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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나드는,
무구한 영혼이 빚어낸 따뜻한 울림의 變奏曲
임애월 / 詩人, 『한국시학』 편집주간
Ⅰ
임병호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관조적인 심미안으로 자연과 인생을 투시하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맑은 기운이 느껴진다. 때로는 봄을 기다리는 겨울나무의 뿌리처럼 겸허하게, 때로는 억새꽃 하얀 손길에 붙잡혀 그리움에 물드는 무구한 순정으로.
그의 詩는, 눅눅하고 찐득한 어둠의 늪에서 퍼낸 불투명하고 난해한 언어유희가 아니라, 맑고 투명한 서정의 샘물을 저 깊은 근저에 묻어두고 두레박으로 조금씩 길어 올려 사유의 갈증을 따뜻한 감동으로 풀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한다.
임병호 시인의 詩는 세상의 모든 경계를 허문다.
詩와 생활의 경계, 종교의 경계, 사랑과 미움의 경계, 어른과 아이의 경계, 동식물과 사람의 경계, 시간과 공간의 경계, 술과 밥의 경계, 이승과 저승의 경계도 무시로 넘나든다.
세상 살면서 경계를 허무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잘못하면 제 앞가림도 못하는 대책 없는 방랑자처럼 보이거나, 아니면 섣부른 도사처럼 의도적으로 이상행동을 하는 어정쩡한 기인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집 『歲寒圖 밖에서』를 읽어보면 시인에게는 詩와 생활이 경계가 없다. 사랑과 미움의 경계도 없고, 어른과 아이의 경계, 종교의 경계, 이승과 저승의 경계도 구분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삶이 詩가 되고, 詩가 곧 삶이며, 미움이 사랑이고, 술이 밥이 되고, 이승도 저승처럼 살아간다.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어디 한 군데 걸리거나 부담스러운 곳이 없다.
시인은 수도자의 자세로 존재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갈고 닦아 늘 투명하고 맑은 상태를 유지해야, 그가 쓴 시를 읽는 독자들의 정서도 함께 맑아지고 사회는 건강해진다. 그게 시인의 사명이다. 시인이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글재주 하나로 말장난이나 한다면 그 시를 향유하는 독자들의 정신세계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임병호 시인은 세상이 만든 경계를 자신의 삶 속에서 과감하게 허물고, 득도한 수도승처럼 세상을 고요하게 관조하는 긍정의 혜안을 얻은 듯하다.
속세를 떠나 입산수도해야만 득도를 하는 건 아니다. 산속에서 살아도 道를 얻기는 쉽지 않고, 속세에서 살아도 세상이 그어놓은 어떤 경계를 넘어서면 득도도 할 수 있다.
임병호 시인은 삶과 詩의 경계를 넘어선 지 오래이다. 생활 속에서 아주 사소한 것들마저 시인에겐 모두 詩가 된다. 새들은 ‘새들이 방울을 흔든다’의 작가를 알아보고 지저귀는 것이고, 봄꽃에선 아이들 웃음소리가 배어나며, 망초꽃은 어머니의 눈물이고,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문을 보면 가슴 아파한다. 여름이 다 가기도 전에 가을 마중하러 들길로 나서고, 겨울비 내리는 날에도 봄빛을 먼저 본다. 詩는 삶, 바로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소소한 것들도 다 詩가 된다.
맑은 서정이 주조를 이루는 그의 시는 다소 느슨하게 풀어져 보이기도 하지만 그 깊이가 매우 깊고, 분위기는 가벼워 보이는데 전체적인 은유의 직조는 촘촘한 것이 시인 특유의 기교이다. 그러므로 겉으로 나타나는 주제를 넘어, 임병호 시인의 시를 제대로 읽어내려면 시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은유의 고리를 먼저 찾아내야 할 것이다.
Ⅱ
일찍이 떠나오고 싶었다, 스스로 圍離安置 되었느니
가시 울타리에 연록 피우고 그 푸른 그늘에서 쉬겠다
탐라섬 전설처럼 살겠다, 북극성 빛나리니 그리 알라
오름길 억새꽃들 휘날리면 생각하라, 내 손길이라고
서귀포바다 파도소리 보이거든 발자취로 알라, 그대여
이승 저승 오고가는 바람으로 머물겠다, 뭍일랑 잊겠다
- 「歲寒圖 밖에서」 전문
‘歲寒圖’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그의 제자 이상적에게 수묵으로 그려준 문인화인데 국보 180호로 지정되어 있다. 얼핏 보기에는 소나무 몇 그루를 그려놓은 평범한 그림처럼 보이는데 이 그림이 유명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1844년,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된 지 5년째 되는 해였다.
그의 제자 이상적이 중국 연경에서 구한 皇朝經世文編 등 120권을 추사에게 보냈다. 역관으로 연경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길에 스승의 부탁을 받고 그 책을 사서 보낸 것이다. 그 책들은 연경에서조차 구하기 힘든 것들이었다고 한다.
죄인의 몸이 되어 유배 중인, 끈 떨어진 갓이나 다름없는 스승을 향해 이상적은 제자로서의 변함없는 존경의 마음을 보여드린 것이다. 이에 감격한 추사는 붓을 들었다. 이 작품이 바로 歲寒圖이다.
추사는,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팍팍한 세태의 격랑 속에서도 선비다운 지조와 의리를 지킨 이상적의 인품을 겨울에도 잎이 시들지 않는 松柏에 비유해 칭찬하고 마음을 담은 跋文을 써서 그림 끝에 붙였다.
뜻하지 않게 세한도를 선물 받은 이상적은 추사를 잘 아는 청나라 학자 16명의 讚詩를 받아 그림에 합장했다.
세한도를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장이 있다. 바로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추운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알게 된다), 논어에 나오는 말인데 세한도의 발문에 추사가 인용하였다. 이 말 한 마디가 세한도에 은유적으로 깔려있는 사상과 이 그림이 그려진 배경을 잘 설명해 준다.
지조나 의리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게 된 이 시대에, 임병호 시인이 이 시집의 대주제를 『歲寒圖 밖에서』라고 정한 이유를 한 번쯤은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
뭍에서 가장 먼 섬에다 자신을 ‘스스로 圍離安置’ 시켜놓고 ‘가시 울타리’를 둘렀지만 그 ‘가시’에 ‘연록을 피우고’ 가시가 만드는 ‘푸른 그늘에서 쉬겠다’는 시인. 이 시에서 깊이 감춰진 은유적 모티프는 이 시의 제목에서 찾아야 한다.
‘탐라섬 전설처럼’ 순응적으로는 살겠지만 ‘억새꽃’처럼 곧은 정신은 살아있고 ‘북극성’은 계속‘빛’이 날 것이라고 말한다. ‘북극성’은 지구에서 보이는 천체 중에서 유일하게 움직이지 않는 붙박이 별인데 여기서는 변하지 않는 마음, 또는 일관된 지조나 의리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부조리한 세상이지만 그는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을‘스스로 圍離安置’시켜놓고 제3자의 시각으로 ‘억새꽃’처럼 ‘휘날리’거나 ‘서귀포바다 파도소리’가 되거나 혹은 ‘바람’이 되어 ‘이승저승’ 넘나드는 자신과 그 주변 인물들의 삶까지 그저 조용히 관조할 뿐이다.
‘歲寒圖 밖에서’말이다. 물론 그 제3의 시각마저도 사실은 긍정적일 테지만.
Ⅲ
봄을 기다리는 겨울산 나무, 그 뿌리처럼 겸허하리
봄을 찾아가는 겨울강 저 깊은 가슴처럼 뜨거우리
봄 숨결 데불고 벌판 건너오는 바람처럼 늘 푸르리
- 「신년사」 전문
화자는 한 해를 시작하는 ‘신년사’에서‘봄을 기다리는 겨울산 나무’의 ‘뿌리처럼 겸허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겨울산 나무’ 하나만으로도 모든 불합리한 것들을 묵언으로 수용하는 수도사의 눈빛 같거늘 깜깜한 어둠 속의 ‘그 뿌리’처럼 살겠다고 하니, 얼마나 겸손하게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어둠에 묻혀서 우울하고 어둡게 살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겨울강’의 ‘가슴처럼 뜨’겁게 살겠다고, ‘바람처럼 늘 푸르’게 살겠다고 신년벽두에 세상을 향해 삶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겸손과 뜨거운 열정의 경계를 넘나들며 감성의 울타리를 과감하게 허물고 있는 것이다.
새들아,
숲속에서 나와라
봄마중 가자.
소한, 대한 때
얼마나
추웠느냐.
냇가 징검다리 건너
둑길
걸어오시는 봄.
앞산, 뒷산, 들녘
잔설 녹인 봄,
저 따스함을 보아라.
쑥순이 미소 짓는다,
입춘 날
봄맞이 가자, 새들아.
- 「봄마중」 전문
이 시에서는 작품의 들숨과 날숨이 어른들의 세계와 동심의 세계로 혼융되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새들아,/나와라/봄마중 가자’는 어느 동요에서 본 듯한 구절이다. 동심의 눈높이에서 ‘새들’을 부르고 함께 ‘봄마중’가자고 하고 있지만, ‘소한, 대한 때/얼마나/추웠느냐./냇가 징검다리 건너/둑길/걸어오시는 봄’의 관점은 어른의 시각이다.
이처럼 동심과 어른의 경계를 허물어 겨울의 묵은 분위기를 털어내고 ‘봄’을 기다리는 밝은 이미지의 순수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데에 이 시의 매력이 있다.
‘소한, 대한’그 지독한 겨울추위를 견디고 봄이 일어선다는‘입춘’이 왔다고 ‘새들’에게 같이 ‘마중가자’는 것을 보면 시적 화자가 얼마나 봄을 기다렸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소년처럼 무구하다.
이렇게 작품 한 편에서 어른들의 세계와 동심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무시로 넘나들 수 있는 건 시인의 영혼이 맑고 따뜻하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銀髮이 늘어날수록 고결한 여자처럼
나이테 깊은 나무들,
올봄 한결 더 은애롭네.
가슴 열고 그녘 바라보면
고개 숙여
슈미즈 입는 여자
봄나무의 몸매여
이 봄날 山門에서
나무들의 물빛 숨소리 듣는
노년이 청춘인 듯 즐겁네.
- 「봄나무」 전문
‘봄나무’를 ‘슈미즈 입는 여자’의 ‘몸매’로 보는 화자의 시선이 신선하다.
그러고 보니 물오르는 봄나무의 연녹색 살결은 ‘슈미즈’ 입은 ‘여자’처럼 매끄럽고 싱싱하다. 반라의 여인은, 옷을 모두 벗었을 때보다 더 풋풋하고 싱그러운 무언가가 분명 있다. 그 무언가는 아마 ‘고개 숙’이는 수줍음일 것이다.
‘銀髮이 늘어날수록 고결한 여자처럼/나이테 깊은 나무들’이 ‘올봄 한결 더 은애롭’게 보이는 것은 삼라만상을 대하는 시적인 마인드가 겸허하고 무구하기 때문이다.
봄의 이미지들을 ‘나무들의 물빛 숨소리’를 들으며 ‘노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삶이‘청춘인 듯 즐거’워지는 긍정의 시간으로 치환시키고 있어 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연록색은 쓰지도 않았지만 배경이 연록색으로 환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Ⅳ
노스님 따라 외나무다리 건너 부처님 알현했네
- 「개심사」 부분
꽃무릇香에 붉게붉게 물들었네 불갑사 일주문
- 「불갑사」 부분
가을엔 불심도 깊어진다
지장암 돌계단 돌아
오산 사성암 오르면
원효, 도선, 진각, 의상
네 분 대사님 설법인가
그윽한 풍경소리
- 「사성암」 부분
종교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인위적 금단의 카테고리이긴 하지만 그 경계를 넘는다 해서 이상할 건 하나도 없다. 더 확장해서 말하자면 서로가 그어놓은 그들만의 경계를 허물어야 비로소 만물을 포용하는 혜안이 뜨인다고 하겠다.
시인은 천주교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인데도 이 시집에서는 ‘부처님’‘불심’‘불갑사’‘개심사’‘고란사’‘일주문’ ‘설법’ ‘단청’‘풍경소리’등 불교적인 색채가 짙은 시어들을 사용하고 있는 시편들이 다수 보이는데, 그의 詩的 연륜이 만들어낸 시혼으로 종교적인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움을 누리고 있다고 하겠다.
다음의 시에서는 기독교적인 색채가 짙게 배어나온다.
올해도 또
가을을 주신 이여,
고맙습니다.
태풍, 폭우로
산천, 들녘 초목이
상처를 입었지만
그래도 가을이 왔습니다.
어제보다 더 맑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살이
당신의 은총처럼
눈물겹습니다.
오곡백과
한 아름 안고
불어오는 바람은
어쩌면 이렇게 신선한가요.
가을과 더불어
살고 있어
행복합니다.
가을을 창조하신 이여.
- 「가을 頌」 전문
시인은 매우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며 산다.
이 시의 화자는 올해도 거르지 않고 ‘가을’이 왔다고 고마워하고 있는데 그 순정한 마음이 소년처럼 순수하고 해맑다. ‘태풍’ ‘폭우’로 더러‘상처를 입었지만’그래도 잊지 않고 가을을 보내준 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보낸다.
3연의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살’은 그냥 ‘햇살’이라고 쓰는 게 더 깔끔한데도 굳이 ‘하늘에서 내려오는’이라는 수식어를 쓴 이유는 다음 행의 ‘은총’, 마지막 연의 ‘창조’와 더불어 의도적으로 기독교적인 색감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즉 여기서 가을을 보내준 이는 종교적인 神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종교의 외고집에 단단히 뿌리박혀 있어서 내면적인 인식의 융통성이 부재하다면 시집 한 권에서 이렇듯 무시로 종교의 벽을 허물어댈 수는 없다. 괴변이겠지만 시인들은 종교적인 경계조차 허물어 버리고 통합적인 사고체계를 획득할 때 시적 지평을 확장할 수 있다고 본다.
Ⅴ
영혼이 아무리 쓰려도 숨은 멎지 않던데
대저 몸은 얼마나 아프면 사람이 죽는가.
만취해 잠들 듯 가을날 강 건너고 싶네.
- 「그 곳으로」 전문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오고 있지만 누구도 죽음을 의식하며 살지는 않는다. 그 숙명적인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데 대부분 잊고 산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겠다. 아니 죽을 때 죽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은 의식적으로 잊고 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죽음에 대한 거부반응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만취해 잠들 듯 가을날’ 그냥 소리 없이 레테의‘강’을‘건너고 싶’다고 한다. 이승이 저승 같고 저승이 이승 같은데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다음의 시에서 시적 화자는 이미 그 강을 건너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은하수
오작교에서
지구를 보았다.
내가
저 곳에서
살았었구나.
돌아가고 싶었다.
-「피안 내외」 전문
‘은하수/오작교’에 앉아 ‘지구를’ 내려다보며 그곳에 ‘내가/살았었’다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은하수’는 분명 하늘에 있고, 천상이라면 분명 저승인데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참 모호하다. 쉽게 가고 올 수 있는 거리처럼 가볍다.
굳이 경계를 가르고 싶지 않거나 가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시인의 영혼은 이미 그 경계를 넘어서서 유유자적 천상과 지상을 오르내리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의 저변에 깔려있는 숨겨진 은유를 찾으러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지상의 삶에 대한 시인의 순정한 마음, 즉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시인이 세상에 대한 구애가 엿보인다.
Ⅵ
임병호 시인을 이야기할 때, 술 이야기는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다. 그만큼 시인은 애주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역시나 이 시집에도 술에 관한 시가 10여 편 실려 있다.
언젠가 내가 죽는다면
저 높은 하늘
이렇게 고운 단풍 볼 수 있을까.
죽은 뒤
山門에서 만나면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죽어서도
詩를
쓸 수 있을까.
죽은 뒤에도
술,
마실 수 있을까.
가을이 자꾸만
餘生
그 안을 들여다본다.
- 「술詩 5」 전문
이 시를 읽어보면 시인은 ‘죽어서도’ 하고 싶은 게 몇 가지가 있다.
죽은 후에도 계속 ‘詩’를 ‘쓸 수 있을’지, 또 ‘술’을 ‘마실 수 있을’지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있다. 시인다운 이야기다. 시인이 죽어서 시를 쓰지 못하면 어찌 살겠는가(?). 또 얼마나 술을 좋아하면 죽어서도 술이 없을까봐 미리 걱정을 하실까.
시인에게는 詩가 삶이고 삶이 곧 詩이기 때문에 그 경계가 없다. 또 술이 주식인지 밥이 주식인지 구분할 필요도 없다. 시인으로서 살아온 세월이 반세기가 되다보니 시와 생활을 굳이 구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시인의 시와 더불어 반세기 동안 친구가 되어온 ‘술’도 마찬가지이다.
대취한 이튿날 아침은 식욕이 왕성해져 더 배고프다.
알콜 소독으로 치유돼 어제보다 청결해진 위장이여
더불어 맑아진 영혼으로 세상을 본다, 욕망을 씻는다
- 「술詩 10」 전문
시인이 술을 마시는 이유가 이 시에 나타나 있다. ‘맑아진 영혼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서다. ‘욕망을 씻’기 위해서다. 詩的인 모티프답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혹은 사회생활에서 남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정도이고, 숙취 후에도 속 쓰림으로 식사를 하지 못해 고생을 하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시인은 맑은 영혼을 위해서 술을 마시고 자신의 욕망을 씻어내기 위해 술을 마신다. ‘대취한’ 다음 날에 ‘알콜’로 ‘소독’된‘위장’은 더 깨끗해지므로‘식욕이’더 ‘왕성해’진다는 시인은 어쩌면 애주가적인 유전자를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게 마셔도 그 흔한 술주정 한 번 없었던 것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특유의 성품 때문이리라.
Ⅶ
임병호 시인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수원에 대한 애향심이 남다르다.
‘詩는 이야기를 좇고, 경험을 이야기한다’고 바슐라르가 말한 바 있듯이 시인은 수원
곳곳의 명소와 산천과 역사를 수시로 자신의 작품 속에서 서사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30여 년 전에 쓴 ⌜아, 수원華城!⌟은 수원화성의 역사적인 의미를 한편의 사극처럼 서사적으로 풀어낸 명시이다. 수원에서 공연되는 연극이나 합창, 퍼포먼스, 시낭송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詩는, 이상길 작곡가가 교향곡으로 작곡하여 수원화성과 관련된 행사 때마다 널리 불리고 있는 수원을 대표하는 詩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에는 중·고등학교에서 교내 아침방송으로 그 노래가 자주 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無上尊 혼령 머물러 계신 종루봉, 구름 속에 있구나
89암자 찾은 고운 최치원의 종태봉, 그 뜻도 알겠네
오늘도 하늘로 오르는 천년 빛, 자비로운 光敎로다.
현오국사 깊은 유덕, 서봉사 성역 석탑에서 창연하고
창성사 진각국사의 법등이 사바세계 밝혀 눈부신데
원각국사ㆍ혜각국사ㆍ동남 봉녕사에서 설법하시네.
시루봉ㆍ종루봉ㆍ형제봉서 발원하는 푸른물 수원천
서남향 계곡 따라 흘러 내려 畿甸 十方三世 적시고
화홍문 칠간수, 남수문 九澗水門 폭포 물보라 이룬다.
천년만대 수원 사람 지켜주는 連峰, 순결ㆍ무구하나니
선경이로다, 光敎佛音ㆍ光敎積雪ㆍ光敎樹海ㆍ光敎晩秋,
광교산 山門에 들어서면 산정 종루봉 쇠북소리 들린다.
- 「광교산」 전문
역시나 이 작품집에도 「수원천」 「팔달산」 「만석호 저녁 풍경」 「광교산」 등 수원을 노래한 시가 몇 편 들어있다.
위의 시 「광교산」에는 유독 한자가 많이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수원의 역사성을 바로 알리고자 의도된 구조적 장치일 것이다. 또 光敎佛音ㆍ光敎積雪ㆍ光敎樹海ㆍ光敎晩秋 등은 한자로 표기해 주어야 그 의미파악이 쉬워지기 때문이리라.
‘광교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봉인 시루봉과 형제봉 정도는 알고 있지만 이렇게 산자락 곳곳마다 역사적인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산인 줄은 잘 알지 못한다. 시인은 시를 통해 수원의 산천과 역사를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임병호 시인은 1965년에 화홍시단을 주재하면서 문학의 길에 들어섰다.
현재 문단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부산의 김석규 시인, 제주도의 김용길 시인, 강원도의 엄창섭 시인, 서울의 최호림 시인 등과 함께 숙명적으로 타고난 시인의 길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시인 세월 50년,
더불어 애주가 세월 50년.
詩와 삶의 경계, 사랑과 미움의 경계, 종교의 경계, 밥과 술의 경계, 이승과 저승의 경계마저 허물어버린 자유롭고 무구한 영혼의 시인 임병호!
문학과 세상을 향한 큰 울림,
그만의 특별한 변주곡을 그는 지금 연주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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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임병호 시인님의 작품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요
가남 시인의 작품해설, 단연 압권입니다
임 시인님의 작품에 후광을 더해 주시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칭찬.....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