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팀 활약 두드러진 96년 히말라야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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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도 한국대의 광역 히말라야 진출은 총 26개 팀(천산 지역 포함)으로 전년도 24개 팀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그러나 네팔 지역 7팀(봄 1, 가을 3, 겨울 3팀), 인도 지역 5팀, 파키스탄 지역 6팀, 중국 4팀, 구소련 천산 지역 3팀으로 고르게 진출, 네팔 편중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보여주었다. 이들 원정대에 참가한 대원 수는 모두 180명이었다.
96년도의 또다른 특징은 확산 일로에 있는 대학산악부의 히말라야 원정을 들 수 있다. 전체 26개 팀의 61퍼센트에 해당하는 16개 원정대가 대학산악부팀으로 대원 수는 69퍼센트에 해당하는 124명을 기록했다. 일반팀이나 합동대에 참가한 대학산악부 출신까지 합하면 대학산악부 출신 산악인들의 히말라야 원정 참여율은 전체 원정대원의 80퍼센트에 이를 것으로 분석되었다.
특히 인도히말라야로 진출한 원정대의 전부와 파키스탄히말라야 6개 원정대 중 5개 팀이 대학산악부로 집계되었다. 이것은 인도 가르왈 지역과 파키스탄 발토로 지역에서 벽등반을 선호하는 대학산악회의 원정 추세 때문으로 분석되었다.
이렇듯 90년대 중반의 한국 히말라야 원정은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대학산악회팀들이 경량등반과 거벽등반을 주도하며 대거 진출하는 추세로 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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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정상을 감춘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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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히말라얀클럽 다울라기리-안나푸르나원정대
93년 초모랑마를 종단등반한 한국히말라얀클럽이 다울라기리(8,167m)와 안나푸르나(8,091m)를 연속등정하면서 96년 히말라야 지역에서 최초의 승전보를 울렸다. 5월 1일 엄홍길대원과 셀파 2명이 다울라기리를 등정한 데 이어 3일에는 박영석, 김헌상대원이 셀파 2명과 함께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올렸다.
고인경단장(53)과 성순제대장(50)의 지휘로 엄홍길(36), 박영석(33), 홍성택(30), 김헌상대원(27) 등 모두 6명으로 구성된 이 원정대는 첫목표인 다울라기리의 베이스캠프(4,700m)에 4월 6일 도착해 곧바로 등반을 개시했다.
대원 4명과 셀파 3명이 4월 12일 북동릉상에 제1캠프(5,900m)를 설치하고 14일 2캠프(6,800m)에 올라 다음날 첫번째 정상공격을 단행했다. 그러나 강풍으로 공격은 좌절되고 일단 베이스캠프로 하산했다. 며칠 뒤 2차 공격에 나선 원정대는 4월 20일 3캠프(7,300m)를 설치하고 다음날 정상을 향했다. 그러나 깊은 눈을 러셀하느라 체력과 시간을 소모한 공격조는 다음날로 정상공격을 미뤘다. 그러나 밤새 쏟아진 눈을 헤치고 도달한 고도는 4캠프(7,700m) 지점에 그쳤다.
다시 베이스캠프에 모인 전대원은 등반기일이 부족한 이유로 팀을 둘로 나누기로 결정했다. 박영석, 김헌상대원이 헬기로 안나푸르나로 이동하고 엄, 홍대원은 다울라기리를 계속 공략했다. 5월 1일 새벽 3시, 4캠프에서 마지막 공격에 나선 엄대원과 나티셀파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오후 1시경 마침내 다울라기리 정상에 올랐다. 엄대원으로서는 7번째 8천미터급 등정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한국대로서는 88년 가을 부산합동대(대장 조정술) 이후 두 번째 등정이었다.
한편 안나푸르나로 이동한 박영석, 김헌상조는 4월 28일 베이스캠프(4,300m)에 도착해 셀파들이 이미 설치해 놓은 길을 따라 북동 버트레스의 3캠프(6,200m)까지 빠른 전진을 했다. 5월 2일에는 숨은 크레바스를 지나 7,300미터 지점에 4캠프를 구축했다. 다음날 새벽 2시 두 대원과 두 셀파가 마지막 캠프를 떠났다.
더치립 상단의 설사면을 우측으로 트레버스하며 8시간 오르자 오전 10시 정상부 암벽지대에 도착했다. 그 암벽지대의 좁고 급한 설사면을 3시간여 등반한 끝에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베이스캠프 도착 4일 만의 빠른 등정이었다. (사진 6-15, 6-16, 6-17,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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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팀이 주도한 인도히말라야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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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인도히말라야로 진출한 5개 팀 모두가 대학산악회팀으로 짜여진 가운데 5월부터 9월까지의 등반기간 동안 모두 4개 팀이 등정에 성공하는 성과를 올렸다. 특히 이들 팀들은 높이보다는 루트에 중점을 두어 등반에 임했다. 청주대팀이 한국에서 세 번째로 도전한 차우캄바 2봉(7,068m)에 세계 2등을 기록하며 올랐고, 동아대산악회팀도 마나파르밧 2봉(6,771m) 세계 2등을 기록하며 올랐다. 또한 영남대산악회팀은 성봉 난다데비 지역에 최초로 진출, 동봉(7,432m)을 등정하는 데 성공했고, 경남전문대팀은 쉬블링(6,543m)을 서릉으로 올랐다. 오직 경상대팀만이 탈레이사가르(6,904m)에서 아쉽게 패했다. 이렇듯 96년의 인도히말라야는 대학산악회가 주도하며 성과를 올렸다.
94년 가을에 인도히말라야 가르왈 산군의 차우캄바 2봉 세계초등정을 노리고 도전했다가 6,058미터에서 패퇴한 바 있는 청주대산악부가 2년 만에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청주대학교 개교 50주년을 기념한 이 원정에는 청주대 교수인 남기창대장(55)을 중심으로 조철희등반대장(26), 이병주(27), 성낙무(26), 김승헌(24), 김남정(24), 정규석(21), 허재성(20), 조남석대원(29) 등 9명이 참가했다.
▲ 차우캄파 1봉과 2동(차우캄바 1봉과 2봉. 왼편으로 삼각형으로 솟은 설봉이 1봉이며 우측 끝에 보이는 보이 2봉이다.
4월 26일 베이스캠프(4,700m)를 구축한 원정대는 루트를 북서릉으로 잡고 다음날부터 등반에 들어갔다. 5월 2일 전진베이스캠프(5,400m)를 구축하고 이어서 3일에 1캠프(5,500m), 7일에 2캠프(5,800m)를 설치 후 8일에는 3캠프(6,300m)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5월 14일 새벽 3시 조철희 이병주대원이 마지막 캠프를 떠나 9시간여 등반끝에 마침내 정상을 밟았다. 이들의 등정은 이미 전년도 7월에 인도 네루등산협회팀이 초등정을 차지했으므로 세계 2등으로 기록되었으나 북서릉으로는 초등을 이루는 족적을 남겼다. 후에 이 루트는 청주대산악회의 이니셜을 딴 ‘CJUA’루트로 명명되었다.
경상대학교 개교 50주년을 기념하여 꾸려진 한국의 다섯 번째 탈레이사가르원정대는 북벽에 신루트를 개척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안재홍대장(38)의 지휘아래 이수호(32), 최홍권(30), 손우진(27), 유성호(26), 정철경(25), 강성규(30), 문성훈대원(26) 등 8명으로 구성된 경상대팀은 4월 29일 베이스캠프(5,065m)를 건설했다. 이어서 북벽 공략에 나선 이들은 5월 1일 제1캠프(5,300m), 6일 2캠프(5,600m), 17일 3캠프(6,100m)까지 전진했다. 그러나 눈이 내리고 루트의 상태가 나빠 더이상의 전진이 어려워졌다.
후퇴한 경상대팀은 21일 북서릉으로 루트를 변경해 등반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22일 1박 2일분의 식량과 장비를 챙겨 북서릉으로 출발한 이들은 강성규, 문성훈, 정철경대원을 최종 공격조로 결정했다. 60도 정도의 설사면과 바위지대를 오른 끝에 6,500미터 지점에서 비박을 한 세 대원은 24일 등정의 확신을 가지고 정상을 향했다. 그러나 정상 바로 앞에는 200미터 정도의 암벽이 버티고 있었다. 장비도 부족하고 체력이 떨어진 이들에게 그곳을 통과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하는수없이 이들은 해발 6,630미터 지점에서 아쉬운 하산을 해야만 했다.
94년 우정합동대와 연세대, 95년 목포전문대의 실패에 이어 경상대팀의 실패는 탈레이사가르를 한국산악계의 지난한 과제로 떠오르게 했다.
인도 동부 가르왈히말라야의 힌두 성봉 난다데비 산군에 영남대산악회팀이 국내에서는 최초로 진출했다. 인도히말라야의 최고봉인 주봉(7,816m)은 82년 11월부터 유네스코로부터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등반이 금지되어 오다가 93년 인도팀에 의해 등정되었고, 그 후 94년부터 동봉(7,434m)만이 외국인에게 개방되었다. 난다데비는 산스크리트어로 다행과 축복을 의미하는 ‘난다(Nanda)’와 여신을 의미하는 ‘데비(Devi)’의 합성어로 축복의 여신을 뜻한다.
주봉은 1936년에 영국-미국합동대에 의해 초등정되었다. 동봉은 39년 폴란드대에 의해 초등정된 이래 입산이 금지되었던 82년까지 프랑스(51년), 인도(74년. 프랑스와 합동), 일본(76년. 등정 후 주봉까지 종주 성공)팀에 의해 등정된 바 있다.
영남대산악회는 89년 안나푸르나 2, 4봉을 등정하고 사망한 고 김용규, 정갑용대원의 뜻을 기리기 위해 원정대를 꾸렸다. 정상모대장(42)과 정준모 등반대장(32), 그리고 이수진(31), 장성욱(31), 신운용(32), 이한대원(24) 등 6명으로 편성된 영남대팀은 8월 17일 난다데비 내원에 베이스캠프(4,500m)를 건설했다.
19일부터 남릉을 향해 등반을 시작한 이들은 4,900미터 지점에 전진베이스캠프를 구축하고 가파른 암벽과 좁은 리지를 통과하여 롱스텝 콜(5,990m)에 25일 제1캠프를 설치했다. 이어서 남서릉 6,250미터 지점까지 고정로프를 설치한 끝에 29일 2캠프를 설치하고 30일에는 설릉을 통과하여 3캠프(6,500m) 설치를 마쳤다.
9월 1일 새벽 2시 10분 정준모, 이수진대원과 셀파 2명이 마지막 캠프를 떠나 등정길에 나섰다. 경사가 심한 벽을 올라 리지를 등반한 끝에 8시 30분경 정상 직하의 설사면에 도착했다. 10시경 정상으로 연결되는 150미터 높이의 벽에 어렵게 올랐으나 셀파들이 ‘고정로프 없이는 칼날리지를 갈 수 없다. 여기가 정상이다’라고 주장하며 등반을 거부해 일단 하산했다. 그러나 이것이 이들의 최고 도달지점이 되었다. 9월 6일 정상 사진을 찍기 위해 다시 3캠프까지 올랐으나 악천후로 후퇴하고 만 것이다. 영남대팀은 그들이 오른 고도가 7400미터이며 94년 스페인팀도 같은 장소에서 사진 촬영하고 하산했다고 주장했으나 ‘이것이 확실한 정상등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인도 서부 가르왈히말라야 강고트리 산군의 북부에 깊숙이 위치해 등반대들이 별로 찾지 않던 마나파르밧 산군에 한국의 동아대산악회가 진출했다. 동아대팀이 개교 50주년을 맞아 1봉(6,794m) 초등정과 2봉(6,771m) 루트 초등을 노리고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동아대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1봉은 1970년 10월 8일 인도팀에 의해 이미 등정되었다. 2봉은 95년 인도대에 의해 북서릉으로 등정된 바 있다.
▲ 마나파르밧 2봉 정상에 오른
이재규대원과 밍마 셀파
8월 26일 바스키탈에 베이스캠프(4,800m)를 설치한 동아대팀은 정병은단장(56)과 길광호부단장(45), 정민규대장(41), 이석호부대장(35), 박병환등반대장(36), 이종언(33), 조벽래(27), 정광호(26), 이재규(25), 김태완(25), 진동철대원(24) 등 10명으로 구성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인도와의 합동대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1명의 인도대원과 4명의 네팔인 셀파를 고용했다. 원정대는 1, 2봉의 등반루트가 6,400미터 안부에서 동릉과 서릉을 이루며 갈라지기 때문에 그 부근에 마지막 캠프를 설치하고 양봉을 등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8월 31일 전진베이스캠프(5100m)를 구축하고 곧바로 다음날 1캠프(5,470m)를 설치했고 3일에는 칼린디빙하가 거의 끝나가는 지점에 2캠프(5,800m)를 설치했다. 그리고 1봉쪽으로 붙어 설사면을 횡단한 끝에 안부 200미터 못미친 곳에 7일, 3캠프(6,200m)를 설치했다. 마침내 9일, 2봉을 향해 공격조가 출발했으나 눈사태로 후퇴했고 다음날은 1봉팀도 강풍으로 등반을 포기했다.
9월 11일 새벽 4시, 1봉에 대한 2차 공격이 시작되었다. 대원은 길광호, 김태완, 진동철대원과 고소포터 1명이 참가해 6,470미터 지점까지 전진했으나 판상눈사태를 만나고 커니스의 붕괴로 진대원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사고가 발생해 후퇴하고 말았다.
9월 12일 4시 20분, 전날의 사고로 1봉 등정을 포기한 원정대는 2봉 정상공격에 나섰다. 공격조는 조벽래, 이재규, 그리고 셀파 1명으로 구성되었다. 5시 30분에 안부를 통과하여 서릉으로 붙은 이들은 오후 3시 마침내 2봉 정상에 올라섰다.
이미 한국대가 94년부터 네 차례나 도전해 95년 9월에 단국대팀에 의해 서릉 노멀루트로 등정된 바 있는 쉬블링(6,543m)에 이번에는 경남전문대산악회에서 도전장을 냈다. 정지택단장(38)과 박민호대장(31)의 지휘아래 이남국(39), 최기영(27), 최호승(24), 정현국(20), 김영진(20), 정진열(33), 정성룡(28), 김상민대원(27) 등 10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등반루트를 난이도 높은 북벽으로 잡았다.
9월 5일 타포반에 도착 베이스캠프를 건설한 이들은 다음날 전진베이스캠프(4,650m)를 구축하고 12일부터 북벽 등반을 시작했다. 그리고 15일에는 제1캠프를 5,300미터 크레바스 속에 설치하고 다음 등반을 노렸으나 갑작스런 폭설과 눈사태를 만나 눈에 묻히기 직전 탈출하여 구사일생으로 하산했다. 이 사고로 장비와 식량의 절반 이상을 분실한 원정대는 북벽을 포기하고 서릉으로 등반루트를 변경했다.
9월 19일에 서릉 공략을 시작한 이들은 그날로 1캠프(5,500m), 그리고 21일에는 정진열, 최호승, 김연진 등 3명이 정상공격에 나서 5,950미터 지점에 이르러 가파른 바위 밑에서 비박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4시 30분 출발, 오후 1시 20분 정상에 도착했다. 이로써 쉬블링은 한국인에게 두 번째 등정을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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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에 6개 팀 진출, 3개봉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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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도 파키스탄히말라야로 진출한 한국대는 모두 6개 팀으로 이중에서 3개 팀이 등정에 성공했다. 브로드피크(8,047m)에 경희대, 가셔브룸 2봉(8,035m)에 계명대, 그리고 트랑고 네임리스타워(6,239m)에 광주전남학산련 소속 대원 3명이 도전해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에 가셔브룸 4봉(7,925m)의 서울시립대산악회와 하라모쉬(7,490m)의 광양제철합동대, 그리고 울타르 2봉(7,388m)의 명지대산악회 등 7천미터급 난이도 높은 봉우리에 도전한 팀은 모두 등정을 이루지 못했다.
전년도에 거봉산악회 엄홍길과 빛고을산악회가 한국초등에 성공한 브로드피크(8,047m)에 경희대산악회가 93년도 실패에 이어 3년 만에 재도전에 나섰다. 두 번째로 원정대 지휘를 맡은 홍정표대장(42)을 중심으로 이치상등반대장(32), 한동근(30), 양재모(26), 임순택(25), 윤경인(26), 김정순대원(22) 등 6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6월 7일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다음날부터 서릉 노멀루트로 등반을 개시했다.
6월 9일 제1캠프(5,560m), 12일에 2캠프(6,150m), 7월 3일 3캠프(7,100m) 설치를 완료했다. 13일 한동근, 양재모, 임순택 등 세 대원이 1차 공격을 위해 베이스캠프를 떠났으나 2캠프에서 강풍을 만나 좌절되었다. 이어서 20일 다시 세 대원이 0시 20분에 3캠프를 출발 2차 정상공격길에 나섰다. 7,800미터의 안부를 거쳐 전위봉(8,036m)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30분, 여기서 임순택대원이 가슴 통증을 호소해 남기로 했다. 나머지 두 대원은 등반을 계속하여 오후 5시 28분 마침내 주봉에 올라섰다. 그러나 이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들 등정조는 전위봉에 남아 있던 임순택대원과 함께 눈보라 속에서 실종된 것이다. 등정의 환희와 비극이 교차한 등반이었다. 이로써 브로드피크는 88년 악우회 대원과 95년 빛고을팀, 그리고 경희대팀 3명을 합쳐 모두 5명의 한국산악인을 앗아간 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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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셔브룸 2봉 등정자 3명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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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학교 가셔브룸 2봉원정대
90년 히말출리 서봉을 동계초등한 바 있는 계명대산악회가 이번에는 세계 13위의 고봉인 가셔브룸 2봉(8,035m)에 도전장을 냈다. 회장을 맡고 있던 손칠규대장(46)을 중심으로 한승권부대장(40), 최병수(32), 박무택(27), 하찬수(28), 서상원(26), 이원재(24), 홍성대(24), 배기석대원(23) 등 9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6월 23일 발토로빙하에 베이스캠프(5,200m)를 건설했다. 25일부터 등반을 개시, 당일로 1캠프(5,900m), 29일 2캠프(6,400m)를 설치했다. 이후 계속되는 악천후로 전진이 늦어지다가 7월 22일에야 3캠프(6,900m)를 설치했고 23일에는 정상공격조로 지명된 최병수, 박무택, 하찬수대원이 4캠프(7,400m)에 올랐다. 이어서 다음날 아침 7시에 마지막 캠프를 떠난 세 대원은 눈발이 날리고 개스가 가득찬 가운데 정상을 향해 출발, 오후 3시 10분 정상을 밟는 데 성공했다. 이들 3명의 등정으로 가셔브룸 2봉을 등정한 한국산악인은 모두 17명으로 늘어났다. (사진 6-23)
93년 그레이트 트랑고를 등정해 주목을 받았던 서울시립대산악회가 3년만에 발토로 산군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난봉 가셔브룸 4봉의 동벽에 신루트를 개척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세워졌다. 동벽은 92년 일본의 야마노이 야스시가 단독으로 시도했다가 7천미터에서 돌아선 미답의 루트였다.
이동훈대장(41)과 이계남등반대장(29)의 주도로 김창호(27), 임생묵(25), 김용호(25), 김덕선(22), 강현수대원(20) 등 7명이 참가한 원정대는 7월초 베이스캠프(5,200m)를 구축하고 곧이어 5,900미터 지점에 전진베이스캠프를 설치했다. 이어서 동벽 6,850미터 지점에 1캠프를 설치하고 두 번째 캠프를 설치하기 위해 1개월 이상 등반을 계속했으나 이른 몬순의 영향으로 기상이 악화되고 암빙설이 혼합된 루트의 어려움으로 인해 7,400미터를 최고 도달지점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파키스탄 소카라코룸의 하라모쉬 산군에 첫 한국원정대가 진출했다. 광양제철소 직원들로 구성된 고암산악회에서 주봉 하라모쉬(7,409m)에 광양 지역 최초의 7천미터봉 등정이란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원정대를 결성했다.
하라모쉬(Haramosh)는 일명 사살산얀(Sasal Sanyan), 혹은 나가룽마(Naga Rungma), 피크58(Peak 58)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산으로 58년 오스트리아팀이 마니 피크(6,685m)를 경유하며 초등정했다. 한국대가 등반한 북서지릉은 78년 일본대가 59일간의 사투끝에 2명의 대원을 등정시킨 바 있다.
김병석대장(34)의 지휘아래 이성욱(28), 감성진(27), 김승화(27), 배경규(27), 배수열(27), 정기준대원(27) 등 7명으로 구성된 한국대는 5월 20일 마니빙하에 베이스캠프(3,700m)를 건설했다. 그러나 등반 초기부터 날씨가 나빠 전체 등반기일 42일 중 28일을 베이스캠프에 대기해야 했다.
6월 2일에 1캠프, 3일에는 2캠프를 설치하고 11일에는 가장 어려운 벽구간 700미터를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25일부터 다시 날씨가 나빠져 4캠프(6,100m) 에 도달하는 것을 끝으로 등반을 단념했다.
카라코룸의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미답봉 중 최고봉인 울타르 2봉(7,388m)에 한국의 명지대산악회팀이 세계초등정을 노리고 원정대를 결성했으나 2개월 먼저 등반에 나선 일본대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울타르는 그레이트 카라코룸의 바투라 산군 동부에 연봉군을 형성하고 있는데 1봉(7.329m) 외에도 2봉의 중앙봉(7,350m), 2봉과 높이가 비슷한 것으로 알려진 서봉(약 7,390m) 등 7천미터급 고봉과 6천미터급 봉우리가 모여 있는 산군이다. 울타르(Ultar)라는 이름은 그르쟈스키어로 ‘좁은 도로의 협곡’이라는 뜻으로 보요하그루 두아나실(Bojohaghur Duanasir)이란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산군의 사실상 주봉이라고 할 수 있는 울타르 2봉에는 74년부터 10여 개가 넘는 일본대가 도전했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95년까지 처녀봉으로 남아 있었다.
이미 일본대가 초등정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명지대팀은 제2등을 노리고 9월 16일 울타르 2봉의 남릉쪽 파이삼빙하에 베이스캠프(4,750m)를 구축했다. 다음날부터 일본대가 초등정한 남릉을 공략하기 시작했으나 낙석과 루트의 난이도로 인해 27일에야 제1캠프(5,600m)를 설치했다. 이어서 10월 1일에는 6,100미터 지점까지 진출해 2캠프를 설치했지만 이미 카라코룸의 10월 악천후가 닥치기 시작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이들은 10월 27일 철수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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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랑고 네임리스타워 두 번째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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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학생산악연맹 트랑고타워원정대
92년 재미교포의 모임인 남가주산악회에서 한국인 첫등정을 이룩한 거벽등반의 상징탑 트랑고 네임리스타워(6,239m)가 다시금 등정되었다. 광주전남학생산악연맹 소속의 문종국대장(28)과 서신종, 허환대원 등 3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둥게빙하에 베이스캠프(4,300m)를 구축했다. 세 대원은 하단부 숄더캠프까지는 유고루트로 등반한 다음 상단은 쿠르티카-로레탕루트로 등반을 계속하여 7월 29일 정상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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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산맥 진출 3팀 포베다와 칸텡그리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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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대 포베다로 가는 아름다운 원정대
부산산업대 포베다원정대
충북산악구조대 칸텡그리원정대
▲ 제1캠프 바로 밑의 눈처마를 오르는 원정대원들. 1캠프는 설릉이 검은 바위벽 밑으로 뻗어나간 지점에 있다.
92년부터 매년 구소련 카자흐스탄 공화국에서 열리고 있는 천산 국제캠프에 참가해 온 한국산악계는 96년에 3개 팀이 진출했다. 우석대와 부산산업대가 천산산맥 최고봉인 포베다(7,439m)로, 충북산악연맹 구조대팀이 칸텡그리(7,010m) 캠프에 참가하는 등 모두 23명의 한국산악인들이 구소련지역으로 진출했다.
유한대장(34)과 한왕룡(30), 고용석(24), 정봉수(33), 정하섭(26), 탁현균(22), 임대현대원(27)이 참가한 우석대팀과 최태식대장이 이끄는 6명의 부산산업대팀은 포베다 등정을 목표로 합동으로 등반을 개시했다. 7월 23일 북릉을 향해 등반을 개시한 양팀은 당일로 1캠프(4,200m), 24일 2캠프(5,000m), 그리고 29일에는 3캠프(5,800m)를 설치했다. 30일 심한 바람을 뚫고 4캠프(6,500m)를 설치한 원정대는 악천후로 두 차례의 실패끝에 8월 7일 5캠프(7,000m)에 도착했다. 그리고 9일 새벽 5시 10분 우석대의 한왕룡, 고용석대원과 부산산업대의 김인호대원이 마지막 캠프를 떠나 오후 2시 45분 정상을 밟았다.
한편 칸텡그리로 향한 충북연맹 구조대팀은 7월 21일 베이스캠프(4,200m)를 구축하고 다음날부터 등반을 개시했다. 연방희대장(43)과 김영식등반대장(32)을 중심으로 홍성호(43), 장태규(36), 김진영(31), 정대훈(25), 김남식(28), 홍순덕(26), 이대호(25), 박기성대원(39) 등 모두 10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서북릉을 따라 22일 1캠프(4,900m), 25일 2캠프(5,700m)를 설치했다. 이어서 29일 스몰 차이나(6,150m)를 넘어 3캠프(5,900m)를 설치하고 8월 6일, 1차 정상공격에 나섰다. 홍순덕, 정대훈, 이대호대원이 정상을 향했으나 정, 이 대원은 6,900미터 지점에서 후퇴하고 홍순덕대원만이 오후 6시 45분경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다음날 두 번째 정상공격에 나선 김진영, 정대훈대원도 오후 3시 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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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내 두 미답봉 초등정, 초오유에서 패러글라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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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중국측으로 진출한 한국대는 4개 팀이었는데 이들 중 대한산악연맹팀은 한국 히말라야 등반사상 최초로 중국의 미답 처녀봉 충모강리(7,048m)와 릉보강리(7,095m)를 초등정하는 개가를 올렸다. 또한 양산마스터즈 알파인클럽은 초오유를 서면으로 오르고 제2캠프에서 패러글라이딩으로 하산하는 새 기록을 수립했다. 또한 이 등정을 성공시킨 박정헌대원이 러시아팀과 합동으로 시샤팡마 중앙봉을 올랐다. 한편 국내 최초로 중국 사천성내 백설산맥의 공가산(일명 미냐공카·7,556m)에 진출한 전남합동대는 아쉽게도 6,350미터에서 단념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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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오유에서 국내 첫 패러글라딩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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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오유 패러글라이딩원정대
한국-러시아합동 시샤팡마등반대
매년 한국산악인들이 진출한 세계 6위봉 초오유에서 등정 후 패러글라이딩으로 하산한다는 새 계획이 양산마스터즈 알파인클럽팀에 의해 세워졌다. 히말라야 8천미터급 산에서 행해진 패러글라이딩의 역사는 85년 프랑스의 장 마르크 브와벵이 가셔브룸 2봉 정상(8,035m)에서 이륙하면서 시작되었다. 그후 88년 일본의 다카시가 초오유 정상에서 이륙, 베이스캠프까지 하강에 성공함으로써 이륙 고도를 높였고, 88년에는 다시 브와벵이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이륙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앞의 기록을 갱신했다. 국내에서는 92년 봄시즌에 푸모리(7,145m)에 도전한 부산빌라알파인클럽팀(대장 서성수)이 시도하려 했으나 등정자가 모두 실종되는 사고로 무산되었다.
▲ 원정대는 9월 23일 오전 10시 35분 총오유 등정에 성공했다. 왼쪽부터 김영기대원, 이상배대장, 변미정 대원
이상배대장(38)의 지휘아래 박정헌등반대장(25), 박희택(34), 김성상(35), 변미정(여·28), 박인희(여·23), 노종백대원(47) 등 7명이 참가한 이 원정대는 8월 27일 베이스캠프(4,900m)를 구축했다. 이어서 9월 1일 전진캠프(5,800m), 5일 1캠프(6,500m), 9일 2캠프(7,050m), 16일 3캠프(7,400m) 설치를 마쳤다. 23일 새벽 1시에 마지막 캠프를 떠난 이상배, 박정헌, 김영기, 변미정대원은 서릉을 무사히 올라 오전 10시 35분에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등정자 중 변대원은 여성으로는 국내 최초로 초오유를 오르고 8천미터급 산을 무산소로 오르는 기록을 수립했다.
그러나 이들이 본래 계획했던 정상에서의 패러글라이딩 활강은 포기했고, 대신에 김영기, 박정헌대원이 제1캠프에서 전진베이스캠프로 비행하여 내려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편 초오유 등반을 끝낸 이들 중 박정헌대원이 홀로 시샤팡마를 목표한 러시아팀에 합류 10월 10일 북면 노멀루트로 러시아대원 7명과 함께 시샤팡마 중앙봉에 올라 연속등정 기록도 세웠다. 이 등정으로 박대원은 94년 에베레스트, 95년 안나푸르나에 이어 8천미터 4개봉 등정자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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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내 두 미답봉 연속초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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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합동 충모강리-릉보강리원정대
대한산악연맹이 94년부터 추진해 온 중국내 미답봉 충모강리(7,048m), 릉보강리(7,095m) 원정계획이 우여곡절끝에 마침내 성사되어 한국-중국합동으로 원정대가 결성되었다. 대산련은 중국등산협회와 95년 한중우호등반협정을 체결하고 그 기념으로 중국내 3개의 7천미터급 미답봉 중 두 봉우리에 대한 등반허가를 받아낸 것이다. 세계초등정 기록을 4개봉밖에 갖고 있지 않은 한국으로서는 모처럼의 기회였다.
한국측에서는 대한산악연맹의 고용철부회장(64)이 총대장을 맡고 임문현대장(56), 장봉완등반대장(44)의 지휘아래 이충직(30), 문용성(31), 방정일(27), 정인규(32), 차진철(28), 황석연(26), 김영수(29), 유석재(27), 김철한(보도) 등 전국에서 선발된 13명의 대원이 참가하고 중국측에서는 중국등산협회 이치신(李致新) 부주석이 총대장을 맡고 10명의 대원이 참가해 전체 원정대원은 25명에 달했다.
원정대는 북경에서 라사를 거쳐 충모강리, 릉보강리 베이스캠프까지 대산련측이 제공한 10대의 국산 지프차로 총 5,073킬로미터를 카라반했다. 먼저 9월 23일 충모강리 베이스캠프(4,600m)에 도착한 원정대는 26일 20마리의 야크로 전진베이스캠프(5,200m)를 구축하고 10월 2일에는 남동릉에 1캠프(5,800m)를 설치했다. 10월 4일에는 문용성, 유석재, 차요한대원과 중국측 두 대원이 1차 정상공격을 시도했지만 6,600미터에서 70도 경사의 설벽을 만나 후퇴했다.
7일 차진철, 정인규, 문용성대원은 중국대원 5명과 함께 추가로 설치한 2캠프(6,600m)를 떠나 눈이 깊이 빠지는 설사면을 올라 마침내 넓고 평평한 미답의 정상에 올라섰다. 이어서 다음날에는 이충직, 차요한대원이 추가로 정상을 올라 한국측 등정자는 5명으로 늘어났다.
10월 12일 충모강리 베이스캠프를 철수한 원정대는 다시 지프차로 릉보강리로 향했다. 14일 베이스캠프(5,200m)에 도착한 이들은 17일 야크를 이용해 전진캠프(5,500m)까지 전진했다. 다음날 북면 플라토를 횡단해 제1캠프(5,400m)를 설치했고 20일에는 북동릉까지 250미터 높이의 암설벽을 통과해 2캠프(6,200m)를 설치했다. 이어서 23일 아침 8시경 마지막 캠프를 떠난 차진철, 유석재, 방정일대원이 북벽 최상단부를 어렵게 통과하여 1시 50분 마침내 경사진 커니스로 형성된 정상을 밟는 데 성공했다.
대산련의 충모강리, 릉보강리 초등정은 82년 고줌바캉, 83년 바인타브락 2봉, 85년의 히말출리북봉, 88년의 추렌히말 동봉에 이은 여섯 번째의 세계초등정으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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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로 대설산맥 공가산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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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가원정대
중국의 고봉은 티베트나 신강 위그루 지역에 다수가 몰려 있으나 곤륜산맥과 대설산맥과 같이 본토에 위치한 산줄기에도 많은 고봉들이 산재해 있다. 특히 사천성의 대설산맥에는 한때 세계 최고봉으로 알려지기도 했던 공가산(7,556m)과 6천~7천미터급 봉우리가 다수 있다. 사실상 중국 본토 최고봉인 공가산은 미냐공카(Minya Gongka)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은 미니얀 지방의 빙설산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32년 미국의 소규모 원정대가 북서릉으로 초등정한 공가산은 그후 57년 중국의 사점춘(史占春)이 제2등을 이루었고 80년대 이후에 재개된 등반에서 많은 일본산악인들이 북동릉에서 눈사태로 사망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광주전남 지역 학산련 출신 산악인들이 주축이 된 한국원정대는 북동릉으로의 국내 첫등정을 노리고 10월 21일 출국했다. 김재명대장(30)의 지휘아래 김주형(29), 윤중현(26), 임찬수(25), 신해심(여·23), 노시철대원(38) 등 6명으로 구성된 한국대는 10월 26일 베이스캠프를 구축하고 다음날부터 등반을 개시했다.
11월 1일에는 암벽과 너덜지대를 지나 1캠프(4,100m)를 설치하고 3일에 2캠프(4,900m), 그리고 10일에는 빙하지대에 3캠프(5,200m)를 설치했다. 이어서 19일에는 북동릉에 4캠프(5,800m)를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6,200미터 지점까지 고정로프를 설치하며 전진했으나 거센 바람과 식량 부족으로 11일간이나 버티다 결국 후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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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기 네팔 지역에서 에베레스트, 마나슬루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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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도 후반기 네팔히말라야로 진출한 한국대는 가을시즌 2개 팀과 겨울시즌 4개 팀으로 모두 6개 팀으로 기록되었다. 가을에는 조선대산악회가 에베레스트와 로체를, 엄홍길을 대장으로 한 합동대가 마나슬루에 도전장을 냈다. 결과는 두 팀 모두 등정에 성공해 한국의 8천미터급 등정기록을 추가했다.
한편 겨울철에는 엄홍길이 주축이 되어 안나푸르나 동계등정을 시도했지만 역부족으로 단념했고, 국제캠프사가 주관한 아마다블람 원정에 외국어대산악회, 경북대산악회, 그리고 개인팀이 참가해 모두 8명이 등정하는 개가를 올렸다.
조선대학교산악회가 개교 50주년을 기념하여 에베레스트와 로체를 대학 단일팀 최초로 연속등정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원정대를 결성했다. 전의천단장(42)과 임형칠대장(39)의 주도로 추진된 이 원정대는 김경자등반대장(여·34),박수성(28), 김남형(27), 최종태(25), 신광철(25), 손경준(23), 오영상(보도.35), 박헌주대원(보도·29) 등 모두 10명이 참가했다.
8월 19일에 쿰부빙하 5,400미터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한 조선대팀은 다음날부터 등반을 개시 6일 만에 아이스폴 루트를 뚫고 제1캠프(6,050m)를 설치했다. 8월 31일 6,400미터에 전진베이스캠프를 설치한 이들은 9월 12일 로체페이스 상단부에 3캠프(7,300m)를 설치했으나 21일 로체 정상부에서 발생한 눈사태로 셀파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 장례 문제로 일주일간이나 등반이 지연되었다.
등반을 재개한 원정대는 10월 3일 사우스콜에 4캠프(7,985m) 설치를 마치고 10월 5일 정상공격을 시도하려 했지만 눈사태로 고정로프가 유실되자 다시 베이스캠프로 후퇴했다. 팀을 재정비한 원정대는 10월 11일 최종태, 신광철대원과 셀파 3명으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정상공격을 감행했다. 새벽 2시 마지막캠프를 출발한 공격조는 남동릉의 깊은 눈을 헤치며 남봉을 거쳐 12시 45분에 지구의 용마루를 밟는 데 성공했다. 한국으로는 26, 27번째 최고봉 등정자가 배출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로체 등반은 연일 불어대는 강풍과 눈사태의 위험으로 포기를 선언했다. (사진 6-21, 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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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8번째 8천미터봉 마나슬루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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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마나슬루원정대
한국 히말라야 8천미터봉 완등추진위원회(위원장 이한동)가 결성되어 그 첫번째 후원으로 엄홍길이 참가한 마나슬루 원정이 성사되었다. 엄홍길대장(36)을 중심으로 김진성(32), 전홍(35), 김인현(26), 박종우(41), 이거종(보도·44), 조경기대원(의사·46) 등 모두 7명이 참가한 이 원정대는 9월 12일 마나슬루의 북면 4,800미터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했다.
16일부터 북동릉 노멀루트를 향해 등반을 개시한 이들은 빠른 전진을 보여 당일로 1캠프(5,500m)를 설치하고 20일에는 2캠프(6,300m)에 진출했다. 이어서 24일 정상공격을 위해 3캠프로 출발, 26일 가파른 설벽을 통과한 끝에 강풍 속에서 캠프(7,500m)를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7일 새벽 3시 30분에 마지막 캠프를 나선 엄대장과 나티셀파는 뒤따라오던 일본대와 이태리대와 합류해 교대로 러셀을 하며 전진했다. 마침내 세 팀의 8명은 11시 30분에 마나슬루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엄대장은 8천미터급 통산 8개봉을 오르는 대기록을 수립하면서 14좌 완등에 한층 더 다가섰다. (사진 6-19,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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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안나푸르나 동계원정대
가을시즌 다울라기리를 등정하면서 8천미터급 8개봉 등정기록을 수립한 엄홍길은 그 여세를 몰아 이번에는 겨울 안나푸르나에 도전장을 냈다. 안나푸르나는 그에게 89년과 95년 두 차례의 원정에서도 길을 열어주지 않던 봉우리였다.
오인환대장(50)의 주선으로 엄홍길등반대장(36), 김영국(28), 김인현(26), 김산배대원(34) 등 5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12월 1일 카트만두에서 헬기로 베이스캠프로 이동해 다음날부터 북면 더치립 루트로 등반을 개시했다. 엄대원은 이미 다울라기리 등정에서 고소적응이 되어 있던 상태였으므로 빠른 전진이 예상되었다. 3일 전진캠프(5,000m), 8일 1캠프(5,400m)를 설치했으나 겨울 히말라야의 추위와 세락의 붕괴위험으로 2캠프 건설이 늦어졌다. 18일 엄대원이 2캠프 설치를 시도했지만 눈사태의 위험성이 더욱 커져 결국 6,900미터 지점에서 분루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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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아마다블람, 3팀 8명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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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아마다블람원정대
경북대학교 동계 아마다블람원정대
개인합동 동계 아마다블람원정대
96년을 마감하는 겨울철 아마다블람 원정에 3개 팀에서 무려 28명의 한국산악인이 합동으로 참가했다. 이 원정은 등반대행사인 에베레스트 투어(대표 박영석)에서 주관해 한꺼번에 운영함으로써 각 팀이 독자적인 계획에 의한 등반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외대팀과 경북대팀은 별개의 조직으로 참가했다.
외국어대팀은 정택주대장(49)을 위시해서 서재만(56), 이강오(53), 사공진(26), 한성환(54), 이주섭(46), 김병준(48), 이정숙(여·30), 홍창희(25), 박민구(23), 송주완(23), 범원택(23), 정용권(34), 김여주(여·20), 이정훈대원(47) 등 모두 15명으로 구성된 대부대였고, 개교 50주년 기념 등반으로 모인 경북대팀은 정명영대장(46)을 비롯해서 정영주(28), 류광섭(25), 신종훈(26), 김동선(23), 정창진(24), 정경수대원(28) 등 7명으로 구성되었다. 이외에도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 진봉헌(34), 이기홍(38), 김영용(25), 고영국(40), 한왕룡(30), 최주환대원(36) 6명이 있었다.
11월 26일 베이스캠프(4,600m)를 건설한 합동팀은 남서릉 노멀루트로 등반을 개시, 1캠프(5,800m), 2캠프(6,100m)를 설치하고 12월 5일에는 3캠프(6,450m)까지 진출했다.
이윽고 12월 6일 마지막 캠프를 떠난 외대의 범원택, 경북대의 김동선, 류광섭, 그리고 개인 합동 팀의 고영국, 김영용이 11시 40분에서 50분 사이에 정상을 밟았다. 이어서 다음날에는 각 팀에서 홍창희, 김경수, 한왕룡 등 3명이 등정에 성공했다. 이로써 96년 겨울의 등정자 8명을 포함해 아마다블람을 오른 한국인은 83년 이래 모두 27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것은 한국의 에베레스트 등정자 28명 다음으로 많은 등정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