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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고 싶었습니다 - 대담 / 본지 편집주간 임 애 월
詩로 쓴 욕망의 정신사
- 히말라야에서 지중해, 낙동까지
조 명 제 시인
- 아직도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기본적인 자유를 저당잡힌 이 가을날,
이 계절의 시인으로 조명제 선생님을 모셨다
삶에 대한 선생님의 광기 어린 열정을 듣고 있노라면
그 답답함이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지면으로나마 선생님의 열정 속으로 잠시 들어서 본다 -
임애월: 조명제 선생님, 안녕하세요?
공적인 자리에서 자주 뵙긴 했지만 지면으로 이렇게 다시 뵙게 되니 더 반갑습니다.
조명제 : 네, 무척 반갑습니다. 고향 상주에서 복숭아 과수원을 한다하셨으니, 추석을 앞두고 무척 바쁘시겠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시대라 농사를 하면서도 시를 쓰고, 잡지 편집도 할 수 있어서 참 좋은 세상입니다. 농부의 수고로 복숭아꽃이 피고, 초록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가는 거, 예술 아니겠습니까! 모름지기 시인은 원천적으로 농부(農夫/農婦)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홍신선, 유기봉 시인도 과수농사를 하는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저도 고향의 조그만 밭뙈기에 과수농사를 지으며 골방에 박혀 시를 쓰고 싶은데, 꿈만 꾸고 있습니다. 경북 청송군 보현산 북쪽 마을까지는 상주(尙州)보다 두 배는 더 먼 곳이거든요.
임애월 : 이것도 저것도 다 별 볼일 없는 그저 평범한 농부로 5년째 살고 있답니다. 농사도 제대로 짓는 게 아니라 그저 흉내만 내고 있거든요.(웃음) 다시 선생님 만나 뵈면 막걸리 한 되 꼭 받아드리려고 했는데... 시국이 도와주지를 않네요.(웃음)
조명제 : 갑갑하고 우울한 시절이 너무 오래 갑니다.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보니 막걸리나 쐬주 한잔 나누며 시와 인생을 논하던 때가 참 그립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에 발표한 졸시 「경계를 넘어서」에, 지금의 코로나 사태와 똑 같은 상황의 대목을 쓴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완전 퇴치되지 않을 거라는 전망입니다. 아무튼 그런 전망을 무색하게 하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임애월 : 참으로 답답하고 어두운 전망이네요.
선생님께서는 경북 청송군 안덕에서 출생하셨네요, 조선시대에 저명한 유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라고 들었어요. 뒷조사를 살짝 했답니다.(웃음)
조명제 :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아내셨어요? 제가 청소년 시절까지만 해도 현서면이었는데, 나중에 안덕면이 분구(分區)되었습니다. 안덕(安德)은 안동 길안면, 영천 화북면과 접해 있고, 의성 춘산면과도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옛날로 말하자면 안동 문화권의 고장이지요. 저의 고향 마을은 면소재지에서 한 십 리 떨어진 곳이지만, 안덕은 본거지 경남 함안(咸安)에서 이주해 오신 방호(方壺) 할아버지께서 자리잡으면서 함안 조씨 집성촌을 이룬 곳입니다. 방호 할아버지는 퇴계학파의 유학자로 효성(孝誠)이 지극하셨던 분이랍니다. 안덕면 신성리에 가면 강가 절벽 위에 방호정(方壺亭)과 후학들을 가르치던 건물이 있는데, 그런 내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임애월 : 어렸을 때부터 뿌리 깊은 유교문화의 배경 속에서 자라셨겠네요? 착하고 반듯한 소년이었을까요. 아니면 철없던 유년기에 즐거운 에피소드라도 혹 있으신가요?
조명제 : 뿌리 깊은 유교문화의 배경 속에서 성장한 것은 맞습니다. 아버지가 종손인 집이어서 다달이 제사를 지냈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유교적 생활의식이 몸에 배긴 하였으나, 인접한 안동과는 달리 급속도로 개방적 의식이 확산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산골의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학교 갔다 오면 소 먹이고 꼴 베고, 고추농사 담배농사를 돕고 하는 게 일과였지요. 그런 중에 친구들과 어울려 자연 속을 누비며 산과(山果)를 따 먹고, 개구리 뱀도 잡아 구워먹고, 개구진 놀이를 즐긴 생활이었습니다. 그 유년기에 관찰하고 체험한 자연 사물과 가축들의 생태에 관한 것들이 장차 시를 쓰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우리 마을은 국립기상대가 세워진 보현산 근방이라 최고의 청정지역이지요. 겨울 밤하늘의 별은 깨어질 듯 반짝였습니다. 시집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제7부 「은하계의 끝에서」와 시 「여름밤의 꿈」 이 씌어진 동인(動因)이지요. 남자애들은 전학 온 예쁜 여학생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경쟁하곤 했는데,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는 문학을 하게 되는 동기를 이성(異性)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고 하였다니, 맞는 것 같습니다(웃음).
임애월 : 하하... 사춘기의 청소년들에게 이성은 중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지요. 1985년 《시문학》 추천 완료로 등단하셨는데...... 문학비평가로서 한국문단의 큰 축을 담당하고 계시잖아요. 계간 《예술계》의 문학비평 부문 신인상도 같은 해에 받으신 건가요?
조명제 : 제가 등단이 좀 늦었지요. 중학교 시절부터 어떻게 떠돌던 통속소설들과 러시아 문호들의 소설을 더러 읽기도 하였지만, 시를 좋아하여 책이 귀하던 산촌에서 어렵게 소월시집, 바이런·하이네 시집을 빌려 보기도 하였어요. 그 뒤 주로 서구 시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것은 현실적 등단과는 잘 맞지 않는 일었습니다. 문단을 의식하고 본격적인 시 쓰기 공부에 몰두하여 시와 평론으로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월간 《시문학》은 2회 추천으로 등단하는 제도를 가진 잡지 중의 하나여서, 1984년 초회 추천, 다음해에 추천 완료를 받았습니다. 시 완료추천을 받던 1985년 여름 계간 《예술계》(예총회장 조경희 발행)의 제3회 ‘문화예술신인상[문학비평 부문]’에 응모, 당선하여 시 추천 완료와 같은 해에 등단한 것으로 적고 있지요.
임애월 : 아, 그러시군요. 1988년에 출간한 첫 시집 <고비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까지>는 2002년에 다시 복간을 하셨네요.
조명제 : 네, 초판은 1988년 12월에 졸속히 출간하였는데 절판이 되어, 2002년 12월에 500부 한정판으로 복간하였습니다. 저는 대학교 강의와 비평활동으로, 집중력이 요구되는 시를 많이 쓰지 못하였습니다. 마구 써대는 성격도 아니고요. 제 시집에 대해 궁금해 하는 학생들에게 주거나, 받기만 하는 시집의 시인들에게 답으로 드리기 위해 복간판을 내었던 것이지요. 두 번째 시집을 내야 할 판인데, 2010년 제1회 일천만원 일지창작지원금 공모를 보고 시집 한 권의 분량의 연작장시를 써서 당선하는 바람에, 그것이 두 번째 시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지금 절판 상태라고 봐야겠지요. 저는 시를 써서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위상진 시인이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지만, 시는 잘 쓰는 시인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말에 공감하는 터입니다. 시 한 편을 천 사람이 한 번씩 읽고 마는 시보다, 한 사람이 천 번을 읽는 시를 쓰고 싶다는 게 제 시관(詩觀)의 일단이기도 합니다. 그 나물에 그 타령의 시집 50권을 낸들 무엇 하겠습니까? 다음날 담 밖 쓰레기통에나 처박혀 있고, 뉘 집 책장 고임으로나 쓰이는 꼴이 되고 말 터인데…. 정통시로써 유명한 시인은 한 일이 백 정도이고, “신문비평가들의 종잡을 수 없는 부르짖음과 거기에 호응하여 반복되는 항간의 풍문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수많은 시인의 이름을 듣게 될” (엘리어트) 시인들을 비롯하여 ‘서정시 나부랭이’ (김윤식)를 쓰는 시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좀 과했나요?
임애월 : 한 사람이 천 번을 읽는 시... ‘서정시 나부랭이’나 쓰는 저로서는 참으로 부러운 말씀입니다.
제해만 시인은 ‘광막한 대륙을 향해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동족의 뿌리까지 천착하고자 하는 힘을 보여준다’면서 ‘우리 조상인 알타이어의 접속법과 함께 역사와 시간, 뿐만 아니라 민족 공동체에 흐르는 혈맥의 순환성을 연상시키고 있다’고 평하셨어요. 고비나 타클라마칸은 모두 사막인데, 사막에서 시작해서 사막까지 그 여정이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조명제 : 사막과 낙타, 설산과 삭막지대(索漠地帶/ *무스탕, 라다크, 파미르 같은)는 저의 시적 상상력의 근원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존재의 극한적 상황이나 풍경을 그런 대상에서 느끼는 것이지요. 불행하게도 우리는 좁은 국토에 분단까지 경험하고 있는 유일한 국민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외침에 대해 너무 안이하고, 반복적으로 굴욕을 당한 한심한 면이 큽니다. 지금도 우리가 강인한 국토의식, 역사의식이 지리멸렬하니까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일본의 도발로 노략질 당하고 있는 겁니다. 저 광개토태왕, 고선지 장군이 말 발굽쳐 휘달렸던 고비사막, 타클라마칸 사막까지 우리 땅이라는 강한 의식과 표명 없이는 이 한반도 지키기도 버거울 것입니다. 시 「황사일기」에는 그런 의식이 내장돼 있다고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너무 거창한 꿈인가요?
임애월 : 우리 모두가 자의식 속에 지니고 있어야 할 덕목이지요. 요즘은 국가나 민족보다 개인이 우선시되는 풍토가 되었지만요.
새, 뼈, 눈물, 사막, 별 등의 시어들을 통해 순결한 영혼의 자유와 고난 속에서도 절대 놓칠 수 없는 희망의 끈을 읽었어요. 천산산맥을 휘돌아 민족의 뜨거운 피 속에 흐르는 혈기 왕성한 격정의 시간을 다시 굳건하게 복원하고 싶으신가 봅니다.
조명제 : 그런 문제를 간단히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존재의 상징과 한계, 자유와 속박의 모순적 논리의 대상이나 이미지로 그 같은 시어들에 집중했던 것 같은데요, 천산산맥을 넘어 지중해까지 날아가며 세계를 주름잡는 상상력의 즐거움, 비약과 연상으로 종횡무진한 방법적 실험이 재밌지 않습니까?
임애월 : 물론입니다. 색다르고 거창하고 즐거운 상상의 시간이 되는군요. 이 시집에 수록된 등단 시 「화류장」을 가져와 봤어요.
입을 벌리면 한 떼의
굵은 쇠사슬에 묶인 새들이
걸어나온다. 손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이 차가운 걸 보면
이 새들은 한
6000억 光年쯤이나 되는
머나먼 별나라에서 왔는지도 모른다.
절대로 울지 않고 절대로 웃지 않고,
죽어서도 뼈를 남기지 않는 걸 보면
이 새들은 먼먼
天體로 돌아가
향기로운 빛이 되어버리는가 보다.
- 「樺榴欌」 전문
시인의 언어는 이미지라고 했던가요. 입 속에서 걸어나오는 “새 떼”가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 상상해 봤어요. “쇠사슬에 묶인 새들” , 그 은유가 7,80년대 시대적 자유의 구속을 의미한다면 “새” 또는 “새 떼”는 자유에의 의지를 품은 시인의 외침일까요. “절대로 울지 않고 절대로 웃지 않는” 서늘한 시어들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먼먼/ 天體로 돌아가” 비로소 “향기로운 빛이 되”고 향기로운 詩가 되는 그런 상상이요.
조명제 : 인간 존재의 운명적 한계와 신비를 형상한 작품인데, 자유를 상징하는 새의 이미지와 인간의 한계와 구속을 상징하는 언어를 융합해 본 것입니다. 인간은 유일하게 확실한 언어를 가진 존재이며, 언어는 불가해한 신비적 현상입니다. 문명 문화라고 하는 것은 언어 사용 능력의 결과이지요. 그런데 그 언어는 확장되면 될수록 더 큰 무지(無知)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입을 벌리면’ 곧 말을 하면 말의 감옥에 갇히고, 말의 쇠사슬에 묶이는 한계적 존재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한계, 곧 언어의 한계를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을 때, 그 한계를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멸의 진리라고 할 터입니다. 이 작품에서 7,80년대적 자유의 구속과 억압의 상황을 지적하신 부분과 시의 대목은 잘 짚은 것 같습니다. 강압의 시대에 표정 잃은 시대의 상황적 의식도 그렇게 녹여 넣은 것인데, 어느 대학교 시평(詩評) 과제에서 굳이 제 시집을 가지고 쓰겠다는 여학생이 있어서 그리 해 보라고 하였더니, 저를 80년대의 저항 시인의 한 사람으로 분류하여 써 내었더군요. 제 스스로는 그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는데, 그 과제를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실 저는 정치권력의 억압과 부패구조, 불의와 기만의 생리에 대해 철저하게 비판, 저항해 왔던 것입니다.
임애월 ; 시인에게 詩는 당 시대의 모순에 저항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니까요.
조명제 : 저는 제 스스로 순수시 지향의 시인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저는 순수시의 개념을 여러 모로 생각해 보는 편입니다. 가령 정치권력에 대해 쓴 비판의 시는 순수시가 아니라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지금 존재를 억압하고 독선과 위선으로 뭉쳐진 불의의 권력을 보고도 외면하는 것은 순수한 것도 정당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른바 참여시인들을 높이 평가하지도 않습니다. 참여시는 당면 현실에만 급급하고, 진영논리에 갇혀 있기 십상이거든요.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좋아합니다.
임애월 : 그보다 더 깊고 뚜렷한 시의 방향성이 있다는 말씀으로 들리네요.
조명제 : ‘시의 중용’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순수 시정신의 가치는 그 중용에 있습니다. 그 자체가 무서운 균형이 되어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온몸으로 증거하는 정신의 기준, 제가 시 「섣달 그믐밤에 매화를 생각하다」의 “어둠 속에서 다시 붓을 잡고/ 매화의 칼날에 시를 쓴다. 피로 쓴다. 나의 시는 지금/ 뒤집어 놓은 작두날 위의 무당처럼/ 맨발로 걷는다. 위태로운 작두날의 좌우는/ 천 길 핏빛 낭떠러지,”라고 한 부분이 그런 것입니다. 목청 높은 구호가 아니라 스스로 파괴가 되고 파괴의 징후가 됨으로써 허위의 구조를 파괴하는 저항의 칼날이 되는 것입니다. 윤동주 시인이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하는 것이지요. 그런 정신에서 지금도 저항시를 더러 쓰고 있습니다.
임애월 : 인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불의에 어떤 방법으로든 저항(?)하면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게 설계되었나 봅니다.
문덕수 시인은 ‘조명제는 상식적 언어관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고, 오히려 그런 상식적인 방향에 대하여 역코스를 가고 있다. 일상의 언어나 과학적 목표가 추구하는 언어를 전면적으로 거부 또는 부정하고, 언어 자체의 심미적·독자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그 부정을 다시 부정하는 방향을 취하여 언어가 가지는 원시적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려 한다’고 평하셨어요. 부정을 다시 부정하면 강한 긍정이 되긴 합니다만... (웃음)
조명제 : 시를 본격적으로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고뇌에 고뇌를 거듭할 때에 정면으로 부닥친 것이 언어의 문제였습니다. 언어는 의미를 실어 나르는 기호라지만, 과학언어 외에는 아주 모호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억양에 따라서 같은 말이 정반대의 뜻이 되기도 하듯, 모든 언어는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지요. 「언덕에는」, 「꽃」 시리즈, 「화류장」 시리즈 등이 언어탐구와 존재의 상징 미학을 다룬 시편들입니다. 더욱이 요즘은 기의와 기표의 전복까지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의식에서 씌어진 시를 일상언어의 감각으로 이해하려 들면 시가 난해하게 여겨지는 것이지요. 하여튼 그 시집의 제1부는 언어 탐구와 현상학적 회의(懷疑)로 결집된 것입니다.
임애월 : 네, 그래서 일반적인 독자들이 편하게 읽기에는 쉽지 않은 작품들 같아요. 2011년에 상재하신 시집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노래는 <일지창작지원금>으로 출간하셨군요. 심사평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노래는 인류문화사와 정신사를 바탕에 깔고 서구적 신화, 동양적 정신, 덕목, 그리고 한국적 사상과 현대적 물신주의라는 인류적 대명제들을 종횡으로 결구시킨 서사적 장시로써, 시역(詩域)의 방대함과 함께 치밀한 구성으로 밀도 있는 詩의 질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는 호평을 받으셨네요. 늦어서 좀 생뚱맞지만 축하드립니다.
조명제 : 부끄럽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2010년도의 공모에 응하여 쓴 연작시집인데, 작품마다 독립성이 있는 좀 특이한 구성의 연작이지요. 때로는 밤을 새워가며 쓴, 혹독한 경험의 산물입니다.
임애월 : 현생인류(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시작이 아프리카 사막의 초원에서 시작되어서 그런지 사막을 향한 노스탤지어가 작품의 행간마다 배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天山山脈의 만년설 녹은 물
메마른 사막을 적시고, 철새들은 히말라야의
雪山高峯을 힘겹게 넘는다.
마른 茶와 한 줌의 소금을 얻기 위해
새가 넘고 쥐나 넘어 다닐 천 길 벼랑길을
마방의 말과 야크들이 힘겹게 힘겹게 넘는다.
神들은 히말라야의 설산고봉에 거처하며
가장 높은 곳을 향하여 인간이 오르기를 기다린다.
예서 흘러내린 황하 장강 갠지즈 낙동의 물길
들판의 송아지와 사막의 낙타, 초원의 염소와
목마른 인간의 목을 축이고 지혜를 길러냈으니,
하얗게 밤을 새우며 경전의 책장 넘기는 소리
겨울 산정에 눈처럼 쌓이다.
- 「천산 히말라야의 노래 1」 전문
조명제 :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보통 한 300만 년 전의 원인(猿人)으로 현생인류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탐욕과 위선, 정직과 기만 등 현생인류의 욕망 구조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얼마나 다를까요? 인류 욕망의 정신사를 사막과 설산고행에 기초를 두고 펼쳐 본 셈이지요. 금욕도 욕망이니까 ‘욕망의 정신사’라는 말을 잘 해석해야 합니다.
임애월 : 당선소감에서 ‘욕망의 정신사를 詩의 벽화로 그려 보고 싶었다’라고 하셨는데, 당시 선생님의 주된 관심사의 대상이 <욕망의 뿌리>라고 하셨어요. “탐욕과 금욕 사이에서 번민하는” 인간군상들의 정신적 타락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절박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하셨군요.
조명제 :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이야 어쩌겠습니까. 또 욕망이 없으면 무슨 문명의 역사를 이루겠습니까.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입니다. 문제는 탐욕입니다. 탐욕은 자신과 사회를 파국으로 몰아넣습니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너무 많이 보아오지 않았습니까. 특히 주인인 국민의 공복이라는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의 탐욕의 결과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성인과 성현들이 절제하고 금욕하라고 그토록 애써 가르쳐 왔건만, 갈수록 더 악랄해지니 이게 뭡니까.
임애월 : “인간의 욕망은 역사발전의 원동력인 동시에 파멸의 원인”이라고 하신 말씀에 200% 공감하며 “이념적 갈등과 탐욕을 넘어 도덕적 심정성을 회복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생 공존하는 세계를 지향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곧 어느 경전의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명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명제 : 연작시집의 제2부는 지중해의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문명의 해석과 시적 형상에 중점을 둔 것입니다. 인간 중심, 육체 중심의 욕망과 신 중심, 정신 중심의 금욕주의가 충돌하고 갈등하는 양상의 문명사라고 할 수 있지요. 이념적 대립과 탐욕은 얼마나 인간을 초라하고 우스운 존재로 만듭니까.
임애월 : “히말라야의 설산고봉에 거처하는 신들이 인간에게 바라는 것도 위와 같은 맥락일 거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조명제 : 죽음 앞에 다다르면, 그 탐욕, 그 권세, 그 독선, 그 음흉, 그 허명, 그 이념 따위가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다 설산 고행의 수행자가 될 수는 없지만, 정신의 설산 고행, 영혼의 사막 순례자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임애월 : 그렇습니다. 적어도 정신은 피폐해지지 않기를 날마다 순례자의 마음으로 자신을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천산산맥에서 발원한 물길이 태백산맥을 넘어 한반도의 동쪽을 흐르는 낙동강에 다다를 때까지 대지를 적시고 “지혜를 길러내” 주는군요.
조명제 : 히말라야의 고봉 설산에서 산맥은 흘러흘러 동양을 이루고, 그 산맥의 물길이 흘러 낙동의 물줄기를 이룬다, 곧 세계는 하나로 이어져 있지요. 히말라야의 정신과 지혜가 마침내 낙동의 퇴계사상을 낳은 것이지요. 지구의 정신사가 한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임애월 : 세계는 하나... 맞습니다. 민족이나 사상, 국경 같은 게 뭐 그리 대단한 경계는 아닐지도 모르지요. 그저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이지요. 사실 티베트는 제가 꼭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서는 아니고요, 심한 갈증 같은 것이 목에 턱턱 자주 걸리거든요. 만년설이 녹아내린 지구 최초의 물 한 방울로 목을 축이면 좀 나아질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웃음) 선생님께서는 천산산맥엘 다녀오신 적이 있으신가요?
조명제 : 세계에서 제일로 유명한 지리학자는 자기 마을 밖을 나가 본 적이 없었다는 얘기를 지리 선생에게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중국의 황룡산을 갔을 때 동티베트의 끝자락에서 야크고기는 먹어보기도 했지만, 고비사막도 타클라마칸 사막도 천산산맥도 가 본 적이 없습니다.(웃음) 히말라야, 천산산맥, 티베트나 파미르는 제 정신의 고향입니다. 정신 생명의 근원이지요.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 오가지만, 해발 3,000미터 넘는 곳은 숨이 차서 여행할 수가 없더군요. 티브이의 ‘세계테마기행’ 같은 프로가 양반(?) 대신 샅샅이 수고를 해 주니 고마운 일이죠. 시 「카일라스 가는 길」, 「물끄러미」 등이 티베트, 파미르를 주제로 쓴 작품입니다.
임애월 : 아하, 그러시군요. 사실 직접 가보지 않았으므로 더 실감나는 상상의 여행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문학평론으로도 저명하신데 2009년에 《시문학》에 실린 신진 시인과 <하이퍼 시의 가능성>이란 제목으로 대담하신 내용을 근래에 인터넷을 통해 읽은 적이 있어요. ‘하이퍼 시’가 어떤 시인지 처음 접하는 독자들을 위해 쉽게 말씀해 주세요.(웃음)
조명제 : ‘하이퍼시’란 다소 긴 설명이 필요한데, 가능한 짧게 답할게요. 하이퍼텍스트문학은 1980년대 미국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디지털문명 시대 테크놀로지의 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원래는 컴퓨터 인터넷상의 문학작품을 작자와 독자들이 쌍방향으로 공유하면서 수정, 확산시켜 나가는 관여적 행위의 문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의미 있게 확산, 지속되지 못하는 가운데, 2000년대 중반 무렵 우리나라의 ‘新시문학파’ (조명제 命名)에서 소설이 아닌 시를 중심으로 하이퍼텍스트 시문학 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모더니즘 시의 대가인 문덕수 시인의 지휘 아래 월간 《시문학》(1971년 재창간) 출신 시인 몇몇으로 출발하여 20여 명이 되었을 때 ‘한국하이퍼시클럽’을 결성하고, 동인지 《하이퍼시》를 3집까지 출간하였습니다.
임애월 : 《하이퍼시》가 3집까지 나왔었군요.
조명제 : 이 클럽의 하이퍼시는 전자상(電子上)의 사이버 공간이 아니라 종이 하이퍼텍스트 시운동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종래의 시 형식을 부정하고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토대로 하여, 비논리적, 비선조적이며 복수 혹은 다시점과 다층적 구조를 방법으로 한 시를 말합니다. 집합적 이미지와 네트워크, 비논리적 링크와 리좀(rhizome: 들뢰즈와 가타리가 저서 천개의 고원에서 쓴 용어)의 결속은 그 중요한 특질을 이룹니다. 때로는 기계공학의 하이브리드나 건축공학의 묘둘 형식도 복합됩니다. 제 경우에는 이 운동보다 훨씬 이전인 1987년에 쓴 「황사일기」와 「봄편지」에서 다성성(多聲性)까지 실험한 바 있습니다.
임애월 : 근래에도 하이퍼시를 쓰시기도 하시나요? 너무 길지 않은 하이퍼시 작품이 있으면 한 편 소개해 주세요.
조명제 : 네, 물론 클럽 동인으로 활동해 왔고, 월평이나 비평논문을 통해서 창작과 이론적 동향에 관한 논의도 전개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이퍼 모더니즘’이라는 말을 처음 쓰기도 한 사람입니다. 하이퍼시는 그 특성상 시가 짧지 못하고 대체로 좀 긴 편입니다. 하이퍼시의 이론에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짧고 묘둘 기법까지 적용된 작품을 보여 드리지요.
거듭되는 슛팅 불발에 참다못한 붉은 셔츠의 한 사내가 축구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어 번개같이 공을 가로 채 슛팅을 한다. 슈—웃! 골문을 향해 날아가던 공은 아쉽게도, 그만, 골키퍼에게 잡혀 버린다. 경찰이 달려들어 그 12번 선수를 끌고 나간다.
영월 주천강 들판, 집 나갔던 암탉이 한 달 만에 병아리 한 배를 달고 돌아왔다.
‘시골밥상’ 보러 양희은 일행이 태안읍의 한 시골 마을을 들어서니 키 작은 흰뺨 검둥강아지가 먼저 알고 앞길까지 달려 나와서 몸 비꼬며 반긴다. 머리 쓰다듬어 주려 하니 땅 바닥에 배를 깔고 온갖 아양을 떤다. “오, 강아지가 먼저 나와서 반기는 걸 보니 주인님도 곧 나오시겠네….” 뒤따라 나온 안주인이 그 말 듣고 “우리 집 개 아녀, 딴 집 갠데 우리 집에 왔다 그 집 갔다 해여.” 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인류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수억 명이 죽을지도 모른다. 그 신종(복합 변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그에 대한 백신도 만들 수 없고 항바이러스도 없어 인류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국경도 전선(戰線)도 없는 바이러스와 인류의 긴 전쟁에 대응해 당신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에스비에스 스페셜).
그리스 최고의 명성을 날리던 매춘부 프라이니가 고전기(古典期) 최고의 조각가인 프락시텔레스가 만든 완벽한 S라인의 비너스상을 빠져 나와 진품 모델의 포즈를 취한다.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를 기리는 제의(祭儀)를 모독한 죄로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 재판정에 서자, 그 눈부신 신체에 넋을 잃은 배심원들이 침을 흘리며, 무죄를 선고한다.
한국전력공사에 태양열 전기를 팔아먹고 사는 뒤뜰아저씨가 고장난 집열판 모듈을 갈아끼운다. 데리다의 차연(差延)이 모듈의 집열판에서 보기 좋게 미끄러진다.
- 「경계를 넘어서」 전문
임애월 : 그야말로 다초점(?)이네요. 제가 깜짝 놀란 이유는 4연의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인류가 고통 받는다는 부분 때문입니다. 10년 전에 쓰셨다고 맨 앞에서 잠깐 말씀하셨는데, 노스트라다무스처럼 그 예언이 꼭 맞아들었군요. 시인은 예언가이기도 하지요.
<南北詩>, <詩現場> 등의 동인으로도 활동하셨는데 어떤 성향의 시인들이 주 멤버인가요?
조명제 : 〈남북시〉 동인회는 1989년도에 결성되었습니다. 그 무렵 남과 북 사이의 화해 무드가 동인회 결성의 상황적 배경이 되기도 했던 것인데, 곧 남한의 시인과 북한의 시인이 서로 오가고, 문학적 교류가 이루어진다면 함께 동인지를 낼 수 있겠다 하는 기대에 부풀어 동인지 《남북시》를 창간하게 되었지요. 당장 북녘의 시인과 교류할 수는 없는 터였으니까 우선 북경과 연변의 조선족 동포 시인들과 합세하여 동인지를 창간하였습니다. 상당히 야심찬 동인지였는데, 제3호까진가는 김철, 김성휘 등 북경과 연변시인들의 작품을 실었으나, 작품을 수합하는 일이 쉽지 않아 4, 5집은 남한 동인들의 시만으로 편집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더 이상 회합이 이루지지 못하고 동인지도 더 내지 못한 상태인데, 아직 해산은 하지 않았습니다.(웃음) 심상운, 김원길, 정연덕, 최진연, 김건일, 제해만, 오남구, 조명제, 손해일, 이혜선, 가영심, 윤정숙, 김연수 등이 주요 동인이었습니다.
<시현장>은, 문학활동의 진정한 의미는 동인활동에 있다하신 문덕수 시인의 독려로 심상운, 정연덕 시인이 주동이 되어 2005년에 결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2008년도 출간의 《시현장》 제4호에 초대시로 이름을 올렸다가, 2011년도의 제5호부터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시문학의 현장성을 중시한 그룹 운동인데, 초기의 멤버 중 양채영·진의하 시인은 타계하고, 나고 드는 변동의 과정을 거쳐 지금은 심상운, 정연덕, 김용언, 조명제, 이춘하, 정유준, 김기덕, 이 솔, 김필영, 허순행, 김예태, 강수니, 원유존 등 13명이 뭉쳐 있습니다. 동인지는 12호까지 발행하였고요.
임애월 : 아, 그러시군요. 같은 성향의 동인들이 있다는 건 든든한 일이지요.
도예평론을 하신다는 이야기도 언뜻 들은 기억이 납니다. 도예시도 쓰시고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일반적인 도자기가 아닌 것 같던데요. 관련 이야기 좀 해주세요.
조명제 : 청자와 백자, 분청사기의 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이면 누구나 도자기를 좋아하는 편이지요. 개중에는 저처럼 도자기 마니아도 적잖고요. 도자기를 비롯한 공예품에 광적인 집착을 보일 때도 있습니다. 제가 전생에 탐미가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자의 미모를 보는 감각도 탁발한 것을 보면요.(웃음) 그런 중에 조선시대 우리 도공들이 만든 찻사발이 임진왜란 때 빼앗긴 것 가운데는 일본의 국보가 되어 천하명물로 숭배되고 있다는 충격적 사실을 알고는 우리 찻사발의 미학에 대한 관심을 열렬히 가지게 되었지요. 서울 인사동은 도예 도서관이 되었고, 전국의 중요한 도예 전시회나 축제는 도예 연구실이 되었습니다. 전통 도예의 메카라 할 문경의 찻사발 축제, 그곳 명장들의 작업장과 전시장, 살림집을 찾아 예술혼의 숨결을 피부로 느끼곤 했습니다. 그곳의 천한봉, 김정옥 사기명장(沙器名匠)은 일본 도자기 애호가들도 꾸준히 찾아오는 전통적 도예가입니다.
임애월: 인사동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긴 하지요.
조명제: 그러던 중 한국도예 일천년사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기법과 형식미학의 도예작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박순관과 양승호라는 도예가가 그 혁명적 도예의 주인공입니다. 지금은 기름가마, 가스가마, 전기가마 같은 새로운 도자기 가마가 뒤이어 생겨나 있지만, 정통한 것은 장작가마입니다. 오늘날 장작가마 작업을 하는 도예가는 세계적으로도 극소수에 불과한데, 그들이 장작가마를 고집하는 까닭은 요변(窯變)의 예술성 때문입니다. 우리의 전통 장작가마는 봉우리가마이고, 그 작업방법은 고려청자 이래 인공유약을 입힌 기물의 흠결 없는 결과를 유도하는 청결미학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도발적 신장작가마 작업의 주인공들은 통가마에 무시유(無施釉 : 인공유약을 입히지 않음/ 무유) 작업을 실천한 것이지요. 즉 인공유약을 입히지 않고, 연속 봉우리형 망뎅이가마처럼 가림막도 하지 않고, 기물의 사이사이를 흘러가는 불길을 따라 고열의 연기와 나뭇재며 불티가 날아가 들러붙어 녹아들고, 그 자체의 유약질이 발생(*자연유)하여 자연스럽고 신비한 아름다움의, 작가도 예상할 수 없는 기발한 작품을 최대한 기대하는 방법의 도예작업입니다.
임애월 : 말 그대로 원시적(?) 기법인가요?
조명제 : 완전히 역발상의 미학이지요. 이 같은 무유 장작가마 작업은 유럽에서 먼저 개발되었는데, 이것은 사실 우리 신라시대의 통가마작업이 그 원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 양승호 씨는 1980년대 초 영국에서 트임기법을 개발하여 대서특필된 이래 지금까지 주로 프랑스에서 작업하고 있는 세계적 도예가입니다. 그는 또 갯벌도예, 분재다관 등의 개척으로 세계 최초를 몇 가지 가진 작가입니다. 가을에는 그의 고향 태안군 북쪽 땅끝 마을 만대의 내리에서 환경도예축제를 개최합니다. 그의 나오리아트그룹의 축제에서 저의 시 「나오리 가는 길」이 낭송되기도 했습니다.
역시 세계적인 도예가 박순관 씨는 자신의 통가마작업을 ‘꺼먹이기법’이라 하였는데, 그 자연유의 불티美에 수레질 기법을 접목하여 한층 독특하고 예술성 돋보이는, 오직 그만의 작품을 창조해 내었습니다. 수레질이란 고대 토기나 옹기 성형작업의 한 기법으로, 손잡이가 있는 나무판에 각종 문양을 조각한 수레를 기물의 원하는 곳에 두드려 문양을 각인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그 연속무늬의 자연스러움을 십분 발휘한 박순관 작가의 무유 수레질의 세계는 첨단 문명시대를 숨가삐 살아가는 현대인의 원초적 무의식을 흔들어 깨우고, 질박한 원시 속의 현대적 미학을 그 심층으로부터 이끌어 내어 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지대합니다. 양승호, 박순관 이 두 도예가의 작품은 대영박물관 등 세계의 유수한 미술관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저는 일천년의 한국도예사를 횡단하는 두 쌍두마차 주인공의 작업장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불을 때고 거친 작품을 사포질하고, 원근 안 가리고 그들의 전시회를 찾아다녔습니다.
임애월 : 하하, 선생님의 열정이 여기서도 발휘되는가 봅니다.
조명제 : 그들의 문하에서 공부한 도예가들이 더러 같은 길을 가고 있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인사동의 도예전시장을 들락거리다가 한 갤러리의 큐레이터와 관장으로부터 전시회의 리뷰를 써 달라는 청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극구 사양했지요. 그들은 《월간도예》에 보낼 건데, 제가 문학평론을 하지만 도자기 애호가이고, 부탁하는 것이 짧은 글이니 충분히 쓸 수 있을 거라며 밀어붙이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저와 함께 전국의 도예촌, 전시회를 가리지 않고 자주 함께 다녔던 백이운 시조시인도 그가 잘 아는 월간 차잡지 《Tea & People》에 실을 글(*찻그릇과 문학 관련)을 써 달라는 부탁을 해 왔습니다. 그때 쓴 하나 「神의 몫과 요변(窯變)」은 문학과 도예가 하나는 언어, 다른 하나는 흙이라는 그 매체가 다를 뿐, 모든 제작 과정에서 일치한다는 것을 밝힌 글입니다. 내가 썼지만 神이 주신 시구(詩句)야, 마지막은 결국 가마 속 불길의 변화가 만들어 준 운명의 천명(天皿)이야 하는 것까지도 같다는 것이 흥미롭지요. 이렇게 하여 얼떨결에 도자기 품평과 도예론, 도예문학론을 쓰게 되었던 겁니다. 갤러리 관장, 전시회를 앞둔 젊은 도예가들, 《월간도예》나 문학잡지( 《문학마을》 , 《시문학》 )로부터 청탁을 받아 도예작가론이나 ‘문학과 도예’라는 대담도 하였지요. 세미나 논문 「한국도예의 전통과 도전」과 도자기나 도예를 주제로 한 시를 더러 썼어요. 파란만장하지요? 무유의 트임기법과 갯벌도예, 수레질 도자기의 사진을 몇 장 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임애월 : 와우~ 정말 특별하게 멋스러운 아름다움이 있네요. 선생님께서 홀려서 다니실 만하십니다.(웃음)
2018년에 상재하신 평론집 <윤동주의 마음을 읽다>가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한상훈 평론가는 ‘조명제 시인은 윤동주의 거의 모든 텍스트와 그와 관련된 적지 않은 논저들을 두루 섭렵하여, 그의 시세계의 특징을 말하는데 있어서, 어느 방면을 논하든지 거침이 없다. 이 책은 윤동주 시인의 삶과 텍스트에 대한 깊이 있고 새로운 면모를 확실하게 부각시키는 전문서적이다. 더구나 저자가 오랜 세월 동안 시 창작뿐만 아니라 활발한 비평 활동 및 도예 연구 등으로 성취해낸 박학다식한 세계관이 이번 저서의 바탕에 관류하고 있어, 독자들이 문학과 인생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적절한 책으로 봐도 손색이 없겠다’고 하셨어요.
조명제 : 과찬을 한 것이지요. 월간 《시see》의 창간 편집인 민윤기 시인의 ‘윤동주 시인 기림사업’으로 기획된 ‘윤동주 재평가론’을 청탁받아,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이 되던 해인 2017년 1년 동안 연재한 뒤, 윤동주 시인 순절(殉節) 73년, 탄생 101년이던 2018년 2월에 출간된 책입니다. 거울의식과 윤동주의 시, 서정적 순수시를 쓴 윤동주가 왜 저항시인인가,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분석적 논리 등 열정을 기울여 쓴 것은 스스로도 인정을 합니다. 문단 일각의 평도 나쁘진 않았습니다. 쓰고 나서 윤동주 시인에 대한 존경과 애정에 엄청 기울여져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임애월 : <윤동주의 마음을 읽다>로 2018년에 <시문학상>을 수상하셨지요?
조명제 : 네, 그 책으로 뒤늦게 제37회 시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요, 그 상은 한국 최장수 월간 시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시문학사(문덕수 시인)가 제정한 문학상이지요. 중도에 한 9년간 시상을 걸러서 37회가 되었던 겁니다. 평론집으로 수상을 하게 된 것은 제가 처음이었어요. 저는 수상소감에서 이렇게 말한 대목이 있습니다.
“적잖은 이들이 친일의 굴절된 삶을 보여준 일제강점 하에서 이육사, 한용운 등과 함께 윤동주는 늘 일제와 맞서 길항(拮抗)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때로 고뇌하며 서성거리기는 하였지만, 겨레의 독립자존에 대한 곧고 굳은 정신을 한 번도 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윤동주를 텍스트로 하여 이른바 순수시의 저항논리를 펼쳐 온 것입니다. 작두날 위에서 무서운 균형을 잡는 무당의 집중 같은 시정신은 무엇이 옳고 그른 지를 온몸으로 증거하는 가치관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정신의 날카로운 중용을 견지하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가장 큰 저항일 것입니다. 우리의 선비정신은 목에 칼을 받으면서도 자신[정신]을 지킨 저항논리의 한 전형일지도 모릅니다.(중략) 끊임없는 자기갱신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시의 길이라고 합니다. 이 자리를 함께 해 주신 여러분의 격려에 힘입어, 시 저 너머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침묵 속의 시를 찾아 다시 길 떠나겠습니다.”
임애월 : 진심 축하드립니다. 꼭 받으실 분이 받으셨네요.
뵙기에는 온화하고 부드러워 보이시는데요, 선생님의 작품들을 찾아 읽다보니 열정을 넘어선 어떤 광기(?) 같은 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걸 느꼈어요. 제가 잘못 읽었을까요?
조명제 : (웃음) 잘 보셨습니다. 제가 예사롭지 않은 탐미가여서, 예술정신에 있어서는 안으로 광기가 내장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걸 스스로도 느낄 때가 있어요. 게다가 최고의 정신주의자이기도 해서 불의와 비리, 파렴치의 기만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못하지요. 광기의 시인 맞는 것 같습니다.(미소)
버들강아지에도 강아지풀에도
강아지는 없다. 어차피
강아지도 강아지는 아니다.
한없이 떠도는 시니피앙, 외진
대야미역으로 가는 굽은 길
두 길 높이의 시멘트 담장 어깨에서
이삭을 여럿 단 강아지풀 몇 포기가
실바람에 꼬리를 흔들며 가을볕에
이삭을 말리고 있다. 흙손으로 꼼꼼히
마름질해 놓은 시멘트 담장의 저 높은 데를
어떻게 뚫고 올라갔을까. 엉덩이 깔고
담장 밑을 샅샅이 뽑아대는 ‘희망근로자’들의
매서운 손길을 피해
하늘 곁으로 올라가 싹을 틔운 강아지풀,
詩의 속눈썹이 길어지는
볕 좋은 가을날
강아지는 어디서 꿈꾸는가.
- 「하늘 강아지풀」 전문
임애월 : 예술을 향한 광기 속에서도 위의 작품처럼 서정적인 작품도 있네요.(웃음)
조명제 : 서정적이기도 하지만, 언어탐구적인 면이 스며 있지요. 기호학에서 말하는 시니피앙[기표]과 시니피에[기의]의 관계나 그 자의적(恣意的) 특성과 한계를 적절히 활용하며 시상을 일으키고 전개한 것입니다. 가을 강아지풀과 강아지의 이미지가 기호학적 상상력과 잘 어울려지고 녹아서 괜찮은 시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4행이 좀 기막히지 않습니까?(웃음) 이 부분이 생겨나면서 작품으로 살아났어요.
임애월 : 그 해 어느 출판사의 ‘올해의 좋은 시’에 이 작품이 뽑히기도 했더군요.
요즘 「시보다 더 시 같은 일들」을 연작으로 쓰시고 계신가 봅니다. 몇몇 문예지에서 읽었거든요.
조명제 : 네, 생활 경험에서 얻은 기이하고 기발한 현상들을 묘사적 기법으로 써 본 것입니다. 물론 단순한 묘사시는 아니고요, 현상이나 삶 담화의 시적 천착을 통해 생태적 본능을 통찰해 보려는 것이지요. 그건 무엇보다 오늘의 서정시가 하나의 관념적 스타일로 굳어지고, 자기갱신이 없는 판도의 시들로 도배되는 현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쓴 것이기도 합니다. 제 시의 본령은 아니지만, 앞으로 동식물의 생태적 특성을 시로 쓴다면 효과적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임애월 : 평범하지 않은 작품들을 써오신 터라 기대하겠습니다.
현재 《문예운동》에서 편집주간을 맡고 계시죠? 한국문단에서 워낙 바쁘게 활동하시는데 앞으로 새로운(?) 혹은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으신지요?
조명제 : 문인이야 뭐 글 쓰는 것이 최고의 계획이지요. 지금도 이태째 ‘재평가 시인론’을 연재하고 있는데, 올 가을에 마무리하면 책으로 출간될 것 같습니다. 좋은 작품을 쓰거나 의미 있는 활동을 한 시인인데, 편견과 오해와 곡해로, 혹은 대중적 에피소드로 가려지고, 잊혀지고, 묻혀져 가는 시인들의 진실을 재평가하는 작업이지요. 몇 년째 미루어지고 있는 새 시집도 출간해야 하는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시란 무엇인가’를 교육적 측면에서 쓴 적이 있는데, 그런 게 아니라 시에 관한 사상적, 논리적 성격의 책을 한 권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두고 봐야죠. 정자(亭子)문화에 관심이 높아 담양으로 함양으로 안동으로 다니곤 했는데, 좀더 체계적인 탐방과 연구를 하고 싶고, 명산대천이 아니라, 소멸되어 가는 것들이 많은 소읍(小邑)을 찾아 기행하는 것이 현실적 꿈의 하나인데, 그거 쉽지 않네요. 한 가지만 더 말한다면, 한국의 탈을 좀 수집하고도 싶습니다. 한국의 옛 불상, 범종, 방짜징, 목가구, 벼루, 갓 등과 함께 우리 가면(假面) 미학은 세계 으뜸입니다. 하회탈, 양주별산대탈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데…….
임애월 : 아무튼 다방면으로 특별하신 능력자십니다.
사실 섭외할 때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제가 너무 대단하신 선생님을 모셨네요.(웃음) 중요하게 하실 말씀 많으셨을 텐데 길지 않게 답 주십사 했던 저의 무례, 죄송합니다. 그리고 바쁘신 선생님께서 이렇게 진지하고 긴 시간을 내 주신 것도 정말 고맙습니다.
조명제 : 이 복잡한 사람을 만나 대담을 준비하고, 정리하려면 고생 참 많이 하시게 될 것 같네요.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이 가을 시업과 농업의 큰 결실을 기원합니다.
- 하늘 가까운 히말라야에서, 사막에서, 광야에서
순례자의 눈빛으로, 때론 광기 어린 열정으로
문학의 한 시대를 풍미하시는 조명제 선생님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다 보니
게으르던 지난 삶에 대해, 문학에 대해, 주변의 관계망에 대해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마구 일어난다.
앞으로는 좀 더 촘촘하게 살아야 하나 보다.
이제 가을이니까 -
■□ 시인의 자선시
섣달 그믐밤에 매화를 생각하다 외 4편
조 명 제
밤이 깊다. 그믐달도 지고,
새 아침을 기다리는 칠흑(漆黑)의 어둠
세상을 휩쓸고 순수를 교란하던 기만과 탐욕,
위선과 독선, 위장과 술수가 명멸하는
별처럼 잘 보이는 밤이다. 시를 쓰던 붓을 던지고
생각한다. 한 시대의 소실점에서
나는 진정 무엇을 위해 살았고, 벗이여
그대는 누구를 위하여 살아왔는가를.
섣달그믐의 깊은 밤, 촛불을 끄고
매화(梅花)를 생각한다. 세상의 정심(正心)을
잃어버리고, 뼈아픈 후회를 하며 홀로
고매(古梅/高邁)를 찾아 떠났던 나그넷길에서
쓸쓸히 만난 백매 홍매의 눈빛, 잊을 수 없다.
이 적막한 그믐밤 창문을 밀고
설한풍에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는
나의 매화나무를 바라본다. 일생을
한기(寒氣) 속에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
나는 쓴다. 어둠 속에서 다시 붓을 잡고
매화의 칼날에 시를 쓴다. 피로 쓴다. 나의 시는 지금
뒤집어 놓은 작두날 위를 무당처럼
맨발로 걷는다. 위태로운 작두날의 좌우는
천 길 핏빛 낭떠러지,
병사(兵士)의 빛나는 총검 끝에 나비가 앉듯
내 시의 작두날 위에도 매화가 피어날까?
꽃 같은 중용(中庸)의 새 한 마리 칼을 물고
이 그믐밤 어둠의 눈보라 속을 날아간다.
카일라스 가는 길
진화된 온갖 장난감 다 제쳐두고 악착같이
손아귀에 넣었던 티브이 리모컨도 미련 없이 버리고,
스마트폰을 향해, 눈에 생기를 달고, 거북이처럼
생후 7개월의 둘째디지털 외손녀가 네 발로 기어간다
오체투지로 라사를 향해 순례의 길을 가는 자여 내 몸이
그대 손바닥 판목(板木)이니, 불거진 이마에 피 흘리며
성산(聖山) 카일라스까진들 가지 못하랴. 세상은
발기된 아메바, 흰구름의 길이 보이겠느냐. 할머니
어머니 너무 죄송해요. 지우랑 율이 교구 가지고 놀다
율이가 지우의 팔을 물었어요! 첫째디지털이 깨어
종알거리는 잔물결 같은 소리에 세상이 일어나고,
때로 물고 물리는 첫째디지털이 잠들어야 온전히
세상이 다리를 뻗고 하루의 잠자리에 들었다. 머나먼
티베트인들의 성산 카일라스로 가는 길, 영매(靈媒) 같은
독수리 날고 짐승의 사체(死體)가 바람에 삭아가는
황야의 언덕에 천막집 하나 기대어 구름의 길을
낸다. 염소 똥을 땔감으로 쓰는 주부 큐나는 꾀죄죄한
딸 하나 데리고 마음 부자로 산다. 빌셔 놓은
천막지붕의 틈으로 새가 날아들어, 구들구들 말라가는
시렁의 양고기를 파먹고 간다. 낙동정맥의 겨울, 눈 쌓인
밭 울타리를 줄넘기하듯 날며 먹이를 찾던 새들이 울고,
밥상이 되고 책상이 되고 어린것들의 가요무대가 되던
지난날 우리 집 앉은뱅이 상(床)이 히말라야의
타르초처럼 팔락인다. 아버지이고 오빠인
오이디푸스 왕을 따라가는 얄궂은 운명의 안티고네여,
바위로 짓누르는 고뇌의 길을 언제 다 가겠느냐
만년설의 카일라스에서 한 방울로 발원한 작은 물길이
야크들도 구름 타고 떠도는 티베트 고원의
아름다운 호수 마나사로바를 만들고, 생명의 젖줄인
얄룽창포강을 이루었구나. 유목의 땅,
잿빛 자갈길 원 없이 휘어지며 흐르는 얄룽창포
강가의 연둣빛 백양나무 숲과 착한 마을들을 돌고 돌아,
먼먼 남쪽나라를 지나는 브라마푸트라강이 되어,
발기된 아메바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는
카일라스의 설산신인雪山神人이여.
* 빌시다 : (문 따위를) 조금 열다.
* 마나시로바는 쿰부 히말라야의 고쿄호수와 함께 지상의 최고지대에 위치해 있는 호수임.
* 브라마푸트라강 : 히말라야의 카일라스에서 발원한 얄룽창포강이, 남티베트를 돌아 방글라데시를 지나며 갠지스강과 합류, 뱅골만으로 빠지는 강.
목화꽃
야크가 만들어 놓은 히말라야의 설산고봉을
철새들이 넘는다. 상승 기류를 타고
힘겹게 우아하게 힘겹게 넘는 두루미 떼
수만 년 지층을 날아온 날개의 힘과
고공 기류의 긴장이 깨지면 더러는
8000미터의 벼랑 아래로 추,락,한,다.
목숨을 건 비행(飛行), 철새들은
내장에 센서 내비게이션을 달고
머나먼 행로를 따라 비행한다. 설악의 울산바위를
옮겨다 놓은 것 같은 그리스의 마테오르
그 벼랑 꼭대기의 수도원을
곡예하듯 도르레 밧줄을 타고 오르는
검은 망토의 수도사들, 그들은
뼈를 갈아 끼우려고 그 아득한 높이의
가파른 벼랑을 오르는 것일까. 청량산(淸凉山)
아득한 벼랑의 오산당(吾山堂)은 2월에도
등뒤 금탑석봉(金塔石峯)에서 수직으로 내리치는
결빙의 폭포 아래에 있다. 거기서 주리론의 시인
퇴계(退溪) 선생은 내려오는 길 끊고
결빙의 칼끝폭포를 정수리로 받으며
정신의 히말라야를 쌓아 올렸다.
맘에 없는 새 남편이 농장과 바꿔 버린
분신 같은 피아노를 찾기 위해
무지한 사내가 막무가내로 더듬으며 수작해 오는
온갖 수모를 이 악물고 견뎌내던 벙어리 피아니스트
에이다는 어느 새 성(性)의 노예가 되고 사랑의 포로가 되어
남편의 완강한 창살에 감금당해서도
안 보던 손거울을 들여다보고, 입맛 잃어 숟가락 까딱이며
문맹의 그 사내 베인즈만을 생각한다. 몸은 갇혀 있지만
내 마음은 당신 거예요. 그녀는 분신 같은 피아노의 흰 건반을 뽑아
불에 달군 못으로 편지를 쓴다. 태백산맥(太白山脈) 아래
눈발 흩날리던 산가(山家) 뒤란
장작 패는 아버지의 도끼날 밑으로
눈발처럼 날아들던 굴뚝새들
나는 굴뚝새들의 태백산맥을 온몸으로 떠메고
뜨거운 역사의 길을 걸어왔노라. 무거운 짐 실은
야크들이 마방의 입 채찍소리 등뼈로 받으며
히말라야의 가파른 설산을 한 발짝 한 발짝
느릿느릿 오른다. 조로서도(鳥路鼠道)
차(茶)가 생명인 고산국 사막족들은 말을 팔아 차를 산다.
아찔한 대협곡의 물살 센 강을 밧줄 하나로 인마(人馬)가 건너고
수천 미터의 수직 벼랑길을
말과 나귀와 야크가 위태로이 뚫고 간다. 욕망의
차마고도(茶馬古道)!
손가락이 생명인 피아니스트 에이다의 검지 손가락은
분노한 남편의 성난 도끼에 무참히 잘려나가고
창백한 얼굴로 기절해 가는 홀리 헌터의 실감 연기에
자신의 일인 양 관객들은 숨을 죽인다.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돌아가세요. 200미터 전방에
과속 감시 카메라가 있습니다. 속도를 줄이세요.
150미터 전방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세요.
음주 운전 단속 지역입니다. 조심하세요. 또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돌아가세요. 좌회전하면 지옥,
우회전하면 천당 가는 길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먹고 사는 박 목사는
이 잔소리 많은 여자 나비 네비게이션을
바꿔 버렸다. 약수터 가는 길
가을 풀향기가 가슴을 파고든다. 벼보다
피가 더 많은 논의 강아지풀 풀섶길을 지나
길모퉁이에서 만난 작은 목화밭의 끝물 목화꽃
불가리아 아가씨 유둣빛 같은 빛깔의 꽃 몇 송이!
나비는 어디로 갔나. 아버지 아버지,
갱변밭 일구어 목화씨를 뿌리셨지요. 나비 모양의
새싹을 틔워 올리던 목화씨, 내 유년은 아직도
그 작은 밭가에 앉아 있나요. 언덕 아래
잎 진 겨울나무 숲을 거닐며 부르는 누군가의 아련한 노래 소리
그리움은 그리움을 낳는다. 바리키노의 옛집은
눈 속에 파묻히고, 지바고는 사랑하는 라라를 위하여
언 손으로 지중햇빛 잉크를 찍어 시를 쓴다. 숲 속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게걸스레 시를 물고 늘어진다.
오늘 단풍잎이, 숲 속에서 시를 쓰는
내 허리를 자르며 떨,어,진,다.
광화문 광장에서
텅빈 광화문 광장에서
하늘 한 번 우러르고,
이제 나
은일(隱逸)의 길을 떠나려 하네.
삼백만의 함성이 허망히 스러지고
비둘기들도 날지 않는
텅 빈 광화문 광장에서
천박무도(淺薄無道)한 정치와 얄궂게
눈먼 민심을 본 이 환멸의
절정에서 나 이제
세속을 떠나 사막의 길,
고산설봉(高山雪峰)의 길을 가려 하네.
나 이제,
민주주의를 신뢰하지 않네.
썩은 냄새, 시궁창에 떨어진
민주주의는 악어며 민머리독수리에게나 맡기고,
정의(正義)의 함성 속에 더불어 있었고
괴물 규탄의 분노 속에 함께 있었으나,
나 이제 인간의 헛된 꿈을 접고
어미닭이 병아리 한 배 달고 노니는
초야의 오두막으로 가려 하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았다 떠난 자리
그 흔적 없는 흔적을 그리며
무심히 살려 하네.
골방에는 앉을뱅이 책상과 종이,
그리고 볼펜 포대 한 자루면 족하리.
나는 이제 구도(求道)의 시를 쓰다
사라지려 하네. 끝 모르게
추악(醜惡)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장사 지내고,
무심결의 이상주의를 설계나 해 보다
소멸하려네. 나 이제 도끼로
질기디질긴 미련을 끊고, 흰구름
뜬구름의 길을 가려네.
*2020년 4.15 총선 판세를 보는 밤, 시국을 논했던 少江을 생각하며 쓰다.
물 위에 쓴 시
-영화 <패터슨>을 위하여
나는 시 아닌 시를 꿈꾸었다.
시가 무엇인지 시를 어떻게 쓰는 건지
나는 모른다. 배차 시간을 기다리며
운전석에 앉아 어깨 기울여 끼적이는 것이
시인지, 시가 되는지도 나는 모른다.
나는 시 아닌 것 저 너머에 시가
있고, 시 너머에 시가
있다는 것도 모른다. 나는
성냥개비를 성냥갑의 인화질(引火質)에 그어
부싯돌의 번갯불을 일으키듯, 우리 삶의
일상을 추려 상상의 도가니에
넣어 끓이기만 하면 시가 되리라
여기지도 않는다. 다리 하나라도
아내의 다리에 걸쳐야 잠이 오는 밤,
손목시계가 가리키는 여섯 시 삼십 분 무렵이면
잠든 아내의 그 얼굴을 바라보며 날마다 가볍게
키스를 해 주고, 시리얼로 아침을 때운 뒤,
매일 같은 길을 걸어 시계바늘처럼 나의 일터로
움직였다. 시가 넘쳐나는데도 세상에
시가 없다, 시정신이 죽었다 하는
선시자(先詩者)의 외침을, 버스 운전사인
나는 알아듣지 못한다. 차이와 반복은 먼 이야기
정해진 노선을 챗바퀴 돌 듯하는
나날의 반복 속에서 무슨 시를 얻겠는가.
세상의 운전대를 잡고 이리저리 구부러지는
길을 따라갈 뿐 승객들의 시시콜콜한 소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펜을 잡고
공책에다 시를 쓰면서, 쌍둥이처럼 같은 나날도
매일 조금씩은 다르고, 하잘것없던 승객들의 언어가
때로 비수(匕首)가 되어 날아듦을 느낄 때도 있었다.
나는 쓴다. 배차 시간을 기다리는 틈새에 쓴다. 때로
홀로 도시락 점심밥을 먹는 폭포 곁에서도,
침침한 지하 골방 거친 책상 위에서도 쓴다.
나는 시가 사치인지 말장난인지도
모른다. 직업상의 일과를 끝내고 애견 잉글리쉬 불독의
끈을 잡고 저녁 산책을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으레
단골 바아(bar)에 들러 맥주 한잔 하며 째즈하는 주인친구와
일상을 담론하고, 손님들의 자질구레한 사건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시가 될 만한 일은 없다. 이 눈치 빠른 불독은 언제나
집 앞의 말목우편통을 매번 주둥이로 툭, 건드려
삐딱하게 기울여 놓고, 이따금 애정 표현을 하는 우리
내외의 순간을 시시때때로 감시하듯
눈알 굴려 살피고, 중요한 대목에서 킹킹대며
질투의 화살을 날려 방해한다.
시는 고상한 것도 고귀한 것도
아니었다. 마지막 남은 인간정신의 보루도
아니었다. 헤로도토스의 역저 ‘역사’만큼이나
두텁게 묶인 나의 시고(詩稿), 그저 쓰는 것이 좋아서
쓸 뿐이었다. 기특한 아내가 명품 컵케이크를 만들어
마을 바자회에 나가 번 맑은 돈으로 기어이
시집 출판의 꿈을 부추겼다.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그래, 시집을 한번 내 봐? 활자화되면
시가 돋보일지도 몰라. 그날따라 애견 불독에게
집 잘 봐-, 당부하고 아내와 출판사를 들러
고무되어 돌아온 저녁, 시는 어디에 있는가.
눈치 빠르고 시샘 많던 녀석, 잉글리쉬 불독
개새끼를 조심했어야 했다. 산책길에서
언제나 그 단골 바아로 익숙하게 앞질러 가곤 했지만,
때로 개 목줄을 당겨도 버팅기며 반대편 길로
나를 사납게 끌고 가던, 고집스런 애견 불독, 시는
길들여진 곳에는 없다는 듯, ‘역사’만큼이나
두툼한 내 시의 노트를 갈기갈기 물어뜯어
거실 바닥을 어지럽혀 놓았다. 갈갈이 찢겨진
시고 노트 앞에서 망연자실한 아내의 탄식, 나는
중얼거린다. “물 위에 쓴 시…”, 물 위에
쓴 시가 어디 내 시뿐이랴, 하지만 하지만,
차이의 반복이 시가 되고 예술이 되는
매일 같은 일상은 다시 계속되리라.
■□ 조명제 시인 약력
1985년 월간 《시문학》 시 천료 · 계간 《예술계》에 문학비평 당선으로 등단.
중앙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우석대대학원 졸업(문학박사).
26년간 대학·대학원에서 문학론 강의, ‘서울시인학교’ 책임교수 역임.
시집 고비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까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노래.
<남북시>, <시현장> 동인(동인시집 《남북시》 제5집, 《시현장》 제12호)
비평집 한국 현대시의 정신논리, 윤동주의 마음을 읽다외.
비평 「모더니즘에서 하이퍼모더니즘까지」, 「도전과 응전의 해체적 상상력」 외.
도예문학론 「神의 몫과 요변(窯變)」, 「문학과 도예」(대담) 외.
연작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노래」로 제1회 일천만원 일지창작지원금 공모 당선
제17회 중앙대문학상, 제1회 미산올곧문예상, 제37회 시문학상 수상.
현재, 계간 《문예운동》 편집주간, 월간 《시문학》 , 월간 《시see》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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