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운동 사상의 가치-
신흥개발국가, 공산권국가들의 근대화의 롤모델
"박정희 대통령은 나의 롤모델"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의 목표는 자립경제력을 갖춘 현대국가의 건설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 맨스로프 (러시아 안보연구소 교수)
"중국의 덩 샤오핑은 세계 유례없는 한국의 연 10% 급성장과 경제부상에 놀라며 박정희식 경제개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 마홍 (중화인민공화국정책과학연구회장)
"중국의 덩 샤오핑의 개혁은 박정희 모델 모방" - 美, RAND 연구소
서울에 가면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도 참배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많은 몽골인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개발모델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그렇다. 한국은 박 전 대통령의 지도 아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개발의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 잔라빈 차츠랄트 (前 몽골 총리)
"박정희는 조국근대화에 확고한 철학과 원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시의적절한 제도적 개혁을 단행했다. 매우 창의적이며 능률적이었다." -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학 교수)
"박정희는 비록 민주화운동을 억압하였으나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중산층을 대폭 창출시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 1991.4.2 김상기 (충남대학 교수)
"아시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세 지도자로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와 중국의 덩 샤오핑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를 꼽고 싶다" "오직 일에만 집중하고 평가는 훗날의 역사에 맡겼던 지도자"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현 싱가포르 고문장관)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한국이 박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을 시작으로 불과 20년 만에 세계적인 무역국가가 되었음을 경이롭게 본다." - 폴 케네디 (예일대학 교수)
"나는 유엔 일부 직원들에게 아프리카 국가들이 한국의 성공사례를 배울 것이 없는지에 관해 얘기해왔다. 빈곤 퇴치를 위해 아프리카에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박정희는 한국경제 발전의 유공자"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박대통령의 역사적 큰 공헌은 그의 뛰어난 지도력 하에 한국을 저개발의 농업국가에서 고도로 성장한 공업국가로 변모시킨 것이다." - 앰스덴 (MIT 정치경제학 교수)
"요즘은 박정희 대통령이 좋게 인식되는 것 같은데 옛날에는 유신이니 해서 비판이 많았지만 초기 새마을 운동을 한 덕택에 경제 발전의 기초가 되었던 점은 훌륭한 점입니다. 나도 영화를 통해 서울을 보았는데 서울은 일본의 도쿄보다 훌륭한 도시로 조선이 자랑할 만한 세계의 도시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매우 강한 지도자였으며 대기업을 일으켜 국부(國部)를 증진시킨 훌륭한 지도자이다"
-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전 총리)
"박정희 근대화 성공으로 중산층 창출이 되고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 토대가 되었다. 박정희야 말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 오버홀트 (美 카터 전 대통령 수석비서관)
"20세기의 위대한 아시아 지도자들 중 20명중에 한명" - 뉴욕타임스
"1965년 필리핀의 1인당GNP가 270달러였을 때 한국의 1인당GNP는 102달러 였지만 2005년 필리핀의 1인당 GNP가 1030달러였을 때 한국의 1인당GNP 16500 달러로 변하였다"
"가난한 절대빈곤의 후진국에서 조국보다 잘살던 동남아 나라들을 따돌리고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이 존경스럽다" -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어렵던 시절, 한국을 이끌어 고도로 공업화된 민주국가로 변화시킨 역사적 역할을 담당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후임 대통령들이 본보기로 삼을 만한 유산을 남긴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지도자들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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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적
물론 그 분이 혼자 하신 것은 절대로 아니겠죠...
보이지 않는 침묵의 다수가 피와 땀을 흘린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압니다.
영국이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꾸는데 거의 300년이 걸렸고
일본도 농업 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꾸는데 100년이 걸렸습니다만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버지 어머니 누나 형들은 그 어려운 일을
단 한세대 30년 만에 이룩하셨습니다.
전 세계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감탄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우리나라는 이렇게 만들어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박정희대통령의 공적
한국전력 발족(1961. 7. 1, 1982. 1. 1 한국전력공사로 개칭)
섬진강 수력발전소 재 기공(1961. 8. 19, 준공 : 1965. 12. 20)
수출조합법 공포(1961. 9. 9)
춘천 수력발전소 기공(1961. 9. 21, 준공 : 1965. 2. 10)
공업표준화법 제정(1961. 9. 30)
전원개발 5개년 계획 발표(1961. 11. 24)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 발표(1962. 1. 13)
울산을 중화학공업 우수 자연적 입지조건으로 결정 공포(1962. 1. 27)
기술진흥 5개년 계획 발표(1962. 2. 2)
울산공업지구 설정 및 기공식(1962. 2. 3)
의암댐 착공(1962. 3. 1, 준공 : 1967. 8. 1)
수출진흥법 등 16개 법령 공포(1962. 3. 17)
남강 다목적댐 착공(1962.4, 준공 : 1970. 7)
대한무역진흥공사 발족(1962. 6)
남양송신소 준공(1962. 9. 10, 기공 : 1960. 12. 31)
선암댐 착공(1962. 9, 준공 : 1964. 12)
사연댐 착공(1962. 9, 준공 : 1965. 12)
해운센터 착공(1962. 10. 10)
새나라자동차 생산개시(1962. 11, 1963. 5월까지 조립 생산함)
광주 내연 준공(1962. 11. 15)
금성사 라디오 첫 수출(1962. 11. 28, 62대/$594)
제2비료(호남비료) 나주공장 준공(1962. 12. 28, 현 L/G화학 나주공장)
희야댐 착공(1962년, 준공 : 1964년)
보리와 밀 품종개발에 성공(1963. 1. 25)
울산정유공장 착공(1963. 3. 12, 준공 : 1964. 5. 7)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공포(1963. 4. 17)
직업재활원 개원(1963. 9. 25)
서독 광부 1진 123명 취업(1963. 12. 21)
쌍용시멘트 영월공장 준공(1964. 4, 기공 : 1962. 9. 7)
한일시멘트 단양공장 준공(1964. 6. 20, 기공 : 62. 11. 20)
현대시멘트 단양공장 준공(1964. 7)
부산 감천 화력발전소 준공(1964. 8. 20, 기공 : 1961. 2, 132천㎾)
식량증산 7개년(1965~71) 계획 발표(1964. 8)
한국수출산업공단 설립(1964. 8, 서울디지털, 부평, 주안, 남동, 북평국가산업단지 관리)
공업품 표준 규격 제정과 KS 표시 허가제 실시(1964. 8)
제3비료(영남화학) 울산공장 기공(1964. 11. 29, 준공 : 1967. 3. 14, 현, 동부한농화학)
1억불 달성 제1회 수출의 날 제정(1964. 11. 30, 기념식 : 1964. 12. 5)
서울 구로지역 수출산업공업단지(1~6공단) 착공(1965. 3. 12, 준공 : 1974. 11. 5)
경제 각의, 잠업증산 5개년 계획 의결(1965. 3. 18)
제4비료(진해화학)공장 기공(1965. 5. 2, 준공 : 1967. 1. 7)
영월 화력발전소 1,2호기 준공(1965. 9. 1, 기공 : 1962. 5)
한국해외개발공사 발족(1965. 11. 3)
군산화력발전소 기공(1965. 12. 1, 준공 : 1968. 10. 31)
국내 텔렉스 400회선 개통(1965. 12. 16)
비인공업단지 조성(1966. 4. 29)
팔당댐 기공(1966. 6. 8, 준공 : 1973. 12. 31)
제2차 경제개발 5개년(1967~1971) 계획 발표(1966. 7. 29)
울릉도 추산수력발전소 준공(1966. 8. 1, 착공 : 1964. 4. 4)
아세아시멘트 제천공장 준공(1966. 12. 13)
광주공업단지 착공(1966. 12. 16)
아시아개발은행 가입(1966. 12. 17)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
여수 제2정유공장 기공(1967. 2. 20, 준공 : 1969. 6. 3)
전주 제1공업단지 기공(1967. 3. 22)
대구 3공업단지 기공(1967. 3. 31)
속초 수산센터 준공(1967. 4. 14)
소양강 다목적댐 기공(1967. 4. 15, 담수 : 1972. 11. 25, 준공 : 1973. 10. 15)
제5비료(한국비료) 울산공장 준공(1967. 4. 20, 현 삼성정밀화학)
동양시멘트 삼척공장 준공(1967. 4. 24)
영남화력발전소 제2호기 기공(1967. 4, 준공 : 1970. 12. 28)
GATT 가입(1967. 4. 15)
부산 연합철강 준공(1967. 9. 29)
의암수력발전소 1,2호기 준공(1967. 11)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획 발표(1968. 1. 5)
울산 석유화학공업단지 기공식(1968. 3. 22, 준공 : 1972. 10. 31)
대암댐 기공(1968. 6, 준공 : 1969. 12)
화천수력발전소 4호기 준공(1968. 6)
축산개발 4개년 계획 확정(1968. 7. 26)
안계댐 기공(1968. 8, 준공 : 1971. 12)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1968. 9. 9~10. 20)
청평수력발전소 4호기 준공(1968. 9, 기공 : 1966. 9)
쌍용시멘트 동해공장 준공(1968. 10. 31)
한국투자개발공사 발족(1968. 12. 16)
한국수출품포장센터 발족(1969. 2. 8)
자동차공업육성 기본계획 발표(1969. 2)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안 발표(1969. 4. 2)
금산 위성통신지구국 기공(1969. 5. 15, 준공 : 1970. 6. 22, 제2위성통신지구국 준공 : 1977. 8. 25)
부산화력발전소 3,4호기 준공(1969. 6. 4, 기공 : 1967. 7)
알루미늄제련공장 울산공업단지에 준공(1969. 7. 3)
마산수출자유지역 설치 결정(1969. 9. 3, 착공 : 1970. 5, 준공 : 1973년 초)
경기도 안성군 한독낙농목장 준공(1969. 10. 11)
부평단지 준공(1969. 10. 31)
관악산 기상레이더 설치(1969. 11. 29)
철강공업육성법 공포(1970. 1. 1)
수출정보센터 개관(1970. 2. 7)
포항종합제철공업 단지 기공식(1970. 4. 1, 제1기 설비종합 준공 : 1973. 7. 3)
마산 수출자유지역 관리청 개청(1970. 4. 3)
인천화력발전소 제1호기 준공(1970. 5. 29)
관세청 개청(1970. 8. 21)
수출 10억달러 달성(1970년)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확정 발표(1971. 2. 9)
당인리 화력발전소 준공(1971. 4. 10, 착공 : 1966. 8. 3, 현 서울화력발전소)
안동다목적댐 기공(1971. 4, 준공 : 1976. 10)
중부산업단지관리공단 설립(1971. 5, 구미국가산업단지 관리)
내수용 생산업체에서도 수출을 의무화할 것을 지시(1971. 10. 25)
서울-부산간 장거리 자동 전화 개통(1971. 3. 31)
제3차 인력개발 5개년 계획 확정(1972. 1. 27)
녹색혁명추진(1972. 2. 9, 통일벼 개발)
기업사채 동결 등 긴급 명령 발표(1972. 8. 3)
중화학공업정책 육성 선언(1973. 1. 12)
공업진흥청 신설(1973. 1. 12)
현대울산조선소 기공(1973. 3. 25, 제1호선 진수 : 1974. 2. 15)
중화학공업의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온산, 창원, 여수~광양, 군산~비인, 구미 등 5개 대단위공업단지 조성 계획(1973. 3. 26)
춘천, 대전, 원주, 청주, 전주, 이리, 광주, 목포 등을 지방공업개발 장려 지구로 지정(1973. 5. 4)
중화학공업(철강, 석유화학, 비철금속, 기계, 조선, 전자)건설계획 확정(1973. 5. 24)
서울 부산에서 처음으로 가격표시제 실시(1973. 6. 1)
기능공 양성정책 수립(1973. 7. 10)
주안단지(5공업단지) 준공(1973. 7. 15)
정수직업훈련원 개원(1973. 7. 18, 현 서울정수기능대학)
호남종합화학기지 내 에틸렌계열공장 4개, 프로필렌계열 2개, 기타 7개 총 13개 공장건설계획 확정(1973. 8. 2)
구미전자공업 1단지 조성 완료(1973. 10. 5)
옥포조선소 기공(1973. 10. 1, 준공 : 1981. 10. 17)
이리 수출자유지역 착공(1973. 10. 17, 준공 : 1974. 12)
충주 제6비료공장 준공(1973. 10. 26)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창원, 온산, 옥포, 죽도, 안정, 여천 지정 (1974. 3. 27, 창원 : 종합기계공업기지, 온산 : 석유정제?비철금속 공업기지, 옥포?죽도?안정 : 조선공업기지, 여천 : 종합화학공업기지)
동남산업단지관리공단 설립(1974. 4, 창원, 울산, 온산, 안정국가 산업단지 관리)
창원기계공업단지 조성(1974. 4)
죽도조선소 기공(1974. 4, 준공 : 1980. 12. 5)
기업공개와 건전한 기업풍토 조성을 위한 박 대통령 특별지시 발표(1974. 5. 29)
주안단지(6공업단지) 준공(1974. 11. 5)
쌀의 완전 자급자족 달성(1976년)
대청다목적댐 기공(1975. 3. 27, 준공 : 1981. 6. 30)
여천석유화학단지 합동 기공(1975. 11. 10, 준공 : 1980. 1. 29)
통일벼보다 질이 좋고 다수확품종인 밀양21호와 23호를 개발하여 77년부터 통일벼를 없애고 신품종으로 대체할 방침을 수립(1975. 11. 20)
청평 양수댐 기공(1975년, 준공 : 1980. 12. 18)
근로자 재산 형성 저축제 실시(1976. 1. 19)
한국기술검정공단법안 마련(1976. 5. 18, 기술인력관리, 자격, 검정의 일원화)
포항제철 제2기 확장공사 준공(1976. 5. 31)
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확정 발표(1976. 6. 18)
국산자동차 포니 첫 수출(1976. 6)
반월 신도시 건설 발표(1976. 10. 2, 기공 : 1977. 3. 30)
특별소비세법 제정(1976. 12. 22)
초고압송변전시설 준공(1977. 4. 30)
월성 원자력 1호기 기공(1977. 5. 15, 준공 : 1982. 3. 10)
여수화력 2호기 준공(1977. 6. 30)
부가가치세 시행(1977. 7. 1)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우승(1977. 7. 10)
여수 제7비료공장(남해화학) 준공(1977. 8. 4, 기공 : 1973. 10)
서부산업단지관리공단 설립(1977. 11, 반월, 시화, 아산, 석문국가 산업단지 및 천안 외국인전용단지 관리)
연초댐 기공(1977. 11, 준공 : 1979. 12)
수출 100억 달러 기념식(1977. 12. 22)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돌파(1977년)
종합행정정보망 구성키 위해 행정전산화 10개년 계획 마련(1978. 2. 20)
전 국토의 토양정밀조사 완료(1978. 2. 23)
고리 원자력발전소 준공(1978. 4, 기공 : 1971년)
충주 다목적댐 기공(1978. 6. 3, 준공 : 1986. 10)
제24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개막(1978. 8. 30, 부산)
주요 도시간 장거리 자동공중전화 개통(1978. 12. 31)
쌀 4천만 섬 수확(1977년)
인천화력발전소 3, 4호기 준공(1979. 4, 착공 : 75. 5)
고리원자력 3, 4호기 기공(1979. 4. 9)
원자력발전소 9, 10호기 울진에 건설키로 확정(1979. 6. 12)
온산 동제련소 준공(1979. 12. 11)
공산댐 기공(1979년, 준공 : 1981년)
삼량진 양수댐 기공(1979년, 준공 : 1985년)
수출국 1961년 25개국에서 163개국으로 확대(1979년)
일부 / 이하생략...
[파워 인터뷰] 보수·진보 넘나드는 경제학자 장하준
[중앙일보] “잭 웰치, 정주영 리더십은 인정하면서 박정희에겐 왜 질색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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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46) 교수는 무척이나 바쁜 경제학자 중 하나다. 지금까지 10권이 넘는 저서를 냈고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경제 분야 학술상을 두 개나 받았다.
유엔·미국·남미 등 전 세계 학자·관료·기업가들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는다. 한국의 협소한 이념 지형 속에서 좌우를 거침 없이 오가는 그의 경제성장론은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부터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다. 장 교수를 30일 오후 두 시간 동안 본사 편집국에서 만났다.
애국심으로 다 해결할 수 없지만 나라 생각하는 엘리트들 있어야죠
정치가 진짜 중요하다고 봅니다
시장의 잘못을 고치는 역할이니까요
후진국들이 못 올라오게 하려 선진국들이 사다리 걷어차는 거죠
외환위기 땐 기업 망하게 두라더니 그 나라들은 공적자금 쏟아붓잖아요
-20대에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됐고 2003년 뮈르달 상, 2005년 레온티예프 상을 최연소 수상했는데 원래 수재였습니까, 특별한 공부 비법이라도 있습니까.
“수재가 아니라 사실 저는 노력파거든요. 공부하는 게 좋아서, 계속 앉아서 공부하니까, 남보다 더 많이 해서 그런 거겠죠.”
-한국에서 대학을 나왔는데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강의하는 게 어떻습니까.
“영국에서 23년 살았는데도 저는 한국 악센트예요. 또 정관사 ‘the’를 언제 써야 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글을 쓰고 영국 친구들에게 고쳐 달라고 하면 나보고 ‘the’를 문장 속에 대충 뿌려 놨다고 놀려요.”
-신자유주의가 봉변을 당하고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다고 봅니까.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론 시장의 자기 조정 능력을 믿어요. 전제는 인간이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거죠.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지낸 그린스펀조차 청문회에서 자기가 믿었던 자유시장 모델에 회의를 느낀다고 말하더군요.”
-신자유주의가 이번 사태로 끝났다고 봅니까,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생존할까요.
“몇 십 년 운영해 왔는데 하루 아침에 버리기 어려울 겁니다. 계속 진통을 겪으면서 도전받겠죠. 변화는 불가피합니다. 장기 불황이 깊어지면 신자유주의가 주변부 이데올로기로 전락할 수도 있고, 어느 정도 회복하면 앞으로 상당한 생존력을 갖겠죠. 그래도 1980~90년대식의 시장주의는 끝났다고 봐야겠죠. ‘주주(株主)자본주의’의 전도사였던 잭 웰치도 주주 가치 극대화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생각이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2일 런던에서 열리는 G20회의에서 2010년 말까지 세계 경제가 성장세로 돌아선다는 보고서를 냈다는데.
“파생상품을 세계 각국에 뿌려 놓아서 어디까지가 문제인지 알기 어려워요. 서브 프라임 문제가 불거졌을 때 미국 정부는 부실 규모를 500억~1000억 달러 정도로 예측했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 거의 1조 달러 됩니다. 완전 고무줄이죠. 예측하는 사람들이 바보라서가 아니라 파생상품이 하도 복잡해서 그래요. 게다가 신용카드 문제는 시작도 안 했습니다. 미국·영국 두 나라 가계 부채 비율이 GDP(국내총생산)의 100%를 넘는데 실업자들이 카드 빚을 못 갚으면 신용카드사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거죠.”
- IMF(국제통화기금)는 1997년 한국 정부에 망할 기업은 망하게 해서 경쟁력을 키우라고 했는데 지금 미국은 구제금융으로 기업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중 잣대’죠. 97년 외환위기 때 IMF가 한국 정부에 GDP의 1%에 해당하는 재정 흑자를 내라고 했지요. 당시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GDP 대비 국채 비율이 두 번째로 낮았는데 IMF 요구대로 긴축하니까 하루에 기업 100개가 부도날 정도였어요. 그러던 선진국들이 자기네가 불리해지니까 GDP 대비 재정 적자 규모를 미국은 12~13%, 영국도 11%로 예상하고 있어요. 최근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가 자기네는 안 쓰는 정책을 다른 나라에 쓰게 했다고 인정하더군요.”
-선진국들이 사다리를 걷어차 후진국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한다는 주장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동남아 국가들이 위협적이 되면 똑같이 하지 않을까요.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걸 넘어섰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서유럽 복구를 위해 미국이 대규모 경제 원조를 했던 ‘마셜 플랜’ 이 그래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라지만 높이 사줘야 해요. 19세기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 경쟁할 때 식민지를 오히려 더 수탈했거든요. 인간의 역사에서 99%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해도 나머지 1%가 잘했다면 거기서 희망을 갖고 더 발전시키려고 해야죠.”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정치가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든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는데 그럴 거면 정치인이나 공무원 다 사표 내야죠. 부를 쌓는데 자본주의와 시장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그게 완벽하지 않으니 잘못되면 고치고 규제할 건 하라고 만든 게 정부고 정치거든요. 정치는 말하자면 경제의 경계선을 규정짓는 역할을 합니다.”
-박정희는 독재와 정치 탄압으로 비판받는데 역으로 생각하면 독재를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시켰기 때문에 강력한 성장 드라이브를 걸 수 있었던 게 아닌가요.
“그 당시 상황에선 그런 측면이 있지만 그걸 일반화해 독재를 해야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하면 안 되죠. 일본·핀란드·스웨덴 등은 완벽하진 않지만 민주주의를 하면서 경제성장을 했어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민주정책을 통해 국민합의를 도출해 강력한 국가를 만들었고, 우리는 독재라는 수단을 쓴 거죠. 물론 당시 상황에서 우리에게 스칸디나비아식의 사회적 합의가 가능했을지 의문이 있습니다. 선진국들도 1인당 국민소득 3000~4000달러가 되기 전에 민주주의를 한 나라는 없거든요. 또 그렇게 가난할 때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의미 있는지 회의가 가는 면도 있습니다. 독립 때부터 민주주의했다고 자랑하는 인도는 밀가루 한 포대와 표를 바꾸고, 동네 지주가 깡패를 고용해서 누구 찍으라고 하거든요.”
-박정희의 경제개발은 성공했지만 필리핀 마르코스와 인도네시아 수하르토는 실패했습니다. 어쩌면 국가 자체가 아니라 국가 기구를 통한 통치자의 리더십이 더 결정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리더십을 강조하면 영웅 숭배로 가기 쉽지만 그래도 리더십을 거론하지 않는 건 문제입니다. 그럼 회사에서 좋은 경영자가 무슨 필요가 있어요? 규칙 잘 만들고 허수아비 앉혀 놓아도 돌아갈 거 아닙니까. 잘못된 이분법이 있는데, 기업은 정주영이나 잭 웰치 같은 사람들이 잘나서 경영 잘했다고 하면서 박정희가 잘해서 경제발전했다면 질색해요. 기업도 개인이 중요한데 하물며 국가 지도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말이 안 되죠. 다만 영웅사관 비슷하게 광야에서 헤매던 우리 민족을 이끌고 민족 중흥을 이뤘다는 식의 찬양은 피해야죠.”
-60~70년대에 좌파 학자들과 재야 인사들이 ‘외채 망국론’과 ‘대미 종속화론’ 등을 주장했고, 88올림픽을 치르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는데 결국 틀리지 않았습니까.
“그런 문제 의식에는 맞는 것도 많이 있죠. 기술 종속의 문제를 지적한 것 등이죠. 그런데 북한이 답이라고 본 게 틀렸던 거죠. 걸어 잠그고 살면서 자생적인 자본과 기술로 경제발전을 한다는 게 환상입니다. 북한이 지금 기술 자립이 돼 있나요? 따지고 들어가면 1930년대 일본 기술이고, 50년대 소련 겁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종속이론가들이 범한 오류인데, 박정희식으로 표현되는 자립경제에 대한 노력이 핵심에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겁니다. 한국은 미국 구두도 닦았지만, 밤잠 안 자고 그 구두를 어떻게 만드는지 공부해서 성공했던 셈이죠.”
-왜 우리는 남들과 달리 자립 경제에 대한 노력을 하게 된 겁니까.
“한국에선 지배 엘리트들의 세계관이 달랐던 거죠. 20세기 초에 남미에서 제일 가난했던 나라 중 하나가 브라질인데 1930년대 들어와 민족주의적인 발전 정책을 써서 지금 정도까지 발전했지요. 결국 그 나라 엘리트들이 얼마나 애국심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일본 마쓰시타 회장은 오래된 고물 차를 몰고 다니고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살았지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애국심이 경제발전의 동력이라고 합니다.
“물론 애국심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법과 제도도 잘 만들고 훌륭한 기업인도 많이 나와야 하고요. 한국이나 몇몇 나라는 운도 따랐죠. 그래도 브라질이 남미에서 돋보이는 건 엘리트들이 굉장히 애국심이 높다는 겁니다. 하지만 애국심이 있다고 해서 다 옳다는 건 아닙니다. 과거엔 그게 애국이라고 생각해서 민주화 인사나 노동자들에게 고문도 했으니까요.”
-재벌을 긍정하던데, 재벌보다는 외국 금융자본이 훨씬 무차별적이고, 통제 불가능하고,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에게도 해롭다고 봅니까.
“한국의 재벌들이 지금까지는 국내 산업을 발전시키고 고용 창출을 하는 데 관심이 있었거든요. 외국 펀드매니저 등은 그런 데 관심 없습니다. 금융자본의 속성이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기업 팔고 떠나거든요. 핀란드의 세계적 기업인 노키아는 처음엔 벌목회사였는데 전자회사를 세워 흑자 내는 데 17년 걸렸어요. 요새 어느 주주가 17년간 배당 안 받고 기다리겠습니까. 세계 수준의 기업으로 키우려면 10~30년의 세월이 걸려요. 금융자본의 속성상 장기적 기업 발전에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망한 게 GM 아닙니까. 일본 차들이 밀고 들어갈 때 정면승부를 안 하고 계속 옆길로 빠져 나간 거죠.”
-그래서 소액주주 운동과 주주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입니까.
“원래 소액주주운동은 펀드매니저들이 하는 건데 한국에선 사회운동으로 한 거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환기시킨 공헌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영리한 전략이었는데, 이제는 소액주주운동의 본산인 외국 펀드매니저들에게 하이재킹을 당한 거죠.”
-당신의 주장은 ‘신자유주의의 시장 만능주의도, 시장을 무시한 공산주의도 틀렸다. 그러니 시장과 사회적 규제를 적절히 조화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시장경제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까.
“그렇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에 반대하나요.
“나라들끼리 수준이 비슷하면 자유무역 하는 게 좋다고 보지만 우리가 아직 미국과 FTA를 할 단계는 아니라고 보는 거죠.”
-스스로 성장론자라고 생각합니까.
“몇 십 년 전까지 한국은 국민소득이 80달러에 유아 사망률이 1000명 중 78명이었어요. 얼마 전 카리브해의 아이티에서 곡물값 폭등 때문에 사람들이 진흙떡을 먹는 게 보도됐는데 그 나라 유아 사망률이 1000명당 74명이거든요. 성장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성장이 대수롭지 않은 게 아니거든요.”
김종혁 문화·스포츠에디터, 배노필 기자 penba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장하준=1963년생. 한성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27세에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가 돼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선진국의 횡포를 비판하는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로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학자에 주는 ‘뮈르달 상’을 2003년 수상했다. 2년 뒤엔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러시아 출신 미국 학자 바실리 레온티예프(1905~1999)의 이름을 딴 레온티예프 상을 최연소 수상했다. 대부분의 저서를 영어로 써왔으며 국내에 나온 책들은 그 번역본이다. 저서에는 『쾌도난마 한국경제』 『국가의 역할』 『나쁜 사마리아인들』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등이 있다.
장하준 교수 만나 보니
이렇게 젊은 나이에, 이토록 논란이 됐던 경제학자가 있었을까.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를 인터뷰하기 전에 든 생각이다.
나쁘게 말하면 그는 정체가 모호하다. 신자유주의를 맹렬하게 비난하는 걸 보면 좌파 경제학자 같다. 자기들은 약탈과 보호무역으로 커 놓고, 이제 와서 후진국들에 자유무역하자고 을러대는 선진국의 이중 잣대를 준엄히 꾸짖는다. ‘시장이 만능이라고? 한마디로 웃기네’다. 국내 좌파 경제학자들을 환호케 하는 건 이 대목일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동거는 거기까지다. 그의 주장에는 좌파가 감내하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아서다. 대표적인 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재벌 평가다. 그는 성장론자다. “한국이 그동안 성장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성장을 우습게 아는데 그거 아니다”라고 일갈한다. 그러니 한국의 ‘경제모터’에 시동을 건 박정희 리더십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 재벌도 마찬가지다. 시장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눈 딱 감고 밀어붙인 재벌 오너들이 있어서 대한민국 성공 신화도 가능했다는 주장이다. 이쯤 되면 좌파든 우파든 “대체 당신 누구 편이야”라고 짜증을 낼 만도 하겠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를 어떻게 정의할지 생각해 봤다. 그는 시장을 거부하지도 숭배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시장이 중요하지만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적 시장주의’가 자신의 생각을 반영한다고 했다. 케임브리지대 학생들에게 단련된 듯, 그는 도전적이고 까다로운 질문을 오히려 즐기는 듯했다. 또 소탈하고 솔직해 보였다.
문제는 주장의 현실성이다. 그는 선진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비난하면서 개발도상국은 보호무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에선 한국 역시 경쟁 국가들이 못 올라오게 사다리를 열심히 걷어차고 있다. 그리고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들이 모두 보호무역으로 돌아서면 도대체 한국은 어디에다 수출하고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은 들었다.
김종혁 문화·스포츠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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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구상한 대한민국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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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간도특설대 복무” 기술한 책 ‘무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간도 특설대 복무’ 주장이 기술된 서적 『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는 없다』(류연산 지음, 도서출판 아이필드)를 발간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도서출판 아이필드 유연식 대표에 대해 대법원이 1월 15일 무죄를 확정했다.
2004년 2월 출간된 이 책은 조선족 언론인 류연산 씨가 저술한 책으로 류 씨는 “박정희는 1939년 말 ‘간도 조선인특설부대’에 자원입대해 조선인 독립군 토벌에 공을 세우고 그 공으로 이듬해 신경육군군관학교에 추천을 받아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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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발하여 박 전 대통령의 차녀인 박근령(현재는 박서영으로 이름을 바꿨음)씨 등은 2005년 2월 도서출판 아이필드 유연식 대표와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김삼웅 당시 독립기념관장을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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