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석가모니 부처님은 어떤 분인가?
정석준(법사/ 수필가)
부처님이란 말은 범어로는 붓다(Buddha)라고 하는데, 중국에서 이를 음역하여 불타(佛陀)라 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불타를 일반적으로 부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붓다를 의역하여 각자(覺者)라고도 하는데, 각자란 ‘깨달은 사람(분)'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 최초로 깨달은 사람은 지금부터 2,600년 전 인도 카필라국 정반왕의 태자로 태어나신 고우타마 싯다르타(GautamaSciddhartha)입니다. 석가모니(Sakyamuni)는 고우타마 싯다르타가 성불하고 난 뒤에 붙여진 존칭으로서 ‘석가족의 성자'란 뜻입니다.
‘위없는 바른 깨달음(아뇩다라 삼막 삼보'를 얻으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과연 어떤 분인가? 그는 신인가 인간인가?, 혹은 신이면서 인간인가?, 아니면 신과 인간의 개념을 넘어선 전혀 새로운 존재인가? 이런 물음은 꽤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던 듯, 불교사상가들은 이런 문제에 대답하기 위하여 퍽이나 장황하고 교묘한 이론들을 제시하고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 결과 법신(法身; 진리 그 자체이신 부처님), 보신(報身; 수행의 과보로 성취한 원만 구족하신 부처님), 화신(化身; 중생제도를 위하여 낱낱의 모습으로 화현하시는 부처님)등 삼신(三身)사상이 정립되어 있습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이 가운데서도 특히 법신설(法身說)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어서 화엄경을 비롯한 대승경전은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부처님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공덕과 신통(神通)을 묘사하기 위하여 쓸 수 있는 온갖 상상력을 다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전개는 불교의 보편화와 불법의 심화를 위해서 마땅히 요청되는 역사적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당연한 결과로써 석가모니 부처님의 비인격화ㆍ비인간화라는 중대하고도 본질적인 변절과 손실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과 출가와 성도와 교화와 열반이 이미 예정된 드라마에 불과하다는 경(經)의 말씀을 들을 때 중생제도라는 그 크나큰 본원(本願)앞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한편 무언가 따뜻한 체온을 교류할 수 있는 정다운 친구를 잃어버린 듯한 허전함을 느끼는 것이 우리들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부처님이 이미 신격화 되어버린 이상, 이왕 신을 찾을 바엔 그 이미지와 능력이 보다 분명하고 강력한 ‘여호와’나, ‘알라’신을 택하려는 오늘의 한국인들의 이기적 선호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석가모니 그는 누구인가? 이 미묘한 물음에 석가모니 자신의 대답은 매우 확실하고 간결합니다.
아난다여, 그대들은 나를 좋은 벗으로 하여, 늙고 병들고 죽지 않으면 안 될 몸이면서 늙음과 병듬과 죽음으로 부터 해방될 수 있으리라. 그대들은 나를 좋 은 벗으로 하여, 근심과 슬픔과 고통과 환난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될 몸이면서 근심과 슬픔과 고통과 환난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리라.(장아함경.27-15)
석가모니 그는 사람입니다. 나와 더불어 포근한 체온을 공유하는 다정한 사람입니다. 무슨 까닭인가요? 사람만이 진실로 사람의 벗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는 뭇 왕들이 그의 발아래 예배하는 세존(世尊)으로서 홀로 높기를 원하지 않고 다정다감한 인간으로서 나와 당신의 범상(凡常)한 행렬에 동참하기를 갈망하는 우리들의 친구요 길동무인 것입니다. 그는 나와 당신과 더불어 기쁨도 함께하고 아픔도 함께하며 생(生)도 함께하며 사(死)도 함께 합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수고도 예정된 신의 은총이 아니라 인간적인 가책과 연민의 아픔인 것이다.
부처님이 유루(有漏)냐, 무루(無漏)냐? 곧 인간적인 번민이나 허물이 있느냐 없느냐가 교학상의 주요 쟁점이 되어 왔고 ‘부처님은 무루다. 절대완전하다.’라고 결론이 나 있지만 석가모니의 완전 무루성은 바로 지극한 인간성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경북연합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