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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2014년 여름호
【권두 대담】 신자유주의 시대의 시인들
일시 : 2014년 4월 8일
장소 : 푸른사상 사무실
토론자 : 송경동(시인), 심보선(시인), 맹문재(시인, 사회)
맹문재 : 그동안 18호를 낸 『시와시』를 이번 여름호부터 『푸른사상』으로 제호를 바꿔요. 좀 더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문학지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시단에서 가장 전위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두 시인을 모셨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우리의 일상생활까지 지배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시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두루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송경동 시인의 근황을 들어볼까요?
송경동 : 주변의 상황이 너무 좋지가 않아요. 요즘 기륭전자의 사무실에 나가고 있어요. 기륭전자의 노동자들이 10년을 싸워 2010년에 처음으로 정규직으로 복직 판결이 났잖아요. 그런데 2년 반이 지났는데도 복직을 안 시키고 질질 끌다가 사장이 공장도 팔아먹고 신사옥도 처분해버리고 60여명 직원도 다 해고시키고는 급기야 도망을 가버렸어요. 그것도 지난해 12월 31일 마지막 날이에요. 그래서 그 빈 사무실을 지키면서 싸우고 있어요. 내일로 딱 100일째예요. 답이 없는 상황이어서 마음이 힘들어요. 근래에는 또 유성 희망버스를 했어요. 유성기업의 두 노동자가 고공농성 중이었는데, 그중에 홍종인 지회장이 내려온다고 해서 기륭전자 동지들과 함께 갔어요. 그런데 그날이 하필 129일차였어요. 129일차는 우리 현대사에서 아픈 기억이지요. 2003년 한진중공업의 김주익 지회장이 고공농성을 하다가 129일차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잖아요. 사실 희망버스가 처음 논의되었던 게 김진숙 씨가 그 85호 크레인에 올라간 지 129일 되던 날이었지요. 그런데 그 후 3년이 지났는데 또 한 명의 노동자는 129일차에 내려오고 또 한 명은 내려오지도 못하고 있으니, 뭐라도 해야 되지 않나 해서 유성 희망버스를 다시 한 것이에요. 2차 유성 희망버스를 5월 20일로 잡고 준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며칠 전 철도노조 한 분이 자결했지요. 또 한진중공업에서 복귀 대기자 한 분이 자결했지요. 모두들 미래가 없으니 숨 쉴 공간이 없는가 봐요. 이렇게 싸워도 문제 해결이 안 되니, 무척 힘드네요.
맹문재 : 얘기를 들어보니 그지없이 안타깝네요. 이러한 상황에서 야당이 좀 더 함께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야당이 합세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해주면 좋을 텐데, 노동자들의 집회를 노동자의 문제로만 간주하니 안타깝네요.
송경동 : 한진 희망버스 때는 조금 살아났었는데요. 그때의 상황도 지금과 비슷했지요. 김진숙 씨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가 너무 절망적이어서 우리라도 희망을 얘기하면서 기운을 내야 되지 않나 해서 희망버스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어요. 좀 전에 말한 기륭전자는 물론이고 쌍용자동차, 현대자동차, 강정마을, 밀양 송전탑 등의 문제들이 고착화되고 있잖아요.
심보선 : 장기투쟁이 어느 한 군데에 집중되지 않고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 모두들 지치는 것 같아요.
맹문재 : 심 시인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이리저리 바쁠 것 같은데요.
심보선 : 송 선배는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데, 저는 직장인으로 바쁘네요. 작년에는 여기저기 끌려 다닌 것 같아요. 특히 인문학 관련 행사에 많이 다녔어요. 언제부터인가 인문학 관련 행사들이 늘어났어요. 여러 매체에서도 인문학을 굉장히 강조해 그 자체가 하나의 시장이 되어 있어요. 이것도 신자유주의의 모습이이지요. (웃음) 좋은 취지이고 해서 많이 했어요. 물론 저의 시장은 아주 작고 주변에 속하는 것이지요. 그 일로 과부하가 걸린 것 같아요. 그래서 올해는 좀 조정하려고 해요. 인문학 행사는 많은데 책을 안 읽는 게 안타까워요.
맹문재 : 그런 행사가 붐을 일으켜 인문학의 위기 상황을 극복해보려고 하는데 이벤트로 끝나는 면이 있지요. 좀 더 독자들에게 다가가려는 고민이 필요하겠지요.
심보선 : 전 대학 다닐 때 인문학이라는 소리를 못 들어봤어요. 그냥 책이고 시고 소설이었지, 그게 인문학이라는 생각은 안했지요. 책이 학창 시절의 일부였고 청춘의 일부였던 거지요. 관심 있는 책을 그냥 읽고 흡수하고 얘기하고 토론했지, 인문학이라는 용어로 모여서 세미나를 여는 경우는 없었지요.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책이 그냥 책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항상 삶하고 연결되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제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를 하는데 그곳의 엘리베이터에서 학생들이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요새 인문학 좀 읽냐?” 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요새 민음사 주로 읽어.” 하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책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인문학이나 출판사 얘기를 하는 거였어요.
맹문재 :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문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아요. 앞으로 출판사 직원들도 대량 해직 사태가 일어날 거예요.
심보선 : 출판사들이 과잉 투자를 하는 것 같아요. 지나치게 기업화되어 있어요. 공격적으로 투자하다가 안 되면 문제가 되는 기업과 같은 것이지요. 그 책임을 경영인이 지는 게 아니라 직원들한테 전가하고요.
송경동 : 출판의 구조도 신자유주의화 되어 있어요. 수많은 작가들이 하청 노동자처럼 되어 있고, 독자들도 책이라는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로만 여겨지고 있어요. 출판사의 입장에서 투자한 만큼 판매되는 책을 요구하고, 작가들은 그것을 위해 새로우면서도 보편적인 상품을 만들어야 하지요. 여기에서 보편적이라는 게 좋은 의미가 아니라 쉽게 읽힐 만한 주제와 감각적인 것들이지요. 우리나라의 출판 구조가 총체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봐요.
심보선 : 제가 참여한 <21세기 전망> 동인에서 합의한 것 중 한 가지는 좋은 시는 동인지에 싣는다는 거였어요. 동인들이 만나면 문학 얘기하고 토론하고 술 마시고 놀고, 그런 힘으로 시를 썼지요. 아무리 출판 시장이 작동해도 다른 비빌 언덕이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공동체가 없는 것 같아요. 다들 뿔뿔이 흩어져 있지요.
맹문재 : 동인 이야기가 나왔으니 송 시인도 <일과시>를 좀 소개해주시지요. 동인지가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이번 『푸른사상』 여름호에도 <분단시대> 동인들 특집을 실어요.
송경동 : <일과시>는 노동 현장에서 일하며 시를 썼던 선후배들이 모인 동인이에요. 그동안 바빠 몇 년 쉬었어요. 해산을 한다는 얘기는 한 번도 없어 20년이 다 되었네요. 그래서 20주년을 기념해서 시집을 묶기로 했지요. 김해화 김명환, 김해자, 문동만, 이한주 등등이 있어요. 저는 요 근래 가장 아름다웠던 문학인 공동체가 용산참사 현장에서 함께했던 ‘6․9작가’ 모임이라고 생각해요.
맹문재 : 그런데 왜 ‘6․9작가’ 모임이 이어지지 못하는 거지요? 이어질 만한 일이 많이 있었는데요.
송경동 : 4대강 사업에 대한 대항까지는 같이 했었지요.
심보선 : 그게 조직이 아니라 어떤 네트워크이기 때문이지요. 가장 뜨거웠던 시절에 뜨거운 사람들이 모여 행동한 거지요. 그 이전에는 저도 그런 적이 없었어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보도 자료나 선언문을 쓰는 데 밤새워 토론하고 문구 하나 단어 하나에도 같이 도모했지요.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모여 뭔가를 한다는 생각에 모두들 들끓었지요. 그랬기 때문에 그 자체의 주기는 짧을 수밖에 없었지요. 조직적으로 모인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조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컸어요. 우리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민예총도 아니고 작가회의도 아니다, 무슨 학연도 아니다, 라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그 이후 진지하게 고민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그 이후 많이 바뀌었어요. 어떤 시인이고, 어떻게 시를 쓰고 등의 차원이 아니라 다르게 살아보자, 다르게 사는 방법을 함께 모색해보자, 이런 것이지요. 그래서 저에게 미친 여러 가지 영향 중에 희망버스에 참여한 것도 있지만, 사람이 모여 즐거운 일을 도모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일 년 전부터 친구들이랑 모여 시 낭독을 해요. 홍대에 있는 클럽에서 시인들하고 그냥 해요. 친구들을 불러 한 달에 한 번 시 낭독을 하는데 방식은 그 시인한테 맡겨요. 돈도 안 받고, 홍보도 트위터로밖에 안 해요. 그래도 매번 60~70명씩 꽉 차요. 꾸준히 찾아오는 독자들이 있어요. 매번 다른 기획들로 부담 없이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어요.
맹문재 : 그런 활동이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저는 ‘6․9작가’ 모임에서 새로운 면을 느꼈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젊은 시인들이 개인주의적이고 정치의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본 것이지요.
심보선 : 의식화 교육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즐거웠던 거죠.
송경동 : 사실 젊은 문학인들이 자발적이고 수평적으로 그렇게 많이 모여 하나의 네트워크를 꾸며서 공동체의 경험을 한 것은 근 20년 사이에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진정한 문학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던 것이지요. 조금 아쉽기는 해요. 모두가 그런 마음일 텐데 개별화되고 각자의 자리에서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잖아요. 개인들이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고통을 가질 수밖에 없지요.
맹문재 : 며칠 전에 이기호가 쓴 소설작품인 「나정만 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을 학생들과 함께 읽었는데, 용산참사 얘기였어요. 지금의 대학생들이 고등학교 시절의 일이었으니 잘 모르고 있었는데, 충격을 받는 모습들이었어요. 작가가 이러한 작품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얼마 전 우연히 백기완 선생님을 만났어요. 송 시인은 지난번 비나리 공연을 함께했지요. 얘기 좀 들려줘요.
송경동 : 그랬다면서요. 그날 김정우 전 쌍용자동차 지부장을 만났대요. 그때 면회 갔다가 나오시면서 식당에 들어갔다가 만났다고 하대요. 저는 오후에 뵈었거든요. 백기완 선생님은 정치가의 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문학인이세요. 민중문화에 당신의 사상의 뿌리를 두고 계시잖아요. 그 부분에 대한 고민과 의식을 우리가 경청해볼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시인으로서의 백기완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는 게 좋겠다 싶어 지난번 비나리 공연을 한 거예요. 백 선생님은 시라는 말을 안 쓰고 비나리라고 하시잖아요. 과거에는 소수만 문자를 알았지만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시적인 마음이 있었을 것인데, 그게 그들의 비나리 양식이었다는 거지요. 하늘에 빌고 그러는 게 아니라 자신을 돋우고 주변을 을러대어 어떤 기운을 얻는 것이지요. 백 선생님께는 그러한 민중적 문화 자산이 많이 있으니 말씀을 듣고자 한 것이지요. 거기에 맞춰 신자유주의 시대가 너무나 냉혹하고 야만적이어서 후배 시인들의 목소리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긴급하게 저항 시집으로 『우리 시대의 민중 비나리』를 만들었어요. 팔십여 분의 시인들이 함께 해주셨는데 만든 취지대로 잘 쓰였어요. 민주노총에서도 노동자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해서 500여권을 가져갔는데, 민주노총 본부 침탈이 14년 만에 있었잖아요. 그날 경찰이 계단으로 몰려오는데 던질 게 없었대요. 그래서 저항 시집이 취지에 맞게 잘 쓰였대요. (모두 웃음)
맹문재 : 그렇군요. 지난해에 돌아가신 이기형 선생님에 대한 얘기도 좀 들을까요. 통일을 지향하는 삶과 문학이 일치하는 분이었지요. 후학들이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곧 이기형 선생님의 1주기를 기념해서 『이기형 대표시 선집』이 간행될 예정이에요. 이번에 10권의 시집을 다 읽어보니 고생도 많이 하셨더군요.
송경동 : 이기형 선생님의 시집 산하단심을 제가 내었어요. 『봄은 왜 오지 않는가』도 그랬고요. 산하단심은 역사로 남을 시집이라고 생각해요. 비전향 장기수들을 취재해서 시작품으로 쓴 것인데, 귀한 분들이라 분단 구조가 해소되면 그들의 삶이 재조명될 것이에요.
맹문재 : 저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어야 하구요. 이왕에 선생님들의 얘기를 했으니 올해 타계 20주기를 맞는 김남주 선생님의 얘기도 해보지요. 김남주 선생님께서 저에게 전태일문학상을 주시어 인연이 되었지요. 병원에 계실 때 박윤규 선배하고 교대로 돌봐드리기로 했는데, 저는 사는 일이 바빠 지키지 못했어요. 박윤규 선배가 끝까지 모셨지요. 저는 그 일을 늘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번 ‘창비’에서 『김남주 시전집』을 간행하고 의미 있는 행사를 가졌지요. 제가 『김남주 산문전집』을 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실천문학』 봄호를 보니 송 시인이 김남주 선생님에 대해 썼더군요.
송경동 : 2년여 선생님께 시를 배웠지요. 그런데 시 쓰기를 배웠다기보다는 술과 노래를 배웠어요. 제가 술 마시면서 부르는 십팔번곡이 「해운대 엘레지」인데 선생님께 부르시는 것을 따라 배운 것이지요. 워낙 말씀이 없으셨어요. 늘 웃기만 하셨지요. 김남주 선생님의 시를 보고 보수주의자들은 그게 삐라지 무슨 시냐고 그러는데, 0.7평의 독방 감옥에서 남몰래 시를 써야 했던 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지요. 김남주 선생님의 장례를 치를 때 영정 만드는 일을 했어요. 제가 목수 일을 해본 걸 알고 작가회의에서 활동하던 김남일 선배가 부탁을 했지요. 그래서 최병수 화가와 함께 밤새워 만들었어요. 큰 영정을 차에 실어 접혔다 폈다 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어쩌다 보니 제가 맨 앞 차를 타고 광주를 내려간 거예요. 그런데 광주에 가면 민족 시인, 민중 시인이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백골단만 쭉 막고 서 있는 거예요. 선생님이 가시는 길까지 그렇게 하다니, 참 씁쓸했어요.
맹문재 : 김남주 선생님께서 출옥 후 쓴 시들을 보면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인해 전망이 보이지 않고, 복잡하고 다양한 자본주의의 상황이어서 아파하고 있지요. 지금 우리의 심정도 그런 것 같아요.
송경동 : 그 당황스런 상황을 우리는 몇 십 년째 살고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시인들이 사회운동에 긴밀하게 결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김남주 선생님 본인만이 특출해서 나온 게 아니잖아요. 김남주 선생님 경우만 해도 ‘난민전’이라는 조직 운동과 함께 태어난 거잖아요. 이런 점에서 요 근래에 저를 되돌아보게 했던 건 국내에서의 장기 투쟁도 있지만 해외에 있는 한국계 기업들의 문제예요. 캄보디아에 있는 ‘약진통상’이라는 한국계 기업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춤추고 노는 파업을 했는데, 군대를 투입해 노동자를 죽인 일이 벌어졌어요. 방글라데시에 있는 ‘영원무역’이라는 한국계 기업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어찌 보면 우리가 5ㆍ18에 분노했던 것보다 더 크게 분노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기업이 해외에서 공권력 투입을 요청해 사람들을 죽였다는 사실이 충격이에요. 우리가 용산참사에 그렇게 분노하고 연대했듯이 해외에 있는 한국계 기업들의 그와 같은 행동에 분노하고 연대 투쟁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맹문재 : 이왕에 노동의 문제가 나왔으니 노동시의 개념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네요. 1980년대 박노해의 등장에서부터 나온 개념이므로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심보선 : 노동시의 시야를 좀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다른 나라에도 노동시가 있나요. 제가 얼마 전에 『녹색평론』(1․2월호)에 실린 미국의 작가 겸 언론인 안드레 블첵이 쓴 「시와 라틴아메리카 혁명」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곳의 저항운동, 혁명운동에는 시의 역할이 매우 컸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혁명시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가장 로맨틱한 시가 가장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거예요. 정치적이고 혁명적인 내용의 시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읽고 노래하는 사랑시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시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실 박노해 시인의 시를 읽을 때 그것이 던져주는 메시지보다 시어들이 저한테 꿈틀꿈틀하게 다가왔어요. 노동자들의 삶의 현장을 언어가 던져주는 정서로 느낀 것이지요. 따라서 노동시라는 개념이 평론가들에게는 어떤 사조나 범주나 내용이나 형식을 구분하는 데는 필요할 수 있겠으나, 시를 읽고 쓰는 사람들한테는 필요할까 싶네요. 시는 개념이 아니잖아요. 물론 평론가들이 노동시의 개념을 확장해서 시대에 맞게 재구성하는 데는 필요할지 모르지요. 제가 박노해 시를 읽을 때 노동시라는 개념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우리에게 노동시가 기여했던 바는 시를 쓰는 사람들을 노동자로 보여준 거잖아요. 따라서 지금의 노동시는 그동안 무시했던 주체들을 보여주어야겠지요. 지금도 여전히 말 못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있지요. 어떻게 그걸 나타낼 것이냐가 중요하겠지요. 노동시는 평론가들의 개념이 아니라 세계를 열어젖히는 중요한 채널이라고 생각해요.
송경동 : 맞는 것 같아요. 과거의 노동시는 하나의 장르라거나 특정한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고 새로운 인간상의 출현 같은 거였지요. 워낙 반공주의 사회라서 자유롭지 않았는데 노동자의 계급의 발견이라고 할까요, 아래로부터의 사회적 상상력들이 한국 사회에서 열리면서 좀 다른 것이었지요. 지금은 그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될 것 같아요. 저한테는 노동의 문제는 아직도 굉장히 중요한 것이에요. 이 신자유주의 사회의 지배계급이 모순적인 결과물들을 독점하고 있잖아요. 이러한 잘못된 구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우민화가 필요한 것이고요. 따라서 신자유주의 사회에 억압되고 착취되고 있는 노동의 문제는 중요한 것이지요. 신자유주의 사회의 독점적 구조에 맞서는 저항으로서의 노동 문제 역시 그렇고요. 저는 모든 시는 노동시라고까지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억압받는 상황을 외면하거나 도피하는 시들도 노동의 문제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점에서 네루다의 경우를 얘기하고 싶네요. 네루다가 민중들을 위한 전선시도 많이 썼지만 일상을 통해 보는 작은 사물들에 관한 시들도 많이 썼지요. 양파, 감자, 장화 등을 통해서 인간의 삶을 담은 시들을 쓴 것이에요. 저는 그와 같은 시들을 좋아해요. 노동시에서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나 당파성은 아주 일부인 것이지요. 지난 시대에는 필요에 의해서 투쟁하는 노동자상, 핍박받는 민중상을 주로 그려왔는데, 이제는 더 넓어져야겠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가 쓴 노동시에는 사랑시 한 편이 없어요.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사랑이란 인간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소중한 마음이잖아요.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 검열을 해서 투쟁하는 노동자가 아니면 뭔가 빠진 것처럼 생각했지요. 8시간의 노동 시간만이 아니라 수많은 삶의 관계가 노동시의 전선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맹문재 : 되돌아보면 반성이 되는 거지요. 그렇지만 그와 같은 것이 시대의 임무를 다하려고 했던 모습으로 볼 수도 있지요. 따라서 자학할 것은 아니고 앞으로의 추구에 디딤돌로 삼으면 되겠지요. 어려운 문제이기는 한데, 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시인들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까요?
심보선 : 시인의 역할을 일에서 놀이로 바꾸는 것이지요. 시 자체가 억압된 노동에 대한 저항이지요. 그리고 시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우리가 한때 황금기를 가졌던 것에 대한 기준이겠지요. 시가 시대에 영향력을 미치는 시대가 다시 올지는 모르겠어요. 시인의 역할은 생태계 차원에서 얘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생태계에서 어떤 종(種)은 그렇게 생겼기 때문에 자라고 다른 종에 영향을 미치잖아요. 그런데 그런 상태를 바꾸려고 하는 게 생태계를 파괴시키는 일이지요. 가령 4대강 사업이나 자연 개발은 결국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오잖아요. 따라서 시인들이 원래 생겨먹은 대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을 놀이로 바꾸는 것이 생태계를 유지하는 길이지요. 지금 신자유주의 체제는 시인들한테 끊임없이 일을 시켜요. 학위를 받게 하고 논문을 쓰게 하잖아요. 생긴 대로 못 살게 하니 문제인 것 같아요.
맹문재 : 미국에서 공부하셨으니 그곳 시인들에 대한 얘기를 좀 듣고 싶네요.
심보선 : 미국에서도 시를 안 읽어요. 그런데 미국의 시인들에게는 다른 시장이 있더라고요. 즉 낭독시장이 있어요. 미국에서는 학교 같은 데서 낭독회의 개최를 많이 해요. 물론 유료이지요. 그래서 유명한 시인들은 에이전시가 있어요. 책 출간과 관련된 에이전시가 아니라 낭독회와 관련된 에이전시이지요. 그렇지 않은 시인들은 그냥 자기들끼리 하는 커뮤니티가 있어요. 생태계로 보면 희귀종이지요. 그래서 시인은 적은데 시를 쓰는 사람이 많은 거예요. 시적인 것이 참으로 많아요. 가령 아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의 피켓에 적은 게 다 시예요. 우리나라는 시인은 많은데 시를 쓰는 사람은 적은 것과 비교되지요. 다시 말해 시를 전문적으로 쓰는 시인은 많은데 일상생활에서 시를 쓰는 사람은 적잖아요.
송경동 : 잠수함의 토끼 같은 역할이 시인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숨 못 쉬는 상황을 감지하고 그런 것들을 얘기하고, 사회의 모순이나 억압이나 폭력에 대해 고발하는 것이 인간 사회라는 생태계에서 시인이 할 의무라고 생각해요. 눈치를 보지 않고 솔직하게 반응하는 것이 필요해요. 사실 시인들이 지금 억눌려 있잖아요. 중견 시인이라도 실제의 생활은 비정규직 노동자 못지않게 어려워요. 또한 신자유주의 세계관이 일상화되어 사람들 간에 유대관계가 없어요. 상품시장에서 잠깐만 비껴나도 생활 자체가 전쟁이 되는 상황이에요. 따라서 시인들의 생존 자체가 쉽지 않아요. 이와 같은 상황에 비굴하지 않게 반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맹문재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좀 들려주시지요.
송경동 : 저는 2차 유성 희망버스 일을 되든 안 되든 열심히 해보려고 해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한테 기운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기륭전자 친구들한테도 힘이 될 만한 일을 해야겠어요.
심보선 : 저능 아까 말씀드린 대로 작은 모임들을 계속할 생각이에요. 시 낭독회 활동이 그런 것이지요. 좀 더 생산하는 모임을 공유하고 싶어요. 개별화되고 고립화되는 제 자신을 움직여야겠지요.
맹문재 :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 짓지요. 긴 시간 동안 수고했어요. 신자유주의 시대의 시인들 역할에 대해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만만하지 않네요. 다음에 또 만나서 얘기를 나누도록 해요. 힘든 시대이니만큼 몸조심하세요.
■ 송경동
1967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나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실천문학』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꿀잠』『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산문집으로 『꿈꾸는 자 잡혀간다』가 있다.
■ 심보선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눈앞에 없는 사람』『슬픔이 없는 십오 초』, 산문집으로 『그을린 예술』이 있다.
■ 맹문재
1963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물고기에게 배우다』『책이 무거운 이유』『사과를 내밀다』『기룬 어린 양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