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남생이>
옛날에 형제가 살았는데, 형은 욕심이 많고 동생은 마음씨가 고왔어.
아비가 죽고 나니 욕심 많은 형이 저 혼자 재산을 다 차지하고 홀어머니와 동생을
집에서 내쫓아 버렸지.
그래서 동생은 홀어머니와 함께 다 쓰러져 가는 빈 집에 들어가 살았어.
그러니 형은 부자로 잘 사는데 동생은 지지리 궁상으로 가난하게 살지.
하루는 동생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어. 겨울이라서 눈은 펄펄 내리는데, 나무를 하면서
생각해 보니 걱정이 태산이야. 설은 다가오는데 양식이 없으니까 그렇지. 그래서,
"설 눈은 쌓이고, 설 밥은 없고, 우리 늙으신 어머니는 어찌할꼬."
이렇게 한탄을 하면서 나무를 했어. 그런데 저 아래서 누가,
"설 눈은 쌓이고, 설 밥은 없고, 우리 늙으신 어머니는 어찌할꼬."하면서 흉내를
낸단 말이야. 하도 이상해서 또 한 번,
"설 눈은 쌓이고 설 밥은 없고, 우리 늙으신 어머니는 어찌할꼬."했더니 저 아래서 또,
"설 눈은 쌓이고, 설 밥은 없고, 우리 늙으신 어머니는 어찌할꼬."하고 똑같이 흉내를 내거든.
거 참 이상하다 하면서 나무를 하는데, 숲에서 개암 하나가 툭 튀어나와. 그래서 개암을
주워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옳지, 이놈은 우리 어머니 주고."했더니 저 아래서도,
"옳지, 이놈은 우리 어머니 주고."한단 말이야.
개암 하나가 또 툭 튀어나오기에,
"옳지, 이놈은 내가 먹고."하니까 저 아래서 또,
"옳지, 이놈은 내가 먹고."하거든.
그렇게 흉내 내는 소리가 재미나서 자꾸 말을 했지. 그러니까 저 아래에서도 자꾸 따라해.
나무 한 짐을 다 해서 젊어지고 내려오다가 소리나는 곳에 가 보았지.
가 보니가 나무 밑에서 남생이란 놈이 앉아서 그렇게 흉내를 내고 있더란 말이야.
하도 재미나고 이상해서,
"너 나하고 우리 집에 가련?"하니까 남생이도,
"너 나하고 우리 집에 가련?"하고 넙죽넙죽 흉내를 내는구나.
그래서 그놈을 안고 집에 돌아왔어. 집에 데려다 놓으니 시렁에 쪼르르 올라가서 앉아
있다가 누가 말을 하면 넙죽넙죽 따라하고 그러지. 동생과 어머니는 그게 귀여워서 데리고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어.
동생네 남생이가 사람 말을 흉내 낸다는 소문이 퍼지고 퍼져서 먼데 사람들도 다 알게 됐어.
사람들이 신기한 남생이 구경한다고 동생 집에 구름처럼 몰려들거든.
그 사람들이 구경 잘 하고 가면서 돈을 한 푼씩 주고 가니까 금세 돈이 많이 생기더란 말이야.
그걸로 논도 사고 밭도 사고 해서 걱정 없이 살게 됐어. 남생이 덕분에 잘 살게 된 거지.
그런데 형이 그 소문을 듣고 찾아왔어. 찾아와서는,
"너 그 남생이 사흘만 빌려 다오."하지. 동생이 군말 않고 빌려 줬어. 그런데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지나도 안 돌려줘. 아흐레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안 돌려주기에 동생이 형네 집에
찾아갔어.
"형님, 남생이 잘 있나 보러 왔습니다."
"그놈의 벙어리 남생이 말이냐? 그거 아무 소용도 없더라."
"어디에 있나요?"
"한 번도 말을 안 하니 그놈의 남생이를 어디에 써? 뒷마당에 내던졌더니 죽어 버리더라."
동생이 엉엉 울면서 죽은 남생이를 찾아 안고 집에 왔어. 집에 와서 마당가에 고이고이
묻어 줬지. 그런데 하룻밤 자고 나니까 남생이 무덤에 대나무 싹이 나더래.
대나무 싹이 하루 한 뼘씩 자라더니, 댓잎에서 쌀이 쏟아져. 쌀이 소르르솔솔 떨어져서
그 밑에다가 그릇을 갖다 놓으면 한 나절에 꼭 한 그릇씩 찬단 말이야. 그걸로 점심밥
지어 먹고 나면 저녁 때까지 소르르솔솔 떨어져서 또 한 그릇이 차. 아침이 되면 또 한 그릇이
차고. 더도 덜도 말고 꼭 두 식구가 하루 세 끼 먹을 만큼 쌀이 쏟아지더래.
그러니 양식 걱정 없이 살지.
그 소문을 듣고 형이 또 왔어. 와서,"저 대나무 좀 뽑아 다오. 사흘만 쓰고 돌려줄 터이니."하겠지.
동생은 이번에도 군말 얺고 대나무를 뽑아 줬어. 그런데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지나도 안 돌려줘.
아흐레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안 돌려 주기에 동생이 형네 집에 찾아갔어.
"형님, 대나무 잘 있나 보러 왔습니다."
"그 먹통 대나무 말이냐? 그거 아무 소용도 없더라."
"어디에 있나요?"
"쌀이라는 게 하도 감질나게 떨어지기에 한꺼번에 많이 나오라고 밑동에 구멍을 뚫었더니
죽어 버리더라."
동생은 한숨을 쉬면서 집에 돌아왔어. 그런데 집에 와 보니 남생이 무덤 자리에 또 파란 대나무
싹이 뾰족 올라오더래. 그게 쑥쑥 자라면서 댓잎에서 또 쌀이 쏟아지고 말이야.
동생은 어머니 모시고 잘 살았대. 형은 어떻게 됐느냐고? 그야 폭삭 망해서 아주 거지 꼴이
됐지. 나중에는 마음을 고치고 동생네 도움을 받아서 그럭저럭 살았다더군. 끝
(1) "이젠 말하는 남생이만 남았다"는 말씀이 결코 안좋은 뜻은 아니라는 이야기네요.
남생이도 못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현실...
첫댓글 좋은 교훈으로 삼습니다.
행복한 마음에 취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