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에 마음이 없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시인의 마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배추를 직접 길러본 사람은 그런 글을 쓰지 않습니다.
그것을 시라고 갈겨놓은 것을 두고
15살 어린 학생들에게 감정이입을 유발시키고 숙제를 내는 어리석음은
그들에게 배추를 직접 길러 보게 하고
직접 체험을 통한 시적 심상에 접근시키는 것보다 아주 질이 낮은 교육입니다.
설사 시를 통하여 간접 경험을 하게 하고 국어적인 분석을
문제로 내어 맞추고 감상케 한다고 해도
그 배추의 마음을 생명을 소중히 다루어야 하는
인간의 마음을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배추를 키우면서
비료를 안 주었다는 것은
바로 학대입니다.
만약 배추의 씨가 밭에 날아와 우연히 자란 것이 아니라면
목적성이 분명하면서 의도적으로 자연친화적인 재배라고 항변하는 것은 아주 모순이지요.
배추에 배추벌레가 쓿어 배춧잎을 갈아먹어
농약을 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배추는 꽃을 피울 만큼의 잎만 남기고 반 이상의 잎은 벌레에게 나누어 준다는 의식이지만
실제 글을 쓴 사람은 배추에서 쫑이 올라와서 꽃이 피기 전에 수확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실제와 모순된 그 글은 시어로 품격이 워낙 떨어집니다.
배추벌레를 위하여 배추를 반이나 뜯기는 것과
그 배추벌레가 나중에라도 배추나비가 되어서 날아가게
배춧단을 꽉 묶을 수 없다는 생각은 비열함의 극치입니다.
과연 그 때까지
배추애벌레가 성체가 되지못하고
그 배추에 남아 있을까요?
배추의 속에서 노란 고갱이가 더 자라도록 배춧단을 묶으면
배추의 겉은 벌레에게 뜯어 먹혀도 속은 알차게 맺어진다는 발상은
배추를 수확하려는 행위를 하면서도
배추벌레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 같은 심적 태도를 보이는 점은
독자를 심하게 불쾌하게 하고 우롱하는 것입니다.
감나무의 감을 수확하면서 사과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하면서
감을 사과를 따면서 몇 개를 가지에 남겨두어 다른 생명들과 나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생각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글은 차라리 수필로 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시의 글감으로는 마땅치 않으며 심적 카타르시스를 유발시키지도 않습니다.
이 시는 사물의 묘사에도 실패하였으며
단지 배추를 재배하는 농부의 행위를 다만 좋은 상품으로만 키운다고 의식하며
비난하고 있을 뿐입니다.
농부만큼 땅을 알고 배추를 알고 그들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농부들은 씨를 뿌리고 그냥 팽개치지 않습니다.
그 땅에 거름을 주고
김을 매어주면서
우박이 맞을까 밤새워 걱정을 하며
배추벌레가 눈에 띠면 간간이 잡아 줍니다.
농부들은
배추를 키워 저 입맛이나 제 생각 따위를 앞세워서 키우지 않습니다.
각종 정보와 재배 기술을 총 동원하여
질좋은 상품을 만들어내는 기술자의 행위를 합니다.
씨만 뿌리고 말 거라면
그 다음은 제가 알아서 자라든지 말든지 무관심하다가
수확할 때쯤에 나타나서 마치 가장 신성한 자연주의자인 것처럼
행세하는 꼴사나운 사람이 더럽게 자연을 색칠하는 글을 읽으며
그래서 그 배추가 더 자연적이고
그 배추를 기르는 심성이야말로 자연친화적 삶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를 앞서가는 모습이므로 닮아야 한다고 말하는 꼴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인간부류일 뿐입니다.
학생들이여, 그 글이 교과서에 나와 있다고 해서
다 훌륭한 글이 아님은 다 알고 계시겠지요.
그런 글을 시라고 우기는 선생님도 숙제를 해야만 하는 학생들도
다 진짜 배추의 마음은 알지 못합니다.
진짜 배추와 대화하려면
집에서 강아지를 10년 이상 키워서 함께 생활하며
아플 때 같이 아파하고
밤중에도 수의과에 데려가듯이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가물면 가문 대로 우박이나 기온이 급강하하면
짚이라도 들고 달려가 덮어주는 농부의 마음이 아니고서야 어찌
배추의 마음을 알고 대화를 하겠습니까?
책상 맡에서
그때마다 밭으로 달려 가보지 않은 사람이 피상적인 생각으로
언어유희를 하는 것에 불과한 글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도 우리 시대에 저러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몹시 씁쓸하고
못내 서글퍼집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거기에 반응할 필요가 없는 글입니다.
시는 시험을 쳐서 강요하는 글이 아닙니다.
시는 분석을 요구하는 글이 아닙니다.
시험 걱정에 앞서 시를 알려고 하지 마시고
물상에 투영되어 있는 심상의 진실성에 눈을 뜨면 그만입니다.
감상은 강요할 성질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글은 시라고 분류할 수도 없거니와
진실성이 퇴색된 글이므로 별로 보고 배울 점이 드러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