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하는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불 앞에 서서 땀 국물 줄줄 흘리며 열심히 밥상을 차렸다.
왜냐하면 내 삶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1.하느님 앞에서 자연 밥상 나누기
둘째 아이가 방학동안 성당에서 교리 공부를 받았다.
교리 공부를 시작하기 전 부모 모임에서 점심식사 문제를 논의하다가 점심을 내가 맡기로 했다. 단, ‘현미밥 채식’밥상으로...
9일동안 오이, 열무, 양배추, 풋고추,가지,깻잎,호박,단호박등 제철 먹을거리로 차린 밥상을 어른 아이 10여명이 마주하였다.
아이들 중에는 정제식품이나 가공식품, 고기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그러나 지도 선생님과 어른들과 좋은 음식과 우리 몸, 환경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밥을 먹는 사이에 조금씩 현미밥 채식밥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 날 나는 아이들에게서 마음으로 쓴 편지를 받았다.
“...저가 오이를 못 먹었는데 먹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현미밥도 맛있었습니다.”
“...어떤 음식도 맛있게 잘 먹게 됐어요. 그리고 영양이 많은 음식들 때문에 더욱 더 건강해 진 것 같고 내가 싫어하던 음식들이 더욱 더 맛있어진 것 같아요...”
“...처음 먹는 것도 많았어요. 야채는 솔직히 제가 싫어하는데 십일동안 영양가 음식을 먹으니까 익숙해졌어요. 그것 때문에 싫어하던 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어요.”
“...나 오늘 순두부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평소에는 엄마가 바쁘셔서 못해줬던 음식 맛있게 잘 먹었답니다.”
“저는 검은 쌀밥이랑 현미밥 먹어요. 우리 집보다 이곳이 더 맛있네요."
2. 부처님 앞에서 자연 밥상 나누기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날에 초등학교 학부모회서 한 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아이들과 함께 통도사 나들이 계획을 잡았더니 아침부터 장대비가 쏟아졌다.
비오는 날 산사체험도 재미있으리라 위안을 삼으며 예정대로 움직였다. 절 식당 앞 처마 밑에서 삶은 옥수수 까먹고 박물관 구경을 했다. 박물관에서는 경봉스님 열반 30주년 특별기획전이 열려 선사의 법문집을 접하게 되었다.
“ 불자라면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금강경>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이날도 세존께서는 공양시간이 되자, 가사를 입으신 뒤 바루를 들고 사위성으로 가셔서 한집 한집 차례대로 밥을 빌어 마치시고 본처로 돌아와 공양을 하시었다. 그리고 가사와 바루를 제자리에 정돈해 놓으시고 발을 씻은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무엇 때문에 이 소중한 경전에, 그것도 경전의 첫머리에, 가사 입고 바루 들고 밥을 빌어 잡수시고, 밥을 잡수신 다음 가사와 바루를 정돈하고, 발 씻고 자리를 펴고 앉는 것을 묘사해 놓은 것인가?
....
진리가 바로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도가 바로 옷 입고 밥 먹고 발 씻는 데 있기 때문이다. 어찌 일상생활을 제쳐놓고 진리가 따로 있겠는가?...“
비오는 날 점심 나누어 먹을 곳을 고민하다 ‘극락암’이라는 암자에 있는 큰 정자를 찾았다. 종무소에 계시는 분께 우리 사정을 말씀 드렸더니 쓸 수 있게 해 주셨다. 준비해 간 비빔밥 재료를 양푼이에 비벼 나눠 먹었다. 밥 먹을 때 목마르다고 물을 찾는 아이에게는 오이를, 맵다고 물을 찾는 아이들에게 단호박을 같이 먹도록 했다. 20여명의 어른아이는 밥 한 톨 남김없이 깨끗이 먹고 배를 채우고 여유있게 다시 절 구경을 했다.
밥 한 그릇의 이치를 알면 세상 만물의 이치를 알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식사 전 기도가 있다.
천주교에서는,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불교에서는,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보호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말씀하셨다.
“세상이 변하기를 원한다면 네가 먼저 그 변화가 되라.”
세상에서 생명과 환경에 대한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면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바로 ‘생명의 밥상을 차리는 것’
그래서 기꺼이 부엌데기, 밥상 차리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함께 생활하는 식구들, 피를 나눈 부모 형제들, 뜻을 같이하는 길동무들, 오고 가는 삶의 길목에서 만나는 이들을 위해서 가능한 친환경으로 농사지은 먹을거리로 생명의 밥상을 차리는 시골 아지매가 지금 내 모습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첫댓글 감사하면서 사는것이 멋이지요
울산 강의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모두 수고많으셨습니다. ^^
특히 밥 ^^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누구 보다도 뜨겁게 살아 가고 계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