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에서 배워야 할 것
정진명 시
내가 배운 것은 활이 아니라
사람이었네. 사람의 마음 따라
사람을 찾아가는 사람의 길,
활을 따라가면 거기 이웃이 있고
이웃들의 숨소리와 웃음이 있고
즐거운 잔치 마당에서 한 가지로 어울려
춤추는 어깨들이 있네.
즐거운 잔치에서 흐트러지지 않고
나아가고 물러설 줄 아는 것과
풀어야 할 때와 조여야 할 때,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아는
보이지 않는 길이 거기 있었네.
활이 가르쳐주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어
활 잡은 누구나 그것을 배우지만
아무나 배워지지는 않는 것,
가령, 배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거나
외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지 않는 것은
옛 접장들이 남긴 향기와도 같은 것.
마음이 물처럼 낮아진다든가
순간으로 영원을 꿴다든가 하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까지도
남몰래 가르쳐주어
활의 길이 결국 영원의 길이고
그 길 따라 걸어간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위에
아둔한 내 발을 조심스럽게 겹쳐보는 것이
진정한 활의 즐거움임을 배우는 일이었네.
그 즐거운 가락을 타고 이웃고 어울려
함께 춤추는 것임을 아는 것이었네.
활에서 배운 것은.
4337. 1. 4
출전 : 도서출판 고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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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이좋아 여러사원들과 공유하고자 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