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현 1집 리뷰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지나간 어느 비 오는 늦여름 늦은 밤.
하남시의 어느 골목사이 카페, 구식 앰프와 기타가 놓여있다.
근방 미사리에서 공연을 하는 가수들이나
연주인들이 주로 찾는 곳이며,
무대에서 불사르는 열정의 크기만큼이나 태우고 남은
감정의 재를 한잔 술을 빌어 뽑아내는 그런 곳 이였다.
노래를 하는 사람들은 아물지 않는 생채기가 있다.
공연 뒤 얻어지는 성취감과 쾌감, 그 뒤를 따르는 끝도 없는
공허함. 상실감. 그런 물과 기름 같은 감정의 대립들이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들을 남긴다.
부산함을 즐기지 않는 그는 한쪽 테이블에서 맥주 몇 잔을
비우며 그 또한 짊어진 그 트라우마를 달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삶의 이야기들이 희미한 음악소리와 뒤섞이면서
그냥 하나의 소음으로 변할 때 쯤
그에게 어쿠스틱 기타 한 대가 옮겨진다.
늦은 밤 비 오는 텅 빈 거리를 노래하듯. 조용히 혼잣말을 하듯이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을 부르기 시작한다.
술잔을 비우던 그 자리에서 마이크도 없이 시작한 노래는
어느 순간 잔잔한 감동으로 바뀌더니
사람들의 지친 마음속으로 진통제가 되어 파고든다.
마치 새로운 조명에 눈이 부신 것처럼 분위기가 바뀐다.
한순간에 평범했던 그의 자리는 무대 세트로 바뀌고 말았다.
그렇게 그는 그곳에서 음악으로 얻은 상처를
다시 음악으로 치유하고 있었다.
그는 가수 한상현 이였다.
그는 사막에서 태어난 호랑이다.
밀림을 찾아 오랫동안 걸어 왔다.
드디어 끝이 보이려 한다...
01 Intro
한상현이 만들고 연주한 잔잔한 어쿠스틱기타 연주곡이다.
마치 랜디로즈의 Dee를 새롭게 만나는 느낌이다.
02 분홍새
하모니카 연주로 시작되는 분홍새.
혼자서 갈망하는 이별과 사랑의 아픔이 호소력 짙은
보컬 과 만났다. 음률과 함께하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특이하다.
03 눈감으면
잊지 못하는, 잊을 수 없는 그 사람.
당신에게 두 다리를 잡히고 난 절벽 끝에 서있죠.
04 간 다
세상은 힘들다.
절망과 좌절은 늘 가까이 있다.
하지만 그 힘든 세상을 한잔 술로 잠시 잊는다.
난 지금 어깨에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한잔 하러간다.
한상현의 작사 작곡.
05 비가 오면
비가 오면, 찬비가 내리면 널 향한 그리움은 더욱더 커져만
가는데 잊을 수 없는 널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
니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숨고 싶어...
06 떠나 간다네
수많은 추억을 두고 그렇게 쉽게 떠날 수 있을까?
매일 걷던 그 거리에서, 함께 했던 그 시간에서.
아마 난 널 잊지 못할 것 같아.
07 가라
사랑이 아니라면 널 보낸다.
나에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오겠지만.
너의 사랑이 아니라면 널 보낸다.
내게서 멀리 떠나라 아주 멀리.
08 염원
하늘 향해 두 손을 모아 이 사람을 사랑하오니
나로 인하여 맘 아프게 되는 일은 없게 해달라고 기도해.
오직 너만은 나에게 전부야.
09 평행선
딱 한번 어긋난 다시 만날 없는 두 개의 선 끝에 매달린 너와 나
널 사랑 한다 믿었던 그때의 한번이 마지막 이였나 봐.
흐르는 선율이 가슴 아프다.
10 남자답게
세상은 내 맘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지.
나의 돈도, 나의 여자도, 나의 인생도,
하지만 오늘도 난 다시 간다. 이 세상을 향해...
11 행진 앞으로
눈물은 포기하지 않을 때 흘리는 거야 자~ 행진 앞으로.
한상현과 함께하는 많은 동료 가수들의 목소리가 녹아 있다.
그들의 노래하는 삶이 쉽진 않겠지만 하지만 괜찮아.
노래도, 인생도 쉬우면 나중에 재미없을 테니까.
12 염원 (피아노 버전)
피아노 편곡이 주는 편안함.
가사에 깊이 심취할 수 있으며
호흡조차 음악이 된다.
이번 음반은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타고난 가수 한상현과 타고난 작곡가 신일수의 만남이라...
이것은 스타 마케팅도 아니고 사운드 전쟁도 아니다.
진정 본질에 충실한 대중가요다. 기분이 좋다.
우리나라에서 가요를 위한 가요를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라는 말도 당장은 들리지 않는다.
당신이 우연히 이글을 만나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그의 음악을 그냥 생각 날 때 서너 번 씩만 들어보기 바란다.
어느 순간 당신이 아끼는 음악 파일이 되어 있을 것 이다.
그리고 그가 왜 사막에서 태어난 호랑이 인지 알게 될 것이다.
가을이 간다.
또 커피가 식는다.
2011년 가을 음악인 김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