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옹에 살고 있는
루이(가명)는 올해 네 번째 생일을 맞는다.
루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밖에서 공놀이 하는 걸 좋아하고
친구들과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다.
그러나 루이는 지난 99년 태어난 지 1년 만에 엄마 곁을 떠났어야할 운명이 었다.
루이는 태어날 때부터 ‘감마씨 수용체’라고 불리는
유전자 결핍으로 인해 ‘선천성 면역결핍증’을 앓고 있었다.
이 유전자가 고장난 아기는 면역 체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므로 각종 감염성 질환에 걸려 태어난 지 1년 안에 사망한다.
그러나 루이는 프랑스의 피셔 박사와 카바자나 칼보 박사( 인터뷰 참조 )가
유전자 치료를 해준 덕분에 현재 매우 건강하게 살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에 살고 있는 가디너씨는
지난 96년 회사에서 심장 발작으로 쓰러진 뒤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상태가 계속 악화됐다.
결국 가디너씨는 담당 의사로부터
6개월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가디너씨는 보스턴 대학의 이스너 박사로부터
심장에 ‘VEGF’라는 유전자를 주입받고 새 생명을 얻었다.
가디너씨는 산책은 물론 수영까지 다시 즐기면서 건강하게 살고 있다.
이처럼 몇 년전까지 불치병 또는 난치병으로 여겨졌던 질환들이
‘유전자 치료’라는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면서 속속 정복되고 있다. 21세기 첨단 신약으로 떠오르고 있는
유전자 치료제는 지난 90년 미국 국립 보건원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臨床) 실험을 처음 실시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90년 이후 약 600여건의 임상 실험이 이뤄졌으며
4,000여명의 환자들이 자원해 유전자 치료를 받았다.
유전자 치료는 처음엔 선천성 면역결핍증 같은 유전병의 치료를 주요 목표로 삼았지만
지금은 암, 관절염, 순환기 질환은 물론 에이즈(AIDS) 같은
감염성 질환의 정복에도 도전하고 있다.
유전자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까지 만들어진
약들의 원료는 대부분 유기 화합물이거나 단백질이었다.
세균에 감염됐을 때 사용되는 항생제는 화학물질이고,
당뇨병 치료에 쓰이는 인슐린은 단백질이다.
반면 유전자 치료에서는 인간의 유전자(遺傳子)가 약으로 사용된다.
유전자는 세포 내 염색체 속에서 DNA이라는 화학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포의 핵(核) 속에 들어가야만 효능을 발휘한다.
그런데 유전자를 별다른 조작없이 인체에 그대로 주사하면
유전자가 세포핵 속까지 들어갈 확률이 매우 낮다.
따라서 유전자를 이용해 치료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특별한 방법으로 유전자를 세포 속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필요하다.
이것을 ‘유전자 전달체’라고 부른다.
유전자 전달체로는 바이러스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바이러스는 세포 속에 침투하도록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한 생물체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성장하지 못하게 조작한 뒤
여기에 치료 유전자를 심어
‘재조합 바이러스’를 만들어 유전자 치료에 사용한다.
과학자들은 또 유전자를 세포핵 속에 집어넣기 위해
유전자에 특수한 화학 물질을 입히기도 한다.
현재 유전자 치료는 암(癌)이나 관절염처럼
복잡한 메커니즘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의 정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에서 예로 든 루이와 가디너씨는
유전자 하나를 특정한 부위에 투입해 곧바로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단순한’ 질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암이나 관절염 같은 질병은
신체 여러 부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증상이 나타나고
관련된 유전자수도 많기 때문에
하나의 유전자로 병을 치료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최근 ‘P53’이라는
암(癌)억제 유전자를 사용하는 방법은
여러 나라에서 임상 시험의 최종단계가 진행될 정도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고 있다.
또 유전자 치료를 통해 화학 요법의 효과를 높이려는
기발한 아이디어도 실험되는 등 암 치료제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에 반해 치매나 파킨슨씨병처럼
‘뇌’(腦)라는 특정 부위에 문제가 있어서 발생하는 질병은
유전자 치료의 좋은 대상이다.
실제로 뇌에 치료 유전자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은 이미 개발돼,
미국과 뉴질랜드에서는 치매와 파킨슨씨병에 대한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최근에는 발모제의 개발에도 유전자 기법이 도입되고 있다.
이처럼 유전자 치료는 더 이상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며,
벌써 상당한 성과물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수년 전부터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막대한 돈을 투입하고 있으며,
전문 벤처기업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최근 미국 주식시장이 약세국면에 빠져 있으나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종사하는 기업들의 주가는 강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나스닥 등록기업인 ‘셀제네시스’는 직원이 170명에 불과하지만
2002년 3월 현재 시가총액(時價總額)이 7,000억원을 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대형 제약회사 3~4곳의 시가총액을 더한 것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다.
21세기는 바이오 기술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은 말한다.
지난해 2월 ‘생명의 서(書)’로 불리는 인간게놈(유전체) 지도의 해독은
생명탐구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산업화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4만여개로 추산되는
인간 유전자 가운데 현재 5,000여개가 알려진 상태지만
벌써 100여개의 유전자 치료제들이 임상 시험을 거쳤다.
따라서 인간의 유전자가 모두 밝혀지고
이를 바탕으로 유전자 치료제가 속속 등장한다면
‘질병없는 세상’도 언젠가는 도래할 것이다.
▲김선영(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분자 유전학 전공, 영국 옥스퍼드대 이학박사) 96년 국내 최초의 대학내 바이오 벤처기업 설립
▲황우석(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인공 임신학 전공) 95년 소 수정란 복제 성공. 99년 복제송아지 ‘영롱이’탄생시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