되었다.요즘에도 일부 여성들은 땋은머리를 하기도 하며, 또 소수 민족종교의 남자들이 땋은머리를 고수하여
관심거리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