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德編(세덕편)
모든 전씨의 도시조
휘(諱)는 섭(攝)이니 백제 왕 온조와 오간 ,마려, 을음, 해루, 흘우, 곽충, 한세기등 9인이 같이 군사의 일을 다스리어 백제(처음엔 십제(十濟)라고함)를 건국하고 공신이되어
환성군에 봉했으니 백제원년 계유 서기기원전18년이요 한나라 성제成帝홍가鴻嘉3년이다.
환성은 대개 천안지방의 고호(古號)로 전씨의 발상지이다. 이러므로 천안군(현 천안시)풍세면삼태리에 설단하고 비를 세워 해마다 제사(歲享祀)를 모신다.
천안 전씨의 관조는
도시조 전 섭(全 攝:환성군)의 후손인 전 낙(全 樂)이다.
문헌에 의하면 낙(樂)(충건공-29세)은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삼사 좌복야(三司左僕射)를 지냈고 천안군(天安君)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천안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홍술(洪述)(32세)이 고려조에서 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내고
영산군(寧山郡)에 봉해졌으며, 그이 아들 충우(忠佑)(33세)는
환계군(歡溪君)에 봉군되었다. 충우(忠佑)의 손자 인량(仁亮)(35세)은 1211년(희종 7)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우의정(右議政)에 이르렀으며,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이부
상서(吏部尙書)에 제수 되고 은자광록대부(銀紫光祿大夫)로 책록되었으며, 귀국 후
천양군(天陽君)에 봉해져서 영평군(寧平君)에 봉해진 아들 단(旦)(36세장남), 지공거(知貢擧)에 오른 승(昇)(36세차남)과 함께 명성을 날렸다.
승(昇)의 아들 신(信)(문효공-37세)은 충렬왕(忠烈王)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숭경부승(崇慶府丞), 대제학(大提學),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등을 거쳐 충혜왕(忠惠王) 때 감찰대부(監察大夫)에 올랐으며 상의회의 도감사(商議會議都監事)를 지냈다.
한편 충목왕 때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를 지낸 윤장(允藏)(39세)은
1348년(충목왕 4) 첨의참리(僉議參理)에 추증되었으며, 몽성(夢成)은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몽진(夢辰), 김덕흡(金德洽) 등과 함게 의병을 모집하여 수차에 걸쳐 왜적을 무찔러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전씨는 주로 12∼14세기 무렵인 고려 후반기에 많은 장상(將相)을 배출하여 전성기를 이룬 성씨로 봉군(封君) 35명,
정승급 12명, 판서급 43명, 참판 4명, 대장 7명, 병사(兵使)·수사(水使) 4명을 배출했다고
《전씨관면록(全氏冠冕錄)》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각파별 문과 급제자는 정선·옥천이 각 8명, 용궁 7명, 경산·평강·나주 각 4명,
천안·기장 각 3명, 경주·전주 각 2명, 안동·성주 각 1명, 본관 미상이 8명이다.
우리들은 천안군(天安君)전낙(全 樂)을 관조로 본관이천안(天安)이며 37세신(信)할아버지 문효공파(文孝公派)이며
41세영광군수공(靈光郡守公)교(皎)의 자손으로 시조로부터 58세손이다.
천안시 풍세면 삼태리에는 시조 환성군 섭할아버지를모신충훈사와 단소, 단비, 사적비, 신도비 와
문효공 단소 단비 가있고 검계서원이 위치하고 있으며 매년가을10월3일 시조 환성군 시향제를 모신다
천안군(天安君)전낙(全 樂)할아버지시향제는 매년 5월5일광주광역시에서모신다.
천안(天安)은 충청남도 북동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려 태조가 백제의 대목악(大木岳), 탕정(湯井), 사산(師山) 3고을의 땅을 떼어서 천안부(天安府)를 설치하였다.
성종 때 환주(歡州)로 개칭하고, 목종 때 군영(軍營)과 부를 폐지하였으나, 현종 때에 다시 부로 환원하였다.
충선왕 때 영주(寧州)로 개칭하였다가 공민왕 때 다시 천안부로 환원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천안부를 군수도(郡守都)로 책정하여 영산군(寧山郡)이라 개칭하고 1416년(태종 16)에 천안으로 다시 고쳤다.
1936년 천안읍으로 승격되고, 1963년에 천안시(天安市)로 승격되었다
전씨(全氏)의 본관은감천(甘泉)경주(慶州) 기장(機張)나주(羅州) 성산(星山)성주(星州) 옥산(玉山) 옥천(沃川) 완산(完山)용궁(龍宮)정선(旌善)죽산(竹山) 천안(天安) 팔거(八거)평강(平康)함창(咸昌)황간(黃澗)전씨들이있다.
첫댓글 대단 하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