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올 길 따라>
내일이 절기상 ‘우수‘인데 겨울은 아직 내 곁에서 떠나지 않는 것 같다. 올겨울이 더 길게 느껴진다. 나만이 느끼는 걸까? 멀리 ㅈ 시에 사는 벗과 전화를 하니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장수 장안산을 오르고 있다고 한다. ‘그래 나도 나가보자! 봄이 어디메쯤 오고 있는지 느껴보자!’
오후시간이지만 등산화를 매고 배낭도 안 매고 가벼이 집을 나선다. 발길은 전철을 타고 광화문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부암동을 지나 구기동 북한산입구에 내린다. 늘 다니던 이 길은 수월한 코스다. 일요일이라 산을 찾은 많은 등산객들이 하산하는 대열을 맞으면서 나는 오른다. 이런 날도 처음이다. 때로는 이렇게 거스르는 행동이 필요한 지도 모른다. 혼자해야 잔잔히 살펴보기는 좋다. 그러나 혹 아는 지인이 불러 ‘너 인제사 올라가냐?’ 할 것 같다. 초입에서 계곡부터 살펴 본다. 얼음장 밑으로 물이 흐른다. 구심원 부분은 둥그스름하게 녹아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경계관리뿐 아니라 시민들이 잘 협조한 덕분에 하류계곡물도 맑아졌다.
한말에 결성되었던 ‘대동단大同壇본부터’ 빗돌을 지나 관리공단사무실을 넘으면 첫 번째 박새교가 나온다. 바닥은 눈이 아직도 있어 많은 발자국들이 선명하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순수의 눈길도 좋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의 조근조근한 발길도 때론 생기生氣를 주는 것 같다. 살아서 움직이는 발길들!이 없다면 역사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박새가 나와 재잘거리기엔 날이 차가웁다. 두 번째 버들치교가 다가온다. 거대한 바위와 이웃하고 있다. 추워서 버들치들이 보이자 않지만 날이 풀리면 계곡물에 버들치들이 자유로이 노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으리라. 우리들의 조심조심으로 북한산 계곡을 살려놓은 것이다. 버들치가 노닐 때 다시 오리라. 세 번째 다리가 있다. 귀룽교다. 깊은 산에 자라는 귀룽나무가 있다. 북한산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네 번째 우정교를 지나면 오르막에 휴식터가 있고 좌우 갈래 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가면 대남문 문수사방향이요, 왼쪽으로 가면 승가사방향이다.
오늘은 짧게 승가사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계곡이 조잘조잘 이어져 판소리공부하는 분들의 독공처가 되기도 하는 계곡길이다. 우람한 소나무는 나의 눈길을 끈다. 스마트폰으로 담아본다. 계곡물소리 물결무늬도 담아보려고 한다. 눈 덮흰 바위에 낮동안의 햇살에 녹아 물무늬가 되어 바위가 젖은 옷을 두른 것 같다. 드디어 찾은 봄소식 가시적인 봄의 전령 버들강아지가 보인다. 버들강아지 봉오리가 보인다. 버들강아지 계곡물소리에 산들거린다. 이것을 보면 금타대화상님의 오도송이 생각난다.
荷團稜尖是眞實 하단능첨시진실
風吹雨打非幻境 풍취우타비환경
絮蝶悲處生蓮華 서접비처생련화
錐端鏡面放金光 추단경면방금광
1937년 11월17일 39세 때 지은 오도송悟道頌이다. 1898년에 태어나서 1948년에 입적하신 숨은 도인이시다. 이승의 인연이 짧은 분이다. 1919년 기미년 조선 팔도에서 일제의 압제에 저항해서 자주독립을 주창하고 궐기했던 3.1독립운동을 고창에서 전개하다가 인근 문수사에 은신하던 중 금강경을 보고 발심하여 출가하기로 하고 장성 백양사 만암曼庵스님을 찾아 수계.득도한다. 만암스님의 제자지만 공부방법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진리,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쉽고 안락한 보리방편문菩提方便文(Bodhi-Meditation)을 제시한 분으로 몽중에 용수보살님으로부터 전수받아 ‘심心은 허공虛空과 등等할새’로 시작하여, ‘미타彌陀의 일대행상一大行相으로 사유관찰思惟觀察할지니라’ 로 마무리하는 288자를 집자集字하여 수행법을 후인들에게 전해주신 대선지식이다. 이 시를 풀어보면,
연잎 둥글고 뽀족한 모서리가 바로 진실(실상)이며
바람 불고 비가 부서져 내리치는 일이 다 허망한 경계가 아니로다
버들꽃 날리는 곳에 연꽃이 피고
송곳 끝과 거울 낯에 금빛이 빛나는구나
맑은 계곡물을 두 손으로 담아 마셔본다. 마음까지 씻어내는 듯하다. 눈들이 떠 있다. 나무위에도 바위 위에도. 떠 있는 눈을 보면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생각난다. 동양 3대 거사중 한분으로 재가자의 귀감이 되는 큰 선지식이다. 변산에서 아들 딸이름으로 등운암 월명암을 지어 부인과 가족 모두가 수행하다 견성오도한 인물들로 유명하다. 잘 알려진 이 분의 유명한 게송이 있다.
目無所見無分別 목무소견무분별
耳不聽聲絶是非 이불청성절시비
是非分別都放下 시비분별도방하
但看心佛自歸依 단간심불자귀의
눈으로 보는 바 분별이 없고
귀로 듣는 데 시비를 여의었네
시비분별을 다 놓아버리고
다만 마음의 부처에만 귀의 할 뿐이니
진리만을 부처님만을 오롯이 타성일편으로 염두하고 정진하라는 정진하겠다는 결의가 담긴 시다. 다섯 개의 가지를 뻗쳐 서 있는 귀룽나무를 지나서 한참 올라보니 생강나무가 있다. 막 꽃봉오리가 벙그러지려고 한다. 더 피면 노랗게 된다. 언뜻 산수유와 비슷하나 살펴보면 다르다. 이 이름은 냄새로 지어진 것이다. 마른 가지라도 끊어 냄새를 맡아보면 생강내가 난다. 정월 초여드레인 오늘 아직 산수유는 눈에 띄지 않는다. 내소사 봉래루 옆 화단의 기품 좋은 산수유는 봉오리 져 있을까? 큰길에 다다랐다. 계곡 길을 지나왔다. 이제 바로 앞 승가사 일주문이 보인다. 들어가는 초입에 선 바위에는 어느 신심 깊은 분이 새긴 ‘나무아미타불’이 또렷하다. 어느 길일을 잡아 밤새워 새겼을 것이다. 석공정성에 합장을 드린다. 삼각산승가사 현판글씨는 저 수덕사 원담 스님이 쓰셨다. 가파른 산비탈을 이용하여 가람을 중창 조성한 그 원력이 장엄하게 느껴진다. 승가사 중창비, 사리탑, 남북통일 발원탑을 보며 맨 위로 오른다. 대웅전에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3배를 올렸다. 세 번의 108계단을 올라야 마애부처님 전에 이를 수 있다. 당 신승神僧 승가僧伽대사를 숭모하며 조성한 석굴전은 입구에 약사전으로 새겨져 있다. 어느덧 저녁공양시간이라서 혹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약간 주저하다가 그래도 온 김에 오르기로 한다. 나 말고 아무도 없다. 오늘 염불은 이미 1만념 목표를 넘었으니 진언도 하며 자유로이 오른다. ‘북한산승가사마애여래좌상’이 현전에 계신다. 거대한 바위에 새긴 부처님좌상으로 보물 215호다. 부처님 전에 서서 3배를 드리고 나서 먼저 오신 비구니 스님이 막 기도를 마치고 정리하고 내려가시려고 한다. 합장을 올리고 살피다가 비구니스님의 손길을 도와 바로 내려 갈려고 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저를 생각해서인지 “처사님, 놓아두시고 어렵게 올랐으니 기도하고 가셔요“하시며 쓰레기 봉지를 당신이 들고 내려가신다고 하고 내려가셨다.
등산화를 푼다. 약 석자 길이의 비닐좌복을 깔고 향로 뚜껑을 열고 남겨진 향을 다시 피워 올리고 부처님 전에서 108배를 올렸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약사유리광여래불약사유리광여래불!~~’을 염송하면서 가족과 모든 분들의 고통과 병고에서 벗어나기를 발원했다. 이 석불 전에서 과거 역대 군왕들이 설재設齋하고 국태민안을 빌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지도자들이 중생들의 안생安生과 평화平和를 위해 큰 발심을 해야 할 고난의 시기라고 생각이 든다. 조선조 정조 시절 성월당 선사는 이 석불 전에서 신묘장구대다라니 10만송 기도를 통해 그 공덕으로 조선 8도 승통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사위四圍는 아슴히 아둑해지고 있다. 그러나 나의 눈에 자비의 손길이 보인다. 돌계단 좌우 평단 구석에 ‘알곡’을 두어줌씩 놓여 있는 걸 보았다. 이 절 스님께서 새들을 위해 먹이로 내 놓으셨다. 감사의 합장을 드린다. 부처님 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은 물론이요 사람 아닌 일체 유정 무정 중생들을 위해 한없는 자비심을 나투어야 하는 법을 가르치신다.
호젓한 산길로 귀가하는 발길이 아무 장애가 없다. 나의 봄은 이미 내 발 앞에 다가와 있는 듯하다. 내가 봄을 그리는 만큼 봄은 다가오리라. 저 눈 속에도, 쌀쌀한 바람 속에서도 이미 봄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2013.2.17. 무념 김영일 _()_
첫댓글 오침이 나른하고 맛이 있는것이 봄은 봄인가벼
우수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데 나무가지는 아직도
깊은 잠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나벼
이번주는 연휴니 태백으로 늦은 겨울 여행이나 가볼나네
갔다와서 소식올리겠네
집에만 있지말고 봄맞이 준비도좀하고
겨우네 움추렸던 몸도 풀겸 가까운곳에서 좋은 공기마시며
활기차게 움직이며 즐기세
영일이처럼---
잘보았네
건강하게나
그 깊고 넓은 마음처럼
무소유에서도 평화로운
삶이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