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유전과 예수님 육체 논쟁
이 문제는 아담이 범죄함으로 생겨난 죄 곹 원죄가 다음 세대로 전이되는가? 유전되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 쟁점에서 저는 원죄가 다음세대로 전이, 유전된다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반대로 오주영님과 양촌님은 죄가 유전되지 않는다 하여 쟁점이 되었습니다. 이미 토론들에서 보신바와 같이 죄가 유전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인간이 태어날 때 혼이 없이 태어났다가, 하나님이 일일이 찾아가서 혼을 불어넣는 주장과 연결되었습니다.
혼이 없는 육체는 죽은 것이므로 인간이 죽어서 태어난다는 주장과 같습니다. 죄가 없이 태어났다는 주장은 각자가 노력하고 바른 선택을 하여 자기 책임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정당한 설명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이것은 행위구원과 행위성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분의 구원관은 자칫하면 그릇될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죄유전을 반대하는 분들이 꼭 들고 나오는 것은 유아침례나 영유아의 구원문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육체 논쟁이 됩니다.
죄가 유전된다면 예수님도 마리아에게서 죄를 물려받았지 않는가? 입니다. 저는 마리아는 대리모에 불과하였으며 예수님은 원래부터 독자의 고유의 육체를 가지신 분이셨으며, 새로운 옷을 입듯이 새 육체를 입는 것도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언제나 가능하므로, 실제로 예수님이 입으셨던 육체는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에 흠없고 죄없던 육체와 같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혼과 영은 공기중에 떠돌아 다니다가 다음세대가 태어나면 그리로 잠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과 혼은 육체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혼은 육체안에, 육체를 기반으로 존재하다가, 죽을 때에 떠나 낙원에 혹은 음역에 들어가서 대기하는 것입니다.
그 영혼은 다음 세대가 태어날 때 그 육체안에 자연히 함께 형성되고 그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죄 또한 영과 혼과 육체안에 거하므로, 죄 또한 육체를 떠나서 인간의 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죄가 수많은 사람들의 집합체인 사회와 세상에도 있습니다. 그렇게 개인안에 있는 죄가 차후세대를 낳을 때, 그 다음세대의 영과 혼이 형성될 때 자연히 그 안에 전이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반대로 혼이 이전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고 혼없이 다음세대가 태어난다면, 죄의 유전은 없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하나님이 새로운 혼을 매번 불어넣는다는 주장이며, 그렇게 설명되어진 성경구절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이론은 마치 인간 모두가 선을 위해 노력하면 그럴듯하게 선을 이룰 수도 있을 것처럼, 행위구원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반대로 죄유전을 주장하는 이론을 택하면, 인간은 날때부터 죄인이며, 처음부터 구제불능입니다. 노력할 것은 오직 주 예수님을 불러 구원을 얻은 다음 그분의 인도하심으로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행위구원을 가능성있게 둘 위험이 있습니다. 구원얻은 다음에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성령님을 좇기보다는 인간의 노력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간은 원래부터 죄악중에 태어나 희망이 없는 사망의 몸이었다는 진리를 믿는 사람은 인간 자신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또 예수님의 육체는 일반인 모두와 똑같은 육체로서 죄있는 육체였으며 그 죄있는 육체를 십자가에서 대표적으로 못박아 버림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인류를 대표하여 죽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대표속죄이며 이것은 대신속죄와 판이하게 다릅니다. 대표속죄는 예수님은 죄를 범하지는 않았으며 그러므로 죄인은 아니다, 그러나 그분은 죄있는 육체를 입고 계셨으며 그분이 대표적으로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주장입니다. 예수님이 대표적으로 죽었어야했다면 예수님은 마땅히 죽어야 할 존재였기에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표속죄입니다. 이것은 엄청나게 많은, 중요한 기독교 진리에 반합니다! 이 주장은 아주 위험하며, 이것을 원칙대로 지킨 사람들의 구원은 매우 의심스럽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죽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으며 죄없으신 몸으로 죄를 지은적도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지은 죄를 위하여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즉 대신속죄를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의 상태와 같았으며 그분은 제2의 아담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주장들의 위험성과 황당함을 간파하고 막았음에도 그 이론의 문제점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인터넷에서 주어 들은 것으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죄없으신 분으로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의 상태의 육체, 인간 혼, 정서등을 가지셨다고 보아야 고전 15:45-47의 둘째 아담에 관한 말씀에 부합될 것입니다. 죄유전에 반대하는 경우에는 보다 큰문제들에 봉착하며 그것은 행위구원, 행위성화등을 추구하게 만듭니다.
첫댓글 박만수님 같은 경우 로마서 8장 3절을 잘못 해석하여 예수님이 인간과 똑같이 죄가 있는 육신의 몸으로 오셨다고 했습니다..그래서 대표속죄 교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그리고 회원님들 중 어떤 분은 대표속죄라는 같은 용어를 써서 그대로 박만수님의 견해를 따랐습니다..어떤 분 같은 경우는..예수님이나 인간의 육체 자체에 죄가 있는 것이 아니고, 같은 죄의 율 아래 있다고 했고 다만, 인간은 혼을 따름으로 죄를 지었고 예수님은 혼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죄를 짓지 않으셨다..정도로 이해하시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토브님께서 설명을 하셔도 전 이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아직도 더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음을 깨닫습니다.^^;;
저는 이 부분,
죄유전을 주장하는 이론을 택하면, 인간은 날때부터 죄인이며, 처음부터 구제불능입니다
이것이 처음 부터도 이해가 잘 되지 않고 있고, 지금도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사람의 본능이 먼저 사람안에 내재가 되어있고,
자라가며, (커가면서)
이성적으로 무었인가 깨닫게 되었을 때. 그 때부터 내가 죄인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었을때에는 우리가 죄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듯이.
율법이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를 범하고 있었음을 알게되었듯
주님 주신 말씀을 내게 비추어 보았을 때 내가 죄인임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하나님앞에 심판을 받을 때 너는 죄인이다라고
하여도 아무말 못 하지 않겠습니까?
태어나자마자 무조건 너는 죄인이다.
하는것은 이치에 합당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혜의 하나님,
눈에 보이는 것에서 ,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만드신 하나님께서 한 낱 인간을 놓고 우격다짐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요?
저는 차라리 원죄론보다는 자범죄만을 애기하는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혹시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직은 그렇게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리고 원죄론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꼭 행위구원을 얘기한다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받아 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나는 죄인이며,
내 의로는 아무것도 할 수없음을 알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부분만 빼고는 모두 하토브님의 뜻에 동의합니다.
가르침을 기다립니다.
ㅎㅎ디클레어님 말씀이 맞습니다..따지고 보면 어릴 때는 자기가 죄인인지 아닌지 잘 모릅니다..철이 들고도 한참 지나서야 자기 몸에 죄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요..저는 그것을 결혼 후 한참 지나서 알게 되었습니다..적어도 저는 모범생 범주였지요..그래서 저는 제 안에 있는 죄를 깨닫는 데 더 힘들었답니다..그러나 어떤 아이들은 어려서 깨닫기도 한다고 합니다^^ 19:20
그러나 사람은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악한 일을 행하기 전에도 이미 죄인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도 역시 그 죄는 우리 몸을 떠나지 않지요..다만 죄 때문에 정죄받는 일은 없답니다..의롭다고 여김을 받는 죄인인 셈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자범죄를 심판하시지 원죄문제로 인간들을 심판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범죄의 뿌리는 원죄에 있으며 원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바울이 로마서 3장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단언한 것은 (롬 3:11-18)의인이 있었던 시절이 한번이라도 있었다는 가설을 배제합니다. 인간으로서 의인으로 있었던 시절은 한번도 없습니다. 7장에서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원하랴? 에서는 그토록 의인으로서 노력했지만 인간 자체로서는 구제 불능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숯덩이를 하이타이로 아무리 빨아도 하얗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것은 집어서 던져 내야 됩니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일까요?아니면 죽어가는 것일까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죽어있는 자들입니다..
양면을 봐야만 이해가 되리라 여깁니다..
아름다운 꽃이 뿌리가 있는채로 영양공급을 받고 있다면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만 꺽여져서 화병에 옮겨졌다면 보기에는 아름답고 살아있는것 같지만 그 꽃은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이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다면 살아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져 있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죽어있는 인생들입니다..
엡2:1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창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말씀하셨으며 뱀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이 권위가 있을까요? 아니면 뱀의 말이 권위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말하는 죽음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분리입니다..
죽음은 분리입니다..
첫번째 죽음은 하나님과의 분리이며 두번째 죽음은 육체와의 분리입니다..
사람과 하나님과는 이미 선악과를 먹을때 분리가 되었습니다..하나님이 보시기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이후에도 오래 살았지만 죽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에 하나님과 교제하던 영이 죽어버린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알던 영이 죽었기에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알 수가 없었으며 하나님과 교제를 할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는 상태로 사람들은 태어나고 죽습니다..그것이 바로 유전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인생들에게 거듭나야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육체로 거듭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영으로 거듭나야 되는것입니다..
그것을 거듭남이라 합니다..
꽃병에 있던 뿌리가 잘린 꽃(아담)을 새로운 뿌리(예수그리스도)에 접목을 하는것을 거듭남이라 합니다..
아담의 족보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족보로 옮기는 것이 바로 새로운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아담에 속해있다면 영원한 지옥이며 예수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면 하나님나라의 백성입니다..
첫번째 태어나면 지옥으로 가지만 두번쩨 태어나면 하나님나라에 갑니다..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로 태어나면서 죄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서 의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기는 없을 것이며, 의인이 한명도 없다고 단언할 때는 태아때이든 어느 때이든 의인으로 있었던 시기가 없었다는 말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이 카페에서는 구원, 거듭남, 성화, 성장의 문제들에 촛점을 맞추어 토론하고 싶습니다. 여기 제기된 죄의 유전, 등의 문제도 그 큰 범주에 관련될 것입니다.
글이 약간 길어져서 까페글쓰기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