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특별했던 여행
2001년 어느 봄날, 알타이하우스 조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스님! 일본에 재즈공연 보러 가시겠습니까?”
“웬 공연이우?”
“스님이 직접 공연을 봤으면 좋겠다고 했던 지미 스캇이 보름 후 일본 오카야마에서 디너쇼 형식으로 공연을 한답니다.”
“예약이 되면 갑시다!”
이렇게 뜬금없이 재즈공연을 보기위한 일본행 여행계획이 잡혔었다.
미타사에서 다회시간에 가끔 ‘올 더 웨이(All the way)’를 들려주기도 했던 지미 스캇(Jimmy Scott)이 가까운 일본에서 공연을 한다니 가 볼 수밖에. 우리나라에는 초청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였으니 어쩌랴. 미국 오하이오에서 1925년에 태어난 인물이니 연세가 이미 76세의 노인[2001년 당시]. 언제 또 기회가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 아닌가.
지미 스캇은 워낙 키가 작아 ‘리틀 지미’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인물. 그의 음악을 들려줄 때마다 사람들은 여자 가수냐고 물었을 만큼 호소력 짙은 여성적인 목소리 소유자이다. 개화사 카페 음악으로도 나오는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를 걸걸하게 불러주시는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1909~1971)과 한 때 절친한 사이이기도 했다는 살아있는 전설이었지만, 웬일인지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소개가 되지 않았던 것.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이름만으로도 눈이 번쩍 뜨인다는 빌리 홀리데이(예명,1915~1959)와 레이 챨스(1930~2004)가 좋아했다는 인물이니 알만하지 않은가.
보름 후 우리는 간사이공항으로 가는 ANA항공에 몸을 싣고 있었다. 그런데 이 비행기 보소. 그냥 연착하고 마네. 가능하면 법회를 빼먹지 않으려 빡빡하게 시간을 조정했더니---, 이거 낭패 아닌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서둘러 수속을 밟고 전철역으로 내달았는데도, 우리가 타야만 하는 직행전철은 떠나고 말았다. 우리 계획대로라면 간사이공항-직행전철-오사카 역-신칸센기차로 오카야마 도착-호텔 체크인 및 디너쇼 재즈공연으로 연계되어야 하는 것. 방법은 딱 하나로, 고베 역으로 내달려 예정된 신칸센기차를 타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슴없이 택시를 타고 “고베 하야꾸(고베로 빨리)!”를 외쳤다. 택시기사님이 우리 표정을 살피더니 고속도로를 사정없이 내달렸다. 아아~어쩌랴 -_- 미터기 넘어가는 소리가 내 심장을 때리누나. 결국 비행기 삯보다 더 비싼 25,000엔을 내고 우리는 신칸센에 무사히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우리는 전설의 인물 코앞에서 저녁을 먹고는 재즈를 라이브로 즐길 수 있었다. 그 두 시간동안 나는 그때까지 지불한 비용의 몇 배에 달하는 기쁨을 얻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일본 기획사에서 준비한 열 장 남짓한 음반을 구입하려하는데 주인공들이 나왔다. 리틀 지미가 내 승복을 보더니 말을 걸어왔다. 바다건너 왔다는 얘기를 듣더니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천진하기까지 하다. 그리고는 일본 기획사 직원에게 부탁하더니 같이 기념촬영을 하자고 한다. 한 시간 후 바람을 쐬러 로비에 나갔더니 피아니스트가 묵직한 책을 읽다가 인사를 한다. 철학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시끌벅적한 뒤풀이가 대부분인데, 이들은 그새 고요한 일상으로 돌아가 있다. 참 특별한 체험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오카야마(岡山)의 자랑이라는 고라꾸엔(後樂園)에 갔다. 300여 년 전에 14년 동안 조성했다는 오카야마의 이 정원은 일본 3대 유명정원 중 하나이다. 일본의 정원을 가보면 너무 인위적으로 조성된 느낌을 강하게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치밀하게 계획된 구조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한나절을 여유롭게 고라꾸엔에서 즐긴 우리는, 인근에 있는 오카야마성으로 갔다. 일본의 옛 성은 흰색과 짙은 회색으로 조화를 맞춘다. 성 주위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인공 물길인 해자가 있어서 약간은 멋스럽게 보인다. 오카야마 성에서 뜻밖의 사람들을 만났다. 연인으로 보이는 두 젊은 남녀는 휠체어에 앉은 처녀를 청년이 밀어주며 성의 뜰에서 오가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젊은 처녀에게서 노파 같은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되었다. 일본에 갈 때마다 볼 수 있는 거식증환자였다. 다이어트 후유증으로 음식을 먹기만 하면 토해버리기에 급속하게 영양실조가 되고, 몸은 마치 노인처럼 된다는 무서운 증상이다. 잿빛의 옛 성과 맞물려 쓸쓸한 그림자가 짙어졌다. -_-
삼일 째, 오카야마에서 전철로 15분 정도 걸리는 구라시끼(倉敷)를 걷고 있었다. 수양버들이 우거진 옛 운하를 따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하라미술관을 찾아가는 길. 이 미술관은 일본 거부의 상징처럼 불린 구라시끼방적의 2대 사장인 오하라 마고사부로(大原孫三郞)가 화가이자 친구였던 코지마 토리자로의 도움으로 명화들을 수집했고, 1930년 그를 기념하여 세운 사설미술관이다. 그럼에도 일본 최대의 미술관이라면 알만하지 않은가. 8관까지였던가? 어쨌든 파리의 세계적인 오르세미술관을 이미 본 나로서도 깜짝 놀랄 만큼 유명한 작품들이 꽉 차 있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엘 그레코, 샤갈, 고갱, 모네, 마네, 르노와르, 로댕, 모딜리아니, 피카소,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등등이 이 조그만 시골에 다 모여 있다니 놀랍지 아니한가. 아! 우리나라의 물방울 전문화가인 김창렬 화백의 작품도 소장되어 있었다.
사실 구라시끼는 단순한 시골 동네가 아니다. 그 많은 일본의 관광지 중에서 일본적인 색채가 진하기로 따지면 교토·나라와 더불어 이 구라시끼가 들어간다. 그러니 미술관뿐만 아니라 주변 일대가 모두 거대한 미술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그날 솔직히 해가 지는 줄을 모르고 돌아다녔다. 그 해박한 조사장님의 얘기를 들어가면서····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을 가기가 어렵다면 가까운 구라시끼의 오하라미술관을 가 보시는 것이 어떠시려나.
✒아참! 지미 스캇 할배는 아직 살아계신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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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6세가 되는 리틀 지미 스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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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대 유명 정원인 오카야마의 고라쿠엔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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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야마의 옛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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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시끼의 오하라미술관 옆을 지나는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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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라미술관의 본관과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아담한 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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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라미술관 본관에서 분관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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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시끼의 오하라미술관 주변의 멋진 모습]
첫댓글 마이크를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감싸쥔~~~
표정은 마치 어머니가 애기에게 젖을 물리고, 한없이 자애롭고,따뜻하고, 행복하게 내려다보듯....
아기가, 젖을 물고, 한 손 으로 한 발을 만지며, 쳐들며 , 장난기 어린 ~~눈으로 행복에 겨워 엄마를
올려다 보듯 ~~~~~
!! 손은!!마~ 악 농사일 마치고 돌아온~~할머니 손!손!!~~~~~~
이 까막눈이 어디에서 이런 기막힌 장면을 볼 수 있겠습니까???????/
공부한 이는 다르군요. 사진 올린 핵심을 읽었습니다. 위 얘기에서 감춰놓은 요점을 바로 파악했습니다. 지미 스캇은 고행자처럼 살면서 한편으로는 성자(?)처럼 살기도 했던 분입니다. 단순히 그가 유명해서가 아니라 그의 생애에 대한 공감이 바다를 건너게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간디기념관에서 감동받은 얘길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런 이들의 삶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기에 사진 한 장으로 내 얘기를 대신 했던 것입니다. 훌륭하십니다. ^^
언젠가 토요법회 다회 시간에 그 분의 목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 얼마나 정신을 빼앗겼는지 ~ 그 분의 성함과 프로필을 깜빡 하고~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음색만 남아서 아직도 뱅뱅~ 비슷한 이름을 인터넷으로 뒤져도 퍼즐을 못 맞춰 답답~ 종무소에 물어 봐도 제가 단서를 못 잡으니 깜깜~언젠가 한 번쯤 그 분의 목소리 다시 들려주시겠지 했는데~ 바로 그 분 "지미 스캇" 차암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숨겨진 삶의 모습을 알게 되면 정말 멋진 분임을 공감하게 된답니다.^^
루이 암스트롱은 익숙하지만 리틀 지미 스캇은...! 예술인의 끊고 맺음이 분명한 생활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의례히 뒷풀이로 어수선했을 상황인데도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간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지미 스캇은 째즈라는 음악을 통해 삶의 모든 면을 전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감사합니다( )( )( )
그가 중시했던 것은 재즈 이전의 그 무엇입니다. 그렇게 유명했던 그가 잠적해 버렸을 때, 한참 후에 찾았을 때는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 옆에서 자기의 노래로 위로하며 지내더라는 얘기 등등---- -_-
어제 "지미 스캇"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찾아서 그분의 삶도 엿보고요.여러 방면으로 삶을 풍요하게 해주시는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전에는 아예 이름도 뜨지 않았는데 지금은 조금 나아진 것 같더군요. 아직 그 분의 숨겨진 비화같은 것은 거의 모르고 있나 봅니다. 그래도 음반을 구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나게 바뀐 것이라 할 수 있지요. ^^
지난번 교토에서 머무는 동안 벼르고 있었던'히메이지성'은 거리상 일정에 밀려 끝내 못가고 ~가까운 '니조성'의 성곽과 오래된 소나무와 연못 정원이 조화로운 일본의 성(약간 인공美도 있었지만)을 처음 보고~ 사진으로 만나는 오카야마의 옛 성!!! ~ 니조성을 둘러보며 ~칼잡이들에게도 풍류와 품격이? ~느낀 것 같습니다!
분별을 놓고 보면 쇠똥구리에게도 격이 있지요. 이 세상은 거룩한 것 따로 보잘 것 없는 것 따로 있질 않으니까요^^ 그건 다만 사람들의 머리속에서서만 존재할 것입니다. ^^
틈만 나면 불쑥불쑥 나타나는 분별심~ 차암 한심합니다!
때로는 분별이 좋을 수도 있답니다. 마치 고목처럼 암반처럼 생각이 얼어붙은 상태에 빠져 그것이 마치 대단한 경지인냥 끌어안고 있는 도깨비들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