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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1876~1964)
이 사진가는 대작을 만들려는 의도를 품고 있었다. 아우구스트 잔더가 자칭 '20세기의 사람들'이라고 불렀던 이 대담한 프로젝트는 다름 아닌 독일 국민의 모습을 사실에 충실하게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가 지거란트에서 처음으로 촬영한 <갱구의 소년들>이라는 사진만 해도 당대의 기호에 맞는 것이었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이상적인 사진을 촬영하도록 가르친 아틀이에 사진의 원칙을 따르고 있었다. 잔더는 근 10년간 오스트리아의 린츠에서 아틀리에를 운영했다. 몇몇 국제적인 전시회에 참가하여 거둔 성공은 전도유망한 미래를 예상하게 했다. 자칭 '예술적인 고향사진 작업실 주인'이 신즉물주의 사진의 선구자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흘러야 했다.
잔더는 1910년에 제2의 고향으로 선택한 쾰른으로 이사한다. 쾰른 린덴탈에 문을 연 아틀리에에서 촬영하는 일 외에도 그는 직접 카메라를 매고 시골로 손님을 찾아나섰다. 그는 에르네만이라는 기종의 무거운 여행용 카메라로 베스터발트에서 농부들의 초상사진을 촬영했다. 그들은 곧 잔더의 단골 고객이 된다. 그는 사진을 어떻게 찍을 것인지 사전에 신중하게 계획한 후에 농부들에게 음식점에서 꺼내온 의자 위에서 포즈를 취하도록 했다.
잔더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기술적인 사진에만 사용하던 광택인화지에다 네거티브를 확대했고, 사진을 이상적인 상태로 만들어주었을지도 모르는 수정작업도 하지 않았다. 이 사진들은 잔더가 12장씩 묶어서 대략 45권의 화보집으로 구상하고 있었던, 즉 그가 '사진 예술작품'으로 생각한 초상사진작품집에 들어갈 첫 사진들이었다. 그는 소위 이 <독일민족 화보집> 첫 권을 농부들에게 헌정했다. 그는 농부들의 모습이야말로 사회의 근간이며 원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눈에는 농부가 다른 어느 집단보다 더 잘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 화보집의 인물들이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내게는 <독일민족 화보집>을 만들려는 내 생각을 실현시키기에 안성맞춤인 것처럼 보였다. 이로써 일단 시작은 한 셈이었다. 나는 발견한 인물의 유형들을 원형들 밑에다 차례로 분류했다."
1924년경 당대 사람들을 하나의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는 잔더의 생각은 확고해졌다. 라인 지역의 진보주의자들인 하인리히 회를레, 프란츠 빌헬름 자이베르트, 안톤 레더 샤이트를 중심으로 한 예술가 그룹들과 만나면서 그의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그들은 그의 초상화 사진계획을 후원했고, 그는 이 사진으로 신즉물주의의 미적 입장에 근접해 갔다.
잔더는 사회를 대표하는 전형적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어 사회 전체를 면밀히 검토해 나갔다. 이로써 자신이 표현한 것처럼 "땅에 매인 사람들부터 위로는 최정상의 문화적 인물에서 밑으로는 바보의 얼굴까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시대의 거울을 만들어내기 위한" 길을 걸어갔다. 예술가 친구들도 실직자나 빈민, 장애인 같은 사회의 주변인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사진에 등장한다.
잔더는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사진집에 수집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을 한번 그려본다든지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보게 한다. 따라서 그가 촬영한 독일인의 모습은 어떤 객관적인 기록사진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그는 항상 집단적인 유형 속에서도 개성이 묻어나도록 촬영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독일 국민을 목록으로 정리해 나가면서 그 당시 발전하던 사회학적 인식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 늘 비판을 받았지만, 사진의 현대화에 기여한 그의 공로까지 피해를 입어서는 안될 것이다.
잔더의 초상사진작업은 1927년에 쾰른의 쿤스트페어아인에서 처음으로 전시되었다. 잔더가 이 전시회를 계기로 배포한 팸플릿에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고 가끔씩 묻는다. '봄, 관찰함 그리고 생각함', 이 제목 자체가 질문에 대한 답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1929년에 쿠르트 볼프 출판사에서 잔더의 대작 중 1차로 선별한 사진을 모아 <시대의 용모>라는 사진집을 출판하자, 사람들은 이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발터 벤야민은 이 책을 '엄청난 골상학적인 갤러리'라고 칭하며 이 모험적인 시도를 아이젠슈타인이나 푸도프킨이 촬영한 혁명적인 러시아 영화작품에 비교했다.
그러나 독일에서 나치가 권력을 잡자, <시대의 용모>는 책장에서 사라진다. 잔더가 촬영한 사람들은 나치의 이데올로기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게다가 잔더의 아들인 에리히가 좌파 정치활동가라는 점도 나치에게는 눈엣가시였다. 1951년에 잔더가 일궈낸 삶의 역작은 쾰른의 '포토키나'에서 L.프리츠 그루버를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뉴욕현대미술관 사진부서의 부장인 에드워드 스타이컨은 이곳에서 잔더의 작품에 주목하고 자신의 유명한 사진전시회인 '인간 가족'전에 전시하기 위해 그의 사진 석 점을 골랐다. 이 사진들은 오늘날 사진역사에서 거의 성화상과 같은 위상을 지니고 있다.
#1.
잔더와 같은 시기 독일에서는 많은 사진사들이 다양한 초상사진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미학적, 이념적 목표는 서로 달랐다. 인종적 유형으로 분류한 독일인의 사진 파노라마를 기획하는 이들도 있었고 특수한 사회그룹의 사회적 특징을 잡아내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에리히 레츠라프는 <나이의 용모>(1930)을 출판했고, 에르나 넨트바이 디르크센은 <독일 국민의 얼굴>(1932)을 출판했다. 그들은 민족이론 내지 사이비인종학적인 이론에 따라 작업했다. 헬마르 레르스키니는 <일상의 머리들>(1931)을 낼 때 사진적인 표현주의에서 사용되는 형식용어들을 넣기도 했다.
#2.
이 사진가의 눈길, 정신, 관찰, 지식 그리고 특히 그가 지닌 엄청난 사진능력은 어떻게 사회학을 글로 쓰지 않고, 사진으로 그것도 전통의상을 걸친 사람들의 사진이 아니라 얼굴사진으로 쓰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 알프레드 되블린, <시대의 용모> 서언 중 -
#3.
[생애] 아우구스트 잔더는 1876년 11월17일 지거란트의 작은 마을 헤르도르프에서 태어난다. 1890년부터 1896년까지 철광에서 일한다. 이 시기에 그는 지겐 출신의 산업사진가를 통해 난생 처음 사진을 접한다. 1892년에 생애 최초로 카메라를 손에 쥔다. 1897년부터 1년 동안 군복무를 한 후, 반년 동안 트리어의 사진사인 게오르크 융의 조수로 아틀리에에서 일한다. 1910년까지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그 기간에 사진기술을 좀더 배우기 위해 베를린과 마그데부르크, 드레스덴, 라이프치히의 여러 사진가들 밑에서 일한다.
1901년 드레스덴의 그림 아카데미를 다닌 후 린츠에 있는 사진관 그라이프에서 일한다. 1904년에는 이곳을 인수하여 쾰른으로 이사할 때까지 운영한다. 1910년에는 쾨른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아틀리에를 마련하고 베스터발트에서 사진작업에 착수한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전쟁에 참가한다. 라인 지역의 진보주의자들로 구성된 예술가그룹과 친분을 맺고, 대략 1924년경부터 그의 생의 대작인 '20세기 인간들'의 체계적인 구상작업에 들어간다. 1950년대까지 이 작업에 매달린다. 1929년에 출간된 <시대의 용모>라는 사진집은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사진전집을 언론에 사전 홍보하는 샘플의 성격을 띠었다. 초상사진 작품과 나란히 풍경사진과 건물사진, 식물연구사진집도 출판된다. 1936년에 나머지 사진집이 출간되나, <시대의 용모>를 찍어낸 활판 인쇄용판은 나치에 의해 파괴된다.
첫 아들 에리히가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구금 중 사망한다. 같은 해에 잔더는 자신의 서고에서 중요한 것들을 베스터발트에 있는 쿠크하우젠으로 옮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아틀리에는 폭탄공격을 받아 파괴된다. 그는 자신이 건져낸 대략 1만여 장의 네거티브들로 쿠크하우젠에서 계속 작업한다. 1951년에 쾰른의 '포토키나'에서 단독전시회를 가진다. 1960년에 그에게 독일연방공로상이 수여되며, 1961년에는 독일사진연합으로부터 문화상을 수상한다. 1964년 4월20일에 아우구스트 잔더는 중풍의 후유증으로 쾰른에서 사망한다.
#4.
[정보] 유고 = 1992년에 쾰른의 슈타트슈파르카세 문화재단은 아우구스트 잔더의 유산인 4,500장 원본사진들과 대략 1만여 장 되는 유리네거티브 그리고 개인 소유의 장서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취득한다. 그때부터 잔더에 관한 자료와 독일사진연합이 소유했던 사진집은 재단의 사진 수집부에서 관할한다. 이 재단은 잔더의 의도라 추정되는 기획안에 따라 잔더의 사진집 <20세기의 인간들>을 7권의 책으로 묶어 2002년에 출판했다. 잔더의 빈티지 프린트(사진이 촬영된 시기에 인화된 원본사진들)로 묶은 중요한 사진집은 미국 말리부에 있는 게티 박물관에도 있다.
#5.
[평가] 아우구스트 잔더는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20세기 독일 사진가이며 신즉물주의 사진을 대변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초상사진 작업방식은 오늘날 사전에 구상하고 이에 따라 작업하는 초기 작업방식의 예로 간주되며, 조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미지 출처
http://www.getty.edu
자료 : <해냄 클라시커 50 사진가 - 카메라 렌즈에서 탄생된 순간의 기적, 사진의 역사를 이룩한 세계의 거장 50> 빌프리트 바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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