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미래 부처님의 방편과 진실 2부처님 양족존(兩足尊)께서 법은 항상 일정한 성품이 없음을 알지만
일정한 성품이 없다. 고정된 어떤 무엇이 없다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법이란 모든 존재예요, 모든 존재는 고정된 성품이 없다 이거예요.
그것을 부처님은 다 압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의 종자는 인연으로부터 생기므로 일불승을 설하느니라.
그래서 하나의 인연 씨앗 역할을 해준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시간을 갖는 것,
이 대승경전 경중의 왕이라고 하는 이 법화경을 이렇게 인연을 맺고 살펴보고
그래서 어떤 대목에서든지, 어떤 구절에서든지 무심코 지나다가
어느 인연 맞는 구절에 가서 딱 눈이 열릴 수 도 있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부처님의 종자는 인연으로부터 생기므로 일불승을 설하느니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이 참으로 고귀하고 성스럽고 상당히 값진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연이력’이라는 말이 있어요.
우리 어릴 때 옛 스님들이 공부한 것에 비교해보니까,
그 이력을 본다 그러는데 스님들이 그 강원에서 한 4~5년 동안 공부하는 것을
이력을 본다 그러기도 하고, 이력을 마친다, 이런 표현을 하는데,
그래서 옛 스님들이 당신들 공부하던 것 하고 비교해 보니까
너무 엉터리거든요.
우리 때만 하더라도 하노라고 했는데도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뭐 그렇더라도 인연이력이라도 봐야지 이런 말을 들었어요.
인연이력, 이력하고 인연이라도 맺어 놓는다 이런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런 그 인연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물러서 세간의 모양이 항상 있음을
보리도량에서 이미 알았지마는 도사께서 방편으로 설할 뿐이니라.
여기는 언젠가는 한번 인용도 했는데 아주 법화경에서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저 “ 불자행도이(佛者行道已) 래세득작불(來世得作佛)” 하는
법화경 사구게로 정해져 있는 그 말씀 못지않는 중요한 말이지요.
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물러서 여기 원문에 어떻게 되어 있는고 하니,
“시법이 주법이하야 세간상이 상주라 [是法主法位 世間相常住].” 그런 말입니다.
반야심경에도 '불생불멸'이 있고 화엄경에도 '일체법불생' 일체법이 생하지도 않고
'일체법불멸' 일체법이 멸하지 않는다.
결국은 불생불멸을 이야기를 했는데 이 대목이 바로
그 불생불멸을 이야기한 대목입니다.
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물러서 하는 말이 이 법이라고 하는 것은 세간법이에요,
그런데 법의 자리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진리의 입장, 본성의 입장
모든 존재의 실상의 자리에 있다 이 뜻입니다.
법의 자리라고 하는 것은 실상의 원칙에 머물러서 그런 말이지요.
세간의 모양이 '항상 있다' 라고 하는 것,
세간상이 상주다 그런 말이지요.
세간상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아주 미묘한,
불에 태워져 없어질 종이 한 장도 결국은 세간상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상주한다 이것이지요. 불생불멸이라는 것입니다.
본질에 있어서는 불생불멸이예요.
왜냐하면?
처음부터 공성이니까 공성이면서 인연을 만나면 이렇게 종이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또 어떤 인연을 만나면 나무가 되기도 하고 하구요.
어떤 인연을 만나면 그냥 물이 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앞에서도 말하자면 법은 항상 일정한 성품이 없다.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대목은 우리가 원문으로 외워두면 좋지요.
“시 법이 주법이하야 세간상이 상주라.”
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물러서 세간의 모양이 항상 있음을
보리도량에서 이미 알았다. 그랬어요.
부처님이 처음 성도하신 자리지요.
부다가야 보리수 나무 밑에서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존재의 불생불멸의 도리를 그때 이미 알았다. 이런 말입니다.
부처님이 성도했다 라고 하는 말씀의 뜻을 이 법화경으로 표현하자면
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물러서 세간의 모양이 항상 있다 영원 불멸이다 이 말입니다.
저녁연기까지도 가장 허망한 것의 그 좋은 표현으로서 저녁연기를 말하고,
또 아침 이슬을 말하지요.
저녁연기 아침이슬까지도 사실은 항상 있다. 이 뜻입니다.
그 있다 하니까 오해하면 안되지요.
그러한 사실, 불생불멸의 사실을 보리도량에서 이미 알았지마
도사께서 방편으로 설할 뿐이니라.
방편으로 설하는 데는 뭐 있다가 없다가 했다가, 허망 하다고 했다가
무상 하다고 했다가 별별 그 때 그때 중생의 병에 따라서 약 처방을 달리하듯이
그래서 여러 가지 표현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