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과학의 절묘한 앙상블'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이 11년 만에 삼성화재를 침몰시키고 남자 배구 정상을 탈환했다.10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따라붙던 `만년 2위' 꼬리표를 떼고 우승컵에 입맞춤할 수 있게 한 것은 역시 김호철[51] 감독의 지도력이었다.
지난 2003년 말 친정팀 지휘봉을 잡은 뒤 불과 2년 남짓. 허술한 짜임새로 삼성화재에 기를 못 펴던 현대캐피탈을 최강으로 변모시키는 마술을 부렸다.
그 바탕에는 배구의 메이저리그 격인 이탈리아 프로리그 선수와 감독으로 승승장구하며 몸에 익힌 과학배구, 특유의 카리스마가 자리잡고 있다.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감독시절 친정 팀의 거듭된 간청에 못 이겨 국내로 유턴한 김호철 감독이 처음 선수단을 대면할 당시 현대캐피탈은 한심한 상태였다.
나름대로 유명선수는 있었으나 허명[虛名]이었고 체력과 정신력, 기본기 어느 하나 맘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독하게 마음을 다잡은 김호철 감독과 타성에 젖은 선수들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그러나 선수들을 하루 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일. 2004년 실업배구 V투어와 최강전 등에서 김 감독은 신치용 감독의 삼성화재를 상대로 고작 1승[10패]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김호철 감독은 하지만 성적에 굴하지 않고 화려한 명성에 걸맞은 과학적인 지도방식과 열정으로 선수단을 장악,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선수들을 탈바꿈시켰다.
트레비소클럽의 전문 트레이너 안드레아 도토[31]를 영입, 포지션별로 필요한 근육을 집중 발달시키는 맞춤형 체력 훈련으로 선수들을 단련했다.이런 체력 훈련이 있었기에 서른 줄에 들어선 후인정[31]은 노장이라는 칭호가 무색하게 펄펄 날며 우승에 힘을 보탤 수 있었다.
경기장면을 찍은 비디오자료를 이탈리아에 있는 도메니코 라사로[55] 분석관에게 보내 상대팀 공격 패턴을 분석, 전력을 극대화하는 선진 `데이터 배구'를 도입했다.
선수 개개인의 성격에 맞는 맞춤형 훈련도 빼놓을 수 없다.성깔있는 권영민은 오기를 자극하는 혹독한 수업으로 정상급 세터로 키워냈고, 소심한 송인석은 자신감을 북돋는 방식으로 잠재력을 이끌어냈다.
선수들의 해이해진 정신력을 다잡으려고 한겨울에 연못에 빠지는 강행군을 시키기도 했고, 자신감을 북돋우려고 해병대 극기 훈련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이런 강행군 시에는 자신이 솔선수범해 선수들에게 감동을 주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이런 노력이 프로 원년이던 지난 시즌부터 열매 맺기 시작했다.
현대캐피탈은 정규리그에서 삼성화재와 2승2패로 어깨를 나란히 한 끝에 우승을 거머쥔 것. 아쉽게도 챔피언결정전에서 1승3패로 패해 통합 우승이 좌절됐지만 삼성의 독주를 끝내고 프로배구를 확실한 양강 체제로 개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승 문턱에서 아깝게 좌절하자 김호철 감독은 이를 더 악물었다.
세계적인 흐름에 맞게 '고공배구'를 정교하게 가다듬는 한편 공격과 수비, 정신력에서 선수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고, 장신[206㎝] 용병 숀 루니를 영입해 통합 우승에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그의 계획대로 현대캐피탈은 정규리그에서 단 한 차례의 추월도 허용치 않은 완벽한 우승을 거머쥐고 챔프전에 직행한 뒤 챔프전 첫 경기에서 불의의 역전패를 극복하고 감격의 통합 우승을 일궈냈다.
김호철 감독은 친정팀 재건과 국내 배구 부흥이라는 큰 뜻을 품고 이탈리아에서 돌아왔으니 이제 목표의 절반은 이뤄진 셈이다.
최근 국가대표 감독으로 임명된 그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