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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에서 바쁘게 살다가 보면 어느날 불현듯 산이 나를 부를 때가 있다. 저 먼 먼 산에서 들려오는 나를 부르는 소리...... 그 산의 부름을 나는 도저히 거역할 수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으로 달려가곤 한다. 산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안고.....
![]() *설악산 지도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이 금강산을 지나 뻗어내려 오다가 강원도 동해안의 인제군과 양양군, 속초시, 고성군의 경계지점에서 우뚝 솟아오른 설악산(雪嶽山, 1,708m)은 남한에서 한라산(1,950m)과 지리산(1,915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설산(雪山) 또는 설봉산(雪峯山), 설화산(雪華山)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는 이 산은 사시사철 경치가 아름다워 제2의 금강산이라고도 한다. 설악산이란 이름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한가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여름이 되어야 녹는 까닭에 이렇게 이름지었다.(仲秋始雪至夏而消故名)'는 기록과 '증보문헌비고'의 '산마루에 오래도록 눈이 덮이고 암석이 눈같이 희다고 하여 설악이라 이름 짓게 되었다.'는 기록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외설악(外雪嶽) 쪽만을 설악이라고 했고, 내설악(內雪嶽) 쪽은 따로 한계산(寒溪山)이라고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제 32권 잡지(雜志) 제1 제사조의 '신라에서는 설악을 영산이라고 하여 소사(小祀, 작은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을 보면 적어도 신라 때부터 설악이라는 이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설악산맥의 동쪽 양양군과 속초시, 고성군 지역을 외설악, 서쪽의 인제군 지역을 내설악, 남쪽의 오색약수(五色藥水)터와 장수대(將帥臺)일대를 남설악이라 한다. 내외설악은 다시 북내설악과 남내설악, 북외설악과 남외설악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암봉들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설악산은 내외설악과 남설악을 막론하고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산세와 기암절벽, 깊은 계곡, 그리고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산으로 사시사철 환상적인 절경을 연출한다. 또한 기암절벽들 사이로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는 도처에 폭포와 소가 있고, 우뚝 솟은 암봉들 밑에는 사찰과 암자가 마치 제비집처럼 들어앉아 있어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봄철 바위틈에서 피어나는 솜다리와 진달래, 철쭉을 비롯한 들꽃, 여름철의 맑고 깨끗한 계곡과 폭포, 가을철의 온산이 불타는 듯한 화려한 단풍, 겨울철의 눈덮힌 고봉준령들이 은색의 세계로 변하는 설경이 특히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설악산은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이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가을이 되면 대청봉에서 시작된 단풍이 주전골과 천불동, 수렴동, 공룡능, 서북능, 화채능 일대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장관을 이루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길을 뗄 수 없게 한다. 겨울철 설악산은 남한에서 가장 일찍 눈이 오고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눈이 쌓여 있는 산이다. 눈이 내리면 설악산의 능선과 계곡은 일순간 동화속에 나오는 눈의 나라로 변한다.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흰눈을 머리에 인 채 서 있는 소나무와 우거진 숲에 피어난 상고대는 그야말로 한폭의 진경산수화다. 설악산의 설경은 미시령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북주릉과 대승령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서북릉에서 가장 잘 조망된다.
외설악은 천불동계곡(千佛洞溪谷)을 사이에 두고 솟아오른 기암절벽이 웅장하다. 외설악에는 대청봉과 화채봉, 칠성봉, 집선봉, 노적봉, 달마봉(達磨峰, 635m), 관모산(874m) 등 산봉우리들, 화채능선과 천불동계곡 등 능선과 계곡, 울산(蔚山)바위와 흔들바위, 권금성, 와선대(臥仙臺), 비선대(飛仙臺), 금강굴(金剛窟), 귀면암(鬼面巖) 등 기암절벽, 오련폭포(五連瀑布), 양폭포(陽瀑布), 음폭포(陰瀑布), 천당폭포(天堂瀑布), 육담폭포(六潭瀑布), 비룡폭포(飛龍瀑布), 토왕성폭포(土旺城瀑布) 등 폭포, 문수담(文殊潭), 이호담(二壺潭) 등 소(沼)와 같은 명승지가 많이 있다. 또 외설악의 북부에는 쌍천(雙川)이, 남부에는 양양 남대천(南大川)이 각각 동해로 흘러들어 간다. 남외설악에는 점봉산, 망대암산, 주전골 등의 산과 계곡, 용소폭포, 설악폭포, 주전폭포, 십이폭포, 치마폭포, 백암폭포, 독주폭포 등의 폭포가 있으며, 오색약수와 온천도 유명하다. 대청봉에 오르는 가장 빠른 등산로는 오색에서 시작된다.
산세가 뛰어난 내설악은 설악에서 가장 장엄하고도 화려한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내설악에는 백담계곡(百潭溪谷), 수렴동계곡(水簾洞溪谷), 가야동계곡(伽倻洞溪谷), 구곡담계곡(九曲潭溪谷), 백운동계곡(白雲洞溪谷)과 같은 깊고 아름다운 계곡이 많다. 이들 계곡에는 와룡폭포, 유달폭포, 쌍폭, S폭포, 백운폭포, 오세폭포, 쌍룡폭포, 용손폭포, 용아폭포, 옥탕폭포, 용탕폭포, 대승폭포 등 수많은 폭포가 있고, 남내설악의 탕수동계곡(湯水洞溪谷)에는 독탕(甕湯), 북탕, 무지개탕(虹湯), 용탕(龍湯), 십이선녀탕(十二仙女湯) 등 많은 와(窪)와 소가 있다. 남내설악의 인제쪽 한계령 초입에는 옥녀탕과 장수대가 있다. 높이가 무려 88m에 이르는 대승폭포는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더불어 한국의 3대 폭포 중 하나다. 내설악의 북부에는 북천(北川)이, 남부에는 한계천(寒溪川)이 서쪽으로 흘러서 북한강의 상류로 들어간다.
설악산은 명산답게 유서깊은 사찰과 암자가 많다. 그중에서도 내설악의 백담사와 외설악의 신흥사가 대표적인 사찰이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寂滅寶宮) 중 하나인 봉정암(鳳頂庵)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224m)에 자리잡은 암자다. 계조암(繼祖庵)은 많은 조사(祖師)들을 배출하였고, 다섯살 난 신동이 성불했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오세암(五歲庵)은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이들 암자 외에도 내원암(內院庵)과 영시암(永矢庵), 안락암(安樂庵), 안양암(安養庵) 등이 있다.
설악산에도 8경이라는 것이 있을까? 있다. 이른바 설악팔경(雪嶽八景)이라는 것이다. 설악팔경은 용비승천(龍飛昇天,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보이는 폭포), 운악무해(雲嶽霧海, 운해 위로 솟아오른 산봉우리), 칠색유홍(七色有虹, 폭포에서 생기는 7색의 무지개), 개화설경(開花雪景, 겨울철의 상고대와 설경), 홍해황엽(紅海黃葉, 가을철의 단풍), 춘만척촉(春滿
![]() *권금성
설악동 매표소를 지나자 화채능선의 끝봉우리인 권금성(權金城) 암봉(860m)이 우뚝 솟아 있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절벽 위에 있는 권금성을 오르려면 케이블카를 이용해야 한다. 권금성의 전망대 구실을 하는 봉화대는 설악산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 중의 하나다. 권금성의 봉화대 바위봉우리에 올라서면 공룡능선과 화채능선, 천불동계곡, 울산바위, 와선대, 토왕성폭포 등 아름다운 외설악의 절경과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설악산이 온통 울긋불긋 물드는 가을 단풍철 이곳에서 바라보는 외설악의 단풍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권금성은 둘레가 약 3.5km에 이르는 고려시대의 산성이다. 설악산성(雪嶽山城), 옹금산성(擁金山城), 토토성(土土城)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성벽이 거의 다 허물어지고 성터만 남아 있다. 암봉 정상부의 80칸이나 되는 넓은 반석 둘레를 에워싸고 있는 이 산성은 천연의 암벽 요새지로 정상에는 실료대(失了臺)와 방령대(放鈴臺)가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옹금산석성(擁金山石城)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권금성은 설악산 꼭대기에 있으며, 석축이다. 둘레는 1,112척(尺)이고 높이는 4척(尺)이었는데, 지금은 반쯤 무너졌다. 예전에 권(權)씨, 김(金)씨 두 집이 이곳으로 피난한 까닭에 권금성이라고 이름하였다는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온다. 낙산사 기록에 몽고가 우리 나라에 쳐들어 왔을 때, 이 고을에서는 설악산에다 성을 쌓아서 방어하였다고 나오는데, 그곳이 여기가 아닐까 생각된다.(權金城在雪嶽頂石築周一千一百十二尺高四尺今半頹落俗傳昔有權金二家避亂于此故名洛山寺記所云天兵蘭入我疆是州於雪嶽山築城守禦疑卽此)'는 기록이 보인다. 또 신라시대 권장군과 김장군 두 장수가 난을 피하기 위해 이 산성을 쌓았다는 전설에서도 권금성이란 이름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낙산사기(洛山寺記)' 인용에서 몽고군이 쳐들어왔을 때 백성들이 이곳에 성을 쌓고 피난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권금성은 적어도 고려 말 이전에 축성된 산성임을 알 수 있다.
*마등령에서 저항령에 이르는 백두대간
설악동 소공원으로 들어서니 마등령(馬等嶺 또는 馬登領, 1,220m)에서 진대봉(1,327m, 일명 마등령봉), 1250봉을 지나 저항령(低項嶺, 1,100m)으로 뻗어가는 눈덮힌 백두대간이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마등령 바로 오른쪽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진대봉이고 그 앞에 솟아 있는 암봉이 세존봉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안부는 저항령이고 그 왼쪽의 뾰족한 봉우리가 1250봉이다. 백두대간 설악산맥을 횡단하는 마등령은 인제군 북면 용대리와 속초시 설악동을 잇는 고개로 말의 등처럼 생겼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천불동의 비선대에서 금강굴을 지나 마등령을 넘으면 오세암과 영시암을 거쳐 백담사로 내려갈 수 있다. 마등령을 기점으로 신선대까지 이어지는 험준한 암릉이 바로 공룡능선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공룡능선과 천불동, 화채능선, 그리고 대청봉의 조망이 일품이다. *신흥사 일주문
신흥사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일주문(一柱門)을 지난다. 속계와 불계의 경계인 일주문에서 속세의 묵은 때를 벗어놓고 경건한 마음으로 신흥사 경내로 들어간다.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양식으로 일주문을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무언의 가르침이 담겨 있으리라.
신흥사는 외설악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자장율사는 652년(진덕여왕 6년)에 향성사를 창건하였는데, 이때 계조암(繼祖庵)과 능인암(能仁庵)도 함께 지었다. 698년(효소왕 7년)에 향성사가 능인암과 함께 불타 버린 뒤, 701년에 의상(義湘)대사가 능인암터에 이 절을 중건하고 선정사(禪定寺)로 이름을 고쳤다. 의상은 선정사에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등 삼존불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선정사는 1642년(인조 20년)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1644년에 영서(靈瑞)와 연옥(蓮玉), 혜원(惠元) 등 세 승려는 소림암(小林庵)에서 나타난 신인(神人)으로부터 이곳에 절을 지으면 3재(災)가 범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선정사 옛터 아래쪽 약 10리 지점에 다시 절을 지었다. 처음에는 신인으로부터 절터를 점지받았다고 하여 절이름을 신흥사(神興寺)라 하였는데, 중건을 거친 후 최근 다시 신흥사(新興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신흥사 청동좌불
일주문을 지나자 바로 오른쪽으로 낮으막한 산봉우리 앞에 청동불상이 웅장한 자태로 앉아 있다. 연화대 위에 결가부좌를 튼 부처님은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선정에 든 모습이다. 한국인의 오랜 염원인 남북통일을 발원하고 계심인가..... 11년간의 대역사 끝에 1997년 10월 25일 완공된 신흥사 대불은 높이 14.6m, 좌대높이 4.3m, 좌대직경 13m의 세계 최대 규모의 청동불상으로 청동 1백 8톤이 들어갔다고 한다. 동국대 황수영 전 총장, 홍윤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장, 정영호 교원대 박물관장, 김정기 한림대 교수의 자문을 받아 김성호 불교미술관 대표가 조성한 이 청동대불은 통일을 염원하며 세웠기에 통일대불로도 부른다. 부처상의 원만한 상호는 석굴암 부처상을 비롯해서 한국의 백대 불상의 상호를 컴퓨터로 분석해 조성한 것으로 이 시대의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청동좌대의 둘레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16나한상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통일대불의 복장에는 1992년 미얀마 정부가 기증한 부처의 진신사리 3과와 다라니경, 철보 등 각종 유물이 봉안되었다고 한다. *신흥사 사천왕문
신흥사 경내로 들어가려면 내원암골을 건너야 한다. 신흥사 앞을 흐르는 개울을 일러 세심천(洗心川)이라고 부른다. 세심천에 가로놓인 세심교(洗心橋)를 건너면서 마음의 더러운 때를 씻는다. 세심교에서 울창한 송림 너머로 바라보는 울산바위가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세심교를 건너면 바로 신흥사다. 눈을 부릅 뜬 사천왕상이 지키는 사천왕문(四天王門)으로 들어선다. 사천왕은 불법을 수호하고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불도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서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천왕이다. 어렸을 때는 저 사천왕상들이 왜 그리도 무서웠던지...... 지금은 무섭다기보다는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진다.
천왕문을 지나면 극락보전으로 가는 통로인 보제루(普濟樓, 강원도 지방 유형문화재 제104호)가 나타난다. 건물의 하부가 기둥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보제루 밑을 지나면 대웅전격인 극락보전 앞마당에 올라서게 된다. 보제루는 조선 영조 46년(1770년)에 세워진 건물로 극락보전의 좌우에 있는 운하당, 적묵당과 함께 마당을 둘러싸 사찰의 아늑한 공간성을 확보해 주고 있다. 보제루 안에는 법고와 목어, 범종, 경판 등이 보관되어 있으며, 이 절이 왕실의 원찰(願刹)이었음을 보여 주는 현판을 비롯한 몇개의 현판과 중수기가 걸려 있다. 또 이곳에는 휴정(休靜) 등 고승 60여 스님의 진영(眞影)이 안치되어 있으며, 조선시대 효종이 하사한 향로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진필(眞筆)도 있다. *신흥사 극락보전
보제루를 지나 돌계단을 오르자 신흥사 극락보전(新興寺 極樂寶殿, 강원도 지방 유형문화재 제14호)이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극락보전은 신흥사의 본전(本殿)으로 조선 인조 25년(1647)에 처음 지어졌으며, 영조 26년(1750)과 순조 21년(1821) 두 번에 걸쳐 수리를 하였다. 건축양식은 조선시대 후기 건축의 일반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중앙의 공포(拱包,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맞추어 댄 나무쪽들)와 단청이 매우 아름다우며, 전면 중앙의 꽃살 문양 문과 협칸의 빗살 문양 문의 솜씨도 뛰어나다. 영조 37년(1761)에 다시 조성된 3계 5단의 전면 석계단은 진경시대(眞景時代)의 조각수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소맷돌을 용 모양으로 마감하고, 바깥 면에는 귀면 형태의 나어두(羅魚頭)와 삼태극(三太極) 및 비운문(飛雲文) 문양을 양각했으며, 위아래로 안상대를 두르는 등 사찰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다양한 문양으로 만들어졌으나 그 조각작품만큼은 훌륭하다.
극락보전 안에는 조선 중기 이후에 조성된 아미타불을 봉안하였고 그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로 모셔져 있다. 극락보전은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봉안하는 보배로운 전각이란 뜻이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부처로 무량수불, 무량광불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불교가 들어온 이래 일찍부터 아미타신앙이 성행하였음은 수많은 사찰의 극락보전과 무량수전, 미타전에 봉안된 아미타불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바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은 누구나 영원하면서도 지극한 행복을 소원한다. 이 지극한 행복을 불가에서는 극락 또는 안양(安養)이라고 한다. 누구나 올바른 깨달음을 통해 극락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부처가 바로 아미타불이다.
신흥사는 1912년 31본산 제도 실시 때부터 건봉사(乾鳳寺)의 말사로 있다가, 1971년에 대한불교 조계종(大韓佛敎 曺溪宗) 제3교구 본사로 승격된 뒤, 현재 양양, 속초, 강릉 등지의 25개 사암(寺庵)을 거느리고 있다. 울산바위가 있는 내원암골만 해도 안양암과 내원암, 계조암 등 세 개의 부속암자가 있다. 안양암은 신흥사 동북방 500m 지점에 있는 암자이다. 안양암이라고 이름지은 것은, 혜원(慧遠)법사의 백련결사(白蓮結社)에 동참하여 안양국(安養國)에 왕생(往生)하자는 뜻이라고 한다. 내원암은 신흥사 북서쪽 1.5㎞ 지점에 위치한 암자로 정문에는 김정희의 친필 '內院庵' 현판이 걸려 있다. 계조암은 신흥사 북서쪽 2.3㎞ 지점에 위치한 자연석굴로 된 암자로 바로 뒤에 울산바위가 있다. 일찌기 동산(洞山), 각지(覺智), 봉정(鳳頂) 세 조사가 상주하면서 정진하며 수도했고, 또 원효(元曉), 의상(義湘) 두 조사가 서로 이어서 수도하던 도량이라고 하여 계조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신흥사의 당우로는 극락보전과 보제루, 명부전(冥府殿), 용선전(龍船殿), 천왕문, 일주문, 불이문(不二門), 적묵당(寂默堂), 설선당(說禪堂) 등이 있다. 신흥사는 사찰 전체가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극락보전과 보제루 외에도 향성사지삼층석탑(보물 제443호), 청동시루, 범종, 경판 277매(枚,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5호), 사천왕상 등의 중요문화재가 있다. 이 가운데 청동시루는 순조의 하사품으로 벽파(僻派)가 역대 왕조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것이고, 경판은 효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한자와 한글, 범어(梵語)를 병용하고 있어 희귀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경판은 '은중경(恩重經)' 전질과 '법화경' 일부가 소장되어 있다. 사천왕상은 1981년 인도산 원목으로 조성하여 봉안한 것이라고 하며, 범종은 1400여년 전에 만들어진 향성사의 종이라고 전한다. *백두대간 저항령과 황철봉
신흥사를 떠나 천불동계곡으로 향한다. 무명용사비와 청운정 휴게소를 지나 저항령계곡 하류에 놓인 다리 위에 잠시 멈춰서서 저항령과 황철봉(黃鐵峰, 1,381m))을 바라본다. 계곡의 끝에 있는 안부가 저항령이고 그 오른쪽에 있는 봉우리가 황철봉, 왼쪽에 있는 봉우리가 1250봉이다. 저항령은 동쪽으로는 정고평(丁庫坪)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길골(路洞)을 거쳐 백담사에 이른다.
저항령을 늘목령이라고도 하는데, 노루목고개나 목우(牧牛)재와 마찬가지로 길게 늘어진 고개라는 뜻을 가진 '늘으목, 늘목'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노루목은 늘목이 변해서 된 말로 한자로 표기하면 장항(獐項)이다. 여기에 고개 령(領)자를 붙여서 된 장항령(獐項領)이 발음상 저항령으로 변하고, 이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의미와는 관계없이 한자어로 저항령(低項領)이라고 표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등령과 마찬가지로 저항령도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이용한 고개이다. 정고평은 소공원에서 비선대로 가는 중간에 있는 벌판으로 현재 휴게소와 무명용사비가 있는 곳이다. 옛날 사람들이 마등령을 넘어 다닐 때 백담사 곳집이 있었으므로 정고(丁庫)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 정고에 벌판의 뜻을 가진 평(坪)자가 붙어서 정고평이 되었다. 황철봉은 백두대간 설악산맥 북주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남쪽으로는 저항령, 북쪽으로는 미시령으로 이어진다. *천불동계곡의 비선대 대피소 *비선대 *미륵봉과 적벽
와선대 휴게소에서 계곡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비선대(飛仙臺)가 나온다. 비선대에도 거대한 암반이 있고 바로 뒤에는 보기만 해도 아찔한 미륵봉(彌勒峰)과 적벽(赤壁)이 우뚝 솟아 있다. 암반으로 떨어지는 폭포의 담(潭)에 고인 물이 시리도록 맑고 푸르다. 미륵봉은 비선대 바로 북쪽에 있는 큰 바위봉우리로 마치 미륵불처럼 우뚝 솟아 있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또 장군의 형상과 기상을 갖고 있다고 해서 장군봉(將軍峰)이라고도 한다. 미륵봉 중턱에는 금강굴(金剛窟)이 뚫려 있다. 금강굴은 길이 18m의 자연 석굴로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석굴의 내부에는 이전에 불을 땠던 구들의 흔적과 불상 등의 유물이 있었는데, 요즘은 신흥사의 부속암자로 되어 새 불상을 모셔 놓았다. 미륵봉 오른쪽의 쓰러질 듯 기울어진 채 솟아 있는 붉은색 암봉이 적벽이다. 적벽은 설악산에서 미륵봉, 울산바위와 함께 산악인들이 암벽등반훈련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암장으로 알려져 있다. 적벽에서 시작되는 능선은 미륵봉과 세존봉을 지나 진대봉으로 이어진다.
와선대에 누워서 경치를 감상하면서 놀던 마고선이 이곳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비선대라고 한다. 이름난 명승지에는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와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글과 시를 남겼다. 비선대 암반에는 이곳을 찾은 시인묵객들이 남긴 많은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백하(白下) 윤순(尹淳, 1680~1741)이 썼다는 '飛仙臺'라는 글씨다. 혹자는 이 글씨를 양사언(楊士彦)이 썼다고도 하지만 '양양읍지(襄陽邑誌)'에는 분명 윤순의 작품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영시암에 은거하였던 조선시대 후기의 유학자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도 비선대의 절경에 감탄한 나머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瓊臺府金潭 경대에서 금옥처럼 맑은 물을 굽어 보니
설악동에서 비선대 휴게소까지는 비교적 길이 좋은 편이라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비선대에서 남쪽으로는 천불동계곡이고, 서쪽으로는 마등령으로 이어진다. 천불동계곡은 비선대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설악산의 가장 대표적인 골짜기로 설악의 절경들이 거의 다 이곳에 모여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협곡을 이룬 계곡 양쪽의 기암괴봉들은 마치 천불(千佛)이 꽉 들어차 있는 듯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어 천불동이란 이름이 붙었다. 비선대에서 대청봉으로 올라가면서 오른편으로는 토막골, 설악골, 잦은바위골, 용소골, 왼편으로는 칠선골, 염주골, 죽음의계곡이 갈라진다. *설악골
천불동계곡 초입부터 기암절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형제폭포가 있는 토막골을 지나 설악골에 이른다. 커다란 바위들이 쌓여 설악골 입구를 막고 있다. 눈덮힌 계곡은 얼어붙어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설악골은 공룡능선에서 발원하는 여러 골짜기가 모여드는 계곡으로, 첨봉들이 삐쭉삐쭉 연달아 솟구쳐 있는 천화대에서 범봉에 이르는 암릉과 마등령봉에서 미륵봉에 이르는 능선이 양옆으로 뻗어내려 짜릿하도록 멋진 절경을 이룬다. 저 계곡을 타고 가면 범봉으로 해서 공룡능선의 천화대로 오를 수 있다. 설악골에서 천화대로 오르는 등산로에는 범봉길과 석주(石柱)길, 염라(閻羅)길, 흑범길 등이 있는데, 하나같이 릿지길이어서 전문산악인들만이 주로 다닌다. *이호담 *귀면암
설악골을 떠나 문수담(文殊潭)에 이르니 맑고 깨끗한 옥류수가 꽁꽁 얼어붙어 있다. 문수담은 문주담(文珠潭)이라고도 한다. 이곳에는 문수(文殊)보살이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아득한 옛날 문주봉이 생겨날 때 석가여래의 왼편에서 지혜를 맡은 보살인 문주보살이 이곳의 맑은 물에서 목욕을 하였다는...... 문수담을 지나면 곧 이호담(二壺潭)을 만난다. 이호담도 얼어붙어서 빙판으로 변해 있다. 빙판 위로 나온 바윗돌 위에는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다. 문수담과 귀면암(鬼面岩) 사이에 있는 이 담은 배가 날씬하게 볼록한 호리병을 닮은 담이 두 개가 있기에 이호담이라고 한다. 이호담 위로 솟아 있는 바위봉우리가 귀면암이다.
이호담에서 조금 더 가면 오른쪽으로 천화대 능선과 신선대 능선 사이에 있는 계곡인 잦은바위골 입구가 나타난다. 잦은바위골에서 귀면암 중턱으로 올라선다. 귀면암은 무시무시하게 생긴 귀신의 얼굴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란 뜻인데....... 아무리 자세히 뜯어봐도 무시무시한 구석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 사실 귀면암이라는 이름은 근래에 붙여진 것이다. 옛날에는 천불동계곡의 입구에 우뚝 버티고 선 모습이 마치 수문장처럼 보인다고 해서 겉문다지(또는 겉문당)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아마도 금강산에 있는 귀면암을 염두에 두고 붙인 이름은 아닌지...... *병풍교
귀면암을 내려가 계곡을 두어번 건너서 15분 정도 오르면 병풍암 절벽을 횡단하는 병풍교가 나타난다. 병풍암 바위벽에는 대한적십자사에서 병풍교를 설치했다는 것을 알리는 동판이 박혀 있다. 병풍교 위에서 천불동계곡을 둘러보니 기암절벽과 암봉들이 웅장하고도 장엄하여 숨이 막힐 정도다. 천 분의 부처님이 나투심인가! 병풍교를 내려가 또 한번 계곡을 건너면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는 엄청나게 긴 철계단길이 기다린다. 철계단 위에도 눈이 두텁게 쌓여 있는데다가 사람들이 수없이 밟고 다녀서 미끄럽기 짝이 없다.
왼쪽으로 칠선(七仙)골 입구를 지난다. 칠선골은 천불동계곡에서 동남쪽으로 갈라져 그 끝이 화채봉에 이르는 계곡으로 구만물상(舊萬物相)골이라고도 한다. 칠선폭포가 있는 이 계곡은 아주 험하고 위험하다. 협곡의 오른쪽을 따라서 오르면 계곡이 크게 왼쪽으로 돌아가면서 철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용소(龍沼)골 입구가 나온다. 신선대에서 발원하는 용소골은 천불동계곡의 남서쪽으로 갈라진 골짜기이다.
*오련폭포
용소골 입구를 지나면 왼쪽으로 협곡이 더욱 좁아지면서 오련폭포(五連瀑布)가 나타난다. 깍아지른 듯한 바위 협곡 사이로 폭포수가 다섯 번 굽이치면서 연달아 떨어지므로 오련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에는 이 폭포 일대 암벽을 천불동계곡 앞문의 수문장 같다고 하여 앞문다지라고 불렀다. 오련폭포도 얼음이 두껍게 얼어붙어서 폭포다운 면모를 찾을 수 없다. 폭포 오른쪽의 거의 절벽과도 같은 급사면에는 긴 철계단을 설치하여 오르내리기에는 어렵지 않으나, 겨울철 폭설이 내리면 눈사태의 위험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양폭대피소
*만경대
오련폭포에서 약 10분쯤 걸려서 도착한 양폭(陽瀑)산장에는 단체산행을 온 산행객들로 붐빈다. 산장 뒤에는 까마득한 암봉이 솟아 있다. 양폭산장에서는 컵라면과 막걸리도 팔고 있다. 산장 앞에 놓여 있는 탁자에 앉아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운다. 옆자리에 앉은 산행객이 김치를 먹으라고 건네준다. 산중에서 먹는 라면 맛이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모른다. 양폭산장에서는 숙박도 할 수 있는데, 하루 묵는 비용은 3천원이다. 침구가 없으면 대여도 가능하다. 담요는 한장에 천원, 침낭은 2천원이다.
양폭산장 앞에 우뚝 솟아 있는 만경대(萬景臺) 암봉이 햇빛을 받아서 하얗게 빛나고 있다. 양폭의 만경대는 설악산에 있는 세 개의 만경대 중 외설악 만경대다. 만경대는 화채봉에서 양폭으로 내려오는 길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좁고 높은 암봉이다. 전망이 뛰어나 주변의 수많은 절경들을 볼 수 있어서 만경대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또 많은 경관을 바라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여 망경대(望景臺)라고 부르기도 한다. 양폭산장에서 만경대를 거쳐 화채능선의 화채봉과 대청봉 사이에 있는 1253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이 등산로는 릿지길이 많아서 위험하니 야간이나 악천후시에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양폭포
양폭포(陽瀑布)는 양폭산장에서 백여 미터 정도 올라간 곳에 있다.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던 양폭포도 얼어붙어 빙벽으로 변해 있다. 폭포 밑의 담도 얼음이 얼마나 두껍게 얼었는지 얼음장 위에 올라가 발을 굴러보아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양폭포의 왼쪽으로 가까운 거리에는 음폭포(陰瀑布)가 있다. 두 폭포 중 하나는 바깥에 있다고 해서 양(陽)폭포, 다른 하나는 안쪽의 음폭골 입구에 있다고 해서 음(陰)폭포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폭포를 줄여서 양폭(陽瀑)이라고 부른다. 양폭에서는 계곡 건너편으로 음폭과 음폭골이 들여다 보인다. 음폭골을 거슬러 올라가면 염주(念珠)골로 이어진다. 음폭골과 염주골을 합쳐서 염주골이라고도 한다. 염주골은 대청봉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염주폭포(念珠瀑布)를 거쳐 음폭포로 뻗어내린 골짜기다. 염주폭포는 마치 염주처럼 물방울이 떨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염주골의 서쪽에는 건폭(乾瀑)골(일명 죽음의 계곡)이 있다. 천당폭포로 가기 위해서는 양폭의 바위절벽에 설치된 철계단을 오른 다음 또 철다리를 건너야 한다. *천당폭포
양폭을 지나면 협곡이 더욱 가파르고 좁아져 V자 형태를 이룬다. 양폭에서 약 30분쯤 오르면 천불동계곡의 본류에 있는 폭포로는 마지막 폭포인 천당폭포(天堂瀑布)에 이르게 된다. 설악동에서 여기까지는 약 7.8km의 거리다. 가파른 천불동계곡을 땀을 흘리며 힘들게 오른 끝에 기암절벽 사이로 우렁차고도 시원하게 쏟아지는 한 줄기 폭포를 만나면 천당이 따로 없으리라. 그래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천당폭포는 기암절벽과 암봉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손바닥만한 하늘만 빠꼼하게 보인다. 천당폭포도 빙벽이 얼어붙었으나 물이 떨어지는 담은 얼지않았다. 빙벽속으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온다.
폭포의 담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쌓여 있어 답답하게 느껴진다. 천불동의 폭포 중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은 천당폭포는 원래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천당폭포는 직폭의 폭포수가 검푸른 색을 띤 둥글고 깊은 담으로 떨어져 흘러넘치는 아름답고 멋진 폭포였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폭포 바로 위의 절벽에서 무너져 내린 거대한 바위덩어리들이 담을 메워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폭포의 물줄기가 심연을 향하여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장관을 영영 볼 수 없게 되어 매우 아쉽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천당폭포의 옛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천당폭포 일대도 험준하고 가파른 바위협곡지대라서 철계단과 철다리가 없으면 오를 수 없다. 천당폭포에서 40분 정도 오르면 계곡에서 멀어져 오른쪽 산비탈로 가파른 등산로가 이어진다. 눈이 많이 쌓여 있는데다가 경사가 급해 몹시 힘이 든다. 왼쪽으로 천불동계곡의 맨 끝 골짜기인,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죽음의 계곡(일명 건폭골)이 한눈에 들어온다. 죽음의 계곡 끝으로 대청봉이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죽음의 계곡은 대청봉에서 희운각으로 곧바로 내려오는 능선의 바로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자주 눈사태가 일어나는 곳이다. 이 계곡에서는 설상훈련과 빙폭훈련을 할 수가 있어서 히말라야 8천 미터급 등정을 위한 해외원정대들이 전지훈련차 많이 찾는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종종 등반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1969년에는 한국산악회원 열 명이 죽음의 계곡에서 해외원정을 위한 훈련을 하다가 눈사태를 만나 목숨을 잃었다. 죽음의 계곡 루트는 1956년 8월 한국산악회원 전감(田堪)씨가 최초로 개척한 이래 아직 뚜렷한 등반로는 없다.
죽음의 계곡에서 등반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원인을 풍수지리학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볼 때 설악산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산세라고 말할 수 있다. 대청봉은 닭의 머리와 부리, 화채능선은 오른쪽 날개, 서북능선은 왼쪽 날개, 공룡능선은 몸통에 각각 해당하고, 죽음의 계곡은 바로 닭의 목에 해당한다. 닭의 목에 먹이가 될 만한 것이 붙어 있을 때, 닭이 그것을 쪼아 먹는 것은 당연지사라. 닭의 먹이는 죽음의 계곡을 오르려고 하는 사람일 터...... 믿거나 말거나.......
한동안 눈에 푹푹 빠지면서 가파른 비탈길을 오른 끝에 백두대간 무너미고개로 올라선다. 고개마루에는 공룡능선을 넘어온 등산객들이 다리를 쉬고 있다. 여기서 공룡능선은 북쪽, 대청봉은 남쪽으로 가야 한다. 머리를 들어 북쪽을 바라보니 신선대(神仙臺) 암봉이 위압적으로 솟아 있다. 순간 신선대의 수없이 많은 첨봉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기라도 하듯 귀가 먹먹해지는 것을 느낀다. 신선대는 일명 신선암(神仙岩)이라고도 부른다. 공룡능선은 바로 저 신선대에서 마등령까지 이어지는 능선이다. 무너미고개 전망대에서는 소청봉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능선과 화채능선, 천불동계곡이 잘 보인다. 무너미고개는 천불동계곡과 가야동계곡의 경계지점으로 내외설악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무너미'의 '무'는 '물'에서, '너미'는 '넘는다(건넌다)'에서 온 말이다. *희운각대피소
무너미고개에서 10분도 채 안 걸려 희운각(喜雲閣)대피소에 이른다. 설악산에 들어오면 가끔 묵어가는 곳이다. 대피소 마당에는 눈을 치울 곳이 없어 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여기도 다리쉼을 하고 있는 등산객들이 여럿 보인다. 희운각대피소는 1971년 동쪽으로는 천불동계곡, 서쪽으로는 가야동계곡, 남쪽으로는 대청봉, 북쪽으로는 공룡능선으로 갈라지는 사거리에 한국산악회 최태묵(崔泰默)씨가 세웠다. 설악산에서는 중청대피소, 소청대피소에 이어 세번째로 높은 곳에 위치한 대피소다.
양폭산장에서 2km 떨어진 희운각대피소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여기서 대청봉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대피소 뒤로 뻗어올라간 백두대간 주능선을 따라 곧바로 대청봉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다. 그러나 이 구간은 휴식년제에 들어가 있어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2001년 내가 백두대간을 순례할 때는 대청봉에서 이 등산로를 따라서 희운각까지 내려온 적이 있다. 다른 하나는 대피소 앞을 흐르는 가야동계곡의 상류에 놓인 다리를 건너서 소청봉과 중청봉을 거쳐서 대청봉에 이르는 등산로다. *소청봉 능선의 철계단길
희운각대피소를 떠나 가야동계곡에 가로놓인 다리를 건너면 바로 소청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철계단길이 시작된다. 철계단은 눈속에 거의 반 이상 파묻혀 버렸다. 여기서부터 소청봉 정상까지는 매우 가파른 오르막길이어서 매우 힘이 드는 구간이다. 희운각대피소에서 소청봉과 중청봉을 거쳐 대청봉에 이르는 거리는 2.5km로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 남짓 걸린다. 그중에서 소청봉 능선이 가장 힘이 들고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소청봉과 백두대간 중청봉 *백두대간 대청봉
소청봉 능선은 가파르고 힘이 많이 들지만 전망은 뛰어나다. 능선의 중간쯤 올랐을까..... 전망이 탁 트인 바위봉우리가 나타난다. 바위봉우리에 올라서니 흰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소청봉과 중청봉, 대청봉이 다 보인다. 마음은 벌써 소청봉에서 중청봉을 건너뛰어 대청봉으로 달려간다. 파아란 하늘빛을 온전히 그대로 받았음인가! 눈이 하얗게 덮여 있는데도 대청봉 일대는 오히려 푸르른 빛을 띠고 있어 청청(靑靑)한 기운이 흘러 넘친다. 맑은 하늘기운과 푸르른 산기운에 흠뻑 젖어 어느덧 내 몸과 마음도 청청해진다. 여기서 바라보니 저 산봉우리 이름을 왜 청봉(靑峰)이라 했는지를 비로소 알 수 있겠다. 산을 벗어나야 산이 보이는 법..... 산을 제대로 보려면 그 산에서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아야 한다. 성해응(成海應)의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도 '멀리서 보면 아득하게 푸른색으로 보인다. 그런 까닭으로 저 높은 산봉우리를 가리켜 이름을 청봉이라고 하였다.(遠見只標渺而靑故指其絶頂而名曰靑峰)'라는 기록이 보인다. *소청봉 정상
가파른 눈길을 오른 끝에 소청봉(小靑峰, 1,666m) 설원으로 올라서니 천불동에 떠 있는 흰구름이 발밑에 있다. 신선대에서 천화대, 나한봉,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공룡능도 저 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공룡능에서 황철봉, 미시령 건너 신선봉, 대간령 너머 마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름이 발밑에 떠 있으니 마치 내가 신선이라도 된 듯한 황홀경에 빠진다. 소청봉에서는 공룡능과 용아장성능, 서북능, 화채능이 잘 조망된다. 소청봉은 백담사와 희운각대피소, 대청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이기도 하다. 소청봉에서 서북쪽 능선을 타면 소청대피소, 봉정암을 지나 구곡담계곡, 수렴동계곡, 백담계곡을 거쳐 백담사로 내려갈 수 있다. 남동쪽 능선길은 중청봉을 거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용아능선
구곡담계곡과 가야동계곡 사이에 만리장성처럼 솟아오른 용아릉(龍牙稜)이 맹렬하고 세찬 기세로 뻗어간다. 용아릉 왼쪽이 구곡담계곡, 오른쪽이 가야동계곡이다. 용아릉은 바로 저 봉정연봉에서 시작해서 수렴동대피소 바로 뒤에 있는 옥녀봉까지 뻗어내린 험준한 암릉이다. 옥녀봉 오른쪽에 있는 암봉은 내설악의 만경대로 오세암이 바로 여기에 있다. 능선에 솟아 있는 첨봉들이 마치 용의 이빨처럼 생겼다해서 용아릉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능선은 내설악을 가르며 소청봉을 향해 뻗어오른 모습이 장대한 성곽과 같다고 해서 용아장성(龍牙長城)이라고도 부른다. 용아릉은 설악산의 여러 등산로 중에서 가장 위험한 코스로 알려져 있다. 이 능선을 오르다가 바위절벽에서 추락하는 사고로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용아릉에는 험준한 암봉을 돌아서 갈 수 있도록 곳곳에 우회로가 있다. 우회로를 이용하면 위험한 구간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암릉길이 워낙 가파르고 험하여 추락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라서 주의해야 한다.
가야동계곡(伽倻洞溪谷)은 무너미고개에서 내설악의 수렴동대피소 뒤쪽까지 6㎞에 걸쳐 이어지는 계곡으로 전에는 개골이라고 불렀다. 수렴동계곡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되는 가야동계곡은 구곡담계곡과 더불어 내설악의 대표적인 계곡이다. 그러나 폭포와 소가 많고 계류를 수없이 건너야 하기 때문에 여름철 우기에 갑자기 물이 불어나면 매우 위험하다. 수렴동대피소에서 20분쯤 오르면 천왕문에 이르는데, 이 일대의 협곡과 가을 단풍은 유명하다. 십이선녀탕계곡과 함께 설악산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다. 와룡연을 지나면 왼쪽으로는 오세암, 오른쪽으로는 봉정암, 가운데 계곡을 따라 오르면 희운각대피소로 가는 세 갈래 길이 나온다. 봉정암에서 오세암길을 따라 약 1시간쯤 내려가면 가야동계곡과 만난다.
중청봉에서 발원하는 구곡담계곡(九曲潭溪谷)은 수렴동계곡에서 오른쪽으로 갈라진 계곡으로 수렴동대피소 바로 앞에서 시작된다. 구곡담계곡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험한 편이다. 계곡의 중간쯤에서 귀때기청봉에서 발원하는 백운동계곡이 합류한다. 수렴동대피소에서 쌍폭까지를 쌍폭동계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구곡담계곡의 지류들은 모두 서북릉에서 흘러든다. 이 계곡을 오르면서 바라보는 용아장성의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구곡담계곡에는 폭포와 소가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폭포는 쌍폭(雙瀑)이라고 할 수 있다.
소청봉 능선 중간쯤 지붕에 눈을 덮어쓴 소청대피소가 보인다. 소청대피소(1,450m)는 1980년대 말 봉정산장이 옮겨온 것으로 봉정암과 소청봉 중간쯤에 있다. 언젠가 한겨울에 설악산에 들어왔다가 소청대피소에서 하루 묵은 적이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 공룡능선을 바라보니 밤새 내린 눈으로 '악!'하고 비명소리를 지를 정도로 환상적인 설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때 보았던 공룡능선의 기막힌 설경은 아마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소청대피소에서는 또한 여름철에 용아릉과 공룡능의 멋진 운해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소청대피소 바로 밑으로 독성나한봉과 지장봉, 가섭봉, 석가봉, 기린봉, 할미봉, 범바위 등 첨봉들로 이루어진 봉정연봉 안부에 자리잡은 암자가 봉정암(鳳頂庵, 1,224m)이다. 석가봉 앞에 있는 5층 사리탑은 보일 듯 말 듯.......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봉정암은 643년(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암자로 고타마 싯다르타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寂滅寶宮) 중 하나다. 적멸보궁이란 고타마 싯다르타가 '화엄경(華嚴經)'을 설한 중인도의 적멸도량(寂滅道場)을 뜻하는 전각으로, 그의 사리를 봉안함으로써 법신불(法身佛)로서의 그의 진신이 상주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적멸보궁에는 그래서 불전(佛殿)에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으며, 바깥에 따로 사리탑이나 계단(戒壇)을 세우기도 한다. 남한의 5대 적멸보궁은 봉정암 외에 양산(梁山) 영취산(靈鷲山)의 통도사(通度寺), 평창(平昌) 오대산(五臺山)의 중대(中臺), 영월(寧越) 사자산(獅子山)의 법흥사(法興寺), 정선(旌善) 태백산(太白山)의 정암사(淨巖寺) 등이다. 그 중에서 정암사 적멸보궁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고타마 싯다르타의 사리를 직접 봉안한 것이라고 한다. *중청봉
소청봉에서 중청봉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완만해서 별로 힘이 들지 않는다. 중청봉 능선길에도 많은 눈이 쌓여 있다. 눈길을 걸어가노라니 발밑으로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져 온다. 중청봉(中靑峰, 1676m) 정상에는 레이더기지로 보이는 군사시설이 있어 일반인들이 출입을 할 수 없다. 왼쪽으로 우회를 해서 가다가 보면 중청봉 중간쯤에서 서북능선의 끝청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난다. *대청봉
중청봉 기슭에서 대청봉을 바라보니 대청봉이 바로 눈앞에 있다. 백두대간에 다시 올라선 것이다. 중청대피소로 내려가는데 바람이 몹시 강하게 불어온다. 중청대피소에 이르니 2007년 1월 1일 새해 해맞이를 보러 온 사람들로 만원이다. 이 대피소에서 묵으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그런데, 대청봉 새해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벌써 오래 전에 예약을 다 해놓았다고 한다. 대피소 건물 한쪽에서 바람을 피해 잠시 쉬다가 대청봉으로 향한다. *백두대간 설악산 대청봉 정상표지석 *대청봉 정상에서 필자
대청봉 정상에 가까와질수록 바람이 점점 더 강하게 불어온다. 얼마나 바람이 모질게 불어오는지 코끝이 얼어붙는 듯하다. 매서운 바람을 뚫고 마침내 대청봉(大靑峰, 1708m)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에 서자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백두대간 설악산맥의 장관에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고 만다. 사방으로 뻗어가는 장엄화려한 능선들과 깊은 계곡들을 바라보노라니 가슴이 터질 듯한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대자연은 이렇듯 바라보기만 해도 깨달음이다.
대청봉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그 옆에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전에는 정상에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제단의 가운데에는 설악상봉국사천왕불신지위(雪嶽上峰國司天王佛神之位), 왼쪽에는 팔도산신중도신령(八道山神中道神靈), 오른쪽에는 설악산신령(雪嶽山神靈)이라고 쓴 위패가 모셔져 있어 봄과 가을 두 번에 걸쳐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대청봉은 상청봉(上靑峰), 또는 청봉이라고도 하는 설악산의 주봉으로 북서쪽으로 중청봉과 소청봉을 거느리고 있다. 무진자(無盡子)가 쓴 '오세암사적(五歲庵事蹟)'에는 청봉을 봉황대(鳳凰臺)라고 했으며, 성해응의 '동국명산기'에는 '봉황대의 정상인 봉정(鳳頂)은 설악의 맨 꼭대기다.(鳳頂卽嶽之極處)'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 보아 대청봉을 옛날에는 봉정이라고도 불렀음을 알 수 있다. 봉황대, 봉정, 청봉 등은 한민족의 옛 신앙의 근원이었던 광명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한민족의 얼이 짙게 배어 있는 대청봉...... *신선봉에서 공룡능선을 지나 대청봉에 이르는 백두대간
대청봉에서는 웅장한 모습으로 용틀임치며 뻗어가는 백두대간 북주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청봉에서 공룡능선과 황철봉을 지나 상봉(上峰1,299m), 신선봉(神仙峰, 1,204m)을 향해서 치달려가는 백두대간이 장엄하다. 저 멀리 대간령 너머 마산(馬山, 1,052m)에서 진부령 너머 칠절봉(七節峰, 1,172.2m)과 향로봉(香爐峰, 1,296.3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도 아스라이 보인다. 향로봉에서 건봉산을 지나면 금강산에 이른다. 백두산을 향해서 꿈틀대며 치달려 올라가는 백두대간은 저토록 의연하구나! 문득 나는 향로봉을 넘어서 금강산과 개마고원을 지나 백두산에 이르는 북한쪽 백두대간의 어느 이름 모를 능선 위에 서 있는 나 자신을 꿈꾼다.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은 두근거리는 설레임으로 벅차오른다.
설악산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북주릉의 공룡능선이다. 신선대에서 천화대, 1275봉, 나한봉을 지나 마등령에 이르는 공룡능선의 바위봉우리들이 석양에 지는 햇빛을 받아 붉은색을 띠고 있다. 공룡능선은 바위봉우리들이 뾰족하여 마치 공룡의 등을 연상하게 한다. 바로 앞에 햇빛을 받아서 붉게 빛나는 세 개의 연봉이 신선대(神仙臺)로 일명 신선암(神仙岩)이라고도 한다. 신선대에서 마등령에 이르는 능선이 이른바 공룡능선이다. 칠형제봉(七兄弟峰)은 신선대 북쪽에서 천불동계곡을 향하여 용소골과 작은바위골 사이로 뻗어내린 일곱 개의 바위봉우리를 가리킨다.
천화대(天花臺)를 지나 눈으로 인해 두 줄기 폭포가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암봉이 공룡능선 중에서도 최고의 봉우리라고 할 수 있는 1275봉이다. 1275봉에서 신선대쪽으로 첫번째 나타나는 봉우리가 노인봉(老人峰, 1,120m)인데, 여기서부터 왕관봉(王冠峰)과 희야봉, 범봉을 거쳐 북동쪽 설악골로 세차게 뻗어내린 20여개의 암봉군을 이름하여 천화대(일명 연화대)라고 한다. 천화대에 오르면 화채능선과 공룡능선, 천불동, 동해바다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올 뿐만 아니라, 바위로 만든 꽃밭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천화대라는 이름은 1969년 설악산악회 이기섭(李基燮) 회장과 설악산개발위원회가 '하늘 나라의 꽃처럼 피어 오른 곳' 또는 '바위를 깎아놓은 모습이 하늘 아래 꽃밭과 같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천화대의 주봉은 가장 높은 암봉인 범봉이다. 이곳은 날카롭고 깎아지른 듯한 암봉들이 모여 있어서 암벽등반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1275봉과 진대봉(마등령봉) 사이에 있는 봉우리가 나한봉(羅漢峰, 1,380m)이다. 나한봉이라는 이름은 불교의 수호신인 나한(羅漢)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진대봉은 천화대 바로 뒤에서 천불동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의 최고봉이다. 진대봉 능선 오른쪽으로 세존봉이 보인다. 저 밑에서는 아찔할 정도로 높게 보였던 세존봉이 여기서는 그저 작은 암봉으로 보일 뿐...... 진대봉 너머 우람하게 보이는 산괴가 황철봉이고 그 사이에 저항령이 있다. 황철봉 뒤에 솟아 있는 두 개의 봉우리가 미시령 건너편에 있는 상봉(앞)과 신선봉(뒤)이다. 황철봉과 상봉 사이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능선 위에 병풍을 친 것처럼 보이는 암릉지대는 울산바위고...... 마산은 신선봉 너머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뻗어가는 밋밋한 산맥의 중간쯤에 있고, 대간령은 그 사이에 있다. 마산을 넘어가면 진부령에 이르고..... 맨 뒤에 보이는 산맥이 진부령에서 칠절봉과 향로봉, 건봉산을 지나 금강산으로 뻗어올라가는 백두대간이다.
아 아, 사무치도록 그리운 백두대간..... 늠름하고 힘찬 기상으로 한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향해서 북으로 북으로 달려가는 백두대간을 내 가슴속에 품는다. 내 가슴속에서는 또 하나의 백두대간이 요동치며 꿈틀대면서 뜨거운 감동이 밀려온다.
*서북능선
*한계령에서 망대암산을 거쳐 점봉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대청봉에서 서북쪽으로 중청봉과 끝청봉(1,604m)을 지나 1459봉, 1397봉, 1355봉, 귀때기청봉(1,577m), 1456봉, 1408.2봉, 대승령(大勝嶺, 1,210m)을 거쳐 안산(鞍山, 1,430m)을 향해서 서북능선이 장쾌하게 뻗어간다. 대청봉에서 중청, 끝청, 대승령을 지나 안산까지 장장 18km에 이르는 능선을 서북능선이라고 한다. 중청에서 왼쪽으로 경사가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다가 살짝 솟은 봉우리가 끝청이고, 그 왼쪽 봉우리가 1459봉이다. 끝청 바로 뒤에 보이는 봉우리는 1397봉, 그 뒤에 1355봉이 있다. 1355봉 오른쪽으로 계곡에 쌓인 눈으로 인해 두 개의 폭포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봉우리가 귀때기청봉, 능선의 맨 끝에 있는 봉우리가 안산이며, 그 사이에 1456봉이 있다. 1408.2봉과 대승령은 보일 듯 말 듯 보이지 않고...... 귀때기청봉 왼쪽에 솟아 있는 봉우리는 가리봉(加里峰:1,518m)이고, 가리봉 오른쪽으로 삐쭉 솟은 봉우리가 주걱봉(1,401m)이다.
한계령은 인제군 북면과 양양군 서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설악산과 점봉산 사이의 안부에 있다. 한계령의 동쪽은 오색과 양양을 지나 동해로 흘러드는 남대천의 계곡으로 이어지고, 서쪽은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 상류에서 동쪽으로 분기하는 북천의 계곡과 연결된다. 이 고개의 서쪽 계곡에는 대승폭포와 장수대가 있고, 동쪽의 남대천 상류인 오색에는 오색약수와 오색온천이 있다. 오색계곡의 한계령 능선은 남한에서 처음 발견된 한계령풀로 유명하다.
오색의 주전골(鑄錢谷) 건너편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가 점봉산이고, 그 오른쪽에 있는 산이 망대암산이다. 망대암산은 남쪽의 점봉산, 남서쪽의 시선봉(侍仙峰:1,167m)과 함께 삼각형으로 앉아 있다. 이 산의 정상은 첨봉으로 망대암과 금표암 등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점봉산(일명 점붕산)은 인제군 인제읍과 기린면, 그리고 양양군 서면에 걸쳐 있는 산인데 북서쪽에 가리봉, 남쪽에 가칠봉(加漆峰, 1,165m) 등이 있다.
남설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전골은 오색약수터에서 선녀탕을 거쳐 점봉산 서쪽 산기슭에 이르는 계곡이다. 오색약수에서 3㎞ 지점에 이르면 용소폭포, 12폭포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있는데 이곳에서 12폭포까지의 계곡이 곧 주전골이다. 옛날 외지고 골이 깊은 이곳에서 승려를 가장한 도둑 무리들이 엽전을 위조했다는 데서 주전골이라는 이름이 유래한다. 이와는 달리 용소폭포 입구에 있는 시루떡바위의 모양이 마치 엽전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주전골은 남설악의 계곡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골짜기로 기암괴석과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계곡미와 가을 단풍으로 유명하다. 서북능선과 점봉산 일대에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다. 점봉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북능선과 대청봉, 화채능선에 이르는 설악산의 절경은 황홀경 그 자체다. 그래서 설악의 또 다른 진수를 보려면 저 점봉산에 올라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홀로 백두대간을 순례할 때, 2001년 7월 6일 나는 단목령에서 점봉산을 넘어 망대암산으로 이어지는 저 백두대간의 마룻금을 걷고 있었다. 내가 지나갔던 그 산길이 여기서도 또렷이 보이는 듯하다. 점봉산 정상에서 보았던 설악산맥의 장관은 지금도 내 머리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불현듯 점봉산 산마루에 쓸쓸히 서 있던 어느 산악인을 위한 묘비명이 떠오른다. 지금도 그 추모비는 그대로 잘 있는지.....
점봉에서
*천불동계곡
*화채능선
*화채봉과 동해바다
남북으로 장엄하게 뻗어가는 백두대간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눈을 돌려 천불동계곡을 내려다 보니..... 공룡능선과 화채능선 사이로 깎아지른 듯한 바위절벽과 기암괴석, 우후죽순처럼 빽빽하게 솟아 있는 첨봉들이 환상적인 절경을 이루고 있다. 별유천지비인간( 別有天地非人間)의 선계에 천불이 하강하여 현신하였으니 연화장 세상이 바로 여기가 아니랴! 나도 대청봉 산마루에서 이름없는 돌부처가 되어 장엄화려한 연화장 세계로 들어간다. 수없이 많은 부처님들이 들려주는 무언의 설법이 메아리가 되어 천불동에 기득하게 울려퍼지는 듯하다.
천불동의 동쪽으로 눈덮힌 화채능선(華彩綾線)이 대청봉에서 화채봉(華彩峰, 1,320m)), 칠성봉(七星峰, 1,077m), 집선봉(集仙峰, 920m)을 지나 권금성(權金城)까지 세찬 기세로 뻗어가고 있다. 화채릉은 일명 동북(東北)능선이라고도 하는데, 대청봉에서 동북쪽으로 권금성까지 8km에 이른다. 대청봉 맞은 편에 화채릉의 대표적인 봉우리인 화채봉이 솟아 있다. 봄이 되면 화채봉 일대는 얼레지가 만발하여 연보라빛으로 물든다. 화채봉에서 동쪽으로 송암산(松岩山, 767m)까지 뻗어나간 능선을 화채동능선(華彩東綾線)이라고 한다. 화채동능선과 대청봉에서 관모봉으로 뻗어내린 능선 사이에 있는 골짜기가 둔전골이고, 화채봉 동북쪽으로 흐르는 계곡이 피골이다.
서산에 지는 햇빛 한줄기가 산마루에 걸려 있는 봉우리가 화채봉과 집선봉 사이에 있는 칠성봉이다. 칠성봉 동쪽에 함지처럼 움푹 들어간 분지를 함지덕이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화전민들이 살았던 곳이다. 칠성봉 동북쪽 산기슭에서 발원하여 노적봉(露積峰) 오른쪽으로 흐르는 계곡이 토왕(土旺)골이다. 토왕골에는 육담(六潭)폭포, 비룡(飛龍)폭포, 토왕성(土旺城)폭포 등 세 개의 폭포가 있다. 신광폭포(神光瀑布) 또는 토왕폭(土旺瀑)이라고도 하는 토왕성폭포는 설악산을 대표하는 3대 폭포 가운데 하나로 칠성봉 북동쪽 계곡 450m 지점에 있다. 석가봉과 문주봉, 보현봉, 문필봉, 노적봉이 병풍처럼 둘러싼 절벽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3단 연폭(連瀑)은 멀리서 보면 마치 하얀 비단을 바위에 펼쳐놓은 듯하다. 토왕폭은 겨울철 산악인들이 빙벽훈련을 위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칠성봉과 권금성 가운데 있는 집선봉은 수직절리의 암봉들이 밀집되어 있어 마치 선녀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집선봉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암봉들이 솟아 있어 화려할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다. 집선봉 바로 북쪽에 보이는 암봉이 권금성이다. 울산바위 오른쪽으로 보이는 봉우리는 소공원 북쪽에 솟아 있는 달마봉(達磨峰, 635m)이다.
화채봉 너머로 속초시가지와 동해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가만히 보니 속초 앞바다에 산모양의 신기루가 떠 있다. 바다에 나타난 신기루는 처음 본다. 아마도 저 신기루는 서녘하늘로 넘어가는 해를 등진 설악산의 그림자로 인해 생긴 것이리라. 속초시가지를 중심으로 좌우에 있는 영랑호와 청초호의 얼어붙은 호수면 위에는 눈이 쌓여 하얀 벌판으로 보인다. 청초호의 담수는 속초항으로 흘러든다. 속초항 바로 곁에는 육로가 열리기 전 금강산으로 떠나는 배가 드나들던 동명항이 있다. 그 앞에 외로이 떠 있는 작은 섬이 속초에 단 하나밖에 없는 섬인 조도(鳥島, 새섬)다. *대청봉 일몰
눈덮힌 설악산맥을 보고 또 보고..... 대청봉을 떠나기 전 사방으로 노도처럼 힘차게 뻗어간 설악산의 산줄기들을 하나하나 가슴속에 새겨 넣는다. 대청봉을 막 떠나려고 할 때, 서녘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면서 해가 저물고 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 아.....! 서산에 지는 2006년의 마지막 해는 저토록 장렬하구나! 일몰의 장렬한 아름다움에는 소멸의 미학이 있다. 스러져 가기에 처연하지만 오히려 아름다운 소멸..... 2006년 12월 31일 마지막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상념에 젖는다. 하지만 태양은 내일 다시 또 찬란하게 떠오르리. 2007년 1월 1일, 바로 내일 새해 첫날 눈부신 광명으로 동녘 하늘을 환하게 밝히면서...... *오색으로 내려가는 철계단길
태양이 서산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서 대청봉을 떠난다. 오색으로 내려가는 길에도 눈이 엄청나게 쌓여 있다. 대청봉에서 보았던 일몰의 여운을 떠올리면서 눈길을 걷는다. 대청봉 기슭에는 서서히 땅거미가 밀려오고 있다. *음력 11월 12일 달
해가 넘어간 지 꽤 오래 되었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보름을 사흘 앞둔 음력 11월 12일 달이 떠 있어 전등을 켜지 않아도 그리 어둡지는 않다. 지금부터는 달빛산행이다.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달빛이 온산에 가득하다. 부드러운 눈을 밟으며 걷는 달빛산행....... 이 얼마만의 낭만적인 산행이던가!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걷는 산길이 조용하고 호젓해서 참 좋다. 달빛속에 고요히 잠들어 있는 설악산이 숨쉬는 깊고 낮은 소리가 온몸에 전해진다. 그대는 들어보았는가, 어머니의 다정한 부름소리처럼 들려오는 설악산의 숨소리를..... *대청봉 1.1km 지점의 표지판
대청봉 1.1km를 알리는 표지판을 지난다. 대청봉에서 오색까지는 5.1km의 거리이니 아직도 4km를 더 가야 한다. 산비탈에 쌓인 눈이 달빛을 받아서 교교하다. 중간쯤 내려왔을까..... 계곡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히 살펴보니 설악폭포다. 설악폭포는 여름에 오색에서 대청봉을 오를 때 땀을 식히며 쉬어가는 곳으로 대청봉에서 2.6km 떨어진 곳에 있다. 제1쉼터라고 부르는 넓은 공터를 지나면 가파른 돌계단길이 이어진다. 무릎 관절에 무리를 주는 돌계단길은 정말 싫다. 하지만 어쩌랴! 길을 가다가 보면 힘들고 거친 길도 만나는 법.....
전망이 트인 곳에 이르니 오색지구에 불이 환하게 들어와 있다. 산길을 가다가 불빛을 만나면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다. 길고도 긴 돌계단을 다 내려와 작은 냇물을 건넌다. 계곡의 상류에 독주폭포가 있는 독주골 입구다. 냇물을 건너면서 사실상 산행은 끝난다. 여기서 백미터 정도 내려가 마침내 남설악매표소를 나선다.
이제는 설악산을 떠나야 할 시간...... 한동안 설악산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가슴속에 담아 두었다. 하지만 막상 설악산을 떠나려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산은 나에게 있어 영원한 화두인가 보다. 훗날 가슴을 열고 다시 만나자, 설악산아! 산 두고 가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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