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진 중에서 초승달을 고르시오.
초등학교 다닐 때 이런 시험 문제를 보았을 것이다.
나도 초승달 모양을 외우기 위해 왼금오초라고 외운 게 지금까지 기억에 있다.
엄지와 검지를 벌려 왼손 모양이면 그믐달, 오른손 모양이면 초승달이라고 배웠다.
세상의 지식이란 다 이런 식이었다.
그러니 나와 같은 나라에 태어나 이런 시험 문제를 앞에 둔 우리나라 아이들이라면 보나마나 첫번째 사진을 답으로 고를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적도에 있는 나라의 학생이라면 두번째 사진을 초승달로 안다.
남반구 학생이라면 세번째 사진을 초승달로 알 것이다.
사진은 모두 같은 달을 찍은 것인데, 찍는 위치에 따라 달 모양이 달라진 것이다.
나는 내 친구가 이승만을 파고들다가 극우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의 아버지는 육이오전쟁 때 월남한 분으로, 서북청년단 활동을 했거나 그 단체를 지지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친구의 연구를 통해 이승만 대통령 시절, 토지개혁과 기업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나는 이승만의 공과 허물을 잘 안다. 하지만 친구는 공을 더 많이 본다.
한 후배는 대학 다닐 때부터 극좌였다.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다. 남한은 친일파 잔당이 세운 나라라고 극도로 혐오한다. 나는 이 친구와 같은 극좌들로부터 육이오전쟁 때 인민군 지휘관은 모두 독립군이었으며, 그들을 막은 국군 지휘관은 대개 일본군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시작은 그러했으나 오늘날 사일구혁명과 광주항쟁과 6.10항쟁 등으로 그 균형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판단한다. 아직도 친일파 잔당을 다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면역력은 충분히 갖추었다고 본다.
나는 내게서 친구들이 가진 그런 편견과 모순이 있는지 자주 살핀다. 붓다는 아상, 인생상, 중생상, 수자상을 없애라 하셨다. 사람은 저마다 相을 갖고 있다. 상은 원래 없는 것이다. 空한 것이다.
아나파나 사티는 나 자신을 공하게 만드는 수행법이다.
공한 상태가 아니면 진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거울을 잘 닦아야 사물이 올바르게 비치듯 마음이 탁하면 바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아나파나 시키면 기껏 그래서 뭐가 좋아지나요, 묻는다.
그렇게 살면 뭐가 좋아지는데?
이런 사람에게는 설명을 아무리 길게 해주어도 엉뚱한 사변에 놀아나 마치 깨진 독에 물 붓기다.
아나파나는 진실을 볼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하면, 진실이 밥 먹여주느냐고 되묻는다.
그러는 저는 나이키 운동화 신고, 안경 쓰고, 자동차 타고, 스마트폰 쓰면서 그런 물건들이 진실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나이론은 화학의 진실에서 나와 나이키가 되고, 안경은 광학 이론에서 나와 물체를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어느 것 하나 진실에서 나오지 않은 게 없다. 거짓에서는 오직 죄만 나올 뿐이다.
붓다 시절에도 맹숭맹숭 살면서 질문 한 번 하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고, 사람들은 붓다 대신 힌두 귀신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수천 생을 산들, 어제의 고통을 잊고 또 잊으면서 먹이를 구하러 다니는 윤회의 수레에서 내리려 하지 않는다. 감옥에 너무 오래 산 죄수들은 기껏 석방이 결정돼도 두려움을 느낀다더니 딱 그 짝이다. 바깥세상이 뭔지 다 잊었기 때문이다. 반야의 세상이 뭔질 알아야 욕망을 가질 텐데 아예 모르니 욕망도 없다.
이런 문제는 어떨까?
- 다음 중 어느 것이 여우일까요?

물론 다 여우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은 아래왼쪽 잿빛을 여우라고 볼 것이다. 티비 많이 본 사람들이야 대충 눈치채겠지만, 옛날 사람들이라면 틀림없이 잿빛을 고를 것이다.
왼쪽위 사진은 사막 여우고, 오른쪽위 사진은 사막 여우 새끼다. 자라면 색깔이 누렇게 변한다.
아래 오른쪽은 북극여우다.