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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왕국(입헌군주국(국왕: Norodom Sihamoni, 수상: Hun Sen))으로 인구는 약 1,300,만명으로 인구의 대부분은 본토의 크메르 족이 차지하고 있는데 90% 정도, 나머지는 중국에서 이주를 해온 화교출신들과 인근 베트남에서 넘어온 베트남인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소수민족은 주로 산악이나 강변에 접해 살고 있다.
씨엠립 공항은 비행기의 굉음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앙코르왓 유적이 파손될 우려가 있어 대형 비행기 취항금지 되어 있다, 때문에 중소형 비행기만 운행하고 있다. 캄보디아 씨엠립 국제 공항(?)...초라 하기 그지없다. 계류장에서 바로 내려 우리들은 공항 청사로 걸어서 이동했다. 사진처럼... 공항 청사로 관광객들이 비행기에서 내려 결어서, 걸어서.....
공항 청사에서 급행으로 비자(비자비 20불 급행비 5불)받아 입국하는데 돈 25불만 챙기고 얼굴은 쳐다 보지도 않고 통과, 이런 입국 심사는 처음이다.
캄보디아의 첫날밤은 Buffet로 저녁식사를 하며 Apsara 춤을 감상....... Apsara라는 말은 '천상의 무희'를 뜻하는데 앙코르와트 사원의 벽에 이 무희들이 춤추는 여러가지 동작이 셀 수 없이 많이 조각되어 있다. 이 춤이 바로 캄보디아 전통 춤인 것이다.
씨엠립의 호텔앞 아침 거리...한가롭기만 하다. 이곳은 번호판 없는 자동차도 많이 다닌다.
비포장 도로 먼지에 목이 컬컬한 느낌을 받으면서 시원한 음료인 야자수를 들이키며 앙코르 왓으로.....이곳 씨엠립은 70% 이상의 차량이 아직도 번호판 없이 운행되고 있다.
드디어 우리 여행의 가장 큰 목적지 앙코르에 도착했다. 먼저 앙코르 톱이라는 거대한 성곽 도시에 들어섰다. 과거 영화를 누릴 때는 1000 만명이 살았다니 상상이 가질 않는다. 앙코르 유적지에는 동서남북 네곳에 문이 있다고 한다. ........ 사진으로 보이는 이 곳은 앙코르 톱 남문이다.
지리한 내전과 ‘킬링필드’로 기억되는 캄보디아. 그 곳 정글 속에 상상하지 못하던 거대한 석조 예술품이 들어서 있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불리는 앙코르 사원이다. 캄보디아 제2의 도시 씨엠립 북쪽 6.5㎞에 위치한 이 사원은 12세기 전반 수리아 바르만 2 세가 힌두교의 비슈누신과 일체화한 자신의 묘로서 건립했다. 정사각형 구조로 한 쪽 길이가 4㎞에 달하는 사원 외곽에는 바다를 의미하는 운하가 있고, 높이 65㎙의 중앙탑은 세계의 중심이라 여기던 수미산을 나타낸다. 사원의 회랑은 히말라야 산맥을 의미한다. 입구에 있는 석상들..도굴꾼에 의해 머리가 없는 석상이 많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앙코르왓, 붉은색 사암으로 만들어진 조각들이 아름다운 사원. 해자에 반영된 사원의 모습이아름다우며... 특히 붉은 사암에 나무에 조각하듯 정교하게 새겨 넣은 조각과 치장물등은 그 화려함과 섬세함이 시선을 단숨에사로 잡는다. 앙코르 왓의 3층 중앙 탑들이 있는 곳은 천상계를 상징하고, 2층은 인간계, 1층은 미물계를 나타낸다.
앙코르왓은 비슈누에게 헌정된 사원으로, 앙코르 유적지 중 가장 큰 사원이며 또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크메르 건축 예술의 극치를 이루는 역사적인 예술품이다. 이 사원은 구성, 균형, 설계 기술, 조각과 부조 등의 완벽함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위 사진은 해자(인공호수)를 건너는 다리 난간의 구조물인 뱀의 머리
1860년 프랑스의 동물학자 앙리무어에 의하여 발견되어 유네스코로 부터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지정 받아 그 값진 면을 보여 주고 있으며 엄청난 위용과 섬세함 그리고 영원히 풀리지 않을 신비로움...... 앙코르왓이 우리를 매료 시킨다.
앙코르의 모든 건축물들은 생명을 뜻하는 동쪽이 정문인데 반해, 이곳만이 죽음을 뜻하는 서쪽으로 정문이 나있다. 때문에 이사원은 수리아바르만 2세의 장례( 화장식 )를 치르기 위한 사원으로 지어졌다고 추측되어, 초기의 학자들은 이 사원을 죽음의 사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며 과학적으로 하나 둘씩 앙코르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사원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반영한 천문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앙코르왓은 1113년 부터 1150년 까지 약 37년만에 완공된 사원이다. 라테라이트 성벽으로 둘러싼 사각형 구조로 외벽은 200m 폭의 해자(인공호수)로 둘러 싸여있다. 성벽 전체 길이는 약 5.5km. 입구에 있는 해자를 건너는 다리는 길이 250m, 폭 12m의 사암으로 건축되었다, 통로의 중앙을 지나 양쪽으로 도서관이 위치하고 도서관을 지나면 양쪽으로 길이 65m, 너비 50m 연못이 위치하고 있다. 해자(인공 호수)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 앙코르왓 사원의 입구에 도착하면 머리가 아홉개 달린 뱀이 사원을 지키고 있다.
지면에서부터 높이는 전체적으로 크게 3개 층으로 나뉘면서 길이는 자그마치 213m나 된다. 층 사이에는 많은 기둥들이 세워진 긴 회랑으로 구분되어 있다. 맨 위의 3층 단에는 5개의 큰 탑이 세워져 있는데, 중앙의 탑이 가장 높다. 탑들의 모양은 연꽃을 본 따서 만들었다. 모든 건물들은 동서를 축으로 정확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회랑과 방, 통로들의 지붕은 곡선으로 경사지게 만들어져 있는데 멀리서 보면 길고 좁은 산등성이 같이 보이기도 한다. 회랑의 외부는 60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고, 내부는 벽으로 되어 있고 수 많은 부조가 조각되어 있다.
왕코르왓은 석조 건축물로 만들어진 우주의 축소판으로, 지상에 있는 우주의 모형이다. 중앙의 탑은 사원의 정 중앙에 세워져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을 상징하며 5개의 탑은 메루산의 5개의 큰 봉우리를 나타낸다. 성벽은 세상 끝을 둘러 싼 산맥을 뜻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해자(인공 호수)는 우주의 바다를 상징하고 있다.
앙코르왓은 어느곳을 파 헤쳐도 유물이 나온다고 한다. 사원 주변 40 Km 근방에는 산도 없다, 헌데 그 돌은 과연 어디서 났으며 그 옛날 어떻게 그 많은 돌을 운반하였는지... 돌 기둥 하나의 무개만도 7톤이나 된다고 한다. 위 사진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우리 일행....
그 찬란한 왕조가 태국. 캄보디아. 내전 등등으로 해서 몰락되고 열대 밀림의 특성상 순식간에 숲으로 뒤 뎦혀 몇 백년은 그 밀림 속에 묻혀 있던 찬란한 유물들....폐허로 변하는 과정이 너무 안타까웠다.
경사가 70도가 넘는 천상의 계단(죽음의 계단). 높은 곳에 있는 천상의 세계를 보기 위해 발바닥을 옆으로 해서 기어서만이 올라 갈 수 있으며 조심히 내려와야 하는 앙코르사원 왜 이렇게 폭이 좁은 계단을 급경사로 만들었는지.... 계단은 원래 인간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신이 이용하도록 만든 것으로, 인간의 접근을 어렵게 하기 위헤 가파르게 만들었다고 한다.
돌을 마치 흙을 주무르듯 조각들을 새겨 두었다. 아! 감탄! 감탄! 감탄!
이 무희상들은 아직 그 어떤 조각도 압도하지 못하였을 정도로 정교한 머리카락, 머리 장식 그리고 보석 장신구들을 하고 있다. 앙코르 왓에서 묘사하고 있는 압싸라들은 보통 2-3명씩 같이 모여 춤을 추고 있다. 아쉽게도 너무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이 수 많은인물들이 각각 누구인지는 잘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사원 안에 있는 거대한 욕조로 그 쓰임새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왕이 사용한 듯.....
사원의 입구 안쪽에 있는 팔이 여러개인 커다란 입불상은 원래 비쉬누 동상이었으나 불교로 국교 전환 후 부처의 얼굴을 새로 부착했다고 하는데 마치 우리나라 사찰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앙코르는 왕도를 뜻하고 톰은 거대함을 나타내므로 이는 곧 큰 왕성함을 의미한다. 앙코르톰은 앙코르 왕조에서 가장 융성했던 12세기말에서13세기초 자야바르만 7세 때 불교 사원으로 지은 바이욘 양식의 건물이다. 크메르 왕조의 마지막 수도인 앙코르 톰은 그 규모를 비교하면 앙코르와트보다 훨씬 거대하다고 한다. 앙코르 톰 남문 입구로 캄보디아에 한국산 아시아 버스가 많은 이유가 이 남문을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알맞은 크키를 가진 버스가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아시아 버스뿐이기 때문이란다..............
앙코르 톰은 거대한 왕도라는 의미이다. 앙코르 톰내에 바푸온, 바이욘, 문둥이 테라스, 코끼리 테라스, 스라스랑, 피메아나케스가 있다. 자야바르만 7세가 전체의 도시를 요세화하기 위해서 지었다 한다. 사진은 만지면 지위, 제물,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코끼리 코....
바욘 사원은 앙코르 유적중에서 앙코르왓 다음으로 유명한 유적지 이다. 앙코르 왓보다는 100년정도 뒤에 지어졌다고 한다. 4방향으로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 4면상이 유명하다.
바욘 사원을 둘러싸고있는 회랑이다. 회랑벽에는 당시의 생활상이나 신화의 내용등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조각에 보면 전쟁을 나가면서 부수적으로 가져가야 될 것들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식량으로 쓸 돼지, 닭 같은 가축이며, 노예들, 여자들 그리고 원정을 가는 기간동안 일어났던 일들까지 기록되어 있어서 자세히 보면 꽤 재미있다.
회랑은 무너진 곳이 많다. 지붕은 다 없어지고.....무언가 기록되어 있었을텐데 안타깝다.
바욘 사원 사면상들의 미소는 '앙코르의 미소'라 할 만큼 유명하다
앙코르 유적지 곳곳에는 정복을 입은 관리직원들이다. 이들은 무작위로 관광객의 표를 검사하기도 한다. 표가 없거나, 날짜가 지난 표를 들고 다니다 적발(?)되면 곤란해 진다고 한다.
유적지내에서 1-2불의 돈을 받고 관광객과 함께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 촬영에 임한다. 뒤에서 살짝 한 컷
앙코르 유적 사원들 대부분이 힌두교 사원인것과는 달리, 불교 사원인 바욘 사원의 거대한 얼굴들은 관세음보살의 얼굴이자 그의화신인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고 한다. 자야바르만 7세는 캄보디아에 최초로 대승불교를 들여온 왕이라고 한다.
투어의 즐거움중에 하나 코끼리를 타고 어른은 사진 촬영에 바쁘고 아이는 조금 겁나는지.......
이 곳이 Phimeanakas 제단이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꼭대기까지 올라 갔다 오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구지 올라갈 필요가 없기에 주위를 한 바퀴 돌다 많은 승려들이 호수에서 몸을 씻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 그 물이 신성한 물인 모양이다.
바욘 사원을 내려와서 서늘한 그늘 밑에서 마신 야자열매와 거의 같은 Palm tree 열매로 목을 축이고.... 남들은 밍밍하고 별루라고 하지만 난 시원하고 맛 있었다.
타프롬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사각형의 광장이 나타난다. 왕의 연설을 듣거나 전장에서 승리하여 돌아온 군인들을 왕이 환영하거나, 나라의 큰 행사를 관람하는데 쓰였던 코끼리 테라스는 350 미터 길이의 웅장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 코끼리 테라스의 오른쪽으로는 문둥이 왕의 테라스가 자리 잡고 있다.
코끼리 테라스 바라본 왕궁 터, 남아 있는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왕궁 터를 바치고 있는 코끼리 테라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 앙코르 톰의 관광을 마쳤다.
새 신랑 신부가 고적을 찾아 추억을 담는 풍경은 이곳 캄보디아에도 예외는 아니다.
따프롬이란 ‘브라마의 조상’이란 뜻으로 어떤 왕(자야바르만 7세)이 어머니를 기리기 위한 사원인데, 우리가 간혹 앙코르 유적을 소개할 때 나무가 건물을 타고 올라가 자라면서 그 뿌리가 건물 속으로 뻗어 있는 그림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그 사원이다. 이 사원에는 많은 나무들이 건물들 가운데 자라고 있고, 폐허가 된 채로 남아 있는데 안젤리라 졸리의 영화 툼레이더 때문에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따프롬 사원에는 보석의 방(지금은 보석이 하나도 없다), 통곡의 방 등이 있다. 따프 롬 사원 내부의 벽에 보석이 박혀 있던 자리다. 그 많은 보석은 어디로 갔을까?
벵골 보리수나무 뿌리가 사원의 조각품을 휘감고 있는가 하면 무너진 돌 더미가 통로를 막고 있고, 거대한 열대 무화과나무 뿌리는 허물어져 가는 담 벼락을 완강히 붙잡고 놓아 주질 않는다.
동남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인 캄보디아, 한 때는 동남아 전체를 지배한 크메르 제국의 수도가 바로 이곳 앙코르였다고 한다. 그래서 수 세기에 걸쳐셔 완성된 이 도시가 크메르제국이 쇠퇴한 뒤로 정글숲 속에 묻히게되고.......
정글속에 묻혓던 앙코르 유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1860년대. 그러나 1992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여행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해 현재는 하루에 2천명이 넘게 드나들고 있다고 한다. 워낙 방대하게 유적이 산재해 있어 하루에 사원을 다 둘러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 웅장하고 거대하면서도 아주 섬세한 조각들이 가득한 앙코르 유적은 인간이 만든 건축물이지만 인간이 만들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인류사가 남긴 훌륭한 건축물로 평가 될 세계적인 유산, 인류의 값진 문화재 인 것 같다.
캄보디아는 킬링필드로 인하여 엄청난 사상자와 무고한 국민들이 죽어 갔으며 20년이 넘는 내전으로 세계에서 가장 지뢰가 많은 나라다. 지뢰의 위험성과 참혹상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사설 박물관.
크메르 루즈의 대학살로 수백만명이 살상되고 또 곳곳에 묻혀진, 그리고 투하된 폭탄들로 인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거나 신체의 일부를 상실하는 캄보디아의 실상을 보여주는 곳이다. 군인 시절부터 오랜 세월을 폭탄 및 지뢰 제거요원으로 활동해온 아키라 씨가 관리 운영하며 지금도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 곳이면 달려 간다고 한다.
이곳에는 그동안 그가 수집한 다양한 지뢰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는 지뢰 사고로 인해 팔다리를 잃은 캄보디아 아이들도 함께 데리고 살고있다.
입장료는 없지만 기부금을 받고 있었다. 이런 곳에 기부를 하지 않으면 어디에 돈을 쓰겠는가. 지갑 속에 접어두었던 비상금을 넣었다.
지뢰 박물관 주차장에서 관광객을 향해 손을 흔드는 현지 아이(신발도 없이 맨발로...)
오늘 저녁은 평양 냉면을 하기로 했다. 이 식당은 북한에서 직접 관리 경영하고 있는 식당으로 종업원도 6개월 정도 근무하면 교체 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귀에 익숙한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를 부르고 있다.
우리들은 소갈비찜과 상추쌈까지 곁들인 평양냉면으로... 비교적 깨끗하고 우리 구미에도 맞는 편이었다
묘령의 예쁜 아가씨 6명이 교대로 써빙도 하고 번갈아 가며 장치 되어 있는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러 가며 춤도 추며 식사하는 손님들을 즐겁게 해준다.
약 1시간 정도의 식사 시간을 이색적인 장면속에 만끽하며 식사를 마치고 북한 종업원과 한컷(남남 북녀 라 하더니.....)
북한이 운영하는 평양 냉면집에서 김한길 국회의원을 만나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반가웠다
프놈펜 ------>
1975년 4월 12일 폴폿을 지도자로 하는 크메르루지의 프놈펜 입성으로 공산혁명 성공, 미군 및 론놀 정부에 협조한 공무원 군인 지식인과 폴폿에 반대하는 공산주의자 그 가족들을 공산당에 가입시켜 착취계급에 대한 적개심, 증오심을 갖게 하여 무참하게 살해 (영화 killing field 소재)한곳 프놈펜의 킬링필드로 가기 위해 우리들은 50인승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로 씨엠립을 출발....
뚜얼술랭감옥은 크메르루지 정권하에서 폴폿이 지식인들을 고문하고 처형하던 고등학교 건물인데, 지금은 킬링필드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시실 내부에는 불타고 그을린 해골과 당시 고문에 사용되던 족쇄등의 기구가 전시되어 있다. 고문 도구실을 지나가면 해골로 캄보디아 지도를 만들어 놓은 끔찍한 전시실도 있었다.
크메르루지 정권이 지식인들을 고문하고 처형하는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이 고등학교에 왔을 때 남아있던 학생들을 무참히 사살... 이 학생들은 지금도 교정(뚜얼술랭 감옥)에 잠들어 있다.
뚜얼술랭 박물관’과 ‘킬링필드’는 1975년 4월에서 1979년 1월까지 폴폿과 크메르루즈가 자행한 만행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위 사진은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물고문을 하던 장소(기구)
크메르루지 통치기간중 약 2만명의 캄보디아인이 이 고문 시설을 거쳐갔고,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었다. 통계로는 단 6명의 사람만 이곳에서 살아 나왔다고 한다. 이것은 고문 침대로 고문기구들이 놓여 있다.
뚜얼술랭감옥의 독방으로 1평 남짓 된다.
킬링필드 기념탑이 있는 청엑(킬링필드), 크메르 양식으로 지어진 위령탑으로 폴폿의 만행을 고발하면서 훈센정부가 해골만 모아서 80여m의 탑을 만들었다, 프놈펜 근교와 뚜얼술렝의 사람들을 고문한 후 처형한 곳으로 8900여구의 시신이 집단 매장되어 있는 것을 1980년에 발견한 곳이다.
킬링필드 기념탑은 1980년에 발견한 것을 계기로 폴폿의 만행을 고발하면서 현정부가 해골만 모아서 전시한 곳으로 이곳은 유골들을 모아 성별 나이별로 탑안에 전시 되어있다. 8900여개의 대부분의 유골들은 머리뼈가 갈라져 있다. 불교도들인 캄보디아인들은 이러한 행위를 좋지 않게 여기는데, 왜냐하면 불교도들은 화장을 하지 않고 그렇게 두면 그 영혼이 극락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멤돈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캄보디아 국민들에게는 아직도 그 당시에 죽었던 일가친척이 많이 있어서 이 킬링필드를 몸서리쳐지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반드시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다. 이곳은 시신이 매장되어 있던 곳
총알이 아깝다는 이유로 쇠막대기나 팜나무 줄기등을 이용해 처형 했다고 한다. 거리에는 아이들이 무척이나 많은데 그이유는 학살로 인해서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40%를 차지하는 인구 피라미드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프놈펜의 중앙시장 우리나라의 남대문 시장과 같다, 캄보디아 간식인것 같은데, 귀뚜라미 볶음이던가 ? 글쎄...
캄보디아는 아직도 모계 중심 가족제도가 뿌리깊은 국가로 여성 파워가 막강하다. 빠른 속도로 현대화 하고 있는 프놈펜 등 대도시는 많이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아버지 보다는 어머니가 가정을 이끈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로 아들보다는 딸을 선호하는데, 이는 결혼 풍습에서 잘 나타난다. 캄보디아 전통 혼례식은 신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신랑은 지참금을 내고 신부집에 들어와 살게되는데 신부 부모로서는 지참금 외에도 집안에 일손이 하나 늘어난다는 점에서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말 그대로 남자는 평생 처가살이를 하게 된다고 한다. 사진은 사탕수수에서 즙을 내어 파는데 아주 달고 시원하다.
프놈펜시의 명물인 택시(?) 일명 툭툭이로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거리의 이발소....길가 담장에 거울만 걸면 준비끝......
캄보디아의 주 교통 수단 어디를 가나 오토바이가 많이 주차 되어있다. 오토바이는 물론 자동차도 번호판 없이 운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놈펜 시내의 첫번째 관광지가 바로 왕궁 이곳은 입헌군주제를 택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국왕이 살고 있는 곳이다. 왕위 즉위식이 거행되는 곳으로 왕궁으로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건물이다. 이 실버 파고다의 실내 바닥을 1903년에 1.1Kg의 은으로 된 타일 5천 개를 깔아서 만들었는데 크메르루지군에 의해 점령되기 직전에 뜯어 냈다고 한다. 또한 실버 파고다 안에 있는 90Kg짜리 순금 불상에는 9,584개의 다이아몬드가 장식되어 있는데 제일 큰 것은 25캐럿이나 된다고 한다.
국왕은 실제로 권한이 없고 상징적인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캄보디아 수상은 훈센) 암튼.. 이곳에는 시아누크 전 국왕과 시아모니 현 국왕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많은 부분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왕이 궁에 있음을 알리는 깃발이 게양되어있다.
실버파고다안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있고,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신발을 벗고 사진기를 맡겨놓음과 동시에 사진을 찍기위해 지불한 2$ 영수증을 제시 해야 한다.
7개의 머리를 가진 뱀의 형상이 어딜가나 입구에 장식되어 있으며 뱀의 꼬리로 난간을...처마끝도 뱀으로.........
캄보디아는 1953년 11월 9일 프랑스로 부터 정식으로 독립했는데 이것을 기념하여 앙코르와트의 중앙탑을 본따서 독립기념탑을 만들었다. 갈색 빛이 나는 이 기념탑에 대한 이곳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단다. 이 독립기념탑이 있는 곳에는 많은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어서 저녁이면 마땅한 휴식처가 없는 프놈펜시민들의 휴식처가 된다.
배위에 엉성하게 지어진 집, 그 안에는 아이들이 물를 내다보며 가족들과 놀고 있다. 나무로 엉성하게 짜여진 방안은 간단하게 덮을 수 있는 이불이랄까?얇은 천 조각이랑 약간의 가구들만이 다 부셔져가는 모습으로 조금씩 채워져 있을 뿐이다, 집밖으로 화분도 갖다놓고 베란다가 있어 휴식하는 공간도 만들어져 있고 그런대로 살만한 집인 것 같지만 아무리 봐도 온통 불편함과 병균이 득실거리는 생활현장일 뿐인 것 같은데 정작 그들은 구김살 없는 표정들이다. 현대문명사회에 길들여진 우리는 그들이 그저 불쌍하고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그런 생각은 우리입장에서 보는 생각일 뿐일 것이다.
동남 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인 메콩강은 길이는 4,052Km로 중국의 칭하이성 티베트 지방에서 시작하여, 라오스와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지나해로 흘러 간다. 세계에서 14번째로 긴 강이다. 우리 일행은 메콩강 투어를 하며 선상에서 밤 늦도록 마지막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캄보디아는 "킬링 필드"라는 영화로 이미 그들의 비극이 널리 알려진 상태이다. 1975년~1979년 1월 사이에 캄보디아를 천둥과 비바람으로 휩쓸고 강타했던 공산 혁명은 대략적으로 2백만명 이상의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대 비극의 역사, 폴폿정권 공산치하에서 캄보디아 전체인구의 1/3 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지만 옛날에는 거대한 제국....(사진은 캄보디아 앙코르왓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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