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으로 신음할 때(시 38:1-22)
시편 38편을 보면, 다윗은 매우 고통스러운 지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1-2절)
다윗은 자기가 당하는 고통을 주의 노하심으로 인해서 주어진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주님께서 노하시므로, 나의 살에는 성한 곳이 없습니다.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나의 뼈에도 성한 데가 없습니다. 내 죄의 벌이 나를 짓누르니, 이 무거운 짐을 내가 더는 견딜 수 없습니다. 내 몸의 상처가 곪아터져 악취를 내니 이 모두가 나의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더 떨어질 데 없이 무너져 내린 이 몸, 온종일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니, 이 몸에 성한 데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 몸이 이토록 쇠약하여 이지러졌기에, 가슴이 미어지도록 신음하며 울부짖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경험을 주님과 연결시켜 보는 것이 신앙적 자세입니다.
여러분! 다윗의 살에는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뼈도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그의 죄악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을 견딜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의 몸의 상처가 곪아 터져 악취가 났습니다.
그의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여, 성한 데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피곤하고 심히 상하여,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멀어졌으며, 대적이 올무를 놓고, 악한 말로 넘어뜨리려 하여, 근심이 항상 앞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11-12절을 보면, 다윗은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민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다윗은 하나님께 그 고통을 호소하였습니다.
여러분! 고통으로 신음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주님께 탄식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9절 말씀입니다.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아멘.
“탄식한다”는 말은 “한탄하며 한숨 쉬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 탄식하라는 말은 한숨 쉴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한탄하라는 뜻입니다.
절망 중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고통을 주님 앞에 털어놓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였을 때, 뒤에는 애굽 군대가 따르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이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사면초가 상태였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모세에게 불평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한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탄식하라는 말씀이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지방으로 가실 때, 가나안 여인 하나이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이 반응을 보이시지 않자, 예수님 앞에 나아와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그 가나안 여인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며 간절하게 매어 달렸습니다.
딸의 고통을 생각하며, 예수님께 탄식하며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즉시, 그 가나안 여인의 딸의 병은 고침을 받았습니다.(마 15:21-28)
누가복음 18장에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가 기도하러 성전에 갔는데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세리와 같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자랑합니다.
반대로, 세리는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다만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며 탄식하며 기도를 드립니다.
이 두 사람이 기도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바리새인보다 세리를 의롭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여러분!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통곡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1)
여러분! 고통으로 신음할 일이 있습니까? 걱정과 염려로 인해 뜬 눈으로 밤을 새우시는 분이 계십니까? 어떤 문제이든지 주님께 탄식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탄식을 받아주실 뿐만 아니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고통으로 신음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둘째, 사람에게 침묵해야 합니다.
13-14절 말씀입니다.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아멘.
다윗은 대적이 자기에게 악을 행할 때, 말 못 듣는 자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대적들과 대항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앞에서 심문받으실 때, 침묵하셨습니다.(마 26:63)
이 장면을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라고 묘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을 잘하지 못해서이거나, 대답할 말씀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침묵으로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고통으로 신음할 때,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때로는 마음이 후련할 때가 있지만, 오히려 말하고 나서, 후회할 때도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약점과 상처를 싸매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있을지라도, 언제나 이해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11절을 보면 다윗이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라고 하소연합니다.
자기를 끝까지 이해해 줄 것만 같은 사람들이, 상처를 위로하고, 수용하지 못하고,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위로와 이해는 한계가 있습니다.
욥이 고통으로 신음할 때, 욥의 세 친구와 아내까지도 욥을 위로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큰 아픔만 주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사람들의 오해나 험담 그리고 악담으로 신음하고 계십니까?
다윗처럼, 사람들에게는 못 듣는 자와 말 못하는 자와 같이 침묵해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가 당하는 고통이 자신의 죄 때문임을 인정하고, 자기가 고통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침묵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는 침묵하고, 하나님께는 기도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고통으로 신음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셋째, 소망 가운데 기다려야 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아멘.
표준새번역성경을 보면, “주님, 내가 기다린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에게 친히 대답하여 주실 분도 오직 주님이십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다윗은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주님께 탄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또한, 자기를 대적하는 사람들에게는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주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의 시간이 요구됩니다.
좋은 것은 그만큼 많은 기다림의 시간을 요구합니다.
여러분! 소망과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기다람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모함에 의해 갇혔던 감옥에서,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불에서, 그리고 다윗이 아둘람굴에서 나왔던 것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인내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인내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소망 가운데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고통으로 신음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넷째, 주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21-2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아멘.
다윗은 자기가 당하는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던 다윗은 이제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지 마시기를 다급하게 기도했습니다.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이것이 기도 중의 기도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은 질병의 고통이나 친구 또는 원수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고통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여러분! 고통으로 신음할 때, 주님께 탄식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침묵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소망 가운데 기다려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버리지 말아 달라”고, “멀리하지 말아 달라”고,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은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시 27:9)라고 기도했습니다.
역대하 25:8절을 보면,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대하 25:8)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로마서 8:26절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