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아랫동네 상동중학교의 오늘은 어제에 이어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마침 오늘 1교시가 국어 과목이라 시험 중간쯤 이상 유무 확인 겸 교실을 둘러보았습니다.
특히 새내기 1학년 교실로 들어서는 마음가짐은 조금은 긴장되었습니다.
아이들로선 중딩으로서의 첫 시험이라 그럴만도 하겠지만
며칠 전부터, 몇 문제 내셨느냐, 쉽게 풀 수 있느냐, 동그라미로 표시하는 거냐? 등등
낯설고 야릇한 질문 공세가 심할 정도로 올해 1학년 아이들의 이런저런 분위기를
작년엔 미처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로선 중학교 근무 경력이 작년에 이어 두 해째인 초심자라
예상 평균점수를 염두에 두고 난이도는 물론 낱말의 선택 따위에
잔뜩 신경 쓰면서 출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혹여 미처 챙기지 못했거나 잘못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떨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학년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문제의 이상 유무를 묻기에 앞서,
"문제가 너무 어렵지 않느냐?"라는 말부터 조심스럽게 꺼냈습니다.
아이들의 반응을 슬쩍 보니 다행스럽게도 예상과는 어긋나지 않은 듯하여
일단 마음을 놓고는 문제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하라고 했습니다.
문 가에 앉은 아이 하나가 손을 번쩍 들더니, "00번 선택지 0번 '금전'이 무슨 뜻이에요?" 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을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안쪽에 앉은 어떤 아이가, "돈이지 뭐야." 하고 자랑스럽게 대꾸하는 겁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정답과는 관련 없는 사항이긴 하나, 아무래도 정답 고르는 데에 조금은 영향을 미칠 듯하여
이 순간을 어떻게 해결할까 잠시 고심하고 있는데,
처음 질문한 아이가 저를 빤히 올려다보며 대뜸 맞받아 말하길,
"선생님, 쉬운 말로 쓰지 왜 어려운 말을 써서 골치 아프게 만들어요."
어이쿠, 충격 한 방 먹고 말았습니다.
엄숙한(?) 시험 시간이라 뭐라 조근조근 알아듣게 설명할 상황도 아니어서, 목소리에 힘을 잔뜩 넣곤,
"'금전'의 뜻이 꼭 '돈'이 아닐 수도 있으니 꼼꼼히 따져보고 풀어라."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어려운 말 썼다고 저를 혼내준 아이나, 그 말 뜻을 안다고 시험시간임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외친 아이나,
생각할수록 빙그레 웃음짓게 만듭니다.
철부지 중학생들 숲에서 지내다 보니
이렇게 뜻하지 않은 일로 마음 가득 행복이 번지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이렇게 사람이든 자연이든 일상 속에서 스치는 따뜻한 인연들이 있기에
조금은 힘들어도 하루 하루를 씩씩하게 버텨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사소하면서도 소중한 인연들과 더불어
더욱 넓고 깊어지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 행복하게 보내길 소망해 봅니다.
첫댓글 하하 ^^;
흐흐 은석이랑 누구였지?ㅋ
진명우 선생님이신가요? 다시 뵙고 싶어요.... 아직도 선생님의 말씀소리가 귓가에 은은하게 퍼지는 것 같아요.. 종소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