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편집) 크메르의 세계
태국의 대중음악 룩퉁 쇼와 고교 룩퉁 경연대회 "칭차사완"
"룩퉁"(Luk thung, ลูกทุ่ง)은 태국을 대표하는 대중음악 장르이다. 룩퉁은 "룩꿍"(Luk krung, ลูกกรุง) "멀람"(Mo lam 혹은 Mor lam, หมอลำ) 및 "깐뜸"(Kantrum: กันตรึม) 장르와 더불어, 한국의 트로트 음악이나 일본의 엔카(演歌)에 대비되는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음악 장르이다. 이들 여러 장르들 중에서도, 룩퉁은 태국의 대중문화계에서 특히 우세한 위상을 갖고 있고, 한국이나 일본의 유사 장르와 비교해서도 훨씬 더 큰 상업적 음악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룩퉁 쇼는 주로 유명 가수를 주인공으로 진행함으로써, 과거 한국의 가수들이 활동했던 리사이틀 형식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 "라이브 공연산업"에 속한다. 룩퉁 쇼는 통상 관객 1인당 100바트(2,500~3,000원) 정도의 입장료를 받는데, 소도시들의 경우 룩퉁 쇼 단체가 들어온 날 밤에는 교통이 뜸해지면서, 남녀노소 모두들 공연장을 찾기도 하는 서민적 공연예술이다. 그 진행시간이 4~5시간에 달하는 이 화려한 대중 쇼를 보지 않고서 태국을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이다.
룩퉁의 유명 가수들은 언제나 대규모 악단과 남녀 무용단 및 합창단, 그리고 개그쇼를 진행할 동료 코메디언들과 함께 극단을 꾸려 전국 투어에 나선다. 룩퉁 쇼에 출연하는 남녀 댄서들은 고전무용과 현대적 댄싱 모두에 능하고, 때때로 합창단 역할까지 해낸다. 특히 룩퉁 쇼는 그 출연자들이 태국의 전통 의상부터 심지어는 현대적 핫팬츠와 미니스커트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화려한 의상들을 지속적으로 갈아입고 출연하는 볼거리로 유명하다. "룩퉁 패션"으로도 불리는 이러한 의상은 이제 룩퉁쇼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이하의 사진들은 태국의 인물사진 작가 소라윗 붑파(Sorawich Buppa)가 촬영한 것으로, 룩퉁 쇼 공연장 주변의 모습들을 담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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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배우이자 룩퉁 가수로 유명한 벤 폰치따(เบนซ์ พรชิตาซ์)의 룩퉁 쇼 출연 모습. 본명은 폰치따 나 송카(พรชิตา ณ สงขลา)이다. 그녀의 의상 역시 룩퉁 패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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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벤 폰치따의 공연모습. 그녀의 무대에서도 남녀 무용수들이 함께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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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룩퉁 패선을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인 무랑루즈 캉캉춤 풍의 의상. 이 사진에 나온 댄서들은 전형적인 룩퉁 패션보다 약간 모던한 디자인의 의상을 착용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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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또다른 출연대기자들의 모습. 우아함과 섹시함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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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발레풍의 의상을 착용한 백댄서들.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룩퉁 쇼는 상상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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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룩퉁 쇼는 기나긴 공연시간 동안 노래와 춤은 물론이고, 개그 쇼(만담), 고전극과 뮤지컬 등 다양한 형식의 프로그램들이 이어진다. 이 사진은 현대적 테마로 표현한 댄스극의 한 장면으로 보인다. 룩퉁 쇼의 아름다운 색조와 화려함에 걸맞는 촬영을 한 소라웃 작가가, 룩퉁 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통의상과 전통극 형식을 포착하지 않은 점이 다소 아쉽지만, 이후 룩퉁에 관한 또다른 게시물들에서 상세한 내용을 보강하기로 한다. |
MCOT의 고교 룩퉁 경연대회 <칭차사완>
태국의 MCOT TV "채널9"에서는, 매주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풍차유람선>(ชิงช้าสวรรค์, 칭차사완)이라는 경연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매주 2곳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모교와 자기 고장의 명예를 건 장기자랑 토너먼트를 벌이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구성이다. 각 학교들이 지방색을 담고있어서 전국적으로 상당히 시청율이 높은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고교생들은 기본적으로 룩퉁 쇼의 형식을 빌어 공연을 한다. 따라서 전통악기와 현대악기가 조화를 이룬 태국 고교들의 밴드부와 무용단, 그리고 학교를 대표하는 가수 등 각자의 역할을 하나로 모아 종합예술 형식으로 자웅을 겨루는 것이다. 대체로 룩퉁 쇼 중에서 전통적 요소를 많이 담고있는 형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프로그램의 마지막에서 승패의 결과 발표가 나면, 공개홀이 눈물바다로 변하는 것이 또한 이 프로그램의 포인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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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국의 고등학교들이 잃어버린 전통 중에 밴드부 전통이란 게 있습니다.. 물론 대신 개인적으로 만든 락 밴드나 댄스 그룹들은 많지만 말이죠.. 이 밴드부 전통이 무너지다 보니, 금관악기 분야가 많이 약화되었고.. 나름의 빅밴드(금관악기가 편성된 밴드) 스타일에 대한 향수도 잃어버렸는데 말이죠...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는 현재도 각 학교마다 금관악기 위주의 밴드부 전통이 많이 남아 있는데... 태국 역시 그 전통은 상당하네요.. 역시 식민지를 안겪고 전쟁이 크게 없었던 영향으로 생각되는데, 부러운 점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푸미폰 국왕이 섹스폰을 전문으로 하는
재즈 뮤지션이란 점도 무시할 수 없겠죠...
식민지를 안 격었다는 것이 무슨 말씀 이신지요?...
태국은 일제의 점령 국이고 그들에게 모든걸 내주었던 식민지 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이전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에게 줄기차게 식민지화를 넘어서는 지배를 받아온 나리 이고요...
많은 태국인들이 주구장창 떠드는 동양에서 유일한 비 식민지 국가라는 말, 예, 허상 이지요?...
하하, 박공 님께서 간만에 또 논평을 해주셨네요.. ^^
맞습니다.. 공식적으로 강화조약은 안 맺었지만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본이 거의 식민지 취급을 했었던 건 맞는데..
문화적으로 고유의 전통이 단절될만한 큰 사건은 아니었다는 말씀이지요.. ^^
그렇게 단절되는 피 눈물 나는 고통을 격지 않았기에 지금과 같이 안일한 자세로 국가의 모든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얘들은 그냥 뻑하면 타협 이예요...비굴하게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항거 할 때는 항거한 역사 이거든요...그러면서 발전을 거듭해 왔고요...
여긴 발전 이라고는 눈 씻고 볼 수가 없어요...
작금, UUD에 의해서 일종의 움직임이 있었던 걸 왕실에서 깡그리 깔아 뭉겠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발전이 없을 수 밖에요...
발전 이라는 것이 새걸 위해서는 헌 집을 갈아엎고 새로 지어야 하거든요...
아울러 캄보디아도 전쟁이 없었으면,
바로 이런 전통이 계속 유지되어
지금보다 더 화려한 발전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직은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
시골 동네에서도 잔치가 있으면, 상당한 피로연 문화가 있고...
부자들의 경우엔, 연예인들을 피로연에 부르기도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아직 이런 체계적인 공연산업 시장으로까지는 이르지 못한듯 합니다...
심지어 대형 기획사 RHM의 경우에도
아직은 전국 순회공연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듯합니다...
전쟁이 아니고 내전 이었지요...그 내전도 외세의 힘에 의한 학살 이었고요...
그 중간에서 크메르는 갈라섰고 군부가 들어와 장악하다가 군부가 퇴각하고 그 뒤를 그 군부의 핵심 참모가 다시 이어 받은 것이고요...
전쟁이라함은 국가와 국가간의 분쟁을 의미하는 용어 이지요...
그리고, 문화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서 발전을 해도 좋지 않은 법입니다...
흥청 망청 하거든요...그래서 삼권을 분립한 것이고요...그런데 그 삼권 분립이 택구이나 크메르 에서는 준수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그게 문제 이지요...
뭐, 우리나라는 지켜지나?...에혀~...다 죽어뻐려~...>_<...
좋네요.^^*
일단 이 게시물에서.. 동영상의 경우엔..
아마추어인 고교생들의 공연 모습부터 보시고..
이후 다른 게시물들에서 프로들의 세계로 좀 터프하게 들어가 보겠습니다 ^^
마지막에 패배한 학교의 여학생이 결국 울다가 기절해서 스탭이 들어와 급히 들고 나가기도 합니다.. 정말 목숨 걸고들 한거네요..
한 나라의 국민들을 바보로 만드는데 장장 64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간 왕실에서는 꾸준히 세뇌 해왔고요...
배고프고 굶주림이 하늘을 찌르는데 무슨 얼어죽을 바이올린이고 트럼펱 입니까?...
그 결과가 작금 UDD를 통해서 배설이 된 것이고요...
그렇게 세뇌하면 모든 것이 다 잠잠할 줄 알았겠지요?...
인터넽 입니다...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막을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저, 사진의 벤쯔는 제가 3년 전에 인터뷰를 했던 아이예요...
심성은 좋더군요...이쁘기도 하고...그런데 입술 위에 큰 점이 하나 있어요...무대위나 연기 할 때는 가리고 하지요...
박공 님 말씀 듣고 보니, 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 사회의 개혁이나 진보는 여러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20세기에 가장 공부를 많이 했던 사람 10명을 꼽는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버트란드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이
그 중 상위권에 배치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꼼꼼한 분야인 수학과 논리철학에서의 세밀한 연구부터 시작해서...
역사와 종교, 교육 등에 관한 그랜드한 발언들을 담은 저술 등 방대하게 남긴
켐브리지 대학 교수이자, 귀족 백작이었죠...
러셀 선생의 스승 중 1분은 또 좀 다른 세계관을 가졌던 분으로
과정철학을 창시하고 미국에서 생을 마감한 화이트 헤드 선생이신데,
도올 김용옥 선생께서 많이 존경하시는 분이시죠...
반면 러셀 선생의 제자이자 후배동료가
바로 비트겐슈타인이란 재야의 철학자였습니다..
독일의 재벌집에서 태어나서 재산 모두를 기부하고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이 세상을 떠난 분인데
저술도 대표적인 것은 딱 2권이고
그 외에 소논문만 몇편 달랑 잇는데..
제가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하는 정신적 스승 중 한 분입니다...
러셀 선생은 한마디로 제도권에 몸담고 있으면서,
제도권 비제도권을 가리지 않고, 배울만한 사람이 있으면
나이가 많든 적든 함게 하여 익히곤 했던, 현대 서구문명의 최고 지식인이었습니다.
즉 머리만 좋은 게 아니라 발품도 팔줄 아는 양반이었고
왠만한 건 자존심 같은 거 안 내세우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언제나 학회 같은 모임이 있으면 주도적으로 기획과 총무 역할을 한
학문 정치인이기도 했습니다...
러셀은 자신의 교유록에서,
대학시절 교수들보다 친구나 몇년 위의 선배들과의 교류가
자신의 지적 성장에 매우 중요했다는 점을 고백합니다...
상당히 열린 사고를 했던 분인데...
이분이 아마 기타를 연주했다면, 분명 에릭 클랩튼 스타일로 되었으리라 추정합니다 ^^
그런데 이런 양반조차, 자신의 저서 <자녀교육론>에서 고백하기를..
<나는 자유주의 평등 교육을 지지한다.
그런데 당장 영국식 엘리트 교육제도를 폐지하면
나나, 혹은 화이트 헤드, 혹은 비트겐슈타인 같은
귀족식 교육을 받은 이들이 출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서
인류가 가진 가능성을 상실하게 될 우려도 하게 된다>
고 고백했고, 그 자신의 죽기 전까지의 일종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가령 러셀 같은 사람들은 가정교사들을 두고
이미 10대 초반에 7개국어 정도를 회화가 가능한 상태였죠..
우리가 사회개혁을 너무 전면적 영역에 걸쳐 전선을 만들게 되면..
바로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나.. 크메르루즈의 지식인처단 같은 극단적 현상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태국의 집권 극우파가 엄청나게 집요한 자들이며
간악한 자들임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위의 룩퉁과 같은 문화적 전통이..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여
저같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것은..
바로 인류가 보존해야할만큼 가치를 지닌 예술임을 말해주는 것인데..
"가난"과 "바이얼린"에서 사회적 모순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우리가 그 "사회적 모순"을 잘 자각하고 있다면
기존의 태국사회가 가진 좋은 면도 ..
나름 인정해주고,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
제가 처음 동남아 공부는 캄보디아부터 시작해서인지 모르겠는데..
혹시 제가 캄보디아로 돌아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다면,,,
저는 일렉트릭 기타를 사주고.. 악기 연주하는 법부터 가르치고 싶습니다.. ^^
하나의 다른 세계를 보는 경험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되니가 말이죠... ^^
박공 님 말씀을 듣고보니..
또 여러가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이들이 문제가 아닙니다...지금, 제 아들에게도 기타를 가르치지만요 문제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상위 1%가 고질적인 병폐입니다...달콤 하거든요...
비트겐 슈타인이 어찌했건 저는 알바 아니고,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 털고 공유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회가 되실지는 모르겠으나 기회가 되신다면 뉴질런드를 한번 견학차 가보시기를 강추 합니다...인간이라 하면 최소한 그 정도의 삶의 질과 그 정도의 행복권은 누리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인간다운 삶 이건든요...
그런데 그 나라가 민주주의 조직이 아니고 반 사회주의적인 국가 체제 입니다...
많은 생각을 해봐야 할 부분입니다...
하하, 단군박공 님.. 잘 알겠습니다..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번 또 공부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별도의 게시물을 통해서..
<교육과 문화예술, 그리고 자본력>이라는 주제를 좀 다뤄볼까 합니다..
문제는 교육이나 문화예술의 증진에는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인데..
그 "돈"이 특정세력에게 배타적으로만 집중되고 운용될 때
"가난"과 "바이얼린" 사이의 모순은 더 간극을 넓히게 되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작금의 사회적 모순만을 생각해서
<이것은 바람직한 것, 저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하면서
전선을 만들어나가다 보면..
결국 우리가 입고 있는 옷까지 다 발가벗어야 하는 사태가 온다는거죠..^ ^
예전에 말입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죠,,,
그때, 대중문화 쪽을 좀 생각해보면 말이죠...
그때 대학 캠퍼스에서 락 뮤직을 연주하면..
운동권 학생들이 <미제의 앞잡이> 음악이라며 손가락질 하면서,
그들은 한복입고 장고와 북을 잡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 트로트 음악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정치적 의식이 없다면서, 비판적으로 보았는데..
이 트로트 음악 하는 양반들의 경우..
기득권측인 정권으로부터는 또 퇴폐적이라며 매도당해서..
운동권 학생과 정부측 양방으로부터 공격받는 입장이었다고도 할 수 있죠..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요즘은 락뮤직은 <저항의 음악>이다 하면서..
한국의 진보진영이 환영하는 예술장르가 되었죠,,,.
물론 거기에는.. 저도 락매니아입니다만...
한국의 락뮤지션들이 가진 몇가지 한계가 좀 지적돼야 하는데
그건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말이죠...
트로트의 경우
한마디로 당시 집권층과 운동권 학생 양방에서 우습게보던 트로트 음악...
하여간 결론은 <락뮤직>과 <트로트 뮤직>..
둘 다 살아남았다는 것이고...
전두환 정권은 결국 재판으로 심판되었고..
저 역시 그 깃발 아래서 함께 어깨걸고 나갔던
<전대협>은 그냥 전설과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는거죠..
물론, <전대협>이 오늘날 그 출신자들이 면면하게 활동한다..
이러면서 또 제게 비판을 해대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그건 지금의 논점과는 좀 다른 얘기라는 건 이해들 해주시기 바랍니다..
결론은 무엇이냐...
예술은 "그냥" 예술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예술 작품이나 문화를 즐길 때는..
예술적 즐거움으로 즐기자는 것이죠...
이념 없는 예술은 없다??
정태춘이 위대한 것은.. 그의 투쟁경력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만든 투쟁적 음악들이 기본적으로 음악적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러시아 혁명에 가담했던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오늘날에도 연주되는 것은
러시아 혁명사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의 음악 자체가 러시아혁명에 관한 주제인가와는 상관없이
위대한 클래식 음악 예술이기 때문인거죠...
그러니..
태국의 룩퉁 가수들이.. 노란 나찌 왕당파에 대해 우호적이든 아니든...
일단 그들이 좋은 룩퉁 예술인인가가 우리의 감상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
태국의 사회적 모순..
푸미폰 국왕 기사에서만 우리가 까대도 충분하다고 생각되네요.. ^^
세계적으로 우리만큼 또 실랄하게 태국 왕실을 까대는 곳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하여간 결론은....
예술~~ 생각보다 생명력이 질긴거라는거죠.. ^^
그리고 태국의 룩퉁...
그 태국의 언론검열 속에서도 나름의 표현영역을 개발하며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정서를 표현하지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