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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은 생각조차 하기 싫어……
민스크 변두리의 낡은 3층 건물. 나를 이 집으로 이끈 건, 얼마 전, 민스크에 있는 '돌격대'라는 이름의 도로장비 생산 공장에서 선임 회계원 마리야 이바노브나 모로조바의 은퇴식이 있었다'는, 지역 일간지에 난 짤막한 기사였다. 그 기사에는 그녀가 전쟁 중에 저격병이었으며 무공훈장을 11개나 받았다고 쓰여 있었다. 그녀의 총에 죽어나간 적병의 수만 75명이라고 했다. 이 여인이 전쟁 때 맡았던 일과 현재의 평온한 직업을 일치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신문에 실린 그녀의 사진을 봐도 그랬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보통 여인네였다.
마리야 이바노브나 모로조바(이바누시키나), 상등병, 저격병: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야…… 그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러시아 아가씨의 이야기이지…… (...) 그리고 그 장교가 세 번째로 우리 시야에 들어왔어. 나타났다 싶으면 사라지고 또 나타났다 싶으면 안 보이는 게, 정말 한순간이더라고. 결국 그를 쏘기로 마음먹었지. 그래서 마음을 다지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사람이잖아. 비록 적이지만 저자도 사람이야.' 그러자 손이 덜덜 떨리고, 온몸에 전율이 흐르면서 오한이 나기 시작했어. 무섭고…… 가끔 꿈속에서 그 느낌이 되살아나. 말하는 지금 이 순간도 그렇고……널빤지를 표적 삼아 연습만 하다가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을 쏴야 하니, 왜 안 그렇겠어. 나는 조준렌즈를 통해 그 장교를 보고 있었어. 아주 잘 보이더군.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그러자 마음속에서 뭔가가 저항을 하는데……'쏘아선 안 된다'고 뭔가가 나를 말렸어. 다시 망설였지.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방아쇠를 당겼어…… 장교는 두 팔을 내저으며 그 자리에 고꾸러졌어. 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나는 몰라. 그렇게 맞히고 나니까 총을 쏘기 전보다 더 떨리고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공포가 밀려들었어. 하지만 나는 곧 그 일에 익숙해져야만 했지. 그래…… 한마디로 끔찍했어! 결코 못 잊을 거야…… (...) 또 무슨 일이 있었나…… 글쎄…… 전쟁이 몇 년 동안 있었지? 4년 그래, 참 길기도 했네…… 그런데 그 4년 동안 꽃이고 새고 전혀 본 기억이 없어. 당연히 꽃도 피고 새도 울었을 텐데. 그래, 그래…… 참 이상한 일이자? 그런데 정말 전쟁영화에 색이 있을 수 있을까? 전쟁은 모든 게 검은색이야. 오로지 피만 다를 뿐, 피만 붉은색이지…… 우리는 얼마 전에, 그러니까 8년 전쯤에 마셴카 알히모부를 찾아냈어. 마셴카는 포병대 대대장이 부상을 당하자 그를 구하러 기어갔던 아이야. 그런데 앞에서 포탄이 터졌지…… 마셴카 바로 앞에서…… 대대장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마셴카는 거기까지 가지도 못했어. 마셴카의 두 다리가 으스러지다시피 해서 우리는 겨우겨우 붕대를 감았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정말 갖은 애를 다 썼지. 마셴카를 들것에 실어 의료위생대로 옮기는데, 마셴카가 애원을 하는 거야. '얘들아, 차라리 나를 쏴버려…… 이런 모습으로는 살고 싶지 않아……' 애원하고 또 애원했어…… 그랬어. 마셴카를 병원으로 보내고, 우리는 계속 앞으로 전진했어. 우리가 마셴카를 수소문해 찾기 시작했을 땐……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뒤였어.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전혀 알 길이 없었어. 많은 세월이 흐르고…… 여기저기 편지를 해봐도 누구 하나 속시원하게 답을 주는 사람이 없더라고. 모스크바 제73학교 학생탐험단이 우리를 도와줬어. 그 아이들이…… 전쟁이 끝나고 30년이나 지났는데 마셴카를 찾아낸 거야. 마셴카는 알타이의 어느 요양원에 있었어. 아주 먼 곳에 있었어. 그 긴 세월 동안 마셴카는 불구자들을 위한 기숙학교며 병원들을 떠돌아다니고 수술도 10여 차례나 받았더라고. 마셴카는 제 엄마한테도 살아 있다는 걸 알리지 않았어…… 모든 사람들한테서 숨어 산 거지…… 우리는 마셴카를 우리 모임에 데려갔어, 모임은 그야말로 눈물바다였어. 우리는 마셴카를 어머니와도 만나게 해줬어. 30여 년이 지나서야 모녀가 만났는데…… 어머니는 거의 혼이 나간 모습이었어. '아이고, 어떻게 이런 일이. 그동안 심장이 터져버리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냐. 세상에, 이렇게 기쁠 수가!' 마셴카는 '이제 사람들 만나는 게 두렵지 않아. 이제 늙은이가 다 됐는데, 뭐'라고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어. 그래…… 한마디로…… 전쟁은 그런 거야…… 밤에 움막에 누워 있을 때가 생각나. 잠들지 못해 뒤척이고 있으면 어디선가 포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지. 아군의 포탄 소리가…… 정말 죽고 싶지 않았어…… 맹세는 했지만, 필요하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군인의 맹세는 했지만 정말 죽고 싶지는 않더라고. 하지만 거기서 살아 돌아간다고 해도 마음이 병들 것 같았어. 지금은 '차라리 다리나 팔을 다쳤더라면, 차라리 몸이 아팠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아서인지 마음이…… 너무 아파. 우리는 너무 이른 나이에 전쟁터로 갔어. 아직 어린애나 다름없었는데. 얼마나 어렸으면 전쟁중에 키가 다 자랐을까.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내 키를 재보았는데…… 그동안 10센티미터나 키가 컸더라니까……"
작별 인사를 하며, 이 여인은 자신의 따스한 손을 어색하게 내밀어 내 손을 꼭 감싸쥐었다. "미안해……" (8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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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0여년 동안 우리 민족은 전쟁과 전쟁 위협과 전쟁에 대한 공포와 전쟁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는 집단의 기만 속에서 살았다. 한 민족을 적으로 몰아 살륙을 정당화하려고 한 집단이 평범한 우리를 조정하고 있었다. 평범한 우리는 어린 아이 적부터 세뇌가 되어 평범하고 귀한 사람을 무조건 적으로 몰아서 살륙 대상으로 삼았다. 분하고 원통한 시기였다. 이제 우리 민족은 화합과 평화의 삶을 회복하려고 하고 있다. 어떠한 장애가 있더라도 분명 평화로운 한반도를 회복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지도자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중에 인간성이 파괴되는 되는 모습과 그 속에서도 인간임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 여자들의 목소리가 담긴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