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물의 정체는 OOO였다-진화하는 서울의 건축 - 다시 재학생을 꿈꾸는 졸업생이 올리다..~~

[85 한의수]

이건물의 정체는 OOO였다-진화하는 서울의 건축

만만건축 시리즈 2013/02/07 13:04

http://blog.hani.co.kr/bonbon/47298

서울 양재동 일동제약 네거리. 그 모서리 꼭지점 한 곳에 최근 이 건물이 완공됐습니다.

▲ 사진=신경섭 건축사진가

딱 봐도 특이한 건물입니다. 무엇보다도 건물 표면을 사선으로 띠를 두른 점이 인상적입니다.

▲ 사진=신경섭 건축사진가

실제 건물의 형태는 저 띠 안에 숨어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건물 안에 나무가 있습니다. 옥외 정원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이 건물에는 이런 옥외정원이 여러개 들어있습니다. 사무실 빌딩 안에 저런 작은 마당이 있는 것은 대단한 매력이겠죠.

▲ 사진=신경섭 건축사진가

건물을 두른 띠는 가장 중요한 디자인 포인트입니다. 그래서 건물 안으로도 이어집니다.

▲ 사진=신경섭 건축사진가

띠와 연결되는 느낌이 들도록 천장에도 사선으로 띠 모양이 가로지릅니다. 그리고 띠를 따라 만들어지는 그림자도 디자인 요소로 실내로 들어옵니다.

이
▲ 사진=신경섭 건축사진가

이런 중소형 임대 건물에서 디자인은 상당한 차별화 요소가 됩니다. 임대 수익을 올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 사진=신경섭 건축사진가

그런데 이 건물, 1층이 좀 독특하지 않습니까?

맥도날드 햄버거가게가 들어간 것이야 별다를 것이 없는데, 그 뒤로 입구가 아주 크게 뚫려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에는 안나왔지만 저 안으로는 차들이 쉴새 없이 드나듭니다. 건물 1층을 차들이 관통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건물의 1층 저 입구 안에는 `주유소'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 사진=신경섭 건축사진가

그러니까 이 건물은 주유소인 것입니다.
주유소라고 하면 칙칙하고 거대한, 그리고 뻔한 시멘트 덩어리로 훤하게 뚤린 건물이기 마련이지만 이 건물 `양재주유소 빌딩'은 좀 다릅니다. 명품 브랜드 매장처럼 근사한 외관으로 주유소임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 사진=신경섭 건축사진가

양재주유소 빌딩은 점점 진화해가는 주유소 건축, 그리고 특히 `서울적인' 주유소 건축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서울이 다른 도시와 비교되는 점은 도시 안에 주유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과 일본에서만 두드러지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오래된 도시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유럽 도시 등을 보면 도시 안에 주유소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도시에서 외곽으로 나가는 부분에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주유소가 중요한 도심 지역에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제는 임대료 상승, 그리고 땅값 상승으로 비싼 땅에 주유소를 유지하는 것보다 건물을 지어 올리는 것이 좋기 때문에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서울의 부도심 권에는 이런 네거리 같은 요지에 있는 주유소들이 종종 있습니다.

▲ 사진=신경섭 건축사진가

그래서 양재주유소는 새로운 수단을 썼습니다. 주유소를 유지하되 위로 고급 임대용 공간을 올려 복합화하는 전략입니다.
주유소를 없애면 좋지만 그렇다고 장사가 되는 시설을 굳이 없애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건물 1층에 주유소가 있을 경우 임대하기에는 아주 불리해집니다. 그러면?

디자인이 그 해법입니다. 건축가에게 맡겨 건물 자체를 매력적으로 짓고, 주유소도 살리는 윈윈 전략입니다. 양재주유소는 건물의 외관을 근사하게 꾸미고, 건물 내부 곳곳에 실내 정원 마당을 만들어 건물 가치를 높였습니다. 서울 부도심 권의 주유소들이 찾아내는 새로운 생존법이라 하겠습니다.

이 양재 주유소를 설계한 건축가는 OCA건축사사무소 대표인 임재용 건축가입니다.
임재용 건축가는 깔끔하고 세련된, 그러면서도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중진입니다. 앞서 양재 주유소에서 보셨듯 과감하게 사선을 디자인에 활용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그리고 그의 또 하나의 특징은 다른 건축가들보다 `주유소'란 도시 시설물을 건축으로 바꿔온 주인공이란 점입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다 국내에 들어와서 자기 건축세계를 보여줘 온 임 건축가가 국내 건축계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작품 중 하나는 서울 중구 장충동에 2009년 들어선 이 건물이었습니다.

▲ 사진=김종오 건축사진가

족발 거리가 유명한 장충동에 있는 사무용 빌딩입니다. 먼저 눈여겨 봐야할 것은 이 건물 왼쪽에 있는 저 교회입니다.
한국 현대건축 역사에서 걸작 중의 걸작으로 꼽히는 고 김수근의 대표작, 경동교회입니다. 벽돌 건축의 매력을 잘 보여주며 기도하는 손 모양의 독특한 형태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사진=김종오 건축사진가

그 옆에 임재용 건축가가 설계한 이 건물이 있습니다. 사실 건축가에게 저렇게 유명한 건물 옆에 건물을 설계한다는 것은 멈청나게 부담스런 일입니다. 그 건물에 눌려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저런 유명한 건물과 너무 안 어울려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임 건축가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그러면서도 도전해볼만한 프로젝트였습니다.

▲ 사진=김종오 건축사진가

또 한가지 이 건물이 도전적인 프로젝트였던 것은, 바로 이 건물 1층이 보여주듯 주유소 건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건물이라면 1층은 근사한 로비가 됩니다. 건물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입구이니 가장 신경쓰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건물은 1층과 2층을 하나로 터서 주유소를 넣었습니다. 원래 주유소 자리이니 그런 것도 있지만, 그 이유는 건물 이름 `서울석유 사옥'이 보여주듯 이 건물이 주유소를 운영하는 회사 사옥이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회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배치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이 건물이 독특한 점은 1층 입구가 주유소란 것 말고도 또 있습니다.
1~2층이 주유소이고, 그 위 3층은 당연히 사무 공간이 시작될 것 같지만 주차장이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1~2층 주유소-3층 주차장-4층 이상 사무실로 구성되는 정말 독특한 건물이 등장한 것입니다.

▲ 사진=김종오 건축사진가. 바로 옆 현대건축의 걸작 경동교회를 잘 볼 수 있게 처리한 서울석유사옥 주차장. 이 건물은 독특하게 1~2층이 주유소, 그 위 3층에 주차장이 있다.

어떻게 건물 3층에 주차장이 들어선 걸까요?
그 이유는 이 건물이 언덕에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앞 큰길쪽과 뒤쪽 길 사이에 2층 높이의 간격이 생깁니다. 그래서 승용차는 뒤쪽으로 들어오는데, 들어오면 주차장이 1층이 아니라 3층이 되는 구조인 셈입니다.

이 건물은 이런 독특하고 복합적인 건축 구조 말고도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바로 외피 디자인입니다.

▲ 사진=김종오 건축사진가

건물 전면을 가는 철망이 덮고 있습니다. 안의 건물이 살짝 비치며 보이는데, 세련된 디자인이어서 그 자체로도 좋아보입니다. 하지만 건축가는 그 위에 또 한 겹을 씌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이 건물을 설계할 때 건축가가 가장 고심했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옆 경동교회라는 정말 강력한 건축의 존재였습니다. 그 옆에 들어서는 건물은 어떤 디자인과 어떤 태도를 지녀야할까, 건축가가 고민한 끝에 내놓은 해법이 이 망사 스타킹을 뒤집어쓴 듯한 철망 외피입니다.

▲ 사진=김종오 건축사진가

건축가는 설계 당시 먼저 경동교회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이 건물과의 관계가 중요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경동교회의 본질을 `침묵하는 집'으로 해석했습니다. 그 침묵은 또한 `무거운 침묵'이라고 결론내렸습니다. 신성한 종교 건축이니까요.

그러니 이 `침묵하는 집' 옆에 짓는 서울석유사옥은 결코 `시끄러운 집'이어서는 안되었습니다. 역시 침묵하는 것이 맥락을 존중하고 이웃과 공존하는 법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침묵할 것인가. 경동교회처럼 무겁게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침묵하는 집'으로 구상했습니다.
이 가벼운 침묵을 표현하는 장치로 도입한 것이 철망입니다. 경동교회의 벽돌과 다른 재료이자, 표면에 깊이감을 주고 보일듯말듯 중첩되는 느낌을 주는, 그러면서도 둔중하지 않고 하늘하늘 가벼운 느낌을 위해서였습니다.

▲ 사진=김종오 건축사진가

지금이야 철망을 씌운 이런 건물이 몇몇 곳이 있지만 당시만해도 무척 드물었습니다. 일반 건물과 다른 이 철망 표피는 태양빛의 상태에 따라 색깔과 느낌이 바뀌며 다양한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이 건물로 처음 복합화, 개성화되는 새로운 주유소 건축을 선보인 건축가는 이후 2009년, 임재용 건축가는 또다른 주유소 건축을 추가합니다. 바로 이 건물입니다.

▲ 사진=김용관 건축사진가

이 건물은 서울 봉천동에 있는 한유그룹사옥입니다. 역시 주유소를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그래서 1층이 주유소입니다.

▲ 사진=김용관 건축사진가

이렇게 보면 주유소가 확실히 드러납니다. 건물 외피를 세로로 가로지르는 수직 띠가 주유소 내부로 이어집니다.

이 건물이 우수한 점은 저 표면 디자인입니다. 건물이 들어선 자리는 주변이 낮고 평범한 서울의 흔한 건물들이 이어지는 곳입니다. 이 빌딩은 8층으로 높지 않지만 주변이 낮아 무척이나 거대하게 우뚝 서있는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땅 모양 때문에 얇고 넓어 병풍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 사진=김용관 건축사진가

그런 느낌을 중화시키기 위해 건축가는 건물 중간에 구멍을 뚫었습니다. 시각적으로나마 뒷쪽 풍경과 소통하는 느낌을 주려한 것입니다. 구멍 부분에는 엇갈리게 가로지르는 유리 통로 다리를 넣어 포인트를 줬습니다.

그리고 표면을 상당히 리듬감 넘치는 느낌을 주게 디자인했습니다. 유리의 재질도 3가지로 하고, 그 각도를 서로 다르게 해 경쾌함이 강조되고, 빛의 각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집니다. 이런 리듬감이 표면에 운동감을 만들어냅니다.

▲ 사진=김용관 건축사진가

네모 구멍 속 유리 다리는 내부에서 보면 독특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 사진=김용관 건축사진가

건물 뒤쪽에도 과감한 디자인을 시도했습니다. 공중 정원을 넣는 큰 공간을 파내고 집어넣고 각에 변화를 주어 표정이 다양한 건물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두 가지 주유소 건축에 이어 최근 선보인 양재동 사옥은 세 번째 임 건축가의 주유소 작품입니다. 주유소 3부작이 완성된 셈입니다.

▲ 사진=신경섭 건축사진가

이 세가지 주유소 건축은 지금 우리 시대 서울이란 도시의 풍경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입니다. 가히 `서울이 만들어낸 새로운 건축 장르'일지도 모릅니다. 세계 어느 도시보다 주차장이 많고, 언덕도 많고, 땅값도 비싸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야하는 서울에 맞게 주유소가 진화해간 결과입니다.

세 주유소의 특징은 `옥내 주유소'란 점입니다. 기존 주유소들과 가장 다른 점입니다. 주유소 건물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주유소를 건물에 집어넣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이런 해법은 모든 주유소에 가능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더 땅값이 비싼 중심지면 주유소를 헐고 다른 건물을 짓는 것이 정답이고, 더 땅값이 싼 외곽이면 굳이 건물을 올려 임대를 노리기가 어려우니 저렇게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그러면서도 나름 지역 중심지에 있는 주유소들이 시도할만한 방식입니다.

임 건축가는 "주유소는 `무대' 같다는 점에서 재미있다"고 말합니다. 거리를 걸어가는 시민들이 보행자의 눈높이에서 만나는 도시 구조물 중에서 주유소처럼 확 뚫려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활동이 그대로 노출되는 공간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유소가 꼭 필요하는 기능을 하는 곳이니만큼 건축적으로 의미있게 바꾸는 작업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고 합니다.

단순히 임대용 상업건물로 짓는 것을 넘어 디자인적으로 의미있는 건축이 된 점이 저 세 주유소의 미덕입니다. 우리 곁의 풍경은 정신없이 바뀌는 것 같지만 그 기능은 의외로 변치 않고 이어지며, 변하지 않는 듯해도 그 속에서 새로운 변화들은 늘 새롭게 등장합니다. 주유소라는 도시 시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그리고 건축은 그런 변화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세 주유소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85임승미]

역시 아이디어의싸움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