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동남아시아에 대해 연구하는 한국의 사이버 학술공동체 "크메르의 세계"가 태국의 "레드셔츠" 지도자들에게 호소하는 공개서한으로, 2010년 4월 26일에 발표하는 것입니다. |
4월 26일 월요일의 레드셔츠
이제는 정부의 데드라인마저 넘어섰다
방콕 상업중심지 "라차빠송 사거리"를 중심으로 상당히 광활한 지역을 요새화한 채 점거 중인 태국의 레드셔츠(UDD) 시위대가, 오늘(4.26, 월)로서 방콕에서 투쟁을 시작한지 만 44일째를 맞이했다. 또한 4월 20일 이래로 정부측의 실탄사격 경고로 인해 라차빠송 지역에서 움직이지 않은지도 일주일이 되었다.
지난 40여일간의 레드셔츠 투쟁은 이들이 전 국민의 다수를 대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회해산"이라는 전국적 의제를 주장하기 위해 모여든 수도 방콕에서는, 비율적으로 다수가 자신들에 대해 적대적 성향을 지닌 방콕시민들에 둘러싸여야만 한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환경 속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더욱 더 이들의 투쟁에 경의를 표할만 하다고 평가된다.
게다가 지난 4월 10일 밤 대규모 인명피해를 동반한 진압작전을 막아낸 레드셔츠는, 이후 더욱 강고하고 결의에 찬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말의 예견되는 강제진압을 앞두고, 공동 지도자 중 한 사람인 꽌차이 빠이뽄(Kwanchai Praipana)은 "우리는 승리하기 전에 집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 연설했다.
특히 토요일 오후에 아피싯 웻차치와 총리가 이들이 수정 제안한 "30일 이내 의회해산"을 거부하고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자, 강제진압이 거의 확실시되는 이틀 동안의 밤을 맞이하기도 했다. 태국 레드셔츠 시위대는 이제 정부의 비상사태대책본부(CRES)가 잠정적으로 설정해놓았던 것으로 보이는, 사태해결 마감시한인 오늘 새벽을 넘어서며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안전상의 이유로 휴업에 들어갔던 라차빠송 사거리 주변의 백화점과 호텔들도 오늘 아침이 되면서 그 영업재개 예정일을 넘기게 되었고, 레드셔츠의 반대파로서 강경 보수파인 옐로우셔츠(PAD) 시위대 역시 정부에 제시했던 해결요구 시한 7일간을 넘어섬으로써, 이제는 그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행동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이다. 더구나 사수대원 중 신종플루 감염자 6명이 발견되면서, 상황은 더욱 더 난국으로 나아갈 전망이다.
레드셔츠 핵심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짜뚜뽄 뽐빤(Jatuporn Prompan) 의원은 강제진압을 막기 위해 전국적인 지원을 요청했고, 북부지방과 북동부 지방의 농민들은 방콕으로 진압작전을 위해 출발하려던 병력들의 발을 해당 지역에서 묶어두고 있다. 짜뚜뽄 의원은 오늘 오전에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어젯밤 강제진압에 대비하여, 우리는 보다 많은 사수대원들을 배치했고 순찰도 강화한 바 있습니다. 또한 바로 어젯밤에 진압작전이 시도된다는 정보를 입수해서 대비했습니다만, 감사하게도 그러한 사태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승리할 때까지 계속 투쟁할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나눌 이야깃거리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정부와 협상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피싯 총리의 연설에 동의할 수 없으며, 이제 그가 해야만 하는 유일한 일은 지금 즉시 의회를 해산하는 일 뿐입니다. |
태국의 <네이션>(The Nation) 지에 따르면, 지난 목요일 밤 실롬 가에서 수류탄 공격이 발생하던 바로 그 시간에, "태국 외신기자클럽"(FCCT)은 전문가들을 초청해 현 태국사태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탐마삿대학"(Thammasat University) 역사학과의 타넷 아폰수완(Thanet Aphornsuvan) 교수는, "현재의 레드셔츠 운동은 태국 역사상 단 한번도 출현하지 않았던 사상 최대의 대중정치운동"이며 "프랑스혁명을 비롯한 주요한 시민혁명과 거의 유사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타넷 교수는 동시에 "하지만 레드셔츠 시위대가 비폭력 원칙만 고수한다면, 군대에 의한 진압으로 소멸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반년 동안 레드셔츠의 움직임을 주목해 온 "크메르의 세계"는 타넷 교수의 이 후반부의 경고에 대해 강력한 반대를 표하는 바이다. 레드셔츠 운동의 의미는 (1)그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의 다수계층을 대변한다는 것과, (2)그러한 소외계층들이 보다 이성적인 자각을 통해 스스로 참여한다는 것이고, (3)어떠한 순간에도 최종적 폭력의 수단을 동원하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정치를 비교적 세밀하게 고찰해나가 보는 "크메르의 세계"는, 동남아시아인들이 다른 어떤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집요하고 끈질긴 승부근성을 가졌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내전의 선전포고가 될 강제진압의 총성이 울리기 전에, 아피싯 총리를 얼굴마담으로 하는 태국의 기득권층은 결코 자신들이 가진 지위를 위협할 레드셔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크메르의 세계"가 살펴보았던 캄보디아와 태국이고, 또한 동남아시아이다.
하지만 이러한 집요함은 기득권층만 가진 것이 아니라, 레드셔츠 시위대 역시 갖고 있다. 지난 목요일 FCCT의 세미나에 초청되었던 또다른 패널 중 한 사람인 렌마트 린너(Lenmart Linner) 태국주재 스위스 대사는, 현 상황이 마치 하나의 레일 위에서 3대의 열차가 서로 마주보고 전력으로 질주하는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아직 협상의 여지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현재로서는 너무 선택의 여지가 좁고 또 절박한 상황"이라고 말하면서, 이 갈등은 복잡한 성격을 갖고 있고, 그 어느쪽 당사자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또한 태국의 한 대학이 오늘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태국 국민들 중 대화를 통한 해결을 지지한 이들이 28%이고, 레드셔츠가 주장한 즉각 의회해산 지지자는 20%였다. 그리고 강제진압을 지지한 이들은 13%였다. 생각보다 협상의 길을 준비해야 한다고 보는 인구의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하면, "크메르의 세계"는 대화와 타협의 여지는 이제 거의 남지 않았고, 오히려 내전으로 가는 길의 입구가 더욱 가까와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레드셔츠 시위대에 대해, 비록 우리의 요청이 거의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간곡하게 요청하는 바이다. 만의 하나 내전의 선전포고를 알리는 총성이 울리더라도, 부디 --- 최소한 총기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자위적이 아니라 공세적 폭력은 행사하지 않는 수준의 --- "온건한 비폭력" 원칙을 고수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레드셔츠는 승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내전을 통한 승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전이 반드시 치룰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바로 그 내전의 승리를 위해서라도 방콕의 집회구역은 오로지 비장하고도 처연한 최후로서만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피싯 총리에게도 간곡히 제언드리고자 한다. 이제 타협의 시간은 거의 남지 않았고, 귀하 역시 내전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옐로우셔츠를 비롯한 친-정부 시위대와 레드셔츠 사이의 민-민 간 무력투쟁이 발생한다면, 이후 내전의 휴전협상 권한 자체가 귀하의 정부가 다룰 수 있는 통제권을 벗어날 위험조차 존재한다. 따라서 만의 하나 태국 내전이 발생한다면, 국토가 둘 내지 셋으로 분단되지 않는 한, 캄보디아와 같이 매우 오랜 내전기간을 거치거나 인종청소 현상과 같은 반-인도주의적 비극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한은 얼마 남지 않았다.
토요일(4.24) 오후 아피싯 총리의 수정 제안을 거부한 후, 정부측은 레드셔츠 시위대에 대한 강제진압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대비를 했다. 특히 일요일이었던 어젯밤은 강제진압의 데드라인으로 예측되던 밤이다. 레드셔츠 지도부는 모든 시위대에 대해 붉은 셔츠를 다른 색깔의 옷들로 갈아입도록 조치했고, 집회장 주변의 경계도 특별하게 강화한 상태에서 이 밤이 밝기를 기다렸다.
아래의 사진들은 세계 110개국 이상에서 14,000명 이상의 시민기자들이 참여해 제작하는 웹-언론 "데모틱스"(Demotix)가 공개해준 어젯밤 촬영된 사진이다. 집회구역 최전선 외곽의 바리케이트 바로 안쪽에서 레드셔츠 사수대가 강제진압에 대비해 비장한 모습으로 준비하는 모습들이 담겨있다. 북부와 북동부 농촌지역의 청장년들로 구성된 이들은, 지난 3월 12일경부터 방콕에 도착해 오늘(4.26)로서 46일째 시위대 외곽의 경계를 맡고 있다. 지난 4월 10일 실탄이 사용되어 25명이 사망하고 800명 이상이 부상했던 강제진압 당시에도, 바로 이들이 시위대 최전선에서 진압군과 접전을 펼친 바 있다. 레드셔츠 시위대의 집회구역이 위치한 라차빠송 사거리는, 이 사진에서 이들이 현재 서 있는 곳의 등 뒤쪽으로 1km 이상 후방에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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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제는 레드셔츠는 아무도 안 입었네요. 무기를 가지고 있지않고 철저히 비폭력적으로 행동하는 저들이 왜 이렇게 제 마음에 가깝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네요, 공연히 눈물이 날려고까지 합니다. 그 오랜 날을 지내면서도 눈빛들이 살아있는 저들이 경이롭기까지 하네요. 제발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붉은셔츠 시위대에 경의를 표하며 꼭 승리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