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에서 두 달을 있은 후 남양주에 있는 한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쉼터가 의료행위와 무관한 하숙집 이라면 그곳은 현대식 의료장비를 갖춘 병원 이었다. 수동계곡의 끝자락에 위치해 요양병원으로선 천혜의 입지(立地)를 자랑하고 있었다.
첫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문밖에 펼쳐져있던 단풍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형형색색의 단풍이 병풍처럼 창문을 가득 물들이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창문 밑에 낙관(落款)만 찍으면 산수화가 된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곳은 종합병원이라서 의사의 체계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하루 종일 각종 프로그램이 잘 짜여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스트레칭, 웃음치료, 복식호흡, 건강강의 등 순서가 준비돼 있어 환자들은 자신들의 컨디션에 맞춰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되었다.
등산로가 잘 정비가 돼있어 식사 후에 운동하러 간다는 생각만으로 마음이 설렐 정도였다. 환자들은 각자 컨디션에 따라 A코스(2Km), B코스(4Km), C코스(8Km)중 하나를 택해 다녀오면 되었다. 제 시간에 물을 마시기 위해 환자들에게 물병은 필수였지만 그 냥 나서도 되었다. 계곡을 따라 맑은 물이 늘 흐르고 있었고 언제든지 나뭇잎으로 컵을 만들어 목을 축이면 되었기 때문,
지금도 눈을 감으면 B코스 중간에 우아한 자태(姿態)를 자랑하던 단풍나무숲이 그려진다. 함께 운동을 다니던 우리 방 식구들은 그 숲을 노르웨이 숲이라고 이름 짓고 그 속에서 휴식을 즐겼다. 가끔씩 혼자서 그 숲을 찾아갈 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의 소설 속 주인공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상념에 잠기곤 했다. 비틀즈의‘노르웨이 숲(Norwegian wood)’이 갑자기 정겹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자동차로 1~2시간 거리에 축령산, 현리의 잣나무 숲, 남한강, 북한강, 청평호, 남이섬, 춘천댐, 소양호가 있어 방식구들끼리 나서는 강변, 호반(湖畔)드라이브는 힘든 투병생활 속에서 가끔씩 작은 위안이 되었다.
병원에서 특별한 처방은 미슬토라는 천연 항암치료였다.
미슬토는 다른 말로 아브노바, 헬릭소 라고도 부르는데 성분이나 약효에서 비슷하다. 이것들은 물푸레나무, 사과나무, 전나무 등에 기생하는 겨우살이의 숙주를 압축한 액즙이다. 기존의 항암제들이 독성(毒性)과 부작용, 낮은 치료율의 한계점을 지니는데 비해 자연추출물을 원료로 하는 미슬토 요법은 인체에 해가 없으며 내성(耐性)등 부작용이 거의 없다.
또 병원 직원 숙소 뒤편으로 잣나무 숲이 있었다. 마침 가을철이라 하루에 몇 번씩 숲속으로 들어가 떨어진 잣을 줍곤 했다. 식이(食餌)나 프로그램 등 요양 환경은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지만 문제는 비용이었다. 한 달에 200만원하는 입원비가 큰 부담이 되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서야했다. 경제적 부담 없이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을 물색했다. 마침 여수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서 인터넷 홍보를 맡아줄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와서 부랴부랴 이력서를 보냈다. 며칠 후에 와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 자원 봉사자는 병원의 준(準)직원으로 여러 가지 잡무(雜務)를 거들어야하기 때문에 환자 때보다 병원 생활에 많은 제약이 따랐다.
잣에 얽힌 추억 하나
내가 입원했던 그해(2003년)는 남양주, 가평에 잣이 넘쳐났다. 들리는 말로는 40년 만에 대풍(大豊)이라고 했다. 누구라도 신비탈만 조금 오르내릴 체력만 있다면 매일 반 가마씩은 주울 수 있을 정도였다. 입원 초기에 잣은 별로 내 관심에 없었다. 병고(病苦)에 대한 상심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정신이 쏠려있었기 때문.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잣을 주어다 방에 갖다 놓았는데 그 향기가 너무 좋았다. 풋풋한 잣 향, 솔 향과는 또 다른 그 무엇이 온방을 감싸고 있었다.
그 날 이후 나도 잣 사냥 대열에 합류했다. 난 모양 좋고 싱싱하고 향기 좋은 잣들만 주워 나르기 시작했다.
주워온 잣은 직원들에게, 면회 온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환우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잣은 나에게 ‘방향제’의 의미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3층의 누가 잣을 두 가마를 땄다는 말을 들었다. 그 분은 여자였고 나이도 7순을 바라보는 분이었다.
‘나는 남자고 더구나 젊은데···’ 난 경쟁심에 자극되어 그날부터 본격적인 잣 꾼이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면 병원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식사 후엔 수동 계곡까지 행동반경을 넓혀갔다. 얼마 후엔 아예 몇몇이 ‘잣 팀’을 꾸려 차를 타고 가평 현리까지 진출했다. 식사 시간 만 빼고 하루 종일 산속에 들어가 이삭줍기에 열중했다.
가평 잣은 빛깔과 향(香), 영양 면에서 전국 최고를 자랑한다.
산 구릉 마다 어른 품으로 한 아름씩 하는 나무들이 하늘로 찌를 듯이 솟구쳐 있었다. 마침 단풍철이라서 바닥엔 노란 잎들이 등산화가 푹 빠질 정도로 양탄자를 이루고 있었다. 산 속에서 지칠 때 그대로 누우면 낙엽들은 훌륭한 매트리스가 되었다. 잣나무 사이로 파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과일을 먹을 때면 어떤 성찬(盛饌)도 부럽지 않았다.
간단한 간식을 먹고 줍고 또 줍고··· 몇 시간을 주우면 마대자루가 넘쳐날 정도가 되었다.
주어 온 잣을 목침(木枕)으로 내려친 다음 발로 으깨면 싱싱한 잣이 한 움큼씩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손은 송진 범벅이 된다. 입원 기간 중 내 손은 항상 시커먼 백진(栢盡)으로 얼룩져 있었다.
이렇게 실어 나른 잣이 두 달 만에 라면 상자로 가득 세 박스가 되었다. 문제는 이 잣들을 어떻게 까먹는 가였다. 솜씨 좋은 사람도 이런 저런 도구를 사용해도 한줌을 까먹기도 힘들었다.
할 수없이 현리로 가서 방아를 쪄야 했는데 그때 방앗간 주인과 교환 비율이 무려 10:1.
분노 스러울(?) 정도의 불공정 거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입지는 너무 좁았다.
매일 펜치로 깨물어서 조각난 것들을 불편하게 먹든지, 불공정 거래와 타협을 하던지 선택은 하나였다.
라면상자에 가득 담긴 잣을 트렁크에서 내려주고 내가 받은 건 500g짜리 잣 세 봉지. 즉 1박스 당 1봉지였다.
그 중 한 봉지는 직원들에게 나누어주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 방 환우들과 나누고 결국 내 손에 쥔 것은 30,000원짜리 잣 1봉지였다.
가을 내내 하루 종일 온 산을 헤매며 주어 나른 대가를 손에 쥐고 난 한참을 웃었다.
결국 난 두 달 동안 10만원도 채 안 되는 가치를 위해 온 몸을 송진 범벅으로 만들었던 것.
그러나 이 계산은 ‘세상의 계산법’일 뿐 환자들의 산법(算法)은 아니다.
숲속의 피톤치드, 테르펜,
산을 오를 때 폐에 소용돌이 친 양질의 산소,
발자국을 옮길 때 마다 내 혈관에 솟구치던 백혈구,
산 속에서 휴식을 취할 때 샘솟던 유익한 호르몬,
내 피부를 통해 호흡을 통해 빠져나간 내 몸 안의 노폐물들···
이런 요소들을 도식(圖式)에 적용했을 때 올바른 답(答)과 효용가치가 산출되는 것이다.
구두쇠 방앗간 주인에게서 잣 봉지를 받아들고 한 참을 웃었던 것은 이런 ‘불합리한 셈법’에도 불구하고 내가 획득한 ‘잉여가치’에 대한 만족의 표현이었던 것.
첫댓글 그래 고생많이 하여 지금은 건강을 찾아으니 다행이다 .앞으로도 건강하 여라.
금테두른 금태 친구도 건강 유의하시길...
내가 요즘 뜸하긴 했지만 이런 글 올라온것을 몰랐었네 농사도 세상의 계산법으로 하면 그만두어야할 부분이 너무나 많지!
옜날 살던 방식이 최고인 것 같어...건강 하시게나...
10:1을 읽으면서 잣 방아삯이 1인줄 알았더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셈법이네. 멋있는 풍경을 글로 잘 그려놓아 글을 읽으면서 내내 내가 현리 산속에 있는 듯 했네요. 새해에도 건강 잘 지켜야지요?
탈곡 전 잣과 탈곡 후 잣과의 교환비율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