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에게 생긴 일(원제: Whatever happened to Baby
Jane?)
원작 Henry Farrel/재창작 정복근/연출 한태숙
등장인물
블랜취(50)
제인(48)
바바라 스티트(36)
에드읜 플래그(35)
시일
일주일 사이
장소
자매의 집
무대
무대는 고풍스러운 구조와 실내장식을 지닌 미국 중산층 가정의 집안 내부가 된다. 객석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현관을 중심으로 이층으로 오르는 나선형의 층계 일부와 두개의 높이가 다른 방으로 나뉜다. 아랫층의 낮은 쪽은 거실이 되고 이층은 블랜취의 침실이 된다. 거실 전면의 벽에는 춤추는 어린소녀의 모습을 담은 클럽쇼 포스터가 붙어 있고
방 한쪽으로는 낡은 피아노가 놓여있다. 현관에서 본 거실의 맞은편에는 부엌으로 통하는 문이 보인다.
계단 및 현관의 한쪽벽에 붙은 테이블에 전화가
놓여있다. 이층은 나선형 층계의 일부와 층계참 그리고 불구자를 위한 배려가 보이는 블랜취의 침실이
된다. 블랜취의 침실 한 쪽 벽에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사진액자가 걸려있고 상반신을 일으킬 수
있는 침대,책상과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이 보인다. 객석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현관문의 쇠창살,집안을
장식하는 회벽과 목재의 빛갈 층계 난간 장식 등이 모두 정교하고 세심하게 꾸며져야 한다.
관객이 입장을 시작하면서 부터 내내 음악이 들린다.
막이 오르면 모든 가구에 덮개가 씌워진
어두컴컴한 집안이 보인다. 잠시후 열쇠를 돌리는 소리와 함께 전면의 현관문이 열리고 휠체어에 탄
블랜취가 들어온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간병인이
휠체어를 밀고 들어온다. 두사람 잠시 먼지 낀
집안을 둘러본다. 간병인 조심스럽게 둘러보다가 블랜취의 손짓에 따라서 다시 밖으로 나간다. 블랜취
잠시 망서리다가 거실로 들어간다. 거실을 돌아보고
피아노를 덮은 덮개를 잡아당겨 벗겨낸다.
피아노를 열고 건반을 한두개 눌러본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천천히 말한다.
[블랜취] 네 나는 돌아왔습니다. 반년만이지요. 그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오랜 세월이
지나간듯이 느껴졌는데 실제로 지나간 시간은 겨우 반년이었던가 봅니다. 제인은 아직도 병원에 있고
이런 몸으로 혼자 살 수 밖에 없게 되어서 모두 염려해
주었지만 나는 역시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그때 신문에 났던 사건기사들 때문에 남들에게는 불길하고 위험하게만 보이는 집이겠지만
내게는 나빴던 분량보다는 훨씬 더 많은 양의 기쁨과
추억이 배어있는 집이니까요.
말하는 동안 간병인이 몇개의 가방들을 현관에 들여
놓는다.
[블랜취] (간병인을 향해)네. 그 가방들은 이층으로 좀
올려주세요. 이층 오른편 침실에요.(다시
독백으로 돌아오며)당분간은 시중을 들어줄 손이 필요할것 같아서 함께 살기로 한 분입니다.
간병인 잠깐 객석을 바라보고 가방을 들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블랜취] 남과 단 둘이 살게 되는것은 처음이어서 망서리기도 했지만,병원에서 여러분이
권하시더군요. 혼자 살아서는 안된다구요.(생각하다가)가족이 아닌 다른사람과 산다는것은
---글쎄요,제게는 좀 부담이 됩니다.(웃는다)아니지요.솔직하게 말하면 굉장한 부담이 됩니다. 한지붕
아래 누군가 다른사람,가족도 아무도 아닌 사람이 밤낮으로 함께 있어서 늘 그 기척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면---뭐라고 할까요 신발에 모래가 들어갔을때---아니면 실밥이 나온 속옷을 입었을때와도 같은
편치않은 느낌이 들테니까요.
말하는 동안 이층 블랜취의 방에 <<불이 켜진다.>><<좀더 환해진다>>간병인 가방을 들고 들어와서
객석에서 보이지 않는 장소에 가방을 놓고 내려온다.
[블랜취] (가구들의 덮개를 벗겨내다가)그래도 안심이
되기는 하겠지요. 혈육과 단둘이 함께 사는
위험에서 피할 수 있는 예절과 무관심 이라는 안전장치가 있을 테니까요. 살아있는 한 도저히 그
인연을 끊을 수 없는 혈연이라는 사이는 정말 얼마나
끈끈하고 이상한 인간관계일까요?사랑에든
미움에든 이성을 잃고 휘감겨 빠져들게 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이니까요.더구나 문 닫고
자기들끼리만의 세계를 만들며 매어 사는 사이라면 위험은 좀더 현실적인 것이 되고 말겠지요. 폐쇄와
고립이 사람을 얼마나 이상하게 변질시키는지 생각해
보신 일 있으신가요?어둡고 습기 찬곳에 곰팡이가
쓸듯 불행 역시 늘 그런자리,단절되고 고립되어 남의
눈이 닿지않는 장소에서 싹터 자라나는가
봅니다.(감개깊게 사방을 돌아보며)집이라는건 좀 이상하지요. 마루와 천정,벽과 문짝의 모서리,가루
하나하나 마다 여러가지 기억들이 배어 있어서 꼭 무슨 살아있는 존재처럼 여겨지니까요. 여기서 나는
이제 밤마다 이 낡은 집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게 되겠지요. 제인과 내가 함께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과 비틀어진 사랑과 살아가는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요.
돌아다니며 모든 덮개를 벗겨낸다.
[블랜취] 보세요.집은 여전히 그때 그 모습으로 변함없군요.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던것 처럼
시치미를 떼고 점잖게 앉아있네요.그리고 혼자서 이런저런 기억들을 되씹고,되씹어 보다가 마음이
내키면 내게도 그 낡은 기억을 한조각씩 되돌려 주겠지요. 어쩌면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려 펼쳐보여
줄수도 있을거에요.
아---난 지나간 시절을 되돌이켜서 곱씹어보는 일에는 아주 능숙하답니다. 전문가지요. 한번
해볼까요?벽과 천정 바닥들 그리고 가구들이 도와줄거에요. 난 아주 세세한 구석까지 기억해내고 다시
생각해낼수 있는 방법을 압니다. 몸이 이렇게 되고부터 터득한 생존기술인 셈이지요.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고---세상은 정말 언제나 공평하지요.
조명의 색조가 변한다.
[블랜취] (낮은 소리로)들어보세요. 흘러간 시간이 돌아왔어요. 보세요 벌써 제인의 발소리가
들리는군요. 문이 기억하는 소리겠지요. 제인은 언제나 저런식으로 퉁탕거리며 집안을 걸어
다녔답니다. 우편함을 보고 오는 길 일거에요. 우체부가 다녀갈 시간이 되었으니까요. 요새는 편지도
별로 오지 않지만 기대를 품고 편지통을 여는건 우리
자매의 오랜 습관이었답니다. 매혹적인 팬레터를
기대하는 은퇴한 여배우들의 버릇이라면 웃으시겠지요?(벨을 누르며)무슨 편지가 왔는지 제인을 불러
봐야겠어요.
조명이 변하며 블랜취 주변이 어두워진다. 무대 전면의 현관이 밝아지며 벨소리가 들린다. 밖에서
문을 여는 기척이 들린다.문이 열리며 양손에 편지들을 든 제인이 흩어진 옷차림에 미련하게 살찐
모습으로 편지겉봉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들어온다. 벨소리에 짜증이 난듯 이층을 바라보다가 화내며
무시한다. 다시 벨소리가 들리다. 제인 못마땅한듯 이층을 흘겨본다.크고 작은 그리고 화려한
꽃봉투들을 읽어보고 골라내어 현관옆 부엌 입구의 쓰레기통에 쑤셔 넣는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제인이 문을 열자
꽃다발이 비죽이 보인다.
[제인] (퉁명스럽게) 그래요.미스 헛슨댁 맞아요. 네,
여배우 하던 미스 헛슨---그래요,베비 제인
헛슨하고 블랜취 헛슨이 사는데---팬이라구요? 만나고 싶어?(잠시 망서리며)누구?어느 미스 헛슨을
만나고 싶어?(기대를 품고 듣다가 실망해서 화나며)그
시답잖은 테레비젼의 옛날 영화 시리즈?그래
그걸 보다가 좋아하던 블랜취가 옆집에 사는걸 알았다구요?(상대를 아래 위로 훑어보며)옆집에 새로
이사를 왔으면 왔지 날 보구 어쩌라는 거지요?안돼요.블랜취는 아무도 만나지 않으니까---(문 닫으려
한다)아, 왜이래?(불쑥 내밀어지는 꽃을 받으며 귀찮은듯)귀찮게 구네 정말.
꽃다발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소리나게 문닫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이층 블랜취의 방에 불이
켜진다. 블랜취 거울 앞에서 처음과 달라진 의상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한참 보다가 시계를 보고
휠체어를 타고 창가로 가서 커튼을 들치고 창밖을 내다본다. 궁금한듯 갸웃하고 돌아와서 다시 화면을
본다. 제인 은쟁반을 무거운듯 들고 부엌에서 나와 이층으로 올라간다. 블랜취의 방문을 열고 화면에
몰두해 있는 블랜취를 야유하듯 바라본다. 못마땅한듯
들어와서 테이블에 쾅 소리를 내며 내려놓는다.
[블랜취] (화면을 다시 보며)너두 저 영화 생각나지?우리 저 영화 로케 갔을때 같이 갔었던 것
기억하니?
[제인] (대꾸없이 그릇들을 내려놓는다)
[블랜취] 스므살때 였을거야. 밤마다 우리를 위한 파티가 열리고 참 화려했었어. 주지사집에서
열렸던 그 굉장
한 파티 생각나?
제인 말없이 거칠게 상을 차린다.
[블랜취] (생각에 빠지며_)그러니까---그게 일본이
항복한 날이었을거야. 꽃불을 올리고 하루종일
축하행진을 하고 사방에 술이 넘쳐났었어. 그날밤 그
축하파티에서 로버트 테일러가 정원에서 나한테
프로포즈하는데 네가 따라 나와서 그사람 바지에 술을
쏟았었지.(웃는다)그 사람이 그때 얼마나
화냈었는지 생각나?
[제인] (거칠게 TV를 끈다)
[블랜취] (상냥하게)끄지마. 재미있지 않아?내 영화를
순서대로 방송하는 중이야. 옛날 영화를 다
보여줄려나봐 누구 생각인지 멋있지 않니?굉장해.
제인 약과 물컵을 블랜취에게 준다 블랜취 받아 마신다.
[제인] (퉁명스럽게)뭐가 굉장해?그 유명한 베비제인도 안하는데?
[블랜취] (약을 받아먹고 오만하게)그건 정식무대가
아니지 않니?단순한 클럽쇼야.한순간 인기는
끌었었지만 작품성이 없었어. 사람들을 오래오래 감동시키는건 잘 만들어진 멜로드라마란다. 아마 너나
그무대 기억하는 사람---별로 없을거야.
[제인] (화내며)날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어?난 아홉살때 벌써 스타였어. 신문마다 내 사진이 나고
매일 수백통의 편지가 오고 극장이 터지도록 사람들이
밀려오곤 했었어.(점점 더 화나며 목소리가
커진다)나를 본떠 만든 제인인형이 백만개나 팔리고
내가 입었던 드레스도 대유행이었어. 돈은 또
얼마나 많이 벌었는데?이 집두 그때 그 돈으로 산것
아냐?(말하며 가구들은 두드린다)
[블랜취] (당황하며)왜 이러니?왜 발로차고 그래?미친 사람처럼?
[제인] 우리가 처음 탄
롤스로이스도 그 돈으로 샀었어. 언니를 배우학원에 보낸 돈도 다 내가
번돈이었어. 내가 언니보다 십년이나 먼저 데뷰한 선배였다구---언니가 데뷰했을때 언니를 소개한 말이
뭐였는데 그래?
[블랜취] (한숨쉬며)그만해라. 또 시작이구나. 내가 말을 잘못했지.
[제인] 베티 그레이블을 능가하는 최고의 핀엎걸.인기스타 베비제인 헛슨의 언니인 신인배우 블랜취
헛슨!마침내 동생의 시녀역을 맡아 은막에 데뷰하다.
[블랜취] (스픈을 들고 냄새 맡는다)넌 설거지도 제대로 못 하니?아이 냄새
[제인] (중얼거린다)태평양지역의 지아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핀엎걸 베비 제인헛슨의
언니가 아니라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을거야.(소리지른다) 알기나 해?
[블랜취] (짜증스럽게 접시를 밀어내며)난 이런거 먹기 싫으니까 다시 만들어 와.
[제인] (코웃음친다) 하 또 음식투정이야?
[블랜취] 그런데 참 누가 왔었니?벨소리가 나는 것 같던데?(답을 기다리다가 단념하며)오늘두 편지
온게 없어?이상하지?편지 오지 않은지 꽤 오래 됐잖아?리바이벌 시작하면서 팬레터가 꽤 오는것
같더니---
[제인] (두손으로 허리를 짚은채 말없이 노려본다)
[블랜취] 아까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 다녀가는것 같던데 무슨 일이야?그사람 나한테 전화를
했었어. 내 데뷰작품도 기억하더라. 옛날부터 팬이었다면서 내가 옆집에 사는걸 알고 너무 좋았대.
만나러 오겠다고 했는데---별말 없었어?
[제인] (흉내내어 야유하듯)별말 없었어?흥(다시 사납게)왜 못되게 굴어?주는데로 척척 받아먹지
못하고---내가 하녀야?내가 종이야?엉?
[블랜취] (냉정하게)내가 이모양 이꼴이 된기 다 누구
때문인데 그래?아빠 엄마 돌아가실때 목사님
앞에서 네 입으로 맹세했던 말을
벌써 잊었어?(흉내내며)걱정 마세요. 아빠 약속할게요. 죽을 때까지
언니 옆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제 잘못으로 언니를 저렇게 만들었으니까요. 네 하느님 앞에 맹세하고
언니 돌보는 일 남한테 시키지 않을게요.엄마 안심하세요(냉혹한 어조로 심문하듯)잊었어?잊어버렸어?
[제인] (풀죽으며)난 아빠 하고 한 약속은 꼭 지켰었어. 엄마하고 한 약속도 어긴 일 없어. 내가
언제 거짓말 하는 것 봤어?
[블랜취] (냉정하게)하느님하고 엄마 아빠가 언제나
널 지켜볼거야.
[제인] (풀죽어서 노려보다가 갑자기 휠체어를 빙글
돌려 버린다)거기 쟁반에 청구서들 보고 수표에
싸인이나 해줘.
[블랜취] 아이 왜 이러니?어지럽게---(애써 휠체어를
세우고 청구서들을 읽으며)무슨돈을 이렇게
많이 썼어?어머 너 술값이 또 늘었구나. 화장품은 지난번에 샀는데 또 샀어?이건 또 뭐니?무슨
드레스를 또 샀어?우린 이렇게 낭비하면 안돼. 내 신탁예금 이자가 얼만지 알지 않아?그렇지 않아두
변호사 딕이 이젠 이집을 팔아야하지 않겠냐구 하더라.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든대요. 우리한텐 힘겨운
부담이야. 팔아버릴까봐.
[제인] 안돼!이집은 안 팔아. 내가 산 내집이니까 내
맘대로 할거야. 안 팔아!
[블랜취] (냉혹하게)이집이 돼 네집이야?사건직후에
네가 나한테 양도했다는것 잊어버렸니?죄책감
때문에 네 모든 소유물을 나한테 넘긴다고 했잖아?증인도 있고 서류도 있어.왜 잊어버린척
해?알잖니?넌 무일푼이야.
[제인] (노려보다가 다시
휠체어를 빙글 돌린다)
[블랜취] (영수증을 보며)어머 삼백불---이건 무슨옷
값이야?베비 제인 드레스?(잔인하게 깔깔대며
웃는다)너 미쳤구나?그건 애들옷이야. 너같은 늙은 뚱보가 그런옷을 어떻게 입어?
[제인] (참으며) 그것 입었을때 내가 얼마나 앙징맞고
예뻤는지 사람들 한테 다시 보여줄거야. 나두
새옷 한번 입고 싶어.
[블랜취] (웃음을 겨우 참으며) 안돼. 이건 너무 비싸다. 얘 다시 한번 생각해 봐.(다시 눈물을
닦으며 웃는다)그리고 그걸 입고 만날 사람두 없지 않니?
[제인] (궁지에 몰리며)왜 웃고 야단이야?
[블랜취] 얘 제인,거울 한번 봐. 그옷을 입으면 네 꼴이 어떨지---(다시 웃는다)
[제인] (당황해서 한동안 말없이 노려보다가 소리나게
문 닫고 나간다)
블랜취 한참 웃다가 진정하고 식사를 하려고 은쟁반의
뚜껑을 연다. 물을 한모금 마시고 빵을
집어든다. 먹으려다가 다시 본다.
[블랜취] (신경질내며 외친다)제인 쉰빵을 주면 어떻게 해?곰팡이 난걸 어떻게 먹어?날 굶겨 죽이고
싶니?
제인 층계참에서 듣고 서있다가 노래하듯 웃으면서 층계를 내려온다. 바바라 스티트 현관으로
들어와서 옷을 벗어 걸다가 부엌으로 들어가는 제인에게 인사한다.
[바바라] 안녕하세요?
제인 부엌에서 술병과 술잔을 들고 나와서 대꾸없이
거실로 들어간다. 스티트 못마땅한듯 돌아보고
제인이 나간뒤 쓰레기통을 들여다 본다. 쓰레기통에서
편지봉투와 종이들을 집어들어 본다.화
난듯
현관문을 보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블랜취의 방으로
들어서며 컴컴한 구석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
블랜취를 본다.
[블랜취] 어서와요. 바바라.
[바바라] (들고있던 봉투와 종이들을 테이블위에 놓고
커튼을 걷으며)왜 이렇게 어둡게 하고
계세요?블랜취.어두운건 몸에 좋지 않아요. 사람은 환한데서 살게 되어있으니까---(식탁을 보며)또
식사를 하다 마셨네.입맛이 없어도 먹으려고 노력해야지 그러다가 굶어죽고 싶으세요?(이상한듯 빵을
집어들고 냄새를 맡는다.)
[블랜취] (TV를 끄고 테이블로 오며)편지가 왜 이렇게
찢어져 있지?다섯통이나 되는데---찢어져서
읽을수가 없네.아까워라 팬레터야.
[바바라] 쓰레기통 한테 물어보세요.지난주에도 쓰레기통에 그날 온 편지뭉치가 들어있길래 이상해서
물어봤더니 제인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런데 이 빵이 왜 이래요?왜 썩은빵이 여기 와 있는지우
빵한테 물어봐야겠네.사람이 왜 그렇게 사나울까요?점점 더 이상하게 굴어요.(구겨진 쪽지를 주며) 그
종이에 수십번 씌어 있는게 뭐지요?블랜취 당신 싸인
아니예요?제인이 당신글씨 흉내내어 연습한
거지요?
블랜취가 쪽지를 읽는 동안 바바라 방의 이곳저곳을
치우고 정리한다. 그동안 아랫층 거실의
한부분이 밝아진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술마시는 제인 술 마시다가 시름없이 건반을 눌러본다.
[바바라] 당신이 수표에 싸인을 해주지 않으면 자기가
위조해서 마음대로 쓰려고 하는짓
이겠지요.은행에서는 언제나 당신 대신 제인이 갔었으니까 의심없이 내줄테구요. 동생이라구
감싸시지만 말구 냉정하게 생각해 보세요.아무래두 제인이 먼저 다니던 그 정신과 선생님하고 다시
의논해 보셔야 될것 같아요.
[블랜취] 닥터 쉴버?
제인 피아노 앞에서 일어나 거실 전면의 벽에 걸린 거울을 본다. 두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바바라] 그때 술취해서 사흘동안 내내 울기만 했을때
닥터 쉴버가 그랬잖아요?술이 더 늘고 증세가
심해지면 본격적인 심리치료를 받아야한다구요.저러다가 은행에서 의심해서 들키기라도 하면 그냥
잡혀갈 거예요.
[블랜취] 설마---정말 저지르지는 않을거야. 그냥 해보는 거
겠지.
[바바라] 부엌에 위스키가 또 얼마나 많이 와 있는지
아세요?온 집안에 빈 술병이 널려있어요.
사람이 점점 예의를 잃고 사납고 황폐해져 가는게 보이는걸요. 전 걱정이 되요.저러다가 당신 한테
무슨짓을 할지 모르지 않아요?지난주에도 당신이 키우던 고양이에게 끓는 물을 끼얹어서 죽이지
않았어요?정상이 아니에요. 그래 본정신을 가진 사람이 저걸 먹을거라구 줘요?
[블랜취] (힘없이 종이를 보며)기분이 너무 자주 바뀌는게 좀 걱정스럽기는 해.내 싸인을 본뜰려고
이렇게 연습을 많이 했네.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바바라] (침대를 정리하며)요새 텔레비전에서 당신이
젊었을때 출연한 영화를 계속 방송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았을 거예요.그것 때문에 얼마나 술을 많이
마시고 화를 내는지 아세요?
[블랜취] 이것저것 속상해서 그런거지 뭐. 옛날 생각하면 나도 그런걸.
[바바라] 당신은 이해심이 깊군요. 그걸 보고 속상할
사람은 당신이지 제인이 아니에요. 제인은 그
사고로 잃은것두 없어요. 어차피 사양길에 접어 들었을테니까요.
[블랜취] 그렇지 않아, 바바라.내 인생이 그런것 처럼
제인의 인생도 그 사건 때문에 끝났어. 우린
같은 비극을 겪었어. 손등과 손바닥처럼 우린 같은 운명에 묶여 있지.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면 가엾고
슬프지만 우리가 각각 혼자서 이 운명을 겪어야했다면---우린 견디지 못했을거야.
제인 거울을 보다가 갑자기 징그러운듯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운다. 울면서 뒷걸음질 쳐서 피아노
앞으로 온다.
[바바라] 신문에 다 나와있
던걸요. 제인이 아역스타로 어려서는 각광을 받았었지만 당신이 뒤늦게
데뷰한 다음에는 당신의 미모와 연기력을 따라가지 못했다구요.
아역배우 출신들이 본래 좀 그렇지 않아요?반짝 하다
말지요. 당신처럼 고상한 매력은 없었대요.
로버트 테일러,클라크 게이블,타이론 파워 같은 사람들이 모두 당신만 좋아해서 제인은 그이들이 오는
파티에선 늘 당신한테 못되게 굴었다던데요.
[블랜취] (생각에 잠기며)동정심에 빠지면 사람들은
공평하지가 않아요 바바라. 스타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지. 필요이상으로 사랑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경멸하거든. 빌딩 청소부 보다 더 위험한 직업이
바로 배우라는거 알아?
바바라 빗과 거울을 가져와서 블랜취의 머리를 빗겨
준다. 블랜취 손거울을 들여다본다.
[바바라] 매력은 결국 인품에서 오는거에요. 제인은
그때부터 벌써 알콜중독 증세를
보였었다던데요?괜찮았을리가 없어요. 여전한 망나니
였겠지요. 당신의 인기가 점점 올라가니까 질투심
때문에 미치려고 했었대요. 당신한테는 공주님 같은
역만 돌아오는데 제인은 뻣뻣하고 연기력이 없어서
단역밖에 차례가 가지 않았다구요.
[블랜취] 제인은 그때 정말 화려하고 예뻤어. 오히려
내가 질투를 했었지. (생각하며)난 정말
괴로웠었어. 예쁨,매력,열정---어떤점에서도 그앨 따라갈수 없었거든. 예쁜 동생을 둔 평범한 언니의
입장이 어떤건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거야. 십대에 난 정말 지옥을 살았었어.
[바바라] 그 영화감독의 회상기에 다 나와요. 당신을
따라다니며 얼마나 주정을
하고 사고를
일으키는지 정말 당신 주변 사람들의 골치거리였다구요. 모두 그렇게 말했었대요. 당신한테서 제인을
떼어놓아야 한다구. 제인 때문에 언젠가는 블랜취 당신이 큰 망신을 당할거라구요. 결국 망신보다 더
한걸 당했지요. 술취해서 차를 몰다가 당신을 이 모양을 만들지 않았어요?일종의 살인이예요. 천벌
받을 일이지요.
[블랜취] (생각에서 빠져서 혼자 괴로워하며)그만해요,바바라. 알려진 사실이 다 진실인건 아냐. 난
가끔 내가 아는 진실 때문에 숨이 막힐것 같아.
[바바라] (돌아보며) 그땐 경찰에서는 제인이 당신을
해치려고 일부러 사고를 낸게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었다던데요?사건현장이 이상했다구요.
옆집에 이사온 부인두 그러던걸요. 그이는
젊어서부터 당신팬이서서 그 사건을 환히 다 알고 있더라구요. 그날밤 파티에서 제인이 너무 주정을
해서 밤늦게 돌아올때,운전은 당신이 했었는데 제인이
무슨짓을 했는지 쇠창살 문을 들이 받아서
쇠창살이 당신의 척추를 찔러서 이렇게 되었다구요.맞지요?경찰조사에서도 본인이 울면서
말했다던걸요. 다 자기책임이고,자기 잘못이라구요(돌아보며)아마 당신한테 덤벼들어서 당신이
다치도록 핸들을 꺾었을 거예요. 쇠창살이 당신을 찔러 죽여버리도록---
[블랜취] (나무래며 괴롭게)그만해요,바바라. 언젠가는 나도 진실을 밝힐거야.
[바바라]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때의 상황히 환하게 떠올르는걸요. 살인미수예요. 아무리 질투가
난다해도 그렇지 어떻게 자매간에 살의를 품을수가 있을까요?남만도 못하지 않아요?
[블랜취] 그앤 받을 벌을 받았어. 어떻게 보면 그애도
운명의 희생자인 셈이예요.
[바바라] 그렇니까 그 못된 성미에 이렇게 당신을 돌보면서 참고 살게 됐겠지만, 저질른 다음에
후회하는게 소용있나요?그리구 그런짓을 또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요?어쩌면 해묵은 죄의식 떠문에
미치는 중일지도 몰라요. 당신은 관대해서 별말 안하지만 당신을 볼때마다 죄책감을 느끼게 되겠지요.
멀쩡한 사람을 폐인을 만들어 버렸으니까요. 죄의식은
무서운 거예요. 일종의 고문일테니까요.
[블랜취] 그애가 정말 그래서 이상해지는것 같아?이십년도 지난 이제와서?
[바바라] 오랜 세월동안 시달려 왔을테니까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도 있어요.제발
믿으세요. 제인은 확실히 이상해요. 그건 그렇고---
블랜취의 의자를 밀어서 침대에 가까이 댄다. 부축해서 눕히며
[바바라] 자,이젠 침대에 누우세요.낮잠시간이예요.
편안하게 잘 주무시도록 우리 아가씨를
도와드려야지. 당신은 정말 부드럽고 가벼워요. 그래서 얼마나 애처러운지 모르겠어. 당신이
편치않을까봐 난 정말 늘 걱정이 되요. 자이제 불을 끄고 다리를 주물러 드릴테니까 주무세요.
주무실때까지 옆에 있을테니까요.
침대위에 누은 블랜취를 바라보며 불을 끈다. 어두워진다. 앉아 있는 바바라의 그림자가 보인다.
[블랜취] (일어나 앉으며 속삭인다) 제인이 정말 그래서 이상해지는 걸까?
[바바라] (밀어서 눕히며 속삭인다)쉿!그만 주무세요.
[블랜취] 그렇다면---난 정말 제인에게 몹쓸짓을 한거야.그애한테
사실을 말해줘야 해. 더 이상
괴루워하지 않도록---
[바바라] 당신은 피해자예요.그몸으루 무슨 몹쓸짓을
할 힘이나 있어요?
[블랜취] 그렇지 않아. 세상일은 겉보기와는 다를수도
있는거야,바바라.
[바바라] 쉿 자 인제 그만 입 다물고 주무세요.
피아노 앞에 앉아서 생각에 잠겨있던 제인 다시 부엌에서 술병을 들고 나온다. 전화 벨이 울린다.
제인 지나려다가 귀찮은 듯 받는다. 이미 조금 취한듯이 보인다.
[제인] (듣다가)그런데요 맞대두---미스 헛슨 집 맞아요. 누구?제인 헛슨?(갑자기 태도가 바뀌어
상냥해지다)
나예요. 내가 바로 그 베비 제인 허슨이지요. 신문광고를 봤다구요?네,내가 냈어요.성함이
누구시라구요?에드윈---네에 에드윈 플래그씨---피아노는 칠줄 아세요? 난 편곡자가 필요해요.옛날의
그 유명했던 작품들을 리바이벌 할 예정이니까요. 그건 일종의 고전이예요. 제목이요? 아실거에요.
웽에버 헤픈 투 베비제인---기억나지요? 워낙 대단한
무대였으니까요. 세시쯤 오시겠어요?면접을
해야지요. 그럼요. 주소는 아시지요? 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소녀처럼 팔짝 뛰고 베비제인 인형을 집어들고 큰소리로 웃는다. 거울 앞에서
잠시 환상에 빠져있다가 어깨에 숄을 두르고 급히 나간다. 바바라 이층에서 내려온다. 옷을 입으며
사방을 둘러보다가 혼자 말한다.
[바바라] 블랜취, 난 정말 걱정이 되요. 제인을 믿을수가 없는걸요. 범죄두 습관이 된다니까요. 난
우리 아버지를 봐서 아는데요. 술주정꾼은 믿을수가
없어요. 일단 사람이 술에 먹혀버리면 그땐 이미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리고---마음에 상처나 그늘이
있는 사람도 믿을수가 없어요. 상처난 사과가 쉽게
썩는것처럼 상처난 마음도 쉽게 변질되니까요. 그래서
또 무슨짓을 저지를지 알수있나요?
바바라 나가면서 어두워진다. 어둠속에서 한동안 음악이 들린다. 베비제인 드레스를 입고 어린이처럼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맨 제인이 꽃병을 들고 들어온다. 꽃병을 방한쪽의 테이블에 놓고 벽에 걸린
베비제인 뮤지컬 포스터를 다시 반듯하게 매만진다.
벨이 울린다. 제인 흥분해서 머리와 드레스를
매만지고 나간다. 이층에서를 블랜취가 책상 앞에 앉아서 편지를 쓰고 있다가 아랫층의 기척에 귀를
기울인다. 제인이 문을 열자 에드윈 플래그가 어색한
태도로 인사한다.
[제인] (과장된 교태로) 에드윈 플래그씨?
[에드윈] (내성적인 태도로) 미스 제인 헛슨 안녕하십니까?
[제인] (안내하며) 그럼요.들어오세요. 이쪽으로요. 정확하게 세시에 오셨군요. 집을 못 찾으시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어요. 들어 오세요. 어서요.
제인이 비키는 몸짓과 에드윈이 들어오려는 동작이 서로 박자가 맞지 않아서 부딪친다. 제인
사과하는 듯 교태어린 몸짓을 해보인다.
[에드윈] (어리둥절해서 제인의 교태를 보며)일찍 온걸요. 시간이 될때까지 문앞에서 기다렸지요.
[제인] 그러셨어요? 딱해라,그럼 목이 마르시겠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에드윈] (쭈볏거리며 돌아보며)좋은 집이군요
. 멋있어요. 저렇게 진짜 횟벽에 호두나무 벽장식을
한건 30년대에 유행한 건축양식이지요?정말 고풍스럽군요.
[제인] 집에 대해서 잘아시네.맞아요. 내가 한참 인기있을때 고쳐 지은집이랍니다. 그게 그렇니까
삼십년댄가?좋은 시절이었어요. 뭐든지 뜻대로 되던
황금기였지.(돌아서며) 그런데 왜 그렇게 일찍
오셨어요?
[에드윈] 숙녀를 기다리게 하면 안된다고 엄마가 아침부터 독촉을 하셔서요.(말하면서 벽에 걸린
포스터를 보고 감탄한다.)좋은데요.근사해요.
[제인] (자랑스럽게)그거예요.그게 그 유명한 쇼 포스터예요. 기억나시지요? 뉴욕에서 반년이나
공연했어요.성공적인 무대였어요. 이게 바로 베비제인이 아빠에게 편지를 띄우는 장면을 그린거예요.
내가 여기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답니다. 관객이 모두
숨을 죽이는 장면이지요 기억나시지요?
블랜취 벨을 누른다. 벨소리가 들린다.
[에드윈] (벨소리에 사방을 둘러보며) 아뇨.전 이제 겨우 설흔다섯 인걸요. 우리 엄마가 보셨다구
했지요. 우리 엄마는 영화광이에요. 그래서 당신 무대도 다 봤고, 미스 헛슨---그렇니까 미스 블랜취
헛슨이 나온 영화는 다 봤다고 하시던걸요. 저도 그분
영화는 몇편 봤어요. 여기 같이 사시나요?
[제인] (이층을 향해 화내며 거실문을 소리나게 닫는다.) 아니 여기 살지 않아요.(실망을 감추며) 내
무대 얘기는 못들었나보지?그럼 편곡은 할줄 아시나?
[에드윈] 네 그건---그건 아주 잘 한다고들 해요.
[제인] (아니꼬운듯) 누가
그래?
[에드윈] 엄마가요.
[제인] 엄마가 뭘 하시는데?
블랜취 층계참까지 휠체어를 밀고 나와서 내려다보다가 말한다.
[블랜취] 제인 뭐하니? 좀 올라와 봐. 할말이 있어.중요한 이야기야.
제인 소리나게 문을 열었다가 닫는다. 에드윈 어리둥절해서 쳐다본다.
[에드윈] 누가 오셨나본데요?
[제인] (애교있게 웃으면서) 아무도 아니예요. 참 그런데 엄마가 뭘하신다구?
[에드윈] (애교에 당황하며) 우리 엄마는 음악가에요.
시향 연주자였지요. 아빠는 유명한 지휘자
였다는군요. 우리 엄마가 나를 갖으니까 버리고 가버렸지만 훌륭한 음악가였대요. 그래서 엄마가
나한테 음악을 가르켰지요. 피아노도 가르키고 작곡법도 가르켰어요. 아빠한테 지면 안된다구요. 난
그래서 작곡은 좀 잘하지요. 상두 몇번이나 받은걸요.
[제인] 그런데 왜 그나이까지 취직을 못하고 어머니하고 살아?
[에드윈] 나쁜 여자들이 없는 안전하고 좋은 직장을
골르느라구요. 엄마가 말씀하시기를 세상은
좋은여자 들과 나쁜여자들로 가득차 있다는군요. 남자들이 신세를 망치는건 대개 나쁜여자들을 만나기
떠문이니까 조심해야 한다구요. 방송국이나 극장 같은데는 나쁜여자 투성이라더군요. 막 유혹을
한다구요. 그런데는 여러번 취직할 뻔 했어요.
[제인] 어떤게 좋은여자고 어떤기 나쁜 여잔데?
[에드윈] 열여덟살 부터 설흔살 까지는 나쁘고,쉰살
이상은 괜찮은 여자지요. 엄마는 그래서
여기라면 안전할
것 같다고 가 보라고 하시더군요. 엄마는 겁이 너무 많으시지요. 사실 마흔 넘은
여자야 뭐 무섭겠어요?아무것도 아니지요. 미스베비
제인은 틀림없이 좋은분일거라고 말씀하셨어요.
블랜취 층계참에서 내려다보다가 단념하고 방으로 돌아간다.
[제인] (떨떠름한 얼굴로 보고 있다가) 거기 악보가 있으니까 한번 쳐봐요.
[에드윈] (피아노를 친다) 이 노래인가요?
제인 끄덕이며 듣는다. 듣다가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서 노래를 한다. 음조가 맞지않는 노래에 에드윈
당황하는데 제인은 차츰 취해서 소리를 높여간다. 의자에 앉혀 놓있던 커다란 인형을 안고 와서
에드윈의 피아노에 맞추어서 노래하며 춤을 춘다. 에드윈 피아노를 치다 말고 멍하니 바라본다. 블랜취
다시 벨을 누른다. 이층에서 연속적으로 벨소리가 들리자 에드윈 놀라서 돌아본다. 벨소기가 계속
신경질적으로 울린다. 제인 이층을 한번 쳐다보고 화를 내며 인형을 내려놓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블랜취 새장을 보고 있다가 돌아본다. 제인 화내며 블랜취를 내려다본다. 에드윈 차츰 음악에 빠져들며
계속 피아노를 친다.
[블랜취] (진지하게)너한테 할말이 있어. 아침부터 불렀는데 왜 안올라 오니?
[제인] (말없이 노려본다)
[블랜취] 밤새도록 생각했는데---이젠 사실을 말해야할 때가 된것 같아. 오래 전부터 이야기하려고
했었는데---아 제인 그렇게 버티고 서있으니까 말을
못하겠어. 이쪽에 와서 좀 앉아 봐. 바바라는 네가
나한테---그러니까 나 때문에---부담을 느껴서 마음이 이상해진다고 하는
데---그러지마.제인,모든게 다
네 잘못 떠문만은 아냐. 내가 말하지 않았던게 있어.
언젠가는 말하려고 했는데---
[제인] (아랫층을 향해서) 잠깐 가다리세요,미스터 플래그.
[블랜취] 누가 왔니?손님이 오셨어?이층으로 오시라고 하지 그래?
[제인] (대답없이 노려보다가 소리나게 문을 닫는다)
[블랜취] (닫히는 문을 열며)내 얘기 듣고 가. 아 제인
내 말은--- 그러니까 그 사고는---제인!
[제인] (다시 문을 열고 노려보며 낮게 위협하듯) 입
다물어 응?또 옛날 얘기 꺼내면 가만
안둘테니까. 입다물어 응?
(노려보며 다시 문을 닫는다)
[블랜취] (단념하고 문을 막으며) 그럼 물이라도 좀
줘. 오늘은 왜 아침밥도 안주니?허기가 져서
기운을 차릴수가 없어. (새장을 흔들며) 쯧쯧 가엾어라. 너도 기운이 없구나. 얘랑 내가 꼬박 이틀을
굶었다는 걸 알고나 있니?
[제인] (억지로 문을 닫으려 한다)
[블랜취] (문을 닫지 못하게 애쓰며) 아랫층에 누가 왔니? (상냥하게)나도 어울리면 안될까?
너보다는 내가 훨씬 손님접대를 잘 하지 않니? 화제꺼리도 많고---
[제인] (낮은 소리로 화낸다) 또 끼어들고 싶은거지?
(한마디씩 말하며 다가가서 블랜취를 밀어
붙인다.) 또 끼어 들어서 내것을 가로채고 싶은거지?
내 배역, 내 친구, 내 애인들을 가로챘던
옛날처럼 또 나서서 날 방해하고 싶은거지? 안돼, 이젠 안돼! 다시는 그런짓 못하게 하겠어.
제인 화내며 벽에 붙은 베을 잡아 묶어 버리고 대꾸없이 나가서 방문을 닫는다.
[블랜취] (급히 따라나가며) 그사람 정말은 내 손님 아니니? 날 찾아온것 아냐?
제인 화내며 되돌아와서 블랜취를 방으로 밀어넣는다.
밀어넣고 침대위의 담요와 홋청을 블랜취에게
뒤집어 씌운다.
[블랜취] (화내며) 그럼 새가 마실 물이라도 좀 줘. 넌
새가 가엾지두 않니?
제인 다시 들어와서 휠체어를 벽에 처박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해놓고 새장을 들고 나가며 불을 끄고
방문을 잠근다. 새장을 보다가 이상하게 웃으면서 내려간다.
[블랜취] (어둠속에서 외친다) 너 정말 왜 이렇니?왜
이상하게 굴어?그러지말고 내말좀 들어봐.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블래누치 가까스로 담요를 벗고 애써 휄체어를 돌려서
잠긴 방문을 밀어보고 두드린다. 열리지
않으니까 돌아와서 애써 커튼을 젖히려 한다. 커튼의
윗부분이 조금 젖혀져서 방이 밝아진다. 블랜취
창밖을 내다보려 애쓰다가 단념하고 전화를 하려한다.
제인 문 앞에서 엿듣다가 다시 들어와서
전화코드를 뽑아놓고 블랜취의 뺨을 떠린다.
[블랜취] (놀라며) 너 정말 화났구나. 그러지마. 내 얘기 좀 들어봐. 전부터 그 얘길 하려고 했었어.
그 사고 나던날, 사실은 내가---
[제인] (블랜취의 입을 막으며 이를 악물고 낮게 말한다) 또 그놈의 사고얘기야? 잘못했다고
그랬지?미안하다고 그랬지?평생 시중을 들겠다고 그랬지?더 이상 어떻게 하란 말야?
이제 그 얘
기 한마디만 더하면 죽여버리겠어.알겠어? 언닐 죽여버리고 나도 죽어버릴거야.
알겠어?알겠어? 알겠냐구?
(말하면서 블랜취의 몸을 앞뒤로 흔든다)
놀라서 말도 못하고 바라보는 블랜취에게 다시 담요를
씌우고 나간다. 제인 황급히 층계를 내려와서
수화기를 내려놓고 에드윈이 현관에 서 있는것을 본다. 블랜취 애써 담요를 젖히고 어쩔줄을 모르다가
전화코드를 다시 이어보려 애쓴다. 제인 새장을 부엌으로 던지듯이 밀어 놓고 돌아선다. 블랜취는
전화가 불통인 것을 알고 어쩔줄을 모르다가 겁먹은
얼굴로 창을 열려고 애쓰다가 편지 쓸 준비를
한다.
[제인] (서둘러서 애교있게) 좋아요. 댁을 채용하기로
하지요. 우리는 근사한 일을 같이 하게
될거예요.옛날의 명작 뮤지컬을 무대위에 리바이벌 하는 거지요. 왕년의 뮤지컬 스타 베비 제인 헛슨과
신예 작곡가 에드윈 플래그가 함께 하는 새로운 무대---편곡을 맡아줘요,플래그씨. 그래서 우리 함께
멋있는 무대를 만들어요. 자, 들어와서 다시 한번 피아노를 쳐보세요. 할 얘기가 있어요.
다시 거실로 에드윈을 끌고 들어온다. 억지로 피아노를 치게 한다. 제인 방을 빙글빙글 돌며 어린
목소리를 흉내내어 노래한다. 에드윈 피아노치며 난감한듯 바라본다. 이층에서는 블랜취가 종이를
꺼내어서 편지를 쓰며 문장을 읽는다.
[블랜취] 누구든지 이 편지를 줏으시는 분은 전화
0343-1113 닥터 쉴버에게 전화를 걸어 주십시오.
미스 제인 헛슨에게 심각한 장애가 생긴것 같다고. 급히 좀 와주십사고 전해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방안을 돌아보며) 옆집에 새로 이사왔다는 이가 장미
손질을 하러 나올 때가 되었는데---잘 던지면
주어 볼수 있을거야.
다 쓴 편지를 뭉쳐서 들고 창가로 가서 애쓰다가 겨냥해서 던진다. 그리고 안타깝게 내다본다.
[제인] (도취해서 애교있게) 나 어때요?
[에드윈] (피아노 앞에서 망설이다가 조금씩 동정하며) 좋은데요.
[제인] 예뻐요?(얼굴을 만지며) 한 사흘 다이어트 좀
하고 분장을 잘 하면 괜찮아 보일거야? 어떻게
생각해?괜찮지? 그렇다고 말해줘요 .어서---
[에드윈] (당황하며) 글쏀요 뭐---보기에 따라서는 좋을수도 있겠네요.
[제인] (허리를 짚으며) 어때 내 허리 몇인치인것 같아요? 알아 맞춰봐. 이만하면 아직 괜찮지 않아?
봐, 몇인치나 되는것 같아?
[에드윈] 그---글쎄요. 전 아직 여자하고 그렇게 가까이 해본 일이 없어서요.
[제인] 젊었을떠는 십칠인치 밖에 안돼서 남자들 손아귀에 쑥 들어갔었어. 모두가 감탄했었지.
이리와서 몇뼘이나 되는지 한번 재봐요. 어서---
[에드윈] (당황하며 무안하게 웃는다) 아유,미스 제인
헛슨---그러지 마세요.
[제인] (풀 죽으며) 거울을 보고 있으면 가끔 이게 무슨 악몽이지 하는 생각이 든답니다. 내가
어떻게 저 모양이 됐을까 믿을수가 없어요.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절망적으로) 솔직히 말해봐요. 꼭
마녀처럼 보이지?속으로 그렇게 생각할거야. 우리 언니처럼 날 가망없는 뚱보라고 생각할거야. 정말
싫어 죽겠어. 어쩌다가 이렇게 나이를 먹어버렸지? 난
정말 뚱보마녀야.
[에드윈] (동정을 느끼며 열심히) 아뇨,그렇지 않아요.
확실히 연세는 좀 드셨지만---이건 제
생각인데요. 여자는 역시 볼륨이 좀 있는편이 좋을것
같아요. (음흉하게 웃으며) 그래야 좀
그런---맛이 있지요.
그리고,당신은 상당히 예쁜눈을 갖고 있고---이렇게
머리를 좀 꾸미시면 아주 다르게
보일거예요.우리 엄마는 언제나 그렇게 말씀하시지요.여자는 꾸미기에 따라서는 이십년은 줄일수
있대요.
[제인] (기운없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에드윈] 그럼요. 머리 모양을 바꾸고 옷을 좀 환한 색으로 입어보세요. 훨씬 좋아보이실
거예요.당신은 좀 로맨틱한 타입이니까요.
[제인] 놀리지 마세요. 이렇게 늙었는데 뭐가 로맨틱해?
[에드윈] (무안해 하며) 여자에 대해서는 그래도 제가
더 잘알거에요. 당신은 무언가 향기가 있는분
같아요. 뭐랄까--- 시든 장미향기 같은 그런 묘한 분위기를 갖고 있어요. 아니 늦가을 장미향기 같다고
할까요?
[제인] (조금씩 고무되며) 정말 그렇게 생각해? (거울을 보며) 허긴 머리를 이렇게 올리면
열살---아니 스므살까지는 속일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분장을 잘하고 조명을 잘 쓰면---(한동안
거울을 보다가 돌아보며) 내일부터라도 곧 시작할수
있겠지요?
[에드윈] (만족하며) 네,그럼요. 오늘은 어서 가서 엄마한테 이 소식을 알려드려야 해요. 기다리고
계실 테니까
요. 그럼 내일---돈은 내일 미리 받을수 있겠지요?
[제인] 에드윈,그럼요. 내일까지 틀림없이 준비해 놓을게요---안녕.
두사람 다정하게 인사를 나눈다. 제인 기쁨에 차서 걸어가서 인형을 안아든다. 인형을 안아들고
자세히 보다가 빙빙 돌며 춤추기 시작한다. 춤추면서
노래한다. 노래하며 자기도취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거울앞에서 자신의 의상이 초라함을 발견한다.
잠시 옷자락을 만지며 고민하는 얼굴로 서있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오른듯 활짝 웃으며 현관앞 복도에서 수화기를 든다. 제인이 전화하는 동안
바바라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이내 나온다. 제인 등뒤로 지나는 바바라를 보지못하고 전화한다.
[제인]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난 미스 제인 헛슨이에요. 예금인출에 대한 일로 전화를 했는데요. 네
미스 블랜취 헛슨을 대신해서 은행에 자주 가던 제인
헛슨이지요. 이번에 조금 많은돈을 인출할 일이
생겨서요. 그렇지요?싸인만 가지고는 안되겠지요?그래서 예금주인 미스 블랜취 헛슨이 매니저에게 직접
이야기 하셔야할 것 같아서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수화기를 내밀며 잠시 시간을 끌다가 블랜취의 어조를
흉내내어 말한다. 이층에서 블랜취는 바바라가
온 기척을 듣고 문을 두드린다. 바바라 부엌에서 나와서 층계를 오르려다가 의아해서 제인을 바라본다.
[제인]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네 제가 미스 블랜취
헛슨 입니다. 네,고맙습니다. 그럼요. 잘
지내지요? 제 영화를 보셨다구요? 재미있으셨어요?
아유 감사합니다. 네 몫돈을 쓸 일이 좀
생겨서요.우선 한 오백불쯤 있어야겠고
그만큼 한두번 더 써야될것 같기도 한데요. 내 싸인만
갖고는
안될것 같아서 미리 의논 말씀을 드리려구요. 그렇지요. 언제나처럼 동생을 보내겠습니다. 편의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바라] 미스 제인? 다 들었어요. 그러다가 감옥 갈일 저지르시겠네요.
[제인] (당황하다가 거만하게)아, 바바라. 그동안 수고했어요. 이제는 우리집에 안 와줘도 돼.
이제부터 블랜취는 내가 돌볼거야. 여기 일주일치 수고비를 따로 준비했어요.(설합에서 예프론을 꺼내
주며) 여기 이것두 갖고 가야지.
[바바라] (놀라며) 갑자기 왜---
[제인] 우린 이제 좀 절약을 해야할것 같아서 그래요.
[바바라] 그럼 미스 블랜취에게 인사라도 하고 가야지요.
[제인] (가로 막으며) 안돼!언니는 조금전에 약을 먹고
잠 들었어요. 깨울수 없으니까 그냥 가 봐요.
인삿말은 내가 전해줄테니까.
[바바라] 그럼 온 김에 잠깐 기다려서라두---
[제인] (화내며) 나두 중요한 일루 좀 나가봐야 돼요.
참 열쇠는 돌려 줘야지.
[바바라] (머뭇거리며) 잃어버렸어요. 미안합니다.
[제인] (수상쩍은듯 보다가)할수 없지. 뭐,찾거든 갖다줘요. 자, 그럼 안녕.
억지로 떠밀듯 바바라를 내 보낸다. 바바라 미진한 듯
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무엇인가 주어든다.
블랜취가 던진 종이뭉치를 집어들고 이층을 바라본다.
제인 주의 깊에 내다 보고 있다가 뺏어든다.
[제인] 누가 쓰레기를 버렸나? 이리줘요 내가 버릴테니까---
제인 종이뭉치를 펴가며 찬찬히 읽어보다가 화난 얼굴로 이층을 바라보고 코웃음 친다. 불안하게
쳐다보는 바바라 앞에서 소리나게 문을 닫고 화를 내며 부엌으로 들어간다. 이내 나와서 돌아서서
은쟁반을 들고 의미있게 들여다 보다가 올라간다. 블랜취의 방으로 들어와서 은쟁반을 내려놓고 커튼을
연다. 방이 조금 밝아진다.
[블랜취] (긴장해서 살피며) 왜 그러니? 제인? 나한테
왜 이래? 무섭게?
[제인] (냉정하게 바라본다)
[블랜취] 왜 모르는 사람처럼 굴어? 왜 화를 내고 그래?지금 온건 누구니? 바바라 목소리가 들리는것
같았는데?
[제인] 바바라가 왔길래 해고했어. 이제는 올 필요가
없다고 했지.
[블랜취] (놀라며) 왜? 바바라가 일주일에 두번씩 이라도 와서 시중을 들어주지 않으면 난 어떻게
해? 네가 어떻게 내 자질구레한 시중까지 드니?
[제인] 왜 못해? 평생을 해 왔는데? 그 망할놈의 새까지 시중들잖아? 우린 이제 돈이 없어서
절약해야 한다면서?낭비를 줄여야지. 그리구 날 정신과 의사에게 진찰받게 하자면 떼돈이 필요하지
않겠어?
[블랜취] (당황하며) 무슨 소리야?
[제인] (나가며 편지를 외워서 읽는다) 누구든 이 편지를 주우신 분은 닥터 실버에게 전화해
주십시오. 미스 제인 헛슨에게 심각한 장애가 생긴것
같습니다? (갑자기 문앞에서 홱 돌아서며
소리친다) 이따위 짓을 해두 되는거야?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고 나간다. 블랜취 궁지에 몰려
있다가 단념하
고 닥아가서 은쟁반 뚜껑을
연다. 한순간 경직되었다가 놀라며 쟁반을 밀어버린다. 죽은새가 떨어지다. 비명을 지르며 미친듯이
휠체어를 돌려서 달아나려는듯 맴돈다. 제인 문 앞에서 엿듣다가 자지러지게 웃는다. 웃으면서
내려와서 거실에서 숄을 집어들고 나가며 큰소리로 말한다.
[제인] (웃으며 나간다) 은행에 가서 돈 찾아올테니까
그동안 예쁜새 하고 놀고 있어. 그 녀석
만족했을거야. 물을 싫건 먹었으니까---좋아하는걸
먹어야 몸에 좋다며?(웃는다) 좋아하는 친구를
먹어보면 맛이 있겠지? 마음에 두는 후렌치 드레씽을
듬뿍쳐서---
블랜취 어쩔줄을 모르다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휠체어를 타고 층계를 내려다 보다가 단념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창문을 내다본다.
[블랜취] 어떻게 하면 좋지? 정상이 아냐. 쟤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 누가 좀 와줬으면 좋겠어.
옆집에 사는 이가 나올때가 되었는데---
아---바바라. 그만 둘때 그만 두더라도 나를 보고 가야지.(창을 두드려 본다)
여보세요.여보세요---들리지 않을거야.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걸. 외딴집인데다가 옆집 하고 사이엔
정원이 있으니까---(죽은 새를 보며) 가엾은 보보.너한테 끓는 물을 씌웠구나.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가 있니? 바바라 말이 맞았어. 아무래도 정상이 아냐. 어떻게 하면 좋지? (다시 전화를 들다가
단념한다) 어떻게 하면 좋아? 제인이 오기 전에 어디든 연락을 해야 할텐데---
다시 층계참으로 나와서 아래를 내려다 보다가 용기를
낸다. 애써 휠체어에서 내
려서 굴러떨어
지면서 층계난간을 짚고 조금씩 내려간다. 잠시후 나선형으로 휘어진 층계 난간을 짚고 어렵게
한걸으씩 팔힘을 쓰며 안깐힘쓰며 내려오는 블랜취의
모습이 보인다 몇계단을 남겨 놓고 애쓰다가 팔에
힘이 빠지며 몇개의 계단을 굴러 떨어진다.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나동그러져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팔로 조금씩 기어온다. 몸을 일으키려고 애쓰며 전화기가 놓인 탁자를 짚고 일어서려 한다.
탁자가 쓰러지며 꽃병과 수화기가 놓인 탁자를 짚고
일어서려 한다. 탁자가 쓰러지며 꽃병과 수화기가
함께 머리위로 떨어진다. 꽃병에 머리를 맞고 잠시 엎드려 있다가 몸을 일으켜서 수화기를 든다.
현관문 앞으로 걸어오는 제인의 발소리가 들린다.
[블랜취] 여보세요 병원이지요?네 닥터 쉴버 부탁합니다. 미스 블랜취 헛슨입니다. 급히 할 말이
있어요(다급하게) 빨리요. 진료하시는 중이라도 바꿔
주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요. 아, 선생님.
저 블랜취예요. 블랜취 헛슨---선생님,빨리 와 주세요. 제인이 이상해요. 네 아주 이상하게 굴어요.
그때 보다 더 이상하게 굴어요. 아무래두---
블랜취가 말하는 동안 제인 들어와서 듣다가 발로 걷어찬다. 블랜취 발에 채어 쓰러지며 놀란다.
놀라며 발길질을 피하려 한다.
[블랜취] 제인---
제인 말없이 다시 두번 세번 걷어찬다. 블랜취 수화기를 놓고 얼굴을 감싸며 쓰러진다. 제인 분노에
차서 비명을 지르는 블랜취의 머리채를 끌고 층계로
간다.
[블랜취] 아야,아파.
제인 왜 이러니? 아 엄마---
[제인] 쳐 박혀 있어,방해하지 말고. 방에 가서 쳐박혀
있어. 지겨워 죽겠어. 성해서 나 병신이
되어서나 꼭 내 앞을 가로막고 나선단 말야.
[블랜취] (애원하며) 제발 제인---날 가두지 마. 다시는 안 그럴께. 나한테 이러지 마.
헐떡거리며 층계위로 마구 끌고 올라가서 방으로 들어간다. 침대위에 밀어 올려서 두손을 묶는다.
묶은끈을 다시 공중에 걸어 매단다.
[블랜취] (비명을 지른다) 제인---왜 이러니?
[제인] 다시는 못 나오게 해 주겠어. 다시는 이따위짓을 못하게 해주겠어. 날 정신병자로 몰아서
내쫓고 싶은거지? 내가 다시 스타가 될까봐 방해하고
싶은거지? 속셈을 모를줄 알아? 세상 사람은 다
속여도 나는 못 속일걸.
블랜취를 묶고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문을 잠그고 나온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다가 층계에 앉아서
진정하려 애쓴다.
[제인] (수화기를 들고 블랜취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여보세요, 닥터 쉴버 계십니까? 네 좀 전에
전화 드렸던 블랜취 헛슨 인데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마음을 바꿨어요. 급히 오시지 않아두
괜찮아요. 가까운데 있는 다른 선생님께 보이기루 했어요.
너무 급해서요. 바쁘신데 여기까지 오시게 하기두 죄송하구요. 그러니까 오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교활하게 웃으면서 전화를 끊는다. 제인 웃으면서 나간다. 어두워지면서 한동안 음악이 계속된다.
바바라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 들어와서 어두운 곳에 가만히 서 있다가 불을 키고 사방을
돌아본다. 테이블이 쓰러져 있고 화병의 꽃이 흩어져
있으며 전화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본다.놀라고
불안한 얼굴로 이층으로 올라간다. 이층 블랜취의 방
앞에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고 열려고 한다.
문이 열리지 않자 불안한 얼굴로 다시 두드린다.
[바바라] (조심스럽게)블랜취? 저 바바라에요. 문 여세요.블랜취? (문을 두드리다가 문에 귀를
대어본다) 주무시나? 이 시간에 그럴리가 없을텐데---더구나 문까지 잠그고? 이상하네. (다시
두드린다) 블랜취.여보세요.아무래도 수상해서 집 부근에 와 있다가 제인이 나가는 것을 보고 왔어요.
(말하다가 돌아서며) 문을 잠그신 일이 없었는데---이상하네.무슨 일이 있었던게 분명해.
잠시 문을 바라보다가 아랫층으로 와서 쓰러진 테이블을 힘들여 일으키고,서랍들을 뒤져서 망치를
찾는다.
[바바라] (혼잣말로) 망치가 어디 있더라. 내가 여기
둔적이 있는데---한번도 문을 잠거 본 일이
없었는데---틀림없이 제인이 한 짓이겠지. 무슨짓을
꾸미는걸까? 몸두 불편한 사람을 가둬
놓다니---까닭없이 나를 못 오게 하는것 부터 이상하잖아?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블랜취한테 또
무슨짓을 하고 싶은걸까? 싸인을 위조하고,목소리를
바꿔서
은행에서 돈을 찾겠다는 생각부터 수상쩍지 뭐야? 어디 있을까? 제인이 오기 전에 블랜취를
봐야하는데---(설합에서 망치를 찾으며) 여기 있구나.
이걸로 문이 열릴지 모르겠네. 망치를 들고 급히
이층
으로 올라가서 다시 문을 두드리다가 귀를 대어본다.
[바바라] 블랜취,블랜취, 문 여세요. 낮잠 주무실 시간이 아닌거 알아요. 대답 좀 하세요.(불안해서)
왜 앓는 소리만 내지? 왜 대답을 안해?(다시 말한다)
블랜취,이 문을 열자면 부실수 밖에 없어요.
돌쩌귀를 꺼야 문을 열수 있으니까요.
바바라 망치를 휘둘러서 문의 돌쩌귀 부분을 휘두른다. 제인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놀라서 이층을
보다가 올라온다.
[제인] 남의 집에 와서 뭐 하는거야?열쇠가 없다더니
무슨 열쇠로 들어왔지?
[바바라] (당황하다가) 당신이 준 열쇠가 아니니까 돌려드려도 블랜취 한테 돌려드릴거예요. 이 문을
왜 잠겄지요?
[제인] (분해서 어쩔줄을 모르며) 나가!내 집이야.
[바바라] 블랜취 집이에요. 당신이 무슨돈이 있어요?
술 마시고 담배피워서 몇푼되지 않는 재산 다
날린거 모를줄 알아요? 평생 저 불쌍한 블랜취 한테
얹혀 살면서 이래두 되는거예요? 질투심에 미쳐서
멀쩡한 사람을 병신을 만들더니 이제는 가둬놓고 은행에 거짓말해서 남은 재산까지 가로챌려고 하는거
다 알아요.
[제인] (어쩔줄모르며) 아무것도 모르면서 끼어들지
마. 내가 블랜취 돈으로 산다구? 블랜취야말로
내돈으로 학교에 다니고,내 돈으로 배우가 되고, 내 덕에 스타가 되었었어. 이집두 내거야!내가
산집이야.
[바바라] (돌쩌귀를 때리며) 서류 다 봤어요. 집소유주가 블랜취로 되어있던걸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당신이 하는 말
은 한마디도 안 믿을테니까---
[제인] 엄마 때문이야. 아빠가 늦게까지 살아계셨으면
이게 내집인걸 분명히 하셨을텐데---엄마는
내가 술 마셔서 재산을 다 없앨거라고 블랜취한테 맡기자고 하신거야. 염려해서 맡긴거지 블랜취
재산이기 떠문에 맡긴게 아냐. 당신이 뭘 안다고 잔소리야? 비켜!문 열지마.
바바라가 힘차게 망치를 휘두르자 문이 떨어져 나간다. 바바라 불을 킨다. 침대에 묶여 있는
블랜취의 모습이 들어난다.
[바바라] (놀라며) 세상에---블랜취!
[제인] (제인 당황해서 어쩔줄을 모르며 바바라의 앞을 가로막는다) 안돼!들어가지마.
[바바라] 무슨짓을 한거야? 당신---몸두 저런 사람한테 무슨 짓을 했어? 사람을 저렇게 묶어
놓다니---가엾어라 블랜취---
[제인] 네가 무슨 상관이야?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마!
(점점 흥분하며) 우리 언니야. 상관하지마.
우리언니한테 내가 무슨짓을 하건말건 네가 무슨 상관이야?(떠밀며) 나가!저리 나가!
[바바라] (제인을 밀어낸다) 당신이야 말루 저기가서
얌전히 있어. 경찰을 부를테니까---하나하나 다
말해줄 거야. 불구자를 굶기고,가두고---이래두 될줄
알아? 당신 천벌을 받을거야.
제인을 밀어버리고 블랜취의 묶인 팔을 풀어내며
[바바라] 이럴줄 알았어요 블랜취. 저이가 이상하게
굴때부터 의심스러웠어요 당신한테 무언가
몹쓸짓을 할 줄 알았어요. 가엾어라. 블랜취. 잠깐요.어쩌면 이렇게 모질게 묶었을까요?
제인 넘어졌다가 일어나며 망치를 집어든다.
망치를 집어들고 한걸음 한걸음 닥아간다. 블랜취
바바라의 어깨넘어로 제인이 닥아오는 것을 보며 무어라 외치려 한다.
[바바라] 참으세요,블랜취. 곧 풀어드릴께요. 손부터
풀구요. 자매간에 어떻게 이런 짓을 할수
있지요?
제인 망치로 바바라를 떠린다. 미친듯이 때리고 또 때린다. 블랜취 묶인채로 비명을 지른다. 바바라
쓰러진다. 블랜취 몸부림 친다. 제인 한동안 멍하니 서서 내려다 보다가 망치를 떨어뜨리고
의지하려는듯 블랜취의 옆으로 간다.
[제인] (바바라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속삭이듯) 안 움직여---죽었나봐. 저 피좀봐 언니---아 블랜취.
저 피좀 봐. 어떻게 하지?(두손을 입에 대고 어쩔줄 모르다가) 머리가 깨졌나봐. 맙소사. 정말
죽었나봐. 어떻게 하지? 블랜취?어떻게 하면 좋아?
말좀 해봐. 언니. 이 일을 어떻게 해?
뒷걸음질 쳐서 블랜취의 침대에 기대며 시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제인] 어떻게 하면 좋아?(갑자기 블랜취의 입에서 테이프를 떼어내며 속삭이듯) 풀어줄께,말좀해봐.
어떻게 하면 좋아? 죽을 줄은 몰랐어 언니도 알지? 죽으라고 때린건 아냐. 바바라가 너무 멋대로
하니까---(당황하며) 저 피 막흘러가네.저것좀 봐, 언니.저 피좀 봐. 어떻게 하면 좋아? 블랜취, 말 좀
해봐. 화 그만 내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 좀 해봐. 내가 잘못했어.응? 블랜취,블랜취, 대답해 봐.
어떻게 좀 해봐, 언니.
블랜취 입과 손이 풀리자 기절한듯 쓰러진다. 제인 어쩔줄을 모르고 블랜취를 흔들다가 절망해서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한동안 얼굴을 가리고 앉아있다가 힘없이 바바라를 바라본다. 바바라의
시체를 일으켜서 끌고 밖으로 나간다. 힘겹게 층계로
끌고 내려온다.
[제인] 당신 책임이야. (운다) 당신 책임이라구---오지 말라는데 왜 와서 야단이야? 내가 우리
언니한테 무슨 짓을 하던 말던 그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해? 왜
날 그렇게 미워해? (휄체어에 앉히려고 애쓰며) 아, 바바라. 심술 떨지말고 제발 일어나서 여기
앉아줘. 자기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지않아? 이렇게 힘들게 하지마.
한동안 앉아서 울다가 숄을 바바라에게 씌우고 휠체어를 조심스럽게 밖으로 끌고 나간다. 무대
어두워진다. 이내 이층이 밝아지면 제인, 흩어진 모습으로 블랜취를 끌고 안고 앉아있다. 뺨을 대고
앉아서 중얼거린다.
[제인] 눈 떠 봐, 불랑쉬. 눈 뜨고 일어나서 날 봐, 불랑쉬.무서워서 혼났어. 공원 호수에
밀어넣는데 바바라사 너무 무거워져서 두번이나 넘어졌어. 누가 볼까봐 무서워서 죽는줄 알았어.
바바라네 집에서 찾으러오면 어떻게 하지? 뭐라고
해? 순경이 잡으러오면 어떻게 하지? (한동안
울다가) 아---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 버렸을까? 우린
그렇게 행복했는데---그렇게 행복하고
예뻤었는데---모두 우리를 쳐다보고 박수 쳤었지. 내가 아빠의 손을 잡고 무대에 서면 사람들이
와아하고 탄성을 올리곤 했었어. 언니도 생각나지? 아빠는 정말 날 자랑스러워 하셨었잖아? 그때가
아마 열살 때 였을거야. 인기 절정이었지.
그리고 열두살---열네살---열일곱---그리고 마침내
언니도 배우가 되어서 우린 자매 스타로
유명해지기 시작했었어. 아빠가 얼마나 좋아하셨었는지 생각 나? 언니? 그때 우리가 얼마나 예쁘고
행복했는지 생각 나 언니?
아랫층 거실 의자에 놓인 제인 인형 주변이 밝아진다.
동시에 멀리서 어린이 음성의 노래가 들린다.
노래가 들리는 동안 무대 전면의 스크린에 피아노를
치는 남자와 그 앞에서 춤추는 어린 소녀의
그림자가 비친다. 어린 소녀의 그림자 멀리서 춤 추듯
작아보이다가 점점 커져서 가까이 온다.
닥아오면서 두개의 그림자로 나뉘어 진다. 그림자 나뉘어 지며 자매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웃음소리가 들리면서 그림자 사라진다. 어두운 무대
그늘에서 젊은 모습의 제인이 피아노에 기대어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 부른다. 노래의 끝무렵에 블랜취가 머뭇거리며 나오며 무대 안쪽을 향해 불안하고
초조하게 어리광부리듯 말한다.
<<[블랜취] 떨려요 엄마. 난 실수할것 같아. 모두 나만
보고 있는데 실수하면 어떻게해? 제인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지만 전 못하는걸요. 누가 말만 걸면 마룻바닥이나 컵속만 들여다 보고 있을
것 같아요. 떨다가 넘어질지도 몰라. 그 유명한 감독들
이랑 제작자들이 저를 보려고 이 파티에
왔다는데, 전 아무래도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할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좋지?
[제인] (피아노 뒤에서 취한 음성으로) 걱정마,언니.
이젠 그만 좀 징징거려. 언니편인 엄마가 아까
나한테 이렇게 말씀하시던걸.(흉내내며) 그래 제인, 언니는 노래가 서투르니
까 네가 좀더 나서서
분위기를 만들렴. 오늘은 언니한테 중요한날 아니니?
언니가 특별히 예쁘고 매력있게 보여야 해.
영화사 사장님이 신문기자들에게 블랜취를 간판스타로 키우겠다고 발표할 예정이니까 네가 거들어야
해. 언니는 수줍어하니까 네가 나서야지. 봐라. 손님들이 모두 기다리시지 않니? 자, 술잔은 이리주고
어서 나가서 인사하고, 노래불러봐. (다른 어조로) 엄마는 내가 언니의 발받침이 되어야 한다는거야.
글쎄 내편인 아빠까지 이러시더라니까---(다른 어조로) 그래 제인, 넌 이미 스타니까 신인인 언니를
위해서 네 매력을 좀 발휘해야지. 자, 나가서 아프로디테 같은 네 압도적인 매력으로 저 멍청한
제작자들을 꽉 잡아봐라. 응?(일어나서 나오며 블랜취를 잡아끌며 제 어조로)촌스럽게 그리구 있지
말고 이리 나와 봐.
[블랜취] (끌려나가지 않으려고 애쓰며) 왜 이래? 가만있어봐.
[제인] 부모님 명령을 실행 해야지.자, 이리 나와서 세련되게 굴어. 나처럼 하라구---(블랜취의 옷을
잡아당기며) 이런 이런---옷을 왜 이렇게 입었어? 가슴을 다 가리면 남자들은 무얼 봐? 배우는 이러면
안돼. 항상 팬에게 무언가 보여줄 태세가 되어있어야
한다구---
[블랜취] (뿌리치며) 다 벗겨지겠어. 이러지마. 창피하게---제인, 지난번처럼 또 주정하는거 아니지?
[제인] 이번엔 안 그럴거야. 자아 봐. 아빠가 피아노를
치시지 않아? 우리가 노래 부를
차례야.(웃으면서 한걸음 나온다. 조금 취해있다. 큰소리로 객석을 향해 말한다) 여러분!파티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오늘 파티는
중요하지요. 엠지엠 영화사의 간판급 여배우가
탄생하는 날이니까요. 보세요. 오늘의 주인공, 우리 언니 블랜취 헛슨양을 소개합니다. 예쁘지요?
배우같지요? 노래도 잘한답니다. 자, 언니.같이해.>>
<< >>
술잔을 손에 들고 노래한다. 블랜취가 독촉에 몰려서
옆에서 난처한듯이 거든다. 한동안 피아노
반주에 맞춘 자매의 노래 곱게 들린다. 제인 술을 마시며 노래하다가 갑자기 웃으면서 블랜취의 머리에
술을 쏟는다. 블랜취 놀라서 피한다. 피해서 그늘에서
속삭인다.
[블랜취] (필사적으로) 제인!제인!들어와.맙소사,너 또
취했구나.
제인 피하려는 블랜취의 목에 팔을 감고 취한 음성으로 노래한다.
[블랜취] 왜 이러니? 왜 또 이래? 날 놔줘. 다들 보고
있지 않니? 기자도 있어. 우린 이러면 안돼.
(애원한다)제인, 날 놔줘.
[제인] 대체 왜들 이러는거야? 블랜취가 신인이었으면 신인이지 왜 난 따돌리고 야단이야? 블랜취가
나보다 나은게 뭐라고 나한테는 안주던 배역을 다 주는거야? 봐 누가 더 예뻐? 보라구---와서바. 누구
가슴이 더 풍만해? 누구 다리가 더 예뻐? (피하려는
블랜취의 치맛자락을 들치며)봐! 이 빈약한 다리가
그래 나보다 낫다는 거야? (블랜취의 드레스를 잡아당기며) 이 납작한 가슴이 더 매력있어? 난 벗어
보여줄수도 있어.한번 벗어봐?
블랜취 피하려다가 얼굴을 가리고 운다. 조명의 색조가 변해서 장소가 바뀐것을 표현한다. 울고있는
블랜취 옆에서 화내는
제인.
[블랜취] 난 망했어. 난 이제 끝났어. 못 참겠어. 죽고
싶어요, 엄마. 기자, 평론가, 감독같은
중요한 손님들은 다 가버렸어. 누가 저렇게 천한 주정꾼이 있는 파티에 남아있고 싶겠어? 잰 왜
파티마다 날 따라다니면서 망신을 시키는지 모르겠어.
벌써 몇번째야? 재 때문에 난 되는 일이
없어요.(증오에 차서) 죽여버리고 싶어요, 엄마.
쟤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저런게 왜 동생이라고 생겼는지 모르겠어. 지긋지긋해.
[제인] 난 더 죽이고 싶어. 난 더 지긋지긋해. 언니같은건 없어졌으면 좋겠어. 나두 언니 떠문에
되는 일이 없어. 왜 날 따라서 배우가 되고 야단이야?
왜 날 방해해? 내 덕에 배우가 되어갖고 왜 내
배역들을 빼앗아 가?
[블랜취] 내가 뺏은게 아니지 않니?
[제인] 삼손과 데릴라 오디션 할때, 감독이 내가 적역이라고 말하니까 감독 앞에서 뭐라고 했었어?
잊었을줄 알아? (흉내내며) '그런데,제인 네가 그 많은
대사들을 잘 소화할수 있을까? 연습 많이해야
할거야. 넌 언제나 이런식으로 말하지 않니? "오,삼손!내가 증오스럽다구요?"그러면 안돼.이렇게
말해야지.'하고 또 한번 해보니까 감독이 거기 홀려서
난 밀어놓고 블랜취만 보더라구. 그게 뺏어간게
아냐?언제나 얌전한척 하구 가증스럽게 굴지.
[블랜취] 네가 너무 무식하고 연기력이 없으니까 그랬지. 내가 뺏은게 아냐. 네가 무식하다는거야
세상이 다 아는 일아니니? 그리구 사실 그 역은 너 보다는 나한테 훨씬 잘 맞아. 내가 훨씬 더 멋있게
연기할수있다구. 그리구 난 그역이 필요해.
[제인] 그럼 난 어떻게 되구? 폭풍의 언덕의 캐더린
역도 그렇게해서 뺏어갔잖아? 배역만 뺏어갔어?
내 남자친구들도 가로채고---
[블랜취] 네가 싫어진거지 내가 뺏은거지?
[제인] 우리가 데이트 할때마다 끼어서 잘난체 하니까---(흉내내며) 죠르쥬상드를 읽어 보셨나요?
어머,제인은 책 같은건 안 읽는 답니다. 책은 아주 싫어해요. 춤과 술만 좋아하지요. 우리 밖에 나가서
버지니아 울프의 새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할까요?
[블랜취] (변명하며) 넌 정말 너무 무식해. 그사람 상드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뭐랬었지?
(흉내내며)누구지요, 그사람? 콜럼비아에서 새로 뽑은
신인인가요? 입다물고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난
정말 창피했어. 그래서 도와주려고 했을뿐이야.
[제인] 도와줄려고 나무밑에서 키스했어? 내 애인하고?(소리친다) 죽여보리고 싶어,죽여버릴거야.
[블랜취] 나야말로 널 죽이고 싶어. 이젠 날 따라다니지마. 가까이 오지마. 너같은 삼류 술주정뱅이
때문에 더 망하기 싫어. 또 한번 이런짓 하면 죽여버릴거야.
[제인] (덤빈다) 내가 먼저 죽일거야.누가 힘이 더센데? 해볼래?
두사람 비명을 지르고 한덩어리가 되어 어둠속으로 쓰러진다. 어두워진다. 어둠속에서 벨소리가
들린다. 벨소리가 되풀이 되면서 밝아진다. 제인,베비제인 드레스 차림으로 내려와서 지친얼굴로 문을
연다. 에드윈이 멋적은 얼굴로 들어온다.
[에드윈] 늦었나요? 집에서 편곡을 하느라고 시간
가는줄 몰랐어요.
[제인] (생기를 찾으며) 아,에드윈.얼마나 기다렸다구요.
두 사람 거실로 들어온다. 에드윈 서둘러서 피아노 앞에 앉으며 악보를 펼치며 말한다.
[에드윈] 참 좋은 노래더군요. 헛슨 작곡이라고 되어있던데 작곡자가---
[제인] 우리 아빠예요.훌륭한 작곡가셨지요. 작곡가로써 불운한 분이었지만 나를 위해서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드셨어요. 베비제인이 바로 그것이지요.
[에드윈]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며) 이런식으로 편곡을 했는데 어떤가 한번 들어보세요.
에드윈이 막 피아노앞으로 가려는데 이층에서 블랜취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제인 멈칫하다가
이층으로 올라간다.
[제인] 잠깐만이요. 이층에 잠깐 다녀올께요. 에드윈
따라가서 기웃하며 부엌을 들여다보고 잠시
서있다가 안으로 들어간다. 제인 어두운 블랜취의 방을 들여다본다. 블랜취 누워서 움직이지 않는다.
제인 안심하고 내려오는데 부엌에서 숄을 뒤집어 쓴
휠체어가 튀어나온다. 바바라의 시체와 같은
모습으로 층계 앞에서 빙글 돈다.
[제인] (비명 지른다) 바바라!
[에드윈] (웃으면서 일어선다) 이게 뭐지요? 누가 타는 거지요?
[제인] (놀람을 진정시키지 못하며)무슨짓이예요?
[에드윈] 난 어제 당신이 이걸 밀고 가는것을 봤어요.
(숄을 벗으며) 누가 이렇게 하고 타고
있더군요.
[제인] (다시 놀라며) 보다니요? 언제? 무얼 봤어요?
[에드윈] (피아노 앞으로 가며) 난 어
제밤에 여기 왔었어요. 이 집은 정말 묘하게 매력이 있거든요.
오래된 집이 갖는 우아함이랄까---아무튼 그런 뭐가
있어요. 거기에 당신도 그렇구요. 먼지 낀
장미같은 그런 뭐가 있다구요. 그래서 난 생각했었지요. 내 음악으로 그 먼지를 한번 휙 불어서
날려보자. 그러면 어쩌면 마술이 일어나서 천구백 사십년대의 우아한 집과 거기사는 공주님 같은
아가씨를 볼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하구요.
제인 불안하게 감동하며 가까이와서 속삭이듯 묻는다.
[제인] 그래 무얼 봤지요?
[에드윈] 당신이 의자를 밀고 나오는걸 봤지요. 누군가를 차에 태우고 공원 호수쪽으로 가는걸
봤어요. 그래서 나는 기다렸어요. 당신이 돌아오는것을 보고 가려고---
[제인] 그래서요?
[에드윈] 당신은 금방 돌아왔어요. 빈의자를 끌고요.
마치 쓰레기라도 치우고 오는 사람처럼 산뜻한
걸음으로 돌아오더군요.
[제인] (안심하고 교활해지며) 좋아하지만 부담스러운
친구가 가끔 놀러오지요. 몸이 불편해서 이
의자로 데려다 주고는해요.
[에드윈] 당신이 행복해 보여서 나는 안심하고 돌아갔지요.
[제인] 안심을 하다니 무슨 뜻이지요?
[에드윈] 그렇니까---에에---저---당신은 어딘가 좀
이상해보이니까요.
[제인] 이상해요?
[에드윈] 즉, 그렇니까, 어디가 몹씨 아픈 사람처럼 보인다는 거지요.우린 엄마가 그러시더군요.
당신은 틀림없이 아플거라구요. 건강하고 아름답던 뮤지컬 스타가
언니가 불구가 되었다는 이유 딪문에
평생을 그늘에서 살고 있다면 틀림없이 아플거라구요.
[제인] 엄마는 우리 일을 아시는군요.
[에드윈] 그럼요. 세상사람들이 모두 당신이 언니를
불구로 만들었다고 욕하지만 엄마는 거꾸로
생각하신 일도 있대요. 언니가 당신 평생을 짓밟은 셈인지도 모른다구요. 언니되시는 블랜취는 아직도
병원에 있나보지요?
[제인] (긴장하다가 안심하며) 네.
[에드윈] 당신은 외롭고,슬프고,어딘가 아픈 사람처럼
보여서 마음에 걸렸어요.
[제인] 왜요?
[에드윈] 모르겠어요. 난 사람을 잘 못 사귀니까요. 내
또래의 여자와 이야기 해본 일이 없어서 이런
기분 잘 설명하기 어렵지만---그냥 당신한테 잘 해드리고 싶었지요.
그래서 당신이 정말 건강하고 싱싱한 장미처럼 되살아났으면 싶었어요. 그런 기분으로 밤새 이곡을
만들었어요. 들어보시겠어요?
[제인] (감동하며) 에드윈,당신 정말 좋은분이군요. 몇년만인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말을
들어본것이---아빠가 돌아가신뒤 처음이예요. 우리엄마는 이야기하곤 하셨었지요. 예쁜눈으로 쳐다보면
미운 사람도 예뻐지고,미운 눈으로 쳐다보면 예쁜 사람도 미워진다구요. 난 너무 오래 미움만 받고
살은것 같아요. 나 자신도 나를 용서할수 없었는걸요.
아, 에드윈. 당신 눈빛은 정말 곱군요. 당신이
그런 눈으로 계속 쳐다봐주면 나는 다시 화려하고, 날씬하고, 아름다운 베비제인 헛슨이 될수
있을거예요. 나는 잘못도 저지
르지 않은 행복하고 곱고 착한 여자가 될수 있을거에요. 모든 사람들이
다 사랑하는 그런 여자가요. 밤마다 끔찍한 제 잘못을
기억해내고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되는 깨끗하고
순결한 여자가 될수 있을거예요. 그렇지요,에드윈? 그럼다고 말해줘요 네?
[에드윈] (피아노를 치며 격려하듯 미소한다)
[제인] 당신은 우리 아빠 같은 눈을 갖고 있군요. 비웃지 않고 용기를 주는 따뜻한 눈이에요.
아!에드윈. 아세요? 난 할수 있을것 같아요.당신이 날
그렇게 만들어요. 난 더이상 심술궂고 악의에
가득찬 늙은 주정뱅이가 아냐. 그렇지요,에드윈?
[에드윈] (피아노치며) 좋지요? 당신은 착한 여자예요. 눈이 그렇게 예쁜데 착하지 않을수가 없지요.
자 기운을 내서 천천히 천천히 멜로디를 따라가세요.
좋아요.당신 발은 정말 아름답군요.
조그맣고 단단하고 힘이 있어요. 그 발로 멜로디를 타세요. 가볍게,가볍게---춤 추세요.춤
추세요.춤---(차츰 도취하며) 세월의 먼지는 날라가고
미움도,노여움도 날라가고 악몽과 슬픔도
사라져서---당신은 이제 건강하고 아름다운 소녀 제인이예요. 젊지요,깨끗하고 순결하고 예뻐요.
고통의 먼지는 날라가고 세월의 먼지도 사라지고 당신은 다시 유명한 인기 스타예요. 보세요.저
환상적인 아름다움---내 꿈의 여인을---무대는 열기에 넘치고 관객은 감동하고 팬들은 환호하지요.
(외친다) 베비 제인 헛슨---얏호
에드윈이 치는 피아노를 듣다가 제인 치맛자락을 펴들고 춤 추며 노래한다. 에드윈 즐거운듯
바라본다. 이층에서
침대위에 희미한 불이 켜진다. 블랜취 일어나서 귀를
기울이다가 애써서
침대위에서 휠체어로 옮겨타려다가 소리내며 바닥에
쓰러진다.
[블랜취] 거기 누가 왔어요? 도와 주세요!여보세요!
에드윈 피아노를 치다가 귀를 기울인다.
[에드윈] 무슨 소리지요? 집에 누가 있어요?
[제인] (춤 추며) 아무도 없어요.왜요?
[에드윈] 이층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것 같았어요.
누가 외치는것 같아요.
[제인] 아무것두 아냐. 잘못 들었을거예요. 자 계속하세요.
에드윈 다시 피아노를 친다. 제인 노래 부른다. 윗층에서 블랜취 바닥을 기어서 휠체어 앞으로 가서
휠체어를 쓰러트린다.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에드윈
다시 피아노를 멈춘다.
[에드윈] (긴장하며) 보세요. 들었지요? 누가 있어요.
[제인] (화내며) 아무도 없다고 그랬지요? 이 집엔 나혼자 밖에 없어요.
[에드윈] 그렇니까 이상하지요. 누가 들어왔을 수도
있어요. 도둑일지도 몰라요.
이층에서 블랜취 일어나려다가 다시 넘어진다. 에드윈
벌떡 일어난다. 제인이 가로 막는다.
[제인] 안돼요!이층에 올라가면 안돼요. 에드윈,내 말들어요.
[에드윈] 당신 보다 내가 가는게 낫지요. 제인 난 그래도 남자예요.(제인을 밀어내며) 여기 계세요.
내가 다 해결할테니까---
에드윈이 올라가려 하자 제인 다시 앞을 막는다.
[제인] 제발---에드윈!가지 말아요.가면 안돼!
에드윈 층계를 올라가려다가 층계참에서
흩어진 머리 헝클어진 모습의 블랜취와 마주친다. 애원하며
손을 내민다. 갑자기 맞닥뜨리자 에드윈 비명을 지른다.
[블랜취] (손을 내밀며 쓰러진다) 도와주세요. 살려줘요.
에드윈 블랜취와 제인을 번갈아 보며 뒷걸음질 치며
비명을 지르다가 넘어진다. 제인 쓰러진
에드윈을 망치로 내려친다.
[제인] (비명) 보지마!보지마!저 여자를 보지 마!내가
해놓은 짓을 보지 마!날 야단하지 마!
손에 망치를 든 제인이 계속 내리치며 함께 비명을 지른다. 세사람의 비명이 어우러지면서
어두워진다.어둠속에서 무너지는 소리,망치가 문짝을
때리는 소리,남자의 비명이 들린다. 현관앞의
희미한 조명속으로 비틀거리며 달아나는 에드윈의 모습이 보인다.
[제인] (따라가며 외친다) 에드윈, 가지마!가지 말아요.가지마.
망치를 들고 소리내어 울며 망연히 서있는 뒷모습이
보이며 어두워진다. 어둠속에서 한동안
음악소리가 들린다. 차츰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싸이렌 소리가 섞여 들린다.
[제인] (울다가 말한다) 블랜취---블랜취---눈 떠봐.
눈 뜨고 말좀 해봐.
[블랜취] (힘없이) 아---제인---무슨 일이 있었니?
여긴 어디야? 지금 우리가 뭐하는 거지?
[제인] 쉿!작은 소리로 말해. 침대밑이야. 우린 숨어있는거야. 숨어있어야 해.
[블랜취] 물---목이 말라 제인. 아 아파---팔이 부러졌나봐. 제인 나한테 왜 이렇게 하니? 난 죽을것
같애.
[제인] 우릴 찾으러 올거야. 날 잡아가려고 올거야 큰일났어.
우린 숨어있어야 해. 난 사람을
죽였어. 다 죽였어. 아,난 나쁜애야 언니. 어떻게 하면
좋아?
[블랜취] 아냐. 넌 나쁜애가 아냐.제인,날 다치게 한건
네가 아냐. 나 때문에 네가 그렇게 됐으니까
다 내 잘못이야.
[제인] 어떻게 하면 좋지? 어떻게 하면 좋아? 아 아빠---에드윈이 다 봤어. 바바라 얘기도
물어볼거야 언니.블랜취,날 도와줘.날 잡아가게 하지마. 내가 정말 잘못했었어. 언니를 병신을
만들고---난 그날 너무 취해있었거든.정신이 없었어.문짝이 그렇게 쉽게 쓰러질줄은 몰랐어.
[블랜취] 이리와 제인.날 안아줘. 이젠 사실을 말해줄께. 그건 네 잘못이 아니었어. 내가
한거야.네가 미워서, 아무데나 따라 다니며 방해하고
주정하는게 지긋지긋해서 사고인척하고 널 차로
치어버리려고 했었어. 너보고 문을 열라고 시키고 차를 몰아서 돌진했지. 그런데 핸들이 꺾여서 방향이
바뀌고 문의 쇠창살이 내 등위로 떨어진거야.
[제인] 아냐,언니. 그건 내가 한거야. 내가 그떠 매일
말했었잖아? 언젠가는 언니를 죽이고
말겠다고. 난 정말 언니를 죽이고 싶었었어. 나를 제치고 엠지엠의 주연배우가 되는 꼴을 볼수 없었어.
내가 괜히 언니 곁에서 평생을 보낸줄 알아?그건 내
나름의 속죄였었어.
[블랜취] 아냐. 그렇지 않아,제인. 넌 너무 취해서 네가 문을 내위로 떨어뜨린줄 알고
있었고,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해서 널 욕했었지만
사실을 그게 아니었어. 제인,아 제인---불구가
된 뒤에도 나는 겁이 났었어. 나는 불구가 되어있는데
네
가 계속 배우로 행세하면 견딜수가 없을것
같았어. 그래서 네가 죄책감 떠문에 나하고 똑같이 집에 들어 앉아있겠다고 했을 때도 가만 있었어.
내가 널 생매장 시킨셈이지. 내가 잘못했었어.
[제인] 그렇지 않아. 내가 더 잘못했어. 언니를 죽이려고 했었으니까---
[블랜취] 아냐. 내가 더 잘못했었어. 내가 더 나빴어.
난 그걸 알고 있었어.
[제인] (화난다) 하---또 날 이길수 있다고 생각하는군. 그래서 날 또 얼떨떨하게 만들고 싶은거지?
내가 사과도 못하게 하고 싶은거지? 또 선수를 치고
싶은거야.
[블랜취] 난 인제 죽을거야. 제인 죽기전에 너한테 사과하고 싶어.널 속였었어. 사과할께.
용서해줘.널 참 좋아했지만 너만큼 싫은 사람도 없었어. 용서해줘.사과할께.
[제인] 그럼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왜 내가 죄인처럼 살게 가만있었어? 진작 이집을 떠날수도
있었는데?
[블랜취] 난 무서웠어. 네가 날 버리고 가 버릴까봐 정말 무서웠어. 용서해줘. 사과할께. 네가
그렇게까지 괴로워 하는 줄은 몰랐엇어.
[제인] (외친다)하지마!그러지 마!나보다 먼저 사과하지 마!(운다) 뒤죽박죽이야.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그럼 내가 화내야 되는거아냐? 이 나쁜---못된---망할---(소리내어 운다)
문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블랜취] 누가 왔어. 제인,우리가 며칠이나 이러고 있었니?
[제인] 세밤(놀라며) 날 잡으러 왔어. 언니, 어떻게 하지?
[블랜취] 누가 왔어.
문 열어줘. 우릴 도와줄거야.
[제인] 싫어. 날 잡아갈거야. 날 잡아가게 하지마. 난
잘못한게 너무 많거든. 언니를 병신을
만들고,바바라를 죽이고,에드윈도 죽이려고 난 나쁜애야. 사람들이 와서 날 잡아갈거야. 잡아다가
혼내줄거야. 난 무서워 블랜취. 어떻게 하면 좋지, 언니? 날 잡아가면 어떻게 해? (흐느끼며 애원한다)
날 잡아가게 하지마 언니.
[블랜취] 이리와 제인.그럼 여기 숨어있자. 걱정하지마. 언니가 다 알아서 해줄께. 여기 꼭꼭
숨어있으면 아무도 우리를 못 찾을거야.
[제인] 안아줘 언니.
[블랜취] 제인,이리와.언니가 안아줄께. 아 제인---내
동생---넌 착한애란다. 넌 아무것도 잘못한게
없어. 다 내 잘못이지. 나 때문이야. 나 떠문이야.
[제인] 그럼 인제 화 안낼거야? 야단하지 않을거야?
나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슬퍼하지 않을거야?
원망하지 않을거야?
[블랜취] 그럼 그럼.아,제인 울지마.이젠 걱정하지마.
언니가 다 알아서 해줄께.
문두드리는 소리와 함꼐 제인의 울음소리 점점 커진다. 문이 열린다. 무대 밝아지면 현실의 블랜취
이층에서 창문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블랜취] 나는 아직도 가끔 생각한답니다. 배우라는건
정말 얼마나 화려하고 가엾은 너울일까
하구요. 한순간의 박수와 환호---들끓는 인기가 거품처럼 허망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고삐 꿰인
망아지처럼 거기 매어 벗어날수 없는 어리석은 마음---인기가 사라지면 혼자 외로이 견뎌야하는
황폐하고 긴 나날들---그 무서움---후배의 성공을 바라보며 견뎌야 하는 마음을. 찢는 질투와 실패감
그리고 매일 매시간 내게서 생기와 아름다움을 앗아가는 늙음의 잔임함에 대해서 생각하곤합니다. 아주
작은 미움,순간적인 질투, 박수와 갈채에 쌓인 허망한
삶에의 철없는 집착이 씨가 되었던---가해자도
피해자도 근본적으로는 악의를 갖지 않았던---그리고
믿을수 없을만큼 무서운 그 사건의 기억으로 집은
크나큰 상처를 입고 있군요. 저 벽에는 찢어진 마음의
슬픔이,이벽에는 좌절과 고독에의 무서움이
아로삭여져서 시든 겨울장미같은 냄새---지친 인생의
냄새를 피우고 있군요. 나는 이제 여기서 그
상처를 어루만지며 살게 되겠지요. 집과 둘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늙은 여배우의 길고 긴
여생을 살게 되겠지요. 언젠가 제인이 바른 정신이 들어 돌아오게 될것을 기다리면서---
시중드는 이가 은쟁반에 담긴 갖고 올라와서 등 뒤에
선다.
<<[블랜취] 아무 맛도 없고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고 미움도 사랑도 없는 시간들을 보내게
되겠지요. 다만---안전하게요. 네.정말 무덤속 처럼
평온하고 지루하고 안전하기는 할거예요. 사랑이
없으면 미움도 없고 다칠 일도 없을 테니까요.>> << >>
두사람 객석을 바라본다. 어두워진다. 어둠속에서 블랜취의 중얼거리는 소리 들린다.
[블랜취] 그렇지만 얼마나 쓸쓸할까요? 얼마나 안전하고 쓸쓸할까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