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학교가 부산해졌습니다. 캠퍼스를 바삐 오가는 새로운 얼굴들이 점점 더 눈에 띄고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기숙사에 들어오는 학생들과 그런 학생들 곁에서 같이 짐을 나르고 계시는 부모님들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긴 여름잠을 자던 캠퍼스가 깨어나는 시간이 되었지요. 아울러 잠시 하안거(라고 쓰고 "게으름"이라고 읽습니다.)에 들어갔던 이 블로그도 속세로 나시 나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지난 월요일부터는 이번 학기에 새로 올바니 대학에 입학하는 외국인 학생들의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미국인 학생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은 이미 지난 7월에 있었지요. 2박 3일 동안 기숙사에서 숙박을 하며 이루어지는 미국 학생들의 오리엔테이션 기간 동안에는 학교에 대한 여러 가지 소개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 학기 수강 신청까지 하게 됩니다. 아울러 신입생들의 부모님들 중에서 여유가 있는 분들은 그 기간에 학생들과 같이 와서 학교 근처 호텔에 머물며 학교에서 진행하는 부모님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부모님들을 위한 프로그램 중에는 학교 내의 각 종 시설들과 서비스를 소개하는 일종의 정보 엑스포가 있는데 도서관도 그 자리에 꼭 참가합니다. 그리고는 그 곳을 찾으시는 부모님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지요. " 혹시 댁의 자녀가 수업을 하다가 모르는게 있어서 집으로 전화를 하거든 도서관에 가서 물어보라고 이야기해 주세요." 실제 신입생들 중에는 과제를 하다가 막히면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묻는 학생들도 있기에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진행하고 있는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들 중에는 몇 차례의 도서관 투어가 들어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나라에 도서관이 있지만 각 나라마다 도서관이 운영되는 방식이 다르고 또 도서관에서 쓰이는 말들도 낯선 말들이 있으니 그런 내용들을 도서관 투어 동안 찬찬히 안내합니다. 제가 맡은 투어에서는 여러 가지 도서관 서비스들을 소개한 후 그것들이 모두 학생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니 꼭 이용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특히 등록금 본전을 꼭 찾으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오리엔테이션의 마지막 날인 수요일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그 학생들을 모아놓고 환영 리셥션을 열었습니다. 도서관이 딱딱하기만한 곳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맛있는 음식과 여러 가지 선물들을 준비해두고 경품 추첨 같은 행사도 했지요. 특히 올 해는 학교 인근의 한 수퍼마켓에서 전기 밥솥을 협찬해주어서 그것을 선물로 받은 학생들이 아주 좋아하기도 했었습니다. 무작위로 추첨을 하여 선물을 주었는데 용케 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 온 학생들이 그 밥솥을 받아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녁에 밥솥을 사려했다는 한 중국 학생은 앞으로 매 일 도서관에 와보겠다고 하더군요. 그런 행사를 통해 도서관에 오면 언제나 무언가 유용한 것을 무료로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학생들이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저희들의 바램이지요.
그리고 다가오는 일요일에는 신입생들과 다시 학교로 돌아온 재학생들을 위해 여름 내내 준비한 도서관 오픈 하우스 행사를 합니다. 여름 동안 준비한 여러 가지 행사과 선물들, 그리고 음악과 음식이 어우러지는 잔치가 열리겠지요. 그리고 나서 그 다음 날부터 새 학기가 시작이 됩니다. 동료 사서들은 조용했던 여름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새학기가 시작되는 것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입니다. 새학기가 시작되는 첫 날부터 참고 봉사대에서 근무하게 되는 저 역시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이미 몇 주 전부터 바쁜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행사를 준비하고 또 몇 차례 도서관 투어를 진행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몇 주 전부터 벌써 연구 주제를 들고 저를 찾아온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일찍부터 서두르는 것이 아니냐는 농담 섞인 제 말에 정색을 하며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을 것 같다고 걱정을 하는 학생을 보며 같이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자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위한 역사책에 삽화를 그린다는 삽화가 한 분을 만나 19세기 초 필라델피아에서 살았던 한 흑인 가족에 대한 자료를 찾느라 몇 시간을 같이 헤메기도 했었습니다. 단 한 장의 삽화 때문에 몇 달째 자료들을 찾아 헤메고 있던 그 분을 뵙고 많은 감명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비록 방학 기간 중이었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하는 일은 학기 중에 하는 것과 비슷하게 진행이 되고 있었지요.
조용하고 엄숙하기만한 도서관이 아니라 학생들로 붐비고 떠들썩한 도서관을 보면서 저는 그것이 도서관의 참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록 도서관이라는 단어에서 사람들은 "정숙"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만 실제 도서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무수한 대화입니다. 도서관에 소장된 수 많은 책 속에 들어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목소리가 도서관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곳이 도서관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책을 읽는 사람들끼리 대화가 이루어지고 그것을 통해 또 다른 책속의 사람들과 대화로 이어지는 곳이 도서관이기도 합니다. 때로 그 대화는 치열하고 시끄럽습니다. 하지만 그런 대화들을 통해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는 발전을 해 온 것이겠지요.
비록 한국의 도서관들이 도서관이 아니라 독서실로 더 많이 사용되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만 서서히 그런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고 또 도서관에서 일하시는 많은 사서 선생님들은 새로운 자료와 서비스를 준비해서 더많은 대화가 도서관에서 이루어질 수 있게 계속해서 노력하고 계십니다. 이제 새학기가 시작되어 학교로 돌아가시는 학생들께서는 가장 먼저 도서관에 한 번 들러보십시오. 자신이 공부하는 주제 그리고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어떤 새 책과 새 자료들이 방학동안 도서관에 들어 왔는지 살펴보시고 흥미로운 책이 있으면 빌려가십시오. 그리고 책이 없거든 책을 사달라고 신청하시구요.
사서들만의 힘으로 도서관을 키워나가기는 너무 힘이 듭니다. 도서관은 관심을 가지고 찾아주는 이용자들이 계실 때 더욱 더 발전해 나갈 수 있습니다. 도서관을 찾아가서 그 곳에서 대화를 해 보십시오. 책 속에 들어있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또 그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 해 보십시오. 아울러 책을 읽으며 자신과도 대화를 해 보십시오. 그런 대화 속에서 사람은 성장을 하고 사회는 발전을 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가장 이상적인 도서관을 떠올릴 때마다 저는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이라는 벽화를 떠 올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왁자지껄 떠들며 대화를 나누는 그 모습들 속에서 조용한 도서관의 이미지는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생각과 생각이 만나 교류하고 대화를 나누며 그 속에서 사회가 성장해나가는 원동력을 찾는 광장의 모습을 봅니다. 도서관은 바로 광장입니다. 디오게네스처럼 편하게 계단에 앉아 느긋하게 글을 읽어도 좋고 헤라클리투스처럼 글을 쓰다 생각에 몰두해도 좋습니다. 이 광장에서는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가 자유롭게 오가고 또 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공유합니다. 찾아 보시면 여러분 주위에도 이런 광장이 있습니다. 한 번 가보십시오. 가시거든 신문지와 책가방으로 담을 쌓지 마시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십시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만일 아테네 학당이 광장이고 또 도서관이라면 과연 도서관 사서들은 그 광장의 어디에 있을까요? 광장을 만들고 멍석을 깔아^^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놓고는 구석에서 그 모습을 살피며 "이만하면 어떤가요?" 하고 자랑하는 라파엘로의 모습에서 저는 도서관 사서의 모습을 엿 봅니다. 새로 맞이 하는 한 학기 동안에도 풍성한 결실을 거두시길 빕니다.
첫댓글 이 글은 친구가 답례로 보내준 글이어서- 배울 바가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