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살아가면서 생기는용기와 희망
산이좋아 산에오른지 반세기 50년이 넘었구나 그많은 봉우리 정상을 밟으면서
정상에 올라야 산에 오른것으로 생각하고 평생을 살아왔는데~~~
어느날 부터 백운대보다는 백운산장에 삼불봉보다는 남매탑휴계소에 대청봉보다는
케이불카 전망대에 마음을 정하여 놓고 산행을 시작하게 된것도 벌써 6-7년
언제나 오늘 갖추고 나서는 등산화와 비품들이 마지막 산행이 아닐까??
그런생각에 오늘도 모두 평상복으로 나서는데 나는 송림수제화 비브람과 치롤모
아무도 인정해주지는아니하지만 CAC 뺏지를 달고 반세기를 함께한 복장을 하면
용기와 힘이 생기고 든든함은 어데서 오는 힘일까 다리힘이생긴다
오늘도 듣는인사 "선배님 안녕하세요" 동료지간에 "야 XX 잘있었냐" 하는인사가 부러웁다
후배들틈에 끼워가는데 인사를 해달라는 리더의 명령에 쓸데없는 헛소리 그저 형식적인
인사 치레하고 ~~~등산이야기 하려는것은 않이였는데
조선조 3대 태종께서 남행에서 말의 귀처럼 생겨서"마이산"이라불리워 졌다는
마이산에서 일생을 던저기도로 마지막까지 쌓았다는 탑을 보면서~~~
기도하는 간절한마음 마지막기도를 생각하고 느끼면서 나를 생각한다
신라때에는 서다산 고려때는 용출산 조선조부터 마이산이라불리웠다고 전하며 이곳에서
구한말 시대적으로 어려운때에 가정형편이 아주어려운 양반가문에서 태어난 이갑룡이라는
사람에 의해 쌓아졌다는 100여년의 풍상을 견디고 모진 비 바람을 견디어낸 돌탑을 쌓은
기도와 구도의 이야기를듣고 느끼는바 옷깃을 여미게되었다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세상을 떠돌다 25세에 귀향하여 지리산200리 계룡산200리 가운데 위치하고
마이령봉의 신비하고 절묘한 모양에 반해 구도의 행각으로 자연석으로 중간 접착물이없이 탑을
쌓기시작 세속과는 완전히등지고 가장중앙의 15m 원추형의 천지탑은 후세 탑을 연구하는 학자
들의 여러가지 과학적인 이치에도 맞는다고 전하며 80여개의 석탑의 신비와 가치는 축조기술보다
조형미와 조화미에서도 감동이며 아름다움을 준다
탑을 쌓는과정에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가운데 돌을 그냥 쌓아올리것이않이고 돌을 모아놓고
일정 시간 간절한 염원과 기도후에 탑돌을 올려놓았다고 전하며 천지탑 중앙돌을 100일 기도후에
올려놓았다고 전하여지며 돌의모양이나 질로보아서 마이산부근의 돌이않인 물에 연마된 돌이
탑중에 많은것으로 보아 먼거리 하천 강에서 운반하였다면 불가사의한 일 아니겟나싶다
탑을 쌓은 이갑룔[쌍암]은 전주이씨 효령 17대손으로 현재 탑사의 관리는 그후손되는 도암이
관리하고있다하며 신서[알아볼수없는글]로쓴 30권의 책을 남기고 1957년 타계하였다고한다
어느종교나 재래 무속 종교도않인순수한 구도와 기도로 탑을 쌓고 신서를 남기셨다는 그분이
돌을 옮겨 탑을 쌓는 모습을 상상하며 처음이 않인 마이산에와서 일행은 모두 저수지 식당에
매운탕에 몰입할 시간에 나를 돌아보게되고 산정상이아닌 자연돌에 정신이 팔려 내가 마지막
이라는 생각에 너무 간절한 기도는 팽개처 버리지 않았나 건강을 핑계한 무료한시간을 흘려
보내지않았나 이시간 또한번 생각하게 기회를 주신것도 감사드림니다
저많은 사람들 중에도 내가 그때 산행에서 처럼 돌을 옮겨 쌓은 구도하는 그분의 그기도 소리를
보지도 듣지도 않하고 하늘아래 정상만 바라보고 걷는 사람도 있겟지 뒤돌아보거나 아래를
보면서 걷는 ~~~ 기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것도 복인것을
첫댓글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도 돌을 쌓아둔 곳이 많습니다.. 그 속에 담긴 소원들은 무얼까...각자 다른 소원을 이렇게 한 곳에 쌓아둔 모습들이 어쩐지 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