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을 가르며 금정산을 오르다
2011년 1월 30일.
우리가 부산 동래온천장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이 9시 반경이었다. 당초 14명 정도가 등반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런 집안 사정 등으로 8명이 등반에 참여하였다. 진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8시에 출발 하였으니 1시산 반이 걸린 것이다.
아침부터 바람이 매우 매섭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산성마을로 갈 것인지? 에 대하여 의논을 하다가 그래도 명색이 산악회 정예멤버들인데 당초 계획대로 등반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온천장으로 들어서니 배낭을 멘 우리들의 모습이 도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름난 온천인 허심청을 지나 금강공원 입구를 향하여 곧장 걸었다.
버스주차장에서 금강공원 입구까지는 20분 정도가 걸렸다. 아침을 먹지 못하고 온 대원이 있어 공원 앞 오뎅집에서 간단한 요기를 한다고 잠시 기다렸다. 드디어 우리는 케이블카가 올라가는 방향을 잡고 산을 올라갔다. 오랫동안 날씨가 가문 탓으로 산은 먼지가 많이 난다.
가끔씩 나무사이로 햇살이 비취고 아직은 잠이 들깬 것 같은 느낌의 건너편 시가의 모습도 보인다. 아름다운 바위들이며, 소나무와 또 다른 여러가지 나무들 사이로 발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온몸에 온기가 돋기 시작한다. 두터운 걷옷을 벗어 보기도 하고, 돌아보며 호흡을 가다듬어 보기도 한다.
11시경에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하니 우리와는 다른 등산로를 통하여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다들 이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산을 오르는 것을 보니 역시 산꾼들은 어쩔 수 없나보다. 어차피 집에 있으면 온 몸이 근질거릴 사람들이다.
지금까지는 골짜기를 타고 올라왔지만, 이제부터는 산 능선을 가로질러 가려니 바람이 너무나 차갑다. 남문입구를 지나 제2망루에 오니 칼바람이 불어댄다.
아침저녁 걸어서 출퇴근을 하면서 단련된 나도 추운 것은 춥다고 해야 했다. 이건 바닷바람도 아니고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다 마주벌판의 중국인들의 털벙거지를 헤집고 달려온 모질 디 모진 칼바람이다.
얼마를 가니 산성마을로 통하는 도로가 나온다. 처음 우리가 마을버스를 타고 왔으면 이곳에 내려 산행을 하게 될 것이지만, 어째든 추워도 계획대로 산행을 시작한 것이 잘 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부터는 산성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성들은 최근에 새로 쌓은 것인지 그 예날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약간의 간격차로 선두그룹과 후미그룹으로 나뉘어졌다. 동문을 지나 얼마를 가다보니 12시가 넘어 선두그룹이 자리를 잡고 엔진오일(?)을 보충하기로 하였다.
이어 후미그룹이 다가오고 점심을 어디서 먹을 것인가에 대하여 의견을 주고받다 근처의 안전한 장소로 이동을 하였다. 여러 개의 바위가 넓다랗게 펼쳐지고 바람도 막아주고 있어 밥을 먹고 쉬어가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추위로 잘 펴지지 않는 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준비해간 취사도구를 이용하여 따뜻한 라면국물을 곁들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거기에다 쇠주 한잔...
이젠 추운 날씨에도 무릅쓰고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가족들의 밥상을 차려주고 거울 앞에 앉아 눈썹도 그리고 입술 칠해 온 아름다운 모습들이 그놈의 추위로 인하여 빛을 발하지 못하고 모두가 무슬림의 여인네들처럼 얼굴을 온통가리고 눈만 내어 놓으니 보일사람, 볼사람 모두 서로가 안타까운 형국이다.
그래도 열심히들 자신들이 가야할 방향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 대견하다. 제3망루를 향해가는 길은 나무들이 없는 개괄지이다. 그러다 보니 맞바람을 안고 가야했다.
장갑을 끼어도 추운데 아름다운 광경을 카메라에 담으려 자주 손을 빼어야 하다 보니 손이시려 죽을 지경이다. 그래도 지나는 길목 산성의 아름다운 S라인 모습이며, 기암절벽들이 펼쳐져 있어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웠다.
의상봉을 지나 원효봉으로 올라가는 지점에서 돌아다 보이는 성곽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성곽뿐만 아니라 넓게 펼쳐진 개괄지와 웅장한 바위의 자태들이 오래전부터 보아야 했던 그 어떤 형상들 중의 하나를 이제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나로서는 이곳이 처음은 아니다. 젊은 시절 부산에서 생활할 때엔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을 그 어떤 여인네와 범어사를 거쳐 북문을 넘어 구포로 걸어 보기도 하였고, 친구들과 쇠주와 안주가 가들찬 배낭을 짊어지고 산능선를 오가며 독기를 뿜어대던 철없던 시절도 있었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이 오랜 삶의 찌꺼기들로 뒤 덮혀 이제는 기억마저도 망망대해에서 가물거리는 등대 불빛처럼 희미한 그 옛날 과거들의 과거가 되고 말았다.
북문에 도착하니 같이 등반에 참여하기로 했다가 갑작스런 집안일로 부득이 오지 못한 회원에게서 멧세지가 왔다. 부산에서 합류하기로 한 사람에게 전화를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하니 다른 일이 있어 합류시기를 다음기회로 갖자는 것이었다. 마음의 빚을 지기도 쉽지않고, 또한 우리가 하산할 시간도 불명확하여 그게 좋겠다고 여겼다.
날씨가 너무 추워 올려다 보이는 정상인 고당봉을 갈 것인지를 의논하다 그래도 끝까지 산행을 계속하기로 하였다. 얼마를 올라가니 갈림길에 ‘금샘’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어차피 우리가 보고 가야할 것이기에 금샘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겨갔다. 험한 바위틈을 올라서자 날 보란 듯이 우뚝 솟아오른 바위 끝에 얼음으로 가득 찬 바위샘이 있었다. 이곳은 바위샘의 깊이가 20센티 정도 밖에 안 되지만, 일년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모두들 왜 그럴까? 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펼쳐 놓는다. 나는 이른 아침 토끼가 이곳에 와서 물을 토해 놓는다고 말하였다.
이젠 꼭대기를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는다.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중간지점엔 전망대도 있다.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부산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오른쪽 방향엔 김해의 넓은 들이 햇빛을 받아 봄을 향해 기지개를 켜는 듯 보였다.
정상에서 바위틈에 몸을 의지하여 라면을 먹는 아가씨들도 있고, 추위에도 갖가지 자세를 잡아가며 카메라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이런 저런 자세로 사진을 찍고서는 하산 길로 접어 들었다.
하산 길은 길에 얼음이 많이 얼어 있기도 하고, 먼지로 인하여 걷기가 불편하였다. 다들 바지가랑이엔 흙먼지가 잔뜩 묻었다. 우리가 가는 길을 곧장 내려가면 청연암과 범어사가 나온다. 우리는 가면서 범어사 이야기를 계속 주고받았다.
근래에 범어사 일주문 방화사건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에 의하여 일어났다는 사실에 인사를 잘 할 것이지 왜 그랬을까? 하는 농담도 주고받았다.
이야기는 본사에 있다가 다른 곳(암자?)로 일자리를 옮겨진 사실에 분개하여 일주문에 불을 질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 보아가며 인사를 해야지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된다는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정작 범어사의 널따랗고 웅장한 경내의 자태에서 불탄 일주문을 바라보니 불낸 사람이 원망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경내를 벗어나 내려오니 먼저 하산한 3명이 주막에서 파전에 동동주를 시켜 먹고 있었다. 일어나 가자는 것을 아까운 걸 남겨두지 못하는 마음에 결국은 동동주 한통을 더 시키고 말았다.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내려와 자갈치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추위에 떨다 동동주를 먹어놓았으니 따뜻한 지하철 의자에 앉자마자 다들 고개가 옆으로 수그려진다. 40분 정도가 걸려 자갈치역에 내렸다.
우선 자갈치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꼼장어를 먹기로 하였다. 이 곳 시장은 평소에도 붐비지만 명절을 앞둔 터라 매우 혼잡하다. 새로 지은 자갈치시장 뒤편 부두가로 가니 갈매기들이 사람들을 반긴다. 바다에서 먹이를 제대로 못 구해먹어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얻어먹는 재미를 붙이고 사나보다. 그들의 나는 모습이 자유롭고 아름다워 카메라에 담았다.
갔던 길을 다시금 돌아오다 예전에 내가 한 번씩 들렀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꼼장어 소금구이와 양념 각각 50,000원어치를 시켰더니 생선구이와, 굴, 개불이 서비스로 나왔다.
꼼장어는 며칠 전 친구와 진주에서 사먹었던 양의 두 배 정도로 많이 준다. 안주가 좋으니 소주가 금방 동이 난다. 주인여자가 두병씩을 가져다주는데 양이 안찬다고 더 많이 가져오란다.
아무튼 적은 돈으로 실컷 배부르게 먹었다. 모두가 붉으스레한 얼굴로 시내버스에 올라 사상터미널로 왔다. 우리가 도착하자 진주행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 뒷 자석에선 탄 우리들은 내내 한약재료와 한의학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어느새 진주에 도착하였고, 날씨는 지독스레 추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금정산 등반을 마치고 포만감을 느낄 정도의 맛난 자갈치 음식을 먹은 것에 행복해했다.
그리고 곧장 집으로 갔느냐고? 그건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고 싶다. 다만, 멤버들은 모든 면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는 꾼들이라는 사실만 알아주기를 바라며...
첫댓글 예전에 등반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하네요.. 그땐 아마 여름이였을것 같아요.. 겨울이라 휑하는 분위기는 있다 그쵸.. 나름 매력이긴 하지만.. S 라인 죽인다..ㅎㅎㅎ
올해는 왜 이리도 추운지. 설 지나면 조금 풀린다나요.
꼼장어에서 김이 모락모락...침이 돕니다.
금정산 산행기를 구수한 뒷방 이야기 처름 잔잔하게 쓰주신 부평초님의 글 재주가 부럽고요
신라 해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 처름 부산금정산 산행기여 빛나거라...
금정산 번개 산행을 같이한 여덟분들 수고햇습니다 그리고 즐거웠습니다...안녀ㅡㅇ
친구가 부대다닐적에 갔는데 자갈치가서 꼼장어 시켜먹다가 너무맛있어서 둘다 돈다틀어마시고 장전동까지 걸어간적 있읍니다 너무 그립습니다
내용이 진실되고 재미있군요. 저도 산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ㅋㅋ 자주 들러도 되나요//??
매일 오셔도 절대 안말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