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종영과 드라마 평가
드라마 [고독]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눈에 띄게 시청률이 오르고 있다.
첫 회를 방영한 것이 SBS의 [야인시대]가 한창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옭아매고 있던 10월 21일. 이미숙과 류승범이 커플로 등장한다는
것이 방영 전 뉴스거리가 되기는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연일
왕초들의 주먹대결을 보여줬던 [야인시대]에 맞서기는 힘겨웠다.
그리고 그 결과는 두 자릿 수도 안 되는 시청률로 나타났다.
이렇게 악전고투 속에서도 [고독]이 애초 계획한 방영분을 마치고 종영하게 되는 데는 KBS의 인내심이 무엇보다도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동시간대 타 방송사 드라마 시청률의 3분의 1도 나오지 않고 있지만,
연출자와 작가, 그리고 이들을 추종하는 시청자들을 의지하고 [고독]의 넉넉한 뒷마당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고독]의 시청률이 상승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길고 느린 호흡으로 드라마를 쓰고 만드는 노희경 작가와 표민수PD의 의도가 방영횟수가 늘어날수록 시청자들에게 어필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독]을 보고 있으면 요즘 양산되는 드라마들과는 다르게 모든 것이
느릿느릿 움직인다.
배우들의 대사며 시선처리도 느리게 천천히 움직이고, 장면 전환도
대사가 끝나고 배우들의 대사의 여운이 사라지기를 기다려 이루어진다.
이런 처리는 빠른 장면전환과 짧은 대사로 치장된 트랜디 드라마와
시트콤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겐 매우 답답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의도적 느림’이 조금씩 시청자들에게 차츰 공감대를
형성해 가면서, [고독]은 그 존재이유를 찾아가고 있다.
배우들의 호연도 [고독]을 빛나게 하는 요인이다.
이미숙과 류승범이 커플로 등장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 대부분은 영화 [정사]로 이미 연하남과의 사랑을 그려냈던 이미숙보다 SBS드라마[화려한 시절]의 철부지 캐릭터 류승범에게 의심어린 눈초리를 보냈었다.
더구나 연예계 데뷔 이후 그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코믹연기가 섞이지
않은 정극 연기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우려는 류승범의 응집력 강한 연기로 기우임이
밝혀졌고, 드라마 [고독]은 또래 배우들 중에서 류승범의 위치를 구별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랜만에 혹은 처음으로 드라마에 등장한 두 명의 주연급 조연배우는
[고독]으로 인해 드라마와 배우, 양자가 모두 이득을 얻는 ‘윈-윈 효과’를 이끌어냈다.
경민(이미숙 분)의 옛사랑으로 등장하는 은석(홍요섭 분)은 류승범의
정극연기와 더불어 이 드라마가 거둔 최대 수확이라고 해도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낮고 굵은 보이스와 야성미가 느껴지는 꺼칠한 수염자국, 그리고 조용히 끓어오르는 눈동자를 가진 이 배우는 드라마 전반부에는 한 군데 묶이기 싫어하는 40대의 여피족을 잘 그려냈고, 후반부로 접어들면서는 죽어가는 경민이 믿고 딸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배우의 캐릭터가 미니시리즈 전반부와 후반부에 이처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것은 홍요섭의 연륜에서 나오는
진중한 연기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나쁜 남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바로 드라마로 방향을
선회한 서 원 또한 [고독]의 두 주연 못지 않게 주목받는 조연이다.
영우(류승범 분)를 짝사랑하다가 영우의 마음이 경민에게 있는 것을
알고는 친구로서 곁을 지켜주는 진영 역을 맡은 서 원은 안정적인 대사처리와 강렬하고 깊은 눈빛연기를 보여주며 [고독] 이후 차기작을
기대케 만드는 배우이다.
며칠 전 중앙일간지 방송면은 1월 6일 방영을 시작하는 KBS 월화드라마 [아내]의 제작발표회와 주연배우 김희애의 인터뷰 기사로 채워졌었다.
이 기사들을 보면서, 종영되는 드라마에는 온당한 평가가 뒤따르지
않은 채,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에 먼저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드라마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종영 후 화질 나쁜 VOD로 방송사 인터넷 사이트 한 귀퉁이에 남아있을지라도,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주는 감동과 영향은 어느 방송 프로그램과 비교해 보더라도 길고 넓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드라마가 끝나는 시점에는 그 드라마가 우리에게 준 여러
가지 미덕과 손실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
그런 평가작업이야말로 드라마로 홍수가 난 공중파TV에서 제대로 된
드라마를 건져내기 위한 기초작업이기 때문이다.
미숙님 사진이 없는것이 쬐금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