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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스님의 장군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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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책진 스크랩 선관책진 4(98.10.06) 1.균주 황벽운선사 시중
무애심 추천 0 조회 48 14.11.27 17: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惠庵 門人 청봉 청운선사 意譯 講說

 

1.균주 황벽운선사 시중

 

대중들아, 너희들이 만약에 미리 칠통을 철저히 타파하여 놓지 않으면 납월 30일을 당하여는 정녕 열뇌(熱惱)하고 황란(惶亂)할 것이 분명하니라.

 

어떤 외도들은 공부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저러고 있다"하며 냉소하나 내 그대들에게 묻노니, 홀연 죽음이 닥치면 너는 무엇으로 생사를 대적하겠느냐, 모름지기 평상시에 힘을 얻어 놓아야 급할 때에 다소 힘을 더는 것이니, 마 땅히 목마르기를 기다려 샘을 파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마라. 죽음이 박도하여서는 이미 수족이 미치지 못하니 앞길이 망망하여 어지러이 갈팡질팡 할 뿐이니, 가위 딱하고 딱 하도다.

 

평시에 다만 구두선(口頭禪)만 익혀서 선을 설하고 도를 말하며 불을 꾸짖 고 조사를 욕하여 제법 모두 해 마친 듯하나 여기에 이르러서는 아무 용처 없 으니, 평시에 남만은 속여왔으나 어찌 이때에 당하여 자기 마저 속이랴.

 

형제들아, 권하노니 신체가 강건한 동안에 이 일을 분명히 판단해 두라. 대 개 이 문제는 풀기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목숨을 떼어 놓고 힘써 공부 하려고는 아니하고, 다만 어렵고 어렵다고만 하니 만약 진정한 대장부라면 어 찌 이와 같으랴. 모름지기 저 공안(公案)을 간(看)하되 "승이 조주에게 묻되 "개에게도 불성이 있읍니까? 없읍니까?" 답하되 "무"하였으니 다만 26시중에 이 "무"자를 참구하여 밤이고 낮이고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누우나 옷 입으 나 밥 먹으나 변소에 가나 생각생각 끊이지 아니하고 맹렬히 정신을 차려 저 "무"자를 지켜갈 것이다. 이리하여 날이 가고 해가 가서 공부가 타성일편(打 成一片)이 되면 어느듯 홀연히 마음빛이 활짝 밝아 불조의 기틀을 깨달아 문 득 천하 노화상의 혀끝에 속지 않고 스스로 큰 소리를 치게될 것이다.

 

알고 보면 달마가 서쪽에서 왔다는 것도 바람 없는데 파도를 일으킨 것이 오, 세존이 꽃을 들어 보이신 것도 오히려 한바탕 허물이라 할 것이라, 여기 에 이르러서는 천성(千聖)도 오히려 입을 떼지 못하거든 하물며 어찌 염라노 자(閻羅老子)를 말 할까보냐.

 

대중들아, 이 사이에 기특한 도리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런 생각 하지마 라. 매사에 일이란 마음있는 사람을 두려워 하느니라.

 

<<평>> 이것이 후대에 화두를 가져 공부하게 된 시초가 된다. 그러나 반드 시 "무"자만으로 한할 것은 아니니 혹은 "만법귀일(萬法歸一)" 혹은 "수미산 (須彌山)혹은"사요소요(死了燒了) 혹은 "참구염불(參究念佛)도 좋으니 한개 의 화두만을 지켜서 오직 크게 깨치기만 기약하라. 비록 의심하는 바는 같지 않으나 깨침인즉 둘이 없는 것이다.

 

* 용어 정리

 

[1]황벽(黃檗): (?~850) 법명은 희운(希運), 남악(南嶽)하(下) 4세(世).백 장회해(百丈懷海)선사의 법을 이었다. 일찌기 출가하여 여러곳을 유력하였는 데 이마에 자그마한 혹이 돋혔고 음성이 우렁차고 키는 7척에 의기가 충담하 였다고 한다.

 

천태산과 경사에서 배우다가 마조(馬祖)를 찾아가니 벌써 입적한 뒤였다.그 래서 법을 받은 제자인 백장(百丈)을 찾아 마조의 평일 기연(機緣)을 물었더 니 말하기를"내가 한번은 방장에 들어가니 화상이 선상에 놓여있는 불자(拂子 )를 들어 보이기에 내가 "다만 그것뿐이지 딴 것이 있읍니까?"하니 화상이 불 자를 도루 선상에 놓으시면서 "네가 이후에 후래를 가르친다면 무엇으로 어떻 게 하겠느냐?"하시더라.

 

내가 그때 선상의 불자를 들어 보이니 말씀이 "다만 그것 뿐 딴 것이 있느 냐?"하기에 내가 불자를 도로 선상에 놓고 자리에 앉으려 하니 화상이 벽력 같은 "할"을 하셨는데 그때 내가 사흘이나 귀가 먹고 눈이 캄캄 하더라."하는 말에 황벽이 불각중에 토설(吐舌)하고 대오하였다. 하루는 백장이 묻기를 "어 디를 갔다 오느냐?" "대웅산 밑에 가서 버섯을 따옵니다." "범을 안만났더냐? "황벽이 "으흥!"하고 범이 물려는 형세를 지으니 백장이 도끼로 찍는 시늉을 하는 것을 황벽이 덤벼들어 한번 쥐어박았다. 백장도 한 차례 쥐어박고 크게 웃으며 돌아갔다. 그날 백장스님이 상당설법에서 말하기를 "대웅산 아래 큰 범이 있으니 대중은 조심하라. 내가 오늘 한번 물렸다."하였다.

 

그후 백장의 법을 받아 가지고 여러 곳으로 다니며 형적을 숨기고 지냈다. 한번은 용흥사(龍興寺)에 와서 쓰레질이나 하면서 머물고 있었는데 홍주자사 (洪州刺史)배휴(裵休)가 왔다. 배휴는 법당(영각인듯?) 벽 그림을 가리키며 " 저것이 무엇이요?" 안내하는 스님이 "고승의 상(像)입니다." "형상인즉 볼 만 하나 고승은 어데 있소?"스님이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하니, 배휴"이 절에 선 승(禪僧)이 없소?""근자에 한 중이 와 있는데 선승같이 보입니다." 휴는 그 중을 불러오라 하였다. 바로 황벽이다. 휴는 다시 앞서의 말로 물으니 황벽이 즉시에 큰 목소리로 "배휴!"하고 불렀다. 휴는 엉겁결에 "네!"하니, "어느 곳 에 있는고?"하는데서 배휴가 활연 계합하였다. 휴는 그 자리에서 제자의 예 를 드리고 사제에 모시고 조석으로 문법하였다.

 

그 후 배휴의 청으로 완능(宛陵)의 개원사(開元寺) 홍주 대안사(大安寺)에 있으면서 크게 교화하니, 법중이 항상 천여명이 넘었다. 법을 이은 제자가 12 인이 있는데 그중에 임제(臨濟)스님이 있다. 지금 여러곳에서 성행하고 있는 완릉록(宛陵錄)과 전심법요(傳心法要)는 선사법어를 배휴가 기록한 것이다. 시호(諡號)는 단제(斷際)선사다.

 

[2]칠통(漆桶): 어두운 중생심을 가리키는 말. 본래 밝은 이 마음이 미혹, 착각, 전도하여 이른바 무명이 덮여 어둑하기가 옷(칠)을 담은 통속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칠통은 무명(無明)과 같은 말로 쓰인다.

 

[3]납월 30일:임종시, 숨질 때

 

[4]구두선: 입에 붙은 선이라는 말이다. 참선은 오직 실다이 공부하고 실다 이 깨칠따름이요, 아무런 글도 말도 지식도 당한 것이 아닌데, 실다운 깨침은 없으면서 입으로만 선이니 도니 법이니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 것 을 구두선이니 구두삼매니 한다.

 

[5]문제: 여기서는 관렬자(關렬子)의 번역인데, 관렬자란 올개미, 함정, 혹 은 장치의 뜻을 가진 중국고어다. 여기서는 조사 공안을 말하고 있다.

 

[6]공안:화두라고도 하며 도를 판단하는 법어다. 공안이라 하는 것은 본래 관청의 "공변된 문서"라는 의미를 갖는 말로써 공정하여 범치 못할 법령이라 는 것이다. 대개 공부하는데 있어 올바르게 깨치는데는 불조의 바른 이치를 직절(直截) 설하신 조사의 말씀이나 몸짓이나 그밖에 모든 방법은 그것이 모두 깨치는데 있어 바른 법령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반드시 이 공안을 요달하 여야 한다. 고래로 조사공안은 천7백칙이 된다고 하나 어찌 조사 공안을 수로 헤아리랴! 이 숫자는 아마도 전등록에 실린 불조사의 수효가 천7백1인데 이 수효에 기인한 것인 듯하다.

 

[7]타성일편:화두가 순숙하여 끊일 사이가 없어져 듣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 어 언제나 화두가 현전하는 경지, 오직 화두를 들고 간절히 꾸준히 그리고 힘 차게 밀고 나가면 이 경지가 된다. 참으로 공부인의 득력 시절은 이때부터다.

 

[8]달마(達磨): (?~528)범어로 <보오디.다르마>. 선종의 중국 초조로 세존. 가섭.아란으로 전하여 내려오는 불조법통의 제28대 조사가 된다. 남인도 향지 국 제3왕자로 본명은 <보리다라>라 하였다. <반야다라>존자에게 도를 배우며 40년 동안을 섬기다가 <반야다라>가 죽은 뒤 본국에서 크게 교화하여 당시 성 행하던 소승선관의 육종(六宗)을 굴복시켜 전인도에 그 이름을 떨치고 60여년 을 교화하였다. <반야다라>가 법을 전할 때 "내가 죽은 후 67년이 되면 네가 동방으로 가서 대법을 선양하라. 부디 속히 가려고 서두르지를 마라. 남방에 는 유위공업(有爲功業)이나 좋아하고 불리(佛理)는 보지 못하니 그곳에는 머 물지 마라. 동토에는 보리를 이룰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하셨는데, 사 조카 이견왕(異見王)을 교화하고는 마침내 바다길로 중국을 향하여 3년만 에 양(梁)나라 보통(普通)1년(서기520)9월 광주(廣州)에 이르러 10월에 금릉 (金陵)으로 가서 무제(武帝)와 만났다.

 

무제가 묻기를, "화상은 서천에서 무슨 교법을 가지고 오셨읍니까?""한가지 의 교법도 가져 오지 않았습니다." "짐이 많은 절을 짓고 탑을 쌓고 중을 득 도시켰는데 어떤 공덕이 있읍니까?""조그마한 공덕도 없읍니다." "왜 그렇습 니까?" "그것은 인천(人天)의 작은 복이니 유루(有漏)공덕이 될 뿐입니다." " 그러면 어떤 것이 참 공덕입니까?" "맑은 지혜는 묘하게 밝아 뚜렷이 비치어 있을 뿐이라 세상의 함이 있는 일(有爲之事)로는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거룩한 법의 첫째가는 도리입니까?" "훤칠하여 거룩한 것이라곤 없는 것입니다."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입니까?" "모르겠습니다." 무제 는 이 문답에서 알아듣지 못하였다. 달마는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 숭산 (嵩山)으로 갔다. 사(師)가 떠난 뒤에 무제는 지공대사에게서 "그분이 바로 관음보살이라"는 말을 듣고 급히 뒤쫓아 모셔 오라고 하였으나 지공대사는 온 나라 사람이 다 가도 오지 않을거라고 말렸다. 그뒤 사는 소림사(少林寺)석굴 에 9년동안 면벽하고 있었으므로 세상에서는 벽관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고 불렀다.

 

이락(伊洛)에 있던 신광(神光)이 도를 구하여 소림굴 밖에 이르렀다. 신광 은 박학군람(博學群覽)하고 불, 유, 선의 깊은 이치를 통달한 이름난 달승(達 僧)이었다. 물론 달마는 면벽단좌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신광은 "옛 사람은 도를 구하 기 위하여 뼈를 부수고 골수를 내며, 피를 뽑아 굶주림에 먹이고, 머리를 풀 어 진흙을 덮었으며, 절벽에서 몸을 던져 호랑이에게 먹였는데 나는 또한 무 엇하는 거냐!"하고 마침내 눈이 펑펑 내리는 12월 9일밤, 무릎을 넘는 눈속에 합장하고 서 있었다. 날이 밝아 해가 높이 떴을때야 달마와 이야기할 수 있었 다. 달마가 신광을 돌아 보고"네가 밤새 눈 속에 서 있어 무엇을 구하는 것 이냐?"신광은 눈물을 비오듯 흘리며 말하였다. "원하옵건데 화상이시여, 자비 를 베푸시어 감로문(甘露門)을 열어 주십시요." "제불(諸佛)의 무상묘도(無上 妙道)는 광겁으로 정근하여 행하기 어려운것을, 능히 행하고 참을 수 없는 것 을 능히 참아야 하는 것인데 너는 어째서 소지소덕(小智小德)과 경만심(輕慢 心)으로 대법을 바라보고 헛고생이나 하는 것이냐!"

 

신광은 즉시에 자기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허물을 통절히 뉘우쳤다. 그리고 즉시에 칼을 빼어 왼쪽 팔을 탁! 치니 팔은 동강 잘라졌다. 이 순간 홀연히 눈 속에서 파초가 솟아올 라 그 팔을 바쳤다고 한다. 달마 이것을 보고 "제불의 최초구법이 모두가 법을 위하여 몸을 돌보지 않았는데 네가 또한 이러하니 가히 도를 구할만 하 다."하고 드디어 이름을 혜가(慧可)로 고치게 하였다. 혜가가 "제불의 법인 (法印)을 얻게하여 주십시요."하자 달마는 "제불의 법인은 남에게서 얻는 것 이 아니다." 하였다. 그 당시 혜가는 과연 알 수 있는 것은 다 알고 배울 수 있는 것은 다 배웠으나 마음 속에 차지하고 보채고 있는 인간 불안은 어떠한 지식이나 배운 것으로는 해결은 커녕 더욱 그 마음의 불안은 더하여 갔던 것 이다. 그래서 그는 그 지헤총명과 박학강기로는 어찌할 수 없는 마음속 "한물 건"의 해결을 구하고자 물었다."화상이시여, 저의 마음이 아직 편안치 않습 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주십시요.""좋다, 그러마. 너의 마음을 이리로 가져오너라." "마음을 찾아 보아도 얻을 수가 없읍니다." "내 너의 마음을 편 안하게 해 마쳤다." 하였다.

 

위(魏)나라 효명(孝明)황제가 사의 이적을 듣고 크게 경앙하여 세번이나 청 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였고 예물도 세차례나 사양하였으나 마침내 막지 못하 고 마납의(摩衲衣) 가사(袈裟) 두벌, 금발우(金鉢) 은수병(銀水甁)과 비단만 은 받았다.

 

소림사에서 9년동안 있다가 하루는 문인을 불러서 "이제는 내게 때가 왔다. 너희들은 각기 소득을 말해보라."하시니 이미 사의 세연이 다하여 온 것이다. 그때 도부(道副)가 나와서 "문자는 취할것도 없고 버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 다."하니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하고, 다음에 비구니 총지(總持)가 나와 서 "제가 본바로는 <아란>이 아촉불국을 한번 보고는 다시 보지 못한것과 같 습니다."하니,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하고, 도육(道育)은 "사대(四大)는 본래 공했고 오온(五溫)도 본래로 있는 것이 아니오니 제가 본 바로는 한법도 가히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하니,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하였는데, 혜가는 나와 다만 예배하고 물러가 제자리에 서니,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 "하고, 이어 말하기를 "여래께서 정법안장(正法眼藏)을 가섭(迦葉)존자에게 전하신 후 전전히 전하여 내려와 지금 나에게 와 있다. 이를 이제 너에게 부 치니 잘 호지하라. 그리고 가사를 너에게 전하니 법의 신(信)으로 삼고 그 뜻 을 잘 알아 두어라.

 

의발은 내가 죽은지 2백년 뒤에는 전하지 마라. 그때는 법이 천하에 퍼져 도에 밝은 자는 많고, 도를 행하는 자는 적으며, 이치를 말하는 자는 많고 이치를 통한자는 적을 것이며, 비밀한 이치에 계합하고 도 를 통한 자가 천만인이 넘을 것이니, 너는 마땅히 이 법을 천양하되 깨치지 못한 자를 가벼이 여기지 마라. 그들이 한생각 기틀을 돌이키면 본래로 도를 얻은자와 같은 것이다."하고 게송으로 이르기를, "내가 이땅에 온것은 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하려는 것이니, 한 꽃이 다섯잎이 피면 결과가 자연히 이 뤄지리라(吾本來玄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하고 또 이르기를, "나에게 능가경(楞伽經) 4권이 있으니 이를 너에게 부친다. 이경은 곧 여래심 지(如來心地)의 요문이니 여러 중생을 가르쳐 깨달아 들어가게 하라."하였다.

 

그 당시 광통율사(光統律師), 보리류지(菩提流支) 3장등 집상(執相) 학자들 은 사를 시기하고 법을 이해하지 못하여 다섯번이나 음식에 독약을 넣었으나, 그 때마다 번번이 토하여 무사하였는데, 여섯번째는 법은 이미 전했고 때는 왔다 생각하고 그 대로 두어 마침내 앉으신채 입적하니 웅이산(熊耳山)에 매 장하였다. 위나라 효장제(孝莊帝) 영안(永安)원년 10월 5일이다.

 

그 후에 위나라 사신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갔다 오다가 총령(蔥嶺)에 서 달마대사가 맨발로 신 한짝을 들고 가는 것을 만나보고 와서 그 묘를 파보 니 신 한 짝만 남기고 전신 탈거하였더라고 한다. 사의 저술이라 전해지는 혈 맥론(血脈論), 파상론(破相論), 사행론(四行論), 오성론(五性論), 심경송(心 經誦), 안심법문(安心法門)등이 있어 지금의 종문교전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 달마전에는 이설이 있다.

 

[9]세존이 꽃을 들다(拈花微笑):세존께서 영축산에서 설법하실 때 한번은 대법천 왕이 꽃비를 분분히 내려 세존께 공양하였다. 세존은 그중 금색파리와 한 송이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나,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하여 어리둥절 하 는데 오직 <가섭만이 빙그레 웃었다. 이에 부처님은,"나의 [정법안장 열반묘 심]을 가섭에게 전한다." 하였다. 이것이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써 이밖에 다자탑전(多子塔前)에서 설법 하실적에 <가섭>과 자리를 나누어 앉은 것과, 열반에 드신 뒤 <가섭>에게 곽밖으로 두발을 내어 보인것을 합하여 종문에서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 한다.

 

[10]염라노자: 이른바 <염라대왕>이다. 범어로<야마라야지>이니 박(縛). 차 지(遮止).정식(靜息).가포외(可怖畏)라 번역된다. 귀신세계의 수령으로 사후 에 유명계를 지배하는 왕이다. 범부가 죽어서 보(報)를 받아갈 때 염라왕이 이를 판단한다. 오직 화두만 간절히 지어가는 사람은 설사 깨치지 못하더라도 이 사람은 스스로 광명을 발하는 사람이라 이런 어두운 문이 상관 없는 것이 다.

 

[11]일은 마음있는 사람을 두려워 한다: "세상사 어려울 것 없으니 오직 마 음만 있으면 된다."는 말과 같다.

 

[12]만법귀일(萬法歸一):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이다. 조주의 기연이다.

 

[13]수미산: 한 중이 운문에게 묻기를, "한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때 허물이 있읍니까?"하는데 "수미산!"하였다.

 

[14]사요소요(死了燒了): "죽어서 태워져 한줌의 재가 되니 너의 주인공이 어느 곳에 있는가?"하는 말인데 <철산경이 항상 이 말로 찾아오는 납자를 다 루었다.

 

[15]참구염불(參究念佛): 염불하면서 "이 염불하는 것이 무엇인가?"하고 의 심을 지어가는 공부법이다. 자세한 것이 뒤의 "지철선사 정토현문"중에 보인 다.

 

 

2.조주심 선사 시중

 

너희가 다만 이 도리를 궁구하되 혹 20년 30년을 참구하여도 만약 계합 하지 못하거든 노승의 머리를 끊어 가라.

 

노승은 40년을 잡된 마음을 쓰지 않았느니라. 다만 하루 두 때의 죽반 (粥飯)시는 제하니 이때는 잡용심을 하는 때니라.

 

* 용어해설

 

[1]조주(趙州): (778-897) 남악하 4세. 남전보원(南泉普願)의 법을 이었 다. 법명을 종심(從心), 속성은 확(확)씨, 산동성조주부에서 출생. 어려서 출가하여 계는 받지 않고 있다가 한번은 남전스님에게 갔는데 묻기를, "너 는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읍니다." "네가 스승이 있는 사미냐? 없는 사미냐?" "네! 스님이 계십니다"하니,곧 자리에서 일어나 남 전에게 절하면서, "엄동설한에 화상 존체 만복하십니까?"하고 문안하니 남 전이 기특히 여겨 입실을 허락하였다. 하루는 묻기를 "어떠한 것이 도입니 까?" 남전"평상심이 도니라" "그러면 어떻게 공부하면 됩니까?"도라는 것 은 알고 모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안다는 것은 망각(妄覺)이요, 알지 못한다는 것은 무기(無記)니 참도는 허공과도 같아서 탕연히 비고 통한 것 이다."하는데서 곧 깨치고 숭악(嵩嶽) 유리단(瑠璃壇)에 가서 계를 받고 이내 남전 회상에 돌아와 지내다가 그후 제방을 유력하고 80세에 조주의 관음원(觀音院)에서 크게 교화하였다.

 

이곳에서 조주고불(趙州古佛)의 이름이 천하에 떨쳤는데 지금의 조주무 자(趙州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者),청주포삼(靑州布衫)등 허다한 공안 이 법기에서 나왔다.

 

한번은 설법하기를, "손에 잡은 밝은 구슬과 같아야 호인이 비치고 한 인이 오면 장육금신을 가져 한 풀잎을 삼아 쓰기도 한다. 불(佛)은 번뇌요 번뇌는 곧 불이라."하니, 한 중이 나와 말하기를, "불은, 이것이 누구의 번뇌입니까?" "일체인의 번뇌니라." "어떻게 하면 이것을 벗어날 수 있읍 니까?" "벗어나서 무엇하려느냐!"하고 마당을 쓸었다.

 

한 중이 묻기를 "어떤 것이 불입니까?" "법당안에 안계시더냐?" "법당의 부처님은 흙으로 뭉쳐 깎아만든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그러니 어떤 것이 불입니까?" "법당안에 계시지!" "학인은 미욱해서 모르겠아오니 알도 록 가르쳐 주십시요." "네가 아침 죽을 먹었느냐?" "네! 먹었읍니다." "가 서 바루를 씻어라!"이에 그중이 홀연히 깨쳤다.

 

한 중이 와서 문안 한다. "여기 온 적이 있던가?" "아니, 처음 입니다." "차 한잔들게!" 또 한 중이 왔다. "여기 와 본적이 있던가?" "네! 벌써부 터 자주 옵니다.""차 한잔 들게!"하였다. 원주가 와서 묻기를, "화상께서 는 어째서 처음 온 사람에게도 일향 차 한잔 들라 하시고 자주 오는 사람 에게도 차 한잔 들라 하십니까?"하니 "원주!"하고 불렀다. 원주가 "네!"하 니, "차 한잔 들게!"하였다. 이것이 조주 끽다거(喫茶去)기연이다. 당나라 소종(昭宗) 건녕(乾寧)4년, 1백20세로 입적, 시호는 진제대사(眞際大師).

 

 

3.현사비 선사 시중

 

 

대개 반야를 배우는 보살은 큰 근기를 갖추고 큰 지혜가 있어야 한다. 만약 근기가 옅고 둔하거든 모름지기 힘써 괴로움을 참으며 밤낮으로 피로를 잊고 정진 하기를 흡사 친상(親喪)을 당한 듯이만 하라. 이와같이 급하고 간절히 지으며 다시 선지식의 도움을 받아 뼈저리게 실다히 궁구 하면 비록 둔근 일지라도 또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용어정리

 

[1]현사(玄沙): (835-908) 호는 종일(宗一), 법명은 사비(師備)다. 청 원하(靑原下) 7세가 된다. 설봉의존(雪峰義存)선사의 법을 이었다. 속성 은 사(謝)씨. 어려서부터 낚시질을 좋아하여 복주(福州) 남대강(南臺江) 에 배를 띄우고 지냈다. 나이 30세가 되어 문득 세속 생활에 싫증이 나 서 부용산(芙蓉山) 영훈(靈訓)선사에게 가서 축발하고 개원사(開元寺) 도현(道玄) 율사에게서 계를 받았다.처음부터 의식(衣食)을 극히 절제하고 극단으로 고행하며 진종일 정진하였다. 설봉스님은 사를 비두타(備頭 陀)라고 부르고 지도하였다. 설봉스님을 따라 상골산(象骨山)에 가서 밤 낮을 이어가며 입실 결택(決擇)하더니, 하루는 능엄경을 보다가 크게 깨치고 이로부터 응기(應機)민첩하고 모든 경에도 또한 확통하여 제방 현학(玄學)이 답지하였다.

 

설봉선사를 도와 지내다가 매계장(梅谿場) 보응원(普應院)에 출세하고 얼마 있다가 현사산(玄沙山)으로 옮기어 여기서 종신하였다.

 

시중일단(示衆一段)-"이제 너희들은 이일(一大事)을 마쳤느냐? 안심입명(安心立命)도리를 얻었느냐? 이 도리를 판단하지 못하였다면 너희들이 보고 듣는 산하 대지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모두 광로화상(狂勞華相)인 것이다. 무릇 출가인은 마음을 밝혀 근본을 요달하는 것이 사문인데 너희들은 이제 머리 깎고 가사를 입어 겉모양만 사문모양을 하고 자리리타 (自利利他)의 분을 하는 것처럼 차렸으니 이제 알고보니 모두가 캄캄하기가 그야말로 먹통이로구나. 제 치닥거리도 못하는 위인들이 무슨 남을 돕는다 하느냐? 인자(仁者)야! 너희들은 이 일이 참으로 큰것임을 알아야 한다. 아예 한가하게 모여 앉아 어지러히 잡된 이야기나 희롱하면서 세월을 보내지 마라. 참으로 세월은 빠르고 시간은 귀한 것이다. 아깝다. 대장부들아! 어찌하여 스스로 살피고 이 일을 밝혀내려 하지 않는가! 하루 아침에 무상살귀(無常殺鬼)가 덮치면 그런 구물구물 졸던 살림으로는 터럭끝만큼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업식이 망망하여 아무것도 빙거할 것이 없으니, 나귀배나 소배에 쑥 들어가기도 하고 쟁기를 끌거나 길마다 안장을 지기도 하고 지옥멧돌에 들어가거나 화탕노탕에 굽고 져지기도 하리니 어찌하여 사문이 이꼴이 된단 말이냐?"

 

후량(後梁)태조 개평(開平) 2년 74세로 시적(示寂)하였다. 그의 법을 받은 제자가 13인이 있는데 그중에 나한원(羅漢院) 계침(谿琛)선사가 있다. 저술로는 현사어록(玄沙語錄) 3권, 현사광록(玄沙廣錄) 3권이 있다.

 

[2]반야(般若): 중생이 중생된 연유가 오직 미혹으로 인한 착각으로 말미암아 지견이 전도하여 본래의 자기 즉, 부처와 더불어 지혜와 덕상과 위력이 자족한 자기를 한정 상태로 결박지워진 까닭이니-실은 한정 결박된 것이 아닌것을 그렇게 착각하고 망견을 집착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므로 결박 부자유에서 해탈하는 길은 그 첫째가 어떠한 역량이나 복을 구하는데 있는것이 아니고 무엇보다 바른 지견 즉 이 바른 종사를 만나는 것을 첫째가는 큰 복으로 치는 소이가 있다. 공부인은 밝은 지혜에 의하여 비로소 정지견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종문을 반야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공부인의 지혜를 반야라고도 한다.

 

반야는 범어의 "푸라쥬냐"인데 반야는 파리어를 음대로 적은 것이다. 일체 사물의 도리를 밝게 사무쳐 보는 깊은 지혜를 말한다.

 

[3]선지식(善知識): 또는 도사(道師)라고도 한다. 사람에게 능히 생사가 없는 도리를 설하고 학인을 이끈다.

 

 

4.아호대의 선사 수계

 

공부를 짓되, 다만 몸을 잊고 생각을 없애는 것으로 능사를 삼지 말아야 하니 이것이 공부인의 고치기 어려운 병통 중의 가장 큰 것이다.

 

단연 날카로운 칼날을 빼어든듯, 맹리한 정신으로 기어이 "조사가 서쪽 에서 온뜻"을 밝혀 내도록 하여야 하니, 두눈을 똑바로 뜨고 반복하여 공안을 드리지 않고서야 어느 때에 마음이 공하여 급제하랴!

 

*용어정리

 

[1]아호대의: (735-818) 남악하 3세. 마조의 법을 이었다. 형주(衡州)수강(須江)에서 출생. 속성은 서(徐)씨다.

 

당나라 현종 친림하 제법사와의 문답일단. 법사 묻기를, "어떠한 것이 선(禪)입니까?" 사(師)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점을 치니, 법사 알아듣지 못하니, 현종"법사는 그 허구 많은 경을 강하면서 다만 이 일점도 모르시오?" 사 이어 현종에게 말하기를 "순종(順宗)이 시리선사에게 묻기를 "대지중생이 어떻게 견성성불 하겠읍니까?"하니 시리선사는 "불성은 물 속에 있는 달그림자와 같아서 볼 수는 있으나 잡을 수 는 없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바와 같이 불성은 봄이 없는 마음으로 가히 보는 것입니다."현종 "어떠한 것이 불성입니까?" "폐하께서 물으시는 바를 여의지 않았읍니다."하였다. 현종 원화(元和) 3년 시적. 향수 74세. 시호는 혜각(慧覺)선사.

 

[2]병통: 공부를 잘못 지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대주해(大珠海)선사 는 <무자화두>를 지어가는데 열가지 병통을 경계한다. 그러나 이것은 "무" 자만에 한한 것은아니다. 우리나라 조계종 종조로 볼 수 있는 보조지눌 선사도 대혜종고 선사가 공부인에게 다음 열가지를 경계한 것을 거울삼아 공부하여 대오 하였다. 오직 의정을지어 나갈줄만 알면 되는 것인데 다들 꾀를 내고 치구심(馳求心)을 버리지 못하여 온갓 병통에 마구 떨어지는 것이다. 열가지는 다음과 같다.

 

1.이근하복탁(耳根下卜度)-꾀를 내어 생각하여 알아 마치려는 것.

2.양미순목처타근(楊眉瞬目處楕根)-눈섭을 오르내리고 눈을 껌벅거리는 곳에 들어앉았는 것.

3.어로상작활계(語路上作活計)-말길에서 알아 마침을 삼는 것.

4.문자중인증(文字中引證)-글에서 끌어다가 인증을 삼으며 알려하는 것.

5.거기처승당(擧起處承當)-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알아 마치려는 것.

6.양재무사갑리(양在無事甲裡)-모든 것을 다 날려버리고 일 없는 곳에 들어 앉았는것.

7.작유무회(作有無會)-있는 것이라거나 없는 것으로 아는 것.

8.작진무회(作眞無會)-참으로 없는 것으로 아는 것.

9.작도리회(作道理會)-도리가 그렇거니 하고 알음알이를 짓는 것.

10.장미대오(將迷待悟)-깨치기를 기다리는 것.

 

[3]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교외별전(敎外別傳)을 말한다. 이 말은 조사 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달마조사가 인도에서 오시어 처음으로 동토에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선법을 전하시니 그 문하에 많은 도인이나왔고 그때 사람들이 많이 이 선법을 배웠는데,여기 조사가 서쪽에서 온뜻이란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도리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 大意)는 무엇이냐는 말이다. 이 조사서래의를 밝히려는데서 수 많은 조사 공안이 나오게 되었는데 여기 한 예를 들어본다. 한 중이 <조주>에게 묻기를, "어떠한 것이 조사서래의 입니까?" 하니,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栢樹者>"하였다. 중이화상은 경계를 가지고 말씀하지 마십시요." "내가 경계를 가져 말하지 않았느니라."중이 다시 "어 떠한 것이 조사서래의 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대답 하였다.이 일단의 문답에서 알아듣지 못한 것을 참구하는 것을 정전백수자 화두라고 한다.

 

[4]마음이 공하여: 방거사(龐居士-마조의 법을 얻다)의 게송에서 취한 말 이다. "시방의 모든 납자 함께 모여서, 모두가 함이 없는 도를 배우니, 이 곳은 부처 뽑는과거장이라, 마음이 공하니 급제 하더라(十方同聚會 個個學 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5.영명수 선사 수계

 

도를 배움에는 기특한 것이 따로 없다. 다만 마음속에 무량겁으로 내려 오면서 익히고 쌓인 업식(業識)종자를 씻어 없애는 것이 요긴하다. 너희 들이 능히 일체 망상을 털어 버리고 망년된 인연을 끊어 없애어, 세간의 모든 오욕 경계를 대하더라도 마음이 마치 목석과 같게만 되면 비록 너희 가 아직 도안(道眼)이 밝지 못하더라도 자연히 청정신을 성취할 것이다.

 

만약 진정한 선지식을 만나거든 모름지기 간절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친근하라. 설사 참구하여도 깨치지 못하여 배워도 원만히는 못 이루더라도 묘법은 이근(耳根)에 남아 있어, 길이 무상도리의 종자가 되어 세세생생 악취(惡趣)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몸을 잃지 않을 것이니, 한번 사람몸을 받아 태어나게되면 그때는 하나를 듣고 천을 깨칠 것이다.

 

# 용어정리

 

[1]영명(永明): (904-875) 항주 혜일 영명연수지각(抗州 永明延壽智覺) 선사다. 청원하(靑原下) 11세가 된다. 천태덕소(天台德韶)선사의 법을 이었다. 법안종(法眼宗)에서는 제3조가 되고 정토종(淨土宗)에서는 제6조로 잡는다. 속성은 왕(王)씨, 절강성 항주부 여항에서 출생. 소년시절 부터 불법에 뜻이 컸고 특히 법화경을 수지독송하여 들에서 암송하면 양떼가 감응 하여 엎드려 들었다고 한다. 벼슬을 하여 28세때는 화정진장(華亭鎭將)이 되었더니 그때의 오월(吳越) 문목왕(文穆王)이 그의 도심(道心)이 큰것을 알고 그의 뜻대로 출가하게 하였다. 처음 취암영명(翠巖永明)을 섬기어 온갖 대중시공을 갖추 받들었고, 그후 천태산 천주봉에 가서 석달 동안을 지냈는데 날짐승이 머리를 앉고 옷 소매에 둥지를 쳤다고 전한다.

 

천태산 덕소(德韶) 국사를 뵈오니 곧 큰 그릇임을 알아보고 법을 전하면서 이르기를 "너와 왕과는 인연이 있으니 앞으로 크게 불사를 지을 것이다."하였는데 후에 과연 그와 같았다. 처음에 명주(明州) 영명사(永明 寺)에 있었는데 대중이 항상 2천명이 되었다. 영명사에 15년 있는 동안에 제자 천7백인을 제도하였고 천태산에 들어 가서는 1만명에게 계를 주었 으며, 저녁에는 귀신에게 시식하고 아침에는 방생하기를 이루 말할수 없이 많이하였다. 매일 백여덟가지 일과 조록을 정하고 지켰는데, 그중에는 염불만도 10만번이다. 생전에 법화경을 1만3천번을 외웠고, 종경록(宗鏡 錄) 백권,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 6권, 유심결(唯心訣) 1권등 60여부외 에도 수백권의 큰 저술을 남겼다. 고려 광종(廣宗)과는 서신 거래가 많았는데 고려스님이다.

 

송 태조 개보(開寶) 8권, 대중에게 설법하고 가부좌 한채 입적 하셨다. 향수72세.

 

[2]업식(業識): 중생심이 밝지 못하여 망념이 일어나 업이 움지이는 첫 모양을 업식이라 한다. 이 업식과 전식(轉識), 현식(現識),지식(智識), 상속식(相續識)을 오식이라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중생심이 근본무명으 로 인하여 망념이 일어나고 거기서 대상이 생기고 다시 그것을 인정하고 집착심을 내며, 그 집착에서 다시 가지 가지로 분별교량하는 총체적 상태 를 말하고 있다.

 

[3]오욕(五慾): 중생의 욕망 다섯가지니 물욕(財慾), 색욕(色慾), 식욕 (食慾), 명예욕, 수면욕이다. 본래 한물건 없는 가운데에서 무단히 상(相 )을 보며, 다시 생명을 보며 분별하고 호오를 보며 취사 집착하여, 본래 걸림없이 자유스럽고 스스로 원만한 자기의 본곳을 등지고 항상 바깥으로 달리어 얻기에 허덕이는 것이 중생인 것이다. 이 밖으로 얻고져 구하고 치달리는 중생의 마음 취향이 곧 욕심인데 이 욕심을 크게 다섯가지로 나누어 오욕이라 한다.이 오욕의 근본은 곧 탐(貪)이며 탐의 근본은 애(愛) 며, 애의 근본은 우리 본성(本性)의 활성(活性)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 해서 이 오욕자체의 근본은 정추(淨醜)를 떠난 것이라 하겠다. 범부는 전도된 지견으로 애와 탐을 착각된 방식으로 작용시키므로, 우리의 본성이 가지는 전성적(全性的)인 활성(活性)의 역능(力能)은 그 기능이 감소되고 제약되고 비뚤어지므로 여기에서 분별취사의 중생심은 더욱 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오욕의 근본을 요달하여 다시 취할 것도 없으며 버릴 것도 없어야 한다. 만약 이 오욕의 근본을 요달하지 못하였다면 이 오욕은 인간의 무한 자재 원만성을 좀먹는 도적으로 작용하므로 반드시 억지 마음을 지어서라도 오욕을 억제하고 없이 하여야 하니 그러면 자연 심신이 청정하여지며 오복이 따르게 된다. 계를 가져 천생에 나고, 선행을 닦아 복을 받는 도리가 여기에 있다.

 

[4]마음이 목석과 같이: 백장해(百丈海)선사에게 한 중이 묻기를 "어떻 게 하면 일체 경계에 대하여 마음이 목석과 같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하니, "일체제법이 본래로 그 스스로가 공이라 하지 않으며 또한 옳으니 그르니 청정하니 하지 않으며, 또한 어떤 마음이 있어 사람을 결박하는것 도 없다. 다만 사람이 스스로 분별, 계교, 사량, 집착하고 알음알이를 내 며, 가지가지 지견을 일으키며 애착도 하며 또한 두려운 생각도 내는 것 이다. 오직 제법이 본래로 남이 없는(不生)것임을 알며, 자기의 한생각 망상전도로 인하여 상(相)을 취함에서 있게 되는것을 요달하면 마음이나 경계라는 것이 도무지 실다운 것이 되지 못하는 것임을 알게 되어 즉시 에 해탈할 것이다" 하였다.

 

[5]선지식(善知識): 앞서 선지식은 생사가 없는 도리를 설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반드시 선지식을 의지하여야 한다. 고인은 모두가 한 표주박, 한벌 누더기로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선지식을 구하고 신명을 버려 친근공양 하였다. 경의 말씀에 "말세중생이 선지식을 만나면 도를 이룰 수 있다."하였고, 또한 말세 선지식의 요건으로 "오직 지견이 바른사람(正知見人)"을 말씀하고 있다.

 

[6]악취(惡趣): 중생이 지은 업의 경향을 대충 여섯으로 나누어, 육취 (六趣)라고 하는데 이 육취에 의하여 육도에 나는 것이다. 육취란 천취, 인취, 수라취, 아귀취,축생취, 지옥취(천취,인취,수라취,아귀취,축생취, 지옥취)를 말하는데 이중 삼악도에 나는 지옥취, 아귀취, 축생취를 악취 라고 한다. 지혜가 없이 악한 업을 많이 지어, 극단으로 고통스럽고 어리 석고 복이 없는 보나 따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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