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밑에선 봉선화야 네모양이 처량하다
길고긴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적에..
어언간에 여름가고 가을바람 솔솔불어..
가곡의 효시인 '봉선화'는 나라를 잃은 겨레의 설움과 한을 애절하게 표현한 난파 홍영후의 詩에 김형준이 曲을 붙인 것이다. 일본에 유학 중 귀국, 22세에 3.1운동에 참여하고, 단편집 '처녀혼'을 출간한 난파는 26세에 한국 최초로 오케스트라 반주를 붙인 합창곡을 편곡 지휘하는 등 음악계의 선각자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32세에 '고향의 봄' 등이 수록된 창작동요 <조선동요 100곡집> 상권을 간행하여 동요보급에 심혈을 기울인다. 우리나라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 최초의 평론가, 최초의 교향악단 지휘자, 최초의 기악곡 작곡자 등으로 활동하던 난파는 해방의 서광을 보지 못한 채, 1941년 8월 30일 4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그로부터 꼭 73년이 흘렀다.
2014년 8월 30일 저녁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 로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난파음악제'에 참여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미처 예약하지 못한 관객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가운데 돌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좌석이 매진된 초유의 사태다. 1969년부터 열어 온 난파음악제는 올해로 마흔여섯번 째. 올해의 난파음악상 수상자는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이다. 난파음악상은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영광스러운 음악상으로서 정경화, 백건우, 정명훈, 금난새, 김남윤, 장연주, 조수미, 신영옥 등 역대 수상자들의 면모를 보면 그 위상을 알 수 있다. 올해 난파 콩클에서는 경기예고 3학년에 재학중인 메조 소프라노 최지혜가 대상을 받는다.
먼저 시상식, 난파기념사업회 오현규 회장이 난파음악상과 콩클 대상을 수여한다. 다음 난파엔젤스합창단의 창단연주로 본격적인 음악회의 시작을 알린다. '고향의 봄'과 '봉선화'를 노래한다. 홍난파의 예술혼을 계승하여 문화사절단으로 활동할 계획하에 구성된 천사같은 모습들이다. 이어서 60여 명의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천국과 지옥 중 서곡' Overture to "Orpheus in the Underworld"를 연주하고 콩클 대상 수상자인 최지혜의 풍성한 오페라가 울려 퍼진다. 이어서 이태리기상곡 Capriccio Italien을 연주한다. 이번 음악제의 지휘 및 음악감독인 최선용님은 2002년까지 경기도립 팝스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아트오케스트라, 린나이윈드팝스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어느새 인터미션. 10분간 휴식이다.
2부는 경기필의 '뮤지컬 레미제라블' 로 막을 연다. 죄수복 장발장의 노역장면이 처절하게 흐른다. 이어서 머리를 잘라 팔고 이를 뽑아 팔고 마지막으로 몸을 팔게 되는 불쌍한 판틴느의 'I Dreamed a Dream'이 흐르고, 연인 마리우스를 향한 에포닌의 짝사랑 'On My Own'이 펼쳐지며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끝난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3년여 전 구자범 지휘자가 등단하며 획기적인 성장을 하였다. 구자범 마에스트로의 지휘 모습을 보면서 오케스트라 연주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 것에 감사하다. 그의 리더십으로 인하여 발군의 성장을 하게 된 우리 경기도의 오케스트라이기에 더 애정이 간다. 이어서 소프라노 이현정과 테너 이동현이 솔로와 이중창을 화려하게 연주한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현역들로서, 역시 프로의 세계는 다르다.
이제 합창순서. 합창곡은 모두 난파의 곡이다. 먼저 '사공의 그리움'. 이 곡은 두 곡을 합해 편곡한 작품으로 수원콘서트콰이어와 수원 시니어합창단이 연주한다. 시니어합창단은 지난 7월 정기연주회에서 피아노 반주로 이 작품을 노래했는데, 이번엔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니 감개무량. 거기에 가족같은 콘서트콰이어와 함께 하니 빵빵(?)하다. 60여 명 합창단에 60여 명 오케스트라, 감흥이 폭풍처럼 몰려온다. "뉘라서/저바다를/밑없다/하시는고/백천길/바다라도/닿는곳/있으리만/ 아아아아~아아아아~~" 백천길 바닷속의 장엄함이 물밀듯 끓어 오른다. 이어지는 "어기여차/어기여차/어기여차/어기여차"에서는 희망을 노래한다. 세파의 피로를 풀고 다시 내일의 태양을 바라보며 항해하는 심정으로 혼을 담아 노래한다.
오늘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연합합창은 몇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홍난파 곡을 노래 한다는 것이고, 두번 째는 동요를 부른 다는 점, 그리고 세번 째는 다섯 살 어린이에서 팔십 어른까지 함께 노래한다는 점이다. 난파기념사업회 오현규 회장의 고뇌 끝에 나온 발상이 번뜩이는 대목. 창단연주를 한 난파엔젤스합창단과 라온어린이중창단, 수원콘서트콰이어, 수원 시니어합창단의 연합합창이다. 사공의 그리움을 노래한 두 합창단이 재빨리 무대 반쪽 자리를 내어주니 어린이들이 입장한다. 고물고물 다섯 살 여섯 살 어린이가 선생님의 손을 잡고 무대 윗 단에 오른다. 앞 줄에 서면 키가 작아 오케스트라에 가리기에 뒷 줄에 서도록 배려한 것. 객석에서 탄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온다. 어린이들을 바라보다 언뜻 고개를 돌리니 또 하나의 감동적인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가 등을 돌려 어린이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봐 주고 있는 장면. 마음이 울컥한다. 단원 모두가 뜨거운 가슴으로 환호를 보낸다.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어린이들의 한 발자욱 한 발자욱을 함께 내딛는다. 난파 곡들로 짜여진 '동요메들리'는 이미 소리없이 연주를 시작하고 있다.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주고 받는 동요의 화음 속에서 누구랄것 없이 모두 천진난만해진다. 행복한 얼굴들.. 로비에서 만난 어떤 분이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이 왔다고 했다. 어린이들의 소리..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소리였으리라.
지인들은 모두 한 목소리를 냈다. "프로그램이 참 좋았다"고. 천오백여 석의 관객과 함께 부른 휘날레 곡 '고향의 봄'으로 모두의 가슴에 봄의 향기가 가득 찼었나 보다. 공연장을 나와 계속 흥얼거리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 했더라고..
좋아하는 음악가의 연주를 직접 듣는 행복,
다가올 연주회를 기다리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껴봤다면.
올해의 난파음악제를 통해 '진정한 콘서트고어(Concertgoer)'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예매를 해야 하고, 시작 전 정해진 시간에 좌석표를 받는 것, 거기에 좀 더 일찍 입장해서 프로그램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정성이 필요함을 자각한다. 예약을 하고도 오지 않은 이들로 인해 꼭 보고 싶었던 분들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음악은 귀로 들리나 온몸을 전율케 하고, 잠시 지나지만 머리에 생생하게 새겨지고, 감동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것이기에 그 감흥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 못내 아쉽다. 무대에 설 때 문득 문득 관객의 입장이 되고 싶은 것은 그러한 설렘과 흥분, 짜릿한 감동을 맛보고 싶어서이다. 진정한 콘서트 고어의 모습을 그린다.
또한 난파음악제가 더 크게 발전하여 '축제의 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수원 화성 지역의 역사와 인물이 제대로 부각되어 후세에 문화유산으로 남겨져야 한다는 점에서 볼 때 난파 홍영후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난파추모음악제에 함께 할 수 있었음이 시니어로서는 좋은 학습임과 동시에 큰 영광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더 다부지게 걷자. 무대의 숭고함을 잊지 말자. 오랜 세월 숙성된 와인의 향이 좋은 것처럼 깊은 맛을 잘 내어 보았으면 한다. 우리도 오래된(?) 시니어니까.
올해 난파음악제에서
무언의 소통, 사랑의 나눔, 평화를 만드신 최선용 지휘자님께 감사하다.
해마다 치뤄지는 음악제이지만, 무언가 새로움을 담아보려 애쓰신 오현규 회장님께 감사하다.
함께 무대에 선 모든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에 감사하며 특히, 창단한 엔젤스합창단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소중한 관객 여러분께 감사하다. 연주의 완성은 관객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촉촉히 젖은 초록잎이 여름이별을 고하고 있는 20140903. '오현규 감독님을 위한 기도'가 필요한 오늘입니다.
첫댓글 ㅎㅎㅎ구구절절
말로 글로 표현할 수 없었던 무대였지요.
그래도 우리 모두가 멋쟁이 오케스트라의 훌륭한 연주와 어우러졌다는
그것 하나가 참 의미가 있었어요.
참(眞)이라는 의미......?
우리 시니어는 그냥 나이만 먹은 시니어가 아니라는 그 느낌, 그것을 느껴야만 합니다.
열정과 노력이 함께하면 크나 큰 폭팔..........터져 봐야 겠지요?
생생한 현장감 있는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