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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2] 33 - 어느 날 심장이 말했다
씬 1 약수터 오르는 길 (이른 아침)
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상쾌함이 느껴지는 아침. 운동복 차림의 광도가 언덕을 오르고 있다.
그렇게 오르다가 문득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 올라 오고 있는 흥수.
추워죽겠다는 듯, 운동복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소매는 있는 대로 끌어당겨 겨드랑이에 끼고,
아직 잠이 덜 깬 듯 게슴치레한 눈으로 쫄래쫄래 따라오다가 제 발에 제가 걸려서 휘청한다.
광도 쯔쯔쯔 혀차며 보다가 가면, 흥수 얼른 또 손 겨드랑이에 끼고 쫄래쫄래 오른다.
씬 2 약수터(D)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 약숫물 뜨고 있는 사람들로 활기찬 약수터 풍경인데,
그 위로 쩌렁쩌렁하게 들리는,
흥수 : (E)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요!!
사람들 하던 일들 멈추고 돌아보면, 언덕 끝에서 이제 막 도착하고 있는 흥수와 광도의 모습.
광도 가볍게 맨손 체조하며 오고 있고,
그 옆에 흥수 이건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항의하며 따라오고 있다.
흥수 : 이건 말두 안돼요 진짜. 저번 주에두, 쩌어어어번-- 주에두 제가 대신 했었잖아요.
광도 : (옆의 학생에게) 학생, 거 물컵 좀 빌립시다.
남학생 : (모자 써서 얼굴 잘 보이는) 예, 여기. (컵 건네주고 한쪽으로 가서 몸풀며 운동하는)
흥수 : 이건 직무유기에 책임회피라구요! 전 분명히 저번주에 식사당번 끝냈구,
이번 주는 분명히 아버지가 당번이시잖아요! 근데 그걸 왜 또 제가 대신, (하며 광도 보면)
광도 : (노려보고 있다) 그래서?
흥수 : (그 눈빛에) 아,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제가 무슨 부엌떼기두 아니구, 밥튕이두 아닌데
허구헌날 집안 살림만 붙잡구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
광도 : 그래서어.
흥수 : 아, 아니 해, 해요. 하긴 하는데...
광도 : 짜식, 진작에 그렇게 말할 것이지. 힘들어두 이번 주만 좀 봐줘. 내가 일이 많아 그래.
밀린 서류며 공문 처리해야지, 일본 자매결연 학교 애들 오늘 마지막 날이라 환송해줘야지,
흥수 : (입이 한자는 나와서) 알았어요. 한다잖아요.
광도 : 알았으면 입 좀 집어 너 임마. (픽 웃고는 약수통 들고 물가쪽으로 가는)
흥수 : .... (멀어지는 아버지 봤다가) .... (발끝으로 괜히 돌부리 툭툭 차며 혼잣소리 처럼)
씨이... 나두 고삼인데... 어휴.... 내 팔짜야.
앞머리 입김으로 한 번 훅 불어 날리는
씬 3 광도의 주방(D)
교복차림으로 들어서는 흥수.
문득 밥통을 한 번 열어본다. 비어있다.
흥수 가벼운 한숨 내쉬고는 그냥 나간다.
씬 4 아파트 복도 + 엘리베이터앞(D)
막 아파트의 문 열고 나오는 교복차림의 흥수.
열쇠로 잠그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는데
옆집 문 거칠게 열리며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나오는 다른 교복의 남학생 한명.
학생모 : (녹즙잔과 영양제 들고 그 뒤를 바로 쫓아나오며) 얘, 그렇다구 아침두 안먹구 가면 어떡해.
이거라두 먹구 가.
남학생1 : (신경질 팍!) 됐다니깐! 지금 그거 먹게 생겼어요 내가?
학생모 : 미안해. 엄마가 담부터는 꼭 제 시간에 깨워줄게. 이거 먹구 가 응?
짜증내는 아들과 그런 아들을 지성으로 챙기는 어머니.
그런 두 사람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는 흥수.
어느순간 시선 느낀 두 사람과 시선 마주치면 머쓱해져서 뒤돌아 서는 흥수, 그 모습 위로... 타이틀
'어느 날 심장이 말했다'
씬 5 영화반(D)
하얀 김을 내며 맹물 끓여내고 있는 커피포트.
입에 나무젓가락 물고, 손에 컵라면 들고 물 끓기를 기다리고 있는 흥수.
어느순간 '다 끓었다, 다 끓었다' 좋아라 하며 컵라면 용기에 물 붓는데, 문득 밖에서 들리는 소리...
흥수 : (문 쪽 보며) .... ? (무슨 모터 돌아가는 소리 같다)
씬 6 옥상(D)
나무 젓가락 입에 물고 ?해서 나오던 흥수, 문득 그 자리에 멈칫 선다.
그 시선으로 보이는 옥상 끝.... 웬 사복차림의 남학생(진이다) 한명이 모터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문득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는 진..
흥수 : (경계의) 누구세요? 우리 학교는 외부인 출입금진데.
진 : .... ? (흥수 얼굴,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다) ...
흥수 : 뭐, 뭘 그렇게 봐요?
진 : .... (생각해 낸 듯 픽 웃는)
흥수 : (진지하게) 바본가...? (혼자 고개 갸웃 했다가) 아아...! 혹시 일본 자매 학교에서 온 학생인가?
진 : (뭔가 말하려는 순간)
흥수 : (한 손 들며 귀엽게) 오하요 고자이마스.
진 : ? (보는)
흥수 : ... 아닌가? (하는데)
진 : .... (어느순간 입가에 장난기 있는 미소 스치며) 오하요 고자이마스.
흥수 : (순간 반짝이며) 맞다! (씨익 웃는데)
진 : (능숙한 일어로) 이 학교 학생입니까?
흥수 : ? (순간 당황해서) 뭐... 뭐래는거냐 저게...
진 : (흥수 손에 들린 나무젓가락 보며 일어로) 식사중이었습니까?
흥수 : ? (그 시선 따라가 봤다가) 아, 이, 이것은 와, 와리바시 데스입니다.
진 : (그런 흥수 귀여워서 웃고)
흥수 : (비웃는 줄 알고 떨떠름하게 웃는)
씬 7 교무실(D)
재현, 무슨 자료 흥미진진하게 넘겨보고 있다.
가끔 휘파람 불며, 와우, 환호하기도 하고, 하하, 웃기도 하는.
정인 : ? (보며) 뭔데 그렇게 재밌게 읽으세요?
재현 : 예? 아아... 이번에 우리반에 새로 전학 올 녀석 데이터를 읽는 중인데,
이 자식이 완전 물건이예요.
일평 : 또 전학생이야? 2학년 5반은 거기 터가 그래? 왜 그렇게 들락 날락하는 놈들이 많아?
재현 : 재밌잖아요.
일평 : 퍽두 재밌겠다. 근데 어떤 학생인데 물건이야?
재현 : 이 자식이 직접 자기 소개서를 써왔는데 엄청 재밌어요. 손으로 조립하는건 뭐든지 자신 있구,
요리를 101가지나 할 수 있대요.
유란 : 요즘 애들이 다 그렇죠 뭐. 평범한데요 뭘.
재현 : 이건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본편이 더 흥미진진해요.
교사들 : ? (본다)
재현 : 미국에서 살다 온 녀석인데요. 일어, 불어까지 삼개국어에 능통한데다가
세계 곳곳 안가본데가 없어요.
복만 : 어학능력이 그렇게 뛰어나면 머리도 좋겠네. IQ도 괜찮아?
재현 : 하하. 그게 또 재밌다는거 아닙니까? IQ란에 뭐라구 적혀있는지 아세요?
교사들 : (관심 집중되고)
재현 : 이 학생은 본 자료로는 IQ측정이 불가능함.
유란 : 천잰가?
복만 : 원숭일 수두 있죠.
재현 : 그러니까 재밌다는거 아닙니까. 연구대상이라니까요. (재밌어 죽겠다)
씬 8 영화반(D)
흥수와 진, 같이 컵라면 먹고 있다.
흥수 먹으면서 알아듣건 말건 연신 떠들어대고 있다.
흥수 : 그러니까 내 말의 결론은 뭐냐, 독도는 우리 땅이라 이거야.
왜냐! 세종실록지리지 오십페이지 셋째줄에두 나와있고, 신라장군 이사부가 지하에서 웃거든.
진 : (대꾸없이 컵라면 용기 들고 국물 까지 맛있게 비우고는 내려놓는)
흥수 : 차식... 엄청 잘 먹네. 더 먹을래? 어, 그러니까... (컵 라며 내밀며) 디스 오케이?
진 : (좋아서 얼른 끄덕인다)
흥수 : 그래 2001년 월드컵도 함께 여는 마당에 까짓 기분이다. (준다)
진 : (신나서 먹는다)
흥수 : ... (보다가) 맛있냐? 그래에. 가끔 먹으니까 맛있지? 너두 허구헌날 아침저녁으루 먹어봐라.
물리다 못해 아주 신물이 넘어올꺼다.
진 : ... (힐끔 보는)
흥수 : 지금이야 집 떠나, 부모 떠나, 신난다, 유람 온 기분이겠지만, 좀만 지나봐라.
너두 엄마가 해주는 뜨끈뜨끈한 쌀밥이 그리워질꺼다.
진 : ... (보는)
흥수 : (못 알아 듣는다고 생각하고 혼잣말 처럼, 조금 우울해져서)
너두 고국에 돌아가면 엄마 한테 잘해 임마. 살아계실 때... 잘하라구.
돌아가시구 나면, 해준 밥 안먹었던게 을마나 후회 되는지 아냐?
못먹는 거랑, 안먹는 거는 차원이 다른거야...
진 : ... (그런 흥수 보며 미소짓는다. 흥수가 맘에 든다)
용구 : (E) 우와, 증말이야? 이걸 그 일본 학생이 줬단 말야?
씬 9 2학년 5반 교실(D)
흥수 주위로 몰려 앉아있는 아이들.
흥수, 진이가 들고 있던 모터 비행기 품에 안고 있다.
흥수 : 그렇다니까. 내가 역사공부를 좀 시켜줬거든. 그랬더니 역사의 진실을 알고
무지하게 감동받은 표정이드라구. 우정의 표시루 주겠대.
애라 : 근데 어떻게 말이 통했냐?
흥수 : 내가 일어가 쫌 되잖냐. 바디랭귀지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했지.
유미 : (흥수 다시보며) 와, 박흥수! 굼벵이두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너 한테 그런 재주가 있었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야.
흥수 : 뭘. 그 정도 갖구... (으쓱해서 웃는데)
재현 : (들어온다)
아이들 : (후다닥 자리 찾아서 앉고)
지민 : (일어나서 경례한다)
재현 : 이번 기말고사가 끝나는 대로 부모님과 함께 진학상담을 할 예정이라는거, 알고 있지?
아이들 : (아으으으...)
재현 : 오늘 진학상담용지를 나눠줄테니까 부모님들과 한 시간 이상 충분히 상의 한 후에
지망하는 대학, 학과, 지망이유를 정확하게 기재해서, 가져와.
그걸 자료로 부모님과 상담 할테니까 알겠지?
아이들 : 네.
재현 : 반장, 조회 끝나면, (들고온 프린트물 주며) 이거 한 장씩들 나눠줘.
지민 : 네. (나와서 받아가고)
재현 : 아 그리고, 우리반에 새로운 친구가 한명 전학을 왔다. (아이들 웅성 이기 시작하고)
기대되지? (교실 밖에 대고) 안들어오구 뭐해 임마.
순간 아이들의 시선 앞문 쪽으로 집중되고,
하품 하면서 앞문 쪽 보다가 입 떡 벌어진 상태로 하얗게 굳는 흥수.
교실 앞문으로 들어서는 전학생. 교복으로 말끔하게 차려입은 진이다!
우우--- 노골적으로 환호하는 여학생들도 있고.
재현 : (유진에게) 자기 소개는 준비해왔겠지?
진 : 네. (교탁으로 와서 서툰 한국어로) 반갑습니다.... 유.진 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살다와서 아직 한국말이 서툽니다. 잘봐주십시오.
아영 : 잰 또 어디서 굴러온 개뼉다구냐?
희진 : 혀에 버터 발랐냐? 지가 무슨 유진박이야 뭐야 재수없어.
재현 : (교실 둘러보며) 자리는 흥수 뒷자리. (흥수 쪽 가리키며) 저쪽이다.
유진 : 네. (재현에게 인사하고 자리로)
흥수 : (알아볼까봐 얼른 고개 팍 숙이고)
유진 : (자리에 앉으며 그런 흥수 보고 피식 웃는)
씬 10 화장실(D)
아무도 없는 화장실.
흥수 머리 감싸쥐며 들어온다. 혼자 쪽팔려서 미칠 지경이다.
흥수 : 우와, 우와. (머리 감싸쥐고 구석으로 가며) 어으! 어으!
광도 : (화장실에서 나오며) ? (보는)
흥수 : 아으, 나쁜 자식, 아으, 응큼한 자식. (머리 벅벅 긁으며 돌아서는데 그 앞에 서있는 광도)
광도 : 왜 그래 임마. 머리 안 감았어?
흥수 : 아...아니요. (얼른 머리 쓸어내린다)
광도 : (슬쩍 주변 살피며) 아침 먹었냐?
흥수 : 예.
광도 : 또 라면 먹은거 아니겠지?
흥수 : 네.
광도 : 라면 먹지 마라. (나가고)
흥수 : ... (보고 나가려다가 다시 머리 감싸쥐며) 어휴, 미치겠다.
라면 한 그릇 멕여놓구 혼자 미친놈 처럼 원맨쇼를 했으니.
(한숨 푸욱 쉬며) ...어울리지 않게 약한 모습까지 보였는데...
씬 11 2학년 5반 교실(D)
진의 주위에 몰려있는 아이들.
흥수, 애써 태연을 가장하고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그런 흥수 보며 미소짓는 진.
애라 : (이쁜 척 하며) 그럼 미국 이름두 유진이야?
진 : 응. 부모님이 유진 오닐을 좋아하셨거든. 흥수 너두 유진 오닐 좋아하냐?
흥수 : ! (진이의 아는 체에 기겁하고)
아이들 : (어? 흥수를 어떻게 알지? 둘을 번갈아 바라보는)
흥수 : (아이들 시선에 괜히 당황하며) 그, 그건 알아서 뭐하게 니가!
진 : (웃고)
유미 : 그럼 너두 한국에서 대학 다닐꺼야?
진 : 응.
지민 : 생각해 놓은 과 있어?
진 : 글쎄... 흥수 넌, 무슨 꽈 갈꺼야?
흥수 : ! (또 기겁하고)
아이들 : ? (두사람 보면)
흥수 : (아이들 시선에 당황했다가 버럭) 너, 너 때문에 신경정신과에 가게 생겼다 왜! (나가고)
진 : (웃는 위로)
신화 : (E) 왜 그렇게 싫어해?
씬 12 영화반(D)
모여있는 영화반아이들.
신화 : 좋은 애 같던데.
흥수 : 니 눈에 안 좋아 보이는 애두 있냐?
애라 : 왜에, 나두 멋있든데. 벌써 일학년 여자애들이 구경 왔드래니까?
흥수 : 눈에 기브스를 하라 그래라.
지민 : (흥수 놀리려고 짐짓) 유진 개, 어딘지 강렬하게 사람을 끌어 당기는 뭔가가 있는거 같지 않냐?
정연 : (흥수 쪽 의식하며) 그러게 말야. 이유가 뭘까?
애라 : 딴건 몰라도 일단 얼굴이 되잖냐. 솔직히 우리학교 남학생들,
얼굴이 양심불량인 애들이 좀 많았냐?
유미 : (수긍하듯 끄덕이고 진지하게) 사람은 일단 잘생기고 봐야겠구나.
애라 : 잘생겨서 나쁠건 없지. 가까운 예로 우리 흥수를 봐.
흥수 : 나 뭘 봐?
애라 : 흥수 인간성이 얼마나 좋냐. 하지만 그 인간성을 둘러싸고 있는 거죽이 덜 섹쉬하니까!
여자들이 별루 안 따르잖아.
흥수 : (버럭) 내 가죽이 어디가 어때서!
유미 : 너무 말라서 비린내 나게 생겼잖아.
흥수 : 그 자식은! 그자식두 근육질은 아니잖아!
지민 : 유진은 소프트웨어가 따라주잖냐. 삼개국어가 된다잖아 삼개국어가.
흥수 : (이씨...화나고)
정연 : (어깨 토닥여주며) 힘내. 대신 넌 아줌마 팬들이 많잖아.
유미 : 맞아. 니가 식당 가서 밥 먹을 때마다, 아줌마 이거 양념 어떻게 하는거예요? 물어보면,
아줌마들이 귀여워서 죽잖아.
흥수 : (더는 못 참고 가방 들고 일어나는)
신화 : 어디가?
흥수 : 밥하러 간다 왜! (나가면)
아이들 : (깔깔깔 웃음 터지는)
신화 : 너무했다 니들. 너무 심한거 아니야?
지민 : 귀엽잖냐. 난 흥수 재롱 보는 맛에 학교온다 야.
아이들 : (깔깔깔 웃는)
씬 13 교정일각(D)
씩씩 대며 나오는 흥수인데, 누군가 그 앞을 가로 막아 선다.
흥수 : ? (해서 보면)
진 : (해맑게 웃으며) 같이 가자.
흥수 : (미치겠는, 먼저 확확 가버린다)
진 : (웃으며 따라가는)
씬 14 대형 수퍼마켓(D)
흥수 카트 밀며 진열대 사이를 다니고 있다.
그 뒤를 역시 카트를 밀며 진이가 따라붙고 있다.
흥수, 적당한 것 골라서 카트 안에 집어 넣는데 전부 인스턴트 음식들이다.
흥수가 인스턴트 음식 골라 카터 안에 집어넣으면 다시 빼서 진열대에 올려놓는 진.
흥수, 라면 한뭉치 골라와서 집어넣다가 보면 텅 비어 있는 카트 안.
흥수 : (끓어오르는 것 누르며) 야 유진!
진 : (본다)
흥수 : (씩씩 유진 앞으로 와서) 왜 자꾸 내 뒤만 쫄래쫄래 따라다녀?
진 : 나두 장 봐야 돼. 내 취미가 요리거든.
흥수 : 그럼 니 볼 일 봐. 왜 남 쇼핑하는 거 까지 방해하구 난리야! (카트 홱 돌려서 가려는데)
진 : (딴짓 하며) 따뜻한 쌀밥 먹구 싶다며.
흥수 : ! (멈칫하는)
진 : (쌀봉지 두 개 들고 와서 하나 흥수의 카트에 넣어주며) 인스턴트 말구 밥 먹자 우리.
흥수 : 우리?
진 : 어 우리... 실은 나두 너랑 좀 비슷한 처지거든.
흥수 : 뭐?
진 : 부모님이 아직 미국에 계시기 때문에 나두 거의 혼자야. 외로운 사람들끼리 앞으루 잘 지내보자.
(웃으며 카트 끌고 가는)
흥수 : (보는)
씬 15 광도의 거실(N)
한손에 쇼핑 본 거 들고 들어오는 흥수.
그렇게 들어서다가 문득 새삼 실내를 둘러보는 흥수...
흥수 : 반겨주는 개 한 마리두 없구... 썰렁....하다 진짜...
괜시리 우울해져서 푸욱 한숨 쉬는 흥수의 모습. (디졸브)
어두운 거실. 부엌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물소리... 그릇 부딪히는 소리...
잠시후 어둠 속에서 들리는 전화벨 소리.
에이프런 차림으로 나와서 전화 받는 흥수...
흥수 : 여보세요? 어, 아부지? 안그래두 아버지랑 할 얘기가, (하는데)
광도 : (F) 오늘 아버지 숙직이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문단속 잘 하고. 알았어?
흥수 : 예... (맥 빠져서 수화기 내려놓는) .... (터덜터덜 주방으로)
씬 16 광도의 주방(N)
들어서는 흥수.
문득 식탁 위에 올려놓은 진학상담 용지 들어서 본다.
가볍게 한숨 쉬며 내려놓고는 싱크대 쪽으로 간다.
싱크대 위에는 앉혀 놓으려고 씻어놓은 쌀.
흥수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싱크대 찬장에서 라면 봉지 꺼낸다.
흥수 : (E) 원하는 대학, 학과 그런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약간의 시간경과)
라면 먹으면서 혼자 진학상담 용지 작성하고 있는 흥수.
지망 이유를 쓰는 란에 볼펜으로 적어넣고 있다.
흥수 : (E) 저는 꼭 대학에 진학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컴퓨터와 관련된 거라면 모든지 하고 싶습니다.
씬 17 흥수의 방(N)
책상 위에 켜놓은 스탠드 불빛이 전부인 방안...
컴퓨터 화면 속에는 귀여운 캐릭터 애완동물이 화면 안을 돌아다니고 있고...
흥수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다.
흥수 : (E) 지금은 패밀리 마켓이라는 게임을 구상 중에 있습니다.
고민과 아픔을 함께 할 가족을 만들어가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이 완성되면...
어쩜 더 이상 컴퓨터 속에, 다마고찌를 키우지 않아두 될 지 모르겠습니다...
(F.O)
씬 18 학교외경(D)
씬 19 2학년 5반 교실(D)
빈 교실. 연진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다.
뒷문 열리고 세진 들어선다.
연진 : (웃으며) 일찍 왔네?
세진 : (퉁명스레) 잠 자러 온거야. (책상에 가방 던지고 엎드려 잔다)
연진 : (웃고는, 보온병 꺼내더니 뭔가 한잔을 따라 세진 얼굴 앞에 내려놓는다)
세진 : (느껴지는 향기에 눈 뜬다) ... (상체 일으키며) 이게 뭐야?
연진 : (씨익 웃으며) 보약.
세진 : (기막힌) 뭐?
연진 : 우리 아빠가 지어왔는데 원기를 보강해주는 약이래.
특히 위장 쪽으루 아주아주 탁월한 효과가 있대.
너 한테두 좋을꺼 같아서 나눠 마시려구 가져왔어.
세진 : (기막혀서 보다가) 나중엔 별 짓을 다하는구나. (다시 엎드리려는데)
연진 : (잡는) 안마셔?
세진 : 안마셔.
연진 : 왜?
세진 : 그거 먹으면 위장이 꼬일꺼 같아서.
연진 : 뭐?
세진 : (비죽 웃으며) 너 지금 내 앞에서 부모 사랑 듬뿍받구 산다구 유세 떠냐?
연진 : (보는)
세진 : 난 누구 한테 사랑이나 관심 같은거 받아 본 적이 없어서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아주 닭살이 돋는 사람이야. 사랑이건 관심이건, 받아 버릇하던 너나 계속해서 받아.
연진 : (웃으며) 나두 부모의 사랑을 다 받구 살진 못해. 엄마가 안 계시니까.
세진 : ... ! (본다)
연진 : 너가 본심과는 다르게 꼬아서 말한다는거 아는데 한 번 쯤은 아무 말 없이 그냥 받아주면 안돼?
세진 : (보는)
연진 : 진심으루 주면 좀 받아. 받는 방법을 배워야, 남들한테 줄 수두 있는거야.
남이 주는 사랑을 자꾸 밀쳐내면, 너두 평생 남한테 관심이나 사랑 같은거 못 주구 산단말야.
세진 : ...
연진 : 유세 떨려구 가져온거 아니야. 니가 걱정되서 그래. (맑게 웃으며) 마실꺼지?
세진 : ...
씬 20 교정일각(D)
태훈과 형주, 진이와 얘기하며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진 : (벙쪄서) 우리 부모님이 뭐 하시는진 왜 물어?
형주 : 혹시 우리가 아는 분인가 해서. 그룹 이름이 뭐야?
진 : 그룹? 무슨... 그릅? 락밴드 그룹 같은거 말야?
형주 : 하하. 농담하지 말구. 아버지가 갖구 계신 회사 이름 말야.
진 : ? (무슨 뜻인지 몰라서 보는)
태훈 : 아버님이 사업하시는 분이 아닌가 보구나.
진 : ... ? (보며)
태훈 : (픽 웃고는) 그냥 우리가 아는 집인가 해서 물은 거야. 어, 체육관 구경하구 싶다구 했지?
(손으로 가리키며) 저쪽으루 가면 돼.
진 : 고맙...다. (벙찐 표정으로 가고)
형주 : 짜식 되게 사리네? 을마나 대단한 집안이길래 저래?
태훈 : 왜 그렇게 재 한테 신경을 써.
형주 : 어떤 인간인지 궁금하잖아. 소문에 의하면 IQ측정이 불가능할 정도의 천재라든데
보니까 별루 그런거 같지두 않구.
태훈 : (픽 웃고는) 왜 재 IQ측정이 불가능했는지 알어?
형주 : 몰라? 왜 그랬는데?
태훈 : IQ측정을 거부하구 백지루 냈대.
형주 : 뭐? 왜?
태훈 : 무한한 잠재 영역으루 냅둬야 될 뇌를 숫자루 측정하는건 자기 뇌에 대한 예의가 아니랜다.
자기 가치가 숫자로 매겨지면, 그 담부턴 더 이상의 발전을 꿈 꿀 수가 없는 거래나 뭐래나.
형주 : (기막혀 웃고) 완전 괴물이잖아.
씬 21 도서관(D)
진, 도서관의 규모 구경하러 왔는지 둘러보고 있다.
손으로 책상도 한번 쓰윽 만져봤다가, 의자는 푹신한가 앉아서 엉덩이 들썩거려 보는데,
맞은편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정연.
순간 멈칫해서 그런 정연을 가만히 바라보는 진...
정연 시선 느끼고 ? 보면, 얼른 딴데 쳐다본다.
정연 책 덮고 서가 쪽으로 간다.
진 딴 짓하고 있다가 약간의 시간차 두고 서가 쪽으로 따라간다.
서가 쪽. 참고 서적을 고르고 있는 정연.
아무 책이나 한 권 뽑아들고 읽는 척 하면서 슬쩍슬쩍 정연을 바라보는 진...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맺힌다...
씬 22 2학년 5반 교실(D)
용구, 동일, 흥수 떠들고 있는데,
진 : (후다닥 들어와 앉으며) 도와줘.
남자들 : 뭘? (보면)
진 : (동일의 손 끌어다가 자기 가슴에 얹어놓으며) 느껴지지?
동일 : 뭐가?
진 : 심장 뛰는 소리.
아이들 : ? (괜히 진의 심장 근처로 머리 모아지고)
진 : 두근. 두근. 합이 네근. 들리지?
용구 : 하하하. 차식, 벌써 헌팅을 나가셨구만. 누구야? 니 심장 박동을 다듬이질 하는 그녀가
누군지 말만 해. 이 엉아가 도와줄게.
진 : (그때 마침 책 챙겨들고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정연을 바라보는)
남자들 : (진의 시선 따라가봤다가 정연을 발견하고, 맥빠져서) 논리정연 김정연?
용구 : (진 보며 안타까운) 불쌍한 놈... 하필 2학년 5반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를 찜할게 뭐냐.
더 상처받기 전에 일찌감치 포기해라.
진 : 왜?
동일 : (웃으며) 일명 얼음공주거든. 장동건 열트럭을 갖다줘두 트럭만 갖겠다구 할걸?
진 : ... (보는)
정연 : (정돈된 자세로 앉아 공부하고 있는)
진 : ... (미소 짓는)
씬 23 교무실(D)
재현, 책상에 앉아 걷혀진 아이들의 진학상담용지들 넘겨 보고 있는데, 광도 들어온다.
몸이 안 좋은지 맥이 없다. 책상 위에 교재 털썩 내려 놓고 의자에 앉아 등 기대고는 눈 감는...
일평 : 왜 그렇게 시들시들 해?
광도 : 숙직을 해서 그러나 좀 피곤하네요. 애들 필기 시켜놓구는 수업시간 내내 졸았어요.
유란 : 그냥 피곤한 얼굴이 아닌거 같은데요? 어디 편찮으신거 아니예요?
광도 : 글쎄 뚜렷이 아픈덴 없는데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묵직한게,
며칠 전 부터 감기기운이 떨어지질 않네요.
일평 : 허허. 늙는다. 박선생두 이제 늙어. 평생 젊은 혈기루 살 줄 알았지?
광도 : 그러게 말입니다. (웃는데)
재현 : 상담용지 들고 나가며 (광도에게 슬쩍) 박선생님 저 좀 잠깐... (먼저 나가고)
광도 : ? (보는)
씬 24 상담실(D)
마주 앉아있는 재현과 광도.
광도의 표정 굳어있다.
재현 : 글쎄 저두 이 녀석이 이런 생각을 가지구 있일지는 몰랐어요.
대학에 별 스트레스를 받지 않길래 선천적으루 맑구 건강한 녀석이라 그런 줄로만 알았지
대학에 별 뜻이 없는지는 몰랐습니다.
광도 : ... 성적은 어때?
재현 : 이번 기말고사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슬쩍 보며) 많이 떨어졌어요 요즘.
광도 : (착잡한 한숨)
재현 : 하긴 요즘은 특별한 재능이 있으면 꼭 대학에 가지 않아두 성공할 수 있는 길이 많잖아요.
흥수 녀석이야 컴퓨터를 잘하니까 벤쳐기업 사장이 될 수두 있는거구 또,
광도 : (버럭) 남의 자식 일이라구 사탕발림 하는거야 지금?
재현 : ? (보고)
광도 : (화나고 괘씸한)
씬 25 광도의 거실(N)
열쇠로 문여는 소리 들리고, 들어서는 흥수.
들어서다 말고 멈칫하는 흥수.
흥수 방에서 들리는 소리.
흥수 : ... ? (방 쪽으로 가는)
씬 26 흥수의 방(N)
들어서다가 하얗게 굳어버리는 흥수.
광도, 흥수의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 CD 치워내고 있다.
흥수 : 아, 아버지 지금 뭐하세요?
광도 : (대꾸 않고 이번엔 컴퓨터에 연결된 전선들을 뽑아낸다)
흥수 : (가방 던지듯 내려놓고 후다닥 달려가 광도 잡으며) 아버지 뭐하시는 거예요 지금?
아버지. 아버지.
광도 : (말리는 흥수 손 냉정히 털어내고 컴퓨터 모니터 들고 나가는)
씬 27 광도의 거실(N)
컴퓨터 들고 나오는 광도, 현관으로 나가려는데,
흥수 : (얼른 뒤 따라 나와 붙잡으며) 아버지이.
광도 : 저리 안 비켜?
흥수 : 도대체 왜 이러세요 진짜.
광도 : 몰라서 물어?
흥수 : (좀 화나서) (O.L) 몰라서 물어요. 남의 방에 허락두 없이 들어와서 이게 무슨 경우예요 지금!
이 안에 진행 중인 중요한 프로그램이 깔려있단 말예요.
그거 깨졌으면 아버지가 책임지 실꺼예요?!
광도 : 중요한 프로그램? (버럭) 게임이나 만들구 있는게 중요한 프로그램이야 임마?
흥수 : ! (본다)
광도 : 허구헌날 컴퓨터 끼구 앉아 게임이나 구상하구 있으니까 성적이 바닥을 기는거 아냐!
흥수 : 아버지.
광도 : 뭐? 대학엔 별 생각이 없어? 너 니가 무슨 빌게이츠 라두 되는 줄 착각하는 모양인데,
정신차려 임마. 너 만큼 컴퓨터 하는 놈들은 쎄구 쎘어!
한심한 놈. 밥 대신 꿈 먹구 사는 놈 아냐 이 놈이.
흥수 : (순간 본다. 눈빛에 반항심이 생긴다)
광도 : 너 오늘부터 수능 보는 날 까지 컴퓨터 만질 생각하지마. 알았어! (다시 들고 나가려는데)
흥수 : (O.L) 언제부터 저 한테 그렇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셨어요?
광도 : 뭐?
흥수 : 언제나, 뭐든지 혼자 결정하게 내버려 두셨잖아요. 그렇게 팽겨쳐 둘 때는 언제구,
언제부터 나한테 열렬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셨냐구요.
광도 : (기막힌) 박흥수.
흥수 : 제가 필요할 땐 인생은 각자 알아서 사는거다, 편한대루 팽개 치구,
그러다 아버지 맘에 안드는 결정을 내리면 불같이 화내시구,
아버지 이러는거 정말 우습단 말예요.
광도 : 뭐야?
흥수 : 애초에 관심 없었으면 차라리 끝까지 무관심 해주세요.
이제 와서 아버지가 무슨 권리루 제 인생에 끼어드느냐구요!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광도 : ! (기막혀) 야 임마.... 박흥수.
씬 28 흥수의 방(N)
들어와서 책상에 털썩 앉는 흥수.
책상에 팔 올려 놓고 양손으로 머리 감싸쥐는데서...(F.O)
씬 29 학교외경(D)
씬 30 교무실(D)
수업 끝내고 들어오는 일평과 광도.
광도 출석부 대충 꽂아놓고 자리로 와서는 책상에 엎드려 잔다.
일평 : 또 자?
광도 : 말 시키지 마세요. 아주 죽겠습니다. (끄응 돌아 누우며)
명교감 : (저기압 상태로 들어오며) 박선생님.
광도 : (졸고 있다가 퍼뜩 깨며) 네.
명교감 : 저 잠깐 좀 봅시다.
광도 : .... (언짢은 명교감의 안색 살피며) 예.
씬 31 2학년 5반 교실(D)
쉬는 시간. 떠들고 있는 아이들.
지민 : (들어와서 흥수와 용구 자리로 가서) 담임선생님이 니네 둘, 지금 교무실로 내려오래.
용구 : 왜? 무슨 일인데?
지민 : 진로상담용지에 부모님 의견란이 비어있는 사람만 부르는건가봐.
용구 : (머리 벅벅 긁으며) 어휴 씨, 어떡하냐?
지민 : 그러게 왜 빈칸으루 냈어?
용구 : 부모님 상담 하려면 현재 나의 성적상태를 까발려야 하잖냐.
성적표도 몰래 도둑도장 찍어오는 마당에, 내 현재 성적상태를 알아봐라.
아마 난 엄마한테 머리 빡빡 깎일껄?
흥수 : (한숨 쉬고)
씬 32 교무실(D)
흥수와 용구 막 들어서려던 참인데,
명교감 : (E)(버럭) 아니 그럼 괜히 항의전화가 들어옵니까?
용구, 흥수 : ? (놀래서 멈칫 서는)
명교감 : 아니, 수업시간에 애들은 책 읽혀놓구 교사는 잠만 잔다는게 말이 됩니까 도대체?
교실이 무슨 여관이예요!
광도 : (고개 숙이며) 죄송합니다.
흥수 : ... (보며)
명교감 : 한 두반에서 들어온 항의 전화면 또 내가 말을 안해요 말을!
광도 : (굽신굽신 인사하며)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흥수 : ... (그런 아버지 모습 보며 속상한데)
복만 : ? (흥수와 용구 발견하고) 니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좀 있다 다시 와. (내보내고)
흥수 : ...(내보내지면서 다시 한번 아버지 뒤돌아보는)
씬 33 교무실 앞(D)
나오는 흥수와 용구.
용구 : 아 씨, 한참 재밌던 중인데. (하다가 다시 교무실 문에 달라 붙는)
흥수 : (떼내며) 얼른 와 임마!
용구 : (찰거머리처럼 문짝에 붙어서) 가만 있어봐 쪼옴. 광도 혼나는 것 좀 보게에.
씬 34 교무실(D)
문 안으로 빼꼼이 들어오는 용구의 얼굴.
흥수 용구 얼굴 빼내려는 순간,
명교감 : (E) 그럼 왜 그런 소문이 도는겁니까!!
광도 : 소문이라는게 다 그렇듯이 돌고돌다 보면 와전이 되면서,
명교감 : 아닌 땐 굴뚝에 연기나는거 봤습니까?
그저께 밤늦게까지 6반 강민호 학생 개인지도 해주셨다면서요.
광도 : 아니, 그건 그때 제가 숙직이었구,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모르는 문젤 들고 온 학생을
그냥 가랄수는 없잖습니까.
명교감 : 아, 시끄러워욧!
광도 : (입다물고)
명교감 : 교사가 불법과외로 돈벌이 하느라 본수업엔 잠만 잔다는 소문이말이 됩니까?
그 소리가 학교운영위원회에 들어가 보세요, 그 뒷수습을 어떻게 감당할껍니까!
용구, 흥수 : ! (불법과외!!)
씬 35 교무실 앞(D)
억지로 용구의 머리를 빼내는 흥수.
용구 : 푸하하! 불법과외! 그 실력에 불법과외?
흥수 : (속상해서) 박광도는 안했다잖아!
용구 :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나는거 봤냐잖아! (교실 쪽으로 가며) 하하. 이건 빅뉴스다 빅뉴스야!
불법과외...하하. 불법과외...
흥수 : (이씨, 용구 노려보며 가는)
씬 36 2학년 5반 교실(D)
수업 시간 전 소란스러운 교실.
교실문 열리고 광도 들어오면, 아이들 후다닥 자리 찾아서 앉고, 지민 일어나 경례한다.
흥수 : ... (광도 보고 있다가 시선 마주치면 시선 피한다)
광도 : ... (그런 흥수 봤다가 시선 거두고 교재 넘기며) 78페이지 할 차례지?
(하며 돌아서서 단원 제목 판서하는데)
아이들 어쩐 일인지 키득키득 웃기 시작한다.
흥수 무슨 일인가 해서 보면 광도의 양복 밑단 반 이상이 풀어져있다.
희진 : 웬일이니 진짜. 우리 복장검사는 목숨 걸고 하면서, 자기는 완전 걸레를 입구 다니는구만.
아영 : 그러지마. 와이프 없는 티가 팍팍 나는게 불쌍하잖냐.
흥수 : ....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이 속상하고)
광도 : (모르는채 돌아서서 오기창창하게) 누가 이렇게 떠들어? 입다물고 책들 펴!
(하고는 교재 읽기 시작한다)
진 : (교재 봤다가) ? (다시 광도를 쳐다본다)
동일 : (그런 진을 보고) 왜?
진 : 선생님 혹시 필리핀에서 오셨어?
용구 : (뒤돌아서) 왜? 불법 체류자 같이 생겨서?
진 : 아니 그게 아니라.... 발음이 좀 이상해서. 첨 듣는 억양이거든. (고개 갸웃하고)
필리핀 쪽도 아닌거 같은데...
용구 : 푸...푸하....푸하하하하하하!!!! (웃음 터지고)
아이들, 광도 : ? (용구에게 시선 집중되고)
흥수 : ... (남 몰래 울컥 치솟는 느낌이다)
씬 37 교무실(D)
수업 마치고 들어오는 광도, 각자 종이 한 장씩 들고 앉아서 보고 있다가,
들어서는 광도를 바라보는 교사들.
복만 : 박선생님.
광도 : (앉아서 손으로 피곤한 듯 눈가 주무르며) 왜.
복만 : 그러게 평소에 건강에 좀 신경쓰라니까 말을 안 들으시더니....
광도 : 무슨 소리야?
일평 : 감기 기운이 안떨어지구, 이유없이 자꾸 잠만 오구, 피곤하댔지? (광도 종합건강 진단서 주며)
박선생 종합건강진단서야. 가서 결핵 검사 한 번 제대루 받아봐.
광도 : ! (보는 위로)
용구 : (E) 푸하하하하! 식민지 발음!
씬 38 2학년 5반 교실(D)
용구 책상에 걸터 앉아서 깔깔깔 웃고 있다.
흥수 굳은 표정으로 애써 외면하려고 하고 있다.
용구 : (진에게) 역시 네이티브 스피커의 귀는 정확하다아. 그치? 완전히 우간다 추장 발음이지?
근데 더 웃긴건 저 실력에 불법과외를한다는거 아니냐. 하하하! 돈은 또 엄청 밝히거든.
흥수 : (순간 보며) 야. 이용구. 쓸데없는 소문 퍼뜨리지 말구 조용히 해.
용구 : (웃는 채로 흥수 고개 치우며) 너나 입 다물어 임마. 그뿐인 줄 아냐? 애들은 또 쥐잡듯 잡아요.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구, 나름대루 교육 철학이 몽둥이 휘두르는거거든.
실력없구 무식하니까 몽둥이에 의존하겠다는거지 뭐겠냐 그게. 하하
흥수 : (울컥 치솟는 것 참고 있는)
용구 : (웃는 채로 흥수 고개 치우며) 애들은 개 패듯이 패면서,
학교 재단 쪽에는 완전히 받들어 충성이야. 오죽하면 이사장네 앞마당에 묶인 세퍼트랑
동기동창이라는 말이 다 나왔겠냐?
흥수 : 이용구. 그만해.
용구 : (O.L) 을마나 들들들 볶구 줘팼으면 와이프두 제 명에 못 살구 먼저 떴잖어.
흥수, 순간 눈빛이 번뜩인다
용구의 멱살을 움켜잡아 일으켜세우는 흥수, 그대로 용구의 얼굴을 주먹으로 날려버린다.
걸상에 이마 찧고는 바닥으로 뒹구는 용구!
놀라서 그런 흥수를 바라보는 진! 기겁하는 아이들!
용구 : (책상 짚고 끄응...일어나다가 문득 이마를 손으로 한번 스윽 닦아본다.
그 손에 묻어나는 피! 순간 겁에 질리는) 어? 피....이 피...(아이들 둘러보며 울 듯이)
피이이이이-----!! (소리치는데서)
용구모 : (E) 아니, 도대체 학생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시는거예욧!
씬 39 교무실(D)
명교감에게 따지고 있는 용구모.
그 옆에 굳은 표정으로 서있는 흥수.
그런 흥수를 바라보는 광도의 마음 무겁고...
용구모 : 학교폭력 학교폭력 말루만 들었지 이렇게 무서운건지 미처 몰랐네요.
세상에 아니 어떻게 애들이 다 보는 교실 한 복판에서 폭력이 난무합니까?
이래서야 어디 무서워서 애들 학교 보내겠습니까?
명교감 : (웃으며 좋게) 학교폭력은요. 그냥 애들 끼리 치구박구 싸우다가 잘못해서
책상에 머릴 찧은거랍니다.
용구모 : 그냥 치구박구 싸웠는데 네바늘씩이나 꼬매요? 네바늘씩이나?
얘, 너 깡패니? 왜 가만 있는 애를 패니 패길!
광도 : (당장이라도 나서고 싶지만 참고있는)
명교감 : 저, 용구어머니. 여기서 이러시지 말고, 나가서 얘기하십다 나가서.
용구모 : 나가긴 어딜 나가요? 이 학생 어머니 만나서 치료비랑, 다시는 우리 앨 건드리지 않겠다는
각서 받기 전에는 못가요. 얘, 너 얼른 집에 전화 해.
흥수 : 그냥 저랑 얘기하세요.
용구모 : 얘 봐라? 얼렁뚱땅 넘어갈려 그러네? 전화번호 대. 내가 전화 할테니까.
흥수 : 전화해두 나와줄 부모님 없어요. 제가 제 보호자니까 저랑 얘기하세요.
용구모 : (기막혀서) 뭐라구? (하다가 알만하다는 듯) 아아. 그러니까 집에서두 내논 녀석이구나 니가?
흥수 : ...
광도 : ... (속상한)
씬 40 영화반(D)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모여있는 영화반 아이들.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 신화.
정연 : 이상하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애라 : 이용구가 박쥐처럼 유진 한테 붙어서 설레발을 치니까 눈꼴시어서 그런거지 뭐.
정연 : 그렇다구 사람을 패냐?
유미 : (조심스럽게) 혹시....말야.
아이들 : ? (보고)
유미 : 혹시, (그럴 리가 없다는 듯 고개 저으며)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래 그건 말이 안돼.
지민 : 뭐가 말이 안된다는거야?
유미 : 아니....혹시 말야 박광도랑 흥수가... 아냐 아냐.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애라 : 어휴, 뭔데에. 말을 해봐 말을. 답답하잖아.
유미 : 그러니까 내 말은...(잠시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혹시, 흥수가 박광도 한테 불법과외 받구 있는건 아닐까?
아이들 : (맥빠져 보고)
지민 : 불법과외? 박흥수가? 대학이 뭐 그리 중요하냐구 노랠 부르는 박흥수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좀.
동일 : (생각에 잠겨있는 신화를 보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신화 : 어? 어어... 애들이 선생님에 대해서 너무 함부로 얘기한다는 생각.
정연 :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신화 : (웃으며 짐짓 가볍게) 그냥 옛날엔 스승을 부모...처럼 여기구 공경했다잖아.
지민 : 너 진짜 뜬금없다 야. 니가 무슨 화랑도냐? (웃고)
신화 : (웃다가 뭔가 생각해 보는 눈빛이 되는) ...
씬 41 광도의 거실(N)
현관문 열쇠로 열리는 소리 들리고 들어오는 흥수,
들어서다 주방에서 나오는 아버지 발견하고 멈칫 선다.
광도 : 밥 먹었냐?
흥수 : 생각 없어요. (들어가려는데)
광도 : 밥을 생각으루 먹냐? 옷 갈아 입구 나와. (주방으로 들어가는)
흥수 : ... (한숨 쉬는)
씬 42 광도의 주방(N)
광도와 흥수 말없이 식사 하고 있다. 잠시 어색한 침묵.
광도 : (수저 내려놓으며 얘기 꺼내려) 박흥수.
흥수 : (O.L) 저 전학 보내주세요.
광도 : 이제 고삼되는데 전학은 무슨,
흥수 : (O.L) 그럼 아버지가 전근 가시든지요.
광도 : ! (본다) ... 이유가 뭐야..
흥수 : 아버지랑 같은 공간에 있기 싫어요.
광도 : !
흥수 : 더 이상 애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떠드는거 듣기 싫구요...아버지 윗사람들 한테 굽신거리는 것두
보기 싫구요... 학교에서 남들 눈치 보느라 아버지 없는 놈처럼 사는 것두 싫어요.
광도 : ... (보고)
흥수 : 아버지가 사회에서 겪는 약한 모습, 초라한 모습 다 보구 사는 아들, 아버지 존경하기 힘들어요.
저두 다른 애들 처럼 평범하게 살구 싶어요.
광도 : !
흥수 : ...
씬 43 학교외경
씬 44 등교길(다음날/D)
헤드폰 끼고 걸어오고 있는 흥수.
문득 저만치 가고 있는 용구를 발견한다.
흥수 : (잠시 갈등하다가) 이용구.
용구 : ? (돌아본다. 이마에 반창고 붙이고 있다)
흥수 : (어색하게 뒷머리 긁으며 다가와서) 많이...아프냐?
용구 : (퉁) 피를 한바가지를 쏟았는데 안 아프냐 그럼?
흥수 : 차식 누가 뻥쟁이 아니랠까봐 튀기기는.
용구 : 야, 박흥수! 도대체 내가 왜 맞아야 되는지 이유나 좀 알자.
흥수 : 운이 나빴다구 생각해라. 신경이 좀 곤두서 있었거든. 암튼 정말 미안하게 됐다. 치료비는 내가,
용구 : 아 됐어. 학교에서 대줬어.
흥수 : 학교에서?
용구 : 울 엄마가 을마나 해대구 갔는지 박광도가 와서 다 계산하고 갔어.
초등학생두 아니구 쪽팔려서 진짜. (머리 벅 긁으며 간다)
흥수 : !
씬 45 2학년 5반 교실(D)
흥수와 용구 들어온다.
아이들 두 사람 눈치 살핀다.
두 사람 괜히 머쓱하니까 흥수는 가방 풀고, 용구는 단어장 꺼내 외우기 시작한다.
아이들 : .... (그런 두 사람을 살피는)
용구 : (도저히 신경쓰여서 견딜 수가 없다) 아 뭘 그렇게 봐! 나 공부하는거 첨 봐!
여자들 : (동시에) 어. 첨 봐.
용구 : 이씨...(일부러 더 단어 소리내가며 외우고)
흥수 : (아버지 일로 마음이 무겁다.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간다)
신화 : (뒷문으로 나가는 흥수를 바라보는데)
강산 : (E) 너 공부 좀 한다며?
신화 : ? (보면)
강산 : (신화 앞에 서서) 이번 기말고사 때 협조 좀 해라.
신화 : (웃으며) 컨닝... 말하는거야?
강산 : 듣던거랑 다르네? 너두 사람 편견으루 보냐?
신화 : ?
강산 : 컨닝은 귀찮아서 안해. 딴건 관두구 암기과목만 요점 정리해주라.
들어서 알겠지만 내가 다른 일루 바쁜 사람이라서 말야. 협조 하면 다른 방법으루 보답할게.
신화 : 왜 하필 나야?
강산 : 나이는 내가 한 살 많지만, 정신연령은 니가 열살 쯤 연상이라구들었거든.
신화 : 친구 되자는 소리야?
강산 : (피식 웃으며) 될래?
신화 : (보다가 웃으며) 통성명부터 다시 하자. (악수 청하며) 나 유신화다.
강산 : (짜식 맘에 드네? 웃으며) 이강산이다. (악수하는)
씬 46 교무실(D)
입구에 어쩡쩡하게 서서 교무실 안을 살피고 있는 흥수.
정인 : (들어오다가) ? 흥수야.
흥수 : (퍼뜩 놀라) 네?
정인 : 뭘 그렇게 놀래? 무슨 일루 왔니?
흥수 : 예? 아니요 그냥 잠깐... (하는데)
재현 : ? (보고)
정인 : 잘됐다. 온 김에 애들 노트 좀 갖다 나눠줄래?
흥수 : 네. (정인 따라 들어가며 슬쩍 아버지 자리 쪽을 보고)
재현 : ... (그런 흥수 놓치지 않고 보는) 김선생님.
정인 : (노트 챙기다가) 네?
재현 : (일부러 흥수 들으라는 듯) 박광도 선생님 어디가셨죠?
정인 : 아까 병원 갔다 오신다구 나가셨잖아요.
재현 : 아아, 참 오늘 결핵 검사 받으시러 갔구나 참.
흥수 : !
정인 : 괜찮으셔야 할텐데 걱정이네요.
재현 : 요즘은 약이 좋아져서요 걱정 안해두 돼요. 잘 먹구 푹 쉬면 낫는다 그러더라구요.
흥수 : ...
씬 47 교정일각(D)
착잡한 심정으로 앉아있는 흥수.
흥수 : (E) 아버지랑 같은 공간에 있기 싫어요. 아버지가 사회에서 겪는 약한 모습, 초라한 모습
다 보구 사는 아들, 아버지 존경하기 힘들어요. 저두 다른 애들 처럼 평범하게 살구 싶어요.
진 : 땅 꺼지겠다.
흥수 : (본다)
진 : (옆에 앉으며) 무슨 고민있어?
흥수 : ...
진 : 내가 맞춰볼까?
흥수 : 니가 점쟁이냐?
진 : 어떻게 알았냐? 맞아. 나 점볼 줄 알거든. 집시 한테 배운 적 있어.
흥수 : 너 말야, 내가 너 한테 잠깐의 실수루, 라이프 스토리의 일부를 들켰다구 해서
날 전부 이해할 수 있을꺼라구 착각하나 본데. 오바하지마.
진 : (웃으며 가져온 봉투를 내민다)
흥수 : 이게 뭐야?
진 : 어제 내가 만든 빵. 먹어 보라구.
흥수 : 너나 실컨 먹어.
진 : 이거 그냥 빵이 아닌데?
흥수 : ? (보면)
진 : 미국 챠이나 타운에 가면 후식으루 빵을 주는데가 있거든?
근데 빵을 쪼개보면 그 안에 점괘가 들어있어. 재밌지?
흥수 : (피식 웃으며) 그래서. 이 안에두 점괘가 들어있냐?
진 : 아니. (씩 웃으며) 심장.
흥수 : ? (보는)
씬 48 도서관(D)
자리를 잡고 앉는 흥수.
괜히 주위를 한 번 두리번 거렸다가 슬쩍 봉투를 열어본다.
서너개의 빵과 종이 한 장이 들어있다.
먼저 종이를 펴서 보는 흥수. '아버지를 위한 요리 10선'이라고 적혀 있고,
간단한 조리 방법이 적혀있다.
흥수 : .... !
흥수 이번엔 빵을 하나 꺼내서 쪼개본다.
안에서 돌돌돌 말린, 아주 작은 종이뭉치가 나온다.
묶여있는 색실을 풀르고 종이를 펴보는 흥수의 모습 위로.
흥수 : (E) 옛날에 한 청년이 살았다. 청년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여인은 청년에게 별을 따다 달라고 말했다. 청년은 별을 따다 주었다.
여인은 청년에게 달을 따다 달라고 말했다. 청년은 달을 따다 주었다.
씬 49 흥수의 아파트 단지 앞(D)
주머니에 손을 꽂고 생각에 잠겨 걸어오고 있는 흥수.
흥수 : (E) 이제 청년이 더 이상 그녀에게 줄 것이 없게 되었을 때, 여인이 말했다.
네 부모님의 심장을 꺼내와...
씬 50 흥수의 방 (D)
방문 열리고 들어서는 흥수.
가방 내려놓다가 멈칫하는 흥수.
책상 위에 놓여있는 새 컴퓨터!
흥수 : (E) 많은 고민과 갈등을 했지만 결국 청년은 부모님의 가슴 속에서 심장을 꺼냈다.
흥수 : ... (어쩐지 찡해져서 컴퓨터를 가만히 만져보는)
씬 51 광도의 거실(D)
흥수,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다.
흥수 : (전화 착신되면) 나 박흥수다. (좀 쑥스러운) 그 뭐냐... 아, 아버지를 위한 요리말인데....큼큼....
버, 버섯전골 끓이는 방법 좀 자세히 말해봐.
씬 52 광도의 주방(N)
흥수, 에이프런 두르고 요리 하고 있다. 식탁 위에는 오만가지 재료와 기구들이 펼쳐져 있다.
흥수, 연습장에 받아 적은 버섯전골 만드는 법을 봐가며 열심히 따라 하고 있다.
이때 밖에서 문 열리는 소리 들린다.
흥수 나간다.
씬 53 광도의 거실(N)
들어서는 광도.
흥수 : 다녀오셨어요?
광도 : 그래. (했다가 흥수의 앞치마 보고) ?
흥수 : (어색해서) 시, 식사 안하셨죠?
씬 54 광도의 주방(N)
식탁 중앙에 놓이는, 아직 보글보글 끓고있는 버섯전골 냄비.
광도 : (벙쪄서 보고)
흥수 : ....드. 드세요.
광도 : (비식 새어나오는 웃음) 니가 끓였냐?
흥수 : 보, 볼품은 없어 보여두 맛은 있어요.
광도 : 하하... 나 참.... (좋아서) 이걸 정말 니가 끓였단 말야?
흥수 : .... (보는)
광도 :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흥수 : 먹구 살 좀 찌세요. 대충대충 먹으니까 그런 가난한 병에 걸리는거 아니예요.
남사시렵게 결핵이 뭐예요 결핵이....
광도 : ... (기특해서 보다가) 박흥수.
흥수 : (안보고) 왜요.
광도 : 안주두 있는데 술 한잔 하자.
흥수 : 하세요. 언제 허락 받구 하셨어요?
광도 : 같이 한잔 하자구 임마.
흥수 : ? (보는)
시간경과.
식탁에 놓여있는 과일주병과 두 개의 술잔.
광도와 흥수 알맞게 취해있다.
광도 : 기분 좋다 그치?
흥수 : 헤헤. 네. 꼭 크리스마스 같아요 그쵸?
광도 : 그러고 보니 또 그런 것두 같네. 그런 의미에서 건배하자.
흥수 : 좋습니다. (건배하고 몸 돌려 마신다)
광도 : 아들놈 한테 버섯전골도 얻어먹고, 이렇게 술도 같이 하고, 조타!
흥수 : ... (보다가) 아부지!
광도 : 왜 불러!
흥수 : (벌떡 일어나서 꾸벅 인사하며) 컴퓨터 고맙슴다. 그리구요...
(다시 고개 푹 숙여 인사하며) 죄송함다....
광도 : ... ? (보는)
흥수 : 정말...죄송함다...
광도 : ....
흥수 : ... 한 때 아부지가 부끄러웠슴다. 힘두 없구, 능력두 없어 보여서,
내가 커가는 만큼 아버지가 작게 보여서... 애들이 아부지 욕할 때 마다
내가 아부지 아들인게 부끄러워서 같이 욕했던 적두 있었슴다.
광도 : ...
흥수 : 정말 죄송함다... 그리구.... 아프지 말구 건강하심 좋겠음다.
광도 : ... (찡해져서) 박흥수.
흥수 : 예.
광도 : 이 아버진 말이다... 니가 참 고맙다.
흥수 : ...
광도 : 늘 맑아서, 늘 건강하게 웃어줘서, 삐딱선 안타구 버텨줘서,
이럴 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어서 참 고맙다...
흥수 : ... 이렇게 이쁜 아들을 다 두고 아버진 성공한 인생이심다.
광도 : 맞다. 성공한 인생이다. (기분 좋게 웃는다)
흥수 : .... (짠해져서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위로)
흥수 : (E) 청년은 부모님의 심장을 들고 뛰기 시작했다.
오직 그녀와 함께 할 자신의 행복을 생각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씬 55 광도의 아파트 외경 (N)
늦은 밤. 기분좋게 취한 광도와 흥수의 노래소리...
가끔 광도가 음정이 틀리면 '아 그게 아니잖아요' 구박하는 흥수의 소리.
'제대루 했는데 뭘 그래 임마' 반발하는 광도의 소리....
흥수 : (E) 청년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청년의 손에서 심장이 빠져나갔다.
언덕을 굴러내려 간 심장을 다시 줏어왔을 때, 흙투성이가 된 심장이 이렇게 말했다.
얘야.... 많이 다치지 않았니...
씬 56 교문 앞 등교길(D)
흥수 손목시계 보며 누군가 기다리며 서있다.
문득 길가 쪽 살피는데 이만치 걸어오고 있는 진.
진 :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무슨 일이야?
흥수 : (씩 웃으며) 약속 시간 하나는 칼이네. 두가지 이유야.
첫째, 너 말야. 내가 무슨 고민 하구 있는지 어떻게 알았냐?
진 : 말했잖아. 점 볼 줄 안다니까.
흥수 : 너...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구 있냐?
진 : (의미있게 웃으며) 알구 싶은 만큼. 두 번째 이윤 뭐야?
흥수 : ... (보다가) 내가 니 도움을 좀 받은 거 같아서, 이번엔 원수를 좀 갚아보려구.
진 : ?
흥수 : 첫째, 여자가 무슨, 여잔 안돼, 등의 여성 비하적인 말을 절대 사용하지 말것!
진 : 무슨 소리야?
흥수 : 둘째, 확실한 자기 논리가 없다면 절대 논쟁을 붙이지 말 것! 왜? 이길 승산이 없기 때문이지.
진 : 무슨 소리냐구 도대체?
흥수 : 셋째, (하다가 손목시계 보고 길가 쪽 보면 저만치 단어장 외우면서 오고 있는 정연, 정확하네!
씨익 웃으며) 심장의 반이 얼음으루 되어 있기 때문에 웬만한 자기 소개로는
씨두 안 멕힌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
하고는 진이를 홱 돌려세우더니 정연을 향해 확 밀어버린다.
얼껼에 정연 앞으로 튕겨져 나오게 된 유진. 잠시 당황한다.
정연 : ? 무슨 일이야?
진 : ! (갑작스런 상황이라 할말이 안 떠오르고)
흥수 : (숨어서 보고 있고)
진 : 아니 저... 그러니까.... (떠듬대다가 갑자기 이름표 떼서 정연의 손에 턱 쥐어준다)
정연 : (벙쪄서) 뭐야 이게?
진 : 이름표.
정연 : 니 이름표를 왜 날 줘?
진 : 니가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야.
정연 : (벙쪄서 보고)
흥수 : (숨어서 보다가 어이없어서 챠! 웃는다)
씬 57 2학년 5반 교실(D)
수업시간 전. 소란스러운 교실.
아이들 여기저기서 빌려다 영어숙제 베끼느라고 난리도 아니다.
이때 교실문 열리고 광도 들어온다.
아이들 울상이 되서는 자기 자리로 가서 앉는다.
지민 일어나서 경례하고.
광도 : 영작 숙제는 다 해왔겠지?
아이들 : 아으으으....
광도 : 안해 온 놈들은 열대씩, 본문은 전부 외워서 발표 하기루했지?
아이들 : (순간 아이들 기겁하며, 아니예요오, 노트보고 하기로 했어요!!)
광도 : 조용히 해! 조용히 안해!
아이들 : (거센 항의로 좀 처럼 조용해지지 않는데)
흥수 : (무섭게) 야!!!
아이들 : ? (순간 보고)
흥수 :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잖아. 조용히 하라는 말 안들려?
아이들 : (벙쪄서 보고)
광도 : (벙쪄서 보는데)
흥수 : (덕분에 교실 조용해지자) 선생님 수업 진행하시죠.
광도 : (기막힌) 박흥수.
흥수 : (씩씩하게) 예!
광도 : 너 부터 시작해.
순간 흥수 얼굴 일그러지고, 아이들 와아아아! 환호한다.
흥수 거의 죽을 맛으로 일어나 노트들고 떠듬떠듬 영작숙제 읽기 시작 한다.
광도, 영작 내용 들으며 창가 쪽으로 간다.
창밖을 바라보는 광도... 어느순간 그 입가에 몰래 미소가 맺힌다.
진, 그런 광도의 모습 놓치지 않고 보고 있다. 어느순간 진의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맺힌다...
그 모습 위로,
광도 : (E) 학생, 거 물컵 좀 빌립시다.
씬 58 프롤로그(D)
(S#2의 약수터 씬)
남학생 : (모자를 써서 얼굴은 잘 안보이는) 예, 여기. (컵 건네주고 한쪽으로 가서 몸풀며 운동하는)
흥수 : 이건 직무유기에 책임회피라구요! 전 분명히 저번주에 식사당번 끝냈구,
이번 주는 분명히 아버지가 당번이시잖아요!
운동하다가 멈추고, 티격태격 싸우고 있는 흥수와 광도를 흥미있게 바라보는 남학생, 바로 진이다.
식사당번 문제를 놓고 싸우고 있는 흥수와 광도.
그런 두 사람을 낄낄 웃으며 재밌게 바라보고 있는 진.
그런 세 사람의 약수터 풍경에서....
*출처 : 대본과시나리오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