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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서
어제 6월 18일 피고인 이창우의 형사재판 최후 변론을 마치고 7월 5일 오후 2시 판결을 앞둔 상황에서 만감이 교차하여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이 글을 드립니다.
저나 동생이나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러한 집안에 태어났고 그간 경험한 바를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저희 집안은 조선시대 16세기, 17세기(선조–현종)에 왜란과 호란으로 이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조정의 중심에서 고군분투하셨던 공신 집안입니다. 영의정으로 청백리로 이름이 나신 분도 있고 대제학, 판서 등의 직을 수행하시면서 나라에 봉사하시었습니다. 현재 행정 구역으로 공주시 검상동 일대에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농토와 임야가 있습니다.
이창우는 안분재공의 13대 손으로 종손이고 본인 이시우는 이창우의 형입니다(법적으로는 4촌). 12대 종손인 큰아버지 이택은 3.1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에 태어나셨고 서당 교육을 받은 분으로 평생 공주시 검상동에서 선영을 관리하고 조상님들의 제사를 모시며 사셨으며 1977년 규약과 함께 종중이 출발하던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2019년 4월에 돌아가신 아버지(이전: 대안공)는 차남으로 현대식 교육을 받으셨고 대학교수로 평생 후학 양성에 몰두해 오셨는데 큰아버지 사후 종가의 의무를 이어받아 지켜오셨습니다. 큰아버지는 슬하에 딸을 일곱 두셨는데 평생 후사를 걱정하며 사셨습니다.
제가 유학을 간 사이 제 동생이 큰댁에 양자로 입적하여 13대 종손으로 대를 잇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종재를 지키고 영구 보전하며 묘역을 충실히 지켜 나가고 종원 모두가 화목하게 지내게 하는 방안을 고민하셨습니다. 그러나 종손이 대를 이어 장자상속으로 내려오던 전통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고 민법에 따라 소유주와 상속권자가 정해진 지분에 따라 분재하는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봉제사 접빈객(제사를 모시고 손님을 접대하는)이라는 종손의 역할도 더 이상 법적으로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종가의 재산이 어느 부분까지 개인 재산이고 또 어느 부분이 종중 재산인지 법적인 규정도 없고 종가의 일원들, 종중의 종원들 모두 자기들 입장만 생각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아버지께서는 민법상 상속권자들을 설득하여 종가로 내려온 재산을 종중으로 이관하는 작업을 충실히 해오셨습니다. 또한 규약을 개정해 가며 종중을 지키는 데 평생을 바쳐오셨습니다. 그분의 철저한 원칙이 종중을 지켜왔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분은 종중의 일을 기록으로 남기셨고 저희는 이를 증거로 사실을 밝혀 왔습니다.
저는 한국 전쟁이라는 혼란 속에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자식 교육에 대한 의지로 무사히 고등교육 과정을 마치고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이라는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위를 받은 본인은 1986년 당시 포스코에서 개교 준비를 하고 있던 포항공과대학 (포스텍)의 창립 멤버로 초대받아 부임하여 30년간 신생공대의 발전과 후학 양성에 몰두하였습니다. 퇴임 직전 공대 설립을 준비하고 있던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초대받아 2016년에 시작하여 초대 공대 학장 겸 석좌교수로 6년간 봉직하였습니다. 재정이 빈약한 사립대였으나 3년간 450억 원 규모의 정부 지원을 받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단숨에 전체 공대의 틀을 짜고 여성 공학도를 양성하는 터전을 마련하였습니다.
2022년 70세의 나이로 퇴임하여 남은 생을 종손을 도와 종중을 발전시키고 선친의 유업을 받들고자 마음먹었습니다.
2022년 6월 6일 종손 이창우는 부천의 원미경찰서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종중 토지 이용료를 받아서 반환하지 않았다고 이철이 형사고발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간 5대 회장 이철의 독단적인 행위가 종중을 분열시키고 종사를 마비시켰으며 일부 종원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였습니다. 집안의 문제이기 때문에 인내를 가지고 설득하여 바로 잡으려 노력해 왔으나 이제 그가 종손을 형사고발을 하는 지경까지 이르러서는 더 이상의 인내와 설득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6년 종중의 새 회장(5대)이 된 이철은 부임 후 원만하게 종중을 이끌지 못하고 본인의 뜻대로 종중을 장악하려 하였습니다. 회장으로 추대하기로 할 때는 몰랐던 사실입니다. 이를 위해 종중의 과거사를 멋대로 왜곡하여 관련 지파들을 선동하였습니다. 현재 효력이 있는 규약은 2012년에 개정된 것으로 아버지께서 같은 대학의 법대 교수들 조언도 받고 하여 틀을 만드신 것입니다. 이철도 그 당시 규약 개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막내아우 이준우와 작업을 하였으며 자신이 만든 규약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였습니다. 기회만 보고 있던 그는 결국 2019년 10월 9일에 종중규약을 개정하겠다고 새 규약을 임시총회에 상정하였습니다(개정을 위해서는 종손과 회장이 동수로 개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에서 합의된 안이 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돼야 총회에 상정하게 되어 있으나 이를 무시하고 직접 상정. 재판부에서도 문제 삼지 않음). 현 규약의 기본 철학이 종손과 회장이 협력하여 협의하고 동수를 추천하여 임원회를 구성하고 원만하게 종중을 운영하는 것이었다면 새 규약은 종원의 직선으로 회장을 뽑고 회장이 전권을 가지고 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임시총회 이후 종손이 정족수 부족으로 새 규약이 부결되었다고 선언하였으나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 하였고 2020년 3월 1일 회장 선출을 위한 총회를 공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결국 민사소송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평생 법적 다툼이나 법원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본인은 숙명여대에서 석좌교수로 있는 동안 서울에 머물게 되었고 중고등학교 6년간 친구로 지냈던 민법 전문가 양창수 교수를 그의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 사무실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듣게 되었고 법무법인을 소개받아 소송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21년 7월 초 대전고등법원 판결이 확정되어 총회의 효력이 무효가 되고 새 규약도 무효로 선언된 바 있습니다(1심 2019가합20654, 가처분 2019카합3044, 2심 2020나15469). 이철의 첫 번째 시도는 이렇게 막아내었습니다. 2020년 10월 말에 임기가 끝난 회장은 1심 판결을 기다리느라 전형위원회를 하여 차기 임원진을 구성하자는 종손의 제안을 무시하였고 결국 후임자 없이 임기가 끝나버렸습니다.
법원의 판결 이후에도 계속 규약 개정을 하겠다고 종원들에게 선포하고 현재까지도 후임이 선정되지 않았으니, 본인이 회장이라고 주장하고 그 의무를 다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첨부된 규약 개정안은 본인이 홀로 만든 것으로 일방적으로 종원들에게 선포하여 조언을 구한다고 하였으나 아무도 공개적으로 호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금고의 형은 받은 자는 종중 업무를 할 수 없다는 조항이 신설되었고 종손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고문으로 추대한다는 조항이 포함된 것입니다. 그가 종손을 형사 고발한 의도를 짐작하게 합니다.
실제로 종중이 설립된 이후 종중은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다툼의 연속으로 때로는 횡령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종손은 당연직 총무로 하여 평생 봉사하는 자세로 임해 오셨습니다. 종손이 군복무도 하고 생업에 몰두하는 동안 아버지께서는 규약에 정해진 대로 종손을 대행하여 총무로 일하면서 종중 살림을 이끌어 오셨고 많은 기록을 남기셨습니다. 이철은 종가가 기득권을 챙기고자 하여 종사가 원만히 이루어질 수 없다고 모함하고 총무는 재산을 다루는 중요한 자리로 종손이 맡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재산의 처리는 규약에 나타난 바와 같이 임원회, 종재관리위원회, 총회 등을 거치게 되어 있지 총무가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대법관을 지내고 종중 관련 송사에도 경험이 있는 양창수 교수와 법무법인의 조언을 받아 문장을 추대하여 종중을 수습하고 정상화하기로 한 본인은 종중의 관례에 따라 존경받는 연고항존자(연세가 높고 항렬이 높은 분)를 공개적으로 추대하는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과거 2대 회장이 토지보상금을 개인 통장으로 수령하고자 하다가 발각된 사례가 있었는데 이후 사퇴와 인계를 거부하여 문장을 모시고 회장을 탄핵하고 문장이 소집한 총회에서 새 회장을 선출한 전례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2021년 11월 7일 새로 추대된 문장이 소집한 종중의 정기총회에서 본인이 제6대 종중회장으로 추대된 바 있으며 새로운 임원진이 구성되어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전임 회장에게 새로 선출된 임원진에 종중 통장과 직인의 인계를 여러 번 촉구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 재무 이병화와 함께 현금입출금 통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선영 관리에 필요한 자금의 집행을 거부하고 있어 종사가 마비되고 있습니다. 종중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조상님들의 선영 관리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회장 이하 임원들은 이를 소홀히 할 수 없으나 이철은 이를 무시하고 일을 내팽개쳐 직무를 유기하고 있습니다. 보다 못해 본인은 종중의 자산인 직인과 통장 등을 인계해 달라고 다시 한번 민사소송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1심 2022가합32866). 2023년 11월 23일 선고로 패소한 상황이고 현재 항소를 하여 서울고등법원에서(2024나2000274) 이에 대한 법적 다툼이 다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간 종중 토지자산의 임대료를 활용하고 부족한 부분은 본인의 개인 현금을 활용하여 종사와 선영 관리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종중이 정상화되면 모든 것을 투명하게 결산하여 종원들에게 보고할 것이라고 공표하였습니다. 전임 회장과 임원들의 임기가 끝난 상황이어서 임대료를 종손이 관리하며 꼭 필요한 부분에 활용하고 있는데 그리고 개인 재산까지 투입하여 희생적으로 종사를 이끌어 가고 있는데 전임 회장은 아직도 자기가 회장임을 주장하며 종중 입출금 통장에 입금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여 종손을 죄인 취급하며 형사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그가 만들어 종원들에게 배포한 규약에는 범죄자가 임원이 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어 형사고발을 통해 종손을 내몰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2023년 12월 18일 종손이 공주 검찰청에서 심문을 받는 동안 민원인 대기실에서 3시간 반을 기다리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 이렇게 죄 없는 사람을 고소하고 그동안 자기가 잘못한 것은 모두 부인하니 더 이상 보고 넘기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집안이 파벌로 갈라지고 동원하고 다투게 되니 망신스럽기도 하나 무엇이 진실이고 정의인지 밝히고 바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대 종손들은 근검절약으로 종재를 보존하고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국가가 필요로 할 때 농공단지, 천안-논산, 공주-부여 간 도로 건설에 종중 토지를 제공하는 등 여러 부분에 기여해 왔고 종중 재산에 대하여 세금을 충실히 납부해 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손들이 조상님,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기보다 재산 가지고 다투고 반목한다면 종중이 없으니만 못한 것입니다.
종중은 가족을 확대한 개념으로 전통적으로 공통의 조상님들을 모시는 조직이며 종원들 간의 화합과 화목을 바탕으로 합니다. 책임을 진 사람이 개인의 바르지 못한 생각으로 분열을 조장하고 분란을 자초하면 공동체가 반목하고 갈등에 휩싸이게 되며 서로 간의 다툼으로 존재의 가치를 잃게 됩니다. 하나의 작은 조직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렇게 종중의 역사를 멋대로 재단하고 갈등과 파벌을 조장하며 남을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이철은 사실이 아닌 것을 극단적인 언어로 포장하여 종원들에게 공표하고 고인이 된 대안공 이전, 종원 이옥, 종손 이창우, 그리고 종중의 명예를 훼손하였습니다. 참다못한 본인은 민사에 이어 형사고발을 하기 위한 고소장을 2021년부터 여러 번 작성하여 경찰서에 제출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집안일을 법정에서 다투어야 하나 해서 여러 번 망설이고 실천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가 만든 규약과 함께 만들어 놓은 고소장을 첨부하오니 이철이 그간 저질러 온 행위 전체를 보시고 사회정의가 실현되도록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모든 굴레를 집어던지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만 아버지, 형제들 생각도 하게 되고 조상님들이 지워 주신 짐을 그리 쉽게 저버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 종중이 정상화되어 종원들이 화목하게 살 수 있고 조상님들의 뜻을 받들어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올바른 자세로 나라에 충성하는 정신을 키워주고 싶습니다. 참고로 제가 대학에서 육성한 70여 명의 제자들은 업계 (일 예로 삼성디스플레이 부사장), 연구소 연구원, 학교 교수로서 본분을 다하고 있습니다. 포항제철, 포항공대가 어떻게 설립이 된 곳이냐 유능한 공학도가 되어 나라에 충성하라 했는데 그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2024년 6월 19일
포항공과대학교 명예교수 공학박사 이시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