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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살자들 -
한도연은 김연희를 자신의 랜드로버 지프에 태우고는 서대전역으로 가고 있었다.
김연희의 뿌리가 숨쉬고 있는 논산군 연산면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나중에 혼자서도 찾아갈 수 있도록 기차를 타고 가고 싶다고 해서 한도연이 길 안내를 하고 있었다.
논산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연산면에서 내린 도연과 연희는 계룡산이 바러보이는 쪽으로 무턱대고 걸어갔다.
연희는 자신의 선조들의 고향 땅을 밟았다는 감회가 새로웠던지 연신 들떠있는 마음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눈가만 붉어졌다.
“연희씨. 도자기를 굽는 가마터가 있는지 물어볼까요?”
“아, 그러시면 더 좋겠군요”
한도연은 버스 정류장의 뒤쪽에 있는 수퍼로 들어가더니 생수 두 병을 들고 나왔다.
“택시를 타고 학계리 가마터로 가자고 하면 된답니다.”
김연희의 두 눈이 아이만큼 놀라움으로 커졌다. 들뜬 표정이었다.
베이징 공항에 내린 인후와 한승수는 마중나온 리경철을 따라 천안문 광장 근교에 위치한 탕페이 시장의
깊고 후미진 곳의 간판도 없는 허름한 약방으로 들어갔다.
이 약방은 왕루이 사장이 알려준 곳인데 일반 약재는 취급치 않고 돈 많은 갑부들에게만 공급하는 최고의
진귀한 약재들만 판매하는 전문 약방이었다.
인후 일행이 들어서자 한쪽 귀퉁이애서 돋보기를 걸치고 신문을 읽던 뚱뚱한 50대 중반의 사내가 안경 너머로
인후 일행을 한번 훑고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중국인 특유의 거드름과 거만함이 배어나오는 행동이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한 두가지 약재 좀 살까해서 왔습니다.”
“여긴 일반 약재는 판매하지 않소. 약재를 사려면 나가서 오른쪽으로 200미터 쯤 더 가면 약재상 거리가
나올거요.”
“알고 있습니다. 왕루이 사장의 소개로 왓습니다만”
“왕루이? 오호....그러신가요. 일단 이쪽으로 와서 앉으시지요.”
왕루이의 이름을 대자 뚱보 사장은 눈빛부터 달라졌다.
확실히 왕루이는 이 계통에서 지명도가 높았다. 뚱보 사장은 쌍화차를 내오더니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다.
“왕사장이 요즘 베이징에 영 안 나오시던데........무탈하신가요?”
“네. 잘 계십니다. 건강도 좋으십니다.”
“껄껄.그 양반이 대단한 정력가라는 건 온 천하가 다 아는 일이지요”
뚱보 사장이 개기름을 번들거리며 두 손을 맞잡고 말하며 중국인 특유의 넉살을 부리자 인후는 그가 보통
상대가 아님을 직감하였다.
“그런데 손님들은 어디서 오셨나요?”
“아, 우리는 한국에서 사업차 왔습니다.”
“그래요? 왕루이를 안다면 보통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아니겟고.....”
거기까지 말한 뚱보 사장이 쌍화차를 마시며 탐문이라도 하는 듯이 인후 일행을 날카롭게 주시했다가 다시
온화한 표정이 되었다.
“그런 데 무슨 약재를 찾으려고 오셨는지요?”
“30년 이상 생존한 암곰의 웅담과 달빛어빙초, 그리고 금계 유정란입니다.”
“허어, 하나같이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들이오만”
여기서 밋밋하게 나가면 꺽인다는 것을 직감한 인후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왕사장은 저룰 보고 한반도의 불새라고 하더군요.
덧붙여서 한번 불이 붙으면 만년빙옥으로도 끄지 못한다고도 합디다만“
뚱보 사장이 인후를 곁눈질로 슬쩍 보더니 예의 넉살기 있는 웃음을 지으며 빠른 혀놀림으로 말하였다.
“어우야...왕사장이 그런 말을 했다면 정말 대단하신 분이군요. 불새를 뜻한 것은 속여봐야 소용없다는
뜻이니 정당하게 거래하겠소. 말씀하신 약재는 얼만큼이나 필요하신지요?”
“다다익선. 많을 수록 좋습니다만”
그러자 뚱보 사장 눈이 화등잔만큼 커졌다.
“당신이 말한 약재들 가격이 얼마 나가는지는 알고 있소?”
“우리들도 시세는 대충 알고 찾아왔으니 사장님께서 먼저 말씀해 보시지요”
“음...”
남은 쌍화차를 다 마시며 머리를 굴린 뚱보 사장이 털보 신승수를 힐끗 쳐다보더니 인후를 보고 말했다.
“웅담은 두 개 있으며 합이 330.000 위안, 달빛어빙초는 1킬로 700그램이 있는데 280.000 위안,
금계 유정란은 개 당 10.000 위안이오”
“물건을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알겠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뚱보 사장이 잠시 후에 약재들을 가지고 나오자 신승수가 눈을 번뜩이며 약재들을 살펴보았다.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며 이리저리 살펴보던 신승수가 인후를 데리고 잠시 밖으로 나갔다고 이내 돌아왔다.
“웅담은 300.000 위안, 어빙초는 230.000 위안, 금계는 개 당 10.000 위안 그대로 드리지요.”
“껄껄...물건 보는 눈이 보통들이 아니시군.
좋소이다 첫 거래이니만치 내가 조금 양보하리다. 그런데 금계는 몇 개나?”
“몇 개까지 구할 수 있습니까?”
“글세...그게 요즘 잘 나오질 않으니......20개 까진 내가 책임지겠소.”
“알겠습니다. 20개 구해주시고. 언제 오면 되겠습니까?”
“사흘 후에 오면 될 거요”
“그럼 사흘 후에 최종 거래토록 하십시다.”
베이징 역에서 기차를 타고 장춘으로 가는 인후 일행은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는지 편안한 표정이었다.
“형님. 약재들이 효과를 발휘할까요?”
“세월이 쌓여 먼지가 내려앉았지만 약효는 들을 걸세”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중국인들 장사 수법이 후려치는 게 주특기라고 하더니 그정도로 후려칠 줄은 몰랐지”
“하하하. 어딜가나 사람사는 곳은 다 마찬가진가 봅니다”
장춘에 도착한 인후와 신승수는 리경철이 주자해둔 자동차를 타고 곧바로 왕사장의 가계로 직행하였다.
“오. 한선생 어서오시오. 나날이 얼굴빛이 좋아 지는 군요 하하핫”
“좋게 보아주시니 고맙습니다. 서로 인사들 나누시지요”
‘오호...이 분이 바로 한국 제일가는 약초꾼에 신기의 민간의학자라는?“
왕사장이 호들갑을 떨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신승수 라고 합니다. 인후 동생에게서 왕사장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인후에게 많은 도움을 주시니 그저 고마을 따름입니다.”
“어우야... 도움은 제가 한 선생에게 더 받는 입장입니다 껄껄”
응접실에 중국요리 서너가지와 일엽청주를 차려놓은 왕사장은 인후와 신승수에게 일배를 권하였다,
일엽청주 한 잔을 마신 신승수가 얼굴을 찡그렸다. 독한 술기운이 위장을 타고 대장까지 침투한 느낌이었다.
“형님. 첫 잔은 좀 독할 겁니다만 요리와 함께 자주 마시다보면 뒷 맛이 개운한 술입니다.”
“하하핫. 한선생도 처음엔 별로 마시지 못했지만 지금은 잘 마시게 되었소이다.”
“허허.....그렇게 되는군요. 무엇보다 아침에 산뜻하게 일어날 수 있는 점이 좋더군요.”
“그것이 일엽청주가 가진 장점이라오 하하핫”
술잔이 서너 순배 돌자 왕사장이 정색을 한 얼굴로 인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한선생. 소식 들었소?”
“네? 무슨 소식을........”
왕사장이 리경철을 슬쩍 바라본 후 입을 떼었다.
“리군이 아직 말을 하지 않았나본데......지금 북한은 난리도 아니라더만”
“그게 무슨 말씀이죠?”
“예전에 김정일이가 건강이 안좋아서 한 차례 쓰러졌던 거 알고있지요?”
“네. 그거야 압니다만”
“김정일의 비서였다가 지금은 부인처럼 행세하는 김옥이 보위부를 통해 지령을 내렸다는데 북한의
약초꾼들에게 훈령을 내렸다고 하네.”
‘무슨?“
“김정일의 건강을 위해 최고의 약초를 캐오는 약초꾼에겐 영웅칭호는 물론이며 당 간부에 특채하여 평생을
호의호식 하며 살게 해주겠다는 훈령이라고 하더군”
“음...”
“그래서 지금 북한은 약초꾼은 물론이며 먹고 살기 힘든 인민들까지 나서서 약초캐기 열풍이 불었다는데
한편으로는.....”
“한편으로는?”
“군부에서 불만들이 터져 나온다는게야. 워낙 폐쇄적인 국가라서 밖으로 잘 알여지지 않았지만 얼마전에
신의주 인근 군부대서 반란 비슷한 뭔가가 일어났는데 평양에서 출동한 보위부 소속 군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당하며 많은 인민군들이 사살 당했다는군”
왕사장이 말을 마치자 인후가 리경철을 살짝 바라보았다.
리경철은 연신 술잔만 입에 털어넣고 있었다. 북에 남은 친지들이 걱정스러워서 그럴 것이다.
“더욱이나 김정일의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첮째를 쫒아내고 둘째는 지멋대로 살게 내버려두고 할아버지
김일성을 많이 닮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자 군부 불만들이 쉴새없이 터져 나온다는군.”
그때까지 조용히 경청하던 인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중국조차 세습은 하지 않는데 김일성 일가가 3대를 세습했으니 군부는 물론이며 굶고 있는 북한 인민들의
불만이 날이 갈수록 쌓여질 것입니다.”
“그렇지. 그게 문제야. 그래서 중국과 북한 국경이 더욱 강화되었고. 중국인들이 북한으로 넘어가서 약초를
캐다 발각되면 즉각 수용소로 투옥된다는 소문도 들여온다네.
이젠 진짜 북에 들어가려면 목숨을 저당잡히고 들어갈 판이니.....”
신승수와 리경철은 왕사장과 인후의 대화를 들으며 연신 술만 들이키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중국 약초꾼들이 북에 못들어가니 자국에서 캔 약초들은 북한산으로 둔갑시키곤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속여 팔아먹는다는 것일세.”
‘음...“
“자네도 티비에 나온 김정은 모습을 보았지? 이제 겨우 스믈 중반을 넘긴 애송이가 얼마나 잘 쳐먹었으면
그렇게 배가 나오고 얼굴은 돼지처럼 살이 쪘겠는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삼대가 모두 돼지처럼 살찐
모습들 아닌가”
“그건 그렇군요...”
인후가 침중하게 말하자 왕사장은 더 열을 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고생만 직싸하게 하는 군부들과 굶주리는 인민들 불만이 나날이 쌓여갈 밖에.....
이렇게 가다간 언젠가는 사단이 나지 싶으네”
“불행한 일입니다만 김정일 입장에선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미국의 끝없는 거짓말과 믿을 수 없는 러시아. 결국 중국조차 동북공정을 내세워 힘의 논리로 김정일을
조종만 하려고 하니 김정일도 살길 찾아 핵을 개발할 수 밖에요. 그리고 그는 결국 해냈지요.”
“미국,지들이 가지고 있는 수천 수 만기의 핵을 그대로 놔둔 채 북한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은 핵을 개발할 수
없다는 논리는 무슨 억지 논리인지.....
생쥐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도 모자라서 발톱 손톱 다 자르라고 윽박지르는 격이니 김정일이 바보가
아닌 한 순순히 따르겠냐고”
“그렇습니다. 왕사장님 말씀처럼 김정일은 살기 위해서 핵개발과 세습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김정일의 생각은 멋지게 맞아 떨어지고 있고요.”
“멋지다고? 북한 인민들이 수없이 굶어 죽어나가는데도?”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북한이 90년 초 중반 고난의 행군을 할 때도 아사자가 속출하여 굶어죽은 인민들이
수 백만명 이라는 설이 흘러나왔지만 아니라는 게 판명나지 않았습니까?”
“그때와 지금은 또 사정이 틀릴 걸세. 미국은 경제를 조이고 일본은 시큰둥 하고 있으며 믿을 데라곤
중국뿐인데 중국도 미국의 입김을 무시할 순 없으니......”
“북한은 쉽게 망하진 않을 겁니다. 이스라엘과 철천지 원수지간인 아랍 국가에 미사일을 팔며 버텨왔고
이제는 리비아 이집트는 물론이며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에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팔아서 꿋꿋히 버티는
중입니다. 이것은 미국으로선 재앙이며 결국 미국은 언젠가는 클린턴이나 다른 고위급 관리가 오바마의
친서를 가지고 평양으로 날아갈 것입니다.
그 중에서 철강산업이 전무한 이란의 모든 무기들은 북한이 공급해준 것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도 아닌지
오래됐지요.”
“김정일이 보기보단 합리적이고 대단한 인물인지는 나도 아네만......
그를 추종하지 않는 인민들과 군부는 그를 도살자로 부르고 있다는군.”
“도살자라......달갑지 않은 별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는 동독과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무너지자 재빨리 고급 과학자들을 포섭하여 북으로 데리고 와서
핵을 비롯 각종 첨단 무기를 개발한 것이 결과적으로 한반도에서 터질 전쟁을 막는 억지력을 해주고 있으니
저는 한반도에 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김정일에게 고마움 같은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도 그렇군...“
왕사장이 짐짓 심각한 얼굴을 하며 한 손으로 턱을 쓸자 인후는 아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왕사장님. 박경서 같은 조선족 베테랑 약초꾼들도 이제는 북한으로 함부로 못들어가겠군요?”
“어우야...이 사람아 들어가는 게 다 뭔가. 국경 수비가 강화되어 들어가기는 커녕 잡히면 그대로
아오지행이라고 하니 다들 몸을 사리는 판일세”
“그렇습니까? 하지만 저는 들어가야 하는데......”
인후가 목소릴 깔며 낮게 말하자 왕사장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이 사람아. 또 황제더덕이 필요해서 그런가? 그것은 내가 얼마든지 구해보겠네만”
‘하하 아닙니다. 묘향산에 가야 해서요.“
“묘향산엘?”
인후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왕사장은 걱정스런 얼굴이 되었다.
“길 안내를 맡아 줄 약초꾼이 있으려나”
“박경서나 장기호 선생이라면 가능 할 것입니다.”
“글세. 이번엔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쉽게 응할지.....”
“관행을 깨고 박경서에겐 세 배의 돈을 지불할 것이며 장선생은 기꺼이 안내를 해주실 겁니다.”
“음...그렇다면 좋으련만.....”
한중약초한약업사 사무실을 열고 들어서자 약초 향이 코를 찔렀다. 장기호와 박경서가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이제 오는군. 조국의 맛있는 밥을먹어서 그런지 얼굴 혈색이 좋구먼 하하”
장기호의 밝은 목소리였다.
뱍경서는 과묵한 성격답게 인후와 눈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건넸다.
“장선생님 반갑습니다. 경서형님도 무탈하시지요?”
인후가 쾌활한 목소리로 말하자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인사들 나누시죠. 여긴 한국에서 함께 오신 신승수 형님 입니다."
‘아아......한국 제일의 약초꾼이시군요. 만나뵈어서 반갑습니다. 장기호입니다.
이 쪽은 제 동료 박경서라고 합니다.“
“네. 인후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장선생님은 인후가 묘향산에서 실종되자 여러차례 묘향산엘
들어와 인후를 찾느라 고생하셨다죠?”
“고생이랄 것 있나요. 동료가 종적이 묘하니 찾아야지요 하하”
한 차례 수인사를 건넨 다섯 사람은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장선생님. 그리고 경서 형님. 제가 이번에 또 묘향산에 들어가야 하는데...... 도와주시겠습니까?”
인후가 말을 마치자 순간 사방이 적막에 힙싸인 듯 고요한 침묵이 한차례 흘러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박경서였다.
“힘들걸세. 북한 당국이 검문검색을 강화해서 국경을 넘어 장사를 하던 인민들도 몸을 사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여오더군”
“하지만 맘만 먹으면 형님이나 장선생님은 얼마든지 들어갈 순 있지요?”
“그거야 그렇지만.......”
“형님께 100.000만 위안 드리지요. 그리고 장선생님은 천부경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인후가 천부경을 말할 줄 알았다는 듯 장기호는 팔짱을 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무실 창문 너머로 어둠이 짙어가고 있었다. 박경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셔터를 내리고 돌아왔다.
그러자 침묵하던 장기호가 입을 열었다.
“이번이 아마도.......나의 마지막 북한 행이 될 것 같군.”
박경서가 슬며시 장기호를 한번 바라보더니 결연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면 저도 가지요. 이번에 묘향산에서 황제더덕을 캘 만큼 캐서 한국으로 갈랍니다.”
인후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싱긋 웃었다. 힘이 실려있는 아름다운 미소였다.
“장선생님. 경서 형님 고맙습니다. 별 다른 위험은 없을 겁니다. 저를 믿으세요.”
“이 사람아 믿으니까 기꺼이 동행한다는 거 아닌가”
장기호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코믹하게 말하자 경서도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제발이지 도살자들이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군요.”
인후가 뜬금없이 도살자라고 말하자 두 사람이 멀뚱한 얼굴이 되었다.
“도살자라니? 그게 누구인가?”
장기호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인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김정일에 반기를 드는 군부와 굶주리는 주민들이 그를 그렇게 부른다는군요.”
“아하.....나도 들은 적이 있네. 묘향산 밑에서 약초를 캐며 힘겹게 살아가는 인민들도 김정일과 김정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더구먼”
다섯 사람은 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유달리 빨간 색 등이 많은 풍경들이 눈을 어지럽혔다. 허벅지가 살짝 드러나는 중국 전통복을 입은 미녀들이
술집앞에서 요염한 웃음으로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사람이 사는 모습은 같구나’
그렇게 생각한 인후는 달빛마을에서 스승 현도자를 뵐 생각에 가슴이 저며왔다.
어디선가 폭죽놀이를 하는지 따발총 같은 소리가 밤하늘을 휘저으며 북두칠성 쪽으로 도망갔다.
인후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지만 별은 듬성듬성 보일 뿐이었다.
중국도 급속한 산업화로 이미 밤하늘의 별들이 보이지 않게 된지 오래였다.
중국의 급속한 성장과 북한의 치열한 방어.......머지 않아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의 패권국가가 될까.
하지만 인후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북한, 인후는 웬지 모르게 자신의 직관이 북한을 믿으라고 하고 있다.
그러자 두 주먹을 힘차게 말아 쥔 인후는 일행을 따라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식당을 향해 걸었다.
밤이 짙은 까만색으로 익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