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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쉴라야, 이리로 와 보렴."
나는 내 옆의 의자를 가리켰다.
"네가 해야 할 일이 있어."
쉴라는 교실 한쪽의 자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제까지는 오전시간을 무사하게 지내왔다. 나는 전날처럼 수업 시작 전에 그 아이에게 그 날 할 일을 설명해 주었다. 쉴라는 협조적으로 토론시간과 산수시간을 보냈다. 비록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제법 교실 안에서 긴장을 풀고 있었다.
쉴라는 자기 의자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이리 와라, 얘야. 나하고 무언가 해 봤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 아이에게 손짓을 했다. 그 아이는 주춤거리면서 자기 자리에서 몸을 펴고 있었다.
나는 학교 심리학자에게서 '피보디 그림 및 어휘검사(PPVT)'를 빌려다 놓았었다. 나는 그 검사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것은 아동의 언어성 지능지수를 알고자 할 경우, 아동이 말을 하지 않고서도 지능을 쉽게 측정할 수 있는 아주 적절한 자료였다.
나는 전날 산수시간의 셈하기 이후로 그 아이가 어느 정도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지 몹시 궁금했다. 쉴라가 보여주는 것 같은 심한 정서부적응아들은 보통, 학습지진아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심한 정서부적응아들은 보통, 학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쉴라가 정상적인 산수 실력을 보여주었을 때, 나의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더구나 쉴라가 평균 이상의 지적 능력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를 흥분시켰다.
이미 나는 그 아이가 내 학급에 배치된 것을 기뻐하게 되었고,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주립 정신병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쉴라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그 곳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나와 같이 해 볼 것이 있단다."
나는 일어나서 그 아이를 내 탁자로 데려와야 했다.
"여기 앉아. 이제 내가 너에게 그림 몇 개를 보여주면서 어떤 단어를 말해 줄 거야. 그러면 네가 그 단어에 가장 잘 맞는 그림을 지적하면 돼. 알겠지?"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우선 한 장에 그림이 4개 있는 것을 보여주며, '채찍'을 지적하라고 했다. 처음 시작한 그림이 하필 이런 것이라니! 나는 당혹스러웠다. 그 아이는 4개의 그림을 자세히 보더니, 나를 쳐다보고 조심스럽게 하나를 지적했다.
"잘했어."
나는 웃어 보였다.
"바로 맞혔구나. 이번엔 '그물'을 골라 봐."
내가 단어를 하나씩 읽어주자, 쉴라는 처음에는 주저하듯이 네 가지 그림을 하나하나 신중히 살피고서 하나를 지적했으나, 점점 자유롭게 지적해 나갔다. 쉴라는 6~7매 정도의 그림을 끝낸 후에 엷은 미소를 띠면서 눈을 들어 다른 사람이 알아듣기 힘들게 목쉰 소리로 속삭였다.
"이건 쉬운데요."
쉴라는 '보온병'이란 단어 하나를 못 맞추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 아이가 궁핍한 환경에서 자란 탓으로 그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8개 중에 6개를 틀려야 이 검사를 멈추게 되는데, 그 아이는 그 수준을 훨씬 능가했다.
우린 계속했다. 단어들은 점점 어려워졌고 쉴라가 그림을 보고 생각하는 시간도 점점 길어졌다. 그 아이는 가끔 하나, 둘씩 못 맞추었고, 그때마다 걱정스러워 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아이는 내가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얼마 전부터 그 아이가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갖고 있고, 더 똑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쉴라는 내 예상을 훨씬 넘어 버렸다. 우린 그 전까지 우리 반 아이들이 해 본 적이 없는 검사 항목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아무도 그렇게 높은 수준에까지 간 적이 없었다. 우린 '조명'. '집중력' 같은 단어들을 다루고 있었다. 쉴라는 규칙적으로 몇 개씩 틀리긴 했지만, 8개 중 6개까지는 틀리지 않았다. 우리 주위엔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그 아이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쓰며,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있었다. 우린 그 검사의 마지막 부분인 성인용에 도달했다. 쉴라는 입술을 깨물면서 무릎 위에서 손을 비틀고 있을 정도로 애를 쓰고 있었다.
"쉴라야, 년 참 잘하고 있어."
나는 그 아이가 그렇게 진지하게 검사에 참여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더구나 그렇게 오래 지속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또한 이런 단어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쉴라가 나를 쳐다보았다. 눈은 커졌고, 목 언저리는 초조함으로 울긋불긋했다.
"이 단어들은 잘 모르겠어요."
"응, 괜찮아. 네가 이 단어들을 알 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이것들은 아주 큰 아이들이 아는 단어이니까 너는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해. 단지 네가 알고 있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고 했던 것 뿐이야. 몰라도 괜찮아. 난 네가 아주 열심히 노력 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걸."
그 아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금방 울 것 같았다.
"이 것들은 지독히 어려운 단어들이야."
그 아이는 자기 손을 내려다 보았다.
"처음 것들은 쉬웠는데, 이건 굉장히 어려워요. 난 잘 모르겠어요."
나는 팔을 뻗었다.
"이리 와, 쉴라야."
아이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몸을 구부려 그 꼬마를 무릎에 끌어다 앉혔다. 그 아이는 긴장을 풀지 않고 있었는데 몸에선 오래된 오줌 냄새를 풍겼다.
"얘야, 난 네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러면 되는 거야. 난 네가 맞고 틀린 것에는 상관치 않는단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주 어려운 단어들이기 때문이야. 이 곳에는 너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아이가 없다는 걸 내가 장담하지."
나는 아이를 껴안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었다. 그 아이가 마음을 가라앉히길 기다리면서, 검사 답안지를 보고서 속으로 틀린 것을 빼보았다. 그 아이는 자기능력의 상한계에 아주 가깝게 달해 있었다. 한 번에 3~4개 정도를 틀렸다. 그래도 전에 검사해 보았던 다른 어떤 아이보다도 뛰어난 점수였다.
"어떻게 이 많은 단어들을 알고 있니?"
나는 호기심에서 물어보았다. .
그 아이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말했다.
"그냥 알아요."
"이것들 중 몇 개는 큰 아이들이나 아는 단어들인데, 어디서 이런 말들을 들었는지 궁금한데?"
"예전의 학교 선생님이 나에게 가끔 잡지를 주었어요. 거기에서 그 단어들을 읽었어요."
나는 그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읽을 줄 안단 말이니, 쉴라?"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 그걸 배웠니?"
"그냥 알아요. 항상 읽거든요."
나는 놀라움에 머리를 흔들었다. 우리 학급에 얼마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셈인가? 나는 쉴라가 우수한 아이라는 것을 알고 흥분하였다. 사라와 피터 같은 몇몇 아이도 평균 정도의 수준이었고, 나는 거의 평균 이상의 아이를 맡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쉴라는 단순한 우수아 정도가 아닌 것이었다.
그 아이는 쉽게 학습하고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의 상태를 넘어서서, 오히려 우수아의 영역 중에서도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매우 우수한 영역에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나는 곧 그런 사실이 내 역할을 결코 쉽게 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걱정해야 했다.
PPVT검사로는 쉴라의 점수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가 없었다. 그 나이 집단의 척도는 지능지수 170에 해당하는 90점 에서 끝나는데, 쉴라의 점수는 102점이었다. 우리에게는 그런 종류의 우수성에 대한 개념조차도 없었다. 통계상으로는 1만 명 중 한 사람 정도가 그렇게 높은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무슨 뜻인가? 동질성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그것은 이탈된 점수이며, 비정상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그 아이의 정서불안만큼이나 그 아이를 고립시킬 수 있는 요인인 것이다.
쉴라는 놀이시간에 자기 의자에 앉아 엄지손가락을 빨면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듯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 자세로 타일러와 사라가 인형놀이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그 주의 깊은 눈 뒤에 어떤 유형의 아이가 있는 것일까 궁금했으며 전보다 더 걱정스러웠다. 왜냐하면 내가 느낀 그 아이를 다루어야 할 상황이 더욱 복잡해진 셈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점심시간 뒤에 안톤에게 검사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머리를 저었다.
"그럴 리 없어요."
그는 중얼거렸다.
"그 아이가 어디서 이런 단어들을 배웠을까요? 그냥 운 좋게 맞춘 것이겠죠. 이주자 캠프에 있는 아이들은 아무도 이런 단어를 알지 못할 거예요."
나 자신도 그걸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학교 심리학자인 알란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그가 사무실에 없어서, 비서에게 검사해 보고 싶은 아이가 하나 있다는 전갈만 남겨 두었다.
검사를 하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은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쉴라가 말을 하면 할수록 아주 특이한 사투리를 사용하는 게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이상한 점을 집어낼 수 있을 만큼 많은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그 아이의 말은 문법이 특이했다.
대부분의 이주자 캠프 아이들은 스페인 말을.하는 가정의 출신이었고, 영어 어휘구사력은 자기 연령 수준 이하이지만 문법적으로는 정상 수준이었다. 또한 그 부근에는 달리 변형된 회화 형태도 없었으며, 더군다나 쉴라는 스페인 말을 하는 가정의 출신도 아니었다. 지능검사에서도 그 아이가 어휘력에 전혀 이상이 없음을 증명 했다.
난 쉴라가 왜 그렇게 이상한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은 아마도 가족의 회화형태인 것 같았다. 어쨌든 그 현상이 나를 너무 당혹시켰기 때문에 조사해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하였다.
그 날의 남은 시간은 별일 없이 흘러갔다. 나는 여전히 쉴라에게 최소한의 것만 요구했고, 우리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을 충분히 주고자 했다. 그 아이는 기꺼이 우리와 함께 움직였지만 어떤 일은 달래야만 참여하였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휘트니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고, 안톤과 나에게도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완전히 혼자 있을 때가 아니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기회가 주어지면 온화한 상태로 자기 의자에 앉아서 조심스런 태도로 우리를 지켜보았다.
쉴라에게 중요한 다음 단계는, 그 아이의 위생관념에 관한 것이었다. 쉴라는 매일 같은 바지와 남자용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오는데, 이것은 그 옷을 입고 왔던 첫날 이후 전혀 세탁하지 않았음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오줌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요를 적시고 나서도 매일 아침 씻지 않은 채로 옷을 입는 것 같았다. 결국 그 아이 곁에 오래 있는다는 것은 고역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안톤과 나는 맥스, 프레디, 수잔나가 화장실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탓으로, 갈아입지 않은 바지에서 나는 악취에 익숙해 있었지만 쉴라의 냄새는 그것보다 더 지독했다. 게다가 얼굴과 팔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그 아이는 헝클어지긴 했어도 반쯤 등 뒤로 넘어가 있는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첫날 이가 있는지를 조사했었다. 나는 이미 두 번이나 이와 싸운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쉴라에게는 입 주위에 농가진이 있을 뿐, 다른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농가진이 다른 아이들에게 전염되지 않기를 바랐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오후에 오는 학교 간호사가 아이들을 치료했다. 아이들의 대부분은 농가진이나 쥐벼룩에 물린 상처, 기타 가난이 주는 병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매주 목요일 오후에, 한 번으로는 그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아이들을 돌보려고 간호사에게 연고와 샴푸를 얻어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쉴라의 위생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날 다른 아이들이 하교할 때까지 기다렸다. 쉴라는 다른 아이들이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에도 그냥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머리솔과 빗을 가져왔다. 전날 저녁에 나는 가게에 들러 작은 머리핀을 하나 사 두었다.
"쉴라야, 이리 와라. 너에게 줄 게 있단다."
내가 말했다.
그 아이는 일어나서 내게로 왔는데, 이마에는 깊은 관심으로 인해 주름이 잡혀 있었다. 나는 쉴라에게 비닐봉지를 건네주었다. 그 아이는 그것을 받은 순간 놀란 듯이 나를 쳐다보았으나, 내 재촉에 봉지를 열었다. 쉴라는 머리핀을 꺼내어 그것을 바라보더니 다시 나를 보았다. 아이는 놀라서 여전히 이마에 주름이 잡힌 채였다.
"네 거야, 쉴라. 네 머리를 멋지게 빗질한다면 이 핀을 꽂을 수 있을 거야. 나처럼 말야."
나는 내 머리를 보여주었다.
쉴라는 비닐봉지 바깥으로 핀을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그 아이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나를 응시하였다.
"어째서 이런 일을 하는 거죠?"
"무슨 말이니?"
"왜 나한테 잘해 주느냐구요?"
그 아이는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너를 좋아하기 때문이지."
"왜요? 나는 미친 아이인걸요. 그리고 선생님의 붕어를 해치기도 했구요. 그런데 왜 나한테 잘해 주는 거죠?"
나는 너무도 당혹스러워 웃어버렸다.
"그냥 하고 싶어서야, 쉴라. 네가 머리를 예쁘게 다듬는 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아이는 손가락으로 계속 핀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전에는 누가 나한테 무엇을 준 적이 없었어요. 아무도 일부러 내게 잘해 준 일이 없다구요."
나는 어리둥절하여 그 아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내겐 그와 비슷한 경험이 없었다.
"여긴 좀 달라, 얘야."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나는 쉴라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빗겼다. 그 아이를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빗질을 해야 했다. 쉴라는 계속 그 핀을 쥐고 있을 뿐, 포장을 풀어 꺼내려하지는 않았다. 빗질이 끝나자 머리카락은 그 아이의 어깨 위로 두터운 커튼처럼 늘어졌다. 그 아이는 잘생기고 귀여운 소녀였다. 비누와 물만 있다면 더 사랑스러운 아이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됐다. 핀을 이리 주겠니? 네 머리에 꽂아야지."
쉴라는 핀을 가슴에 대고 꼭 쥐었다.
"꽂고 싶지 않니?"
"아빠가 핀을 빼앗아 버릴 거예요."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너한테 준 거라고 말씀 드리면 되잖아. 그렇지?"
"아빠는 내가 훔쳤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전에는 아무도 나에게 선물 같은 것을 해주지 않았으니까요."
그 아이는 파랑새핀과 오리핀을 보고 있었다.
"그럼 내가 너의 아빠를 만나서 내가 준 거라고 말할 때까지 학교에 그 핀을 두면 어떨까?"
"선생님이 다시 내 머리를 예쁘게 빗겨주실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네가 오면 다시 빗겨 주마."
아이는 한참 동안 핀을 바라보다가 마지못해하며 나에게 넘겨주었다.
"여기 있어요. 잘 두었다 주세요."
그 핀을 받으면서 내 마음은 두근거렸다. 핀을 되돌려 주는 일이 얼마나 그 아이에게 고통스러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
그 때 안톤이 들어와 쉴라가 고등학교로 버스를 타러 가야할 시간이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렀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세수를 시키지 못한 아이에게선 심한 냄새가 났다.
"쉴라야, 집에 씻을 데가 있니?"
그 아이는 머리를 저었다.
"우린 목욕통도 없는 걸요."
"개수대는 사용할 수 있니?"
"개수대도 없어요. 물도 아빠가 주유소에서 길어오는 걸요."
아이는 마룻바닥을 응시하면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건 먹을 물이에요. 만일 내가 물을 더럽히기라도 한다면 아빠는 무섭게 화낼 거예요."
"다른 옷은 있니?"
쉴라는 머리를 저었다.
"그래? 그럼 내일 어떻게든 해보자. 알겠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얇은 면 자켓을 가지러 옷걸이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할 일이 너무나 많고 바꾸어야 할 것도 너무 많았다.
"잘 가라, 쉴라야. 저녁 시간 즐겁게 보내고 내일 보자."
안톤이 쉴라의 손을 잡고 문을 막 닫으려 할 때, 쉴라가 잠시 멈추더니 안톤의 팔 밑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살짝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안녕, 선생님!"
### 이어서 계속.....
- 7 -
나는 다음날 아침, 큰 타올 3장, 비누 1장, 샴푸, 베이비 로션을 챙겨 학교에 갔다. 그리고는 먼저 사무실로 내려가 구호품 상자를 살펴보았다. 그 상자에는 우리 반 아이들 같은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줄 몇 벌의 옷들이 있었다. 나는 골덴 바지와 티셔츠 하나를 찾아내 가지고 교실로 돌아왔다.
쉴라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 나는 교실 뒷 편에 있는 개수대에 물을 채우고 있었다. 샤워 시설이 없기 때문에 이 넓고 큰 개수대에다 아이를 넣고 씻길 생각을 한 것이었다.
쉴라는 나를 보자 웃옷을 벗어 걸고 급히 걸어왔는데, 이 곳에 온 이래로 그렇게 빨리 내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쉴라는 내가 하는 일에 호기심을 가졌는지 몸을 구부리면서 눈을 크게 떴다.
"선생님, 지금 내 머리에 핀을 꽂아 주실 건가요?"
"응, 그래. 하지만 우선 목욕부터 해야 해. 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씻을 거야. 어때?"
"아프지 않을까요?"
나는 웃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아이는 내가 가지고 온 물통 속에서 베이비 로션을 꺼내어 뚜껑을 열었다.
"이건 뭐하는 거예요? 먹는 건가요?"
나는 놀란 눈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냐, 그건 로션이야. 몸에 바르는 거란다."
순간 아이의 얼굴에 기쁜 표정이 스쳤다.
"이건 냄새가 좋은데요. 선생님, 냄새 맡아 봐요. 좋은 냄새가 나게 하려고 이걸 바르는군요."
쉴라의 눈은 활기를 띠었다.
"애들은 이제 나한테 냄새 난다고 말하지 못할 거예요, 그렇죠?"
나는 그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럴 거야. 자, 보렴. 네가 갈아입을 옷도 좀 찾아냈어. 오늘 오후에 휘트니가 네 바지를 세탁하러 가져갈 거야."
쉴라는 그 옷들을 조심스럽게 집어서 살펴보았다.
"우리 아빠가 그걸 입지 못하게 할 거예요. 우린 구호품들은 받지 않거든요."
"그래, 그건 안다. 그러니까 네 옷이 마를 때까지만 그 옷을 입고 있으면 돼. 됐지?"
나는 쉴라를 개수대 옆 카운터에 올려 놓고 신발과 양말, 옷을 벗겼다. 그러는 동안 쉴라는 나를 조심스레 지켜보았다. 다른 아이들이 30분 이내에 도착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시간이 촉박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목욕하는 데 익숙해 있는 데다 개수대에서 목욕하는 것이 처음 보는 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쉴라의 입장에서는 자기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상처받기 쉬울 것 같아 염려스러웠다.
쉴라에게 이 점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다른 아이들이 오기 전에 끝내는 편이 더 좋으리라 생각했다.
쉴라는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말라 있었고, 그 작은 몸은 여러 군데에 상처자국이 있었다.
"이것은 어떻게 해서 생긴 거니?"
나는 한쪽 팔을 씻기면서 물었다. 팔 안쪽에는 5센티미터 정도의 상처가 나 있었다.
"그건 팔이 부러졌던 곳이에요."
"어떻게 다쳤는데?"
"놀다가 넘어졌어요. 의사가 거기에 기브스를 했었어요."
"그냥 놀다가 넘어진 거란 말이니?"
그 아이는 상처자국을 내려다보면서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가다 넘어졌어요. 아빠는 내가 지독히도 침착하지 못한 아이라고 했어요. 나는 여러 번 몸을 다친 적이 있거든요."
나는 묻기를 주저하면서 또 다른 질문을 했다.
"혹시 너의 아빠가, 이런 상처가 나도록 무슨 짓을 한 적은 없니? 그러니까 너를 심하게 때렸거나, 또 다른 어떤 일을 한적이 있느냐구?"
그 아이는 말없이 눈이 흐려지면서, 나를 한참 노려보았다. 묻지 않는 것이 나을 뻔했다. 그것은 사사로운 질문이었고, 더구나 우리들의 관계는 그럴 만큼 기초가 튼튼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아빠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어요. 아빠는 나를 좋은 아이로 키우려고 약간 때릴 뿐이에요. 선생님은 가끔 아이들에게 그런 짓을 할지 몰라도 아빠는 나를 좋아한다구요. 이 많은 상처는 내가 침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거예요."
아이의 목소리는 방어적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를 개수대에서 꺼내 닦아주었다. 아이는 한참 동안 내게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무릎에 앉혀서 다리를 닦아주고 있을 때, 그 아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선생님은 우리 엄마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요?"
"아니."
"자요, 보여 줄 게요."
쉴라는 한쪽 다리를 들어 상처 하나를 지적했다.
"우리 엄마는 나를 길에다 버렸어요. 엄마가 차 밖으로 나를 밀어내 버리는 바람에 굴러 떨어져 바위에 찢긴 자국이에요. 보세요. "
그 아이는 다리의 하얀 흉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빠는 나를 사랑해요. 아빠는 나를 길에다 버리진 않아요. 애들한테는 엄마처럼 그런 짓을 하는 게 아녜요."
"그래, 하는 게 아니지." .
"엄마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
나는 아무 말 없이 머리를 빗기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아이의 말을 듣는 것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목소리는 너무나 침착하고 차분해서 마치 누군가의 일기를 읽는데, 그 글씨가 너무 또박또박하여 더욱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것과도 같았다.
"엄마는 지미를 데리고 캘리포니아로 갔어요. 지금 거기서 살고 있지요. 지미는 내 동생인데 네 살이에요. 엄마가 떠날 때 두 살이었으니까, 2년 동안 지미를 보지 못했어요."
쉴라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지미는 조금 그리워요. 한번 보고 싶어요. 그 아이는 정말 좋은 아이예요."
쉴라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선생님도 지미를 좋아하게 될 거예요. 그 애는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나쁜 짓도 하지 않아요. 여기 미친 아이들의 학급에 들어오면 좋을 거예요. 지미는 나처럼 미치지 않았지만, 우리 엄마처럼 선생님도 그 애를 좋아할 거예요. 엄마는 나보다 지미를 더 좋아했어요. 그래서 나를 버리고 그 애만 데리고 갔다구요. 선생님은 이 학급에 지미를 받아들여야 해요. 그 애는 나처럼 나쁜 짓도 하지 않아요."
나는 쉴라를 껴안았다.
"얘야, 내가 원하는 아이는 지미가 아니고 너란다. 그 애도 언젠가는 선생님을 갖게 되겠지. 나는 아이들이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이 그저 아이들을 좋아할 뿐이야. 그것 뿐이야."
쉴라는 돌아앉아서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선생님을 하기에는 좀 이상한 여자예요. 우리들만큼 미친 것 같아요."
5일째인 금요일, 쉴라는 여전히 질문을 받으면 어른들에게는 대답하지만, 다른 아이들에게는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모두들 아이스크림을 먹고 마지막 과제를 끝내고 나서 수업을 마쳤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줄에 서 있었다.
우리는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났기 때문에 외투를 입고 빙 둘러서 있었다. 그 때 내가 노래를 부르자고 제안했더니, 맥스가 다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하나 외쳤다. 그 노래는 간단한 율동을 함께 하는 것으로, 때로는 손뼉을 치고 때로는 발을 구르고 고개를 끄덕 이는 것이었다.
나는 쉴라가 노래를 부르지는 않고 주의만 기울인 채 한쪽 끝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의 모든 노래와 동작이 끝났는데도 버스가 오지 않아서, 나는 아이들에게 새 동작을 제안해 보라고 말했다. 타일러가 제자리 뛰기를 하자고 하기에 우린 타일러의 동작에 맞추어 노래를 했다. 또 다른 동작을 제안해 보라고 하자, 쉴라가 부끄러운 듯 손을 들었다. 손을 들고 서 있는 이 작은 아이를 보자 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쉴라, 어떤 생각이 났니?"
"돌면 어떨까요?"
그 아이는 수줍은 듯 말했다.
그래서 우린 돌면서 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하여 첫 번째 주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쉴라는 교실에서 그 다음 주 내내 활발하게 보냈다. 처음에는 조건을 내세워야만 말을 했지만, 이젠 그것이 없이도 말하기 시작했다.
쉴라는 여러 가지 생각을 갖고 있었고, 기회가 주어지면 대부분 말을 하였다. 나는 우리 학급에 말을 할 수 있는 아이를 갖게 된 것을 기뻐했고, 아이들도 쉴라가 함께 어울리고 말을 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쉴라는 신문기사에 실렸던 방화사건에 대해 처음부터 전혀 화제에 올리지 않았다. 우리 학급에서도 좀더 지각있는 아이라면 자신이 왜 이 곳에 배치되었는지를 약간은 알고 있었으며, 우리는 수시로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런 일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원했다.
대화의 내용들은 대중이 없었다. 마치 내가 세탁물의 내용이나 야구 점수를 묻는 것처럼, 우연한 일들로 자살을 시도한다거나 고양이에게 불을 지르는 둥의 주제들을 거침없이 토론하곤 했다. 아이들은 그 행동들이 좋고 나쁘다는 것에 대해서나,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거나 그들에게 혐오감을 주는지 등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렇지 않으면 내 학급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 행동의 넓이와 깊이를, 그리고 자신들이 그런 행동을 할 때 어떻게 느꼈으며 어떻게 느끼리라고 상상했었는지,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의미없는 일들일지라도 스스로 탐구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대부분 듣기만 했고, 이야기가 분명치 않을 때만 한두 번 질문을 했으며, 듣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가끔 '응, 응.'이란 말만 할 뿐이었다.
쉴라도 자기가 왜 이 곳에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 아이는 이틀째 되던 날부터 이 곳을 '미친 학급'이라고 불러왔다. 그 아이 자신도 미친 아이였던 것이다. 쉴라는 종종 대화에 참여하였지만 방화사건을 화제로 내놓지는 않았다. 아이들이나 나나, 또 다른 사람들도 전혀 화제로 올리지 않았는데 그런 주제로는 토론을 하지도 않았다.
나는 계속 쉴라의 회화형태에 의문을 가졌다. 그 아이가 말을 하면 할수록 분명히 우리들의 회화방식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쉴라의 아버지가 그런 종류의 사투리를 쓴다는 보고가 없는 것을 보면, 그는 이 지역 출신으로 우리와 같은 문법 형태를 갖는 것이 당연했다.
쉴라의 말 중 가장 변형이 심한 것은 'do'와 'be' 동사이고 과거시제가 없는 것이었다. 쉴라는 대화 속에서 'do'를 마음대로 삽입하여 조동사로 사용했다. 'be'는 인칭에 관계없이 'am'이나 'is'대신 사용했다. 또한 과거시제는 거의 없고 대부분 현재나 미래 시제로 이야기 했다.
한편 'should'나 'would'등의 조동사 같은 어려운 시제를 잘 사용하였고, 여섯 살짜리가 파악하기 힘든 복합문장도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회화를 녹음하여 전문가에게 분석을 의뢰해 보았다.
학교 심리학자 알란은 쉴라에게 지능검사와 읽기검사를 해주었다. 쉴라는 지능검사에서 최고한계 점수를 얻었다. 알란은 너무 놀라서 머리를 저으며 검사실을 나왔다. 일찍이 그가 검사한 아이들 중에는 그런 아이가 없었던 데다가 자신의 학교에 그렇게 우수한 아이가 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쉴라는 아무도 읽기를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5학년 수준까지 읽고 이해했다. 알란은 그 아이의 지능을 젤 수 있는 검사를 찾아보겠다고 약속한 후 돌아갔다.
매일 아침 수업 시작 전에 쉴라와 나는 위생에 관한 작업을 했다. 나는 플라스틱 물통을 하나 사서 빗, 목욕수건, 비누, 로션, 칫솔 등을 담았다. 쉴라는 내가 핀을 꽂아 주겠다고 하면 꼭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그 아이는 머리핀을 아주 좋아했다. 나는 내 핀과 같은 종류로 또 하나를 사다 주었다. 쉴라는 그것들을 보물처럼 애지중지하며 다루었다.
아침마다 핀을 찬찬히 살펴보고 세어보며 어떤 것을 꽂을지 결정했고, 저녁마다 그 핀을 빼서 수건에 잘 싸두었다. 씻는 문제는 이렇게 하여 간신히 해결되었지만, 아이의 옷이 문제였다. 나는 매일 아침, 그 아이의 속 팬티를 갈아입도록 시켰다. 그리고 월요일마다 휘트니가 세탁장에 가서 쉴라의 바지와 셔츠를 빨아왔다.
쉴라는 이제 더 이상 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깨끗이 씻은 그 아이는 아주 멋졌다. 숨 많고 긴 금발머리에 반짝이는 눈을 가진 데다가 아랫니 세 개가 빠진 것이 보일 정도로 크게 웃을 땐 우리들 모두가 즐거워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우려하는 문제는 쉴라가 이주자 캠프에서 등하교하는 버스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통제할 수 없는 행동과 끔찍한 경력을 지닌 쉴라가 버스에서 아무런 감시없이 잘 해나가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안톤이나 내가 쉴라를 버스 타는 데까지 데려다 주고 또 데려오곤 했지만 그 아이가 버스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아마도 40명의 고등학생들과 같이 있다는 것이 쉴라를 위협하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
1월 말경의 일이었다.
우리가 분명 쉴라를 버스에 태웠는데, 이주자 캠프에 막상 도착해 보니 쉴라가 없다는 것이었다. 운전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지만 버스는 텅 비어 있었다. 캠프까지는 두 정거장이 있는데, 어느 정거장에서도 그 아이가 내리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운전사는 아이가 버스를 탔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 내 집으로 전화를 했다. 나는 아이가 분명히 탔다고 말해 주었다.
잠시 후 운전사는 다시 전화를 했다. 쉴라는 더운 바람이 나오는 뒷 쪽 바퀴 옆 바닥에 앉아 있다가 잠이 들었던 것이었다. 그 아이는 그 장소를 발견한 뒤, 언제나 그 의자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내릴 때까지 한 시간씩 잠을 잤다.
그래서 이제 운전사는 항상 그 아이가 깨서 내렸는지를 살펴보았다. 고둥학생들도 처음에는 그 아이의 존재에 무심했으나 차차 따뜻한 자리를 양보해 주고, 책가방이나 스웨터로 베개를 만들어 주기도 했으며, 너무 졸아서 걱정이 되는 날에는 집에 까지 데려다 주기도 했다.
해결할 수 없는 한 가지 문제는 쉴라의 아버지였다. 나는 그를 만나 면담을 해보려고 애를 썼다. 전화가 없었기에 나는 그에게 학교에 와주십사 하는 쪽지를 쉴라에게 전해주었다. 그러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두 번째 쪽지를 보냈다. 또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세 번째 쪽지에 집으로 방문하겠다고 했다.
그 날이 되어서 안톤과 내가 찾아갔지만 집은 비어 있었다. 분명 그는 나와 만나는 것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방법으로 나는 쉴라를 맡은 사회사업가와 함께 그 집을 찾아갔으나 역시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쉴라뿐이었다.
나는 그를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우선 쉴라가 적당한 옷을 입을 수 있게 하고 싶다고 사회사업가에게 말했다. 나의 주된 관심은 그 아이의 겉옷이었다. 쉴라는 얇은 남자용 면 자켓만 입고 있을 뿐 장갑도, 구두도 없었다. 때는 1월로 영하의 추위가 계속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더군다나 그 아이는 이른 아침에 두 정거장이나 떨어진 고등학교에서부터 학교까지 걸어다녀야 했다. 나는 날씨가 나쁠 때는 내 차로 데려다 주기도 하고 휴식시간에 입을 옷을 주기도 하였다. 한번은 그 옷을 집으로 보낸 일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그 다음날 종이봉지에 담겨진 채 되돌아 왔다. 쉴라는 민망해하는 얼굴로 '구호품'을 받아서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고 말했다.
사회사업가도 그 아이의 아버지에게 여러 번 이야기했으며 쉴라를 시내에 데리고 가 옷을 사준 적이 있었지만 결국 그가 옷을 돌려보냈다고 했다. 그 아이가 '구호품'을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사업가는 나에게 아이의 아버지에게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런 문제를 강요하면 할수록 오히려 쉴라가 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왜냐하면 그가 아이에게 자기의 화를 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어린이 학대가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사회사업가가 돌아간 뒤에 나는 어이가 없어 문을 꽝 닫아 버렸다. 그 아이가 도움을 받을 이유가 없다면 도대체 왜 우리 반에 보내져 왔단 말인가? 그것이 이유가 아니라면 무엇이 이유란 말인가?
나는 수업 중에 쉴라가 정서불안과 나쁜 환경으로 인해 겪은 모든 경험들을 보상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점차 활발해졌다.
그 아이는 수업의 매 순간마다 탐구심으로 가득 찼고, 수시로 재잘거렸다. 처음 몇 주간은 가슴에 책 한 권이나 산수용 나무토막 상자를 끌어안고서 하루 종일 내 뒤를 쫓아다녔다. 그리고 내가 뒤돌아보면 입가에 바보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 아이는 내가 다른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을 때는 끝날 때까지 내 뒤에서 기다리고 서 있었으며, 좀더 용기가 나고 신체적 접촉을 하고 싶을 때는 내 허리띠를 잡기도 했다. 안톤은 그 모습을 보고 교사 휴게실에서 마치 지하철 내에서 가죽 손잡이에 열심히 매달리는 사람 같다고 놀렸다.
온 정력을 다 쏟았던 처음 몇 주간, 나는 방과 후 두 시간을 감사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했다. 쉴라 때문에 다음날을 위해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모자라 일거리를 집으로 갖고 가 밤에 처리하다 보니 채드의 불평이 많았다. 그리고 안톤도 나와 함께 학급의 문제들을 토의하지 못하는 것을 불평했다. 그러나 나는 집중적인 주의를 필요로 하는 쉴라에게는 이렇게 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믿었다.
태어난 후 6년간 환대를 받아 본 적이 없는 그 아이는 항상 무시와 거부당해 왔다. 차 밖으로 버려졌고,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배척당했다. 이제야 그 아이에겐 자기를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귀여워해 줄 누군가가 생긴 것이다. 쉴라는 내가 베푸는 미세한 친밀감에 흠뻑 젖어들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도 쉴라가 점점 나아지는 것을 보고 안톤과 나만큼이나 기뻐했다. 쉴라가 심한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는 것이 대부분의 아이들을 편안하게 하였고, 그것에 대해 코볼드 상자에 좋은 평을 써 넣기도 했다. 그리고 쉴라가 차츰 친절한 행동을 시도하려는 것을 다른 아이들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쉴라는 분명히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정을 베풀고 어떻게 친절히 해야 하는지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투쟁하는 데 익숙해 있었고, 자기가 선택했던 것을 다른 사람이 차지하려 할 때는 그것을 되찾으려고 힘껏 달려들었다. 쉴라는 여러 가지 면에서 피터보다 더 노골적이고 더 미움 받을 정도로 솔직했으나, 그 아이의 마음에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짐승과 같은 공격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6년이나 멋대로 살아온 그 아이에게 어떠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도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야단치고 주의를 주고 교실 구석에 조용히 세워두는 것도 소용없던 그 아이의 행동은 코볼드 상자로 인해 좋아지고 있었다.
쉴라는 매일 오후, 내가 쪽지들을 읽고 나서 그 쪽지를 얻은 아이들을 칭찬할 때에 조심스럽게 자기 것을 세어 보았고, 다른 아이들이 자기보다 더 많은지 적은지를 알아내기 위해 다른 아이들의 것도 세곤 하였다. 물론 나는 쉴라의 그런 행동을 저지시켰다. 다른 아이들은 자기들이 받은 쪽지의 수로 경쟁하지 않았으며, 그 숫자로 자신의 가치를 측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쉴라는 자기가 이 학급에서 가장 좋은 아이, 가장 재치있고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이며, 내가 좋아하는 아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하고 싶어했다. 내가 그런 것을 증명해주지 않자 그 아이는 코볼드 상자에 있는 쪽지들로 그것을 스스로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그건 그 아이를 곤란하게 했다.
쉴라는 읽기, 셈하기 등은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더 많은 쪽지를 얻기 위해서 어떤 방법으로 친절하게 대해야 하고 공손하게 대해야 하며, 다정하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쉴라는 어느 날 수업이 끝난 뒤 과학 실험도구를 분해하고 있는 내 탁자 곁으로 와서 말했다.
"타일러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은 쪽지를 얻을 수 있지요?"
그 아이는 재차 물었다.
"그 애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얻잖아요. 선생님이 그걸 주시는 건가요?"
"아니, 너도 알다시피 모든 사람들이 쪽지를 쓸 수 있는 거잖아."
"그런데 어째서 그 애는 더 많이 얻어요?"
쉴라는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 애가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 어째서 모두들 그 애를 좋아하죠?"
"글쎄."
나는 잠깐 동안 그 문제를 생각해야 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그 애는 공손하단다. 그 애가 어떤 것을 부탁하고 싶을 때는 항상 '미안하지만'이라는 말과 '고맙다'라는 말을 한단다. 그런 말들은 사람들에게 그 애를 도와주고 싶거나 또 그 애와 같이 있는 걸 좋아하게 해주지. 그 애의 그런 말을 들으면 너도 기분좋지 않니?"
쉴라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한참 뒤에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 얼굴엔 원망하는 빛이 서려 있었다.
"어째서 선생님은 '미안하지만'이라든가, '고맙다'라는 말을 내가 하길 바란다고 말해 주지 않은 거죠? 난 선생님이 그런 걸 원하는지 몰랐어요. 왜 타일러에게는 말해 주고, 나한테는 말해 주지 않은 거예요?"
나는 의아스럽다는 듯이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나는 타일러에게 말해 주지 않았단다. 쉴라야. 그건 사람들이 그냥 하는 것이야.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공손한 것을 좋아한단다."
"나는 몰랐어요. 아무도 그런 것을 내게 말해 준 적이 없어요."
그 아이는 불평하듯이 말했다.
"나는 선생님이 그렇게 하길 바라는지 몰랐어요.."
나는 그 문제를 생각하면서 쉴라가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 아이에게 그러한 것을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나는 쉴라같이 현명한 아이는 당연히 그런 것을 알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추측일 뿐이었다. 쉴라는 자신의 환경 속에서 그런 단어들을 듣지 못했을 터였다. 뿐만 아니라, 이전까지는 그런 말들이 쉴라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던 것이다.
"미안해, 쉴라야. 난 네가 알 거라고 생각했단다."
"난 몰랐어요. 만일 알았다면 나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말들을 사용하면 좋지. 왜냐하면 그런 표현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기 때문이란다. 그건 중요한 거야. 그런 말을 쓰면 사람들이 너를 더 좋아할 거야."
"그들이 나를 좋은 아이라고 할까요?"
그런 말은 그들이 너를 좋은 아이라 여기게 해줄 거야."
그 후 쉴라는 조금씩 조금씩 다른 아이들의 친절하고 다정한 행동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쉴라는 이해하지 못할 경우에는 나에게 물었고, 나 역시 그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그 아이에게 조용히 말해 주었다.
###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