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7. 2. 11. 20:27
▲소재지 : 이경선선생 묘역-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산22-18(진천 숭렬사 앞)
▲이경선선생 묘역 / 촬영>2022년 9월
▲제33대 이재정 통일부장관이 선생의 12대 손이기도 하다.
▲1730년(영조 6) 왕명으로 내려진 충신정려문 편액 원판(扁額 原版)
▲이경선 충신문 편액.(2005년 새로 제작된 편액)
1636년 병자호란시 남포 현감으로 재직중 충청 근왕병의 참모관으로 참전 순절[전사(戰死)]한 충신 이경선 선생에께 1730년(영조 6년) 11월에 왕명으로 오늘날의 용인시 기흥읍 공세리 마을 입구에 세웠으나 왜정시대 일본의 문화말살정책에 의거 소실되고 없던 것을 2005년 11월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산22-18(산직마을) 공의 묘소 앞에 진천군에서 다시 건립하고 편액(扁額)은 12대손인 필자가(李在薰) 원판을 탁본해서 천연기념목인 후박나무를 이음매 없이 귀하게 구해서 주문 제작했다.
▲2007년 2월 촬영
▲예조참의 이경선선생 충신문/ 촬영 2022년 9월
▲촬영 : 2022. 9월
▲안내 표지판 : 2022. 7월 진천군에서 제작 설치함.(촬영 2022년 9월)
1636년(인조 14) 1월 1일 남포 현감에 부임 재직 중, 그해 12월 9일 청나라 태종(2대) 홍타이지가 이끄는 14만의 대군이 압록강을 넘어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남포 현감 이경선은 충청도 관찰사 정세규가 이끄는 충청 근왕병의 참모관으로 참전, 경기도 광주 검천 전투(廣州 儉川 戰鬪)에서 적과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듬해인 1637년 5월 26일 예조참의(禮曹參議)에 증직(贈職)되고, 1730년(영조 6년) 11월에 왕명으로 후손들이 살던 오늘날의 용인시 기흥읍 공세리 마을 입구에 충신 정려문이 세워졌었다.
그 후 왜정시대 일본의 조선인의 정신문화 말살정책에 의거 현판만 수습하고 소실되고 없어졌던 것을 2005년 11월 진천군에서 공의 묘소 아래, 새로이 건립하고 현판은 12대손인 필자(李在薰)가 원판을 탁본해서 과거 진천중학교 교정에 서있던 천연기념목인 후박나무로 주문 제작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