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5대째 천주교를 믿는 ‘구교우’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부모님께 물려받은 신앙은 관념이 아니었고,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부모님께 물려받은 신앙은 생활이었고,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부엌에서 밥을 푸시면서 성호경을 그으셨습니다. 이름은 세례명을 불렀습니다. 생일에는 본당에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기일에는 가족이 모여서 연도를 바쳤습니다. 길게 줄을 서서 부활, 성탄 판공을 보았습니다. 교무금, 헌금은 꼭 챙겼습니다. 아침, 저녁기도를 바쳤습니다. 삼종기도를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 묵주기도를 하였습니다. 성당에서 하는 피정, 교육은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습니다. 본당 신축헌금을 냈고, 형편이 어려우면 노력봉사를 하였습니다. 9일기도, 54일 기도를 하셨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어디 여행을 가면 제일먼저 주변에 있는 성당을 찾아보았습니다. 주일미사는 물론이고 평일미사에도 참례하였습니다.저의 부모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물려받았습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를 존중하고,존경하였습니다. 저는 신앙을 교리에서 배우기 전에, 교회에서 배우기 전에 먼저 집에서 배웠습니다. 신학교의 가르침은 집에서 하는 신앙생활의 연장이었고, 집에서 하는 신앙생활이 교회의 가르침과 일치한다는 확인이었습니다.
80년대부터 신자의 수가 급격하게 늘었습니다. 매 10년마다 100만 명씩 신자가 늘었습니다.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배우는 신자의 수보다는 성당에서 교리를 배워 신자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늘어나는 신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성전을 신축해야 했고, 본당은 분가해야 했습니다. 1년을 배워야 하는 교리는 6개월로 단축해서 배우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영성의 깊이를 채우는 것보다 친교와 활동을 넓히는 것에 치중했습니다. 주일미사의 참례 수가 80%가 넘었는데 신자가 늘어나면서 주일미사 참례 수가 점점낮아졌습니다. 20%을 유지하기도 어려워졌고, 팬데믹으로 그마저도 힘들어졌습니다. 도시생활과 핵가족으로 가정에서 신앙이 전수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믿음, 희망, 사랑으로 덕을 쌓아 영원한 생명을 얻기보다는 재물, 권력, 명예로 현세해서성공하는 삶을 먼저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정에서 기도하는 삶을 보여주기 보다는 대학만 갈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면 잠시 성당에 가지 않아도 기다려주는 배려(?)가 있었습니다. 성직자와 신자는 늘어났지만 성직자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성직자도 늘어났습니다. 냉담자도 늘어났습니다. 뿌리가 깊지 않는 나무가 바람에 쉽게 넘어지듯이, 샘이 깊지 않으면 가뭄에 곧 말라버리듯이 교회에 활력이 떨어지고, 젊은이들이 떠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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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신부님의 묵상글(2024년 5월 3일 사도 필립보와 야고보 축일) 일부를 복사했습니다.
우리 교회와 가정의 못자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의 글에서 문제 제기와 그 문제제기가 바로 대안이 되고 있음을 봅니다. "성당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줄 알았더니 종교문화생활을 하고 있어 정말 실망했다"라면서 중2 세례 학생이 당당하게 냉담 선언을 하던 일이 떠오릅니다. 주님은 진실하고 살아있는 신앙을 원하십니다. 아니면 주님을 조롱하고 농락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