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4.2 일요일 새벽 다섯시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아들을 깨운다.
오늘은 함양에 있는 거망산,황석산으로 k2산행이 있는 날
7월에 아들을 데리고 백두산에 올라 그 큰 기상을 담아주려
계획한 바 이번부터 산행에 데리고 다니며 교육을 시키려한다.
함양지역은 300여년전 선조께서 군수를 지내신곳이라
아들에게 역사적으로도 가르칠만한 유적지이기에
이동거리도 멀고 산행시간도 길어 다소 걱정은 되지만
아들을 믿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걱정을 다스린다.
신승복 부회장의 구령에 맞춰 간단한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아침 9시 절 입구에서 물소리 좋은 계곡을 따라 등산 시작하고
몇백미터 넓은길을 따라가니 멋있는 용추폭포가 나타나
우리의 눈길과 마음을 잡는다.
이곳에서 일부가 용추폭포에 마음이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나머지는 부지런히 안개로 덮혀있는 보이지 않는 정상을 향하여
뚜벅뚜벅 걷는다.
절 앞 내를 건너 앞서가는 일행이 보이고 아들이 그뒤를 쫓는다.
찰나 망설인다.
아들 뒤를 봐줘야 하나,아니야 내가 같이가면 아들 정신이
약해지는것은 뻔한일 미안하지만 에코로바 사장에게 부탁을 하고
등반대장과 이쁜 동생 둘과 계획대로 우회하는 다른 코스로 오른다.
가는 중간 중간 계곡에 물소리 새소리 실바람소리 아름다운데
아들 걱정이 앞선다.
저위에 쌓인 하얀눈이 녹아녹아 작고 작은 수많은 폭을 만들어내며
전설의 고향처럼 안개 자욱한 산속으로 산속으로
앞서가는 예진,수진 힘들어 하고 바로 앞에 보이는 길도 못찾는다.
언젠가 산불에 타버린 흙이 검은 속살을 보이고 고개를 들자
외계인 머리통처럼 생긴 큰바위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허리에 구멍이 무수히 뚫려 있는
고로쇠 나무가 애처롭게 투명한 피를 인간의 주머니로 내려 보낸다.
허리까지 커버린 산죽이 나의 몸 구석구석 간지럽히고
능선이 다가오자 바람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온다.
風彈이 사정없이 나를 공격하고 몸을 숙여 피해본다.
바위 능선에 서있는 나의 존재가 한없이 가벼워지고
천길 낭떠러지를 지나 황석산에 선다.
아들은 어떻게 오는지,저아래에서 힘들어하는 소리가 들리고
축쳐진 아들이 모습을 보이는데 안쓰럽기도 하지만 대견하다.
힘들어 하는 아들을 달래고 앞으로 남은 길이 더 멀고 험한데
내심 걱정이다.
배낭도 빼앗아 짊어지고서 바람도 거칠어지고 더 어려운 길
한걸음 한걸음 앞사람을 쫓아간다.
억새와 잡풀이 무성한 버려진듯한 묘앞에서 점심을 먹으니
아들 녀석 힘이 ??는가 보다.
후미에서 선두를 쫓는데 도저히 앞으로 갈수 없는 상황,
모두를 날려버릴것 같은 바람때문에,어찌보면 아이들 둘이
있기에 안전을 생각한 등반대장의 판단으로 중간에서 하산키로 한다.
하산시간도 약두시간 짧지 않은 거리다.
앞서가는 아들 신경 쓰다가 가로 누워있는 나무 몸통에
나의 이마 강도를 사정없이 시험해 본다.
어찌 말로 표현을 할수있나 그저 소리없는 통증과 눈가에 이슬
바람으로 이름난 설악,대관령,덕유를 넘어도 이렇게
무서운 상대가 없었는데 그를 피해 잘도 왔건마는
나무를 원망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밑을 지난 내가 불찰이라.
생강나무가 노란옷을 뽐내고 진달래가 분홍옷을 자랑하네.
밤나무 농장으로 내려서 위를 보니 안개가 자욱하고
저산에서 언제 바람이 그렇게 불어댔나 싶다.
아들과 이제야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저기 봄내음 가득한 냉이 캐는 손길들 바쁘시고,
배가 잔뜩 불러 출산을 앞둔 엄마 개구리를 신기한듯
구경하고 냇가로 내려가서 아들과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는다.
즐거운 뒤풀이 시간 막걸리와 맛있는 안주로 지친 몸을 풀고
마무리를 할 무렵 생각도 하기 싫지만 아들이 상처난 얼굴로
나타난다.
급히 신승복 부회장과 함께 병원으로 가서 응급조치를 하고
천안으로 직행 무사히 치료를 마친다.
몇시간 동안 지옥의 나락까지 떨어졌다가 올라왔지만
이과정에서 보여준 모범 공직자 경찰 두분의 봉사정신,
김응군 회장님,신승복 부회장님의 침착한 대응,
애가 타 금연에 실패한 에코로바 조남주 사장을 비롯하여
모든분들께서 이해와 안타까움을 함께 하시어
그나마 큰 불상사가 없었다 생각하고
모든분들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 드리며
앞으로는 즐거운 산행을 위해 모든이가 자기 수양을 통해 남에게
작은 상처라도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는게 이렇게 행복할수가 없답니다.
2006.4.5 추읍산 호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